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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8일 제목: 예배해 놓으신 은혜 성구: 고후6:1-2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비해 놓으신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밥상은 어머니가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얘들아 와서 밥 먹어라 하면 가서 먹는 것은 자녀들이 직접 해야만 합니다. 에덴 동산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지만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지키고 가꾸라고 아담에게 명령했으므로 지키고 가꾸는 일은 아담이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만 들어가서 점령하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아무리 은혜를 예비해 놓으셨어도 우리가 그 은혜를 알지도 못하고 게을러서 가서 취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감나무에 감이 아무리 익어 있더라도 그것을 취해야지 그것이 자연적으로 와서 입에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면 그는 감은 먹지 못할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해 놓으신 그 진실을 알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엄청난 은혜를 예비해 놓았지만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모릅니다. 모르니 취할 수가 없지요. 6.25사변 때에 빈대, 벼룩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빈대, 벼룩 때문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미군부대에는 D.D.T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때는 D.D.T를 치면은 이와 벼룩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이웃 아저씨에게 우리가 청원을 했습니다. D.D.T를 좀 갔다 주세요. 그러면 머리나 몸에나 이와 벼룩이나 빈대를 좀 죽이게 할 수 있을 테니깐... 그 분이 하는 말이 내가 영어를 하나도 모릅니다. D.D.T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있어야죠. 아저씨 미군 부대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한마디로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ABCD를 좀 배우라고 그래서 ABCDEFG를 적어서 주었습니다. 밤새도록 ABCEDFGHIJKLMNOPQRSTUVWXYZ라고 외웠습니다. 그런데 미군부대에 가서 앉아 쉬기도 하고 기대서 하기도 했는데 깡통에 있는 글이 있어서 ABCD를 내가 외웠기 때문에 한번 읽어 봐야 되겠다고 읽어보니깐 D.D.T거든요. D.D.T아니냐 내버려 놓은 깡통 그 드럼에 D.D.T라고 써 있어서 보니깐 D.D.T 흰 가루가 반쯤 차 있거든요. 얼씨구나 좋다하고 그것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와서 우리가 그 D.D.T를 받아 가지고서 머리에도 뿌리고 옷에도 집어넣고 방 온 전체에 넣어서 빈대, 벼룩, 이를 몰살시킨 적이 있습니다. D.D.T도 알아야 가져옵니다. 모르면 아무리 주변에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했는데 새 것이 된 놀라운 은총을 주님이 우릴 위해서 예비해 놓았었으니 옛날 것만 알고 새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취하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넣는다고 주님께서 새로운 삶, 새로운 축복, 새로운 생활을 예비해 놓았었으나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진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면은 우리 생각 속에 옛날 누더기 옷을 다 벗어 제켜 버리고 머리 속에 새로운 지식으로 옷 입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마음이 구속의 은혜로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입니다. 이 마음이 그릇이 예비되어 있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룩해 주신 그 은혜의 지식을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죄에서 용서받고 의롭게 되었다는 지식으로 채워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마귀와 세상이 쫓겨 나가고 성령과 천국이 와 계신다는 그 지식으로 채워 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스트레스와 슬픔과 마음의 괴로움은 사라지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허락하시며 제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는 치료의 지식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그리스도의 은총과 축복을 받아 형통과 복을 받은 사람이란 생각으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의 누더기 옷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천국과 영생을 내게 주었다는 그 새 마음을 입어야 합니다. 옛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도록 만들었다는 그 생각을 덧입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생각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러합니다. 생각이 옛사람 그대로 낡고 지치고 쓰러지고 냄새나는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면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낡은 부대에 새 술을 담지 않습니다. 낡은 옷에 새 베 조각을 주님께서 깁지 않습니다. 새 베 조각은 새 옷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넣기 때문에 마음이 열어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통하여서 완전히 새로워져서 새 옷이 되고 새 부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으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주님께서 우릴 위해서 무엇을 예비했는가 그 지식으로 옷 입어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은 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마음에 새롭게 옷 입고 무장하고 생각이 변화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둘째로 우리는 소원과 꿈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소원이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지 않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있어야 되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예수님 앞에 나가서 은혜 받고자 하는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은 열두 정탐꾼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40주 40야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그 열 사람의 보고를 보면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 소원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고 그곳에 있는 성벽을 높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라 우리가 보기에도 스스로 메뚜기 같더라 우리는 들어가서 점령 못한다. 들어가기를 소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소원했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 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 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소원이 없으니깐 소원이 없는 그 열 명은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죽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소원이 없는 백성들은 광야로 회진시켜 40년을 방황하면서 소멸되게 하고 오직 들어가기를 소원한 여호수아와 갈렙과 그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동네를 지나시는데 전신에 문둥병이 걸린 사람이 뛰어 나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했습니다. 여러분 옛날에는 문둥병인 자가 보통 사람에게 나오다가는 돌로 맞아 죽습니다. 보통 사람이 오면은 외쳐야 합니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가까이 오지 마라. 그런데 그런 말도 안하고 그냥 보통 사람에게 문둥병자가 오면 목숨을 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신문둥이가 걸린 사람이 예수님과 제자들 앞에 뛰어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어서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있나이다. 그 간절한 소원을 주님께서 보시고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진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냥 깨끗해 진 것이 아닙니다. 문둥병이 낳기를 간절히 소원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5장 27절로 28절에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들어와 수도원에 휴가를 갔는데 예수님 뒤에 따라오면서 내 딸이 흉하게 귀신 들여 싸오니 내 딸을 고쳐주옵소서.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여잡고 내 딸들을 고쳐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주님 좀 고쳐서 돌려서 보내시지요. 예수님이 나는 이스라엘의 잃은 양 이외에는 보냄을 받지 않았다. 단호히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예수님 가는 앞에서 길을 막고 엎드려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자녀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주지 아니한다. 주여 옳소이다만은 개들도 밥상 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으니 제가 개라하고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그때 예수님이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신 것입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소원을 보십시오. 그가 뜨거운 마음에 소원과 간구가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주님이 지나가는 기회를 놓지 않겠다고 끝까지 따라 붙은 것입니다. 소원이 있어서 그는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무리 은혜를 예비해 놓았어도 은혜를 받겠다는 뜨거운 소원이 있어 가지고서 주일예배 참여하고 삼일예배참석하고, 구역예배 참석하고, 새벽기도회와서 부르짖고 철야에 와서 부르짖고 더 간절한 소원이 있으면 기도원에 들어가서 금식하며 부르짖으면 반드시 주님이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에 뜨거운 소원도 없이 그냥 오다가다 우연히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겠지. 그런 값싼 은혜를 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셨지만은 예비한 것을 얻고자 하는 뜨거운 소원이 없이는 하나님이 예비한 것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과 함께 여러분 마음속에 뜨거운 꿈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꿈은 내일의 청산입니다. 내가 내일 어떻게 될 것인가는 오늘 마음속에 어떤 꿈을 가졌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꿈이 없으면 내일에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십자를 바라보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꿈을 가질 때에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합니다. 아까 간증 보셨지요.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을 다쳐가지고 목뼈에 관절염이 생겨서 온갖 치료를 다 받고 온갖 물리치료를 받아도 낳지 않아 몸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 설교를 듣고 있는 중에 그 자신을 십자가에 뒤에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음 받은 자기의 밝은 청사진 꿈을 보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낳았구나 그 믿음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기도를 받으니깐 즉시로 낳아 버린 것입니다. 1977년도에 오스트리아에 갔습니다. 오스트리아 기독교 역사의 그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1977년 오스트리아 멜본에 가서 하나님의 성회 교역자 세미나를 인도했는데 일주일 내내 세미나를 해도 얼마나 얼음장 같이 찬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지도층이 나를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부흥은 미국에 있을 수 있고 한국에 있을 수 있지만은 오스트리아에는 부흥의 역사를 일어 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떠나오기 전에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무 일도 하기 싫거들랑 꿈이라도 새롭게 가지십시오. 내 마음속에 오늘 있는 청사진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와서 여러분 교회가 3년에서 5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을 꿈으로 기록을 해 보십시오. 3백명 5백명 혹은 2천명, 5천명 꿈이라도 꾸십시오. 꿈이라도 꾸지 아니하면 내일이 없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기 때문에 그러니 그들이 와 웃으면서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와서 꿈을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을 모두다 교회 사무실에 붙여 놓고 들어가며 나가며 꿈의 청사진을 바라보고 나는 내일에 저렇게 될 것이라고 기도하고 믿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로 1977년 이후에 오스트리아 하나님의 성회를 위시한 교회가 일대 개혁이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10년 내에 교회가 전혀 자라지 않던 교회가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자라서 2년만에 제가 갔을 때는 모든 교회가 100%이상 자랐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오스트리아에 가니깐 목사님들이 다 와서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오스트리아교회 역사를 바꾼 것이 1977년 조목사가 세미나를 했을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오스트리라 기독교 역사에 큰 변혁을 선이 그날 그어졌다고 역사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일한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아멘도 안하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꿈을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꿈은 내일에 청사진이니깐 마음속에 청사진이 없으면 내일을 어떻게 만들겠느냐! 꿈을 가져라, 구체적으로 꿈을 기록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체적으로 꿈을 기록한 결과에 위대한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마음의 갤러리에 꿈의 그림을 그려 붙이십시오. 여러분 조그마한 미술 전시회 갤러리에 가면 많은 미술 작품이 벽에 걸려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슴의 갤러리에 여러분의 작품을 걸어 놓으십시오. 용서받고 의롭게 된 작품을 걸어 놓으십시오. 성령 충만 천국 충만한 그 그림을 붙여 놓으십시오. 기쁨이 충만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충만하고 치료가 충만한 여러분의 모습을 그 갤러리에 걸어 놓으십시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축복하사 저주에서 해방되고 형통과 축복 받은 여러분의 모습을 그 갤러리에 붙여 놓으십시오. 또 여러분이 부활해서 천국가서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 없는 신천신지 무궁 세계에서 변화 받은 모습으로 그리스도와 영원히 사는 모습을 마음의 갤러리에 여러분 붙여 놓으십시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고 했는데 바로 그 꿈과 환상을 보고 생각이 달라지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소원과 꿈이 있어야 하나님이 예비한 은총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기도하고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祈禱)하고 구(求)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도는 마치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등산의 체험과 같습니다. 처음에 배낭을 걸머지고 구두끈을 묶고 지팡이를 들고 등산을 할 때는 아주 의기 양양하고 기운차게 올라갑니다. 그러나 중간쯤 가면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올라가면 이제는 견디기가 힘들어서 그만 주저앉아 버립니다. 아에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 산꼭대기까지 못 올라가겠다. 그러나 거기에서 최후까지 견디고 견디면 나중에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든 무거운 짐이 벗어지고 고통이 사라지고 숨이 탁 트이고 온 주변의 환경이 환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승리에 걸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꼭 등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일 처음 기도할 때는 각오와 결심을 하고 내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서 이놈의 귀신과 이놈의 어려운 문제를 다 박살을 내겠다고 그렇게 기도하다가 얼마 동안 기도하다가 빨리 응답이 안 오니깐 힘들다하고 그 다음 좀 더 하다가 안되면 그만 집어 치워버릴까 그러나 참자 나중에는 주여 어찌하오리까 왜 빨리 응답을 안 주시나이까 너무너무 힘이 들어 이제는 더 견디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으면 어느 날 순식간에 마음에 짐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안과 확신이 넘쳐나고 할렐루야가 입에 넘쳐나며 응답받아 하나님의 꿈과 환상이 마음속에 확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러므로 기도하고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여러분이 자기 감정이나 감각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감각은 하루에도 수없이 변합니다. 그러므로 감정이나 감각을 의지하면 여러분 청춘이 없습니다. 아모스 5장 4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찾아야지 내 감정이나 내 감각을 따르면 안되고 또 환경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면 안됩니다. 좋을 때도 있고 우군이 많을 때도 있고 원수가 많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는데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지 하나님과 말씀을 떠나서 우리의 감각이나 우리의 감정이나 우리의 환경을 바라보는 것은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서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전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을 행하시고 우리의 짐을 짊어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소하셨으면 그 말씀에 서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 일획도 변치 않습니다. 그 말씀에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내 운명을 내어 던져 버린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여러분께서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예비한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입술의 고백과 감사가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뭘 고백합니까?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부를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기도하고 믿는 것까지 눈에는 안 보이고 귀에는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입으로 시인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천지를 짓지 않았습니까? 빛이 있으라 빛이 생겼고, 궁창이 생겨나라 하니 궁창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죄를 말씀으로 용서했습니다. 네 죄가 사함을 받았나이다. 병자보고 너는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갈릴리 풍랑 이는 바다를 향하여 바다야 잠잠하라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적인 능력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마음속에 믿음을 말씀을 통하여 선포할 때에 믿음의 역사는 말씀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말씀을 하지 아니하면 아무리 마음속에 믿음이 있어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부정적이고 패배적이 되면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이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생명으로 넘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처럼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렇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말씀을 시인해야 되요. 성경에는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매고 풉니까? 말씀으로 매고 푸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내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씀으로 묶으면 하늘에서도 따라서 묶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낭패와 실망과 패배로 다 풀어 제켜 버리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언은 메아리와 같습니다. 우리가 말을 해야 산울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묶어야 하늘에서 묶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풀어 버리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십자가를 통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창조적이고 성공적인 말을 여러분께서 선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와 동시에 여러분은 감사를 넘치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끝에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향기를 맞으시고 아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꽃 화단을 지나갈 때에 꽃에서 가지가지 향기가 날 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즐겁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우리의 기도와 믿음과 행위에 감사를 드려서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가 믿음의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도 하는 사람은 믿음에 힘을 주기 위해서 믿음이라는 나무에 비료를 주기 위해서 감사를 해야 합니다. 감사라는 믿음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약해져서 아무리 믿었다가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해 보십시오. 순식간에 믿음은 얼음 녹듯이 녹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이 약해도 그 믿음을 가지고 감사를 넘치게 하면 순식간에 믿음이 힘을 얻어서 보약을 먹고 크게 강해지게 세우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는 항상 부정적이 되어요, 긍정적이 안돼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믿고 나와도 밖에 나오면 감각적이고 감정적이고 환경에 취해서 부정적으로 됩니다. 그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잡아 놓을 수 있는 길을 감사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것을 믿고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올 때는 자꾸 하나님께 긍정적으로 감사를 드리며 부정적인 세력이 쫓겨나고 마는 것입니다. 감사가 마음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만듭니다. 감사 없이는 마음이 긍정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흑암을 ㅤㅉㅗㅈ아내는 가장 큰 힘이 감사입니다. 캄캄한 밤에 전등불을 켜면 밝아지면서 흑암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감사는 캄캄한 밤에 전등불 켜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이 아무리 캄캄해도 밤에 한 노래를 부르고 감사를 하면은 마음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마귀는 언제나 와서 원망과 불평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감사와 찬송은 마귀가 있을 곳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와 계시는 여호와여 여호와는 거룩하나이다. 하나님은 찬송과 감사를 보좌 삼고 오시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은 마귀를 초청하는 초청장입니다. 그러나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이 임하시는 보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흑암의 세력을 ㅤㅉㅗㅈ는데는 감사의 힘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희망의 꽃을 피우는 나무인 것입니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살죠,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누가 희망을 가져옵니까? 어둡고 캄캄한 곳에도 감사를 하면은 감사가 희망의 꽃을 피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 감사를 하고 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엄청난 은혜와 복을 우리에게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찰로 그 은혜의 복을 놓쳐서는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은혜를 우리가 반드시 말씀으로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은혜를 받겠다는 뜨거운 소원과 찬란한 마음에 청사진인 꿈을 가져야 되고 그 다음 소원과 꿈이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고백과 감사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예비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은혜를 다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 신앙 생활에 젖과 꿀이 흐르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차려 놓은 밥상도 내가 가서 먹지 않고 드러누워 있으면 밥상은 그대로 두고 굶어 죽습니다. 차리는 것은 부모가 차려주지만 먹는 것은 자기가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로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예비해 놓았지만은 이 예비한 은혜를 우리가 받아 취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진리를 알고 우리가 은혜를 누리겠다는 그러한 소원과 꿈을 가지고 그 소원과 꿈을 이루도록 기도하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감사하면 나가면 우리 하나님이 예비한 밥상 위에 모든 밥을 다 먹고 여러분께서 생명이 넘치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크나큰 은혜와 축복을 우리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 압니다만 오늘날 이 밥상에서 먹고 큰 복을 받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원하여 기도하오니 우리가 모두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이룩하신 이 축복을 이 땅에 있을 동안에 다 100% 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축복으로 넘침을 받아 남에게 주고 또 나눠주고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옛사람이 옛 누더기 옷을 입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어리석은 사람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옛사람은 그 저주와 가난과 함께 다 벗어 던져 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도와 주시옵소서. 새 사람으로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