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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06년 4월 2일 주일3부 설교 제 목 : 나는 누구인가? 설 교 : 조 용 기 목사 말 씀 : 고린도전서 1:30~31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는 누구인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한국 농촌 총각의 40%가 동북, 동남아 외국 여성들과 결혼을 합니다. 많은 중국 교포들 또 월남 처녀들 혹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처녀들이 한국의 농촌 총각들에게 시집을 옵니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하루속히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얻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한국에 시집을 왔는데 이제 자기 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중간에 떠버려서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이 불안합니다. 정체불명한 사람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한 것입니다. 하루속히 주민증을 받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가 확실하게 되므로 뿌리가 내리고 마음에 안심을 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가 파리 근교에서 성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릴 때 불란서로 입양되어 그곳에 고등학교까지 공부하고, 대학은 영국에 가서 공부하고, 졸업한 이후 영국에서 직장을 얻어 사는 한 한국의 자그마한 아가씨가 제게 신앙상담을 원했습니다. 하루 조찬에 저와 함께 신앙상담을 했는데 그가 대뜸 제게 묻는 말은 “목사님, 나는 누구입니까? 나의 뿌리를 찾아 주십시오. 나는 불란서에서 자라서 불란서 말을 합니다. 영국에서 공부를 해서 영어를 합니다. 영국에서 직장을 얻고 살지만 불란서인도 아니고 영국인도 아닙니다. 한국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에 부모가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에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항상 마음이 불안합니다. 나는 부모님이 나를 버렸기 때문에 부모님을 특별히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를 찾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서 부모를 찾습니다. 과연 내가 한국인인가? 이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는 정체불명의 여자가 되어서 언제나 마음이 불안합니다. 내 정체를 찾아 주십시오.” 간절히 호소하는 호소를 들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국민일보를 통해서 그 부모를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항상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바람에 날리며 불안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우리에게 분명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처 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우연히 살다가 우연히 죽는 존재도 아닌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아메바에서 성장하고 장성하고 변화되어서 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셔서 예수님 안에 들어가게 해주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의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 구속받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지 않고 내 신변이 신분이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본론> 1. 지혜로 사는 존재 첫째로, 나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므로 지혜로운 사람, 깨달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깨닫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종교는 해탈을 주장합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힌두교도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고행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히말라야 산에 올라가서 금식하고 육체에 수많은 고통을 가하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합니다. 불교신앙도 깨달음의 신앙을 얻기 위해서 무수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위대한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일류대학을 안 나와도 유학을 갔다 오지 않아도 특별히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깨달음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시자마자 우리는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주가 우연히 생겼다고 말합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어떻게 우주가 우연히 생깁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살다가 우연히 가버리고 만다면 인간은 너무나 처절한 절망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섬기면서 살다가 육신의 장막 집 무너지면 하나님이 예비한 영원한 천국으로 간다는 확실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이 밝고 맑고 환하게 되어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요한복음 14: 6~ 7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라고 말했으며 골로새서 1:15~16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 2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형상이요, 영광의 광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는 아버지의 품에 영원히 살도록 지음을 받은 것을 깨닫게 되므로 우리의 신분이 분명해지고 정체성이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으로 인생의 생사문제뿐 아니라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시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죽는 것도 멸망이 아니라 육신의 장막집 벗어 버리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방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를 모르는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안개구름같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말인 것입니다. 사람은 죽으나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생사문제가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았으니 우리는 영원한 영광을 누릴 후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살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일을 예비해 놓은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더라. 그러나 성령이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어 우리 인생을 살 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바른길이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해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통해서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는 예수님을 앎으로 얻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명철하게 사리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삶은 그리스도를 알아서 내가 지혜의 근본을 모시고 깨달음을 얻고 사물을 잘 분별하는 명철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 세상에 학력이 이런 지혜와 명철을 주지 않습니다. 해외유학 간다고 이런 지혜와 명철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지혜와 명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잠언 3: 6에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골로새서 2:3에도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지혜가 있고 지식의 보화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속에 모시면 우리는 지혜로운 자, 지식 있는 자가 되고 깨닫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신론적 유물론에서는 인본주의가 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의 지혜로써 인생을 산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써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지혜 경쟁을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참말인 것입니다. 인생은 지혜의 경쟁인 것입니다. 지혜는 사물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인데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성장하고 발전하고 향상하는 삶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을 구하지 말고, 은을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혜는 바로 그리스도를 모시므로 지혜의 근본을 마음속에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통하여 우리는 명철하게 사물을 깨달아 알면서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이 인본주의적으로 인생을 산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다 깨닫지 못하고 캄캄한 흑암 가운데 방황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미국 남부를 농경사회에서 농업 산업사회로 전환시킨 농업과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는 위대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목화밭의 흑인노예 후손으로 어릴 때부터 “오늘도 새로운 지혜를 주시옵소서.”라며 늘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해충 피해가 갈수록 심해져 목화밭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목화밭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었을 때 그는 땅콩을 대신으로 심게 했습니다. 그리고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무려 300가지 제품을 발명해 냈습니다. 그리고 고구마와 포도의 산업적 가치를 발견해서 남부에 농업혁명을 일으켜 헐벗고 굶주린 남부사람들을 다 잘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국회에 초청을 받아서 강연을 하고 국회의원들이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놀라운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을 했습니까?” 하니까 그는 성경을 들고 “이속에서 다 얻었습니다.” “성경에 어디 그렇게 과학적인 것이 있습니까?” 하니까 “성경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나는 아버지를 알게 되고 아버지께 기도하므로 아버지가 내게 모든 과학적인 발명과 발견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은 예수를 구주로 모시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가 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지혜로운 아버지, 지혜로운 어머니, 주부, 자녀들, 사회인, 국가 경영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않고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생문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기 때문에 이것을 해탈해 나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고 그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냐.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므로 해탈함을 받아서 지혜를 받은 사람이요, 깨달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인생을 삶으로 모든 일에 문제해답을 얻고 성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독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조지프 리스토는 인체 수술이 시작된 19세기에 수술환자의 90% 이상이 죽는 것을 보고 세균 감염이 그 원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세균을 몰랐기 때문에 수술 칼을 소독 안하고 사용해서 세균이 감염되어서 수술을 받고도 90%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조지 리스토는 기도하는 중에 이것이 세균으로 말미암아 온다는 것을 깨닫고 수술을 방법을 개선했습니다. 수술도구를 불에 소독하고 수술한 결과 90%의 사망률이 80%의 생존율로 바뀌었습니다. 훗날 조지프 리스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 덕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주셔서 많은 사람을 부요와 생명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들에게 지혜가 되셨습니다.여러분은 예수를 구주로 모셨으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지혜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인 것입니다. 목매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두움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광명한 빛을 받고 깨달음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혜안에 거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지혜로써 인생을 사십시오.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세계를 지배했던 21개의 문명 가운데 19개의 문명이 자멸했는데, 그 이유는 무신론과 물질주의 문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21개의 역사적인 문명이 19개의 문명이 파멸당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그리고 인본주의에 섰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 기독교 심리학자는 무신론자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 안에 각인되어 있는 하나님 의식을 지워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본주의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파멸을 재촉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예수님 안에 있고 그 예수님의 지혜로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어떠한 역경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2. 의를 덧입은 존재 둘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모심으로 우리는 의롭게 태어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이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벌거벗었을 때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어 입힌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서로 쳐다보아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영광이 떠나자 순식간에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서로 부끄럽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뒤에 숨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치마를 엮어 입었으나 햇빛이 나니 말라서 쪼글쪼글하고 부서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치마를 만들어도, 만들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은 불쌍히 여겨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시고 가죽을 벗겨 영구한 옷을 입혀서 내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죄의 양심이 벗겨져서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 피를 흘리시고 의로운 옷을 벗겨서 우리에게 입혀 주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린 것처럼 예수님은 너희 죄, 나의 죄,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죄가를 지불하시고 당신의 의로운 옷을 벗어서 우리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부끄러움의 수치를 가득히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 지식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일시적으로 잊어버리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이 모든 옷은 다 필요가 없습니다. 벌거벗은 자기를 발견하게 되고 지옥으로 자기 스스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장마가 진 이후에 해가 번쩍 났을 때 마당에 나가서 거적 대기를 들춰 보십시오. 밑에서 많은 벌레들이 기가 막히게 빨리 어두운 곳을 찾아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그 벌레들은 어두움의 산물입니다. 어둠속에 있다가 햇빛이 비취니까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어두움을 향해서 줄달음질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인들이 지옥 가는 것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죄의 부끄러움이 얼마나 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수가 없어서 지옥의 어두움으로 줄달음쳐 도망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끄러움의 수치를 오직 가릴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그 의로운 옷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써 나서 우리에게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과거의 죄가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을 입음으로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믿고는 죽음을 겁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옷으로 화려하게 옷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고 하나님과 손을 잡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요한일서 2: 2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하셨으며, 고린도후서 5:21에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면 하나님처럼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원래 아담이 범죄 했을 때 그 죄 대신에 짐승이 죽고 피를 흘리고 가죽옷을 만들어 입은 것이 인류의 생각 속에 다 박혀 있습니다. 인류는 아담, 하와 이후로 노아홍수 이후로 온 세계 퍼져 살았지만 피 흘림이 없이는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족속들도 다 신 앞에 나갈 때는 피를 흘려야 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알고 그것을 집행했던 것입니다. 멕시코는 유행병이나 재난이 오면 흠 없고 잘 생긴 청년을 골라서 여러 가지 색을 칠합니다. 그 젊은이가 큰 소리로 “내 죄를 가져가시오!”라고 여러 번 외치면 그를 죽여 피를 뿌렸습니다. 아테네는 도시에 질병이 만연하면 가난한 사람을 돈 주고 샀습니다. 도시의 군중들이 그 사람을 향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 후 돌로 쳐서 피를 흘려 죽게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람의 심장을 찔러 피를 뿌리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심장에서 나온 피를 병에 담아 신의 노여움을 풀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해마다 궁중에서 거위나 닭, 소 같은 짐승의 목을 찔러 피를 뿌렸고, 우리나라도 무당이 푸닥거리를 할 때는 돼지 목에 피를 내고 열십자를 긋고 그 가운데 칼을 콱 박는 습관이 있습니다. 기독교 인간학자 알렉산더 그리골리아(Alexander Grigolia) 박사는 “세계 인구의 95%가 피로써 신께 제사를 드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신께 죄를 짓거나 악을 행했을 때에 어떤 종류든지 꼭 피를 의지해서만 속죄 받는다고 믿는 것이 원래부터 타고난 인간의 성품”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아담이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벌거벗었을 때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그 가죽을 벗겨 옷을 입힌 것처럼 인생이 타락해서 멸망당하는 사람은 짐승의 피로써는 안 됩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해서 피를 흘려서 죄 없는 자가 우리의 죄를 대신 청산하시고 그 의로운 옷을 벗겨 우리에게 입혀 주시므로 우리의 예수 믿고 얻은 옷은 너무나 의롭고 영광스러워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과거가 한번도 죄를 안 지은 것처럼 맑혀지고 그 피로 의로운 옷을 입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로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거룩하게 하신 존재 셋째로, 예수는 하나님께로써 나서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이요, 마귀의 종입니다. 세속이란 더러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패하고 오염되고 썩어진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오고 죽음은 썩고 썩으면 온갖 벌레가 그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이 죄를 짓고 죽었으므로 그 죽은 가운데 모든 더러운 벌레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불의, 추악, 저주, 절망, 음란, 방탕, 시기, 분노, 질투 온갖 더러운 것이 다 영의 죽음에서 꿈틀거리고 나와서 인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오염이 공기, 물, 음식, 생활, 환경을 부패시켜 병과 죽음을 가져오는 것처럼 영혼이 죽어서 그 속에 오염을 통해서 수많은 사망의 더러운 것이 나와서 인류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26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으며, 출애굽기 23:25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오염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했었으며, 로마서 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사망을 누가 제할 수 있습니까? 사망으로 말미암아 다가온 죽음을 누가 철폐하고 죽음에서 기어 나온 이 더러운 모든 벌레들을 누가 제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지식과 총명, 제도와 노력으로써는 이 사망을 철폐할 수 없고 부패를 철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보혈이 죄를 없게 하고 그 보혈로 말미암아 다가온 성령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죄의 오염을 제하시고 성령께서 사망을 제하시고 거룩함과 신령한 생명을 주시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 1~ 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방된 사람인 것입니다. 압박과 설움에서 수천 년을 고난당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습니다. 죄가 사라지자 사망이 청산되고 거기에서 나온 모든 썩어짐의 더러운 것들이 다 제하여지고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깨끗해지고 거룩하고 성령님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중국에는 “종록자 불견산”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사슴을 잡으러 뛰어 가다가 자기가 나중에는 깊은 산속 늪 속에 들어와서 빠져나갈 길을 잃어버리고 사슴도 잡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리고 늪에 빠져 죽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탐욕이라는 사슴을 쫓아서 깊고 깊은 죄악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사이 신문과 라디오, TV에 보면 계속해서 범법자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특별한 커미션을 받았다. 비자금을 만들었다. 부패를 했다. 부정을 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서 늘 그 소리를 듣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탐욕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탐욕이란 노루를 잡으려고 따라가다가 보니 너무 깊이, 깊이 들어와서 그만 나무숲을 모르고 늪을 모르고 숲에 걸리고 늪에 빠져 좌절과 절망에 처한 것입니다. 마귀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탐욕으로 우리는 끌어가는 것입니다. 탐욕만 쳐다보고 끌어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장자크 루소는 인간에 대해, “열 살 때에는 과자에 따라가고, 이십 대에는 연인에게 따라가고, 삼십 대에는 쾌락에 따라가고, 사십 대에는 야심에 따라가고 오십 대는 탐욕을 따라간다. 그러나 이렇게 무엇엔가 끌리고 있는 동안 인간은 허수아비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자기가 사는 것 같지만 실제는 자기가 아니라 탐욕이 주인이 되어서 탐욕이 끄는 대로 천방지축으로 따라가다가 나중에 좌절과 절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욕이라는 것이 바로 죄의 썩어짐의 산물인 것입니다. 죄에 빠져서 썩어진 곳에서 탐욕이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섬기고 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면 탐욕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죄의 오염을 제하시고 성령께서 사망을 제하시고 거룩함과 신령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4. 구속 받은 존재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서 우리에게 구속함이 되셨습니다. 구속함이란 값을 주고 종을 사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으로 팔려서 옴짝달싹 못하고 도저히 해방될 수 없는 사람을 값을 주고 사주어서 종 문서를 찢어 버리고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것을 구원. 즉, 구속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의 종, 질병의 종, 저주의 종, 죽음의 멸망의 종이 되어서 헤어나 올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우리를 값 주고 하나님 앞에 사서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 6에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 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히브리서 9:12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 5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고, 요한계시록 5: 9~10에는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피를 흘리시고 몸을 찢으셔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다. 우리 공짜로 구원받은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엄정한 값을 지불했습니다. 당신의 피로 값을 지불하고 살을 찢어서 그 값으로 지불하고 생명을 쏟아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종에서 사서 하나님 앞에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값비싼 산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귀하고 귀한 것은 너무나 고가의 대가를 주고 우리를 샀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귀한 소유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병의 종살이에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영의 병, 마음의 병, 육신의 병, 가정의 병, 생활의 병, 병이 들었습니다. 병이란 비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건강이 허물어지면 병들지요. 정상적인 마음이 아니면 병든 마음이지요.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은 병든 가정이지요. 정상적이 아닌 사회는 병든 사회지요. 주님은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시편 103: 3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24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은 비정상적인 것에 오셔서 정상적으로 만듭니다. 마음을 정상적인 마음으로, 육체를 정상적인 건강으로, 사회, 국가를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예수님의 치료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비정상적인 곳에 예수를 모시고 기도하면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정상적인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저주의 종살이에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인생들은 저주받은 사람이 되어서 저주받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찔리고 상처투성이로 인생을 살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 대신하여 저주를 받아서 저주를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14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 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으며, 고린도후서 9: 8절에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저주에서 몸부림치기를 원치 않습니다. 가시에 찔리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헐벗고 굶주리고 남에게 구걸하고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저주의 종이 된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와서 대신 저주를 다 청산하시므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세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잠자리에 들어갈 때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크게 외치고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이 되고 그 대가를 주님이 지불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의 멸망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죽잖아요.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음이 절망이요, 마지막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은 하나의 커튼을 펼치고 저 건너편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저 강 건너 언덕 편에 아름다운 땅이 있도다. 믿음으로만 그곳에 가겠네. 우리는 믿음으로 저 건너편에 가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예비한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망의 장막을 무찌르시고 부활과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죽음의 어두운 길은 예수의 부활로 광명한 대로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우리는 살지 죽지 않습니다. 주를 모르는 사람은 죽음에 처하면 멸망당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우리들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2:14~15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58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율법을 다 철폐하시고 사망을 철폐하시고 우리에게 부활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고 천국에 광명을 이미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1847년 성 안드레 교회에서 50년간 목회한 라이트 목사(Henry Francis Lyte)가 스코틀랜드의 항구에서 출발해 프랑스의 리비에라로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 번 기항지인 프랑스의 북부 항구에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여관에 묵었습니다. 그런데 여관주인이 보니까 이 손님이 나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나가서 문을 두드려서 소리가 없기에 열어보니 세상을 떴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뜨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책상에 엎드려서 시를 적었습니다. 그 시 한 편을 적어 놓고 책상에 엎드린 채 세상을 떴는데 그 시가 바로 오늘날 전 세계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 531장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인 것입니다.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 /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 내 친구 나를 위로 못할 때 /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주 홀로 마귀 물리치시니 / 언제나 나와 함께 하소서 / 주같이 누가 보호하리까 / 사랑의 주여 함께 하소서 이 육신 쇠해 눈을 감을 때 / 십자가 밝히 보여 주소서 / 내 모든 슬픔을 위로하시고 /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마지막 그는 숨이 넘어가면서 이 아름다운 찬송에 놀라운 희망으로 가득히 채워서 적어 놓고 세상을 뜨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죽음의 사망에서 구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숨지는 순간에도 승리의 찬송을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네 가지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소속감입니다. 내가 어디에, 누구에게 소속되어 행복할 수 있는가를 본능처럼 알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소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주셨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십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우리의 소속감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단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단지 여의도순복음교회 소속한 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소속감이 분명합니다. 둘째는 한계성입니다. 나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 있으며, 그 한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계를 압니다. 우리는 다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계를 알기 때문에 저 건너편에서 손을 내미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지혜나 총명이나 모략이나 재능이나 지식이 모자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이 있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얻어 인생을 성공하고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계를 아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유일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독특한 피조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정말 독특한 사람입니다. 제가 2부 예배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러 내 방에 들어가는데 제 집사님이 옷을 갈아 입혀 주면서 “왜 자꾸 코를 훌쩍이느냐? 코를 훌쩍이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유일한 조용기다. 이 우주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미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코를 훌쩍이든 무슨 상관이냐?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 한 사람밖에 안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같은 사람 이 우주 속에 한분밖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례적 사건입니다. 과거를 다 들춰 보아도 여러분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요.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유일한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해요. 여러분이 두 개, 세 개 있으면 덜 사랑할지 모릅니다만 여러분은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기쁘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평가절하하지 마십시오. 폄하하지 마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자기의 개성을 기쁘게 생각하십시오. 넷째는 정체성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감각을 바르게 가질 때 값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정체성이 확실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지혜 있는 사람이 되어 깨닫게 되고 나는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죄를 벗어나고 영광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이 되며 나는 세상의 죄와 부패를 벗어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으며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값주고 사서 이제는 종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자유인, 해방인이 되어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사람이 되었다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나의 신분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나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신분, 새로운 정체성을 확실히 알고 있으므로 요동치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결론> 내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예정이 있어 태어나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을 받은 당당한 신분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태어나서 덧없이 살다가 죽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예정이 있어 태어나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을 받은 당당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고등동물이 아닙니다. 정체가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늘 알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정체성 상실의 위기에 처해있지 않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부평초 같은 인생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지혜를 얻어 깨달은 사람이 되어서 해탈을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속받아 해방과 자유를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체성이 확실하고 신분이 뚜렷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