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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12일 제목: 지존자의 은밀한 그늘 성구: 시91:1-1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지존자의 은밀한 그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시편 91편은 시험과 환난을 당한 자에게 크신 위로와 용기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되며 어떻게 신앙 고백을 해야함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의 차이를 분명하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라고 이 시편 기자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극히 크시고 귀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그 하나님께 나아가는 비밀한 길이 있으며 그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에 거하려고 하면 그 길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한 길과 장소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 전능한 자의 그늘 아래 거할 수가 없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 즉 비밀한 곳이라는 곳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에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그 비밀은 곧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존자 즉 하나님의 비밀한 곳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곳, 하나님의 비밀한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거하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권세자의 그늘 아래 거하면 안연하게 처할 수가 있습니다. 부자의 그늘 아래 거하면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강한 나라의 백성은 그 국가의 그늘아래 거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나 어깨를 펴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물며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한다면 그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그늘 아래 거하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복을 내려 주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둘째로 어떠한 신앙 고백을 해야 되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술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우리 입술의 고백은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데 풀고 매는 것은 입술의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을 올바르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입술로 고백하면 그 고백을 따라서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역사할까요? 저가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너희를 건지신다. 여러분 저희들은 어릴 때에 겨울이 되면은 새를 잡아먹었습니다. 어떻게 잡아먹느냐! 겨울에는 먹이가 없기 때문에 새들이 동네로 내려옵니다. 그러면 지게를 질 때 지게틀을 바지기라고 합니다. 그것을 갔다 놓고 그 위에 돌을 잔뜩 얹어 놓고 막대기로 바쳐 놓고 줄을 길게 해서 방안에 앉아서 그 틀 밑에는 지푸라기와 그리고 여러 가지 곡식을 흩어 놓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으면 몰려와서 제일 처음에는 의심을 하고 서로 쳐다보다가 한 놈 두 놈이 들어가면 다 모여와서 조잘거리면서 주어먹고 장난을 치고 할 때 탁 잡아당깁니다. 그러면 돌의 무게에 의해서 그 지게틀이 새 위에 떨어집니다. 그 위에서 밟아요... 그래서 그 새들이 눈알도 튀어나오고 날개도 부러지고 그래요. 그러면 그것을 털을 뽑아 가지고서 잘 씻어서 부엌의 소금을 쳐서 구워서 먹으면 겨울에 그만큼 맛있는 것이 없습니다. 새 사냥꾼이 그렇게 사냥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탄이 바로 우리 사람을 사냥하는 것이 그렇게 합니다. 사탄이 사람의 영혼을 사냥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통해서 먹고 입고 마시고 음란하고 방탕한 쾌락을 통해서 우리를 사냥합니다. 안목의 정욕, 호화 사치 낭비를 통해서 우리를 사냥합니다. 얼마 전에 보니까 오늘날 한국에 잘 사는 상층 사회의 여성들이 쇼핑을 가는데 손가락 하나에 2백 50만원, 3백만원 짜리를 눈도 깜짝하지 않고 사들입니다. 그리고 머리핀 하나에 50만 짜리를 머리에다 꼽습니다. 친구 따라 가서 충동 구매로 막 사들입니다. 나는 TV에서 보고 너희 남편들 낭패 났구나! 왜냐, 사업하는 사람들이 언제 경제적인 위기와 어려움이 다가올 줄 모릅니다. 부인들이 남편들이 벌어 들여온 것을 잘 저축해 놓았다가 남편이 갑자기 경제적으로 심히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여보 내가 이것 어려울 때 쓰려고 저축해 놓았으니 급한 돈이 필요하면 쓰세요! 그러면 얼마나 가정에 도움이 되고 남편도 부인을 고맙게 여기게 될 것입니까? 남편은 사업한다고 온갖 애를 다 쓰고 돈을 버는데 벌어놓은 돈 다 써버리고 나중에 남편이 사업이 어려울 때 의지할 때가 없습니다. 집에 한 푼도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에 상층 사회에 여성들이 한국의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마귀의 올무인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망하고 가정도 망치게 하고 사회 경제도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원수 마귀는 정치적인 권세와 일확천금을 위해서 올무를 놓습니다. 그래서 부정부패를 통해서 올무에 걸려 파멸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삶고 요새로 삶고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신앙고백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일생을 건져내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 큰 염병에서 우리를 건진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염병에 걸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어릴 때 보면 장질부사를 염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수돗물이 없고 그냥 우물물을 마시기 때문에 시골에서 물이 오염되어서 염병에 걸리면 온 동네가 염병에 걸립니다. 우리 친구들 보면 염병에 걸려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염병은 열이 많이 나고 고통을 많이 당하고 장시간 괴로움을 당하기 때문에 염병이 나은 다음에도 머리가 다 빠집니다. 초췌하기가 말할 수 없지만 그 고통을 통해서 머리가 다 빠집니다. 염병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사람을 염병 같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업이 안되면 사업이 염병 들었다고 합니다. 가정에 염병 들어서 가정이 망했다. 염병이라고 하는 것은 심신에 큰 고통과 멸망을 가져오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큰 염병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 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4장 8절로 9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올바른 고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번 이 신앙 고백을 따라서 말합시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이 신앙 고백을 매일같이 하십시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 고백이 바로 여러분에게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하나님의 날개 밑에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4절로 6절에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말씀하기를 암탉이 그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얼마나 너희를 내 날개 아래 모으려고 했느냐고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면 바로 그 날개 아래 피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 깃털로 덮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덮으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이 암탉이 병아리를 기르는 것을 보면요. 그 날개 아래 병아리를 열심으로 모읍니다. 비가 오면 불러서 전부 날개 아래 모읍니다. 그러면 어미탉은 비를 잔득 맞지만 새끼들은 뽀송뽀송하게 아주 따뜻한 날개 아래서 보호를 받습니다. 혹은 개나 고양이가 오면 순식간에 어미가 새끼들을 불러서 날개 아래 새끼를 품고 무시무시하게 저항을 합니다. 어떤 닭장에 불이 났는데 닭이 다 불에 타 죽었습니다. 주인이 가서 보니까 암탉 한 마리가 불에 타서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암탉을 들어보니까 그 날개 밑에 그 병아리들은 다 살아 있습니다. 병아리를 살리기 위해서 닭이 품에 품고 자기가 불을 막아서 불에 타 죽으면서도 병아리를 살려 놓은 것입니다. 이처럼 암탉은 병아리를 그 날개 밑에 보호하고 돌봐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믿고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 주님께서 그 깃털로 덮으시리니 우리가 그 날개 아래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덮으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우리를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밤에 놀램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에 놀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다가 갑자기 어떠한 일이 생겨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얘기치 않은 도적이 오거나 수해가 당하든지 화재, 전쟁, 지진등 우리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 갑자기 놀래서 허둥지둥하게 하는 이러한 일들에서 우리를 피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요사이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네주째 홍수로 백만 이재민이 발생하고 전염병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이 콜레라, 말라리아에 죽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밤에 놀램이 아닙니까? 얘기치 않은 큰 재앙이 다가온 것입니다. 작년 12월에 베네주엘라 수해에서 5만 명이나 죽었고 장년 8월 이만 명이 사망했고 9월에 대만 지진에서 4천명이 사망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 31편 6절에 보면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고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밤의 놀램에서 우리를 피하게 해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낮에 흐르는 살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대낮에 화살이 날아와서 우리를 찌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인데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지 않아요. 공개적으로 계획적으로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날 세상 삶은 무서운 경쟁이 있기 때문에 경쟁자가 원수의 공격을 받게 되고 모략과 중상과 상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32절로 33절에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든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원수가 계획적으로 낮에 우리를 공격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들 손에 버려 두지 않고 지켜주시고 피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여러분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저항을 말합니다. 캄캄한 곳에서 원수가 깨어나와서 공격을 하게 되면 이야말로 방비할 도리가 없습니다. 흑암 중에 행하는 큰 심신의 고통을 하나님이 피하게 하시겠다고 했는데 여러분 우리 IMF는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IMF가 다가올 줄 누가 알았습니까? 우리 국민 전체가 큰 기대와 소망 속에 살고 있는데 순식간에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처럼 IMF가 다가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기업이 도산하고 가정이 파탄하고 그리고 홈레스가 생기고 우리가 기억하기도 싫은 엄청난 염병을 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회개하고 주님을 열심히 믿고 그 품에 안겨 있었으면 주님이 이것을 피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교만하고 오만해져서 우리 성도들조차도 주님 중심으로 살고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미가서 7장 7절로 8절에 보면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주님이 같이 계시면 엎드려져도 일어나고 흑암 중에 앉아도 여호와께서 빛이 되어 비춰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IMF라는 이 경제적 환란이 당하여 엎드러지고 흑암 중에 앉았는데도 온 교회가 일어나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국민들이 전부다 은과 금을 모으고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께서 엎드러진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흑암 중에서 빛을 발해서 그 재난에서 건져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백주에 황폐케 한다. 환한 대낮에 이것은 누구 잘못도 아닌 것입니다. 인간의 부주의, 실수로 당하는 파멸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막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이 삼풍백화점이 붕괴하고 성수대교 침몰의 대형사고를 보십시오. 대구 지하철 공사장 도시가스 폭발사고, 씨랜드 화재, 인천 호프집 화재, 최근 여의도 지하 전선 공동구 화재 이런 것은 백주에 황폐케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도 그것을 대처하지 못하고 피하지 못하고 황폐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난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시편 121편 7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이 지켜야 백주에 황폐케 하는 재난을 면할 수가 있지요. 사람이 아무리 애를 쓰고 힘을 써도 손쓸 수 없는 사이에 황폐케 하는 일들이 다가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우리가 피난처로 삼고 요새라고 말하고 여호와를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깃털로 덮어서 우리가 그 날개 아래 피하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와 손 방패가 되어 막아 주시기 때문에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피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피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시편 91편 7절로 8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천인이 내 곁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엎드려진다. 이것 큰일이구나.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서 이러한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 재앙에서 면케 해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37편 38절로 39절에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말했습니다. 의인의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정부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때에 우리 산성이 되어서 우리를 둘러 진쳐 주셔서 지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 생활 거처와 언어 고백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91편 9절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지존자를 거처로 삼았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품속에 사는 것을 우리 삶의 거처로 삼았으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시험과 환난에서 면하게 하시고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합시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그렇게 고백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비밀 속에 우리가 거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천인이 내 앞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넘어지더라도 이와같은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이 재앙이 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같이 계시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과 입술의 고백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19절로 20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예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은밀한 처소에 거하게 되고 지존자의 그늘 아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품에 안기며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한다는 것은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임하여 우리를 붙들어 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 잡혔다고 말했으며 죽고 사는 권세가 내 혀에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삶과 신앙 고백의 열매는 놀랍습니다. 시편 91편 10절에 말한 것처럼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라고 말했는데 여러분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화는 복의 반대입니다. 복을 받지 못하고 복 대신에 화가 오는 것입니다. 평안 대신에 불안이 오고 기쁨 대신에 슬픔이 오고 건강 대신에 병이 오고 성공 대신에 실패가 오고 축복 대신에 가난이 오는 이런 것이 화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은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었습니다. 또 재앙이 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한다. 재앙이라는 것은 이것은 저주인 것입니다. 여러분 심판입니다. 욥의 재앙을 보십시오. 온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식들 다 집이 무너져 죽고 온 몸이 중병에 걸려서 동네에서 쫓겨나서 기와장으로 몸을 긁고 있는데 자기 아내조차 와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했으며 친구들은 와서 그들을 맹렬히 공박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재앙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면 하나님이 같이 해주심으로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고 이 저주인 재앙이 내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내어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시편 91편 11절에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하나님의 천사는 무엇입니까? 구원 받을 후사를 도우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영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 고백을 통해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이 수습총리가 될려고 하니까 파사 왕 여러 다른 총리들이 그를 비난하고 그를 치게 해서 나중에 모함하여 사자굴 속에 집어 넣었지만 주의 사자가 사자굴 속에 같이 함으로 사자는 먹히지 아니하고 살아서 오히려 온 바벨론을 다스리는 수습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베드로도 잡혀서 처형을 당하게 될 때 그 전날에 주의 사자가 와서 감옥 문을 열고 해방시켜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천사들은 구원 얻을 후사들인 여러분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 오늘 이 시간에도 수 없이 많이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외롭게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서 우리를 모든 길에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려함이라. 여러분 발이 돌에 부딪치면 넘어져서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넘어져서 낭패하고 상처 입은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 천사를 보내어서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3장 25절로 26절에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 종교와 의식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에 와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권세를 주십니다. 시편 91편 13절에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이것은 바로 사자와 독사는.. 사자는 마귀요 독사는 악한 귀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에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하셨음으로 마귀와 귀신에 대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확실하게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겠다. 누가복음 10장 19절로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세계 속에는 마귀와 이 독사와 뱀들이 우굴거립니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 거짓말하는 귀신, 점치는 귀신, 약하게 하는 귀신, 방탕하게 하는 귀신, 병들에 하는 귀신, 온갖 귀신들이 사람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개인과 가정과 생활을 파멸로 이끌어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품에 있고 우리가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심으로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눌러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우리는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하며 변화무쌍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간절히 요구됩니다. 시편 91편의 말씀은 이러한 우리의 요구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리로다 하나님이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 거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그가 너를 밤에 놀램과 낮의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의 황폐케 하는 재앙에서 건져 주실 것이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넘어지나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까? 주께서 그 사자를 명하사 모든 길에 우리를 지키시리니 우리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과 은혜를 주셔서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밟아 누르리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신 주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의 날개 아래 지존자로 거처를 삼고 입술로 당당한 신앙 고백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서 여러분과 나를 붙들어 주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올바른 입술의 신앙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입술의 고백은 우리의 신앙이며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신앙을 갖고 입술로써 언제나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말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지 못하고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지존자의 그늘 아래 거하며 하나님은 내 피난처요, 요새요, 나의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입술로 고백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같이 하여 주셔서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져 주시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우리 성도들에게 넘쳐 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