2000년 1월 16일
제목: 하나님께 복 받는 삶을 위하여
성구: 렘29:11-1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복 받는 삶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거나 함께 일하려면 서로를 이해하고 어느 정도 뜻이 맞아야지 뜻이 맞지 아니하면 함께 걸어가거나 함께 일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상당히 감정과 뜻이 일치해야 합니다. 일치하지 아니하여 밤낮 충돌하고 싸우게 되면 결국 헤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거하고 살며 일하기 위해서는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맞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대, 전지, 전능, 온전하신 분으로서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과 뜻에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일치시킬 수는 결코 없습니다. 인간이야말로 깨어지고 낮아져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의 마음과 뜻을 순복시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복스럽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로 3절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서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살기 위해서는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상고해야 하는데 우리 가슴에 확 닿게 하나님의 뜻을 대낮같이 깨닫기란 굉장히 힘이 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만 그러나 상당히 경험이 많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 이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이것이 정말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가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보탬도 뺌도 없는 하나님의 행하심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 대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로 39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하시고 생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을 밝히 보여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틀림없이 알 수 있습니다.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흔들리지 아니하고 명명백백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나는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누가 내게 무슨 말을 해도, 어떤 부정적인 일이 생겨나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만은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이렇게 확실히 알 수 있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린 것은 우리의 일생의 죄악을 다 청산하고 우리를 거스르는 율법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게 하는 뜻이 거기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면 난 절대로 정죄 받지 않고 용서와 사랑을 받게 되고 의를 받게 된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내가 용서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는 사람은 용서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어떻게 너는 자격이 없고 너는 구원받을 아무런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라도 그 말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할 때 일생의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할 수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고 흔들리지 않고 거기에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속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세상과 마귀를 쫓아내고 천국과 성령의 거룩함이 내 속에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도 흔들리지 않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마귀가 쫓겨 나가고 세상이 쫓겨 나가고 내 속에 성령과 천국이 임하여 내가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이건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뜻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조금도 보탤 필요도 없고 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성령 받고 거룩하게 되고 하늘 나라가 임하여서 하늘 나라의 영광과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문제에 관해서 조금도 흔들리면 안됩니다. 세속이 아무리 여러분을 둘러 진치고 여러분이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내 속에는 천국과 성령이 임하여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마귀가 아무리 왔으나 여러분을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너무나 분명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슬픔을 친히 짊어지시고 우리의 병을 담당하신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압니다. 여러분 우리가 슬픔에 짓눌려 있는 것,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슬픔에서 놓여남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채움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진실한 뜻입니다. 우리가 질병에 짓눌려서 우리의 삶이 시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강을 얻고 활달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치료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이 시작부터 마지막 끝날 때까지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슬픔에서 놓여남을 받고 질병에서 치료받아 건강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란 것을 타협하지 않고 우리가 믿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병이 들어 어떻게 온 몸이 아프고 혹은 암이다 혹은 관절염이다 혹은 종양이다 이젠 살 수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상이 보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의 말과 하나님의 말이 틀립니다. 세상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틀립니다. 세상은 어떻게 말할지라도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슬픔에서 놓여남을 받고 여러분이 질병과 연약에서 치료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흔들릴 수가 없습니다. 타협하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우리는 거기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굳세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기쁨을 얻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치료함을 받아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힘차게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병마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우리는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져온 저주와 가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가난도 예수님이 몸으로 짊어지셨고 저주도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몸으로 짊어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누가 부인해요? 너무나 명명백백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 말씀에 우리는 굳게 섭니다. 어떠한 환경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어떠한 역경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말씀은 말씀입니다. 주님이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흔들리지 않고 주의 약속 위에 우리가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과 음부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그를 통하여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부활하고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영생 천국을 얻게 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한 뜻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조금도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땅에 살면서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여러분 묻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대속하시고 죽으셨다고 부활하셔서 허락하신 그 뜻은 보혈로 인 친 것이요, 성령으로 인 친 것이요, 이것은 절대로 변할 수가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면 우리의 모든 믿음의 토대는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 위에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도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도 하나님과 의견이 불일치하고 교통이 끊어지면 안되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의 삶이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늘 계속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에 자기를 늘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은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 몸에 흠점이 있는지 알게 되고 머리가 잘 고른지 아닌지 옷이 잘 펴져 있는지 알 수 있잖아요? 우리가 계명을 늘 들여다보고서 우리의 영적인 삶을 늘 단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 25절에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여러분과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내가 영적으로 올바로 서 있는가 서 있지 않는가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여러분께서 늘 하나님의 십계명을 생각하고 비추어 보고 여러분을 고치면서 살아야 하나님과 일치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기도와 묵상을 통하여 성령께서 지시하는 바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는데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의 인도를 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목회 초년에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거역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저가 목회자가 되어서 목회 중심으로 사역하기를 원하셨습니다만 저는 부흥사가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되는 것보다도 빌리그라함 같은 부흥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며 부흥회를 인도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부흥회가 되지 않습니다. 가는 곳마다 몸이 아프고 사람들이 별로 모여오지 아니하고 부흥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목회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치료를 받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일찌감치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목회에만 치중했더라면 더 목회에 성과를 거두었을 것인데 성령의 인도를 거역하고 자꾸 부흥사가 되려고 이름도 바울 선생을 닮아서 ‘폴 조’라고 바울을 붙였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너는 바울이 아니다. 다윗처럼 나라를 건설하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니까 이름을 바울이 아니라 다윗으로 고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그래서 다윗으로 고쳤습니다. 이와같이 여러분 목회를 하면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하다가 성령과 씨름하고 성령을 거역해서 고생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늘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안디옥 교회에 바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언제나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거기에 대해서 깊이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나 불순종은 철저히 회개하고 버려야 합니다. 범죄하거나 불순종을 감추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5절에서 16절에 보면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무엘상 15장 22절로 23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이 불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크게 사랑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이러므로 우리가 복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계명에 우리를 비추어 보고 우리의 영적인 삶을 정돈하고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범죄와 불순종을 감추지 말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과의 교통이 막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복 받는 삶을 살려면 감사와 찬양의 생활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기쁨이 없이 늘 우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좋아하지! 늘 침울하고 우울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은 다윗은 명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노래를 했습니다. 많은 시를 적어서 슬플 때도 시를 짓고 답답할 때도 시를 짓고 즐거울 때도 찬양의 시를 지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마음에 무거운 짐을 다 풀어버리고 명랑했습니다. 다윗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꼭 합당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왜 버렸습니까? 사울은 여러분 침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늘 음울하고 침울하고 미움이 많고 복수심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사울의 가슴속에 악신이 들어와서 그를 지배했습니다. 그 마음이 늘 우울하고 명랑하지 못하고 미움이 많고 복수심이 많으니까 여호와의 부리시는 악신이 들어와서 그를 괴롭혀서 결국에 그는 파멸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보고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감동적인 분위기를 좋아하십니다. 여러분 분위기가 음울하고 침울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찬양을 아름답게 드려 좋은 분위기를 만들면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성가대가 찬양을 부르게 합니까? 성가대가 찬양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역사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찬양을 하면 그 찬양이 향기가 되어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와서 임재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위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고 흠향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을 불러서 하나님을 임하실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됩니다. 솔로몬 성전 헌당 때 모든 악기와 레위 자손들의 노래 속에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언제나 큰 부흥이 일어났을 때는 굉장한 찬양의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성가대도 찬양을 열심히 부르고 성도들도 모두 뜨겁게 열렬하게 찬양을 부를 때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시고 거대한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찬양이 사라지면 하나님의 임재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찬양은 너무나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침공해 오자 두려워서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면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우리 노래와 찬양과 감사는 지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우울하고 침울하면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가지고 고통하면 하나님은 구만리 장천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수록 고통에 빠질수록 노래를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찬양하지 말고 슬플 때도 찬양하고 편안할 때만 찬양하지 말고 환난을 당했을 때도 찬양을 불러야만 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또한 인간은 너무나 쉽게 감사를 잊어버리고 불평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많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을 체험하고도 당장 어려움이 닥치면 그냥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어제까지 좋다고 야단법석을 하다가 오늘 어려움을 당하면 어제에 대한 감사는 다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버린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로 11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末世)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원망이나 불평이나 탄식은 하나님의 코에 연기입니다. 하나님이 아주 노하십니다. 아주 몸서리칩니다. 우리는 원망할 때나 탄식할 때가 다가올지라도 오히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한 것인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면 우리가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릴 때에 이러한 사람을 크게 기뻐하시고 이런 사람과 같이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는 삶을 살려면 강력한 기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희미한 기도가 아닙니다. 강력한 기도 말입니다. 확고한 결단과 단호한 믿음의 표시로써 강력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받은 줄로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강한 기도를 해서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여도 마음속에 이미 받은 줄로 확신이 올 수 있는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력한 기도로 마귀의 진을 부서뜨려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둘러 진칠지라도 강력한 기도는 이 마귀의 진을 부셔버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로 12절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마귀와 귀신들에 대해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강력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과부의 기도를 통해서 배울 바가 많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 하나님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도 무시하는 피도 눈물로 없는 몰인정한 이 재판관 앞에 불쌍한 과부가 나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달라고 기도할 때에 그는 단호한 결단을 했습니다. 이 과부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나는 응답 받아야 되겠다. 나는 뒤로 물러갈 수 없다는 단호한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강력한 요구를 했습니다. 슬쩍슬쩍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강력하게 내 원수의 원한을 갚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부르짖고 통곡하며 목이 쉬도록 외치면서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쉬지 않고 강청했습니다. 조금하다가 만 것이 아닙니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쉬지 않고 강청을 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결코 낙심치 않는 인내력을 가졌습니다. 봄이 오고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도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강력한 인내력을 가지고 매달렸습니다. 그러니까 그 불의한 재판관이 말했습니다. 이 여자가 밤낮 와서 나를 괴롭히므로 내가 그를 응답해 주겠다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18장 7절로 8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러분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말한 것처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서 부르짖으라고 하는 것은 강력한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희미한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깨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강력한 기도입니다. 단호한 마음의 결단을 가지고 강력히 요구하며 쉬지 않고 강청하며 결코 낙심치 않는 인내를 가지고 밀어 제끼면 원수의 담도 무너지고 하나님의 응답도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새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께 복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모든 죄와 불순종을 회개하고 감사와 찬양의 삶의 태도를 가지며 강력한 기도 인내하는 기도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 한해동안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아서 29장 11절에서 14절에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와 같은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이루어지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새해를 영광스럽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흔들리지 않고 그 뜻에 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죄와 불순종을 철저히 회개하여 던져버리고 우리의 삶의 태도가 감사와 찬양의 태도를 가지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밝고 맑고 환한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강력한 기도, 인내하는 기도를 통하여 마귀의 진을 훼파하고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놀라운 새해를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