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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7. 성찬주일설교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항상 잊지 말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장 6)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두 가지 기본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이 첫째 신앙기반이요, 둘째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상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 신앙에 튼튼한 기반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세 종류의 사람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분별해 보면 성경에는 먹고 마시고 항상 연락하는 무신론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탕자입니다. 탕자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에 보면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이 부자는 자색 옷을 입었다. 자색 옷은 권력을 가진 사람만 입는 옷입니다. 고운 베옷은 부자만 입는 옷입니다. 권력도 있고 돈도 있으니까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이 사람은 무신론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죽고 난 다음 사후에 심판이 있을 것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도 죽었어요. 항상 연락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니 나이를 먹게 되고 별수 없이 죽었습니다. 죽어보니까 음부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영혼이 음부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매 ‘아~ 내가 세상에 잘못 살았구나! 잘못 알았구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내 마음대로 살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되면 내 마음대로 못해요.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이 수도사들을 불러 가지고서 “너희들 각자 새를 한 마리 잡아 죽여서 가져 오는데 아무도 안보는데서 새를 잡아서 가져오라!” 왜 그런 명령을 내렸냐면 그 수도사들 중에 참 훌륭한 청년이 있었는데 이 청년을 질투해 가지고서 다른 수도사들이 못살게 군다 말입니다. 그래서 이 청년을 인정해주기 위해서 청년은 자기의 뜻을 알아 줄 것을 짐작하고 다 보냈습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수도사들이 산을 헤매고 들을 헤매어 모두 다 죽은 새를 한 마리씩 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오지 않아요. 그래서 수도사들이 희희낙락하고 “보아라, 새를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야 산새를 이렇게 쥐고서 왔거든. 그래 원장님이 말을 했습니다. “죽은 새를 가지고 오라 했지 산 새를 가지고 오라고 했느냐?” “아니 원장님 아무도 안보는데서 이 새를 잡아서 오라고 했지요?” “그래. 너희들은 아무도 안보는데서 잡았느냐?”고 하니까 다들 “예! 아무도 안보는데서 잡았습니다.” “너는 왜 아무도 안보는데서 못 잡았느냐?” “원장님, 어디가도 누가 보고 있어요. 굴속에 들어가서 잡으려고 하니 그분이 보고 있고, 나무 밑에 들어가서 잡으려고 하니 그 분이 보고 있고, 앉아도 그분이 보고, 서도 그분이 보아서 그 눈을 피하지 못해서 산채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원장이 박수를 치면서 “너 잘알았다. 네가 정말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을 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우리 양심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마음문을 열어 놓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우리 마음속에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무신론자로써 하나님을 인정도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고, 영혼이 있는 것을 인정도 아니하고 마음대로 살다가 주지육림 속에 빠져서 살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서 그때야 후회를 해도 늦었습니다. 그 다음 종류의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으나 상주시는 것을 모르고 평생에 거지로 산 나사로입니다. 이 부잣집 대문앞에 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거지가 바로 나사로 아닙니까? 온 몸에 헌데가 나서 개들이 와서 함께 잠을 자고 헌데를 핥았습니다. 그러나 거적때기에 누워 있으면서 신앙은 좋아요. 누워 가지고서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요기도 다해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거지가 되어서 부자의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어요. 그 사람에게 한번 물어봅니다. “당신 왜 하나님을 그렇게 잘 믿으면서 거지로 삽니까?” 그 사람의 철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과 물질을 사랑하지 말아야 된다.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에 부하고자 하면 영혼의 죽음을 가져온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상과 부귀를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찾는다. 오직 하나님만 찾으니까 세상 물질은 없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잘사는 신자들은 엉터리들이다. 나같이 이렇게 거지로 살아야 올바른 신앙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병이 들어 죽어가도 치료도 못받고 부잣집 대문 밑에 거적때기 깔고 앉아서 얻어 먹고 있다. 그런 신자들이 많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부자되면 엉터리 신자다. 가난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헐벗고 굶주리면 참으로 신령한 사람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사람은 엉터리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하니까 조용기는 기복주의자다. 복달라고 믿는 기복주의자다. 나는 그 말이 섭섭하지 않습니다. 왜냐, 성경에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저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상 안주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상을 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예수도 잘 믿고 돈도 잘 벌고 교회도 열심히 나오고 부자가 되고 그래야 참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지금 아이티에 지진이 나서 온 세계가 구제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무슨 구제를 할 수 있습니까? 자기 팔자도 고약한데 누구를 도와주는 것입니까? 우리 교회가 굉장히 많은 구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한사람들을 보내어 가지고서 직접으로 구제를 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 교회 교인들이 평균적으로 다 잘 살고 열심히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교회 나오면 돈 달라는데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교회만 오면은... 십일조 내놓아라. 헌금 내놓아라. 무슨 회비 내놓아라. 구제금 내놓아라. 정말 내놓으라고 하는 것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낼 것 뭐가 있습니까? 나는 없습니다. 나는 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어야 선한 일도 하지 물질이 없는데 어떻게 선한 일을 합니까? 이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가난하고 거지가 되어야 신령해진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20절로 21절에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정말 모범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합니다. “왜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저 많이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 중에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다 골고루 복을 주셔야지요.” 미국 시카고의 한 빈민가에서 목사와 이발사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지저분하고 악취가 풍기는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발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로 목사님이 증거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런 것을 보시고 내버려 놓습니까? 도와 줘서 좀 살게 만들어 주셔야지요.” 그 목사님이 대답을 안하고 한참 그 이발사와 걸어가다가 마침 히피 청년 한사람이 다가오거든. 머리를 산발로 하고 수염을 이렇게 늘어뜨리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있는데 저 사람은 머리를 저렇게 늘어뜨리고 수염을 저렇게 길게 기르고 추잡하게 다닙니까? 당신 같은 이발사가 우리 시카고에 있는데...” 그 이발사가 허허 웃으면서 “목사님! 내게 안 오니까 그렇지요. 이 친구가 내 이발소에 왔다면 내가 미남으로 만들어 놓지요.” “그래요?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한지 압니까? 하나님께 안오기 때문에 가난하지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을 충심으로 섬겼으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했으면 모든 것이 더해졌을 것입니다.” 저 사람 이발소에 안와서 못 깎아준 것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구하지 않는 사람 도와줄 수 없는 것이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주님 말씀하기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나님은 안도와주신다. 하나님은 축복 안 해주신다. 거지로 사는 것이 신령하다고 믿으면 그 믿음대로 해주는 것입니다. 오냐 네 믿음대로 해주마. 그러나 상주시는 하나님인줄 알고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금도 드리고 철야기도도 하고 금식기도도 하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긍정적으로 믿고 나가면 하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대로 또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긴 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상주시는 이시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평생에 거지로 산 나사로와 같이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해야 신령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 믿은 것입니다. 미국이 가난하고 거지나라였으면 온 세계뿐 아니라 우리 한국은 지금 살지도 못합니다. 6.25사변 났을 때 미국에서 온 그 구제물자들이 산더미같이 왔습니다. 그 산더미 같은 구제 물자가 안 왔으면 우리 한국은 굶어죽었어요. 그리고 한국 교회도 미국 선교사들을 파견해서 그들이 연세대학도 세웠고 세브란스병원도 세웠고 수많은 교육기관과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서 우리가 지금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이렇게 왕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미국이 잘살았기 때문에 그렇지 미국이 거지였으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까? 미국이 저 아프리카 어느 나라처럼 가난했으면 전혀 도와줄 수 없지요. 그러니까 거지로 사는 것이 신령한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근데 보세요. 여기에... 하나님도 살아계심도 알고, 상 주시는 하나님께로서 금세와 내세에 상을 누린 사람이십니다. 누구시지요? 누가복음 16장 23절로 24절에 “그가 음부에서”(그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 보십시오. 천국에 좌장으로 계시는데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 있을 때 나사로처럼 거지였습니까? 거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복주며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아브라함에 대해서 평할 때 은과 금이 풍부하고 짐승떼들이 많아 거부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이 땅에 사는 동안 거부였습니다. 그러나 거부이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데는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외아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데로 잡아서 바치려고 모리아산에 올라갔던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줄 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성자는 아니였습니다. 아브라함도 거짓말을 해가지고서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해서 애굽의 바로에게 시집보내서 그 댓가로 짐승들을 선물로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안건져 주었으면 영원히 바로의 마누라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또 자기 부인의 몸종을 마누라로 취해 가지고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자기 마누라하고 자기 마누라 몸종을 데리고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중에 그 문제를 해결 안해줬으면 아브라함의 생애에 굉장히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또 자기 조카하고 싸웠습니다. 초지 때문에 조카하고 싸워서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전쟁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아주 성자가 되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아브라함에게는 우리가 따를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절대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 믿음을 의로 여겼다. 하나님을 절대로 믿고 하나님께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순종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어요. 우리 이웃에서 하나님이 “네가 참 의로운 사람이구나. 내가 복주겠다.” 그렇게 칭함을 받을 만한 사람 있거든 한번 손을 들어보세요.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 왜 없나? 우리 장로님들 중에 한분도 없어요? 다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대표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도 믿고 순종한다는 그 신앙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섬기며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사람인 아브라함도 지상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 큰 부자로 살고 천당에 올라가서 낙원에 들어가서 낙원에 매니저가 된 것입니다. 낙원에서 제일 으뜸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옛날에 똑같이 살았는데 아브라함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삼중축복을 받고 온전히 축복받고 있다가 하늘나라 갔고 부자는 육신적으로 돈만 많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으로 내려갔고, 거지 나사로는 거지가 되어야 훌륭한 신앙생활 한다고 신앙은 잘 가졌지만 생활은 이 세상에서 거지로 살다가 천당은 갔습니다. 요사이도 한가지에요. 요사이도 많이 생활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거지같이 살면서도 주님을 잘 믿어 천당에 가는 사람 많습니다. 그 사람이 거지같이 사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렇게 해야 잘산다고 훌륭한 신자가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가르치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교회 오면은 헐벗고 굶주리고 빈손 들어야 착실한 신앙자가 된다. 잘 먹고 잘 입고 돈벌이 하면은 타락한 세속적인 사람이 된다. 그렇게 가르치는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분명히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세상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다 누렸고 천당까지 갔습니다. 천당도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나사로는 평생에 거지로 살면서까지 하나님을 믿었으나 아브라함보다 놓은데 못 올라갔습니다. 부자는 하나님 없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살다가 불꽃 가운데 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잘 믿고 축복받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 축복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누리지 아니하고 세상의 정욕을 위해서 누리면 그것은 절대 아니지요. 그것은 나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부자라도 내 마음 속에 주님이 중심에 서있고 내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면 있으면 있을수록 좋습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시면 주실수록 더욱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쓸테니까.. 2. 하나님을 체험해야 살아 계심을 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을 체험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아야 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아는 데는 여러 가지 체험이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바로 왕을 세운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이 얼마나 밝은가 보면은 어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건강이 얼마나 좋으냐. 병들어 봐야 아는 것입니다. 평안이 얼마나 좋으냐. 환난을 당해봐야 아는 것입니다. 음식이 얼마나 좋으냐, 배고파 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냥 설명을 하면은 머릿속에 아~ 그런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실제로 당해봐야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아마 그런가 보다. 머리로써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 속에 절절이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안믿는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예수를 믿는 사람조차도 어 하나님, 성경에 하나님 살아 계신다고 그랬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교회 열심히 나갔어. 그러니까 나도 긴가민가 하면서도 교회 나가고 있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가운데 시험과 환난이 종종 다가오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타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필요해야 하나님을 찾지 필요 안하면 하나님을 안찾는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나타날 수 있지 기도도 안하는데 나타날 수가 없어요. 출애굽기 10장 2절에 보면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야훼인 줄을 알리라” 애굽에서 주님이 큰 기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 기적에 애굽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행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고 그것을 확실히 적어서 후손들이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이제 온 천하만국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될 때가 왔을 때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증거하기 위해서 베드로를 총독에게 잡히게 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끄집고 나와서 참형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감옥에 가둬 두었는데 도저히 사람의 생각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감방이 특수해서 감방 안에 군인 두 사람이 양팔에 벨트를 끼고 쇠고랑으로 채워서 같이 누우면 같이 눕고 그리고 같이 걷도록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베드로 꼼짝도 못해요. 이쪽에도 로마군인하고 쇠고랑차고 이쪽에도 로마 군인하고 쇠고랑차고... 그 방에 철문을 나가면 저 밖에 또 군인이 네 사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 거기 밖에 나가면 또 철문이 있는데 거기 또 군인이 네 사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적으로 베드로가 그곳에서 빠져나가서 살수가 없어요. 그런데 내일 끌려 나가서 참형을 당해야 될 것인데 오늘 저녁에 밤에 쿨쿨 자고 있는데 누가 와서 발로써 옆구리를 콕콕 차거든... 그래서 보니까 흰옷입은 사람이 “일어나라.” 일어나니까 철고랑이 자연적으로 철컥철컥 열려버리거든... 그러나 로마군인은 코를 곯고 자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 철문을 나오는데 철문이 그대로 자연적으로 열려서 그 사람 뒤를 따라 나오는데 거기에 있는 로마군인들은 눈뜨고 가만히 보고 있어도 나간줄을 몰라요. 청맹관이에요. 그러니까 그 문을 통하고 그 다음 또 문을 통하는데 거기에 있는 로마군인도 눈뜨고도 못 봐요. 그래서 길거리에 나와서 한참 가다가 이 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때야 베드로가 “야~ 천사가 와서 나를 이 죽음에서 건졌구나.” 그래서 그가 마음에 용기 100배한 것입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선교역사에 하나님이 정말 기적적으로 같이 계신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5절로 11절에 그 말이 기록되어 있어요.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았노라” 바이올라 왈덴(Viola Walde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홍해가 당신 앞을 가로막고, 왼쪽에는 산이요 오른쪽에는 광야가 있으며, 뒤에서는 애굽 군대들이 말을 타고 쫓아온다면,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라. 왜냐하면 그 상황은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야 안성맞는 찬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는 사람의 힘으로 못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절망적인 골목에 들어가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나타날 수 있는 찬스가 온 것입니다. 자기가 다 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 기회를 주지 않아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다 하지요. 그리고 난 다음 하나님은 조수로써 와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조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주인이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부르짖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완전 승리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자기도 체험하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폐병 걸려서 죽다가 살아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이렇게 뼈저리게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병원에 입원해서 좋은 약 먹고, 주사맞고, 수양해서 나았다면 아~ 20세기 과학에 의해서 나았다고 할 것인데 6.25사변 이후에 헐벗고 굶주리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데 무슨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좋은 약 먹고 입원할 수 있습니까? 어려운 곳에 가는 곳마다 의사들은 고개를 흔들면서 1년 이상 못 견딘다. 폐중엽이 다 썩어 내려 앉았고 여기는 폐가 균이 주룩 찼는데... 그런 절망적인 처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기도해서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은혜를 베풀어서 병을 고쳐 주었으니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지요. 안계시면 내가 죽어야 될 것인데 주님이 안 계시면 내가 죽어야 되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 것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내가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이 모두 다 크고 적은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냥 은혜도 필요하지만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크고 적은 일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면 그 믿음은 진실로 만세반석 위에 선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말씀과 성령을 통해 은혜의 체험을 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은혜를 받아야 되요. 말씀을 듣고 성령충만을 받고 은혜를 체험하면 그 은혜가 그 마음속에 하나님 살아계신 것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그가 살아계신 것을 알아야 된다고 하니까.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교회 와서 말씀을 듣고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와 같이 성령이 오셔서 마음에 큰 감화와 감동을 주고 눈물이 나게 하고 마음을 뜨겁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어 주시면 믿음을 가질 수 있어요. 참으로 좋은 체험입니다. 성령께 은혜를 받아서 그 좋은 체험을 가지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스티븐 스코트(Stephen Scott)라는 사람은 성경 읽기로 지혜를 얻어서 거대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다니던 직장에서 퇴출을 당해 9번이나 직장을 잃고 좌절에 빠졌습니다. 별로 유능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암담한 현실 속에서 헤매던 어느 날 그는 한 백만장자를 만나게 되어 백만장자가 되는 비결을 물어보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만장자가 말하기를 “당신은 매일 성경 잠언서를 한 장씩 읽으세요. 그러면 2년 안에 사장보다 더 똑똑해지고 5년 안에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 뭐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스티븐은 그날부터 매일 잠언을 한 장씩 읽으며 지혜를 구했습니다. 몇 년 뒤에 그는 회사를 설립했어요. 그는 백만장자의 말대로 수십억 달러를 판매하는 부자가 되었고, 자신이 성경을 통해 얻은 지혜를 <솔로몬 부자학 31장>이라는 책으로 출간하기도 한 것입니다. 이 성경이 하나님의 지혜의 책입니다. 이 성경이 보배 덩어리에요. 다 잃어버릴지라도 성경 한권만 있으면 또 머리가 되고 꼬리가 안 되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을 정규적으로 못 받고 어려운 생활을 했더라도 말씀 안고 나가면 21세기 아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철내적인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은혜로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은혜를 가지고 산다. 그것 다 체험한 말인 것입니다. 우리 삶의 지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 늘 말씀을 읽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은혜를 체험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씀과 성령을 통해 은혜를 체험함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성령께 기도해서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해주십시오 간구하십시오.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그 지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너희 인간 힘으로 하면 한계가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같이 하시면 무한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죽이고 하나님이 그 자리에 들어와서 사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 나오는 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어야 되요. 안 그러면 은혜 받을 수 없어요. 3. 잘못된 신앙, 가난과 실패 그리고는 두 번째는 하나님이 저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는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잘못된 신앙은 가난과 실패를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희미하게가 아닙니다.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어떻게 하신다구요?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상 안주시는 하나님인줄 생각하지 마십시오. 잠언서 22장 4절에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겸손과 야훼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하고 야훼를 경외하면 보상이 오는데 재물이 보상으로 오고 영광과 생명이 보상으로 온다. 아 그런데 왜 하나님 믿어도 가난해야 된다는 말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 찾아도 별도리없다. 하나님 찾아도 거지로 살아야 된다. 그러면 성경 뜯어 고쳐야지요. 저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을 안 믿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히브리서 13장 8절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옛날에 믿는 자에게 상주시는 예수님은 오늘날 믿는 자에게 상 안주시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동일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론적으로 생각해 봐라.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어떻게 안주겠느냐?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한 두 가지가 아니라 우리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보면 우리 조상의 하나님은 거지 아닙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 다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이 연결된 곳마다 축복이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지로 살았습니까? 창세기 13장 1절로 2절에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세기 24장 35절에 “야훼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다” 종이 주인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어떻습니까? 창세기 26장 12절로 14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와~ 많이 얻었네. “야훼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에요. 그러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창세기 30장 42절로 43절에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세기 32장 10절에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지팡이만 짚고 빈손으로 요단을 건너서 외삼촌 집으로 갔는데 그가 20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 한 떼, 두 떼 바다 모래같이 많은 짐승 떼를 거느리고 돌아오는 거부가 되었었습니다. 그 아버지도 거부요, 그 아들도 거부요, 그 손자도 거부요. 하나님 나는 그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 아들 이삭의 하나님, 그 손자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창세기 41장 41절로 43절에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13년 전에 형제들이 질투해서 종으로 팔아먹은 사람이 13년 후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요사이도 여러분 세계를 여행해 보면 굴지의 부자들은 다 유대인들입니다. 정치적으로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분도 거의 다 보면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탄 3분지 2가 유대인인 것입니다. 왜그러느냐 그들은 비록 예수를 믿고 구원은 받지 않았지만 성경은 믿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늘 읽고 묵상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았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 혈통에만 주었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26장 6절로 9절에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야훼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야훼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지 메마른 광야를 주시지 않는다 그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조금 철이 듭니다. 저는 요사이 빈 손 들고 서울에 올라와서 5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얼마나 저의 삶에 축복해 주신 것을 생각하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정말 부산진역에서 삼등 열차를 탔을 때 깜깜했어요. 서울에 일가친척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오직 예수님만 내 가슴속에 계셨어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5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나가니까 삼등열차 타고 온 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일등 열차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왠 말인가. 왠 일인가. 왜 주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은 복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면 이발사가 없어 히피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히피가 이발사에게 안 오니까 히피가 되지요. 예수 잘 믿으면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것이 잘 믿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이 은총을 주시고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었으면 그렇게 안 될 것인데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것이 신령한 생활이요, 하나님께 복 받는 생활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다 잃어버리고 빈 손 들고 나사로처럼 살다가 천당은 가지만 가난하게 산다. 아브라함이 나사로 믿은 것은 잘 믿었는데 세상의 거지가 돼서 믿었냐. 나봐라 나,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 거부가 되어서 이삭과 야곱과 요셉 다 보아라. 하나님 믿는다고 거지 되는 것 아니다. 너는 잘못 믿어가지고서 하나님 그렇게 잘 믿으면서 거지가 되어야 잘된다고 잘못 생각했다 말이야. 그래서 거지로 살았잖아.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은 잘 믿어서 천당 온 것은 다행이다. 여러분 예수 믿은 것 다행입니다. 천당 가니까. 그러나 거지가 되어서 가지 마십시오. 그것 별로 명예스럽지 못합니다. 나사로처럼 천당 가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살다가 천당가야 되요.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보면 예수님이 대속의 은혜 속에 축복의 말씀이 많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다 같이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게 사니 우리도 예수님 뒤를 따라가야 되겠다. 천만에요. 성경은 예수님이 엄청나게 부요한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가난에서 건지기 위해서 대신 가난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면 부요하게 되어야 예수님 가난하게 사는 효과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도 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뭐 끝장났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결론> 1912년 보스턴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지만 늘 ‘비록 내가 가난하고 공부도 못했지만 하나님을 먼저 섬기며 살겠다.’고 마음에 작정을 했습니다.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십일조를 드리고 철저히 주일성수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부어주셔서 10대에 이미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름에는 얼음을 팔아서 돈을 벌고, 그 후에 공장이나 건설노동자에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아서 제법 많은 돈을 모았습니다. 30세에 점심을 배달해 주는 ‘모빌 런치 서비스’라는 회사를 세워서 성공을 했습니다. 그가 바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커피&도넛”하면 떠올리는 ‘던킨 도너츠’를 설립하여 크게 성공한 로젠버그(William Rosenberg)인 것입니다. 던킨 도너츠. 현재 로젠버그의 던킨 도너츠는 미국에만 1천 700여 지점이 있고 세계 100여 개 나라에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72세 되었을 때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기자가 그의 성공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가난하고 못 배웠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늘 제 짐을 맡아 주셨습니다. 제가 성공한 것은 제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셔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내게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어릴 때부터 나가서 노동장에 가서 노동을 해야 하는 그런 처지에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까 일사천리로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다 말입니다. 로젠버그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신앙만을 가지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상을 주셔서 세계적인 기업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뭐하는 분이시라고요? 상주시는 이심을 알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상받아봐야 학교 다닐 때 상 받아 봤습니까? 상 받으면 기분 좋지요? 우리 생활에 주님이 상 주시면 우리 얼마나 기쁩니까? 하나님은 상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저는 상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상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는 세계를 115바퀴나 돌면서 수십만, 수백만에게 하나님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좋은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상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자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중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이 상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확신하고 믿고 순종하고 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러분이 오늘 어떤 시련과 환난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여러분 혼자 인생을 살도록 던져짐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지극히 가까이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여러분 밖에 없습니다. 보통 사람은 아빠라고 못 불러요. 어떤 딸이 시집을 갔는데 그 본가와 친정이 같은 집에 살게 되었어요. 큰 집을 구해가지고서 본가와 친정이 같은 집에 사는데 이 딸이 설날이 되자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전화를 받거든요. “아빠 새해 복 많이 받고 하나님 축복 많이 받으세요. 아빠 건강 조심하고 오늘 많이 챙겨 잡수시고 아빠 잘 돌보세요.” “오냐. 오냐” “아빠 아버님께 전화 좀 바꿔 주십시오.” 자기 친아버지는 아빠라고 하지만 시아버지는 아빠라고 안하고 아버님께 전화 바꿔 주십시오. 며느리는 아빠라고 못한다 말입니다.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말하지. 딸은 아빠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아빠 아빠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바, 파바. 아바 아버지여,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친합니다. 아주 친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체험을 자꾸 하세요.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은 여러분 문제를 해결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의지하면 기적이 일어나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자랍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십시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사세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부잣집 대문 앞에 거적때기 깔고 사는 그런 신세가 되지 않습니다. 남에게 늘 손 내놓고 구걸하고 다니는 신세가 안 됩니다. 복을 받아서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마음이 감동이 되고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우리 너무나 하나님을 잘 못 믿고 있습니다. 두려운 하나님, 깍쟁이 하나님, 우리를 모른채 하시는 하나님,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 여러 가지 부정적인 마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아버지여, 부자와 같이 사람 되어서 무신론자로 살다가 지옥가지 말고 나사로와 같은 좋은 신자가 되지만 복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지 못해서 거지가 되어 살지 말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처럼 복주시고 번창케 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모든 성도에게 나타나서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번보다 더 향상하고 발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기적의 하나님이여 주님께서 모든 사람속에 기적으로 나타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이 임하여서 가난이 다 대속되고 그리스도의 부요가 넘쳐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