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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16일 제목: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 성구: 사 53:1-12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의 몸을 빌어 인간으로 오셨고 그의 짧은 33년의 삶이 고난에 점철된 삶이었으며, 종국에는 범죄자 중 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나 3일만에 부활하사 인류의 구주가 되셨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랍고 기이하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 52장 13절로부터 15절에 이 놀라운 사실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2장 13절에서 15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예수님께서 이왕에는 얼굴이 얼마나 얻어맞아서 타인보다 상하여 형상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여서 오는 사람마다 머리를 흔들고 혀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그가 온 천하 만국을 놀라게 하고 온 백성들로 놀라게 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라는 사실이 전파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의 일생에 관해서 주님 오시기 600년내지 700년 전에 너무나 밝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오늘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예수님의 출생과 생애를 계시 받은 이사야는 너무나 놀라운 사실에 그는 큰 충격을 받고 그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한들 누가 믿어 주겠느냐! 여호와의 팔 즉,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기 전에는 아무리 외친 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는 하나님의 아들의 출생과 신분을 그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2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사야가 환상 가운데 보니까 예수님이 자라나는 것은 연한 순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이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의지할 것 없는 피덩어리 어린 아기로 여린 순같이 태어나는 것에 감탄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또한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 예수님이 태어난 그 토양이 마른 땅 같다. 다시 말하면 그는 큰 부잣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권세 있는 자의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제사장이나 지식인의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멸시받고 천대받는 나사렛의 가난한 한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으니 그 태어난 토양이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서의 풍채도 없고 권세 있는 자의 자식으로서의 풍채도 없었습니다. 지식있는 자의 당당한 풍채도 없이 그는 태어났으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아무도 그 울음소리에 특별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너무나 평범하고 비천한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고 그를 귀하게 여기거나 흠모할 만한 아무 것이 없다고 여기 이사야는 탄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같은 모습으로 태어났으니 누가 이 소식을 믿을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서 특별히 계시를 주지 않는 바에야 누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겠냐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짧은 생애를 전반적으로 이사야는 개요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서 싫어 버린 바 되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종교단체에서 완전히 이단으로 버림을 당하고 로마 정치권에서 완전히 경계 대상이 되고 버림을 당했으며 상층 사회 부자 지식인들에게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싫어 버림을 당한 그러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간난신고를 많이 당했습니다. 풍찬노숙을 하고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배고픔도 경험하고 추움도 경험하고 고통도 경험했습니다. 간난신고를 많이 겪고 그러나 질고를 아는 자였습니다. 병든 자는 주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병든 자나 육체에 병든 자는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짐을 짊어지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아 멸시를 당했습니다. 어느 곳에 가나 예수님은 권세 있는 자나 부자나 지식인이나 상층인들에게는 완전히 얼굴을 가리움 받은 자 같아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느 곳에 가나 버림받은 사람, 가난한 사람, 범죄자들, 세리들과 창녀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구원한 분이 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를 사람들은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인물이나 존귀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요사이 말하면 신문 인터뷰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TV에 그 모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를 보고 흠모하여 따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세상에서 그는 소외당하고 멸시 당하고 천대를 받고 인정을 받지 못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이사야는 어떻게 그 손으로 저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지으시고 그 손으로 깊은 바다를 파내시며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그분이 이와같은 삶을 살았을까?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겠는가? 누구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서 이것을 믿게 하겠는가? 그는 탄식을 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이사야 53장 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지신 예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예수님의 그 삶의 의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는 가짜가 아닙니다. 형식이 아니라 진짜로 우리의 질고를 걸머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병, 육체의 병, 주님께서는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여러분 육체의 건강은 우리의 삶의 기본입니다. 사람이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입니다.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립니다. 건강 없이는 우리 존재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건강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짊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 우리는 아담 하와 이후로 이 땅에 행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기쁨의 날은 짧고 슬픔의 날은 깁니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언제나 슬픔의 쓴 연못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우리의 슬픔을 없애주기 위해서 우리의 슬픔을 주님 대신 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생은 고난의 일생이었으며 슬픔의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소리내어 웃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우리의 슬픔은 자기의 슬픔으로 깊이 영혼 속에 받아들이고 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매를 맞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하나님이 사랑한다면 왜 하나님의 아들이 저렇게 소외되고 버림받고 헐벗고 굶주리며 고난의 종, 슬픔의 종이 되었을까? 이제는 하나님께 매 맞으며 버림받고 고난 당한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슬픔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의미를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고 이사야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도 마태복음 8장 16절에로 17절에 보면“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의 허물과 죄와 징계를 대신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전혀 그것을 알지 못하나 그리스도가 와서 이 땅에 사심은 그 깊은 대속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그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혔습니다. 우리도 비디오에서 전에 보았지만 얼마나 쓰리고 아팠겠습니까? 그 찔림은 우리의 허물, 손으로 지은 허물, 행위로 지은 허물, 허물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우리의 허물은 예수님께서 그 손발로 찔림으로 다 짊어지시고 그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얻어맞아서 상처를 입어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상실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영혼이 상처를 입은 것은 우리 죄악 때문입니다. 아담 하와 이후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법을 거역한 우리의 죄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다 주님께서 책임을 지셔서 그렇게 얻어맞은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쫓겨 났을 때에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항상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는 징계를 받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시편 21편 1절로 2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당했습니다. 왜? 우리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을 거역한 그 죄를 대신 짊어지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아 쫓겨났습니다. 버림받았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나이까? 그가 그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화목을 얻고 평화를 얻게 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빌라도의 뜰에서 로마 군인들에게 서른 아홉 차례의 매를 맞고 등이 다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줄기줄기 피를 흘렸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우연히 매 맞은 것이 아니라 그가 채찍에 맞아야 우리가 고침을 받는 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앓는 이 모든 병을 예수님께서 대신 채찍으로 그가 고통을 당해야 그 대가로서 우리가 치료함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양들은 자기가 좋은 풀밭을 찾아서 마음대로 흩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가고 하나님은 생각에 두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은 다 짓밟아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머리의 죄악을 예수께 담당시켰습니다. 네가 짊어져라 네가 맏아들로서 네가 다 짊어지고 네가 저 범죄를 다 청산하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독생자가 책임을 다 지고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 있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그가 보내신 아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변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물질적으로 부요한 가정에 남편은 항상 돈 버는 데에 몰두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 왔습니다. 부인은 굉장히 성격이 다정다감한 부인이라 남편과 대화하기를 원하고 웃고 울고 즐기길 원했으나 도무지 남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고 저녁에 늦게 들어오며 피곤해서 잠자고... 대화의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에 대한 상당한 불만족이 있고 마음이 우울했는데 그 부인이 맹장염에 결려서 거기가 터져서 복막염이 되었습니다. 빨리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으나 병이 중하고 극도의 빈혈에 걸려서 이제는 죽게 되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이 부인은 삶의 의혹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젠 살 필요가 없다. 나는 사랑 받지도 않고 이 세상에 아무 필요 없는 존재이니까 이젠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고 삶의 의욕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시골 병원이라 시설이 별로 없는데 수혈을 해야 하는데 그 남편의 혈액형과 부인의 혈액형이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급하니까 남편이 당장 부인 앞에 와서 팔을 걷었습니다. 그리고 주사 바늘로 남편의 혈관에 주사를 꽂고 다른 주사기를 부인의 혈관에 꽂았습니다. 부인이 삶의 의욕을 다 잃고 자기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희미한 기억을 가지고 보니까 남편의 그 팔에서 붉은 피가 자기의 혈관 속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 부인은 마음에 크게 감동을 느꼈습니다. 여태까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출근하고 저녁에 늦게 들어와서 말없이 자고 자기를 버린 것 같았지만 이제보니 자기가 오해했구나. 남편이 자기의 생명의 피를 그냥 직접 꽂아서 부어주는 것을 보고 남편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살아야 되겠다는 삶의 의욕을 다시 갖고 그 병을 이기고 건강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잃어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말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증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켰다고 이사야는 외쳤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의 모습을 이사야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7절에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그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가 네가 이 잔을 마시고 백성들을 위해서 대신 죽는 것이 나의 뜻이라 이렇게 아버지가 알려준 이상 그가 잡혀갔을 때 이제는 살려고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온갖 질문을 다하고 온갖 거짓 증언을 다해서 그는 입을 다물고 대답을 안 했습니다. 살려고 했다면 변명을 했겠지만 주님은 이미 죽기로 작정하신 분입니다. 죽기로 작정한 분이 그가 살겠다고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그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주님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 8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는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고 하나님이 제물이 되라고 하셨으므로 그는 인류를 위해서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 화목제물, 소제물이 되도록 자기를 내어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를 위해서 스스로 살겠다고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혹독한 질문과 거짓말과 거짓 증언에 대해서 주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장엄한 침묵을 지킨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죽음으로써 순종하겠다고 결의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8절에 보면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가 곤욕을 당하고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아무도 그가 산 자의 땅에서 저렇게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단과 사설을 주장하는 사람을 처형하는 줄 알았고 로마 정권에 저항하는 사람을 처형하는 줄 알았지. 그가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 때 그 당시에 누가 깨달았냐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6절에서 8절에 보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서 희생 제물이 되어서 자기를 불 가운데서 구원하러 오셨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비난하고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여러분 무지가 사람을 죽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르면 멸망 당합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은 위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가지지 않은 위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는 지식이요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었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지식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지식입니다. 이 여호와의 팔이 나타나서 계시해 주시지 않고는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있으면서도 이 세상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정치인들도 모르고 학자들도 모르고 과학자들도 모르지만 우리는 장차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을 환하게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사람 남은 이들이 다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주를 영접하고 그 때부터 칠년 환난이 이 세상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이 위대한 이 지식을 이 세상 사람들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와같은 놀라운 지식을 준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진 것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야 하였느냐? 이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너무나 탄식스럽고 너무나 불쌍합니다. 이사야서 53장 9절에 보면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은 주먹을 쓴 적도 없고 예수님께서는 폭력 행사를 한 적도 없고 예수님은 깡패 두목이 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속이고 등치고 간을 빼앗아 먹는 세속적인 비즈니스맨같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십자가에 죽었을 때에 그 무덤은 악인들이 묻히는 공동묘지에 그것도 한 부자가 파 놓은 묘실에 들어간다고 예수님 오시기 600년 전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7장 57절에서 60절에 보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예수님은 악인들과 같은 공동묘지에 갔지만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가 죽으면 들어가려고 파 놓은 그 부자 요셉의 무덤에 주님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명명백백하게 이사야에게 예수님의 죽으심을 그 무덤까지 예언해 주셨습니까? 이것을 보고 이사야는 너무나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이 사실을 믿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죽어서 무덤에 들어 갈 것을 누가 믿겠는가? 여호와의 팔, 계시가 나타나기 전에는 누가 이 사실을 알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꿈과 소원을 예수님은 이로써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 10절로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꿈을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께서 예수로 상함을 받기 원하사 우리의 질고를 당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병이 낳아도 좋고 안 낳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병 낳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처를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이 병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질병을 당하게 하셨으니 오늘 하나님이 얼마나 여러분이 병고침을 받고 건강하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혼을 하나님 앞에 죄를 위한 속죄제물, 속건제물이 되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바치게 되면 그 후손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생명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한다.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소원입니다. 이 아버지의 뜻과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서 죄악을 담당하고 우리 질병을 담당하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이 소원 성취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사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에 고난 당하고 수고한 그 결과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죄인이 용서받고 구원받고 귀신이 쫓겨나고 병 고침 받고 저주에서 해방 당하는 것을 보고 주님을 만족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고난 당하는 것 잘 했도다, 내가 고난 당하고 괴로운 그 결과로 이와 같은 은총이 백성들에게 임하는 것이 참 즐겁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다.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고 많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만들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의 소원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만 성취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 속에 성취된다, 하나님의 소원은 여러분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이 하나님이 소원인 것입니다. 이 소원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할 때 나는 아버지의 소원을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도 안에서 아버지의 소원을 여러분께서 성취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서 53장 12절은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심과 자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얼마나 기뻐하고 그리스도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 세상의 흉악한 범죄자중 하나로 취급받아 우편 강도 좌편 강도 사이에서 하나의 범죄자로 취급받아 그가 십자가에 죽고 음부까지 내려갔으나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범죄자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서 기도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무나 너무나 아름답게 여겨서 존귀한 자 즉 하나님과 함께 분깃을 얻게 하고 강한 자 즉 전능한 하나님과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고 탈취한 것이 뭡니까? 이 죄악에 빠지고 마귀에게 빼앗긴 영혼을 탈취해내서 이 백성들을 함께 다스리고 함께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9절에서 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사야는 주전 600년내지 700년전에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과 부활과 승리를 일목요연하게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언이 2000년전에 이미 역사적으로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진 사실을 밝히 보고 감격과 감사를 느낍니다. 여러분 이제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태어남과 삶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아버지의 소원을 이룬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성취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뜻과 소원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고난 당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에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을 깊이 감사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일생을 던져서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처참하리만큼 큰 고난을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아버지 앞에 나아가 우리는 마귀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탈취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값 주고 사셨으니 용서와 의를 우리는 탈취해야 되고 천국과 성령충만을 탈취해야 하고 마음의 평안과 건강을 탈취해야 하고 우리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탈취해야 하고 부활과 영생을 믿음으로 빼앗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고난 당했는데 우리가 왜 그 고난을 무로 돌리게 하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고난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큰 희생을 베풀고 하나님이 얼마나 간절한 소원으로 그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들을 구원하고 우리들을 건지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이사야 53장을 통해서 깨달아 보았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600년 내지 700년 전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 계시를 주셨고 이사야는 이 계시를 보고 손으로 입을 막고 그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누가 이 사실을 믿겠으며 누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겠느냐고 그는 통탄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아버지 2000년 전에 예수님은 그 예언대로 다 이루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은총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지식이 너무나 고매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성령으로 이 지식을 깨닫고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고 믿게 도와 주시옵시고 오늘 사망과 음부와 마귀에서 해방을 얻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