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1. 주일설교

형통함의 조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1~6)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은 주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형통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통하게 사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편 1절로 6절에 “형통함의 조건”에 관해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삶을 살면 형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간의 힘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은 종국적으로 언제나 망했습니다.
1811년에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가 베를린 대학의 초대총장이 되었을 때, 그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문을 통해 독일 민족만이 전 인류의 도덕적 개혁에 공헌할 수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나치 시대에 독일은 맹목적으로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온 유럽을 전쟁의 불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은 역사의 파도에 침몰하고 만 것입니다. 자기 민족만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주장하던 그 독일이 결국에는 패망했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천황을 황신으로 신격화하고, 아시아와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역시 역사의 거대한 파도를 만나서 침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소련의 공산주의는 하나님도 없고 영혼도, 정신도 없다고 하는 무신론적 유물론을 주장했습니다. 칼 막스(Karl Heinrich Marx)는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하며 “종교는 아편”이라고 신의 존재를 부인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부정하고 철저하게 인본주의와 무신론 위에서 발전한 소련 공산주의는 결국 역사 가운데 침몰하게 되어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인간의 신념이나 사람을 우상화한 민족과 국가는 반드시 역사의 파도에 침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복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사람을 우상으로 섬겨서 따라 가서는 안됩니다.

<본론>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함
첫째, 복 있는 사람들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악인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의 꾀임에 따라가지 않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복을 받았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고 온 지구상에 있는 동식물을 다스리고 돌볼 권한을 받았으니 보통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에게 귀를 기울이고 마귀의 말을 듣고 그에 짝짝쿵 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악을 도모했습니다. 마귀는 바로 그 자체가 악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나쁜 놈입니다. 나쁜 놈. 야 이 나쁜 놈아, 야 이 악한 놈아, 똑같은 말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가 나쁜 놈하고 친구 삼아서 같이 나쁜 놈이 되버리고 말았어요.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마귀가 하와에게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느냐? 그렇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
죽는다고 했지 언제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습니까?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4~6)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인류 비극의 시작인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은 노동과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악이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이 세상에서 파괴하는 절망적인 마귀를 따라가서 죽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악한 자의 마귀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생수를 얻겠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과학, 문화, 생활환경의 개선, 온갖 것 다하지요. 그래도 마음에 행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악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악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 버린 것과 그 다음 하나님 없이 인본주의로 우물을 팠는데 물을 가두어 놓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이 세상의 그 무서운 일들은 악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문의 뉴스, 텔레비, 라디오 뉴스를 들어보면 하루에도 어떻게 어마어마하고 두려운 일들이 생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배후에 악의 세력이 조종을 해서 우리 삶을 선하게 만들지 않고 나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나쁜 마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좋은 삶을 주기를 원하고 나쁜 마귀는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나쁜 것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그 마귀는 귀에 달콤한 소리를 하는 것 같아도 결국 따라가면 우리 삶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5장 19절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이 나옵니다.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말이 나옵니다. 그 사람 굉장히 선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이다. 왜, 같이 이야기 해보니까 굉장히 말이 선하다. 곱다. 아름답다. 좋다. 선한 사람이다. 그 사람 악한 사람이야. 말이 거칠고 사나워. 아주 나빠. 흉악한 말을 사용해. 속이 악하기 때문에 그것이 악한 말로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감춥니다. 처음 만나서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좀 같이 지내면서 생활을 같이 해보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열매가 선한 사람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나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로 11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바로 “말”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입으로 악한 말을 하지 말고 축복의 말을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말은 우리 눈에 안보이지만 나가서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굉장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뭐 무슨 효과가 있다고 말조심하라고 하는가. 말은 나가서 그에 해당하는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천사의 말을 하면 천사가 찾아오지만, 악마의 말을 하면 악마가 찾아온다.”고 말한 것입니다. 천사 같은 말을 하면 그 말이 나가서 환경을 천사처럼 만들어요. 그러나 악한 말을 하면 루시퍼같이 악한 환경을 만들어요.
미국의 성공학자 데일 카네기는 “그 사람이 성공할 사람인지 실패할 사람인지는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희망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는 사람은 언제나 패배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망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늘 원망, 불평,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에 늘 축복의 말, 긍정적이고 희망찬 말을 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그 마음이 악한 생각들로 가득하여서 악한 말과 악한 행위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말과 행위에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5절로 9절에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자들의 꾀를 쫓지 않습니다. 악한 자들이 온갖 꾀를 내어서 환경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해도 복 있는 사람은 그 말을 들어보고 그 사람의 행동의 열매를 보고 그 생활을 보고 악한 자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누구도 분별하지 않고 그냥 막 따라 나섰다가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악한 사람을 따라가지 말고 친구로 삼지 말고 좋고 착한 성도와 가까이 지내고 친구로 지내면 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함
복 있는 사람은 둘째로,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합니다.
죄라는 것은 율법이 주어졌는데 그것을 어길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죄는 율법이 있어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3절에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율법이 없는데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러나 율법이 들어오면 그것을 어기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선다는 것은 한가지 죄를 자꾸 계속해서 짓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겨울철에 보리밭이나 밀밭을 가로질러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 둘러가기 싫으니까 보리밭이나 밀밭을 가로질러서 자꾸 가니까 사람들이 지나간 보리밭은 보리나 밀이 다 죽어서 길이 나져 있습니다. 그 보리밭 주인이 몽둥이를 들고 구석에 기다렸다가 우리가 보리밭을 지나가면 일어나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 때문에 보리농사 다 버렸다고 따라오고 달아났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죄도 그와 같습니다. 죄를 안짓는 사람은 없지만 죄는 지었으면 빨리 회개해야 돼요. 그 죄를 반복해서 계속하면 길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반질반질 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의 길에서 보혈의 능력으로 단호히 자유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혈의 능력을 준 것은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즉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많은 죄를 지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다 대신 짊어지고 영원히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과거의 죄, 지금의 죄, 장차 지을 죄까지 예수님이 다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우리는 오늘날 죄 때문에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로 9절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려면은 주님이 주신 십계명을 늘 마음 속에 비춰봐야 되는 것입니다. 얼굴을 깨끗이 하고 머리를 깨끗히 해서 사람들 앞에 서려면 늘 거울을 쳐다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죄에서 해방되려면 십계명을 알아야 뭐가 죄인지 알기 때문에 십계명을 적어서 벽에 붙여 놓던지 수첩에 넣어 놓던지 해서 매일같이 봐야 되는 것입니다.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알아야 내가 그것을 안하지요. 모르면 하게 된다구요. 그래서 늘 십계명을 내 주위에 두고 그를 행하면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가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에서 가장 잔혹한 유아 살해범들을 조사했더니, 공통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가본 적이 없고, 폭력적인 TV나 게임에 빠져 있었습니다. 12년 간 은행 강도들의 공통점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고 도박과 마약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범죄 심리학자는 각종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심리 조사를 한 결과, 범죄자의 90%가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이 아주 강퍅해요. 그들의 마음은 굳어지고 병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마음이 사납고 강퍅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폭력을 사용하며 살해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죄의 유혹을 더욱 빨리 받게 됩니다. 죄인의 길에 선다는 말은 죄를 따르는 것이 상습이 되어서 더 이상 양심의 가책도 없이 더욱 잔인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 아래 죄인임을 알고 마음으로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서 축복받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조선왕조 시대의 충신 중에 이덕무라는 대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족의 서자 출신이었지만, 시를 많이 쓰고, 문장에 뛰어난 정조 대왕 때에 규장각을 운영하는 관리로 등용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지 못하는 4가지가 있다고 늘 얘기했습니다. “바둑과 장기를 두지 못한다. 소설을 볼 줄 모른다. 여색에 말할 줄 모른다.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네 가지는 비록 죽을 때까지 못하더라도 내게 손해 될 것 하나도 없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이 네 가지는 하지 말라고 가르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훌륭한 대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정직한 양심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라”고 늘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정직한 양심의 불꽃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꽃이 꺼지면 엄청나게 흑암의 세력에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썩으면 냄새가 고약하게 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일수록 악하게 되면은 무지무지한 악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모든 면이 형통하여 복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단호하게 물리치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축복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잠시 조그마한 악을 범했는데 이 뭐 조그마한 죄인데.. 조그마한 악, 조그마한 죄가 없습니다. 조그마한 악이 들어오면 큰 악이 뒤에서 연줄로 따라 들어옵니다. 조그마한 죄를 지으면 큰 죄가 뒤를 따라서 줄줄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으려면 악인들의 꾀를 쫓지 말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함
셋째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당신들보다 내가 나으니까 날 좀 보소. 이 바로 노아의 후손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은 온 지면에 흩어져서 살라고 했는데 그들은 우리가 한곳에 모여서 떨어지지 말고 살자. 그리고 탑을 지어서 하늘에 닿게 하여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자. 그 다음에는 홍수를 내도 물이 차올라오지 못하게 하늘 끝까지 탑을 쌓자.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다 모여서 시날평지에서 탑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하기를 그들이 이렇게 한 마음이고 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 일을 시작한 즉 막을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려 오셔서 그들의 말을 혼돈시켜 버리므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벨탑의 교만은 인간이 언제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교만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4절에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야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야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9)
아예 바벨탑만 안 세웠으면 우리 외국어 공부 한다고 고통 안 당할 것인데... 외국어 공부하려고 애를 쓸 때마다 바벨탑 때문에 원망스러워요. 이 외국어 공부가 여러분 쉽지 않습니다. 저는 영어도 공부했고, 불어도 공부했고, 독일어도 공부했고, 일본어도 공부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는 이게 이것 같고 저게 저것 같고 아예 혼돈이 되고 바벨탑만 욕하게 돼요. 정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 16:18)인 것입니다.
교만하면 패망하고 거만하면 자빠지는 것입니다.
옛날에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은 자기를 과대평가 했습니다. 굉장한 지위를 가진 줄 알고 으스대고 사람들을 무시하고 예수님을 잡아 죽인 당사자들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5절로 8절에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우리의 선생은 하나 예수님밖에 안계십니다. 그 외는 다 형제입니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23:10~11)
이사야 13장 11절에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베드로전서 5장 5절로 6절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를 쓰려고 하더라도 교만을 깨뜨리고 난 다음에야 그 사람을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이 사용한 사람들이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교만이 깨진 것입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며 목동으로써 그 교만이 다 깨어졌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교만이 깨어지고 손들고 오는 사람을 주님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굉장히 미워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이 러시아를 정복하기로 계획했을 때 충성스런 장군이 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부탁드립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을 취소하시옵소서. 각하께선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러시아 정복을 그만하소서.”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장군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간청하면서“아무리 사람이 일을 계획해도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번 러시아 원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취소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크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계획하고 성취한다! 무슨 하나님이 일을 계획하고 성취해?” 그리고 오만하게 러시아 원정을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여 패망하여 나폴레옹은 망하고 만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 하게 하고,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믿게 하여 결국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고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낮아지고 겸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결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고 높아질수록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사람을 붙들어서 높이 올리시고 스스로 높아지는 사람은 낮추시는 것입니다. 겸손해진다는 것 참 귀하고 아름다운 축복인 것입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는 그의 책「수상록」에서 교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만, 강팍함, 사기는 패망의 삼총사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루이스 터먼은 아이큐 160이상의 천재들의 일생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재 아이들의 대부분이 성인이 되어, 실패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학교 다닐 때 점수를 잘 받고 공부 잘했다고 해서 세상에 1등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버님이 늘 그 말을 했어요. 6.25때 생활이 어렵고 공부할 시간도 없고 늘 나가서 일을 해야 되고 장사를 해야 되고 하니까 불평을 말했습니다. 이래가지고서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 그러니까 아버님이 하는 말이 학교에 1등한다고 세상에 1등하지 않는다. 사람이 되어야지. 머리만 좋다고 1등하는줄 아느냐? 나는 그 말을 듣고 자기가 못하니까 저런 변명을 한다. 제가 아주 고약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아버지 말만 하면 대항을 해요 속으로... 겉으로 말 못해도 속으로 대항을 해요. 그런데 내가 아버님 나이가 되어 보니까 그 말이 정말이에요. 학교 1등이 세상의 1등은 아닌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세상에서 중간쯤 하던 사람들이 다 지도자가 되었지 1등하는 사람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어요. 물론 자식들이 1등을 하고 하면 좋지요. 그러나 1등도 예수님 믿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1등을 해야지 하나님 앞에 겸비하지 않고 스스로 1등 한다고 머리를 흔들면 패망하는 것입니다.
첫째, 내가 최고라는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1등을 하는 사람은 나는 최고다. 이런 교만하니까. 둘째, 교만으로 마음이 강퍅해져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충고를 해도 안 들어요. 보통 남편들은 아내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말을 잘해요.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간섭을 많이 합니다. 어떤 때는 마음이 화가 나고 고약해도 잘못하면 밥 못 얻어먹을까 싶어서 말 안합니다. 고개 끄덕끄덕 하는 것은 꼭 동의해서 끄덕끄덕 하는 것 아닙니다. 속으로 반대해도 평안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일을 지나고 보면 아내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실패 안한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내가 무슨 말하면 학교에서 1등도 못한 지 꼬라지에 무슨 남을 충고를 해?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남의 충고를 안 들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일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이 지혜를 합쳐서 서로 충고하고 충고를 받고 해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정치가, 훌륭한 대통령도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밑에 부리는 신하들의 말을 잘 들어야 돼요. 자기만 제일이라고 하지 말고 다 말을 듣고 그 다음에는 종합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고집불통이 되어 무모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천재니까 고집불통입니다. 천재는 대게 고집불통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학생시절에 어떻게 했는데... 그러면 싹수가 노랗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고 재능이 좋아도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만하면 실패합니다. 교만하고 오만을 저버리고 하나님 앞에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나님이 축복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찰스 비어드 박사는 한 평생 역사와 정치학을 연구했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은 한 평생 역사연구를 하셨는데 거기서 얻은 결론이 뭡니까? 인간 세상이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찰스 비어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욕망과 교만이 날뛰면 결국 멸망한다는 사실이 내가 역사의 교훈에서 배웠습니다.” 두려운 말입니다. 한 개인이나 국가가 전부 탐욕을 가지고 날뛰면 부정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만해야 날뛰고 하면 분쟁을 하지 않습니다. 꼭 우리보고 하는 말 같아요. 남편 여러분, 아내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안무시하냐? 아내가 말하거든 끝까지 잘 들어 주십시오. 바보 같은 말을 해도 끝까지 잘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대답을 해주고. 아내 여러분도 남편이 말하면 되받지 말고 끝까지 참고 들어주십시오.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용기와 힘이 되고 무시당하는 것은 굉장한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4.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함
그 다음에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 받기 위해서는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야훼의 율법이라니까 우리 인상에 법률책을 생각하므로 인상이 나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라고 했으면 좋았겠는데 성경을 율법이라고 했어요. 그러므로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즐거워하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하지 않습니까? 요사이 어린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완전히 중독이 되지 않습니까? 즐거워 하니까. 무엇이든지 즐거워하는 것과 같이 있고 그것을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예수 믿고 성공하는 사람은 이 말씀을 늘 휴대하고 말씀과 같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17장 19절에 보면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야훼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평생에 내 곁에 두고 읽고 묵상하고 거기에 기록한대로 행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러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우리의 등이 되고 빛이 되고 우리를 성공시켜 주는 것입니다. 항상 휴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찰스 1세(Charles I)의 폭정으로 고통 받고 있던 영국을 구한 크롬웰(Oliver Cromwell)은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일과 성경을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인 크롬웰에게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을 등한이 하지 말아라. 어디 가든지 성경책을 포켓에 넣어 다녀라. 그래서 전쟁터에 나갈 때도 그는 늘 기도하고 조그마한 포켓 성경을 포켓에 넣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가슴에 총탄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한참 전쟁이 불붙는데 총탄에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 보좌관을 보고 “이제 나 죽네. 잘있게.” 그런데 안 죽어요. 가슴에 피가 솟구쳐 오를 줄 알았는데 피가 솟구쳐 안 올라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가슴에 손을 넣어 보니까 총탄이 성경에 맞아가지고서 성경이 반 뚫어지고 총탄을 막아 버렸어요. 성경덕분에 살았어요.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겠지만 영적으로도 말씀이 우리에게 총탄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의지하던 그는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라를 오늘날까지 영국인의 존경을 받는 나라로 공화국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과 함께 할 때는 형통한 삶을 살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떤 수고도 헛될 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늘 같이하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Rev.John Wesley)는 “모든 축복 중 제일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복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이 제일 큰 축복이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가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냥 들어오시면 자꾸 좋은 일을 하지 가만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좋은 일을 자꾸 해요. 하나님과 같이 있는 것이 제일 큰 축복이지요. 그러므로 말씀을 밤낮 읽고 묵상하는 것, 내가 말씀을 꼬지꼬지 묵상해서 생각해 보는 것 얼마나 좋습니까?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형통은 같이 따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씀이고 우리 삶의 형통은 형통이고 삶하고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큰일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는 복이 함께 따르고 형통이 함께 따릅니다. 미개한 나라, 발전하지 못한 나라가 빨리 계명해지고 발전하려면 빨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제일 속전속결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으로 따라서 살면은 신속하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어머니 무릎에 앉아서 성경 말씀을 들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귀가 닳도록 십계명을 되풀이하여 들려주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가 공직에 있을 때 뇌물의 유혹을 많이 받곤 했는데, 그 때마다 거절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링컨의 방에는 깃발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와 함께 하시니라”
대통령으로 직무를 하다가 힘이 들 때마다 이 말씀을 보고 큰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늘 말씀 가운데 서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형통인 것입니다.

<결론>
인류 역사상 전성기를 누렸던 나라와 민족을 보면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중심으로 했을 때 놀라운 축복을 받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은 마틴 루터(M. Luther)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후 말씀중심으로 살면서 엄청나게 번창하고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독일 민족을 우상화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저버린 히틀러 같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은 독일 국민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저버리고 파멸하고 만 것입니다. 스위스는 작은 산악국가에 불과했지만, 칼빈(J. Calvin)에 의해 개신교가 뿌리를 내린 후에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스위스에 가서 제일 놀란 것은 평지가 없어요. 전부 산이에요. 그곳에 들어가서 잘 살 수가 없어요. 완전히 산악지대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계 1등 국가로 사는 것입니다. 칼빈이 바로 스위스 사람인 것입니다. 기독교 개혁운동을 일으켰고 온 국민 전체가 주님을 잘 믿는 나라가 되자 그렇게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덴마크도 마찬가지입니다. 덴마크는 오스트리아와 트루시아의 전쟁에서 참패하여 기름진 땅을 빼앗겨 처참한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절망하고 허덕이는 국민을 향해서 그룬투비(Grundtvig, N. F. S.)목사가 일어나서 삼애운동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 그룬투비의 삼애운동을 통해서 온 덴마크의 학교에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100년이 못 되어 덴마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농업국가가 되고 가장 잘사는 나라 중에 하나가 된 것입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전 세계를 장악하던 시절의 영국은 말씀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시대였습니다. 여왕은 늘 성경을 옆에 두고 생활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후에 조그마한 영국이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되어서 영국의 땅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신앙을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와 제일 먼저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나라를 세운 순례자들에 의해서 된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계에 복음을 나누고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얼마있지 아니하면 중국이 미국의 경제를 앞지를 것이라고... 그것 인간적으로 계산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중국이 미국처럼 교회를 마음대로 세우는 것을 허락해 주고 선교사가 마음대로 갔다 왔다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주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엄청난 핍박을 가하고 있는 중국 정부, 그 정부 하에서 절대로 미국을 이기지 못합니다. 미국도 많이 타락했고 이방신이 많이 들어왔지만 그래도 미국은 하나님을 충심으로 섬깁니다. 오늘날도 1년에 한 번씩 대통령이 기도의 날을 정해서 온 국민에게 선포하고 온 국민이 기도합니다. 바로 5월 기도의 날에 미8군 사령부에는 기도의 날 설교자로 제가 가서 설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우리 민족을 위한 기도의 날이라고 정하고 모든 공무원들이 다 모여서 기도한다. 그러면 8군 사령부에 장군들이 다 모여서 기도한다. 그러니 하나님이 복을 줄 수밖에 없지요. 개인도, 국가도 모든 일에 형통하여 잘 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릇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쫓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형통하기 위해서는 그릇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지도 그릇이 있어야 얻어 먹는다고 아무것도 없이 빈손들고 밥 좀 주이소. 얻어 먹을 수가 없어요.
다윗은 지극히 형통한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미한 시편 제1편에 복 있는 사람의 조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형통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플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나이가 든 후에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며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첫째, 나의 삶이라 할지라도 내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내 삶은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내 삶을 온전히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만큼 내게는 행복과 성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오랄 로버츠(Granville Oral Roberts) 목사님은 저하고 아주 가까운 친구 목사님인데 최근에 천당에 갔습니다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축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자기 삶이 하나님을 모실 만한 그런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통하여 축복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축복의 그릇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형통하기를 원하십니다. 형통해야 주의 사업에 많은 물질을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저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릇만 준비하면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와 같이해 주시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한 자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결심을 하면 하나님이 길을 여십니다. 내 환경을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하나님은 환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공적으로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이 조건을 여러분 반드시 실천하십시오. 잘 실천하면 큰 복을 받을 것이고 조금하면 조금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만리 멀리 창천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우리 곁에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속으로 하는 기도도 듣고 아시지요. 은하수 별 저 건너편에 계시면 우리가 속삭이는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같이 계세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쁘게 여기사 큰 복을 주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서 형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길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따르지 아니하므로 늘 고생을 하는데
오늘 원하오니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길을 기억하고 이 길로 행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강하고 담대한 기도와 믿음을 갖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