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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26일 제목: 마라, 라파 그리고 엘림 성구: 출15:22-2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라, 라파 그리고 엘림”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애굽을 출발해서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 수르 광야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마름과 질병과 위협과 광야 생활의 궁핍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돌보심의 섭리와 약속을 하나님이 극적으로 나타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홍해 길을 지나 수르 광야에 지나와서 사흘길을 향해도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태양은 작열하고 온몸의 수분은 증발하고 목이 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었습니다. 모든 사람마다 물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원망하여 가로되 모세야 우리를 왜 광야로 인도하여 목말로 죽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그들이 한 연못물을 발견했는데 뛰어가서 마셔보니 써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진맥진했습니다. 이럴 때에 모세가 기도하매 한 나무 가지를 지시하시는지라 그 나무 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져서 모든 사람들이 목을 축이고 배불리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주님께서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말씀하기를 네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정의롭게 살며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실천하면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은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여 오아시스인 엘림을 갔습니다. 거기에는 물샘 열 둘이 콸콸 수정같은 물을 뿜어내고 종려 칠십주가 장대같이 높이 서서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이 캠프를 쳤습니다. 이 세가지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아를 지나갈 때 그들이 격어야 할 목마름과 질병의 위협과 광야 생활의 궁핍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겠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의미가 대단히 깊습니다. 우리들도 영적인 선민으로서 죄악의 홍해수를 건너와서 이제는 천당 가는 길에 들어왔으나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우리도 수없이 많은 목마름과 질병과 궁핍과 고통에 직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려 놓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주께서 묵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 마라의 쓴 연못물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 가슴속에 쓴 연못물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마음속에 절망의 쓴 연못물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연못물이란 죄악의 쓴 연못물인 것입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로 그 후손들은 벌써 뱃속에서부터 죄 중에 잉태되고 죄악 중에 태어납니다. 죄의 쓴 연못물이 우리 가슴속에 있으니 우린 이 죄의 쓴 연못물을 마시고 언제나 죄된 생각, 죄된 말, 죄된 행동을 하고 삽니다. 이 세상에 인류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죄는 우리의 삶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법과 질서를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그 가운데 죄가 있습니다. 정의와 진실을 따라 살려고 해도 부정부패가 언제나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가슴속에 쓰디쓴 죄악의 연못물을 가지고 그것을 마시고 죄악 가운데서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그 가슴속에 삶의 허무와 무의미의 실망의 쓴 연못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릅니다. 그들의 삶의 모든 것에서 의미와 가치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해도 얼마 있지 않아 시들어 떨어지는 것처럼 모든 삶은 그 가운데 의미가 없고 목적과 가치가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나서 죽고 나면 그로써 모든 것은 끝장나고 마는 것입니다. 참 사는 것이 무엇이냐! 사는 의미와 가치가 무엇이냐! 여기에 대해서 분명히 대답할 사람 없습니다. 헤밍웨이 같은 유명한 문학가도 자기는 마음속에 진리의 흐름이 끝난 사람같이 텅 빈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로스틴 같은 사람도 삶의 수많은 좌절과 허무와 실망 가운데 몸부림을 쳤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위대한 왕 솔로몬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헛되고 헛되니 또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그는 인생을 탄식했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의 가장 성공에 도달해 있어도 순식간에 마음에 다가오는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무의미와 허무의 쓴 연못물은 이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또한 인간은 모두다 그 가슴속에 불안의 쓴 연못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한 발짝 앞일도 모르지요. 그러므로 늘 마음이 불안하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언제 사냥꾼이 다가와 올무가 내게 다가와서 나를 몰아칠지 모릅니다. 밤중에 갑자기 흉악한 일이 일어나서 놀랄지 모르고 낮에 누가 나를 협박 공갈하고 모함하고 죽일지도 모릅니다. 흑암 중에 무시무시한 낭패와 실망이 다가올지도 모르고 백주에 황페케 하는 파멸이 우리에게 언제 임할지도 모릅니다. 요사이 4.13선거를 앞두고 나니까 제일 대목을 만나고 호황을 하는 것이 점집이라고 합니다. 점집이나 철학원이 모여 있는 신촌이나 미아리 일대는 2월초부터 공천 당선 여부를 묻는 측근들로 붐을 이루는데 이곳 역술인들의 말을 보면 평소보다 30%의 수입이 늘었다고 말했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많이 공부도 하고 연륜도 쌓았지만 내일 일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습니다. 중대한 문제에 당하면 역술집이나 철학관이나 점치는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호소합니다. 어떤 우리 한국의 기업에는 개천에서 돌을 갔다고 놓고 점쟁이가 그 돌이 용하다고 하니까 그 돌을 모셔놓고 사원을 모집할 때 돌님 돌님 이 사원을 고용할까요 말까요 하면서 그 돌을 들어보면 돌이 가벼우면 고용하지 말아라 돌을 들어봐서 무거우면 고용하라 그렇게 해서 사원의 90%를 돌에게 물어보고 고용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지혜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불안과 공포의 존재이기 때문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안의 쓴 연못물을 가슴에 갖고 늘 전전 긍긍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인생은 죽음의 공포에서 쓴 연못물을 가슴속에 담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린다고 해도 죽음은 그것을 다 빼앗아 버리고 이 세상에서 쫓아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과 삶에서 쫓겨난 일에 대해서 늘 불안과 공포심을 가지고 그 쓴 연못물을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슴속에 쓴 연못물을 무엇으로서 달게 만들 수 있습니까?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이 가슴속에 쓴 연못물을 달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광야를 진행하는 동안에 이 쓴 연못물을 가지고 가면 인생은 실망하고 낭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나무 가지를 꺾어 던지면 물이 달아진 것처럼 여러분 우리의 쓴 가슴속에 갈보리 십자가를 던져 넣으면 이 쓴 연못물이 신기하게 달아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갈보리에서 예수님이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린 구원의 상징인 이 십자가를 우리의 가슴의 쓴 연못물에 던져 넣으면 우리 가슴의 쓴 연못물은 다 모두다 달아져 버리고 맙니다. 죄악의 쓴 연못물에 십자가를 던져 넣으면 우리의 죄악이 영원히 용서받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마귀에게 묶여 있고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멸망을 당했는데 십자가를 던져 넣으면 죄악이 용서받음으로 마귀의 사슬이 끊어져 버리고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고 성령을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의의 십자가를 우리의 가슴속에 던져 넣으면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용서와 의로 말미암아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허무와 무의미가 깊은 지옥같이 입을 벌리고 있어도 십자가를 우리 가슴속에 던져 넣으면 허무와 무의미의 쓴물이 달아집니다. 하늘들과 하늘을 지으시고 세계와 만물을 지으셨으며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게 됨으로 거기에서 다가오는 마음의 의미와 가치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에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고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몸은 현실에 살아도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고달퍼도 미래에 희망이 있으면 현실의 고달픔은 얼마든지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부귀와 공명을 누린다 할지라도 내일의 희망이 없으면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술주정뱅이나 마약 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슴속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실 때에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이 영원히 하나님과 살 수 있다는 그 놀라운 희망이 우리의 가슴속에 허무와 무의미를 풀어 버리듯이 다 풀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언제나 현실에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있습니다. 미래에 희망이 없으면 인간은 허무와 무의미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로 우리를 품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우리가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공포가 소용돌이치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밑에 거함으로 밤의 놀램과 낮의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페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피난처라 하고 전능자를 거처로 삼았기 때문에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우리 곁에 오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불안과 공포보다 영원히 크고 강하신 우리의 운명을 주장하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좋은 하나님을 알고 믿을 때에 불안과 공포의 쓴 연못물은 달아지는 것입니다. 또 죽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이미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그 길을 부활의 광명한 빛으로 밝혀 놓고 말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절대 절망의 캄캄한 밤이었지만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길을 환한 불로 비쳐 놓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과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에 있냐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십자가를 던지면 사망의 쓰디쓴 연못물은 부활의 달고 단 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쓴 물이 가득한 가슴속에 십자가를 끌어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될 때에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슴속에 문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당신을 치료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내 앞에 의롭게 살고 나의 율례와 계명을 지키면 내가 애굽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 병을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는데 몸이 병들거나 약하면 그는 광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데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입니다. 명예를 잃은 것이면 꽤 많이 잃은 것이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 없이 몸이 병들면 아버지 노릇도 어머니 노릇도 못합니다. 남편 아내의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시민으로서의 건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건강은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어마어마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삶의 바탕이 그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광야 같은 생활에 성공적인 크리스찬 생활을 하려고 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와 같이 하여 너를 치료하는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지 우리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계명과 율법은 하나님과의 화목과 교통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지킬 때에 하나님과 교통이 되고 화해가 되는 것입니다. 왜 계명과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과 율법을 주의하고 실천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치료자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7장 12절에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으며, 신명기 7장 14절로 15절에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에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소의 생육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 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 20절로 21절에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여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얻을 땅에서 필경 너를 멸하실 것이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십시오.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면 하나님께서 치료자가 되어 주시지만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하며 불의와 부정을 행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질병으로 징계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 낫기 위해서는 죄를 고백하고 보혈을 의지하여 간절히 주님께 기도 드리면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은 치료자로서 위대한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로 16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에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그 몸에 달게 짊어지셨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광야를 지향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진실되고 살며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의사를 통하여 약을 통하여도 고침을 받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건강을 주심으로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마음과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곳은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로 들어갔습니다. 그 광야에 오아스시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니까 물 샘 열둘이 물을 솟아 내고 종려 칠십 주가 바람에 날렸습니다. 그곳에는 푸른 화초가 있고 새들이 있고 동물들이 있고 열매들이 있었습니다. 오아시스에는 온갖 것이 다 있는 것은 생명의 물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깊은 상징적인 의미를 준 것입니다. 열두 지파와 칠십 인의 장로는 이스라엘 선민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지날 때에도 선민을 위해서는 이와 같이 언제나 오아시스를 예비해 주시겠다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영적인 이스라엘은 우리들도 예수님을 열두 제자와 칠십 인의 장로들로서 우리 지상에 이룩하신 천국을 대표하신 것입니다. 대표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이 오아시스는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선민을 위하여 광야에서 오아시스를 예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줌으로 어떠한 광야, 험한 길을 가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은 오아시스를 예비하신다 그 말씀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3절에 “그는 너를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과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앞에 행하사 장막 칠 곳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선민을 위해서 오아시스를 예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시편 107편 35절로 36절에 “또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사 저희로 거할 성을 예비하게 하시느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영적인 선민인 우리가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아시스를 예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오아시스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가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 선민들에게는 메마른 세상의 오아시스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무리 사탄이 공격해도 교회를 주님께서 지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땅에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 교회가 바로 성도들이 지치고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길의 오아시스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영적인 선민에게 주는 생명수가 이곳에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 생명수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영혼이 소생하고 마음의 용기와 힘을 얻고 상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도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리라”고 말했었으니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주시고 가르치시고 우리에게 큰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 27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의 역사가 교회 가운데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강, 사랑의 강, 희망의 강, 의와 평강의 강물이 넘쳐 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 메마르고 목마르고 시련을 당하고 고통 당하고 낭패와 실망을 당해도 하나님이 이 땅에 예비한 이 엘림 오아시스인 교회에 오면 여기에 성령의 열두 샘물이 넘쳐나고 말씀의 열두 샘물이 넘쳐 나며 축복의 종려나무가 하늘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종려나무는 하나님의 위로와 형통과 승리와 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편 92편 12절에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요한3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는데 이 세상 메마른 곳에 어디에서 이런 곳을 얻을 수 있습니까? 교회에 오면 이것이 주님께서 예비한 오아시스로서 이곳에 물 샘 열둘을 통해서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영혼이 잘 되게 되고 종려 칠십 주처럼 주님이 복을 주심으로 범사에 잘 되고 치료함을 얻어 강건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오아시스 교회인 것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물이 있는 오아시스에는 생명이 약동하지 않아요. 에스겔서 47장 9절에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여 성도 중에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처녀 때 우울증이 심해서 점도 쳐보고 굿도 해보고 병원도 다녀 봤지만 우울증에서 해결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낫는다고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애도 얻었는데 남편이 실직을 하자 우울증이 굉장히 심해졌습니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날 수도 없고 밥도 지을 수 없고 남편을 수발할 수 없고 어린애도 돌볼 수 없을 만큼 그는 꼭 자살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구역장 한 분이 자꾸 권면해서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 구역장의 인도를 받아서 그는 좌절과 절망 중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데 이것이 그의 생명의 오아시스가 되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고 기도하고 성령이 역사하자 그 마음속이 차차 맑고 밝고 환해지며 우울증의 먹장구름이 떠나가고 그는 화창한 봄날 같은 성도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얼마나 마음이 기뻤던지 금식하고 철야기도하고 그리고 부르짖으니 이 남편도 부인이 행복하니까 따라서 행복하고 가정이 기쁘니까 나가서 열심히 직장을 찾아서 직장도 얻고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부부가 늘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봉사하며 그는 3년간 150명을 우리 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 마음속에 너무 기쁨이 넘치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가는 곳마다 교회로 이끌어서 150명을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메마른 광야 같은 그의 삶에 교회가 삶의 오아시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믿는 개인과 가정 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이 이 오아시스에 들어오면 생명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는 동안 마음의 치료를 받고 육신의 치료를 받고 교회에 영적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살아가는 것이 선민의 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한대로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사람에 내린 모든 질병이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하신 그 말씀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쓴 연못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단물이 되고 우리가 들어오며 나가며 하나님의 병원인 교회에서 치료를 받고 이 세상에 엘림이라는 교회에 들어와서 샘물을 마시고 종려나무 밑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신앙 생활을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예수를 믿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메마른 광야같은 세상에 목마르고 지치고 병들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위기에 처하고 그리고 누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쓴 연못물을 달게 해주시고 병을 고치시고 우리에게 오아시스인 교회를 주셔서 이곳에 와서 주께 부르짖으면 주께서 생수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러므로 빈손 들고 광야에 방황하다가 파멸 당하는 자 없고 모두 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 살다가 천국의 영원한 오아시스로 들어가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