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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25일 제목: 선택 성구: 신30:15-20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겮궈횂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할 수 없는 것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특정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지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 살 것인가, 어느 상대를 인생 동반자로 삼을 것인가,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누구를 만날 것인가 등등은 우리가 선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이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목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었습니다. 저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느 신학교를 갈 것인가, 어느 교파의 안수를 받을 것인가, 어느 지역에서 목회를 할 것인가, 교회를 열심히 목회 할 것인가, 게으르게 할 것인가, 이것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첫째 아브라함의 예정과 선택을 한번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대한 예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예정한 것은 우리가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에 겳㈗?呱꼈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절대주권적인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 아니오라고 할 권한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대해서는 절대복종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을 쫓아 나갈 때에 아브라함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한 뜻을 온전히 복종할 것이냐, 불순종 할 것이냐, 이것은 자기의 선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갈 때에 불안전한 순종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예정에 순종했지만은 그 순종이 불안전했습니다. 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사라의 손만 잡고 가라고 했는데 그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다 거느리고 조카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순종을 했지만은 불안전한 불순물이 섞인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예정에 순종은 하기는 했으나 불안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나안 땅에 내려가서 흉년이 다가왔을 때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명령은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지 애굽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그 아내와 더불어 출발했습니다. 자기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예정 안에서 내가 좌우로 선택할 것은 스스로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굉장한 모욕과 멸시와 고난을 경험하고 난 다음 그는 회개하고 원래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땅에 와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살 것이냐, 조카 롯과 결별할 것이냐는 자기 선택에 달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결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의 예정에 온전히 복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85세 때에 아브라함이 없으므로 자기의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취해서 첩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렸으면 좋았을 텐데 잘 못된 선택을 함으로 그 개인뿐 아니라 주위와 후세에 지울 수 없는 영욕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은 우리의 삶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잘 못된 선택으로 하갈을 택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오늘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랍민족이 되었는데 사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과는 피비린내 나는 대결과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마엘의 장자권을 들어 정통을 주장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재물로 드린 것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제물로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다윗과 솔로몬이 세운 모리아 산에 성전을 헐고 그곳에 바위성전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러므로 끝없는 대결과 투쟁이 이스라엘과 아랍 가운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오늘날 세계 각처에 기독교대 이슬람 문명은 충돌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과 이스라엘 문명의 충돌이 결국 3차 대전을 유발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미 영국 런던 리전트 공원 내에 대형 모스크를 필두로 매년 수십 개 모스크가 영국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이슬람 측도 공공연히 영국을 서구의 첫 이슬람 국가로 만들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도 근본적으로 아브라함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을 첩으로 선택해서 이스마엘을 낳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이와 같은 대결이 지구상에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 속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둘째로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우리의 대한 예정과 선택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선택할 문제가 아닙니다. 만세 전에 예정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겠다 안 받겠다 예수를 믿겠다 안 믿겠다 하는 것은 우리 자유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4절에 겶何徘玖?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福)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 성경말씀으로 볼 때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사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얻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 전에 하나님이 이미 그 마음속에 작정하신 것이요, 예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 우리를 택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겠다 안 믿겠다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도할 것은 뭐냐, 하나님은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므로 누가 부름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은 열심히 전도해서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사람들을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구원하도록 섭리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16절에 겞 형질(形質)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 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이미 여러분과 나를 보시고 아시고 그러고 예정하시고 택하사 크리스천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이제 얼마나 더 하나님의 은혜 속에 깊이 들어 갈 것이냐, 안 들어 갈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는 우리의 선택의 의지와 결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죄가 용서받고 난 다음에 우리가 의롭게 살 것이냐, 아직까지도 죄와 타협하여서 살 것이냐,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에 곀毬ご纛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궛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고 살 것이냐, 세상과 타협하고 살 것이냐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성령 충만하여 거룩하게 살 것이냐 세속과 타협하고 살 것이냐는 것도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서 18절에 겮셀昰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살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예수 믿으면서 술 취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살 것이냐, 이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온전히 순종할 것이냐, 순종하지 않을 것이냐,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시지만 은 구원받은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령하고 헌신적으로 살 것이냐 아닐 것이냐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우리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병에서 해방되어 치료와 건강을 얻고 살 것이냐 병과 타협하여 살 것이냐는 것은 이것도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달렸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겴甄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이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이 진리를 받아 드리고 우리가 결정적으로 우리가 병과 인연을 끊고 병에서 고침을 받겠다고 결심하고 철야기도, 새벽기도, 혹은 금식기도하고 병과 대결해서 싸워서 병에서 놓여남을 받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는 것이 귀찮고 괴롭기 때문에 정당하게 병과 함께 일생을 공존하며 살겠는가 그것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금식하고 철야하며 단호한 결정에 병과 대결하면 병은 낫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병은 물러가기 위해 있는데 그것이 고생스럽습니다. 고생하기 싫으니깐 적당하게 병과 같이 삽니다. 그것도 자기의 결단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선택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살 것이냐, 가난과 저주 속에 그냥 뒹굴며 살 것이냐는 것도 여러분 우리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받고 살도록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 14절에 겚琉?볕뎡꼈 우리를 위하여 저주(詛呪)를 받은 바 되사 율법(律法)의 저주(詛呪)에서 우리를 속량(贖良)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궛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저주를 다 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이 진리를 우리가 알고 믿고 하나님 앞에 성수 주일하고 십일조 드리고 이 말씀에 서서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일해서 내가 복을 택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이 말씀에서도 믿지도 아니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도 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적당히 가난과 함께 손을 잡고 살 것이냐, 우리 선택하고 우리가 결정되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살도록 하나님이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내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인 이상은 우리가 이것을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거짓말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요,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고 그리고 그대로 우리가 실천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거나 적당히 믿고 타협하고 가난과 저주와 함께 살 것이냐는 것도 우리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나라와 그 의를 제일로 구하며 살겠다는 의지도 선택의지요, 우리가 살면서 그 나라의 교회를 열심히 받들고 섬기고 교회를 보양하고 교회 상처를 입히지 아니하고 주의 몸된 교회가 왕성하게 하도록 하며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이해하고 더 진리를 믿고 순종하며 그 의를 따라 살기로 결정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교회 가운데 와서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에 상처를 입히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수치와 곤욕을 돌리는 이런 삶을 살 것이냐, 이것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선택에 따라서 나중에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절로 2절에 겳痢?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헛되이 받을 수도 있고 올바르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성공과 실패는 우리의 선택의 열매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은혜와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겠다는 것도 우리가 선택을 하고 간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기로 마음에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믿음과 의심은 그 자신이 선택이었습니다. 폭풍이 일어나는 바다 위를 예수님이 오라고 하시매 걸어 나갔을 때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갈 것이냐,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 할 것이냐는 베드로의 마음의 선택이지 예수님이 예정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주의 말씀을 믿고 걸어가다가 그만 예수님의 말씀 대신에 두려움을 받아 드리자 물 속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에서 38절에 겴溯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믿음으로 살고 뒤로 물러가지 말라고 하나님이 권면하셨는데 믿음으로 살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뒤로 물러가기로 선택한 사람도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을 통해서 받지만은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고 믿고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살 것이냐, 미지근하게 타협하고 온전한 헌신과 믿음으로 살지 못하다가 나중에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채찍을 맡고 견책을 당할 것이냐 이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는 것이고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은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더 신령하고 헌신하고 살 것이냐 아니냐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셋째로 오늘 여러분에게 드릴 권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택하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이 세상에서 살면서 예수 믿었으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뜨겁게 믿고 섬기는 삶을 택하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그림자 지우는 불순종의 삶을 택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멸망한 원인도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택하지 아니하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고 이방 신을 따라가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결국엔 망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장년 김대통령께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려고 할 때 북한이 김일성 전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 궁전에 대통령이 참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그것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출발하기 전에 거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깐 저쪽 북한에서 하는 말이 그러면 평양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지경입니다. 그러면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서 애라 그까짓것 금수산에 가서 한번 참배하고 만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하나님 앞에 중대한 범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배하지 않으려면 오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데 우리 대통령께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양으로 출발했습니다. 순환 공항에 도착하자 북한이 금수산 궁정으로 바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김대통령께서 우리 국민의 감정상 절대로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거절해서 문제가 되었으나 결국은 김정일 국방 위원장을 만나서 금수산 부친의 묘에 참배할 수 없다는 것을 완강하게 단호하게 말하자 그것이 해결되었다고 할 때 밝힌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우리 김대통령께서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김일성 죽은 시신에 가서 참배하고 절을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그것을 택했더라면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 국민도 비참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많은 주의 종들과 장로들이 북한 방문을 위해서 순환공항에서 꽃다발 들고 김일성 동상에 가서 절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올 때에 입 닦고 옵니다. 자기는 입 닦고 오지만은 하나님은 보시고 아십니다. 십계명의 제일 조에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마라, 제이 조에 우상에 절하지 말아라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정치적인 이익이나 손해가 다가온다고 하더라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 정치적으로 조그마한 이익이 다가온다고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 절하면 그 다음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소를 얻기 위해서 대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아니하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김대통령께서 선택한 것은 너무나 잘 한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과 복을 마음에 택하여 채우고 사망과 실패와 저주의 생각을 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여러분 생명과 복의 생각도 있고 사망과 실패와 저주의 생각도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생명과 복을 택하고 사망과 저주를 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스산하면 사망과 저주를 생각합니다.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파멸이다. 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세계를 택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에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 지라도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복 주시고 은혜 주시고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생각하고 생명과 복을 마음에 택하여 채우면 그 어려운 환경을 꿰뚫고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열두 정탐꾼이 가지 않았습니까? 열두 정탐꾼은 갔다와서 그들 마음속에 무엇으로 채웠습니까? 사망과 실패와 저주의 생각으로 꽉 들어 채웠습니다. 악평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 성벽을 높고 사는 사람들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라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들어가서 그 땅을 점령하지 못하리라 우리 다 칼날에 죽고 사로잡히리라 완전히 사망과 실패와 저주의 생각으로 꽉들어차서 그것을 입으로 토했습니다. 그러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열 명의 정탐꾼을 죽이고 그를 따라서 전부다 통곡하고 원망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회진해서 40년 만에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민수기 14장 9절에 겳읒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이들은 이 환경에서 생명과 복을 마음에 택하였습니다. 우리를 할 수 있다, 점령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이긴다, 그들은 긍정적인 낙관적인 희망의 생각으로 꽉 들어 채웠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40년 광야를 지나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80이 되어도 40대의 청춘을 가지고 후손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과 복을 마음에 택하여 채우고 사망과 실패와 저주의 생각을 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치료와 건강을 마음에 택하고 병과 죽음을 받아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조그만 생각하면 나는 병들어서 병신이 되겠지, 죽겠지, 그렇게 생각을 가지면 그 생각이 어떠하면 그 인격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병을 받아 드려서 병을 동조를 하고 병에 완전히 굴복 당하면 그 생각으로 채워지면 그대로 되지요, 그러나 아무리 병이 육체를 공격해도 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저가 우리가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시리니 나는 굴복하지 아니한다, 나는 건강하다 단호하게 여러분 생각을 건강과 치료의 두고 질병과 죽음에 두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인간 연구소가 30년 간 2676명을 대상으로 연구 결과를 문제를 2월 15일날 발표했는데 거기에 보니깐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들은 거의 술 마시지 아니하고 담배를 피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보다 담배를 안 피울 수 있는 가능성이 80%가 높고 우울증이 없어질 가능성도 안 믿는 사람보다 2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한 사람들은 연구 기간 내내 좋은 건강과 습관을 유지했으며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사망률이 낮고 장수했다고 의학적으로 금지를 했습니다. 시편 103편 3절에서 4절에 겴解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破滅)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궣箚 약속하신 대로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동안에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희망차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어서 병이 오더라도 나는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그리스도가 나의 치료라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고 주를 모르는 사람은 술 먹고 담배 피고 건강을 헤치고 조금이라도 건강이 나빠지면 이제 죽겠구나, 이젠 나는 약하구나 나는 패배자가 되었구나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므로 그 생각에 지배를 받아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과 낙관과 긍정적인 삶을 선택하고 절망과 비관과 부정적인 삶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경은 여러분 다 똑같습니다. 다 똑같은 환경에 우리가 노출되어 있지만은 그곳에서 희망과 낙관과 긍정적인 삶을 택하는 사람이 있고 절망과 비관과 부정적인 삶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옛시인이 지은 시가 있어요 돛단배 두 척 바다에 떠네/ 불어오는 바람 따라 한배 동으로 가고 다른 배 서로 가네. 같은 바다 위에 똑같은 바람 부는데 돛단배가 두 척이 있는데 한배는 동으로 가고 다른 배는 서로 갑니다. 왜? 그 돛의 방향에 따라서 똑같은 21세기를 살면서 똑같은 한국이라는 경쟁 속에 살면서 한 사람은 성공을 하고 다른 사람은 실패로 가고, 한사람은 건강으로 가고 다른 사람 질병으로 가고, 한 사람 승리고 가고 다른 사람 패배로 가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 돛의 방향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마음에 생각이 꿈을 가져오고 꿈이 믿음을 가져오고 믿음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돛을 우리가 비관적이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으로 돌려놓으면 그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 꿈을 꾸고 그런 부정적인 믿음을 가졌으니 인생이 그리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바람이 불어도 우리의 마음을 소망적이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주님 말씀에 서서 꿈과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돛을 따라서 그리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는 현재 우리 가슴속에 어떠한 생각을 선택하고 가득히 채워 놓는가 이것이 여러분의 미래의 가는 방향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인간의 공포 근심 걱정이 과거의 문제로 생겨난 것이 40%, 미래에 일로 생겨 난 것이 50%이며 현재의 문제는 불가 10%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염려하고 근심하고 초조한 것은 과거에 이미 지나간 사건을 가지고 40%이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50% 사실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 자기의 생애 속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10%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쓸 때 없는 것 가지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아니하면 70-80%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졌다고 말합니다. 타락한 인생은 그냥 내버려두면 자연적으로 그 마음 70-80%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러고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당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내어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91편에 말한 것처럼 겞뺐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染病)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防牌)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染病)과 백주(白晝)에 황폐(荒廢)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91:2-6) 이 말씀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고 시인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깃털로 덮임을 받고 날개 밑에 있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심으로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감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하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우리 마음에 돛이 부정적으로 가겠습니까 긍정적으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이 충만하고 이러한 사람은 승리와 축복으로 향하고 말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의 출발점은 백지 한 장 정도이나 그 끝은 천지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동으로 가고 다른 사람은 서로 가는 것입니다. 희망과 낙관과 긍정적 사고는 정신 건강 신체 건강에 활력을 넘치게 하고 인체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시키며 행복한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겮側灼構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런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의 삶이 희망과 낙관과 긍정적인 삶을 택하고 절망과 비관과 부정적인 삶을 택하지 않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여러분께 권면하고 싶은 것은 행복을 택하고 불행을 택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불행을 택합니다.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는데 행복할 것을 자꾸 택하지 않고 불행할 것은 택합니다. 양지를 택하지 않고 늘 음지를 택합니다. 자기가 자랄 때에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럽게 자랐다는 것을 늘 지나간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원망하고 우울하게 생각하고 현재도 자기를 도와 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자기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을 비관하고 마음을 부정적으로 가지며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봅니다. 행복을 택하지 아니하고 불행을 택합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던져버리고 현재에 있어서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것을 찾습니다. 음지를 찾지 말고 양지를 찾으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겞뺐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궛 말했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그 길을 택해야 합니다. 영국의 버킹검 궁전 앞들에는 큰 나무가 열두 그루 있는데 나무들에게 열두 제자의 이름의 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두 나무가 다른 나무는 다 잘 자라나는데 가룟 유다 나무만 발육이 좋지 않고 벌레 먹고 형편없습니다. 왜? 지나가는 사람마다 욕을 하니깐... 나쁜 놈의 자식, 저주받을 사람... 그러니 가룟 유다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는 뭐 완전히 영양실조가 걸리고 잘 자라지 못하고 키도 빼빼 합니다. 그러나 특히 베드로 나무를 비롯 다른 나무들은 사람들이 쓰다듬어 주고 사랑해 주고 하니 아주 풍성하고 무성하게 잘 자랍니다. 똑같은 자리에 심은 나무도 부정적인 말을 하고 욕을 하니깐 못 자라요, 똑같은 자리의 나무도 축복을 하고 쓰다듬어주고 사랑해 주니깐 잘 자라요, 하물며 여러분 마음 속에 불행을 택하고 행복을 택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생활이 언제나 그늘지지요. 그러나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행복을 생각하고 행복을 택하고 행복한 말을 하면은 여러분의 생활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과 행복의 근원은 오직 주 하나님이니깐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고 그 안에서 행복을 생각하십시오. 하루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발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발을 하고 나오면 하루 행복하고 기분 좋아요, 일주일의 행복을 위해서는 새 옷을 사라고 합니다. 새 옷을 사 입고 다니면 일주일 동안 행복해 집니다. 일 개월의 행복을 위해서는 새 자동차를 사라, 새 자동차를 사고나면 한달 동안은 행복하고 좋아요, 한 해의 행복을 위해서는 새 집을 지어라, 새 집에 들어가면 일년동안은 기분이 좋아요, 한 평생 행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겨라, 그래야 한 평생 여러분 행복하게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싶은 것은 성공을 택하고 실패를 택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 속에 나는 실패할 것이다, 나는 못할 것이다, 나는 말할 것이다, 나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으로 그 길을 택하면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을 택해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될 것이다. 왜냐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성공을 택하고 실패를 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겸손을 택하고 교만을 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에게 화를 내리시나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고 자기를 자랑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기가 뭡니까? 죄인이요, 진토와 거름무더기에서 구원받은 사람 아닙니까? 뭘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가 인정 받으려하고 자기 잘났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점점 낮아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서 7절에 겴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해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으나 그 후에 교만하고 불순종하니깐 하나님이 낮추고 버렸지요. 나아만 장군은 처음에 교만했으나 나중에 깨어져서 겸손하게 되어서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하고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겸손을 택하고 교만을 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이름을 높이고 자기를 인정받으려고 하지말고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고 그리스도만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용서와 사랑을 택하고 미움과 원한을 택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살면서 미운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족 중에도 있고 형제 중에도 있고 성도들 중에도 있고 원수들 중에도 있고 우리가 살면서 서로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이상은 언제나 미움을 가슴속에 품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움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을 파괴하기 이전에 자기의 마음을 파괴합니다. 평화를 빼앗아 가고 기쁨을 빼앗아가고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미움을 자기를 파괴하고 그 다음 다른 사람을 파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용서와 사랑을 택하고 미움과 원한을 택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움과 원한을 택하는 것이 아무리 타당화하고 마땅히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은 결국에는 자기가 파괴되고 남을 파괴합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요셉과 그 형들을 보십시오. 요셉이 형들을 한없이 미워하고 대결할 수 있습니다. 형들이 그를 팔아 먹었기 때문에 그러나 요셉은 미움과 원한을 택하지 아니하고 용서와 사랑을 택했습니다. 창세기 50장 19절에서 21절에 겳鴉좇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그러므로 요셉은 미움과 원한을 택하지 아니하고 용서와 사랑을 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잠언 4장 23절에 겧ジ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根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에 어떠한 생각으로 채워 놓을 것인가는 운명이 아니고 우리의 선택권에 달려 있습니다. 운명이면 할 수 없지요, 그러나 마음에 어떤 생각을 채울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은 마음에 자기에 대한 꿈을 낳게 되고 그 꿈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그에 따른 믿음을 낳고 믿음은 삶의 해당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므로 신명기 30장 15절에서 20절을 기억하십시오. 겫마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誘惑)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宣言)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 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長久)치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천지(天地)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附從)하라 그 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대로 생명을 택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섬기는 일을 택하고 사망과 절망을 택하지 마십시다. 여러분과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운명입니다. 우린 선택권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21세기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 이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이 예정이십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수님을 따라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항상 절망적이 되어서 우리 인생의 파탄이 이는 것은 잘못된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원망 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고 언제나 희망차고 낙관적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인생을 선택하십시오. 행복을 선택하고 불행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낙관을 택하고 비관을 택하지 마십시오 소망을 택하고 절망을 택하지 마십시오 성공을 택하고 실패를 택하지 마십시오 사랑을 택하고 미움을 택하지 마십시오 용서를 택하고 원한을 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내일에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예정 지어지고 운명지어진 것도 있지만은 그 가운데서 우리 스스로가 선택해야 할 폭이 너무나 넓습니다. 우리가 잘 못 선택한 것이 우리 자신 뿐 아니라 후손과 먼 훗날까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원하고 기대하오니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죄대신 의를 선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세상 되신 거룩함을 선택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질병대신 건강을 선택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저주 대신 아브라함의 축복을 선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멸망과 지옥대신 천국과 영생을 선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행복을 택하고 불행을 택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여 용서와 사랑을 선택하고 미움과 원한을 선택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더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사망의 물을 쏟아 붓든지 생명의 생수를 불어넣든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원하오니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도와 주셔서 항상 밝고 맑고 환한 길을 택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