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00년 2월 13일 제목: 마음의 건강을 얻는 세가지 길 성구: 빌 4:4-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음의 건강을 얻는 세가지 길”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1세기는 마음의 건강의 문제가 중요한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삶이 점점 복잡해지고 그 템포가 빨라지며 인간의 사생활이 전반적으로 침해받고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가 메말라지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너무나 삭막해질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억압되고 나날이 긴강 속에 살게되고 불안과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심한 스트레스를 인하여 정신적인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오늘날이야말로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마음의 건강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 길은 과연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 일에 대하여 해답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되지 못하고 고통이 다가온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십니다. 마음의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첫째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마음에 안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기쁨의 존재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혀 없는 것을 새로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한 존재가 되었으므로 원래 있던 기쁨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시편 16장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 즐거움이 넘치는데 이 하나님과 함께 동거하고 살게끔 만들어온 인간이기 때문에 원래 인간은 기쁨 속에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속에도 기쁨이 충만하고 주변에도 기쁨이 충만한데서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담과 하와가 배반하고 떠남으로 그때부터 인간은 기쁨에서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의 샘에서 끊어지고 나니 슬픔이 사람들의 가슴을 꽉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갈급히 찾는 것은 바로 기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있다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원천이었는데 원천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간절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쁨을 찾되 회개하고 깨어져서 기쁨의 근원되는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노력으로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노력을 다해서 아무리 기쁨의 샘을 파도 그것은 기쁨의 물을 채워 넣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기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참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기쁨의 근원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 경험하는 기쁨은 그와 동등한 슬픔과 허물을 언제나 가져오기 때문에 기뻤는가 하면 그 반대로 곧 슬프고 허무가 꽉 들어찹니다. 희락이 극하면 그와 반대로 슬픔도 더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기쁨의 근원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이사야12장 2절로 3절에 보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하나님이 기쁨과 구원의 우물입니다. 그 하나님 우물에서 우리가 기쁨을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서 우리 죄를 회개하고 죄 용서함과 의의 의복을 얻을 때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막아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넘쳐 나오는 시냇물을 막아 버립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해서 그 막힌 담을 헐어 버리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속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용서를 받고 의를 얻게 되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이유와 가치를 얻을 때에 우리에게 기쁨이 넘쳐 납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냥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이라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이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고 하나님을 즐기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즐기게 되면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얻고 천국이 마음속에 들어오니 삶에 기쁨이 함께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는 기쁨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데 주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지면 그와 동시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에도 주의 사랑 비칠 때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심 걱정은 기쁨이 오면 다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8절로 10절에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라” 이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같이 계시면 기쁨과 영광이 충만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기쁨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기쁨의 원천이 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통계를 보면 미국에는 35분마다 1명씩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에 예배 드리는 동안에 미국에는 벌써 한 사람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분에 한명이 미치고 있습니다. 2분에 한 명씩 정신이상이 되어 버립니다. 크리스찬 정신과 의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정신적인 불안정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마귀에게 노출되어 있어 기쁨을 잃어버리니 자살하고 2분에 한사람씩 미쳐 나간다. 오늘날 기쁨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정신적인 안정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기쁨은 놀라운 치료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잠언서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우리 마음속에 기쁨을 가지면 우리 속에 약 공장이 가동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오늘날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치료의 약 공장이 우리의 속에 가동을 합니다. 그러나 기쁨을 잃어버리고 근심이 들어오면 뼈가 마른다. 뼈가 마르니까 마음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이러므로 참된 치료는 기쁨이 있어야 치료가 있는 것이지요. 관절염 유발 원인들중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결혼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비관하고 고민하고 깊은 마음의 원한을 가지고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관절염이 심한 사람에게 아무리 관절염 약을 먹여도 낫지 않는 것은 그 뿌리인 심령이 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에 실패와 비판과 고민이 있으면 아무 약도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치료 학회에서 발표하기를 충치가 생기는 것은 고민 공포 잔소리등 불쾌감으로 체내 칼슘 균형이 깨어져서 이빨이 썩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의 근심 염려 고통을 하면 잇몸도 상하고 이빨도 썩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뼈로 마르게 하니까 이빨에 칼슘이 사라질 수밖에 없지요. 이러므로 참된 치료는 마음의 기쁨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고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로 즐거움이 넘치면 우리 몸에 있는 모든 병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치료의 놀라운 효과가 우리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음의 기쁨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에 기쁨을 가지고 일어나 보십시오. 생기가 넘치고 하루종일 기쁨이 있으면 모든 일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편 4편 7절로 8절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하나님이 마음에 주신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 환경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성령으로 넘쳐나는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쁨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다 제하여 버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며 생산적으로 마음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30편 11절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슬픔 대신에 춤을 추게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다가 춤춘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변하여 춤을 추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오늘 찬양 예배는 하나님이 기쁨을 주시기 때문에 춤을 추고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베옷을 벗기고 기쁨의 띠를 띠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주 안에서 만이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쁨을 얻으면 마음에 건강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에 건강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에 관용을 갖고 너그럽게 마음가짐을 갖고 사는 것은 마음 건강에 절대로 필요하고 마음이 왜소하고 각박하며 무정하고 적대적이며, 자기 타당화만 갖고 살게 될 때는 크게 불행하게 되고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콜레라 환자들은 그들의 특성중 하나가 마음에 원한이 꽉 들어차 있다고 했습니다. 남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한 미움이 있을 때 그것이 고혈압으로 변화되는데 그런 미움이 마음을 긴장하게 하고 심장병을 유발한다고 의사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 많은 병의 70%의 주원인은 마음에 두려움 증오 근심 등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는 것은 마음의 관용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나와서 내게 잘못한 사람을 몇번 용서 하리이까 일곱 번만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베드로는 큰 맘 먹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일곱 번 용서하는 것, 굉장히 큰 마음입니다. 남편을 일곱 번 용서하고 아내를 일곱 번 용서할 수 있으면 굉장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를 가만히 보시더니 이 사람아, 하루에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에 용서한다는 것. 마음에 관용,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남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좋습니다. 자기에게 평안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조 목사 모르는 소리 하는거요. 과거에 상처 입힌 자의 기억을 뛰어 넘어 너그럽게 상대를 대할 수가 있겠어요. 그 사람만 보면 과거에 내게 입힌 상처가 너무나 깊기 때문에 도저히 관용할 수가 없어요. 현재 나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을 관용할 수 있어요? 나만 보면 아무 예의 없이 행하는데 그를 보면 마음속에 분노가 생겨나지 관용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혹은 말하기를 많이 도와주었는데 오히려 뻔뻔스럽게 행하는 사람을 보아 넘길 수가 있습니까? 또한 말하기를 항상 부정적으로 말하고 불평을 말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데 그런 사람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혹은 은혜를 짓밟고 배반하며 대적하는 자를 너그럽게 보아줄 수가 있겠느냐고 그렇게 말합니다. 세익스피어는 말하기를 적을 위한 불을 너무 활활 태우지 말라 그 불이 너 자신을 태우리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너무 미워 하다보니까 그 미움이 자기도 불태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힘으로 관용을 갖고 살기는 너무나 힘이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관용을 갖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말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 의미는 주님께서 바로 곁에 계셔서 나를 이해하시고 나를 동정하시며 내가 남을 용서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줄 것이니 주님께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관용을 가지고 살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눈꼴 사나운 사람도 많고 미운 사람도 많고 한 대 쳐버리고 싶은 사람도 많고 보기만 하면 속이 뒤틀리는 사람도 많다.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혹은 부부간에 싸우면 없는 말 있는 말 다 가지고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막 충동을 합니다. 어떻게 관용을 가집니까? 그러나 그때는 주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주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이 나에게 관용을 주시고 너그러운 마음을 주셔서 이 모든 환경을 용납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경에는 주께서 가깝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알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이 힘을 주지 아니하면 우리의 힘으로는 관용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인심이 너무 각박해지고 우리의 마음도 너무 황패해졌기 때문에 스스로의 관용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때 주께 도움을 구하면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시며 우리 마음속에 여유를 가질 수가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관용을 베풀지 아니하고 상대와 똑같이 대해서 물고 찢고 싸우면 우리에게 손해가 너무나 많이 다가옵니다. 미국의 한 국립공원에 공포의 대상인 그리스리 회색곰이 있습니다. 이 회색곰이 공원에 쓰레기 더미에 와서 먹을 것을 찾아서 먹으면 거기에 절대로 다른 짐승은 못옵니다. 어찌나 이 회색곰이 쎈지 거기에 호랑이도 사자도 이리도 심지어 코끼리도 같이 와서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회색곰이 그런 쓰레기 더미에 와서 먹는데 유유히 와서 같이 먹는 동물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스컹크입니다. 스컹크는 와서 곰하고 같이 먹어도 그 곰이 안 때립니다. 그 한발로 때리면 죽는데 왜? 스컹크가 방귀를 뀌면 곰이 하루 종일 고통당해야 합니다. 냄새가 나서. 그 방귀 뀌는 스컹크를 때려서 그 방귀 냄새가 몸에 묻어 하루종일 뒹구는 것보다는 같이 먹는게 좋다. 그 곰도 미련하기 짝이 없지만 스컹크만은 용납하는 것처럼 우리도 인생에 살면서 까다로운 사람하고 붙어서 상처받을 바에야 하나님의 도움으로 관용을 가지고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관용은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을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주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주님의 강림이 가까우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늘로 들려올라갈 날이 짧아졌으니 세상 것 훨훨 털어버리고 떠날 세상에 미련을 두거나 묶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묶이면 세상 가지고서 물고 찢고 싸우고 관용을 가질 수가 없는데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우리 마음속에 훨씬 편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마음에 구원받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관용을 가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땅엣 것을 너무 생각하면 관용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면 땅에 있는 것을 우리가 넓은 마음으로 용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8절로 9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는 확실히 천국이 있습니다. 눈물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영원한 생애가 우리에게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이미 집을 가지고 그곳에 시민권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에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걸어감으로 이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처럼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러한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셋째로, 우리 마음에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는데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는데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염려 근심 없이 살 수가 없지 않아요? 항상 염려 근심이 매일 같이 구름과 안개처럼 우리에게 덮쳐오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오늘날 심장병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병중에 하나인데요. 세계 2차 대전 중 전사한 미국인이 약 20만명입니다. 전쟁에 죽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고 염려 근심하는 부모들이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은 2백만입니다. 20만이 전쟁에서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 자식들 보내놓고 염려 근심을 안 부모들은 심장병으로 2백만이 죽었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이는데 전쟁의 총칼보다도 심장병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 2백만 중에서도 백만은 염려와 고도의 긴장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병균은 약으로 박멸할 수 있으나 염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적인 질환으로 병균보다 더 무섭습니다. 이러므로 약간만 염려하지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당뇨병 환자에게 조금 염려 근심을 하도록 하면 당이 그대로 쫙 올라갑니다. 그러나 염려 근심을 덜게 하고 마음에 평안을 받게 하면 당의 치수가 내려갑니다. 고혈압 환자도 한가지입니다. 염려 근심을 주면 막 올라갑니다. 그러나 염려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면 혈압이 쫙 내려갑니다. 염려와 근심은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굉장한 긴장감을 일으켜 오며 부정적인 파괴적인 호르몬을 생산하는 그래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이 염려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말씀하기를 그러나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염려와 수고를 맡아 주실 주님이 우리 앞에 서서 손을 활짝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삶을 종교적인 차원에서나 돌보아 주고 미래의 천당이 나오도록 기다리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주님께서 안 보이는 손길을 내밀고 하신 말씀이 염려와 근심을 내게 맡기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서 내게 의지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의지하라고 하는데 우리가 의지 안하고 그 염려와 근심을 내가 걸머지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의지하라는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돌봐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돌봐주지 않으면서 너희 염려와 근심 있는 사람 나에게 와서 짐을 맡기라고 하면 그것은 사기지요. 우리 주님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나와서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아뢰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를 하되 감사를 하면서 주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이 실패해도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은 주님께 나와 기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향해서 풀려 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했고 마태복음 6장 31절과 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1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이 여러 약속의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의 짐을 짊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모든 짊을 맡기면 우리의 지식이나 감정을 뛰어 넘어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내가 네 짐을 맡았다는 증거로써 우리 마음속에 평안으로 가득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신 주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도움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주님께 기도하고 맡기고 우리 마음속에 평화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성경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셉의 고백을 보십시오.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변하여 오늘날 나로 하여금 만인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현재 눈에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에 느끼는 이것이 내 운명의 전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그 손길이 이 모든 것을 합동하여 결국에는 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결국에는 밝은 내일을 주님께서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7절에 말씀대로 그러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넘치게 하면서 살게 될 때에 우리 마음속에 주님께서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건강이 없이 행복은 없습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생명의 근원이 병들어 버리면 우리에게 행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주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관용과 기도와 간구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넘치도록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마음에 병든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병든 남편 병든 아내 병든 자녀 병든 부모 병든 이웃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에 병이 들어 있으니 가는 곳마다 충돌하고 물고 찢고 싸우고 온갖 고통이 다가옵니다. 아버지 하나님 육신의 병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 국제적인 분쟁이 생겨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아버지여 우리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오니 우리 마음속에 임하시사 마음의 병을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기쁨을 찾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넓은 마음 이해하는 마음 관용하는 마음을 갖게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다 맡기고 평안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마음에 치료를 받고 마음에 평안을 갖고 행복하게 사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