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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6. 6. 성찬주일설교 삶과 고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4~6) 할렐루야~ 오늘도 좋은 날입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인사하십시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어떤 날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게 오는 모든 날은 아버지께서 좋은 날로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우리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해주시는 하나님께 올바르게 생각하고 올바르게 구하면서 하루를 지내야 해요. 그러면 마음이 편안하고 또 하루 종일 좋은 일만 생기나요? 괴로운 일도 생겨나지만 그 끝에 합쳐서 좋아져요. 여러분에게 항상 이런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삶과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그 자체가 고난의 연속인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평범한 삶속에도 모든 것이 고난이 다 있습니다. 빈손들고 신학교를 공부하고 천막치고 가마니 들고 나가서 개척을 했는데 참 절대로 제가 개척해서 성공 못할 것인데 우리 최자실 목사님 때문에 성공을 했어요. 그래서 오늘 셋째 보고서 “장모 사랑은 사위다.” 우리 최목사님이 나를 사위로 삼으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정말 헌신해 주었습니다. 고생을 하고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편안하게 안 살면서 고생을 해서 저의 목회 뒤를 도와주어서 제가 목회 안정을 얻고 성공을 했는데 그리고 보니 우리 장모님은 천당 가 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이 공로를 장모님에게는 갚을 수 없으니까 이제 딸내미에게 갚아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요. 반드시 심은데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장모님이 천국에서 내려다 보고 “내가 심어 놓았더니 그대로 거두는구나.” 기뻐하실 수 있도록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 유혹, 정욕, 탐심, 질병, 고통, 가난, 미움, 절망, 죽음 등 수많은 부정적인 환경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을 당하면서 살아올 때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 진짜로 고난이 다가올 때 굉장히 괴롭습니다. 사업이 안 될 때 직장을 잃을 때, 불치의 병이 들 때, 이런 여러 가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가 마음을 걷잡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고 탁 중심이 잡혀있으면 고난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데 마음이 중심이 잡히지 아니하면 막 흔들리고 굉장히 불안과 고통 속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에 마음이 주님께 딱 잡히고 중심이 섰을 때는 고난이 아무리 다가와도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그 중심이 안 잡히면 마음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려요. 그 불안하고 초조하고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을 읽고 난 다음에 그 시편이 마음속에 굉장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고 오랜 세월을 통해서 지금도 옛날과 다름없이 마음에 큰 위로를 주시므로 이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첫째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여러분 좋을 때야 함께 하기 쉽지요. 내가 고난스럽고 어려울 때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런데 고난당한 사람이 특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고난을 당하고 천지가 어둡고 고통스러울 때 모든 사람이 나를 도피할 때 주님은 나와 같이 계신다. 주님이 같이 계신다. 굉장히 평안하지요. 우리 어릴 때 시골에는 화장실이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장남이기 때문에 우리 어머님이 밤중에 화장실 갈 때 꼭 나를 깨워 가지고서 데리고 갑니다. 내가 짐이 되지 도움이 안됩니다. 왜, 무슨 힘이 있습니까? 화장실에 가면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그것도 엄마는 늘 “거기 있냐? 용기야 있냐?” 묻습니다. 어린 아이라도 데리고 같이 있으면 마음의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하물며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면 그것은 보통 빽이 아닙니다.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큰 빽입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닌다고 하는데 우리가 알려진 고난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고난도 있습니다. 알려진 고난은 사업을 하다가 망하든지 가정에 큰 풍파가 다가온다든지 불치의 병이 든다든지.. 미국에 세계에서 이름날 정도로 부부간에 인정이 있다던 엘 고어 전부통령이 50년 동안 부인하고 잘 살다가 늦게 고난을 당했지 않았습니까? 이혼했거든... 50년 살았으면 그냥 살지 이혼을 뭐하러 하노. 그런데 이런 고난이 있다 말입니다. 그냥 알려진 고난도 있고 많은 사람이 내 가슴에 사무친 고난을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남하고 나눌 수 없는 고난이 많아요. 남편은 아내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고난이 많습니다. 사업에 자금이 떨어지고 계약이 무너지고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아내에게 말하면 걱정을 할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출 때가 많습니다. 저는 늘 몸이 약했기 때문에 정말 어떤 때는 몸이 고통스러워서 교회 못나갈 것 같은데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어서 감춥니다. 이와 같이 알려진 고난도 있고 가슴에 감추고 사는 고난도 있는데 시편 25편 17절에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근심이 많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런데 주님은 고난을 당할 때 마음에 근심이 많을 때 그 고난이나 근심을 바라보지 말고 함께 있는 주님을 바라보라. 우리는 육체를 입고 있는 영혼입니다. 3차원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4차원 존재인 것입니다. 육체는 보이는 것만 취급하지만 우리 영혼은 안 보이는 세계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눈에 안 보이는 주님의 그의 권세와 능력으로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을 바라보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포심에서 놓여놔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 그 자체 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공포심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능력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지 우리 마음 속에 불안하고 공포하고 벌벌 떨고 밤새도록 잠 못자게 하는 불안한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욥은 욥기 3장 25절로 26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이것 보세요. 마음에 마귀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도록 만들어 놓고 그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 재산을 다 잃어버릴 것이라고 늘 두려워했습니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우리 재산 다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냐?” 그 다음에는 “자식들이 다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 밑도 끝도 없는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이루어졌어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두려워 하는대로 될지어다.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먼저 마음 속에 두려움을 갖다 주어서 마음에 믿음을 빼앗아 놓고 우리를 짓밟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이 남기고 간 뒤를 보라. 그 고난의 발자국들이 지나간 자리가 기쁨으로 가득 차고 넘치게 된다.” 이것은 독일의 시인 괴테가 한 말입니다. 주님이 같이 계시고 주님을 의지하고 고난을 통하면 그 고난이 기쁨이 가득한 체험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변화되어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같이 계시냐 안계시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확실히 내게 계시면 고난이 다가올 때 더욱 주님께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에릭 린드맨(Erick Lindman) 박사는 조사를 통해 고난당한 사람들의 85%는 자신의 고난이 결국 축복이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여러분 고난 다가오는데 결과 기다리다 보면 적어도 85%는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난이 반드시 우리를 멸절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왜 고난이 우리에게 지나고 나면 축복이 되냐면 첫째, 고난 때문에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처럼 나쁜 습관을 안 고치다가도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고난을 털어버리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보니까 성령님의 은혜를 받아서 변화된 것보다도 얻어맞고 변화된 일이 더 많아요. 지금 50년 목회를 하고 왔는데 하나님께 얻어맞고 고난 당하고 난 다음에 회개하고 버릴 것 버리고 가질 것 가지고 그런 체험이 참 많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고난 안 당한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고난으로 가정과 신앙, 사랑이 회복됩니다. 전에 등한이 여기고 내버렸던 것 이것이 다 회복되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인생이 새로워지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대신 감사하는 삶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도 주님을 믿고 기대하면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 상상, 말 등이 삶을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행복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보십시오. 마음이 얼마나 좌절하고 절망적이고 두려움이 꽉 들어찼기에 자기 목숨을 던져 버렸겠어요. 성경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마음 잘못 지키면 생명의 근원을 뺏긴다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주님 중심으로 서지 못하고 이 세상의 불안, 공포, 절망, 좌절 같은 것을 말하면 그 말이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말이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내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말로 내가 사로잡힌다고 했는데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전부 말로써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로써 죄 용서하시고 병 고치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에게 먹이고도 열 두 바구니 남으시고 온갖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선언한다는 것 굉장히 놀라운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내 제자 교회 부흥회를 갔는데 부흥회를 하고 난 다음에 제자교회 제자가 굉장히 몸이 아파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고 있다가 퇴원을 했는데 그 부인이 내게 와서 뭐라고 했냐면 “목사님, 아마 목사님 우리 남편 마지막 볼 것 같습니다. 더 못살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기도를 해보니까 아니야 산다. 그래서 내가 “아니 당신 남편 삽니다.” 걱정하니까 “아니요 목사님 몰라서 그럽니다. 완전히 이제는 끝장 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를 하니까 마음에 살 것 같아요.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우리가 이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그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이 말씀 자체가 힘이 됩니까?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 스스로를 보고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아주 황금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을 담대히 선언하라는 것입니다. 읽고 이 말씀이 내게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선언하면 이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기도하고 찬양하면 그 기도와 찬양이 힘과 능력이 있어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씀을 의지하고 믿음의 선언을 하면서 찬송하고 우리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5절로 7절 우리 다 같이 소리 내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이것 여러분 보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보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매일 소리내어 읽고 묵상하고 그 하루를 출발하십시오. 얼마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언제나 마음에 외우고 이 말씀과 같이 삽니다. 주의 지팡이가 나를 인도하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고 그렇게 기도하고 선언하고 나가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이끌어 주신다. 지팡이는 길을 찾아 가는데 필요하고 막대기는 짐승이 오면 치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안내를 말하고 막대기는 건져주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로 2절에 이것도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아 이 정도면 보통 아니지요. 안 믿는 사람들은 이런 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편지에 엄청난 약속이 들어있는 것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읽고 듣고 기도해야 마음에 그것이 축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주의 막대기가 나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야훼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아까 앞에는 인도하는 주님이지만 지금은 지키는 주님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왜냐면 주님이 우리 가운데 있어서 나를 돕는자 이기 때문에 사람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망하게 하지 않으면 안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데리고 가시는데 자살하면 몰라도 그냥은 목숨을 빼앗아갈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자체가 굉장히 우리 마음 속에 위로가 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늘 잊지 말고 마음에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2.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두 번째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쳐들어 왔어요. 원수와 나하고 경계선을 두고서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생각과는 정 다른 생각을 주님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은 진수성찬도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그리고 기름을 부은 것은 우리를 높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기름을 높여 줘서 우리가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겠다. 원수가 우리에게 좋은 일 안해주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원수가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했는데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고난도 이와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고난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무서워서 못한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고난 그 자체보다 더 큰 위험이 되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넣어 주어서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알아야 할 것은 저는 이 성경구절이 오늘날까지 굉장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목회를 해오니까 원수가 많잖아요. 같이 믿는 동료들도 시기심으로 미워하고 완전히 우리 신앙과 다른 원수들도 제가 망하기를 원하고 이런 시련을 많이 겪을 때 이 성경구절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원수야 오너라. 진수성찬 하나님이 차려주실 기회를 만드신 것이다.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잔이 넘친다. 그러므로 원수가 오면 손해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보탬이 된다. 진짜 그렇더라고요. 원수 안 오면 밥상도 안 차려요. 원수가 와야 밥상을 차립니다. 하나님이 보통 때는 밥상을 안차려줘도 원수가 오면 밥상을 차려줘요. 그 다음에 기도를 응답해서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높여 주신다. 결국 원수하고 싸움은 하나님이 하시지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말하기를 이 전쟁에서 너희들은 싸울 것이 없고 너희는 가만히 있어 야훼께서 어떻게 너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 건지는 것 보라. 다윗도 어릴 때 골리앗을 만나서 말하기를 전쟁은 창과 칼과 단창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에 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 우리가 나가서 직접 손에 피 묻히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따라 말씀하세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주께 맡기면 주께서 날 대신 원수를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가 오면 진수성찬도 온다.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한 믿음으로 그 모든 고난을 예수님께 맡기고 감사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주님 감사합니다. 진수성찬을 차리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절대로 기억하고 잊지 마십시오. 고난이 다가오면 고난과 동등 이상 그 축복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사막에 우리를 내던지지 않습니다. 주를 의지하고 주를 따르는 사람은 천사가 되어야 축복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약한 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사람치고 온전한 사람 어디 있습니까? 다 죄인이지. 의인이 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100%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회개하고 또 일어나고 회개하고 부르짖는 그 신앙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돌봐 주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이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원수가 왔을 때 진수성찬 차려주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기 전보다 훨씬 좋아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92편 9절로 10절에 “야훼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굉장히 무섭고 까다롭다고 생각하는데 잘못 생각했습니다. 우리 하나님만큼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은 우주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성급하게 우리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당하는데 온전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조금만 기뻐하지 말고 온전히 기뻐하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보십시오. 시련 당하는 것이 내가 부족함이 없이 축복 받을 수 있는 인격자가 되는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인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벌써 하나님이 해결의 길을 예비했다고 마음에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요, 내 아버지이기 때문에 이미 문제 해결점을 예비해 놓았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않고 시험을 향해서 담대하게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가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그것을 기화로 마귀가 달라드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는 과수원을 했는데 과수원을 했기 때문에 사나운 개를 아홉 마리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우리 집근처에 오는 사람마다 거의 개에게 안물린 적이 없습니다. 개가 짖으면 사람이 달아나거든. 달아나면 따라가서 물어버립니다. 그러나 달아나지 않고 딱 서서 개의 눈을 같이 쳐다보고 있으면 절대로 안물어요. 중간에 와서 빙글빙글 돌다가 말아요. 개도 사람이 두려워하면 얕잡아 봅니다. 그러니 마귀가 우리가 두려워하면 어찌 얕잡아 보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무서워하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 기뻐하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당해도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셋째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주 안에서 반드시 믿고 기대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같이 신앙생활 한다면 우리가 늘 마음에 기대를 버리지 말아야 될 것은 주의 선하심, 우리 좋게 만들어 주는 주의 손길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굉장한 나의 구원자를 모시고 산다는 것입니다. 나를 좋게 해주는 분을 모시고 산다. 시편 100편 5절에 “야훼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주님이 계시면 우리에게 이 크나큰 선하심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하심을 주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음 속에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으로 계시므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다는 이 믿음을 힘차게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손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을 붙잡아서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안되더라도 주님이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우리 하나님을 바라볼 때 긍정적으로 참으로 좋은 하나님이라는 이런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불러서 하나님을 믿게 하신 하나님은 정말로 좋은 하나님이요, 축복의 근원인 훌륭한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난은 왜 당합니까? 지금까지 설명했지만 고난이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얼마나 허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고 하는데 네가 고난 당해봐라. 네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네가 얼마나 허약하나 너 대신 내가 도와줄테니까 나를 믿으라는 허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얼마나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인 것을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인지 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나의 약함을 깨달아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고난을 통해서 자꾸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체험하므로 하나님이 위대하심을 체험하게 되어서 더 큰 일을 믿을 수 있고 꿈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므로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다 여기 있지만 며칠 후 며칠 후 저 요단강 건너가 천국 아름다운 영광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7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이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자라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서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 파괴적인 생각, 뒤로 물러가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내 어떠한 환경에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내일은 오늘보다 달라지고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달라지고 명연은 금년보다 달라진다고 긍정적으로 기대하십시오. 훌륭한 사람 만나게 될 때 많이 기대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늘 기대를 하십시오. 하루에 열두 번을 기도해도 열두 번을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만들어 주는 놀라운 우리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의 골짜기를 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을 할지 천지가 아뜩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지팡이로 길을 안내해 주시고 막대기로는 원수를 막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원수가 오면 진수성찬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도 넘치게 해주시니 원수가 안 오는 것보다 결과를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원수 때문에 우리가 더 향상하고 발전하고 승리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결코 원수가 우리를 멸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삶으로 이 세상에서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체험하며 하나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고 살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부귀, 영화, 공명이 행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지위, 명에, 권세, 청춘이 행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와 계셔야 우리가 참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시편 23편을 통해서 깊이 깨달아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