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19일
제목: 감사가 성공과 행복을 가져온다
성구: 시100:1-5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감사가 성공과 행복
을 가져온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
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하나님께 쉬지 않
고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까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하늘과 아름다운 천체
를 보고 감사를 드리고 땅과 그곳에 있는 수많은
동식물을 기뻐하며 감사드리고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생물들을 인하여 감사하고 찬미했더라면 그
들의 마음속에 불만이 들어올 틈이 없었을 것입니
다. 비록 마귀가 와서 그들을 유혹하고 불만을 넣
어주려고 하더라도 그들은 단호하게 말했을 것입
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우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감사드릴 뿐이요 하나님의 말
씀을 우리는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말했더라면
마귀는 틈을 타지 못하고 물러갔을 것입니다. 그
러나 실상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처
럼 되지 못하게 한 일에 대하여 불평을 품고 욕심
을 내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말은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와 찬양은 우리의 생
각과 행동 양식을 변화시킵니다. 원망과 불평도
우리의 삶과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고 갈 길을 변
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감사 절기를 맞이해서 우리가
특별히 살펴보아야 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
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베푸신 은혜를 늘
기억하고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
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심상하게 생
각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주셨다고만 생각하고 그
저 입술로 몇 번 감사하고 맙니다. 그러나 마음에
서 끌어 오르는 감사를 매일마다 하나님 제단에
드려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으니 예수를 주셔서 십자가
에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의 제물로 삼으신 하나님
께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서 감사를 드릴 때에 하
나님께서 영화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끼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베푸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같이 죄를 용
서해 주시고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선물로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깊이 감사해야 되는 것입
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찬미하고 그 피로써 용서와 의
와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은혜를 더
욱 주시도록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세속과
마귀의 종이 되어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갔었는
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보혈로 우리를
세속과 마귀에서 해방되게 하시고 그 백성을 만드
사 하늘나라가 임하시고 세상 나라를 쫓아내시고
성령이 임하시고 마귀를 쫓아 내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끊임없이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 속에 세상 나라가 임하였고 세상의
귀신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이웃의
하늘나라가 들어와 있고 이웃에 성령이 들어와 계
시니 우리야말로 얼마나 변화된 사람입니까?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와 같은 일을 해 주신 우리 하
나님께 우리는 끊임없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
니다. 우리는 옛날에 마음이 늘 슬프고 불안하고
초조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치고 이 불확
실한 세계 속에서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
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난 다음에 우리 마음속에 의지할 반석이 있음으로
우리 마음속에 평안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
나님은 우리의 기쁨이요 우리의 감사가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치
료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
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병들고 고통 당할 때에 치
료해 주지 않았습니까? 최근에도 제가 간증을 들
어 보니깐 우리 교회에 어떤 가정에 구역장님께서
절대로 예수를 믿지 않고 아주 강력하게 예수를
반대하신 분이었는데 술을 너무 좋아해서 간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 이제는 약으로나 의
술로는 치료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혼수에 빠
졌습니다. 그때 부인께서 우리 교회에 구역장님인
데 이 소식을 듣고 뛰어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
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감님이 이제 회
개하고 예수 믿게 되려고 이 큰 시련이 다가왔으
니 감사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변
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간암으로 말미암아 혼
수에 빠졌으나 이를 통해서 회개하고 구원받게 해
주실 것을 감사합니다. 수요일 예배 때 와서 저에
게 손수건을 들고 왔습니다. 이것을 왜 가져왔냐
고 하니깐 목사님은 직접 병원에 바빠서 못오실테
니깐 이 손수건에 기도를 해주면 이것을 가지고서
죽어 가는 영감 위에 얻고 기도하겠다고 그래서
그 손수건에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그 손수건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
다. 감사합니다. 이러해야 회개하고 예수 믿지 않
겠습니까? 악을 변하여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께
서 기사와 이적을 베풀어서 고쳐 주옵소서. 하나
님께 많은 감사를 드리고 기도를 했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혼수에서 깨어나고 아주 신속하게
몸이 회복되었는데 의사들도 하는 말이 이것은 정
말 기적이라고... 그래서 간암에서 고침을 받고 그
때 이후로는 열심히 교회를 나오신다고 그래요...
우리 2부 예배 나오신다고 그래요... 아마 그 구역
장님이 우리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해도 내가
교회에 안 가면 죽는데 왜 교회에 안나가 그러고
는 열심히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
료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
아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고 가게 하셨으니 우리 감사해야 되지 않겠습니
까? 우리에게 건강과 생명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되
요. 매일 같이 숨쉬고 매일 같이 살수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
나 오늘날 우리 한국 경제가 힘들지 않아요. 중소
기업이나 대기업이 무너지고 그리고 퇴출 당하고
많은 실업자가 생겨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조
정을 안하면 우리 나라에 희망이 없습니다. 빚더
미가 되는 기업을 그대로 운영하면 나중에 회사도
무너지고 은행도 무너지고 국가도 무너집니다. 고
통스럽지만은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런 여러 가지 시련 중에서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
에게 일용할 양식 주시고 먹고 입고 마시고 살게
하여 주신 것 우리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아
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시고 예수님의 은혜와 형통
을 얻게 하신 것을 우리는 중심으로 매일 같이 감
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죽음과 음부를 이기
고 부활과 천국과 영생에 참여하게 됨을 너무나
감사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행인과 나그네와 같
이 인생 길을 가다가 어느 순간에 이 세상을 떠나
야만 합니다. 아무리 더 있고 싶어도 있지 못합니
다.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안 갈 수 있어요. 태어
날 때는 먼저 태어나고 나중 태어날 수 있지만은
갈 때는 여러분 순서가 없습니다. 주께서 부르시
면 언제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있을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치 오늘 피었다가 내일 사라지는 꽃과 같습니다.
내 인생은 무엇이냐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니
라 내일 일을 자랑치 말라 오늘 네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느니라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확실한 소망을 주셨으니 감사하지 않습니
까? 만일 땅에는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영원
한 우리의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고 있으니 우
리는 비록 죽음이 두렵지만은 그 두려움을 이길
수가 있고 극복할 수가 있고 할렐루야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으니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영
원한 죄사함과 영원한 의로움을 얻었고 , 마귀와
정사와 권세에서 해방되고 율법의 정죄와 심판에
서 놓여나고 인간 행위의 자랑에서도 놓여나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받고 천
국시민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예
수님의 신부된 것을 매일 매일 감사해야만 될 것
입니다. 이것만해도 감사할 조건이 넘치고 넘칩니
다.
시편 100편 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
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
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가는 문이 바로 감사입니
다. 감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문이
닫혀 버리는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께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 버립니다. 감사하면은 하나님께로 들어
가는 문이 열립니다. 찬송하면은 그 궁전에 들어
가서 하나님과 대화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의 찬양 중에 거하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
고 성경은 말했는데 찬양을 하면 그 궁전에 들어
가게 되었어요 하나님과 대화하게 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 같이 감사하여 하나님의 궁전
의 문을 통하고 찬미함으로 하나님 보좌 앞에 나
가서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주신 하나님의 놀라
운 은헤를 우리가 중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을 베풀어서 우리에게 기적
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
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조차 빼앗으신다는 하나
님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대속의 은
총을 받은 것을 끊임없이 감사할 때 하나님은 그
은혜를 30배, 60배, 100로 더 주는 것입니다. 그러
나 하나님의 은혜를 심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속에 감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고통을 느끼십니다. 영광을 느끼지 않습
니까? 은혜를 주어도 감사할 줄 모르니깐 하나님
께서 은혜 준 것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분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 속
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
게 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깊이 감사하는 삶을 살
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또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사
는 나라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 나라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몸담아 있는 이 환경과 이 나라를 인
해서 우리가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같
이 매스컴에서 국가의 지도자와 국가의 형편에 대
한 부정적이고도 비평적인 보도를 듣고 애국하는
마음에 그림자가 덮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서구나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에는 미치지 못하나 우리가 감사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나라를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감사해야 되요. 하나님이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나
라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감사해야 합니다. 공산주
의나 전체주의 국가처럼 독재국가가 아님을 감사
해야 합니다. 독재국가에는 개인의 자유가 없습니
다. 인권도 없어요. 완전히 독재자가 일어나서 나
라 전체를 손에 쥐고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사람의 생사화복을 자기 마음대로 쥐고 주장합니
다. 이런 독재국가에서 우리가 살지 아니하고 우
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산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
각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이웃인 북한이 김일성,
김정일의 무시무시한 독재하에 사람들은 자유도
없고 인권도 없이 나라가 시키는 대로만 꼭두각시
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나라에서 살지 않은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임을 우리가 감
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벽기도로부터 낮밤 언제
나 모여서 예배 드릴 수가 있고 어느 곳에나 전도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을 따라서 우리 신앙의 자유
가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불행인지 몰라요 그런데 오늘날 북한 땅에
보십시오.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까? 선전용으로
교회 몇 개 세웠지 실제로 예수 믿거나 섬기다 잡
히면 강제노동을 다하든지 총살을 당하지 않습니
까? 예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마음대로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천국을
갈 수 있는 이 형편에 놓인 것을 너무나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제 36년 동안에 신앙
자유가 없었습니다. 공산당이 쳐들어 왔을 때 신
앙의 자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는
그런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없지 않아요. 그러므
로 우리는 이와 같이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
사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 되는 것입니다. 또 우
리는 자본주의적인 시장 경제 체제 속에서의 삶을
사는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 공산주
의 세계에서는 여러분 개인적인 재산을 소유할 수
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국가 소유하고 그리고 직
장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합니다. 모든 경
제는 국가가 통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는 살아갈 의욕도 없고 일할 힘도 생기지 아니하
고 창의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빈부 차별의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유 재산의 자유가 있고 그리고 사람들은 이웃과
열심과 창의력을 가지고 경쟁사회에 살음으로 경
제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산주
의는 국가가 자본과 시장을 통제함으로 사회주의
나 공산주의 국가가 경제적으로 파멸 당해서 오늘
날 지상에서 가장 가난한 거지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소련과 동구라파와 북한을 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전하지
만은 빈부 격차가 심한 어려움이 있지만은 자본주
의 사회 속에서 시장 경제 체제 속에서 사는 우리
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
고 또 우리 는 이 날을 감사해야 할 것은 해방된
지 55년 6.25 전쟁이후 50년 폐허와 거름무더기에
서 오늘날 같은 풍요의 삶을 갖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연한 것으로 받아 드려서는
안됩니다. 6.25 잿더미 속에서 살을 내는 추위 속
에 부모도 잃고 고아가 되어 맨발 벗고 하반신이
다 얼어붙어서 울고 있는 고아들을 저는 수 없이
보았습니다. 젖 달라고 우는 아이에게 젖은 안 나
오는데 빈 젖을 물려 놓고 전쟁 미망인이 길거리
에 앉아서 망년자실하고 있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
니다. 우리 한국에 여러분 6.25때 통한 그 고통과
비극은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절망의 땅에
하나님께서 오늘날과 같이 풍요의 삶을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
다.
이사야 9장 3절로 4절에 "주께서 이 나라를 창
성(昌盛)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
로 추수(秋收)하는 즐거움과 탈취물(奪取物)을 나
누는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
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壓制者)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
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속에 극한 문명의
이기를 즐기며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도 학교에 공부하다가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면 선생님도 공부하던 것 다 집어치우
고 전부 뛰어 나와서 자동차 구경한다고.. 그리고
그 게솔린 냄새가 얼마나 좋던지 그 공해를 전부
코를 들고 마시고 그럴 정도로 우리는 가난했습니
다 여러분. 운명의 길이란 없습니다. 100리 길을
걸어서 다녔어요 그리고 우리의 교통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소 달구지 밖에 없었어요. 이러한 우리
의 척박한 환경이었는데 오늘날에 와서 얼마나 교
통 수단이 발전되었으며 전화 그리고 인터넷, 텔
레비전 뭐 핸드폰,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모든 편리한 기구는 다 있습니다.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제가 옛날에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생겼
을 때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지고서 시골에 가
서 할아버지 앞에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유엔이
라는 곳에서 우리 한국 사람이 연설하는 연설입니
다하고 라디오를 틀었다가 혼이 났습니다. 할아버
지가 노인이라고 거짓말을 해도 분수가 있지 여기
미국이 어디라고 여기서 튼다고 해서 그 말이 들
리노. 나쁜 놈, 혼비백산했습니다.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트랜지스터에서 나오는 말이 미국의 소
리라는 것을 믿어 주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있는데 오늘날에 와서 얼마나 문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이것 우리 유심히 받아 드려야 합니다.
감사해야 되요. 우리에게 주신 나라를 감사드리며
낙관적이며 소망적이며 신념을 갖고 긍정적인 태
도를 키워 나가야만 될 것인 것입니다. 나라에 대
한 감사를 우리가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바
로 우리가 몸담고 사는 곳인데 여기에 우리가 하
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이 나라에 더욱 복을
주시고 원망과 불평으로 채워놓으면 있는 것도 빼
앗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
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 조차도 빼앗으리라는
그 말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의 현재에 있는 자리에서 우리가 이 나라와 이 민
족을 인해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감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분이 자기 집이
불만족스러워서 복덕방에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
집을 좀 팔아 주시오. 그리고 복덕방이 그 집을
보고 설계도를 그려서 그 다음 신문에 광고에 냈
습니다. 이것을 주인이 신문을 받아서 광고를 읽
고 보니깐 그 광고에 안방은 어디에 있고 건너방
은 어디에 있고 화장실은 어디에 있고 응접실은
어디에 있고 야 이 집이야 말로 내가 살기를 원하
는 집이구나 그래서 당장 복덕방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바로 자기가 팔려고 내놓은 집이었습니
다. 그는 복덕방에 말해서 자기 집을 안 팔겠습
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몸담아
살 고 있는 곳을 무심히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감사하지를 않습니다. 내 부모 내 처자 내 형제
늘 같이 이마를 맞대고 몸을 비비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평범한 줄 알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
나 떨어져 보면 그렇지 않아요. 군에 입대해 본
사람은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에 전에 느끼지 못한
부모님, 형제, 집의 귀중함을 뼈 속까지 느끼게 됩
니다. 저는 천막교회에서 가마니 위에서 자고 깨
고 하다가 논산 훈련소에 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
하고 논산훈련소에서 그 천막이 얼마나 그립던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 가마니가 그립고 거기
에 있는 거지같은 교인들 모여서 기도하는 교인들
이 너무나 그립고 이렇게 내가 살던 곳이 그립고
좋고 하는 것은 몰랐습니다. 옛날에는 이 거지같
은 천막에 냄새나는 가마니에 아이고 내 팔자야,
그렇게 생각했는데 떠나보니깐 그곳이 그렇게 그
립더라고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부모 형제
처자 우리의 환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를 도막살인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는 부모에 대한 강
압과 멸시에 대한 열등감과 형과 차별대우를 한다
고 그래서 감정이 쌓여서 술을 먹고 주무시는 부
모님께 몽둥이로 때려 죽여서 도끼로 토막을 내서
비닐 봉지에 담아서 거름 무더기에 던져 버렸습니
다. 여러분 이런 나쁜 놈이 세상에 어디에 있어요.
나는 사형제도를 없애라고 외치는 이에 대해서 근
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 부모를 몽둥이
로 때려서 죽이고 도끼로 도막을 내어서 비닐 봉
지에 싸서 거름 무더기에 던지는 사람이 살아 있
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런 사람을 여러
분 사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비윤리적이요, 비도덕적인 인간은 우리 사회
에서 영원히 없어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형 제
도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미국에서 어느 아나운서
가 물은 것이 있습니다. 만일 강도가 들어와서 당
신 아내를 강간하고 죽였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서 사형을 베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안 합
니까 사형제도를 반대한 사람이 아무 말도 못했습
니다. 남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남의 아내가 난도
질당해 죽는 것은 자기와 관계가 없으니깐 사형제
도 없애야 한다고 하지만은 자기의 아내가 강간당
하고 난도질당해서 죽임을 당하고 그 범죄한 사람
을 잡았을 때 잘했어, 잘했어, 사형제도 없어 그냥
편안히 지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
니다. 여러분 더구나 존속 살인이라는 것은 비극
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죽
여서 토막살인을 해서 비닐 봉지에 넣어 거름 무
더기에 던집니까? 우리는 부모님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리 공부를
못 시켜 줬다 못 먹여 줬다. 사업자금을 안 줬다.
그런 것 가지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낳아서 피덩
어리를 길거리에 내어 던져 버리지 않고 그래도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돌봐 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자라왔지 않습니까 그것만 생각
해도 우리는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부모님에 대
한 부정적인 생각은 이와 같은 무시무시한 불효를
낳습니다. 언제나 부모님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우리 마음속에 감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
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해
야 우리가 사는 땅에서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라
고 했는데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욕하고 저주
하고 살해까지 한다면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과
그런 나라를 내 버려 놓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의 장점을 생각하고 부모님께서 우
리에게 베풀어주신 긍정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감
사를 해야합니다. 자꾸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
서 부정적인 모습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또 부
부간에 장점을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서로
인연을 맺어서 이 땅에서 함께 살게 만들어 놓은
이상 부부간에 서로 장점을 자꾸 생각해야지 자꾸
모자란 생각만 하면 미운 생각밖에 날 것이 없지
요. 남편도 아내의 모자란 점만 자꾸 생각하면 얼
마나 모자란 점이 있으니깐 미운 생각 밖에 안 납
니다. 아내도 남편의 못난 점만 자꾸 생각하고 들
추면 미운 생각 밖에 안납니다. 저주 밖에 나오지
않지요. 그러나 서로 서로 장점을 생각할 줄 알아
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장점을 생각하고 그것
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 합니다. 또 아내도 남편의
장점을 생각하고 감사를 하면 점점 장점이 많아지
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린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올바르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의 구원
이 능력이 나타나서 변화시켜 주시지요. 감사를
해야 변화를 시켜 주시지 원망 불평 탄식 미워해
서는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변화시하다 능력은
감사를 통해서 만이 오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부부간에 대해서도 늘 장점을 생
각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파괴를 가져옵니다. 감사와 찬양은 창조적이고 건
설적이며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
라 자기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를 감사할 줄 알아
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44편 3절에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주께
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인생에 살아가는데 우리
생각이 좋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
분 중국 고사에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
잖아요. 옛날 중국 북방 근처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인이 기르고 있는 암말이 오
랑케 땅으로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와서 말이 도망을 쳤으니 안됐습니다. 그러니 영
감님이 하시는 말씀이 누가 아오 오히려 이것이
복이 될지 그런데 얼마간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이 암말이 수컷 여러 마리를 데려 왔어요. 그러니
말 한 마리가 수컷 여러 마리를 데려와서 우리에
들어 왔으니 굉장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웃 사
람들이 와서 야 당신 정말 복을 받았다고.. 그러니
깐 누가 아오 이것이 화가 될지... 그런데 그 암말
이 데려온 수컷 말을 그 아들이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러니 동네사람들이 와서
괜히 수컷 말이 와서 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평
생 병신이 되었으니 얼마나 불행하오 하니깐 누가
아오 또 좋은 일이 올지.. 그런데 진시 왕이 만리
장성을 쌓고 수많은 장정들을 다 동원할 때에 그
동네에 있는 장정들을 다 동원되어서 가서 전쟁에
서 죽었는데 그 집 아들을 절름발이가 되어서 전
쟁에 안 나갔습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 절름발이
가 되어서 전쟁에 안 나갔으니 얼마나 좋소 하니
두고 봐야 알지... 이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는 말
이 있는데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만은
우리가 주를 믿고 하나님 안에서 살면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역사하여 주셔서 해
가 악이 선으로 변화는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
니다.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개인의 생애를 돌아 볼 때에 제일 저에
게 큰 축복을 가져온 것은 언제나 제가 가장 깊은
고통과 수렁에 빠졌을 때입니다. 17살에 폐병이 걸
려서 사형 선고를 받고 모든 친구들은 다 대학을
진학하는데 나는 대학도 못하고 머리를 기르고 피
를 토하고 이렇게 구부리고 앉아 있었는데 그때
내 일생에 가장 절망이었습니다. 그 절망은 헤아
릴 수 없는 수령과 같았습니다. 나는 너무나 불행
하고 좌절이고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65살
이 되어서 돌아보면 내 일생에서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17살에 폐병 들린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 때 내가 폐병에 안 걸렸
다면 절대 예수 안 믿어요 믿을 도리 없어요 우리
가문에서... 폐병 걸렸으니깐 죽을 놈이니깐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내 버려 놓아라 그래서 예수 믿
었어요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제가 주의 종이 되어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것이 17살의 폐병 들
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하고 지금하고 생각할
때 보는 가치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제가 또 순
복음 신학교에 들어와서 고학을 하고 있을 때 감
기가 들려 나중에는 이것이 너무 심해서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거
의 기진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 냉돌의 기숙사
방에서 엎드려서 죽어가고 있는데 그때에 내 동기
동창이던 최자실 목사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 여학
생 기숙사에서 내게 와 보더니만 이거 큰일 났다
이 사람 죽는다 우리 최 목사님은 간호원 출신이
거든요 그러니 즉시로 가서 링거주사약을 사오고
여러 가지 약을 사와서 주사를 놓아주고 나를 돌
봐 주어서 내가 살아났는데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최 목사님이 훗날에 나의 장모님이 되었습니다.
만인 제가 최 목사님하고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런 목회는 못했습니다. 왜? 최 목사님은 우리
어머니와 연세가 같으시고 나는 너무나 젊은데 내
가 어떻게 목회를 할 줄 압니까? 아무 돈도 없는
데 제가 신학교 마치고 나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한푼 없는 거진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문
지른다고 하는데 그때 우리 최 목사님은 신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 재산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
기 때문에 천막이라도 사고 가마니라도 살 수 있
었어요, 그런게 있었기 때문에 들어와서 목회를
하고 최 목사님이 뒤에서 밀어주고 협조를 해 주
어서 제가 청년기 목회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으니 최 목사님을 만난 것은 내가 병 안 들었
으면 못 만났어요. 그런데 심히 병들어 죽게 되었
던 것이 그 이후에 너무나 감사하지요. 그 다음
제가 천막교회에서 목회 하는 것을 늘 탄식했습니
다. 다 떨어진 천막에 가마니에는 냄새가 나고 세
상에 돈이 좀 많았으면 좋은 곳에 가서 목회를 할
수 있다고 탄식을 했는데 존 허스톤 목사님이 미
국에 와서 좋은데에서 목회 했으면 절대로 도와주
지 않았을 텐데 와보고 다 떨어진 천막에 가마니
에 있으니깐 불쌍히 여기사 우리가 같이 목회를
하겠다고 온 것입니다. 허스톤 목사님께서 같이
목회 했기 때문에 허 목사님이 서대문에 땅을 사
고 서대문으로 나올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일 그때 조그마한 가정집에라도 교회를 지어서
목회 했더라면 허스톤 목사님이 우리에게 안 왔어
요. 그 별 볼일 없지. 그러니 그때 그 다 떨어진
천막에 가마니 위에서 목회 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허스톤 목사님이 와서 불쌍히 여겨서
애정을 가지고 함께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서
대문에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대문에 안 나
왔으면 여의도로 절대로 못 나옵니다. 서대문에
기초를 닦았기 때문에 여의도로 나올 수 있지 그
것도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지요. 왜 여의도로
나왔습니까? 우리 교회가 부자였으면 여의도로 안
나왔습니다. 서울 시내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지
요 그때는 여의도로 나가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김연호 시장이 여기 그냥 먼지를 날리고 여의도에
간다고 하니 다 비웃었습니다. 지금 뭐하려고 저
렇게 하느냐. 그런데 우리는 그때 서대문에서 너
무나 돈이 없었기 때문에 올 때 갈 때가 없어 서
울 시장이 공짜로 준다고 하기에 그래서 여기에
왔습니다. 서울 시장에게 가니깐 나보고 땅 사라
고 빌어요. 그러면서 아에 10만평 사라고 해서 돈
이 없다고 하니깐 돈은 훗날에 줘도 좋으니깐 공
짜로 사라 그래서 내가 3천 평만 달라고 하니깐
아유 3만 평이다 3만 평 가져가라 안돼요. 3천 평
만 주세요, 내 머리가 너무 바보가 되어서 그때 3
만 평을 받는 건데 그랬다면 이 블록 전체를 다
우리 교회가 소유했을 것인데 3천 평만 달라고 했
습니다. 왜냐 너무나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올 때 갈 때 없어서 그 당시에 서울에서 아
무도 안 나오고 내 버린 땅인 여의도로 나오게 되
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보면은 그때 가난한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부자가 되었으면
서울시내에 장소를 마련해서 교회를 지었으면 우
리 자동차를 어떻게 데요.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되
어 있겠어요. 그러니 지나고 보면은 모두다 환란
이 변하여 영광이 된 것입니다.
시편 31편 7절로 8절에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
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나를 대적
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고 말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
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고 말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웃어
보고 울어보니 웃던 것이 낫더라는 속담처럼 우리
의 경험을 통해서 볼지라도 불평과 불만은 부정적
인 마음과 태도를 낳으면 그 결과는 미움과 분노
와 파괴 그리고 인생의 실패와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감사는 어떤 환경에서라도 하나님의 은혜
를 힘입어 성공과 행복을 가져오는 사람의 태도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 주일의 역사적
연유는 영국의 국왕의 국교 정책으로 심한 박해를
받았던 청교도들이 1620년 9월 신앙의 자유를 찾
아 "메이플라워호"라는 작은 범선을 타고 대서양
을 두 달 동안 파도와 싸우면서 향해한 끝에 구사
일생으로 미국의 동부 해안에 도착했으나 겨울을
당하고 또 그 해를 짓는 동안 풍토병과 혹한으로
인디안들의 습격을 받아 거의 태반이나 죽었습니
다. 살아 남은 이들은 굽히지 않는 믿음으로 제일
먼저 교회를 짓고 천신만고로 땅을 개간하여 옥수
수를 심어 가꾸어 가을에 대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부모 형제를 묻어 놓은 그
무덤 옆에서 제단을 삼고 잔치를 베풀어서 이웃
인디안들을 초청하여 3일간 큰 잔치를 베푼 것이
오늘날 미국의 추수감사절기의 유래고 우리도 그
본을 받아서 추수 감사절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미국이 된 것은 그 조상 청교도들
이 그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 원망 불평 탄식하지
않고 여호와께 감사의 제단을 쌓고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감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
에 가장 큰 저주가 원망과 불평과 탄식입니다. 이
는 하나님이 담을 쌓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러한 사람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고 사는 사람은
그 삶을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며 긍정적이고 적극
적이며 신앙의 삶의 태도를 이끌어 줌으로 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친히 같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
에 들어가서 그에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지
라로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멀
리서 감사할 것을 찾지 말고 우리 가까운 데서 감
사할 것을 찾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가 구원받은 이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
하고 우리가 몸담아 사는 우리 나라와 민족을 인
해서 감사드리고 우리의 부모 부부 자녀 친척을
인해서 감사하고 자기 생애에서 좋은 일만 감사하
지 말고 자기 생애 속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련
과 환난과 고통을 인해서도 감사하게 도와 주시옵
소서.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능력으로 악을 변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모든 성도에게 원망과 불평과 탄식의 오늘 벗어버
리고 감사와 찬양의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의 삶을
밝고 맑고 환하고 낙관적이고 소망적이고 믿음으
로 긍정적인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살게 도와주옵
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