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23일
제목: 왕 같은 제사장
성구: 벧전 2:9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셨을 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지으셨습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입니다. 아담은 죄가 없었기 때문에 죄를 위한 제사는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드리고 감사드리며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직분은 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반역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에 제사장의 직분도 왕의 직분도 다 빼앗겨 버리고 오직 죄와 사망과 마귀의 종으로 전락된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천년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구주로 이 땅에 오셔서 30세에 천국 사역에 임하셨을 때도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요 제사장이심을 우리 사람들에게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예배와 제사를 드렸으며 종국적으로 당신의 몸을 십자가의 제단에 바쳐 피를 흘려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마귀와 질병과 자연 환경을 단호하게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들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 알면 우리의 신앙에 굉장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제사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구약의 제사장의 직분을 보면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율법을 보존하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나요? 하나님의 율법을 항상 범하고 범죄함으로 죄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언제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하는 그런 직분을 다한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근본적으로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속죄제는 율법과 계명을 범하거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모든 죄의 본성을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로 모든 인생들은 다 유전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본적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죄를 늘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짐승을 가지고 와서 거기에 안수하고 그를 잡아 피를 흘려 제단에 드리고 그 제물을 불로 태우는 속죄제를 제사장이 드려주어야 죄가 용서받습니다.
그 다음에는 속건제가 있습니다. 속건제는 보다 좁은 의미로써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죄의 해결 및 보상을 말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물이나 제물이나 십일조를 도둑질해 먹었습니다. 그런 실제적인 제물에 손상을 끼쳤을 때는 속건제물을 드리고 보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웃에게 범죄하여 육체적이나 제물에 손해를 끼쳤을 때 그때 죄의 용서를 받고 죄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이럴 때는 속건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속건제물은 하나님과 혹은 사람간에 관계가 잘못 되었을 때 그것을 보상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이것도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그리고 손해 배상을 하는 제사를 제사장이 집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제가 있습니다. 화목제는 감사 제사라고도 하는데 하나님과 특별한 교제 위에 구속의 은총 또는 간절한 소원을 아뢸 때 이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하고 감사가 넘치게 하는 그러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 매일 조석으로 드리는 번제가 있는데 이 번제는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순종하겠다는 표시로서 매일 같이 짐승을 잡아 가죽만 벗기고 온전히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 소제라는 제사를 드렸는데 그것은 땅의 소산을 풍성히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온 우리의 삶을 주장하는 주권자가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는 제사로서 이것은 피 흘림이 없이 곡식 가루를 가지고서 하나님께 태워서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는 소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제사는 모두다 장차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의 제물이 되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들은 이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고 찬미하는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제물이 되셨으므로 더 이상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하심으로 구약의 제사를 그 한 몸으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1절로 14절에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주님이 한 번 제물을 드렸지만 주의 제물은 영원한 제물이요, 또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온전케 만들어 주시는 그 놀라운 제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같이 이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될 것인데 이 제물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예수님께서 속죄제물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예수님께서 나의 원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신 것을 감사하고 그 보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미하는 것이 우리 제사장의 직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속건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십일조도 떼먹고 주일날도 못 지키고 혹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거짓말하고 도적질한 여러 가지 죄가 많습니다. 이런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주님이 형벌을 받으셨으니 이 죄에 대한 용서를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미와 감사와 회개를 드리는 속건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케 하시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게 하셨으니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를 화목케 해주신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화목제물을 입술의 감사제로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또 조석으로 우리의 번제물이 되셨으니 주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헌신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바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또 예수님께서 소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삶이 놀라운 축복과 은총을 주게 되었으니 예수님이 우리의 축복의 근원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이제는 우리가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려 드리는 제물은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다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입술의 찬미로써 속제 제사를 드리고 속건 제사를 드리고 화목 제사를 드리고 번제를 드리고 소제를 드려서 이것을 우리 주님께 감사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로마서 12장 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제 우리가 제사장이 된 이상 우리의 삶 전체가 거룩한 제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를 늘 용서받고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고 자기 중심의 삶을 깨뜨려서 단호하게 자기 생애의 내용이 하나님이 되어야 하고 자기의 삶의 내용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어 맡긴 그러한 삶을 살 때에 우리는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는 제사도 늘 드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이러므로 선한 일을 행하는 것도 제사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나누어 주는 것도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삼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 받은 것을 늘 찬미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잘못 저지른 행위의 죄에 대해서 용서받은 것을 감사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는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축복 받았으니 그 소제에 감사를 드리고 그 뿐 아니라 우리 주님께 몸으로 거룩한 산 제물로 삼고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서 선을 행하고 나눠주는 제사를 통해서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것은 이와같이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구원만 받아 천당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늘 제사를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제사가 우리의 입술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제물이 되셨음으로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와 감사와 찬양과 신앙 고백을 늘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제 성경은 우리를 왕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왕 같이 살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9절로 10절에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여기에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왕을 만들어 땅에서 왕노릇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당에 올라가서 왕노릇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 없거니와 땅에서 왕노릇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에서 여러분과 나는 왕노릇해야지 종노릇 하고서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땅에 살면서 종노릇하고 삽니다.
성경은 갈리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 수 없이 많은 종의 멍에를 메고 수고하고 고생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왕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앞에서 왕으로서 다스려야 되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다스릴 영토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써 사주신 그 영토를 우리는 다스리는 왕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물리치고 의의 영토를 확보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의가 주장하도록 왕으로서 단호하게 주장하고 다스려야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과 마귀를 내어쫓고 성령충만과 성결의 영토를 확보했으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성령충만과 성령을 주장하고 그를 소유하는 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에서 슬픔을 내어쫓고 질병을 내어쫓고 기쁨과 치료와 건강의 영토를 확보해 주었으므로 그 영토를 우리가 다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영토를 우리가 소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주와 가난을 물리치시고 아브라함의 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영토를 확보해 주었으므로 십자가 밑에서 주님이 확보해 주신 그 영토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통을 가지고 다스리며 축복을 가지고 다스릴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고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과 천국이라는 영토를 주었으므로 그것을 우리가 단호하게 소유하고 다스려야 됩니다. 어디에서 소유해야 됩니까? 우리의 생각 속에 소유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환경 가운데서 이 영토를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의를 소유합니다. 생각 속에 성령충만과 성결을 소유합니다. 생각 속에 주님의 기쁨과 치료를 소유합니다. 생각 속에 아브라함의 형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소유하고 생각 속에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생각 속에 이것을 소유하고 입술로 단호하게 고백할 때에 이 생각 속에 소유한 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영토는 우리의 생각 속에 소유하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가 왕노릇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왕노릇하는 것이지 우리의 육체와 환경에서 왕노릇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속에서 이것을 소유하고 단호하게 내가 믿음으로 서면 이 역사가 우리의 생활과 환경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왕은 백성을 다스리는데 그 백성이 누구냐? 여러분이 바로 그 백성이요 우리 성도들이 바로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와 성도들 속에서 이 영토가 확보되도록 우리는 단호하게 마음과 생각을 바로 먹고 기도하고 입술로 시인하면서 왕으로서 다스려야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값 주고 산 영토를 우리가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리는 침략자로부터 우리를 단호하게 왕으로서 지켜야 됩니다. 죄와 마귀가 들어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 주신 이 아름다운 영토를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요한 1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우리 세상에 있는 모든 것보다 크신 주께서 우리 속에 와 계심으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해서 하나님이 주신 이 낙토를 빼앗기지 않도록 왕으로서 우리는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가 단호하게 지키면 마귀가 와서 우리에게 손도 못 댑니다. 왜? 우리는 왕이기 때문에 감히 우리가 대결할 때에 우리에게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주신 이 땅을 가꾸어야 합니다. 왕은 그 나라를 지키고 그 나라를 왕성하게 해야 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의의 영토, 성령충만과 성결의 영토, 주님의 기쁨과 건강의 영토,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토, 영생 천국의 영토를 백성 된 우리 속에 지키고 그리고 이것을 왕성하게 해야 됩니다. 왕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열심히 말씀을 읽고 더욱 성령충만하고 열심히 기도함으로 주님이 주신 이 영토를 잘 돌보고 가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왕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제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권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왕은 권세가 있지 않습니까? 종은 권세가 없지만 왕은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0장 19절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여기에 능력은 두나미스, 다이나마이트 같은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세는 힘이 아니라 힘을 다스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 집안에 어르신께서 계시는데 어르신은 나이가 많으셔서 다이나믹한 힘은 없습니다. 능력이 없어요. 짐을 걸머질 수도 없고 뛸 수도 없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권세, 어머니로서의 권세, 할아버지로서의 권세, 할머니로서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권세가 있으므로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힘을 가지고 있어도 권세에게 집니다. 권세의 말로써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앉으라면 하고 서라면 서는 것입니다. 교통 순경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권세가 있습니다. 저 굉장한 10톤 20톤 트럭이 화물을 싣고 질풍처럼 달려옵니다. 굉장한 능력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 순경은 몸이 호리호리하고 힘도 없다 하더라도 호르라기 가지고 불면 그 힘있는 트럭이 가서 서야 합니다. 왜? 교통 순경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이 쎄도 힘은 권세에게는 꼼짝하지 못합니다. 대통령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대는 비행기나 함포나 탱크나 기관총이나 대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을 사용하는 자는 권세를 가진 대통령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님이 주신 것은 힘이 아니라 권세를 준 것입니다. 우리가 왕이니까 왕으로서의 권세를 주셨으므로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행동할 때에 권세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제가 한번 부산에 갔는데 그 목사님이 귀신들린 젊은 아가씨를 위해서 그 부모하고 둘러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그 목사님이 귀신보고 귀신아 나와 다오! 이렇게 하면 교회 목회를 어떻게 하노! 너무 너무 소란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 제발 나와 다오! 이것은 종이지 권세가 아닙니다. 슬슬 기고 빕니다. 그래서 내가 아이 목사님 그렇게 하면 안 나옵니다. 권세 있게 쫓아내어야지, 요사이는 애완견이 많아서 개를 안 방에서 데리고 들어오고 품에 품고 자고 했지만 우리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랄 때는 개는 방에 들어오면 안됩니다. 개가 방에 들어오면 물러가라, 저리가! 그러면 쫓겨 나갑니다. 그런데 개가 방에 들어온 것을 보고 물러가!! 물러가 그러면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고 안 물러갑니다. 더 안방에 들어와요.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목사님 나오십시오. 내가 귀신을 쫓아낼께요! 이 더러운 귀신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오라! 어디라고 들어가 있노! 나오라!! 물러가라 얼마동안 그렇게 하니까 귀신이 고함을 치고 거품을 물고 나가버렸습니다. 우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능력은 없습니다. 내가 약하고 병들고 무능하여 능력은 없을지 몰라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왕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권세가 있어야 하고 긍정적이고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이 되면 왕이 어떻게 왕 노릇합니까? 왕은 긍정적이고 당당해야 됩니다.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의의 세계를 내가 소유하고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성령충만과 그리고 거룩함을 내가 소유하고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기쁨을 소유하고 치료를 소유하고 건강을 주장하고 당당하게 축복과 번영을 내 것으로 주장하고 영생을 내 것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왕이 왕처럼 행동해야지요.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의 소유물이다. 이것은 나의 영토다. 너희 마귀는 물러가라. 너희 죄악은 물러가라. 세속은 떠나가라. 너희 슬픔은 물러가라. 저주는 물러가라. 질병은 사라질지어다. 사망은 물러가라. 왕처럼 권세 있게 말하고 다스리고 위풍당당해야 합니다. 자기 개인의 감정도 왕처럼 다스려야 합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자기 마음과 감정도 다스릴 줄 알아야 되고 실패나 패배의식이나 부정적인 감정이나 좌절감에 허덕이는 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토인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이 우리 마음과 생각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권세 있고 위엄있고 당당하게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세자인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것은 우리가 왕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이것은 왕이 아닙니다. 이것은 종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패배자나 낙심자가 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왕은 담대하게 가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믿습니다. 물러갈지어다 이것은 내 것이다. 이렇게 권세 있게 행동해야 여러분 왕처럼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 살 동안 어느 곳에 있든지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제물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제사의 제물이기 때문에 주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것을 감사합니다. 주의 보혈로 행위의 모든 죄를 씻었으니 감사합니다. 주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의 보혈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번창케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 제물이니 늘 속죄 제물로 드리고 속건 제물로 드리고 번제물로 드리고 감사 제물로 드리고 소제로 예수님을 늘 찬미하고 예수님을 늘 들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감사하는 이러한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예배의 제사장 역할을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자격 상실입니다.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서 앉으나 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삼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 땅에 살 동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왕권을 보존하고 행사하며 자기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토를 소유한 왕들입니다. 여러분 의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천국과 성령 충만함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건강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형통과 축복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에 영토를 소유한 왕이요, 그러므로 마음에 확실한 생각을 가지고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마음속에 왕으로 다스리면 이것이 여러분의 개인, 가정 생활, 사업, 환경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면 그것이 밖으로 나타납니다. 마음에서 종이 되면 우리의 생활 환경에도 종의 멍에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더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느니라! 여러분의 각자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주신 영토를 소유하고 그를 보존하며 그를 발전시키는 왕으로서의 권세 있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버지 십자가에 피 흘려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의 역할도 하지 아니하고 왕의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제사를 예수를 통해서 드리지도 아니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다스리는 당당한 권세와 믿음과 자세를 취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종과 같은 환경에 좌우되는 좌절과 절망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오늘 원하오니 성령께서 이 진리의 말씀을 우리 모든 성도의 가슴속에 계시하여 주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왕으로서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