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7. 성찬주일설교

제일 무서운 적(敵)은 스트레스이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야훼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 19장 1~8절)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우리 계산에 예수님도 반드시 넣어 달라는 것입니다. 너 있고 나 있는데 예수님도 계산에 넣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마음에 담대함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서론>
오늘 저는 “제일 무서운 적은 스트레스이다”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인간이 당하는 치명적인 병 즉 각종 암, 뇌졸중, 심근경색 가지가지 소화기관의 병들이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합니다. 우리들이 앓는 병의 70% 이상이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읽어보면 스트레스에 걸려 암 등 다양한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을 한 사람도 볼 수가 없습니다. 희안하게 성경에 족보를 읽어보면 다 운명대로 살았었습니다.
“스트레스”란 말은 한 물체에 가해지는 압력이나 물리적 힘을 가리키는 의미로 원래 물리학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제가 공업학교에 기계과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스트레스 스트레인 엘롱게이션 다이어그람이라고 해서 물체의 압력을 가해서 그것이 견디는 한계점을 다이어그람으로 그린 것을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의학적으로 사용되면 스트레스란 몸에 해로운 정신적, 육체적 자극이 가해졌을 때 그 살아 있는 몸이 나타내는 반응을 말합니다. 압력이 다가옵니다. 정신적인 압력, 환경적인 압력 이런 압력이 다가오면 그것을 우리 몸이 견뎌내는 한계점을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에 의하면 내과 계 입원환자의 약 71%가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하거나 악화되는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스트레스는 신경내분비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자율신경계의 이상, 면역력 저하 등을 일으켜 대부분 나쁜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면 사람들은 우선 피로감이나 불면증이나 수면과다, 식욕저하 등 두통, 가슴 답답함 등의 신체 증상을 나타냅니다. 또한 불안, 우울, 짜증, 집중력 저하, 의욕 저하와 같은 정신적인 증상들이 나타나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면 사회생활에 적지 않은 지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인간이 당하는 치명적인 병들은 거의 대부분이 스트레스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가지각색의 병에 걸려 죽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스트레스에 관한 설교를 하려고 성경에 스트레스로 모범적으로 죽은 우리 선조가 있는가 아무리 찾아봐도 다 자기명대로 살았지 스트레스에 걸려 병들어 죽은 사람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암에 걸렸다. 관절염에 걸렸다. 폐병에 걸렸다. 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이 한분도 없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있는 우리 조상들은 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왜 스트레스에 걸리는가?
왜 스트레스에 걸립니까? 그냥 살면 되었지 왜 스트레스는 왜 걸려요?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과 환난과 고통을 당합니다. 거기에 과도히 두려워하고 낙심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믿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상당히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받침의 힘이 약해서 무게가 누르면 찌부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욥기 3장 25절에 보면 욥이 환경에 시련을 겪어서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식들 다 죽고 부인이 저주하고 집을 떠나고 자기는 전신에 몸에 병들었습니다. 그가 탄식하기를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그는 우연히 그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런 병이 올까 굉장히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벌써 욥은 그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것이 자기 생활 속에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에 압도당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다가오면 그 심각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자기도 감당을 못합니다. 자기도 도저히 그 어려운 염려, 근심, 불안, 초저, 절망 감당하지 못하니 그로 말미암아 쓰러지는 것입니다. 뇌일혈이 걸리고 심장마비가 걸리고 위병이 걸리고 불안신경증에 걸리고 잠을 못자고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 엘리야 보십시오. 엘리야는 구약시대에 최고의 선지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수레를 태워서 죽지 않고 하늘에 데려갈 정도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도 문제의 심각성에 압도당할 때 좌절하고 낙심하고 스트레스에 걸려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엘리야가 보통사람 같았으면 자살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그들과 경쟁을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을 신봉하게 하므로 야훼를 배반하고 반역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완전히 가뭄으로 불탈 정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알이 왕성할 때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그 바알선지자들을 모두 한곳에 모여서 정말 야훼가 참 하나님인지 바알이 참신 인지 서로 경쟁을 했습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왕상 19:1)
엘리야의 재단에 하나님이 불로 응답한 일들과 백성들이 바알을 보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한 일과 백성들이 힘을 합쳐 도움으로 450명의 바알선지자들을 다 죽인 사실과 그 결과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갈멜산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비를 주셨다는 이야기를 자기 아내 이사벨에게 아합이 이야기를 다하니까 이세벨이 분도막심해서 “내일 이맘때 내가 되기 전에 이 엘리야를 죽이겠다. 살아서 못나간다.” 이런 위대한 일을 한 엘리야가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이세벨의 협박과 공갈을 들으니까 그만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마음에 긴장을 놓고 있을 때 갑자기 굉장한 협박과 공갈을 당하니까 엘리야가 그 협박과 공갈에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서 도망을 치고 거기에서 종을 두고 하루길을 걸어서 더 깊은 광야로 들어가서 로뎀 나무 밑에 앉아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 19:2)
이 말을 듣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었습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 속에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같이 위대한 사람도 심한 스트레스를 당하니까 죽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야 스트레스 당하면 살 희망이 다 없어지고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우리 오늘날 인생이 경험하는데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 스트레스인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모든 희망과 용기를 다 빼앗아 가고 마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학계, 의료계, 산업계 등 사회 지도층에 있는 인사들이 잇달아 자살한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유명한 대학병원 교수와 물리학의 한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진 서울의 유명 사립대 물리학과 교수가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지난 1월 26일에는 국내 대기업 임원이 과중한 업무 부담감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었습니다. 억대의 연봉을 받는 그분이 우리 한국에서 다 성공한 분으로 박수를 치는 그분이 왜 유서 한 장 써놓고 자살한 것입니까? 그 지위에 다가오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은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의 유범희 교수는 “불규칙한 생활, 과로가 반복되는 생활은 육체적으로 무리를 주지만, 정신적으로 무리를 줄 때가 더 많다.”고 말했습니다. 육신적인 무리는 견뎌낼 수 있어도 정신적인 무리는 견뎌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심각성에 압도당하고 좌절합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걸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조차 끊어 버리려는 큰 위기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왜 스트레스에 들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그렇게 압력을 받아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요.
바리새교인, 사두게교인, 교법사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압력을 가하고 로마의 정권이 끊임없는 위협을 가했었습니다. 그는 먹고 자고 사는데도 정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괴로움을 겪어도 예수님은 스트레스에 안 걸렸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스트레스 안걸리고 살았는지 나 같으면 스트레스 걸렸을 것인데.. 주님은 스트레스에 안 걸리는 방법을 말해줍니다. “주님,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스트레스에 안걸립니까? 내게만 좀 말좀 해주십시오. 내 우리 성도들에게는 비밀로 할테니까 내게만 좀 말씀해 주십시오.” 아마 주님이 씽긋 웃으면서 말할 것입니다. “욕심이 없으면 스트레스에 안걸린다.” “아이 주님 그렇게 간단합니까?” “간단하다. 욕심이 있으니까 스트레스에 걸리지 욕심이 없으면 결코 스트레스에 걸리지 않는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지위, 명예, 권세, 돈, 무엇이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빼앗기면 어떻게 하느냐.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나를 밀쳐내면 어떻게 할 것이냐.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얻기 위하여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에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9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욕심에 떨어지면 파멸과 멸망에 빠집니다. 마음에 욕심 없이 어떻게 삽니까? 그러니까 전혀 욕심 없이는 못살 것 아닙니까? 적당한 욕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너무 큰 욕심을 가지지 말고. 전혀 욕심이 없어 입만 딱 벌리고 있으면 그것도 또 큰일입니다. 그것은 나쁜 욕심이 아니고 좋은 욕심은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과도한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5욕(五慾)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식욕(食慾), 색욕(色慾), 재욕(財慾), 명예욕, 수면 욕구 등이 그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식욕이나 성욕, 물욕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5욕(五慾)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냥 욕심은 괜찮은데 탐욕이 되면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욕심이야 다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탐심이 들어오면 탐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쁘게 됩니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 기쁨과 평안 뿐, 스트레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미국의 미시건대학교의 스테파니 브라운 박사는 인간의 욕심과 수명에 관해 연구를 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의 사망률이 욕심이 적은 사람의 사망률보다 거의 3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평안하게 있으니까 오장육부가 긴장하지 않지요.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사람은 오장육부가 다 눌려서 잠도 못자고 고통을 당하니까 빨리 죽을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욕심 많은 사람에게 시집도 가지 말고 장가도 가지 마세요. 빨리 죽습니다.
록펠러는 53세가 되었을 때 특이한 소화불량성 질병을 앓았습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록펠러 만큼
큰부자는 아직까지 생기지 않았습니다. 록펠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53세에 특이한 소화불량성 질병을 앓았는데 이 때문에 머리카락은 말할 것도 없고 눈썹과 속눈썹까지 다 빠져버렸습니다. 의사는 그의 병은 늘 극도의 긴장된 생활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주요인으로 1년을 넘기기가 어렵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후 록펠러는 마음의 욕심을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십일조와 감사의 생활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무려 4,928개나 건축했습니다. 시카고 대학 등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을 각각 12개씩 지으며 사회에 기부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1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언을 받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98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갔었습니다.
탈무드에는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꿈과 욕심은 다릅니다.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베풀 때 건강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한 은혜와 축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에 참여해서 우리가 가진 조그마한 사랑과 행복을 나누면 그만큼 수명도 길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고 죽는 권한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또 그뿐 아니라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에 안 걸리려면 모든 것을 맡겨야 돼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어깨에 걸머지는 것 내가 거기서 찌부러질 때 그 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나는 가벼워지지 않습니까?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길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짐을 맡긴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고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라고 말했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기를 원하시고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아” 주신다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짐 때문에 죽었는데 왜 내가 다 청산한 것을 네가 걸머지고 야단법석을 떠느냐?”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2천년 전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믿거든. 그것을 믿고 주님께 우리 짐을 맡기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은 짐을 안 짊어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굉장히 번뇌로웠습니다. 그가 감람산에 기도하러 들어갈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마음이 지금 번뇌로워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번뇌로 말미암아 스트레스에 걸려서 쓰러지지 않았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괴로워 죽을 지경인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하하하하하하” 그것은 정신 이상자지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보통사람은 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그 고통을 마음 속에 느낍니다. 미리 알고 있으니까. 현명한 사람일수록 더 뼈저리게 느낍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이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게 비결인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무엇이든지 내 고집대로 끝까지 하려면 스트레스에 걸립니다. 내가 면하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면하는 것이 뜻이 아니면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러니 짐을 아버지께 맡겨 버렸어요. 스트레스가 왔지만 아버지께로 전달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버지가 “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 내 뜻이라.” “좋습니다.”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받아들이면 스트레스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 운명에 대한 저항을 하고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고 그것을 이기려고 하니까 마음에 스트레스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에 평강이 올 때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와서 마음을 점령해 준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갖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스트레스에 걸리는 것 하나님이 참으로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평안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평안을 가지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기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가슴 속에 담아놓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우리와 함께 하면 우리는 스트레스에서 이겨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열심히 목회하는 목사님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 목사님, 저는 제 자신이 죽고 예수님만 내 안에 사시도록 아무리 노력해도 제 자신이 좀처럼 죽지 않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아달라고 해도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다른 목사님은 “욕심을 다 버리고 나 자신까지 버려야만 참된 마음의 평화를 얻겠는데, 나 자신을 버린다고 하면서도 쉽게 버려지지가 않습니다. 늘 내 자신을 내가 짊어지고 다닙니다.”
저도 그 목사님들의 말에 동감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지 않는 한 마음에 평화를 갖기는 대단히 힘이 듭니다. 어떻게 되었던지 내 자신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됩니다. 그리고 욕심과 탐심을 저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대문호였던 괴테는 80세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단 몇 주 동안이라도 참으로 행복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다. 내가 평안함을 느끼고자 할 때는 내 자아에서 벗어날 때 뿐이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세계적인 석학인 괴테가 80세에 몇 주 동안 일생에 마음에 평안을 느꼈다. 그것도 자기 자아에서 벗어났을 때, 자기를 떠났을 때 평안을 느꼈다. 그러니 우리같이 위대한 조무래기는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괴테보다도 우리가 더 나은 점은 괴테는 위대한 지성가였지만 우리 같은 신앙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님 덕분으로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생활 내 생활이 돼요. 예수님께 완전히 의지해서 살면 그로써 우리 마음 속에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탐욕도 버리고 예수님을 의지해서 무거운 짐도 다 맡기고 우리가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에 걸리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시면서 전혀 스트레스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추호도 욕심이 없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에만 복종하고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주님은 스트레스에 걸리지 않았었습니다.

3. 엘리야의 회복
그런데 엘리야는 스트레스에 걸렸습니다. 엘리야는 잠시동안 방심을 했습니다. 이제 바알선지자들과 싸워서 이기고 그들을 다 450명이나 잡아서 죽이고 비가 오지 않는 이스라엘에 기도해서 비를 오게 했으니 이제는 안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주께로 이끌어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방심이었습니다. 방심을 하고 있을 때 스트레스가 기습을 하고 들어와서 그는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선지자가 아무도 만나지 아니하고 광야로 도망을 쳐서 로뎀 나무 밑에 드러누워서 죽기를 원했었습니다. 요사이 말하면 자살하기를 원했습니다. “주님, 이만하면 됐으니 나 생명 거두어 주시옵소서.”
열왕기상 19장 5절로 7절에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야훼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광야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잠만자고 깨어 먹고 마시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천사가 와서 어루만져 주었다. 그것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가까운 사람이나 먼 사람이나 와서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 참 중요합니다. 마음에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 그것이 치료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지금 스트레스 당해서 고통 당하는 사람을 보고 꾸짖고 욕해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될대로 되라고 하는 사람에게 꾸짖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어루만져 주는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엘리야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어떻게 머리를 쓰다듬어 줬는지 얼굴에 뽀뽀를 해주었는지 마사지를 해주었는지 그 방법은 말을 안했어요. 그냥 어루만져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 여러분, 부인이 짜증을 내거든 스트레스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어루만져 주세요. 잔소리하지 마라. 뭘 그 야단이야! 그러지 말고 잘 어루만져 주세요. 그 방법은 난 몰라요. 여러분이 알아서 하세요. 아내 여러분, 남편이 세상에 나가서 경쟁사회에서 고통을 당하고 스트레스에 걸려서 집에 들어와서 탄식하는데 잔소리를 자꾸 하면 점점 스트레스에 더 걸립니다. 어루만져 주세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무릎 베게 해가지고서 좀 쓰다듬어 주세요. 그렇게 해주면 스트레스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트레스에 걸리면 자기 힘으로 스스로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에 걸렸을 때 이 성경에 보니까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 하지 말고 먹고 또 자고, 또 일어나거든 또 먹고 또 자고... 앞으로 스트레스 걸린 사람에게 금식하고 철야하라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더 스트레스에 걸려요. 스트레스에 걸리거든 집에 데리고 와서 아주 푸근한 잠자리를 만들어서 자게 하고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먹고 또 자게 하고 어루만져 주고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보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위로, 굉장히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주님이 와서 위로해 주신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 보혜사 우리 쉬운 말로 말하면 콤포트. 위로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위로자를 다 보내어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굉장히 괴로울 때는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위로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성령을 통해서 많이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운동 중에도 걷는 운동이 제일 좋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에 제일 좋은 방법이 조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보고 브엘세바에서 호렙산까지 걸어가라고 했습니다. 약 350km에서 400km 정도 됩니다. 그 길을 걸어가라. 조깅하라. 뛰든지 그냥 걸어가든지 좌우간 다리로써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운동 중에 제일 좋은 운동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뇌가 활성화 되고 온 몸에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피로가 없어지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걷는 것이 참 좋습니다. 요사이 스트레스에 너무 걸린 이유는 많이 차타고 다녀서 그렇습니다. 너무 타고 다니고 걷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돈이 없어서 자동차 없어서 못타고 다닌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자동차를 못타는 것은 건강해지라고 오래 살라고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걸어다니면 차타고 가는 사람 보고 “아이구 불쌍하다. 이렇게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 오래살 것인데 저렇게 차를 타고 다니니 얼마 못살라고 그런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걷는 것이 제일 좋아요. 제가 이제 나이를 먹어 몸이 자꾸 괴로울 때 종종 병원을 찾아가서 어드바이스를 받는데요. 요사이 의사들 마다 만나면 걸으라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 없어요. “목사님, 걸으세요.” 그런데 가만히 살아보니까 걷기만큼 힘든 것이 없어요. 요사이 걷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요. 저는 여의도공원에 내려 가지고서 아침에 걷는데 요사이는 추워서 걸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니까 한겨울 다가고 맙니다. 걸을 여가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도 스트레스에 걸리고 우울증에 걸린 엘리야에게 운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골프치라고 말 안했어요. 너 가서 골프치라. 수영해라. 철봉해라. 그리 아니하시고 누구든지 돈 안 들이고도 할 수 있는 걷는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할 수 만 있으면 걸읍시다.
열왕기상 19장 8절에 보면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사십 주 사십 야를 한 달 열흘을 걷고 나니까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 버렸습니다. 한 달 열흘만 걸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뼈를 마르게 하는데 걸으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걸으면서 마음에 짐이 사라지고 즐거워지니까 양약이 되어서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병이 다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것은 건강에 매우 좋습니다. 우리가 걸으면 뇌세포가 활성화되고 혈액순환이 잘 되어 건강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하루에 1만 3천보를 걸으면 지방이 연소되고 혈액순환이 활성화되어 마음이 상쾌해지고 즐거워집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우리 몸에서 그 어떤 세균도 막아낼 수 있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와 병으로부터 치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걷기나 조깅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켜왔습니다. 만 2천보 내지 만 3천보. 여러분께서 마음에 결심을 하고 걸으십시오. 여러분이 걸으면 저도 따라 걷겠습니다. 여러분이 안 걷기 때문에 제가 안 따라 걷지요. 우리 새해에는 걷는 운동을 많이 서로 격려해서 하십시다.
빌리그레함 목사님도 늘 조깅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말했었습니다. 과거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역대 미국 대통령을 보면 걷기나 달리기를 해서 신체 건강을 유지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건강을 위해서는 삼보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식보, 약보, 행보인데 식보란 밥을 잘 먹는 것이고, 약보는 보약을 적당히 먹는 것이고, 행보는 많이 걷는 것을 말합니다. 밥도 잘 먹고, 보약도 가끔 먹고, 많이 걸으면 우리가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것은 심신의 피로를 풀고 마음을 상쾌하게 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가서 굴 속에 들어가서 엘리야는 영적으로 회복했습니다. 영적으로 신앙이 떨어지고 성령충만을 잃어버린 그가 호렙산 바위 굴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되고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사명을 새롭게 받아서 그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이 하늘로 데리고 올라간 것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최후의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그 다음에는 조깅하고 걷고, 그 다음에는 오산리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해서 성령충만 받고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들으면 스트레스 굿바이. 완전히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들려올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스트레스가 거기에 붙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소명을 마지막 받아서 그 소명을 실천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을 통해서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 버렸었습니다. 우리는 뭐 살아서 하늘에 못 올라 갈지라도 죽어서도 올라가면 그뿐입니다. 하늘은 똑같은 하늘이니까.. 우리가 천국갈 수 있다는 것은 마음에 큰 위로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제 죽더라도 우리는 갈 곳이 있다. 삶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방황하고 허덕이는 것입니다. 허무와 무의미에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갈수록 우리의 목적지가 분명하므로 허무와 무의미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언제 죽더라도 겁은 좀 나지만 그러나 천당 가는 것입니다. 생소한 곳에 가는데 겁이 안날 턱이 있어요?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우리 손잡고 갈터이니 두려워할 것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엘리야와 엘리사가 길을 가며 말할 때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 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세계는 스트레스 공장입니다. 끝없는 경쟁과 긴장, 불안, 공포, 낙심 등… 그러니 스트레스를 피해서 살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 삶을 따르면 모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달려갈지라도 세상 일에 쫓겨서 달려갈지라도 곤비하지 아니하리라. 스트레스에 걸리지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다. 여유가 만만해서 시간이 많으면 피곤하지 않습니까? 실증이 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앙망하면 여유만만하게 가도 인생이 피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이 스트레스 받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손을 잡고 탐욕을 저버리고 주님께 의지해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스트레스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주님의 은혜에 의해서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살 수 있고 주님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살 수 있으므로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이 가운데 스트레스 받은 사람이 있으면 모두다 예수님께 짐을 맡기게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스트레스를 이기고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의 위로를 받고 먹고 마시고 자고 깨고 하므로 평안을 누리고 우리가 걸어서 모든 피로를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고 영적인 성령충만을 회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