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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9일 제목: 선택하시는 하나님 성구: 잠3:5-7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선택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선악을 분별하시고 삶의 모든 길에 선택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주권자의 신성한 권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와도 이 권리를 결코 나누지 않습니다. 오늘 첫째 알아보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을 불러내실 때에 아브라함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 행사로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생애를 결정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체가 주권적으로 선택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2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간 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인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택을 따라서 그가 그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갈 때 하나님이 그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도착해서 얼마 안되어 큰 기근이 다가왔습니다. 산천초목이 다 불타고 우물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짐승들이 다 굶어 죽고 같이 온 종들이 다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을 시험해 보십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해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했으면 끝까지 하나님의 선택을 의지할 것이냐! 아브라함이 자기 스스로 갈 길을 선택할 것이냐를 시험해 보시는 그 장면에서 아브라함은 그만 하나님의 선택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참지 못하고 스스로가 자기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해서 보냈으면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의 선택에 맡겨 버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견디지 못하고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가겠다고 선택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스스로가 선택한 것입니다. 자기의 주권적 행위로서 선택을 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이제는 하나님이 선택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책임져야 됩니다. 이러므로 자기 아내를 보고 당신 예쁜 여자니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당신을 빼앗을까 두려우므로 이제는 내가 당신을 여동생으로 할테니까 나를 오빠라고 부르라. 그리고 스스로 살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갔으나 곧장 그 아내의 미모가 알려지자 바로왕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불러 들였습니다. 과연 이 여인이 너희 동생이냐? 그렇습니다. 과연 이분이 너희 오빠냐 그렇습니다. 그럼 됐다. 오늘 네게 장가들어서 너를 내 아래로 삼겠다. 자기 스스로가 택한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애굽에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그는 그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고 하나님이여 앞으로는 내 주권 행사를 안 할테니까 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을 테니 주님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바로의 왕궁에 크게 재앙을 일으켜서 바로로 하여금 깨닫고 다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고 아브라함은 그 아내와 조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원상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 가나안 땅에 가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에 아브라함의 모든 하는 일에 복을 주어서 그는 정말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강성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나이 85세가 되어서 아직 아들이 없고 후사가 없으니까 마음이 동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에 의지하지 못하고 사라의 꾀임에 넘어 갔습니다. 여보 내가 나이가 늙어 이젠 아들을 낳을 수 없고 당신의 후사를 끊을 수 없으니 내 여종 하갈을 첩으로 취해서 아들을 낳아 대를 이으시오. 이래서 하나님의 선택을 따르지 아니하고 여기에 아브라함이 또다시 자기 선택을 따랐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하갈을 첩으로 선택하고 그에게 들어가서 아들을 낳으니 그 아들의 이름이 이스마엘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가정에 큰 풍파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선택한 길임으로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잘못 선택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잘못된 선택으로 오늘날까지 세계의 화약고가 중동입니다. 하갈이 86세에 낳은 이스마엘 이 이스마엘 후손이 오늘날 아랍민족인 것입니다. 1951년 아랍 연맹 22개국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사우디, 이라크, 요르단, PLO등이 연합해서 이스라엘과 교역금지 명령을 내리고 아랍 공동 시장을 형성해서 경제를 촉진시키고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몰아 내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알력이 중동에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잘못된 선택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 선택했으면 그렇게 안 되었을텐데 스스로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중동이 활화산이 되고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아브라함은 훗날에 깨닫고 크게 회개하고 자기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서 이삭이 약 20여세 되었을 때 그를 모리아산에 데려가서 잡아서 각을 뜨고 장작 위에 얹어 불로 태워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에 두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난 아들을 제물로 드리라고 할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스스로가 거기에 대해서 절대로 반항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주권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여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가서 장작을 펼쳐 놓고 그 아들 이삭을 잡아서 줄로 묶고 그 장작에 얹어서 칼을 들어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삭에게 손대지 마라. 그리고 창세기 22장 16절로 18절에 보면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복종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반역하고 자기 스스로 주권 행사를 행하여 자기 운명을 자기가 선택하면 그 다음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자기가 선택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둘째로 생각하고 싶은 것은 요셉입니다. 요셉의 생애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두 번,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서 행하실 계획을 꿈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한번은 꿈에 형들과 함께 들에 곡식 단을 베려 갔는데 자기 곡식단이 가운데 서고 열한단이 죽 둘러서더니만 자기를 향하여 절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 또 꿈을 꾸니까 공중을 쳐다보니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서 넙적 절을 합니다. 이것은 온 가정에서 요셉이 주권자가 될 것이요. 온 가정을 이끌어 갈 것을 하나님이 미리 예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셉에게 보여주신 이 꿈을 이루는 방법은 하나님이 선택했습니다. 요셉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하는 방법이 반드시 평탄한 방법은 아닙니다. 어떨 때는 굉장히 험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 대해서 계획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선택한 길은 험한 길이었습니다. 요셉이 13살 때 형들 목장으로 갔다가 형들에게 팔려서 미디안 대상에 넘어 가습니다. 미디안 대상들은 요셉을 끌고 와서 애굽에서 보디발의 종으로 팔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10년 동안 종살이하면서 잔뼈가 다 굵은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선택한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반드시 좋은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고생과 괴로움이었지만 그를 통하여 요셉은 심신이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자꾸 유혹하는데 그를 거역하자 나중에 비참한 참소에 빠져서 요셉은 시위대 뜰 감옥에 갇혔습니다. 2년 동안 시위대 뜰 감옥에 있는 것 또한 자기가 선택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해서 감옥에도 넣습니다. 그 감옥에 바로왕의 술장관 떡장관이 같이 들어와서 있었는데 그들의 하루 꿈을 꾼 것을 요셉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 꿈이 해석대로 술장관은 다시 복직이 되고 떡장관은 목이 날라 갔습니다. 요셉은 술장관에게 간절히 부탁을 해서 자기를 구출해 줄 것을 간구했으나 술장관은 나가자 마자 잊어 버렸습니다. 2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 보니까 바로가 하숫가에 있는데 하숫가에서 살찐 일곱 소가 일어나서 풀을 뜯어먹는데 굉장히 살이 찌고 좋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뒤에 마르고 비참하게 생긴 일곱 암소가 올라오더니만 이 살찐 소를 다 잡아 먹고도 그 자리에 아주 말라 있습니다. 그 다음 잠을 깼다가 다시 잠을 잤는데 한 줄기에서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아주 기름지고 살찐 일곱 이삭이 바람에 날리는데 얼마 있지 않아 동풍에 마르고 여윈 이삭 일곱이 있더니만 먼저 있던 충실한 이삭을 다 잡아 먹고도 그대로 쭉졌습니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서 대단히 번민스러워 애굽의 모든 박사들을 다 불러 그 뜻을 물었으나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럴 때 술장관이 무릎을 치면서 왕이여 제가 왕에게 허물을 지고 감옥에 가 있을 동안에 그곳에 있는 요셉이란 히브리 사람이 우리 꿈을 해석해 놓았는데 꿈대로 되었다. 왕이 즉시 요셉을 오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이 왕 앞에 불려 나와서 왕의 그 꿈 이야기를 듣고 대번에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 나라에 앞으로 칠년 동안 큰 풍년이 있다가 그 이후에 칠년 흉년이 있을 것인데 흉년이 얼마나 심하든지 칠년 풍년이 온데간데 없을 것이다. 두 번 꿈을 보여준 것은 하나님이 확실히 이것을 이루겠다고 한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바로왕이 무릎을 치고 이렇게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를 국무총리로 삼노라. 그리고 그 반지를 끼워주고 요셉 앞에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온 애굽과 중동일대를 칠년 기근에서 구출해 낸 것입니다. 그 형들이 나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요셉을 판 것이 겁이 나서 요셉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50장 18절에서 21절에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여기에서 여러분 보면 요셉의 일생은 하나님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가 종으로 있으나 감옥에 있으나 즐거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나중에 하나님이 요셉을 높이사 애굽의 국무 총리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절대 주권적인 선택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저버리고 인간이 스스로 길을 선택하면 인간은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삶과 선택의 교훈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매일 같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처럼 주권자가 되고 하나님처럼 선택의 권리를 주장했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스스로가 자기 주권 행사를 하고 선택을 했다가 그 결과 마귀와 세상과 파멸의 고통을 체험한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세상을 선택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을 따라갑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슬픔과 고통이 따릅니다. 인간은 자기의 선택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의 본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권에 따르는 선택은 결코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복종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종된 인간의 형상으로 오셔서 죽을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선택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기로 선택했을 때에 예수님은 그것에 복종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라고 하실 때는 죽는 것도 하나님의 선택이지 예수님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완전한 순종으로 예수님은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는 마귀가 와서 주권 행사를 해라, 너 스스로 선택을 하라고 자꾸 꾀었습니다. 주님께서 광야에 가서 40중 40야 금식하시고 왔을 때. 마귀가 와서 이 돌을 택해서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너는 주권 행사를 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는 것을 너는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단호하게 자기 스스로가 돌을 떡으로 변화 시켜서 먹기로 작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데리고 올라가서 뛰어 내려라 하나님의 사자들을 명하여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여 영광과 명예와 찬사를 얻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마귀의 꾀임을 따라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4장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선택은 하나님께 있지 하나님은 그런 명령 안 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또 마귀가 높은 산에 데려가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이고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합니다. 그 찬란하고 영화로운 온 세계의 영화를 보고 예수님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택권에 절대 복종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0절에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 하였느니라" 아무리 마귀가 꾀어도 예수님은 자기 주권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택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만 맡긴다. 최후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에 올라가서 죽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6절에 보면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이 선택한다면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죽음을 예수님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선택권을 아버지께 내어 맡긴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흘만에 부활시켜서 그 이름을 지극히 높이시고 하늘에 있는 이름이나 땅에 있는 이름이나 땅 아래 있는 이름이나 모두다 우리 주 예수를 주로 부르고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넷째로, 그러면 이제 우리는 삶의 새로운 각오를 오늘 이 시간에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삶의 각오를 해야 할까요? 옛사람의 인본주의적인 삶을 철저히 주님과 합하여 죽고 장사지내고 주님 중심주의로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옳다 나쁘다 선택을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 선택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로마서 6장 6절로 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순종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자아 20절에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우리는 중요한 네가지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배우자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남편을 선택하고 아내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인물이 이쁘다, 가문이 좋다, 교육이 많다, 그러므로 이 남자를 선택하자, 이 여자를 선택하자 하면 허다한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배우자를 선택해 주기를 간구한다면 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불만족하게 생각하는 남자와 여자라도 결혼하고 보면 끝까지 하나님이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이 갈수록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업의 선택도 그와 같습니다. 내 마음대로 이 직업이 좋겠다. 저 직업이 좋겠다고 선택을 한다면 그 직업을 선택하고 난 다음 그 직업의 흥망성쇠에 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 길을 맡겨서 하나님이 선택해 주신 길을 따라 간다면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흥망성쇠를 통해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이끌어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관도 그렇습니다. 내 인생관을 내 마음대로 선택하나요? 내 인생관을 하나님이 무릎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내 일생을 맡기고 하나님이 정해주는 그 인생관을 살아야지요. 우리의 종교도 그렇습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이 종교 믿고, 저 종교 믿을 수 있나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으라는 신앙을 우리가 믿어야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하였으니 우리 하나님의 선택과 우리 하나님의 결정에 우리가 순복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먹고 마시고 일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인 행세를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주권 행사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권에 서서 선택하는 것마다 우리는 잘못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 주권자가 되십니다. 시편 123편 1절로 2절 말씀대로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입니다. 머슴이요, 일꾼은 주인이 명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지 머슴과 일꾼이 주인 제켜 놓고 이것 하겠다, 저것 하겠다,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고 결정하면은 그 머슴과 그 일꾼은 쫓겨나기 꼭 알맞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머슴이요, 일꾼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을 앙망하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선택하시고 주장하시기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길과 행위에 주권적 행위인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와 간구로 오직 선택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케에르케고르는 그의 책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죽음과 생명, 흑암과 빛으로 인도하는 길 사이, 개인과 하나님의 뜻, 순간적인 이익과 영원 사이, 인간의 선택과 자유,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는 길을 가면 끝까지 하나님이 책임을 져 주시고 함께 해 주시고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을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나 정치 의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택을 따라간다면 이 민족의 앞날은 창창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인본주의에게 서서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과 수단으로 우리의 갈 길을 선택한다면 하나님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천재지변이 다가오던지 전쟁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아요. 인간이 선택한 길은 인간이 책임져야 됨으로 그 결과는 뻔한 일인 것입니다. 현재 한국 공직자 100명 중에 기독교 신자가 40%, 카톨릭 신자가 20%, 불교 신자가 9%입니다. 기독교와 카톨릭은 같으니까 우리 한국에 하나님의 이름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지도자들이 60%가 됩니다. 그래도 부정이 많다, 부패하다, 잘한다 못한다 해도 이 나라가 IMF를 통해 나오고 이만큼 세계 민족 앞에서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주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선택을 간구하는 지도자들이 이 땅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4.13 총선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꾼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따라서 가는 그러한 지도자가 선택이 되어야 이 민족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잠언서 3장 5절로 7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명철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여러분 한치 앞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지혜롭다 하더라도 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신 우리 하나님,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의 길을 맡기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으로 우리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길은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길은 끝까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항상 주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오 하나님이여 하나님 아버지를 종이 주인의 손을 바라봄같이 바라보오니 하나님이 내 길을 선택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끌어 주옵소서, 내 배우자를 선택하여 주옵소서, 내 직업을 선택하여 주옵소서, 내 인생관을 선택하여 주옵소서, 내 신앙을 선택하여 주옵소서하나님의 선택에 우리 몸과 마음을 맡길 때에 우리는 담대하고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움을 믿고 의지하며 성공적인 일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교만하게 날뛰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파멸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오늘 이 시간 기도하오니 아브라함의 교훈을 우리가 배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택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가 인생을 선택할 때는 애굽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선택을 따랐을 때는 믿음의 조상으로 영화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모든 삶에 기도하고 하나님께 내어 맡겨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간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택을 쫓아 인생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