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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5. 주일설교 감사와 찬송의 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장 23) 할렐루야~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도 사랑이 필요하지만 또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웃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웃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부다 사랑을 주고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저도 이 세상에 칠십 평생을 살아왔는데 돌아보니까 가슴에 남는 것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았던 그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제일 귀합니다. 여러분도 모두다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랑의 대사들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서론> 오늘 저는 “감사와 찬송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불행과 파멸을 가져오는데 반하여 감사와 찬송은 행복과 치료와 힘과 전진을 가져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430년 종살이에서 나왔으나 광야에서 40년 방황한 끝에 그 1세들은 다 멸망 받은 것은 그치지 않는 원망과 불평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하는 개인이나 단체와는 같이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원망과 불평을 몸서리칩니다. 하나님은 감사와 찬송을 하는 사람을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본론> 1.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방 나라의 침략 (역대하 20장) 우리가 성경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과 모합 압몬 및 세일산 주변의 침략에 관한 이야기가 역대하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대하 20:2) 바로 유다 수도의 예루살렘의 눈 앞에 적의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겁에 질리고 당황한 여호사밧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깨어 일어나 맨발 벗은채로 달려간 곳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야훼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야훼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야훼께 간구하더라”(대하 20:3~4) 제일 좋은 것이 하나님께 나와서 간구하는 길입니다. 올바른 길을 택했습니다. 적이 바로 눈 앞에 왔는데 그들과 싸울 힘이 없으니 하나님 앞에 나올 수밖에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니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여호사밧은 대하 20장 5절로 12절에 보면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를 드릴 때 여러분,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질서하게 기도하면 하나님 어지러워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우리의 요구하는 바를 뚜렷이 기도해야 되는데 여호사밧은 뚜렷이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여호사밧이 야훼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야훼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대하 20:5~9) 야~ 얼마나 담대합니까? 하나님의 환난과 곤고가 있을 때 성전에 와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러왔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성전에 와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0~12) 어찌할 바를 알 수 없는 아주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습니다. 주님 밖에 의지할 데가 없으니 솔직하게 하나님께 그것을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우리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 어려움에 처했으니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한 것입니다. “야훼의 영이 회중 가운데에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그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대하 20:14~15상)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해 주신 것입니다. “야훼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후) 엄청난 전쟁이 다가오는데 그러나 이 전쟁은 너희 전쟁이 아니라 내 전쟁이다. 그러니 그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내가 이 전쟁을 싸우겠다.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제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책임을 져주시는 것입니다.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야훼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야훼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대하 20:16~17)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일에 우리는 형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하시엘 예언을 믿고 여호사밧과 유다와 예루살렘 구민들은 야훼께 경배하고 노래하는 일을 맡은 레위 사람들은 심히 큰 소리로 야훼를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군대 앞에 노래하는 사람들을 세워서 찬양을 하게 한 것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야훼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야훼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유다 사람들이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대하 20:21~24) 한쪽에는 노래 부르고 그 박자에 맞춰서 한쪽에는 서로 죽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찬양을 부르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자손들을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평안의 하나님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전쟁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워 주십니다. 우리가 찬양을 부르고 감사하면은 하나님이 찬양 가운데 임하셔서 싸우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할 때 그 감사와 찬양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쉽게 건드리지 못합니다. 여호사밧과 백성들이 적군의 물건 재물, 의복, 보물을 탈취하는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적군들이 왔던지 그들이 입은 옷을 거두고 재물을 거두는데 사흘이 걸렸다. 이 일로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나라에 평강을 주셨습니다. 기도가 이런 위력이 있습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 기도 안했더라면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험에 처했을 때 그가 하나님 간절히 찾고 기도한 결과에 환난은 변하여 큰 축복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믿는 사람과 다른 것은 어려울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 운명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그때도 기도하고 어려운 환난을 당할 때는 더욱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을 시작하고 난 다음부터 마음 속에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온 몸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면 정상인 사람들보다 더 티 없이 웃고 즐거워하며 삶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 내가 저런 처지 같으면 인생을 항상 탄식하고 절망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불구 가운데서도 그렇게 티없이 웃고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온 몸을 제대로 쓸 수도 없는데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작은 것에 매우 크게 감사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지백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가진 것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여 감사의 조건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을 하면 우리에게 있는 것도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가져오고 원망과 불평은 더 큰 원망과 불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에는“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있는 것에 더욱 감사하며 나누고 베풀 때 우리는 더욱 풍족하게 되어 감사가 넘칩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할 때 우리는 있는 것도 빼앗깁니다. 이것이 삶의 법칙입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가지고 감사하면 더 주겠다는 것입니다. 오래 세상에 살아오면서 체험을 해보니 진짜에요. 감사할수록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겨나고 원망과 불평할수록 탄식할 일이 더 많이 생겨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는 단지 입술의 고백으로 마음의 기쁨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감사할 때 육체적으로 더욱 건강해 진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몸이 약하고 병든 사람들은 감사를 통해서 치료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건강하려면 감사하고, 행복하려면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마음의 행복뿐 아니라 육신의 건강을 가져옵니다. 이것은, 전쟁에 나가는 유다의 군대가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자 하나님께서 이방의 적들을 모두 물리쳐 버린 것과 같이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적들을 친히 물리쳐 주시고 승리의 삶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행병이 돌거나 병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가 할 일은 감사와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감사 찬송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 이 병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을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우리가 뱀에게 물리면 뱀의 독이 몸 속에 들어가서 피를 응고시킵니다. 피가 굳어져 버려요. 이렇게 피가 굳어지기 시작하면 결국 심장도 간장도 활동을 멈추게 되므로 죽습니다. 그래서 뱀에게 물리면 먼저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해독제를 맞아야 합니다. 해독제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응고된 피를 묽게 만들어주어 독사의 독이 해소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도 이와 꼭 같습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불평과 원망과 미움 등을 넣어서 우리 마음이 미움과 분노, 불안과 절망, 탄식으로 굳어지게 하고, 결국 인생을 파멸시킵니다. 원망, 불평, 탄식하면 마음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이해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딱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을수도 없고 자기 인생도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이러한 독을 빨리 해독시켜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미움이나 원망이나 탄식을 가져올 때 그것을 해독시키는 것은 감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마귀의 독이 해독되고, 감사할 때 귀신들이 쫓겨납니다. 여호사밧 왕은 군대 앞에 노래하는 자들을 세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행진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방 나라들을 치시고 유다는 승리했던 것입니다. 2. 바울과 실라와 빌립보 감옥 우리는 성경에 보면 신약시대에 바울과 실라와 빌립보 감옥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치고 난 다음에 큰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8절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귀신들린 여자가 점을 치는데 점을 쳐서 주인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여자가 바울과 실라를 따라오면서 이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자들로써 구원의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자꾸 따라다니면서 그러니까 힐란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귀신아 나가라!” 즉시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주인이 이제는 돈 벌 길이 없어졌습니다.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본 주인이 그들을 잡아 고소를 했습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행 16:20~22)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많이 얻어맞고 배도 고프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단히 감옥소에 차꼬에 차였습니다.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라”(행 16:22~24) 이 복음을 전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원망과 불평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밤중에 복음을 위해서 고통당하는 것을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하여 찬양을 불렀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감사와 찬양을 하면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감옥문이 열리고 손과 발에 묶였던 차꼬가 풀린 것입니다.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 삶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염려, 불안, 공포, 초조, 절망, 미움, 여러 가지 정신적인 감옥에서 차꼬에서 자유와 해방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행 16:27~32) 하나님의 기적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 빌립보 옥토에서 일어난 이 기적이 간수와 그 모든 식구들을 다 예수 믿게 만든 것입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더라”(행 16:33~34)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인 파스칼(Blaise Pascal)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최고로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감사하며 살면 좋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안됩니다. 우연히 그렇게 감사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감사하려고 결정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노숙자에서 억만장자가 된 일본의 성공학자 스기자키 히토시(杉崎仁志)는 「부자 인생 가난한 인생」이라는 베스트셀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억만장자가 되는 플러스 사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감사’이다. 항상 감사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거지로 동냥 해먹고 살던 사람이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감사하기 시작하자 그때로부터 인생이 달라져서 일본에서 억만 장자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인 윌리엄 바클리(Alben William Barkley)는, “진정 하나님께 내가 가진 첫 것을 드리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진짜 축복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감사와 기도와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고통과 어려움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로는 로마의 다섯 번째 황제로 로마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청난 독재자였습니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면서 그를 거역한다고 아내도 죽이고 어머니도 죽이고 선생도 죽였습니다. 손에 걸리는 대로 죽였어요. 절대 권력을 손에 쥔 그는 화려한 금관을 만들어 쓰고 상아로 궁전을 지었습니다. 늘 3천 명의 경호원이 자신을 호위하도록 했고, 그가 다니는 길에는 향수를 뿌리게 할 정도로 방탕 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에 차지 않자 나중에는 엄청난 크기의 황금 궁전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늘 무언가 불평과 불만 가운데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탐욕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탐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또 다른 불평과 원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물질로써 마음에 만족은 없습니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물질 속에 영원한 영혼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 영혼이 들어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물질적인 존재 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대화를 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존재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인간, 엄청나게 귀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 인간이 물질가지고 만족이 됩니까? 하나님을 모시기 전에는 마음에 결코 만족이 없습니다. 물질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도 필요하지만 그 물질이 우리에게 행복과 만족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 속에 들어와서 계셔야 만족하고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네로 황제는 늘 이 땅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했지만, 결국 삶의 허무 속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와 찬양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문을 열지 않는 심령은 이 땅의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이들은 로마 군인에게 붙잡혀 많이 얻어맞고 배고프고 차꼬에 채여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기도와 찬양을 그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할 때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옥 터가 흔들리게 하고 감옥 문이 열리며 매인 것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속에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있는 것 감사합니다. 하루밤 건강하게 자고 깬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게 새 날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3. 하나님을 찬양하고 칭송하라 먼저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하므로 깨어 있으라. 성경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마음에 있는 그것이 현실로 나타난다. 마음에 불평이 있으면 생활에 불평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생활에 실제 기뻐할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그 하루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음에 생긴 그것이 여러분 생활 속에 나옵니다. 마음에 오늘 좋은 날이 온다. 오늘 좋은 날이다 하면 그날 좋은 일이 생겨나요. 마음에 기분 나쁘고 재수없다. 오늘도 기분 나쁘다고 하면 마음에 있는 것이 나가서 그대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주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여러분의 앞을 인도해 나가는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서 나온다.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마음에서 꿈이 나오고 마음에서 믿음이 나오고 마음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보물창고입니다. 이 마음을 잘 먹어야 돼요.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여러분 마음에 꿈을 긍정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앞서 나가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루를 살아갈 동안에 체험하는 모든 일은 여러분 마음 속에 안 보이는 형태로 있다가 그것이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나타난 것은 안보이는 마음에 생각과 꿈과 믿음이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 주무시고 난 다음 내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좋은 일이 생겨난다. 기쁜 일이 생겨난다. 사람들이 나를 환영해 준다. 그렇게 말하고 하나님께 감사해 보십시오. 그 말과 감사, 아휴 주인님, 앞에 나가서 미리 그렇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아이구 귀찮아 죽겠다. 사는 것이 지겹다. 모든 것이 안되고 오늘도 하루를 어떻게 지낼꼬.. 속에 마음이 주인님 시키는대로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나가서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러므로 남 원망할 것 없어요. 여러분 속에서 다 나와가지고 여러분의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비밀만 알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데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해요.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 감사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양하면 마음 속에서 감사하고 찬양할 일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하나님 찬송하면 거기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삶 가운데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은 아픈 몸도 치료할 뿐 아니라 모든 병에 대해 강한 예방책이 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나는 건강하다. 나는 튼튼하다. 나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나는 이 병을 이긴다. 그렇게 믿고 말하면 그 마음 속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이 주인님, 그대로 하겠습니다. 너희 병들아 물러가라! 우리 주인에게는 그것 필요없다 물러가라! 너희 다가오지 마라! 건강과 생명과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아침 일어날 때부터 아이구 골치야~ 아이구 몸이 으스스하고 온몸이 쑤시고 오늘 일하러 가지 말까 보다. 그 마음에서 마음의 생각이 나와서 야, 골치아픈 놈들아 빨리 오너라. 감기야 빨리 오너라. 몸살 오너라. 바로 우리 주인이 그것을 원한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고 약만 먹고서는 낫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돼요. 성경이 왜 우리에게 중요하냐면 성경이 여러분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소설책 읽는다고 생각이 바꿔지나요?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여러분 생각이 바꿔져요. 생각이 달라지면 운명이 달라져요. 그 생각이 밖으로 미리 나가서 여러분 운명을 그 생각대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 생각하기에 나는 잘된다. 나는 성공한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부자로 산다.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그러면 이 생각이 밖으로 나가서 그렇게 만들어요.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한번 해보세요. 저는 50년 목회하면서 늘 내 목회는 잘된다. 수많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고 교회로 찾아온다. 큰 교회를 세울 수 있다. 교회성장은 된다. 늘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밖으로 나가서 우리 주인이 교회가 잘된다. 그러면 잘되겠다. 이리로 오너라. 여러분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이 여러분의 생각인 것입니다. 마음이에요. 마음이 주인인 것입니다. 사주팔자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생각을 잘못 먹은 것이 나쁜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우리의 불평과 관련된 시를 하나 봤는데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시의 제목은“작은 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였는데 한번 여러분 들어보실래요? 무심코 버린 불씨가 산을 태우듯 무심코 뱉은 한 마디 비난이 일생을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고, 진실한 감사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기도 합니다. 때론 가벼운 미소 하나가 굳게 닫혔던 성공의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생각지 않은 불만 한 마디가 열린 성공의 길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작은 것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늘 깨어 진실하고 겸손하며 신중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한 말 한마디가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범사에 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치료와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시 68:35) 찬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찬양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원망과 불평이 밖으로 나가서 더 자꾸 친구들을 부릅니다. 원망아 빨리 오너라. 불평아 빨리 오너라. 여기 우리 주인이 너를 원한다. 막 호수같이 많아져서 주인이 원망과 불평에 헤엄치게 만들자. 그러므로 앞으로 여러분 마음에 원망과 불평을 하고 불행이 다가오면 남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여러분 탓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내가 감사와 찬양으로 심으면 행복으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 놓고 에덴동산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다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짐승과 자연을 다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비록 타락했어도 인생은 자기 삶은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의 생각을 통해서.. 더구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여러분 마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굉장히 큰 파워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 마음에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 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져라 해도 될 것이요 능치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겨자씨 만한 믿음을 우리가 사용하나요? 사용을 안하고서 산만 보고 원망합니다. 아이구 저 놈의 산, 저 산 같은 죄악, 저 산같은 원수, 저 산같은 가난, 아이구 몸서리야. 왜 하나님 저것을 없애지 않느냐. 하나님은 겨자씨 만한 믿음을 써라. 너 마음에 겨자씨 만한 믿음을 사용해서 축복아 다가오라. 평안아 다가오라! 그러면 축복과 평안이 와서 가난과 불평을 다 쫓아낼 것 아니냐. 성경에 주님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여러분이 잘못되는 것은 안믿었기 때문에... 자기가 안 믿어 놓고 난 다음에 원망을 다른 사람에게 해서 무슨 소용 있습니까? 상당한 힘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엄청나게 여러분이 다스릴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주었어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니 몸이 전율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마음에 생기는 생각도 꿈도 믿음도 말도 여러분이 다스리는데 다 따라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스리면 그 마음에 다스림을 받은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이 밖으로 나가서 그대로 운명과 환경을 만들어 놓습니다. 한편,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찰스 디킨슨(C. M. Dickinson) 은 미국을 방문하여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추수감사절을 지나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루가 아니라 1년 365일 중에 364일 추수감사절을 지내야 한다. 365일 중 하루는 불평하는데 사용할지라도, 364일은 하나님께 감사하는데 사용해야 된다.” 불평은 하루쯤은 하더라도 그 이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찬양보다는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감사와 찬양을 해도 감사와 찬양의 종들이 밖에 나가서 여러분들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 원망과 불평을 말해도 원망과 불평은 밖에 나가서 여러분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을 한다면 우리 삶은 놀라운 은혜와 복 가운데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왕 말할 바에야 감사와 찬양을 하고 감사와 찬양의 종들을 내보내십시오. 너 가서 주인이 감사와 찬양을 원한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라. 무엇 때문에 그냥 하루를 똑같이 지내면서 원망과 불평을 내놓고 빨리 나가서 원망과 불평의 환경을 만들라고 명령할 이유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가정, 새로운 직장, 새로운 내일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 힘이 천리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 속에 주신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엄청난 존재입니다. 소나 돼지와 같지 않습니다. 고깃덩어리만 가진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꿈꾸고 믿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많은 일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운명과 환경을 창조할 책임과 권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원망할 자격이 없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 여러분에게 해결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 능력을 여러분 가지고 있어요. 그러므로 매일매일 우리는 내 마음 속에 내일을 작정하십시다. 여러분 마음이 무엇에 비유하느냐. 게시판입니다. 그날 살아갈 생각을 마음에 적어 놓으면 그게 그날 게시판으로 여러분을 돕는 사자가 그 게시판에 기록한대로 가서 그대로 만들어 놓습니다. 게시판에 엉망으로 써놓고 난 다음 좋은 일을 기다리면 좋은 일이 오나요? 미래라는 시간이 와서 여러분 마음의 게시판을 어디 한번 보자. 뭐라고 적어 놓았냐. 아이구 죽으라고 적어 놓았네? 망하라고 적어 놓았네? 불행하다고 적어 놓았네? 게시판대로 해야지. 하나님이 적은 게시판이 아니고 여러분이 적은 것입니다. 기왕 적을 바에는 게시판에 행복을 적어 놓고 성공을 적어 놓고 기쁨을 적어 놓고 감사를 적어 놓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을 돕는 사자가 와서 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라고 게시판에 적어 놓았네. 그대로 해야지. 여러분의 마음의 게시판이 여러분의 그날을 운명 짓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게시판에 엉망을 만들어 놓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진리를 모르면 게시판을 비워 놓습니다. 게시판을 꽉 채워 놓으십시오. 내일만 아니라 내 일생의 목표를 게시판에 적어 놓고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야곱이 단풍나무, 신풍나무, 포도나무를 벗겨서 얼룩덜룩이를 만들어서 양과 염소가 물먹는 구유 앞에 세워놓고 얼룩덜룩이 새끼를 낳을 것이라고 바라보았는데 양과 염소와 새끼를 가지면 다 얼룩덜룩이를 낳았습니다. 전부 얼룩덜룩이를 낳았습니다. 왜, 야곱의 마음에 얼룩덜룩이를 낳는다고 바라보고 믿고 있었으니까. 우리 주인이 얼룩덜룩이가 되라고 한다. 전부 얼룩덜룩이가 되어라. 얼룩덜룩이 양을 낳았잖아요. 무엇을 바라보느냐.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85살에 별들을 바라보고 자식들이 별들처럼 많을 것이라고 마음에 생각하는 아브라함은 15년 후에 100살이 되어서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100살이 되어도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여러분, 여러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나아질 수 있습니다. 왜, 죽고 사는 권세가 마음에 여러분 마음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의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 속에 그것이 있습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여러분 마음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행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감사와 찬양을 할 때 큰 변화가 우리 환경에 다가옴을 감사합니다. 감사와 찬양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감사와 찬양을 통해서 감동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보았습니다. 여호사밧도 바울과 실라도 감사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여, 우리 모두 다 감사하지 않는 환경에서 감사해야 감사가 만들어집니다. 모두 다 감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