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5일
제목: 전신갑주
성구: 엡6:10-1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전신갑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혹심한 추위와 함께 거센 바람과 눈보라가 휘날리는 산길에 무릎까지 눈에 빠지는 길을 헤쳐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옷도 부실하게 입고 신발도 얇은 양말에 보통 신발을 신고 방한모도 쓰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았다면 급격히 몸의 체온이 낮아져서 혼절하게 되고 빨리 도움을 받지 못하면 동사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분노한 마귀가 귀신 바람을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만일 자신을 보호할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보통 사람처럼 행하다가는 반드시 악한 귀신, 추한 귀신, 거짓말하는 귀신, 억압하는 귀신, 점치는 귀신, 허약하게 하는 귀신, 각종 질병의 귀신의 공격을 받아서 혼절하게 되고 신앙을 빼앗겨 버리고 말 것입니다.
야고보서4장 7절로 8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성도는 반드시 매일 매일 자기 자신을 살펴서 주님이 주신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점검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는 어떠한 것인지 오늘 이 시간 함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허리는 몸의 기둥이요 중심입니다. 허리를 다치면 전신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제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나이 늙어 바디빌딩을 하겠다고 열심히 운동을 하다가 그만 허리를 다쳐서 디스크가 생겨서 꼼짝을 못하고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리를 다치면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신앙의 기둥이요 중심인 마음의 허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허리를 부러뜨리면 그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허리를 세상 철학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종교로 바쳐 놓으면 이것이 절대로 마귀의 공격에 견뎌내지 못합니다. 세상의 유혹의 강풍이 휘몰아 오면 이와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흔들리고 뿌리가 뽑히고 날아가 버립니다. 혹은 죽음의 지진이 일어나서 뒤어 흔들어 버리면 인간의 철학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종교로 바쳐 놓은 허리는 그대로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마귀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지고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골로새서 2장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허리, 우리 마음의 허리를 확실하게 붙잡아야 되는데 흔들리지 않게 우리 허리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진리 되신 예수님으로 허리를 묶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삶의 기둥이요, 중심이 되면 이 사람은 어떠한 형편에도 요동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겼기 때문에 세상 바람이 아무리 불어와도 그 세상 바람이 예수님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심지어 죽음의 지진이 다가와서 내리 흔들어도 예수님은 죽으셨다 부활하셨기 때문에 사망이 예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허리띠를 띠고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마음의 중심을 꽉 잡고 있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세상 바람이 불어도, 어떠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도 조금도 요동치 않고 굳건하게 서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허리를 동여매고 있으면 우리는 그대로 천국으로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방황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면 구원을 받고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신앙인의 생활 가운데 매일 매일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냐! 내 마음의 허리띠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묶어 놓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 제켜 놓고 세상의 헛된 철학이나 지식이나 과학이나 세상 종교로 묶어 놓았다가 세상 바람에 날아가고 사망의 지진에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의의 흉배를 붙이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의의 흉배란 뭐냐 가슴을 보호하는 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덕적인 행위로 가슴 즉, 마음을 보호하면 순식간에 죄책의 공격을 받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신경 쇠약이나 정서 불안증, 정신 이상등의 정신은 반드시 그 뒤에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라서 언제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삽니다. 인간이 완전하지 못한 이상 이 세상에 살면서 양심의 고통과 가책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와같은 양심의 쌓여진 죄책이 우리의 마음을 공격할 때 우리는 그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우리가 율법을 따라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죄가 더 드러나고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부도덕한 나의 생애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리요 율법을 따라서 살려면 살수록 더 죄가 드러나고 도덕적으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내 속에는 부도덕한 심정이 더 나타나니 나를 도와 줄자가 누구냐고 탄식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행위로써는 우리는 만신창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이 심장을 뚫고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의의 흉배라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이 보혈로 값주고 사신 용서와 의의 흉배를 붙이면 마귀가 우리의 심장을 뚫지 못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여 피를 흘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일생의 죄를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에 나는 너희 죄를 영원히 다 갚아 버리고 말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우리의 믿음을 두면 우리의 가슴에 튼튼한 의의 흉배를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책의 공격을 받아도 늘 회개와 용서와 예수의 피를 통한 의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마귀가 양심의 가책을 가져오고 돌풍을 불어와도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 가슴에 의의 흉배가 붙어 있음으로 우리는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으로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보혈을 감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해서 살며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 맨발로 걸어간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아주 어리석은 것입니다. 인본주의로 신발을 삼고 자기 능력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불안과 고통과 절망을 절대로 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항상 불확실성으로 꽉 들어찬 안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당장 내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내일, 다음달, 금년 한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의 생명이 오늘 해가 지기까지 반드시 살아있다는 확정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으며 우리 인간의 능력과 힘이 한계가 있으므로 언제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불안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발로 인본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은 평안을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서 평안히 살 수 있는 길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영혼이 잘 되게 걸어갈 수 있는 신발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리심으로 용서와 성령 충만과 기쁨의 신발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성령 충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길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디도서 3장 6절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용서를 받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영혼이 잘 되어 살아갈 수 있는 신발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그 신발을 신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아가면 우리는 용서와 의와 성령 충만이라는 영혼이 잘되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영혼이 죽었고 황폐해 지는 것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영혼이 살아서 팔짝 팔짝 뜁니다. 영혼이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삽니다. 용서와 의와 평안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는 범사에 잘 되게 하시는 신발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되고 합동하여 선을 이루며 살 수 있는 길을 주님께서 예비해 놓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8장 9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유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범사에 잘 되는 신발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저주에서 해방되어 형통하게 되고 가난에서 해방되고 굶주림에서 해방되도록 주님께서 평안의 신발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동안에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건강할 때 있고 병들 때도 있습니다. 맑은 날도 있고 비오는 날도 있겠지만 결국은 주님께서 같이 하시면 이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요셉은 말하기를 형들은 나를 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를 변하여 오늘날 나를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일생을 맡기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해주심으로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잘 되는 신발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강건하게 살 수 있는 신발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치료와 건강의 복을 주님은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마 8:17) 가심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서 우리가 병을 벗어버리고 병을 정복할 수 있는 그 원인을 제공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우리가 힘차게 기도하면 병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 약속의 말씀이 우리를 강건케 하는 신발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고 살아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마음에 평안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마음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공포가 있으면 삶의 행복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은 평안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주님께서 우릴 위해서 먼저 가시면서 고생을 하여 영의 길을 닦아 놓고 형통의 길을 닦아 놓고 건강의 길을 닦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통해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발을 신고 우리는 믿음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들은 구원의 투구를 쓰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는 모든 생각과 사상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를 보호하지 않으면 온갖 생각과 사상을 마귀는 심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멀리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우리는 세속적인 사상이 머리 속에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사이 정보화 시대는 인터넷을 통해서 TV를 통해서 또한 잡지를 통해서 말할 수 없는 세상의 홍수 같은 정보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우리의 생각을 보호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잠언서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원이 세상적인 것으로 오염되어 버리면 우리의 생명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에 맑은 생수가 넘쳐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그 공격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투구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투구를 쓸까요? 우리는 구원을 받은 후 이제는 옛사람이 아니라는 확실한 신념을 머리 속에 넣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옛날 사람이 아니다. 나는 구원을 받은 이후에 새사람이 되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우리는 세상에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용서받은 사람이 되었으며 성령 받은 사람이 되었으며 치료받은 사람이 되었으며 복 받은 사람이 되었으며 영생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새 사람이 된 사상을 머리 속에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 전서 2장 9절에 말한 것처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와같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생각 속에 하늘 나라가 가득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 자신의 사상이 꽉 들어 차 있어서 세상이 우리 마음을 조금도 흔들지 못하도록 구원의 투구를 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구원을 받아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투구를 쓰고 사는 사람이다. 이 사상에서 우리는 흔들리면 안될 것입니다.

다섯째로,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화살을 쏩니다. 불붙은 화살을 쏘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패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각적인 지식으로 인생을 살면 이 세상에서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각은 현실적이고 체험적으로 환경의 종이 됩니다. 언제나 감각은 현실이다. 체험이다. 이대로 따르라.. 그러나 여러분 환경은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따라 살면 마음이 한시도 편하지 못합니다. 호수에 늘 바람이 불면 늘 물결이 치는 것처럼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늘 요동하는 물결 같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감각적인 지식으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을 따라 살면 절대로 믿음으로 살지 못합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환경과 함께 변화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20절로 21절에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고 말했는데 감각적인 지식에 의해서 사는 사람은 그렇게 요동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적인 지식을 통한 믿음으로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에도 말씀에 서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에 서며 환경에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로 주신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준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위에 내려오는 것이지 밑에서 만들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먹고 그 말씀을 믿고 살아야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서 온다(시 121:1,2)고 말한 것입니다. 왜 눈을 들어 산을 봅니까? 산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천재지변이 와도 그대로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화되지 않습니다. 역사가 변천되고 사회가 변화되고 사람이 오고 가고 해도 산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태산준령처럼 어떠한 환경에도 변하지 않고 어떠한 사람의 공격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고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 그것이 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비바람이 부는 데에 따라서 흔들리고 또 세상이 변함에 따라서 변하면 안됩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습니다로 나갈 때에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마귀는 절대로 다가와서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감각적인 지식으로 사람을 현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각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귀가 흔들다 흔들다 안되니까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섯째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싸움에 나가면 여러분 검으로써 대적을 하고 찔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이 무기인 것입니다. 마귀의 어떤 유혹이나 공격을 당했을 때 인간적인 논리로 대적하지 말고 단호히 말씀에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말씀 대신에 마귀와 논쟁하다가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자꾸 논쟁으로 끌어들입니다. 우리는 논쟁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논쟁 대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단호한 명령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왜 논쟁을 합니까? 마귀가 와서 정말 동산에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이렇게 논쟁을 걸어옵니다. 하와는 아니라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라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이런 논쟁을 합니다. 아니야 절대로 안 죽는다. 네가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너도 하나님처럼 될까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렇게 한다. 마귀와 함께 논쟁을 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마귀의 논리에 빠져들어서 유혹을 당하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으로 마귀가 어떻게 논쟁을 걸어오고 유혹을 걸어와도 단호하게 “기록하였으되”, “성경에 말씀하기를”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논쟁을 걸려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을 변하여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논쟁을 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인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렇게 논쟁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귀와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에는 마귀와 논쟁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1서 3장 7절로 8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굳세게 서서 마귀의 논쟁에 빠지면 안됩니다. 마귀는 탐욕에 논리라는 예쁜 옷을 입혀서 우리를 자꾸 설득시키려고 합니다. 실제는 탐욕인데 아니야 아니야 이것은 좋은 거야 그러므로 이것은 받아먹어도 좋아. 이렇게 자꾸 마음에 설득을 시킵니다. 마귀와 논쟁을 하면 설득 당하고 맙니다. 우리는 마귀와 지혜로써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지식인 말씀 위에 서서 마귀와 단호하게 대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두꺼운 방한복과 방한모를 쓰고 털신 털장갑을 낀 사람은 어떤 추위와 눈보라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성도는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마귀의 공격을 받아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 두꺼운 의복 없이 나갔다가는 동사 당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이 세상에 나갔다가는 영적으로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같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 지식으로 허리띠를 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를 얻었다는 그 믿음으로 가슴을 무장해서 양심의 가책을 보혈의 능력으로 씻어 내고 의를 얻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투구를 써서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옛사람은 지나고 새사람이 되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그 사상으로 투구를 쓰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인생은 신발을 신고 뛰는 것입니다. 맨발로 뛰지 않습니다. 용서와 구원의 신발을 신고 형통과 축복의 신발을 신고 치료와 건강의 신발을 신고 우리는 뛰는 것입니다. 주님의 예비한 신발을 신고 그리고 우리들은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우리는 감각적인 지식으로 살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에 입각해서 말씀에 서서 살면서 우리는 마귀와 논쟁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어떠한 고소한 말을 가져와도 우리는 말씀의 검을 가지고 대결하는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였나이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완전 무장하고 나감으로 이 세상 어떤 마귀와 귀신의 바람이 불어오고 눈보라가 쳐도 절대로 혼절하거나 동사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역사를 받아서 사는 우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 기도 -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추운 겨울에는 반드시 두꺼운 옷을 입고 방한모를 쓰고 털장갑을 끼고 두꺼운 신발을 신고 그렇게 나갑니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우리는 동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 귀신 바람 불어오는 곳에서 우리 스스로가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나갔다가는 모두다 마귀에게 혼절당하고 말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기도하오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에게 주신 전신갑주를 다 받아 입게 도와 주시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의 검, 곧 말씀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