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29일
제목: 종의 사고방식과 자유인의 사고방식
성구: 갈5: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종의 사고방식과 자유
인의 사고방식"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
니다.

우리들의 삶의 모든 것이 우리들의 생각에서 나
온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류문화
는 그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각의 집
대성한 것입니다.
우수한 민족은 우수한 생각을 가진 민족이요, 미
개한 민족은 미개한 생각을 가진 민족입니다.
성경에는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
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한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말하
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
까? 다른 것 아닌 생각 아닙니까? 올바른 생각은
성공과 복과 생명을 가져오지만 잘못된 생각은 실
패와 화와 사망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을 이
해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사고방식을 한
번 관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0년 동안 애굽 바로 왕의 노예 생활을 함으로 그
들은 종의 사고방식, 종의 멘탈리티로 마음이 꽉
들어차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종의
사고방식을 벗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종의 사고방
식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반항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언제든지 자기들을 다
스리는 국가에 대해서 또 왕의 대해서 반항하고 적
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거역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
습니다. 그것은 피지배를 당하는 사람들이 지배하
는 대상에 대해서 가지는 당연한 생각이겠죠. 모든
일에 적대감정을 가지고 그리고 거역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눈가림만 하고
사는 사공방식인 것입니다. 왜? 내가 아무리 일해
봤자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주인을 위해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성실하고 근면하고 충성스럽게
일할 리가 없습니다. 적당히 눈가림만 하는 것입니
다. 요사이 공산주의 사회가 그렇지 않습니까? 온
국민을 동원해서 천리마 운동이니, 무슨 고지 점령
이니, 하고 깃발을 휘날리면서 나가지만 실제는 일
하느냐 일 안 합니다. 왜? 아무리 일해 봤자 자기
들이 소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눈가림만 하는 것입
니다. 소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눈가림만 하는 것
입니다. 종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성실, 근면, 충
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종의 사고방식은 부정적인 사고방식입니
다. 모든 것을 삐뚤어지게 봅니다. 아무리 주인이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을 삐뚤어지게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바로 왕의 지배에 있었기
때문에 애굽 바로 왕이 무슨 말을 해도 삐뚤어지게
봅니다. 그것을 올바르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
나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서 저렇게 거짓말을 한다
고 그렇게 삐뚤어지게 보는데 습관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의 사고방식은 비관적인 사고방식입니
다. 언제나 패배주의적인 사고를 합니다. 왜? 희망
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배를 받고 종으로 사는 생
활에 내일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자손들이 자라
나도 또 종으로 살 것입니다. 이러므로 비관적이고
희망이 없는 그런 것이 종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의 사고방식은 절망적인 사고방
식인 것입니다. 희망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될 때로
대라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 종의 사고방식을 가진 채로 그들은 모세를 따
라서 해방되어 나왔습니다. 몸은 해방이 되었으나
마음은 종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섬기고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따
라 나왔지만 애굽의 바로 왕이 종살이하던 그 사고
방식을 버리고 못하고 그대로 나왔습니다. 몸은 해
방되었지만 종의 사고방식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
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모세
의 지도력에 반항했습니다. 바로 왕에게 반항하던
그 마음은 이제 독립이 되어서 해방되어 나왔으니
그들의 지도에 순복을 해야 하는데 종의 사고방식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바로에게 적대시하고 반항하
듯이 모세의 지도력에 끊임없이 반항했습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족장 250명과 더불어서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너만 지도자냐? 너만 하나님아 같이 계시냐? 우리
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않느냐?' 모세의 지도력
에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고함에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땅이
갈라져서 온 가족이 산채로 빠져서 죽었습니다. 그
리고 250인은 분양을 하는데 하나님이 불이 나와서
다 태워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당을 짓
고 원망한 백성들은 염병으로 그날 1만4천7백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모세
의 지도력에 저항하고 반항하다가 이와 같은 비극
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종이 사고방식을 그
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바로
와 같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충성, 성실, 근면하지 않았아
요?
시편 78편 40절로 41절에 보면은 "저희가 광야에
서 그를 반항(反抗)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고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激動) 하였도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의 사고방식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
고 늘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요.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해도 우리를 이용하려고
한다. 우리를 해롭게 하려고 한다. 이렇게 삐뚤어지
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장 32절에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 하였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
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들
은 하나님을 따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늘 생활을
비관을 했습니다. 광야를 데리고 나와서 우리를 죽
이려고 하느냐 그래서 홍해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
하고 마라의 쓴 연못 앞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냐
고 원망하고 신 광야에서 원망하고 르비딤에서 하
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에돔을 돌아 행할 때도 하나
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21장 5절에 보면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
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
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
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늘 비관적입니다. 낙관적으
로 미래를 보지 않고 언제나 비관적으로 보고 원망
불평 탄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나안의 꿈
과 희망은 갖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존재였습니
다.
시편 106편 24절에 보면 "저희가 낙토(樂土)를 멸
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비관적인 존재였습니다. 종의 사고방식의
극치가 바로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났습니다. 모
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택하여 가
나안 땅으로 40주 40야 정탐을 하고 와서 보고하라
고 했는데 열 정탐꾼이 와서 보고하고 그 보고를
들은 태도를 보면 완전히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유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몸은
자유롭게 되었는데 마음은 완전히 종의 사고방식으
로 묶인 것입니다. 열 정탐꾼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젖과 꿀이 흐
르는 땅이라고 하나님은 말했는데 열 정탐꾼이 말
하기를 아니라 우리가 가서 본 땅은 주님을 삼키는
광막한 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
은 비관했습니다. 가보니깐 산은 높고 아낙 자손
대장부가 살고 있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
기같이 보입니다. 세상에 자기자신을 메뚜기로 보
는 그런 비관적인 관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메뚜기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에 가서 살
수가 있나요? 비관적인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
다. 그리고 그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꿈과 희망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처자가 다 포로
가 되던지 죽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들어가면 우
리는 죽고 처자들은 포로가 되고 우리는 절단 날
것이다. 희망을 저버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
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다른 지
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 완전히 종의 사고
방식에 묶여서 종으로 생각하는 그대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의 사고방식을 가진 백성을
하나님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열
정탐꾼을 죽였습니다.
민수기 14장 36절로 38절에 보면은 "모세의 보냄
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 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
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
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
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들은 광야를 돌이켜 40년 방황케 하여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멸망 받게 했습니다. 종의 사
고방식을 가지고는 하나님과 결코 동행할 수가 없
습니다.
민수기 14장 34절에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數)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
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다 소멸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만 그렇습니까? 아
담이 후손과 오늘 우리들은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
고 있지 않습니까? 아담이 타락하고 마귀의 종이
된 후 그 후손들이 인간들은 오랜 세월동안 세상과
마귀의 종으로 살면서 종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졌습
니다. 가장 비극은 오늘날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
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할 것 없거니와 심지어
예수 믿는 사람까지도 몸은 자유하나 마음은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혼란합니까? 우리에 대해서 부정하고 부
패하고 늘 정치적으로 싸워 사회적으로 혼란한 이
유는 36년 동안 일본에 종살이했는데 일본에 종살
이 할 동안 일본 정권과 군국주의에 저항하던 그
종의 사고방식을 오늘날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몸은 해방된지 이미 반세기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은 종의 사고방식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자유인
이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에 오늘날 이런
혼란이 있는 것입니다. 종의 사고방식은 권위에 대
한 반항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바로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항했지요.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나
왔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들은 모세에 대해서 반항
했지요. 오늘날 우리 한국 민족도 그렇지 않습니
까? 한국민족도 권위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입니다.
한국에 누가 되든 대통령 해 먹고 힘들어요. 왜?
권위에 대한 어마어마한 반항을 합니다. 국민 전체
속에 반항심이 꽉 들어차서 우후죽순처럼 일어 나
는 것이 시민 단체입니다. 시민 단체는 시민도 없
으면서 몇 사람 모아놓고 시민 단체만 만들면 피켓
을 들고 그냥 반항합니다. 그러니 누가 들어와도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수가 없어요. 너무나 반항심
이 셉니다. 이 종의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자기들
생각에는 자유의 사고방식이라고 하지만 자유인의
사고방식은 저항과 반항을 위주로 하지 않습니다.
권위에 대한 반항심은 바로 타락한 아담 자손들의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
사에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입니다. 종은 언제나
부정적입니다. 종이 긍정적으로 생활하지 않습니
까? 언제나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죽는다 이
렇게 부정적으로 모든 것을 보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민족 만큼 부정적인 민족이 없습니
다. 아에 요사이 신문을 보기가 싫습니다. 전 페이
지가 부정적인 이야기로 칠을 해 놓았습니다. 국민
들이 그 신문 기사를 보면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
습니다. 긍정적인 면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고 부
정적인 면만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종의 사고방
식입니다.
그리고 종의 사고방식은 범사에 낙관적이기보다
도 비관적입니다. 모든 것을 비관합니다. 이제는 우
리는 망한다, 우리는 못 살게 된다, 우리는 절단 났
다, 늘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무슨 사건을 보더라도
안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보지 될 것이라고 낙관
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비관적으로 봐서 그냥 팔짱
을 끼고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
의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게 말했는
데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그냥 팔짱끼고 뒤로 앉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사고방식 아닙니까? 그리고
꿈과 희망보다는 패배나 낙망적입니다. 앞으로 꿈
과 희망을 가지고 현실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용기
를 가져봤자 그냥 패배주의로 낙망하고 맙니다. 종
의 사고방식은 믿음보다도 불안 공포를 가지고 있
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믿습니다. 나가지 아니하고
불안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습니다. 종의 사고방식
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다가 죽어 버
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광야, 혹은 생
활에 광야에서 오는 반항인 것은 그들의 마음이 종
의 사고방식에 묶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은
자유하나 마음이 자유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
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
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 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몸은 자유케 되었는데 마음이 종의 멍에를 메고 종
과 같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광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광야에서 살고 생활이 광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인의 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종의 사
고방식에서 자유인의 사고방식을 갖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말
합니까? 우리가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넘치도록 얻는다고 했는데 우리의 생각이 종의 생
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주님이 하실 수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는데 생각
이 종의 사고방식을 가졌으니 생활이 종 생활 밖에
더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여
러분 우리의 종의 사고방식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종의 멍에에서 자유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오랜 세월동안 마귀와 세상
의 종살이하다가 보니 인간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종의 사고방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종의 사
고방식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십자가
를 걸머지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의 종의
사고방식의 옷을 벗기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입히
기 위해서 주님이 고난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죄의 종이 되어서 죄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우
리 사람들은 늘 말하기를 우리는 별 도리 없다. 죄
를 짓지 않고 살수가 없고 우리는 죄의 종이다, 그
리고 죄인이다. 그러므로 작은 죄를 지으나 큰 죄
를 지으나 똑같으니 죄 가운데 살자 죄의 사고방식
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에서 죄를 다 헐어 버렸습니다. 죄의 권세와 능력
을 십자가에 멸하시고 그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말
미암아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까지의 죄를 다
청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다 이
루었으니 너희는 죄인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용서와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얻은 자가 된 의의 멘탈리티를 가
져야 합니다. 의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나는 용서받은 의인
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답게 생각하고 의
인답게 말하고 의인답게 행동해야 하겠다. 죄의 멘
탈리티에서 의의 멘탈리티로 마음을 바꾸는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 밖에는 없
습니다. 율법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아라 의롭게 살
아라 해도 율법으로써 의롭게 살게 할 도리가 없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보혈의 능력의
용서로 말미암아 죄와 누더기 옷을 벗어버리고 용
서와 의와 영광의 옷으로 갈아입어 우리 마음의 생
각이 의와 영광의 생각으로 꽉 들어차야만 하는 것
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
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로써
죄에서 해방되고 의로운 자유인이 되었다는 이런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옷 입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세속과 마귀의 종이 되어서 별 도리
없이 우리는 술취하고 방탕하며 세속적이고 음란하
며 속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이러한 종의 사고
방식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마귀에 묶여 있
다 별 도리 있냐 그러므로 추하고 악하고 거짓되고
세속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우리
힘으로 벗어 날 수 없다는 종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종의 사고방식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
도를 통해서 해방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에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세속을 다 청산하고 마
귀의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리고 밝히 드러내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
보혈을 의지하면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세속의
옷이 벗겨지고 마귀의 모든 정세와 권세가 허물어
지고 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
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세속과 마귀를 다 이기고 천국을 모시
면 천국이 되고 성령을 모시면 성령의 사람으로써
산다는 그와 같은 자유인의 멘탈리티를 가져야 합
니다. 종의 사고방식을 가져는 안되요. 나는 세속의
종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그런 종된 생활을 하
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이 되었고
성령인이 되었으니 성령을 모시고 우리는 거룩하게
행하게 살수 있다는 그러한 자신감을 마음속에 가
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관과 절망의
슬픔의 종이 아니라 소망과 기쁨의 자유인이 되었
다는 것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에 못 박혀서 우리의 모든 비관 우리의 모든 슬픔
을 청산하시고 우리의 모든 마음의 고통을 청산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로 말미암아 우리가 마음이 세례를 받고 마음의 피
로써 기쁨으로 충만한 그러한 사고방식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
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
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
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비관적이고
절망적이고 늘 슬픔이 들어 차 있으면 종의 사고방
식입니다. 주인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인
이 우리는 낙관적이고 소망적이며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로 우리에게 값 주고 사주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의식에 사로잡혀서 연약과 병
의 종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마음속에 나는
병자다 나는 관절염이다 나는 신경통이다 폐병이다
심장병이다 암이다 온갖 병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병의 사고방식에 꽉 잡혀 있습니다. 해방되지 못합
니다. 끊임없이 약의 노예가 되어 있고 언제나 마
음속에 병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께서는 병 의식에 사로잡힌 우리들에게 치료와 건
강의 멘탈리티를 주시려고 그가 우리의 연약한 것
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으며 채찍에 맞
음으로 우리 병을 청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우리 생각이 바
뀌어져야 합니다. 우리 생각이 질병의 생각에서 치
료의 생각으로 연약의 생각에서 건강의 생각으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받고 건강하고 생명으로
넘친 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생각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
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
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
하 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
씀하고 있음으로 생각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생각
이 종의 의식에서 해방된 주인 의식으로 바뀌어져
야 합니다. 그리고 저주와 가난의 패배주의적인 멘
탈리티가 아닌 아브라함의 복과 예수님의 형통을
받은 사고방식이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
에 나는 늘 가난하다, 나는 늘 실패자다, 나는 무능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실패하고 가난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패배주의 적인. 마음의 저
주로 옷 입은 가난의 의식 이와 같은 종의 멘탈리
티를 가지고 있으면 안되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이런 곳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
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날 가진 금보다 강인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게는 데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수술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저주
의 사람이 아니게 때문 저주의 사고를 벗어야 합니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나는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나는 축복과 형통의 사람이라는 이러한
새로운 자유인의 멘탈리티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종의 사고방식에서 해방을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과 무의 절망의 허무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멘탈리티를
가져야 합니다. 요사이 가을이 와서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뒹굴면 나이 먹은 사람은 특별히 더 마음에
허무주의의 생각이 가슴을 꽉 채웁니다. 여러분 우
리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은 죽지 않아요 그러므로
죽음의 종이 되어서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언제나
허무가 가슴을 메아리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
도의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우리가 받아 드렸으면
우리 마음은 허무주의를 내 쫓아 버려야 하는 것입
니다. 죽음의 슬픔과 허무와 절망을 다 내어쫓아
버리고 우리의 생각이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생각
으로 옷 입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
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으니 우리
마음이 부활로 새로워 져야 하는 거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
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
함을 얻었도다"고 하였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3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靈魂)
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凡事)에 잘 되고 강건(强
健)하기를 내가 간구(懇求)하노라"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 삼중 축복을 받아서 죽
음과 무의 멘탈리티 허무주의에서 우리는 부활과
생명과 천국의 영광으로 꽉 들어찬 생각으로 우리
의 마음이 바꾸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락의 아담의 종된 성품을 예수님 안에
서 단연히 떨쳐버리고 종의 멘탈리티에서 자유인의
멘탈리티로 생각의 옷을 갈아입는 여러분이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은 광야에서 살고 자유인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
에 종이 살고 있느냐 자유인이 살고 있느냐를 깊이
관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과 그의 따른 사
고방식은 영원히 내어쫓아 버리고 오직 예수님 안
에서 해방되고 새롭게 태어난 자유인으로서 자유인
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여러분 살게 될 때에 비로서
여러분의 삶 속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
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여러분 제도와 조직을
아무리 바꾸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람을 바꾸어
봤자 이것인 한국을 복되기 하지 못합니다. 우리
한국이 새로워 질려면 한국의 지도층뿐 아니라 국
민의 사고 문화가 달라져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져
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종이 멘탈리티를 가
지고 있습니다. 이 종의 멘탈리티를 가지고 있으면
종은 언제나 저항하고 종은 언제나 불성실하고 속
이고 사기 치고 그리고 반항하고 비관적이고 꿈을
갖지 아니하고 이와 같은 종의 사고방식을 우리가
버리지 않는 이상은 이 나라가 정권이 바뀌어도 정
치인이 바뀌어도 조직이 바뀌어도 언제나 수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명의 근
원을 다른 데에서 찾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정치에
서 찾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제도에서 찾는데 그
것은 아무리 해봤자 마음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
은 이상은 내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멱살잡고 당
기고 여·야는 늘 대결해 싸우고 조국과 민족의 번
영은 뒤로 제켜 놓고 당을 위해 허덕이게 되고 관
리들은 얹나 탐관 오리가 되게 되고 사업가들은 언
제나 문어발씩 확장을 해서 어떻게 하든지 탐욕을
하다가 넘어지면 국민 세금이 와서 다 망치면 우리
가 어찌할 것이냐 되고 이러니 국가가 잘 될 수 있
어요. 사고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종의 사고방식
에서 주인의식을 가진 자유인의 사고방식으로 변화
되어 책임 있게 생각하고 자유인의 사고방식으로
나가면 비로써 하나님의 복을 주어서 광야가 변하
여 화초동산이 되고 젖과 꿀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
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
리의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고가 바뀌
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릴 위해서 주님께서 몸 찢
고 피 흘렸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의의 사고방
식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성령충만 은혜 충만의
천국 사고 방식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기쁨과 소
망과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세요. 여러분께서는
축복과 승리의 사고방식을 가지세요. 영생과 천국
의 영광스러운 사고방식을 가지세요 우리는 언제나
내일을 향해서 낙관하고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사고 방식을 나가야지 종의
사고방식인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며 절망적이며 패
배주의적인 그런 사고방식으로 나아가면 우리의 앞
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광야 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 갈 것이
냐. 광야에서 살 것이냐는 것은 우리가 종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 버리고 자유인의 사
고방식, 천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
라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담과 하와
이후 인류들은 오랫동안 마귀의 세속의 종이 되어
서 살았기 때문에 종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마음이
죄 의식 패배의식 저주의식, 절망 의식, 죽음의 의
식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
자가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의식을 바꾸어 주
었습니다. 아버지의 용서와 의의 의식으로부터 시
작해서 천국인의 의식 소망과 기쁨과 낙관적인 의
식, 치료의식, 축복의 의식, 천국의 의식으로 주님
은 마음의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 개인적으로나 교회로 한 국가
적으로라도 우리의 이 사고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사고
방식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원하오니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종의 멘
탈리티를 벗어버리고 자유인, 천국인 멘탈리티를
받아 드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언제나 낙관적이며
희망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
고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우리들이 되도록 도와 주
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