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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9일 제목: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성구: 눅8:22-2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에 서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시고 우리가 바다 건너편 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배를 부리는데 익숙한 제 자들은 곧장 배를 예비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제자들은 그만 그들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에 심취해서 예수님을 홀로 내버려두었 습니다. 날씨는 좋고 훈풍은 불고 바다는 잠잠하니 걱정거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가 바다 한 가운 데 갔을 때 갑자기 일진 광풍이 불어 왔습니다. 갈 릴리 호수라는 것은 일반 지역보다 200m나 낮습니 다. 그리고 협곡 사이에 있기 때문에 깔대기 현상 이 일어나서 물이 하늘로 치솟습니다. 순식간에 온 바닷물을 끌어서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배가 파산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이 도저히 자기 힘으로 배를 바로 잡을 수 없고 물을 퍼 낼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 왔습니다. 그때야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주무시 는 예수님을 깨워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이 주무시 다가 깨어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매 바람과 물결이 잠잠하여졌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는 제자들을 보시고 왜 두려워했느냐? 네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곧장 배는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놀라운 교훈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한 위대한 선생으로, 지도자로, 개혁가로 알았지 창조주 하나 님이라는 사실을 그 마음속에 깊이 깨닫지 못했습 니다. 예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 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쓰 고 세상에 오시기 전에 그는 아버지와 함께 창조주 로서 아버지의 뜻을 쫓아 천지와 만물을 친히 지으 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를 갖고 경영하시는 자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28장 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 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에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 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 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창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자이신 것입니다. 알파요,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 과 끝이 되심으로 우리의 태어남과 우리의 죽음의 그날까지를 모두다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 다. 사무엘상 2장 6절에서 7절에 보면 "여호와는 죽 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그 예 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우리가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 씀하셨으므로 어찌하든지 건너편으로 가는 것입니 다. 창조주의 말씀인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과 25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 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의 말씀이 주어졌는데 여러분 바람이 불고 파도 가 일고 바다가 뒤엎어진다고 해도 주님께서 건너 편으로 가자고 했으면 건너편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오늘과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 록까지 읽으면서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 인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해 서 감각을 초월해서 경험을 초월해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다고 할지라도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 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 이요, 창조주께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 은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갈릴리 호수를 건 너가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대화를 그쳤다는 그 위 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곧 메시야 왕국이 임할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얼만 안 있으 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군림하실 것이다. 로마가 정복되고 온 세계가 평정 되고 메시야 왕국이 임하고 거대한 영광이 회복될 것이라고 그들은 지레 짐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아 직 미래에 그 일을 가르쳤는데 그는 곧장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천시 당 하고 멸시 당하며 괄시받던 그들이 다 장관 한자리 씩 할 것에 너무 흥분해서 그들은 꿈에 부풀어서 예수님이 배에 탄 것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기쁨에 넘 쳐서 대화의 꽃을 피우는 중에 예수님은 말할 상대 가 없으시기 때문에 혼자 계시다가 배 뒷편에서 팔 을 베고 주무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예수님을 주무시게 하는 성도들 이 많이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고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같 이 있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가 세상일에 너무 분망해서 일락을 좋아해서 자기 인생의 목표 달성 에 심취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등한히 하 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 한 장 도 읽지 아니하고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찬양도 하지 않고 일주일 내내 세상일에 분요하고 예수님을 생활에서 잊어버립니다. 자연히 예수님께 서 인정을 받지 않고 무시당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 사람의 생 애 속에서 주무시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습니다. 바로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 그러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 6절에 보면 "일락을 좋아하는 이 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일락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수 믿고 영적으로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마음이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3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 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 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고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들처럼 예수 그리 스도와 대화를 그치고 자기의 일신상의 일들에 관 심을 집중해서 그것에만 모든 시간을 보낸다면 예 수님을 잠들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번째 오늘 말씀 드리고 싶 은 것은 호수에 내리닥친 거대한 강풍의 체험을 하 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있을 때는 풍랑이 와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고통이 다가와도 겁날 것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께 서 같이 계신데 무엇이 겁나겠습니까? 예수님보다 더 위대하고 힘있고 권능있고 크신 분이 누가 계십 니까? 그러므로 어린아이가 부모와 같이 있을 때에 는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 을 사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 를 잃어버린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은 갑자기 위험이 다가오면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 들어가는데 상식을 뛰어넘는 강풍이 다가왔습니다. 순식간에 헬몬산 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매 갈릴리 호수의 더운 바 람이 끌려 올라가서 위로 올라오고 찬바람이 밑에 내려오고 이런 대류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물이 그냥 막 뒹굴고 치솟아 오릅니다. 도저히 어부들로 서는 결코 배를 바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배의 전문가이지만 배를 바로 잡을 수가 없고 배에 물이 그대로 막 넘쳐흐르는데 순식간에 배가 가라 앉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호수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옷도 입지 않고 무덤에 있어 자기 몸을 치며 밤낮 고함을 치 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갈릴리를 건너 거라사 집에 가서 그 귀신 들린 사람을 놓아주려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는 마귀와 귀신들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어떠하든지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이 주무시는지 라 그 틈을 타서 거대한 풍랑을 일으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한꺼번에 수몰시키려고 했던 것 입니다. 여러분 이 한 사람 속에 군대 마귀가 들렸 다고 하는데 이 군대라는 용어는 당시 로마에서는 한 레기온입니다. 한 레기온이 6천명입니다. 그러므 로 한 사람 속에 6천 마리의 귀신이 들어 있었습니 다. 그러니 사람이 일대 6천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처럼 사람보다 강한 귀신이 한 사람 속에 6천 마리 나 들어 있었으니 어마어마한 귀신의 세력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귀신의 집단을 내어쫓기 위해서 갈릴리를 건너가려고 하는데 이 귀신들이 예수 그 리스도와 그 탄 배에 있는 사람들을 수몰하려고 하 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풍랑이 일어나 제자들이 자기들 힘으로는 풍랑을 헤쳐 나 가려고 하나 역부족으로 죽음에 부딪히자 그들은 무서워하게 된 것입니다. 욥기 3장 25절로 26절에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 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강도 없고 안온(安穩)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라고 한 것처럼 그들이 항 상 두려워하던 죽음의 그 무시무시한 공포가 엄습 해 왔습니다. 여러분 공포는 무서워 파괴력이 있습 니다. 인간의 힘으로 수습하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 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가족에 버림받지 않느냐 친구에게 버림받지 않느냐 집단에 게 소외되고 버림받지 않느냐 사회에서 버림받지 않느냐 이러한 버림받는 공포심이 항상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또한 실패와 낭패의 공포도 있습니 다. 우리는 내일 일을 가늠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실패하지 않겠는가? 낭패의 수렁에 빠지지 않 을까? 그런 불안과 공포가 내려지고 또 명예를 잃 어버릴 공포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명예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 명예를 잃어버리고 수 치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병의 공포도 있지요, 건강을 잃어버리고 질병이 들려 드러누우면 만사가 다 끝이 나는 것입니다. 무병 10년에 못살 집이 없다고 병들이 10년만 누워 있으면 가산이 파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 의 공포도 있습니다. 가난의 공포도 있지요. 헐벗고 굶주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저는 아프리카 대륙에 가서 헐벗고 굶주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얼마 나 고통을 당하는지 우리로서는 상상을 할 수가 없 습니다. 헐벗음과 굶주림의 공포가 있습니다. 또한 원수에게 공격당하는 공포가 있습니다. 원수가 자 기보다 강해서 자기를 처서 넘어뜨릴까 싶은 그런 공포도 늘 있지요. 우리는 해방 이후로 지금까지 북한이 혹시 우리를 침공해 오지 않을까 6.25를 당 한 그 체험 때문에 늘 공포 가운데 있었습니다. 지 금 남북이 대화의 문을 열고 서로 대화와 타협과 화해를 가져옴으로 우리 국민 전체가 흥분 속에 있 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인 것입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가 있습니다. 사람은 한번 나서 다 죽지요. 그 러나 남의 죽음은 눈에 보면서 나의 죽음은 아직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차로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는 신속히 다가와서 모든 사람이 죽음 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는 죽음 의 공포가 있습니다. 공포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 로 인간을 무시무시하게 파괴합니다. 공포에 잡힌 사람은 모든 것이 마비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풍랑을 당하여 자존심 으로 해결할 수가 없으므로 공포에 휘말려 들어가 서 사고가 마비되고 수족이 다 마비되는 현상에 처 했습니다. 그들은 좌절과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 아 비규환의 고통으로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이 이야기에서 배워야 될 것은 가장 절 망에 처할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좋 을 때는 예수를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으라 예수 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 큰 소리 하는 사람도 여러분 고통 당하고 좌절에 처하고 자 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낮에는 무신론자였으 나 밤에는 대개 반쯤은 유신론자가 된다고 말했습 니다. 사람들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자기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그러한 막다른 골 목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 에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영원을 사모하는 영혼이 있 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로소 풍랑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풍랑이 다가오면 예수님을 찾게 됩니 다. 평소 주일날 교회 안 나오고 새벽 기도도 안하 고 철야는 더욱 안하고 금식 기도는 어림도 없다는 사람들도 심한 풍랑을 당하면 새벽기도도 잘 나오 고 철야도 잘하고 금식도 하고 목이 쉬어 목이 컬 컬하게 될 때까지 부르짖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 할 때에 주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이 예수님을 찾아보니 예수님은 그 뒷편에서 팔베 개를 하고 주무십니다. 절대 안심과 평안했습니다. 그렇게 천지가 뒤엎어지는 것 같고 바람이 진동치 는 듯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편안히 주무십니 다. 왜? 그것은 천지의 절대 주권자의 모습인 것입 니다. 주권자가 어떱니까? 예수님 말 한마디에 하 늘이 있고도 없어지고, 바다가 있다가도 없어져 버 리는데 절대 주권자는 자신 만만하기 때문에 두려 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풍랑 가운데 편안히 주무시는 것을 보십시오. 이를 어찌하나 큰일 났구 나 빨리 물을 퍼내라! 얘들아 헤엄칠 준비를 해라, 얘들아 빨리 수영복을 입으라 그리고 특별한 장비 를 몸에 차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쿨쿨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가 큰 위로를 얻습니다. 왜? 예수님은 천지와 만물 을 다스리는 절대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황할 필요가 없습 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 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가 뒤 엎어지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물에 떠서 그냥 건너 갈 것입니다. 겁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절대 주권자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절대 주권자의 안심과 평 안을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풍랑을 당할 때에 우리가 누구를 볼 것인가 이것이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풍랑만 바라보고 있을 때 는 불안과 공포로 얼어붙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자 들이 풍랑만 바라보았을 때는 그들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왜? 그들의 힘으로는 그 바람 과 파도를 이결낼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 보십시오.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바람 을 보고 무서워 했을 때에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 다. 그때 예수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 느냐고 꾸짖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 아야 합니까?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예수님 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좀 늦었지만 제자들은 풍랑을 바라보고 두려워하고 불안과 공포 에 떨다가 예수님을 잠에서 깨웠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 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 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는데 먼저 예수님과 대화 를 하고 예수님을 깨워보아야 되었을 것인데 그렇 다면 풍랑도 오지 않았을 것인데 그들이 자기의 관 심사에 집중하고 예수님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풍 랑을 다하고 난 다음에야 예수님을 깨우고 예수님 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주권자이시므로 일어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 으시매 즉시 잠잠하여졌습니다. 바람과 물결이 무 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예수 님의 명령 한마디에 움직이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 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절대 주권자로서의 주 권적 행위를 하신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가 여기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예 수님의 질문입니다.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잠잠하 고 제자들은 온 몸에 물을 뒤짚어써서 물에 빠진 쥐새끼처럼 되어 있습니다. 물을 주르륵 흐르고 그 들은 비로소 안심을 하고 예수님을 쳐다봅니다. 이 제는 자기들 개인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장차 장관 될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오 직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무서워하였 느냐 왜 풍랑의 위험만 바라보았냐는 것입니다. 너 는 누구하고 같이 있는데 왜 풍랑만 바라보고 무서 워했느냐! 왜 거대한 위력을 너희 힘으로 수습하려 고 했느냐 역부족했기 때문에 절망에 처해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 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 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네가 나를 사랑했으면 두 려워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 오늘날 우리가 믿고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으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 니다. 왜? 천지의 주인이신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 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보다 돈을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지혜와 명예를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에 두려움을 당했지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중 심으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살았으면 그리스도가 같이 계신데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습 니까?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서 이길만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 나 권세자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능력이나 이 세상 아무 피조물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가 없다고 성경 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의사를 찾아온 만성 환자 90%가 공통적인 증상은 늘 기침이 납니다. 가슴앓이가 있 습니다. 위산과다가 있습니다. 몸 전신이 쑤십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미국 정신 신체 의학 세미나에서 저명한 내과 의사가 발표한 것을 보면 이 모든 증 상은 그 병을 두려워하는 데에서 시작했다는 것입 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인 데 내가 위암이 걸리지 않을까? 폐암이 걸리지 않 을까?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왜 무서워하느냐 질 문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같이 계시면 무서워 안 할 것인데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 입니다. 부모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는 두려워하지 않지만 부모를 떠나 혼자 산길을 걸어가면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둔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성령충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 이 물으신 질문은 너희 믿음이 어디에 있느냐 그렇 게 물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 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 라"고 했는데 여러분 각 사람이 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 믿음 을 어디에 두었습니까? 여러분 사람들은 돈을 믿고 지위를 믿고 권세를 믿고 명예를 믿고 청춘을 믿고 주먹을 믿지만 그런 것은 순식간에 다 사라집니다. 너희 믿음을 어디에 두었느냐? 믿음은 여러분 교회 에 두고서 떠나가도 안되고 집 금고에 넣어두어도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믿음을 주님께 두어 야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창조자 지배자 운영자 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그 주님께 믿음을 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믿음을 두어야 합니다. 시편 121편 1절로 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 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내가 산을 바라보지 말고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이제 태산 처럼 믿는 사람이나 물질이나 권력이나 형편이 태 산 같아도 이들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천지를 지으 신 여호와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호와 우리 아버 지 하나님과 여호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있고 그 분의 말씀을 이미 들었는데 우리가 왜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 하셨으면 그 말씀을 믿어야지 물결을 바라보고 두 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끝까 지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은 우리가 이 세상 을 살아가는 동안에 크고 작은 풍랑은 항상 다가옵 니다. 풍랑 없는 세상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인생 은 고해라고 하지 않습니까? 고통의 바다인 것입니 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에 올라간 사람들의 앞 에는 유리 바다에 있습니다. 유리 바다는 풍랑이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 풍랑이 다 끝났다는 그 말 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 모든 면에 크고 작은 풍랑 이 하루도 쉬지 않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와 만물과 개인의 생사화복의 주권은 마귀나 풍랑이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 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쥐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과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람은 마귀나 풍랑에 휩쓸 려 가지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님을 믿고 의 지하는 사람에게는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과 예수님 이 쥐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두 려워할 것은 공포심 뿐이요, 가장 두려운 것은 목 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것이 두렵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은 우리의 일생이 하 나님의 손에 이미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우리의 시작이요, 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 자가 되시니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 리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떠한 환경과 역경에서도 같이하여서 돌본다는 것 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관심의 초점으 로 삼고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 기도로 맡기고 예수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 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 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 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搖動)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감당치 못한 일을 내 힘으로 수습하려고 할 때 공 포에 빠지기 때문에 내 힘으로 수습하지 못할 일을 내가 걸머지고 바둥거리지 말고 주님께 내어 맡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 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시요, 소망이시요, 사랑이신 것입니 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 에 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 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 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 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 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운명을 환경의 위협이나 압력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 의지할 때에 하나 님이 돌보시며 책임져 주셔서 여러분과 내가 평안 한 저 천국에 도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의 인생의 배 에는 크고 작은 풍랑이 늘 다가옵니다. 예수님이 우리 뱃속에 함께 타고 있으면 어떠한 풍랑도 이겨 나갈 수 있지만 예수님이 없는 믿지 않는 사람은 파산도 하고 예수님을 잠재워 놓은 사람은 물을 잔 득 덮어쓰고 큰 시련과 환난을 당하고 난 다음에야 주님을 찾아 나오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여, 우리는 이 고해를 인생의 배를 타고 건너갈 때 에 항상 예수님 중심으로 살게 도와주시고 우리의 관심의 초점을 예수님께 두도록 도와 주시옵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 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 어도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기 때문에 주의 말씀 에 서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 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보헤사 성령으로 우리 모든 성도들을 잠에서 깨워 일으켜 주시옵시고 세 상 잠에서 깨어나서 예수 중심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 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