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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22. 주일설교 십자가에서 출발한 구속의 은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어느 모로 보나 하나님은 우리나라와 민족을 축복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살펴보아도 우리처럼 이렇게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함께 모여서 부르짖고 기도하는 나라와 민족이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우리가 앞서있는 것입니다. 너희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주님께서 우리 민족과 함께 계시고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겠다고 하셨으니 주님이 우리를 높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십자가에서 출발한 구속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미국의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대 각성운동을 주도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예수님의 구속은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갚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아담 이후 잃었던 인류의 신분을 되찾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걸머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심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우리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인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과 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죽었으므로 이 예수의 죽음을 우리는 걸머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죄와 질병과 저주와 절망과 지옥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걸머졌으니 그 걸머진 십자가를 내가 끌어안아야지요. 내가 걸머져야지요.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의, 거룩함, 성령 충만, 치료, 건강, 축복, 생명, 영원한 희망 모두 다 내 것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와 일치가 되어야만 우리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있는 곳에 부활의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없는 곳에는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복음이란 항상 예수의 죽음에 따라서 부활의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국 내 천국, 예수 영생 내 영생. 예수와 나와 이처럼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오늘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본론> 1. 십자가에서 주신 영혼의 구속 첫째로, 십자가에서 주신 영혼의 구속의 은혜를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반역하고 죄를 짓고 타락하므로 그 영혼이 죽었습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선악과와 따먹었을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영적 죽음을 가져왔고 하나님과 분리되고 만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해도 인간의 힘과 능으로 하나님께 되돌아갈 수 없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이 죽음에서 건져줄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은 인간의 힘으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몸찢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과 나 구원하는 역사를 다 이루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이 육으로는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단번에 이루신 것입니다. 질질 끌지 않으셨습니다. 10년, 20년 걸리지 않았었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단번에 여러분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순간에 여러분은 용서와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나같이 못난 놈이 어떻게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못나도 선물은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잘났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사람이 주고 싶어서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주고 싶어서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계속해서 용서의 선물을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을 때 단번에 영원히 구원을 얻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십자가에서 한번 이루어지고 난 다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고 또 계속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항상 구원을 계속해서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과 육을 주안에서 늘 깨끗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디 목사님이 스코틀랜드에서 전도 집회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집회에서 한 소녀가 참석했는데, 소녀는 “나는 배운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명성도, 돈도 없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지도 않아서 구원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습니다.” 굉장히 자격지심에 빠졌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 무디 목사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 설교하셨습니다. 이 때 목사님의 설교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소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무디 목사님이 설교하는 강단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군중을 헤치고 목사님을 향해 달려 나오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부족한 모습 이대로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시나요?” 무디 목사님은 소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아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매님을 받아주십니다.” 소녀는 하나님이 자기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기쁨에 찬양과 감격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성가대의 해밀턴(E. H. Hamilton)이라는 여자가 종이를 꺼내어서 작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무디 목사님의 음악 목사였던 생키(I. D. Sankey)목사님이 작곡을 해서 탄생한 곡이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앞에 나온다는 찬송가 349장입니다. 우리 다 함께 불러 볼까요? 1. 나 주의 도움 받고자 / 주 예수님께 빕니다 /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2.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 날 위해 피 흘렸으니 /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맞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로 우리는 단번에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주님은 오직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지금 있는 그대로 우리의 모습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항상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고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십자가에서 주신 범사의 구속 둘째로, 십자가에서 주신 범사의 구속을 우리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두 번째 범사에 잘되라고 했지 않습니까? 범사란 무엇입니까? 아담이 타락해서 이 세상에 저주를 받은 삶이 범사인 것입니다. 태어나서 자라나고 입고 먹고 마시고 하는 모든 것이 범사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모든 범사가 다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옛날에 타락하기 전에는 이 범사가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인생으로 태어나서 사는 것이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고난 속에 삽니다. 이 가시와 엉겅퀴와 저주와 고난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8절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우리 인생에 눈에 안 보이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수고해야 소산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고 안한 사람이 있습니까? 다 인생이 수고롭습니다. 사는 것이 수고하지 않고 사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보고 손을 내미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너무 수고롭습니다. 다른 사람도 수고로워요. 내 팔자 고약합니다. 다른 사람도 팔자 고약합니다. 조금 나을는지 몰라도 다 이 세상은 저주 받은 세상에 가시와 엉겅퀴를 걸머지고 살게 되어있기 때문에 고약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릴 때 우리의 저주의 가시채를 다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으로 복 주신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해서 우리를 구속하신 결과로 우리가 들어갈 천당은 어떠한 곳입니까?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야~ 얼마나 고맙습니까? 날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거처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지나가지만 우리가 영원히 살 거처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내일에 살 거처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새 하늘과 새 땅을 주님이 가지고 오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4절에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저주가 지나가버렸습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지나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지나가고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하늘나라가 이 땅에 살 때 벌써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이 땅에서 주신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오늘 예배당에 앉아있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주어지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나갈 것입니다. 왜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저의 말씀을 듣고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갈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 예수님만큼 부요한 분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 것인데...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알아야 돼요.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여러분,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난이 물러가고 부요한 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저는 그것을 알고 50년간 주님 앞에서 즐겁게 살았습니다. 마음에 부요의식으로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부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부요하다고 모습을 꿈꾸고 나는 부요하다고 믿고 나는 부요하다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자기가 부요하게 된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여러분을 부요하게 만든 것을 알아야죠. 항상 마음속에 부요함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 내 현재 환경이 어떠하든 남이야 뭐라고 말하든 내 마음속에 부요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꿈대로 믿음대로 말하는 대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 변함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고린도후서 9장 8절로 11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기가 막힌 말 아닙니까? 모든 일에 한 두가지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항상, 어제 하루가 아니라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찰랑찰랑하여 아닙니다.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항상 넉넉히 가지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박수를 칠 것 아닌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 내가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야 돼요.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오면 복이 굴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 그러니 예수 믿으면 영원이 용서받고 천당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저주에서 해방되고 가시와 엉겅퀴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 믿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은혜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3.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세 번째로,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예수 믿으면 또 건강해집니다. 원래 죽음이 없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영혼이 죽고 따라서 육체도 죽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별도리 없이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다 흙으로 다 돌아가요. 아담과 하와가 죄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때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건강합니다. 병에서 치료함 받고 건강하고 육신이 무너져도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교인들과 불신자들을 각각 100명씩 건강진단을 하여 비교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교인은 100명 중에 40%가 병자였고, 불신자는 100명 중 80%가 병자였습니다. 병원 연구소에서는 어떠한 이유로 교인들에게 병자가 더 적은 지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첫째, 교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건강하다. 둘째, 교인들은 교회에서 박수치고 찬송할 때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고 스트레스가 풀릴 뿐만 아니라, 온 전신의 근육과 신경이 운동하게 되므로 건강하다. 셋째, 교인들은 새벽기도를 오며 가며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때문에 폐가 아주 건강하다. 넷째,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기도하여 마음속에 쌓였던 근심과 걱정, 속상함과 불안 등을 해소하므로 울화병이 안 생기고, 간에도 무리가 없어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안 믿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술이나 과식 등으로 풀려고 하므로 암이 생기고 당뇨병이 생기는 등 병 투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출발한 구속의 은혜로 우리 몸이 건강하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모든 질병에서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육체의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육체가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육체도 부활을 해서 안 죽는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로 5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이 육체가 영원한 생명으로 덧입기를 원한다. 그것은 왜냐, 주님이 강림하시면 육체가 부활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닌 몸을 입고 약한 몸이 강한 몸을 입고 버린 몸이 영화로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으면 땅에 파묻지만 나중에 그 자리에서 부활의 몸이 되어 주님 오시는 날에 부활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부활할 뿐 아니라 이 부활할 육체도 주님께서 성령으로 건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몸도 건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시고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주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 병을 짊어지셨도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 말씀들을 생각하고 이 말씀대로 건강해진 것을 바라보고 그리고 이 말씀대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이 말씀대로 입으로 늘 시인하고 믿음으로 살면 건강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그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긍휼과 자비로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부활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왕상 17장 17절로 24절에 보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고, 수넴 여인의 아들이 왕하 4장 32절로 35절에 보면 살아났고, 야이로의 딸이 마가복음 5장 35절로 43절에 보면 살아났고, 과부의 아들이 누가복음 7장 12절로 15절에 보면 살아났고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 만에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요 11:39,40,44). 또한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많은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27:52,53). 사도행전에 보면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던 다비다 ‘도르가’가 병들어 죽었으나 베드로 사도에 의해 살아났고(행 9:36~40), 바울의 강론을 듣다가 창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행 20:9~12)가 살아났고 마태복음 24장 31절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을 모을 것을 말씀하시며 부활에 대하여 여러 가지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0절과 마가복음 12장 25절에 부활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의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9절에는 부활한 후에는 우리 몸을 보고 만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는 불신자들도 부활하나 지옥에서 영벌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우리가 부활할 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 없는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 죽은 자를 살릴 뿐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믿는 자들이 모두 부활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부활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몸이 치료받는 것은 부활의 시작인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몸이 부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되어 영원이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그 시작으로 몸에 치료를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영원히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활하기 전에 이 땅에 살 동안에 우리는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시편 103편 3절로 5절에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신다. 그러므로 오늘 다 병고침 받아야 돼요. 좌우간 누가 뭐라고 말을 해도 주님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꿈꾸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말하십시오. 그대로 될 것이니까. <결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짊어짐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구속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걸머지면 그때로부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신 은혜를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렇게 되어야 돼요. 여러분 영혼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잘됨같이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해야 돼요. 믿는 자는 여러분의 전적 인격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돼요. 이유 없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근거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산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항상 죽음에 넘기우면 그리스도의 생명도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야 돼요. 예수의 영원의 생명, 육체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돼요.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일을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죄를 예수 이름으로 꾸짖고 저주를 꾸짖고 질병을 꾸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 저주는 물러갈지어다. 너희 죄악은 물러갈지어다. 너희 육체의 고통은 물러갈지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꾸짖고 믿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백으로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여러분의 집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여러분 생활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우리 교회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우리는 죽은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사람들하고 나눌 수 있는 진리를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를 얻었고 자유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거입니다. 야~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굉장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정말 복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을 입술로만 말하지 말고 믿고 누리십시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꿈꾸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선언하십시오.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리면 많은 사람하고 그 은혜를 나누게 되니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은혜를 누리면 누릴수록 하나님께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진실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예수께서 우리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체험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예수 죽음을 우리가 항상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아버지여 예수 생명을 항상 우리 몸에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항상 체험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이 항상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