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 23일
제목: 부활하신 하나님의 꿈
성구: 고전15:12-2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부활하신 하나님의 꿈”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일생 중, 우리들이 꿈꾸던 희망이 마루 위에 떨어뜨린 손거울이 산산조각이 나듯, 다 깨어지고 절망의 캄캄한 터널을 통하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흐른 후에 그 깨어진 꿈이 홀연히 부활하여 현실로 나타날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하나님의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꿈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지었을 때에 하나님 가슴속에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짓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데 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우리가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어마어마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스쿠바 대학의 유전공학 전문 교수가 한 말들을 들어보니까 우리 몸 세포 하나 속에 무려 30억 개의 전구가 들어 있는데 우리는 그 유전 전구의 5% 밖에 쓰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30억 개의 유전 전구가 다 사용된다면 인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초인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세포 속에는 30억 개의 유전 전구가 다 그대로 활용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서 그 30억 개의 세포 하나 속에 넣어 준 유전 전구 중에 5% 밖에 지금 스위치 온 되어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은 엄청나게 놀랍게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게 존귀하고 능력있게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시고 에덴에 낙원을 만드시고 에덴 낙원의 주인으로 주신 것입니다. 에덴 낙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 나무나 나고 풀이나 있고 꽃이나 있고 짐승이나 있는 곳으로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낙원을 지을 때는 에덴에 대단한 궁전을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궁전을 지었습니다. 하와가 그곳에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이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거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갖가지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온 새 짐승들이 다 뛰 놀고 가지가지 향기로운 과일들이 다 났었습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께선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시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자식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민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하나님의 꿈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온 우주를 상속으로 받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장대한 꿈이 하나님의 가슴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선함과 아름다움의 극치의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꿈이 거울이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듯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오늘 둘째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마귀의 음모와 깨어진 하나님의 꿈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자식이요, 백성으로 살 때에 꼭 지켜야 될 몇 가지 사항을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동산에 모든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선악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가지고 있는 주권을 표시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권자만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지 종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종은 주인이 좋다 나쁘다 결정하는 것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녀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것을 자녀는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우리의 주인이요, 우리의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좋다 나쁘다는 절대로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종이요, 자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영원히 자녀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서 살기를 원하셨지 주권자가 되기를 원치 않은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자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자민일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할 때는 하나님은 가차없이 그를 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계획을 아담과 하와가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에덴에 와서 아담과 하와를 깬 것입니다. 에덴같이 극락의 처소에도 사람이 살면서 불평을 하려면 불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극히 아름다운 처소에서 어떻게 불평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마귀는 언제나 사람의 가슴속에 불평을 가져와서 반역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불평을 심습니다. 오늘날에도 여러분 어떠한 단체에 반역을 일으키려면 언제나 불평 분자가 생겨나서 불평을 심지 않습니까? 마귀는 바로 불평을 심는 원인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와에게 와서 정말 하나님이 동산에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벌써 불평을 심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하와가 아니다, 모든 과실을 다 먹되 중앙에는 선악을 아는 과실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니까 아니다, 네가 그 과실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 너희가 종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처럼 살고 자식처럼 살지 말고 부모처럼 살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처럼 주권 행동을 하고 살아라, 그 말에 하와의 마음속에 불평이 들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려고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느냐! 너무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우리를 가혹하게 대한다, 그런 불평이 들어오자, 곧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 주고 하나님의 계약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그가 에덴에서 쫓겨난 것은 이제는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끝없는 방황이 시작된 것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나자마자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그는 방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3절로 24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다시는 에덴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는 하와의 손을 잡고 몇 번이나 울면서 에덴 동산 근처에 가서 에덴을 바라보고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쫓겨났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아담 이후에 세대가 지날수록 사람들은 온전히 길 잃어버린 미아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온 세상에 거짓의 홍수가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사람의 사는 이유와 가치를 전혀 잃어 버렸습니다. 이러므로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과 쾌락과 탐욕을 따라 사는 것이 참인 줄 생각하고 거짓에 빠져서 살다가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 거짓의 아들 원수 마귀에 속아서 이 세상에서 진리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정치계에도 경제계에도 과학에도 윤리와 도덕 속에서도 진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곳에는 모두다 인간이 만든 형식과 의식과 거짓 밖에 없습니다. 그 끝에 들어가면 영원한 죽음과 멸망밖에 남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담과 하와는 빛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두움의 세력에 완전히 포로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어두움에 처하여 모든 부도덕한 일, 비윤리적인 것, 흉한 육체의 일들을 행하며 인간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 저희들이 알지 못합니다. 빛이 없음으로 생명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태양 빛이 비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 빛이 비추면 모든 것이 살아나듯이 하나님의 빛이 우리 인간의 생명인데 하나님의 빛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 인간 속에는 생명이 상실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간은 살았다 하나 죽었으며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생명 죽으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자유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떠나고 난 다음 죄의 종이 되고 세속의 종이 되고 질병의 종이 되고 저주의 종이 되고, 죽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무거운 종의 명에를 목에 걸머지고 인생을 수고와 고생과 눈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靈)이라”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도 그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처참한 지경에 사는 인생들이 어떻게 해서 길을 찾아내고 진리를 찾아내고 그리고 빛을 찾고 생명을 얻고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인류 역사를 통해서 정부마다 이것을 가져오려고 했으나 못했습니다. 과학자들도 이 길을 추구했으나 못했습니다. 여러 종교가 일어나서 인간의 길을 찾아 주고 진리를 갖다 주고 빛을 찾게 하고 자유를 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히 산산이 깨어진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하나님은 깨어진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땅에 33년 동안 사셨습니다. 3년 반 동안 그는 온 천하 만민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 천국을 잃어버린 아담의 자손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 동산은 지상천국이었습니다. 천국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다시 가까워 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을 갖다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친히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실 것을 이사야가 이미 예수님 오시기 600여 년 전에 이사야서 7장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요한복음 1장 14절에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나서 죄 없이 33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죄를 지은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죄의 빚을 잔득 짊어지고 저주와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대속의 제물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3세에 인생의 모든 타락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그는 십자가에 올라가서 우리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기로 자원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죄의 책임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속과 타락의 책임도 그 몸에 다 짊어지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로 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그 몸을 찢고 피를 쏟은 것은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 죄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청결케 하시고 청산해 버리시고 우리의 모든 타락과 세속의 더러운 것도 주님께서 그 피로 다 청산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가 아니고는 우리 행위로써는 죄를 벗어버릴 수도 없고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우리의 모든 부정 부패한 삶을 청산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 이 보혈을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흘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말씀한대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다 짊어지기 위해서 빌라도의 뜰에서 39번을 매를 맞아 몸이 갈기갈기 다 찢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성경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가 병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말하면 이천 년 전부터 이미 고침을 받은 사람이요, 병든 것은 마귀에서 속은 것입니다.
제가 매일같이 고난 주간 동안 싱가폴에서 싱가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만 4천명 들어가는 인도아(Indoor) 스타디움인데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한 5천명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증거하니까 그 싱가폴 사람 많은 사람들이 휠체어에 앉아 왔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휠체어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냐? 주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말씀한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우리 구주로 모시고 주님을 섬기고 살면 우리가 가난해 질 권리가 없습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의 가난함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저주를 대신 담당했으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저주를 받지 말아야 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가난 속에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가난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축복을 받고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물질을 바치고 봉사하여 온 천한 만국에 복음을 증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보내고 대성회를 이끌려고 하면 막대한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성도들이 헌금으로 드립니다. 성도들이 가난하고 저주받고 형편없이 되면 무슨 돈을 주님께 드려서 이 사업을 하겠습니까? 주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 성도들은 가난해질 권리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저주받을 권리가 없습니다. 저주와 가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물질로 섬겨야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으니 우리 속량 받은 우리들은 믿음으로 서서 단호하게 이 하나님의 축복과 권리를 주장하여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을 다 대신 짊어지고 이를 청산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 있었던 스텐리 존스가 한번은 설교하고 있는데 설교 도중에 한 사람이 갑자기 고함을 치고 변박을 했습니다. 당신은 죽은 시체가 없는 예수를 증거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있는 관이 있어서 마오메트라는 사람이 정말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데 당신은 예루살렘에 가면 빈 무덤 밖에 없으니 예수님이 정말로 살아서 역사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소?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때에 스텐리 존스는 그렇소, 바로 그것이 기독교의 다른 점이요. 우리 주님은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해서 승천했기 때문에 우리는 무덤에 예수님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마호메트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지만 우리는 예루살렘에 가도 예수님이 시체가 없어요. 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사망을 멸하시고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깨어진 하나님의 꿈을 다시 부활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꿈꾸셨던 그 아름답고 찬란한 자민의 꿈이 마귀의 계획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으로 다 깨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꿈을 다시 부활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을 멸하고 죄악을 멸하고 이 세상에 모든 탐욕을 멸하시고 주님께서 슬픔과 질병을 멸하시고 저주와 가난을 멸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에게 참 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천국, 잃어버린 에덴으로 직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바로 우리 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여러분은 바로 천국 길 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의 미아나 고아가 되지 않고 길 잃어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천국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 가슴속에는 이미 천국이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진리가 되십니다. 이 세상은 온갖 거짓을 우리가 믿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의 참 진리가 되셔서 예수님은 영원한 우리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모두 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의 죄가 다 청산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세속이 다 청산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슬픔과 질병이 청산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저주와 가난이 청산되고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과 음부가 청산되었다고 말한 것은 진리의 말인 것입니다. 참말인 것입니다. 살아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은 천국을 우리 속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인간의 약속은 다 거짓말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 가르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분의 말씀이라, 거짓이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그 말씀에 서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 개혁의 붐을 일으킨 루터는 시시때때로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여 사방이 막혀 개혁의 불꽃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암담하고 암울할 때에 그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신다 주님은 살아 계신다, 주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는 진리이다 진리이다 그는 그렇게 주님이 살아 계시고 주의 말씀만은 거짓이 없는 진리라고 외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다가오는 수많은 시험과 환난과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고 종교 개혁을 완성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에수님은 살아 계시고 예수의 말씀은 거짓이 아닌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가면 종국적으로 어두움은 사라지고 우리는 천국의 대로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빛이 되십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생명의 빛으로 섭니다. 빛이 비추이면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빛이 비취이면 윤리와 도덕이 살아납니다. 빛이 비취면 우리 마음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살아나고 희망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둠고 캄캄한 곳에 두려움과 파멸이 있지 빛이 있는 곳에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요, 빛이 비취면 생명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빛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오면서 너무 놀란 것은 바로 한 주일 전에 미얀마나 싱가폴로 향해 떠날 때는 아직까지 풀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아직 잎사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만에 나무에 잎사귀가 다 나고 풀이 파릇파릇 합니다. 너무나 놀랐습니다. 태양의 빛이 이렇게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가져오는구나 하는 것을 놀랍게 마음속에서 느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빛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생명 속에 비취면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살아나고 우리 육체 건강도 살아나고 우리 생활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자유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죄 짐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마귀의 멍에에 묶여서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왔습니다. 슬픔과 고통과 좌절 속에 허덕였습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괴로웠습니다. 압박과 설움의 무거운 멍에를 걸머지고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증거하며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길을 전파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일절 마귀의 멍에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의 나라, 새로운 에덴,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궁극적인 하나님의 꿈인 여러분 에덴 동산보다 훨씬 나은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4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가 살던 이 세상에 눈물 근심 탄식 고통 괴로움이 다 지나가고 우리 주님께서 만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만든 이 에덴 동산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천국을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에덴 동산에서 깨어진 꿈이 사람들은 정치적인 힘으로 경제적인 힘으로 과학적인 힘으로 교육을 통해서 종교를 통해서 복구해 보려고 온갖 몸부림을 쳤으나 복구하지 못한 것을 이천 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 찢고 피를 흘려 그 모든 빚을 하나님 앞에 청산하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완전히 그 꿈을 복구시키고 구원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신 그 장본인이요, 깨어진 하나님의 꿈을 부활시킨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은 유물론적인 인본주의의 거짓과 우주의 버림받은 나그네로 빛을 잃고 죄악과 죽음의 캄캄한 무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꿈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이천 년 전에 구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거짓과 죄악과 버림받음과 죽음을 다 멸하여 버리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으로 나아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의 빛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사람마다 그 영혼 속에 부활의 영광이 찬란하게 비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다시 부활해서 우리의 영혼 속에 찬란하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깨어진 꿈이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부활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이 임하시고 성령충만한 것은 하나님의 원래 꿈이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충만하고 치료와 건강이 넘치는 것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사는 것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는데 마귀가 이것을 깨뜨렸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계획을 부활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죽음이나 지옥이 없습니다. 마귀가 인간을 범죄케 하여 사망과 음부와 지옥을 끌고 왔지만 이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하나님의 원래 계획을 부활시키심으로 여러분에게는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내가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하나님의 소원과 꿈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 16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부활절에 옛사람은 이제 다 그리스도 안에서 청산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것이 된 것입니다. 새것이 된 생각을 가지십시오. 새것이 된 사람으로서 말하십시오. 새것이 된 사람으로 신념을 가지십시오. 새사람이 된 것을 여러분 주장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옛사람으로 살지 마십시오. 옛사람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옛사람의 멍에를 메고 행동하지 마십시오 왜?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옛사람을 다 청산해 버리고 주님께서 승리하여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모신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인 것입니다. 깨어진 하나님의 꿈을 다 부활시킨 그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에덴의 계획이 하나도 남김 없이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 속에 이루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주님은 오늘도 선언하고 계십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원래 우리에 대한 꿈은 너무나 좋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찬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꾐에 빠져서 하나님을 반역할 때에 하나님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 산산조각 난 꿈을 아무리 바로 고쳐 놓으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마귀의 궤계와 아담의 반역을 다 대신 짊어지고 주님께서 이 일을 갚아주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원래 계획과 꿈을 부활시켜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 부활절은 역사적 사건으로 지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죽었다 부활하셨다고 찬양을 부르고 노래만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부활되고 마귀의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정복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마귀의 계획은 정복되고 하나님의 계획은 다시 부활해서 영원한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 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때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좋은 계획이 하나도 없이 다 성취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것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