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8. 주일설교

너와 나의 쓰레기통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 8:1~11)

할렐루야~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평안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오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두 세사람이 모이면 주님이 반드시 그 곳에 와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상상속에 우리의 꿈속에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교회당 건물도 바라보지 마시고 조용기 목사도 바라보지 마시고 여기에 와 계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바라보십시오. 모든 생명의 은총이 그리스도로부터 여러분에게 넘쳐나오는 것입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너와 나의 쓰레기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의 사무실에는 큼직한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아침에는 비어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차갑니다. 휴지, 쓸데없는 편지, 폐기된 문서, 과일 찌꺼기, 초콜릿 부스러기, 콧물 닦은 휴지… 퇴근 때쯤에는 오물로써 가득합니다. 집에 가도 쓰레기통은 어디나 있습니다. 안방에 가도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건넌방에 가도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대청마루에 가도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회사에 와도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세상에 쓰레기통이 없는 곳이 없어요. 그리고 쓰레기통이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 못들어봤습니다. 그것 왜 안방에 쓰레기통이 있느냐. 왜 사무실에 쓰레기통이 있느냐. 왜 당신 교회는 쓰레기통이 있느냐. 그렇게 쓰레기통 있다고 꾸짖는 사람 한 사람도 못봤습니다. 이 쓰레기통은 누가 가지고 왔습니까?

<본론>
1. 아담이 갖고 온 쓰레기통
첫째로, 쓰레기통은 우리의 조상 아담이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제일 처음 아담이 지음을 받았을 때는 쓰레기통이 필요 없었어요.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여러분, 하나님이 쓰레기통이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쓰레기통 필요한 하나님 봤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아담은 처음에는 쓰레기통이 필요 없었어요. 타락하기 전에 아담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죄의 쓰레기통이지 의의 쓰레기통은 아닌 것입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쓰레기통이 필요 없었어요. 아담은 죽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충만하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죽음이 없었습니다. 아담에게는 쓰레기통인 질병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창조된 아담은 죄가 없기 때문에 벌거벗고 있어도 수치감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쓰레기통이 왜 필요합니까? 아담이 범죄한 이후 그의 후손 중에 크고 작은 쓰레기통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사람에게 사망에 이른 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가 오늘 말하는 쓰레기통이라는 것은 죄의 쓰레기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쓰레기통은 전부 감춰놓고 난 다음 남의 쓰레기통 뒤지기 바쁘다구요. 남의 집에만 가면 쓰레기통을 뒤진다고... 왜 쓰레기통 뒤지려거든 자기 쓰레기통을 뒤지 남의 쓰레기통 뒤집니까?
마태복음 7장 3절로 5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와~ 나는 눈에 들보가 있는줄 몰랐어요. 성경에 들보가 있다니까 있는 것은 틀림없어요. 내가 몰라서 그렇지.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러므로 내 눈 속에 들보가 있으니 들보부터 빼야 안되겠습니까?
이현수 목사는「네가 거듭나야 하리라」는 책에서 참으로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죄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다른 유전은 안물려 받았다 할지라도 죄는 틀림없이 물려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핵심적인 유전자인 죄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죄의 씨는 아담 이후 모든 인간에게 심어진 것인데, 어릴 때는 이러한 죄의 씨가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숨어 있던 죄의 씨가 활짝 피어나 나중에는 죄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를 정도로 죄에 대한 감각조차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죄도 지을 수 있으므로 자신을 마치 선인(善人)인양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안에는 도둑도 창기도 살인마도 들어 있으므로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늘 성경에 비춰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가장 조심해야 될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큰 적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악한 우리 자신이 우리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나는 최선의 내가 지금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한발 쯤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굉장히 고약한 놈이 속에 들어 있어요.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쓰레기통을 감추고 남의 쓰레기통은 뒤지며 그 안에 든 오물을 꺼내 시시비비(是是非非)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선자가 하는 비열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쓰레기통 없이 산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님) 아멘! 잘아네. 야~ 한번 박수 한번 쳐주십시다. 오래 생각하지 말고 재깍 대답이 나와야 돼요. 예수님만이 죄없이 살았으니까 죄의 쓰레기가 없는데 쓰레기 담을 쓰레기통이 왜 필요해요? 죄를 자꾸 줄이려고 하면은 누구하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예수님하고 살아야 돼요. 마귀하고 살면 쓰레기통을 수입해야 돼요. 너무 많이 필요해 가지고서... 그러나 예수님하고 살면은 쓰레기통이 자꾸 줄어지니까 쓰레기통이 없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2.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
그러면 오늘 여기 오늘 둘째 번에 성경에 읽은 내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쓰레기 투성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보십시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잡혔는데 또 그 여자를 잡은 사람들이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남의 쓰레기통 뒤지는 전문가들에게 잡혔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놔둘 턱이 있습니까? 이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나온 바리새교인과 사두개교인들은 엄청나게 남의 허물을 뒤지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으로 잠시 가셨다가 이튿날 아침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셔서 가르칠 때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서 왔습니다. 이 여자는 신발도 벗고 옷도 반 벗어진 채 머리가 산발이 되어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서 왔습니다. 이 여자를 예수님 계신 곳에 와서 세워 놓고 예수께 말하기를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에 아이러닉하게 여깁니다. 이 여자를 현장에서 잡았다면 남자도 잡아와야지. 혼자 간음하는 것 봤어요? 이렇게 불공평한게 어디 있습니까? 남자까지 잡아서 둘이를 고스란히 묶어 왔다면 나도 고개를 끄덕끄덕 하겠어. 그런데 남자는 빼돌려 놓고 약한 여자만 끌고 왔습니다. 고약한 놈들입니다.
요한복음 8장 5절로 6절에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실제 그들이 율법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신명기 22장 22절에 뭐라고 말했느냐면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만 죽이라고 말 안했어요. 둘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교인이나 사두개교인은 남자들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은 남자들이라고 남자는 빼돌려 놓고 불쌍한 여자만 끌고 왔습니다.

3. 예수님의 대답
그런데 예수님이 얼마나 여러분 공평하신지 우리 세 번째 예수님의 대답을 한번 살펴 볼까요?
너희 중에 쓰레기통이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여러분 왜 내가 쓰레기라는 말을 인용했냐면 하도 죄라는 말이 흔하기 때문에 이제는 죄라고 말하면 무심하게 들려요. 나보고 왜 쓰레기통 차고 다닌다고 하면은 어디 쓰레기통이 차있노? 그렇게 하지만 조용기 너 죄인이지? 아는 말 왜 다시 하냐?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 아닌 사람 누가 있어요? 내가 대전에서 집회하는데 공설운동장에 사람이 꽉 들어차 있는데 여러분 중에 죄를 안지은 사람 손들으라고 하니까 한 30대 남자가 손을 탁 들더라구요. 나오라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니까. 그 부인이 막 손을 흔들어요. 그래서 왜 손을 흔드냐니까 우리 남편 정신병자에요~ 그래서 내가 강단에 서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죄없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사람들이 다 박수를 치더라고 맞다고...
요한복음 8장 7절에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야~ 엄청난 대답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계셨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신데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도 숨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있거든요.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무엇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요사이 같으면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안썼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손가락으로 써가지고서 아무것도 안써지니까. 그때는 보들보들한 흙이기 때문에 쓰면 노트에 쓰는 것처럼 다 손가락을 따라 읽을 수가 있어요. 예수님이 그 중에 제일 잘난 사람 리더된 사람을 한번 쳐다보시고 난 다음에 그리고서 며칠 어느 곳에서 너 이런 죄 지었지? 나는 다 알고 있다. 어깨 너머로 보고... 야 나 오늘 아침에 손님 대접하기 시간 없어서 먼저 가야되니 나 간다. 그 다음 두 번째 사람보고 예수님이 너, 누구누구 하고 잘못 죄 지은 것 내가 알고 있다. 내가 너를 심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도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는데 가봐야 되겠다고... 주님이 한사람 한사람 쳐다보고서 그 가슴 속에 감춰 놓은 쓰레기통을 뒤지니까 쓰레기없는 놈이 한놈도 없다 말입니다. 전부 쓰레기통을 다 안고 있으면서 이 여자의 쓰레기통만 뒤지고 야단법석을 했거든.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 가슴 속에 감춰 놓은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를 끄집어 내어서 이것 내가 어떻게 할꼬 덮어 버릴까 폭로해 버릴까? 여러분, 예수님도 우리 죄를 폭로하지 않고 덮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 얼마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죄를 다 폭로해 버리면 이 세상에 살아갈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옛날 어른들이 늘 하신 말씀이 너무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고 그래요. 조금 꾸정해야 물고기가 있지. 너무 물이 맑으면 물고기도 없다는 식으로 너무 서슬이 시퍼렇고 율법주의로 따지면 의로운 남편 밑에 죄많은 여자가 살 수 없고 의로운 여자 곁에 죄많은 남편이 집에 들어올 수가 없어요. 회사의 일 마치고 난 다음에 집에 들어올 때는 어라~ 좋다~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들어와야지 정신차리고 들어오면 마누라 앞에 발가벗기는데 견디나요? 여러분 생각하기를 남편이 들어오는데 발가벗기고 심판을 하면은 남편이 고분고분하고 잘될 줄 아는데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마누라에게 꾸중들어서 잘되는 남자 별로 없어요. 더 나빠지지. 그냥 모른체하고 잘 해줘야 돼. 끌어 안아주고... 아이구 춥지? 아이 이 추운데 이 술에 취해서 길거리에 쓰러지면 어떻게 하려고 하노? 이리 들어오너라. 빨리 들어와! 목욕 안했지? 목욕 해주고 그러면 속으로는 멀거니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잘해야지. 내가 나쁜 놈이야. 자기 속으로 회개해요. 자기가 스스로 회개해야 변화가 되지 꾸중을 들어서 회개를 하느냐. 회개 안합니다. 변명하지. 율법을 가지고서 사람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율법 전제하에서 잘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서있는 여자만 남았더라. 야~ 다 정죄하던 사람, 율법주의자들이 다 가버리고 예수님하고 그 여자만 남았어요. 나중에 여러분 우리가 심판 받을 때도 한가지입니다. 여러분 율법주의적으로 나가면 다 주님 앞에 서지 못하고 다 도망가야 되는 것입니다. 못견뎌요. 불꽃 같은 눈으로 살피는데 어떻게 내가 내 쓰레기통을 감출 수가 있어요?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이 여자가 주여 없나이다. 그 다음 대답이 걸작품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이 세상에 이럴 수가 어디 있어요? 이 사람들만 정죄 안하고 떠나간 것이 아니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것은 무슨 말이냐면 죄 안짓고 살도록 노력하라. 죄 안지을 놈 한 놈 없다. 열 번 지었으면 노력해서 여덟 번, 일곱 번, 여섯 번, 다섯 번 자꾸 적게 짓도록 노력하라 그말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0절로 11절에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구원하러 오신 주님이 여러분을 심판해서 죽이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므로 오늘 누구든지 회개하면 주님이 우리의 감추인 쓰레기통을 청소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쓰레기통을 매일 청산하신 예수님 영원히 매일 매일 영원히 용서했다. 영원이란 무엇입니까?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합친 것이 영원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주님이 우리를 구원했다는 말은 영원한 과거의 죄도 다 용서하고 영원한 미래의 죄도 다 용서하고 그리고 보니 나는 그리스도 용서의 은혜 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 구원 받은 것 자랑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4. 매일 쓰레기통을 청산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갈보리 십자가가 우리 쓰레기 소각장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로 22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로 14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 믿고 영원히 온전히 되었다. 거짓말 하지 마라. 지금도 죄덩어리인데 무슨 영원히... 그렇든 저렇든 내 죄는 주님이 영원히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아 청산해 버리셨으니 예수님이 갚은 것 내가 갚은 것하고 같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와 의를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선물로 받았어요. 여러분은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게 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얻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영생 복락 천국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온통 선물 받아서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이제 얼마있지 아니하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 크리스마스때 선물을 주고 받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인 예수님을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영원한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2절과 17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여기 보십시오.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았으니까 예수님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힌 것 아닙니다. 여러분의 죄, 나의 죄 걸머지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으므로 여러분과 나의 죄가 영원히 청산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17절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죄를 용서했으니 영원히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내버린 쓰레기 종류는 죄, 불결, 질병, 저주, 죽음 등의 쓰레기를 우리가 내버린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의인으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해서 단번에 쓰레기를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주님께서 우리를 한두 죄에서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에서 다 청산하게 해 주셨다. 여러분 일일이 전부다 고백해야 용서 받는다면 잊어버린 죄가 너무 많아서 고백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내가 죄인인 것을 알고 내가 온통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면은 내가 고백하지 못하고 잊어버린 죄도 주님이 다 포함해서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서 9장 17절에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4절에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결론>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마음을 작정해야 될 것은 우리는 남의 쓰레기통과 쓰레기를 비난하고 과잉 관심을 두지 말고 나의 쓰레기와 쓰레기통을 정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청소할 때 방안에 있는 쓰레기를 청소하잖아요. 우리가 사무실에 일 다마치고 나면 소재하는 사람이 와서 쓰레기를 청산하잖아요. 그 쓰레기가 바로 우리 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매일매일 우리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가득해진 것처럼 죄를 지어요.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청산할 때 그 죄는 이미 영원히 용서된 죄를 재탕 용서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개만 하고 있으면 계속해서 주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이제는 죄를 점점 적게 짓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날로 쓰레기가 줄어들고 쓰레기통이 작아져서 이 세상을 떠날 때는 필통만 하게 혹은 더 작게 되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쓰레기가 없다는 사람은 위선이란 쓰레기가 더 쌓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히 쓰레기가 없어질 정도로 계속해서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주님 앞에 설 때는 우리의 쓰레기통이 조그마하고 쓰레기가 한줌도 되지 않도록 되어서 주님께 칭찬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청산은 주님이 다 해버린 것입니다. 청소하는 것은 굉장히 그 속에 힘이 있습니다. 그냥 청소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청소를 하면은 환경이 깨끗하게 된 것처럼 거기에 있는 사람도 변화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청소 하나로 인생을 바꾼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 마스다 미쓰히로는 회사에서 퇴출되고 개인 파산으로 이혼하는 등 인생의 절망과 어둠의 터널에서 허우적대며 쓰레기더미에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집안에서 청소도 안하고 술마시고 담배피고 마약중독이 되고 목욕도 안하고 청소도 안하고 완전히 쓰레기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친구가 찾아와서 그에게 “마스다, 이렇게 사는 것은 인생에 큰 죄를 짓는거야! 이 꼴이 뭔가? 우선 청소부터 하자!” 친구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방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집 바깥으로 던졌습니다. 좌우간 비싸고 싼 것 오래된 것 새로운 것 가리지 않고 무조건 다 집어 던지는거라. 그러니 이 사람이 “야 그것 내가 첫 월급 타서 산 것인데 그것은 안된다.” “안되던 되던 다 집어 치워라!” 그리고 집안을 깨끗이 청결하게 했어요. 그러나 친구는 막무가내로 집안의 잡동사니는 물론 비싼 것 아까운 것을 가리지 아니하고 집밖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안을 구석구석 윤이 번쩍번쩍 나게 닦고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친구가 돌아가고 난 다음 번쩍번쩍하고 깨끗한 환경에 앉아있는 자기를 보자 자기 마음 속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새롭게 시작해 보자!”인생은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거다. 누가 가르친 것 아닙니다. 환경이 깨끗해지니까 생각도 깨끗한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체험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청소 회사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환경을 정리하면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되겠다고 싶어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 복음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네 신문과 인터넷에 자신의 경험을 글로 써서 부지런히 올렸습니다. 6개월 뒤, 그는 놀랍게도 청소 회사에서 제 2인자로 영접을 했습니다. 청소하는 글을 부지런히 적어 주니까 굉장히 청소회사 사업이 잘되거든요. 이 사람이 직접 청소회사 제2인자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얼마있지 아니하여 청소회사 사장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가 지은 책은 ‘청소력’이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었으며 ‘꿈을 이루어주는 청소력’, ‘걸레 한 장으로 인생을 바꾸는 실전, 청소력’등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일명 유명인사가 되고 책만 팔아가지고도 큰 부자가 되었어요. 사람 팔자가 이렇게 바꿔져요. 마음에 생각이 달라지면 그 행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보십시오. 마음에 생각이 달라지고 그 인생에 미래에 대한 꿈이 달라지자 할 수 있다고 믿고 나도 변화될 수 있다고 입으로 말하자 4차원의 인생을 속에서 발견해 낸 것입니다. 자기 속에 감추인 4차원의 인생을 거름더미에서 생각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믿음을 통하여 말을 통하여 개발해 내자 그것이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로 하여금 쓰레기 회사의 사장이 되게 하고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되게 하고 이제는 당당한 상층사회 유명인사가 되고 부자가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가 지은 책이 번역된 것도 부자가 되려면 책상을 치우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책상을 온갖 쓰레기더미로 쌓아 놓고는 부자가 안돼요. 책상을 싹 정리를 해줘야지. 제가 참 놀란 것은 우리 한국에서 상당히 이름 있는 인사인데 그 집에 내가 심방 겸 놀러갈 겸 찾아가서 그 방 안방에 내가 들어가 봤는데 다른 사람 못들어가요. 내가 목사니까 들어가지 다른 사람 어떻게 그 방 안방에 들어가요? 큰 회사의 사장님의 책상이 깨끗해요~ 거기에 잉크병 하나에 만년필 몇 개, 볼펜 몇 개, 그 다음 원고지 몇 개, 제일 중앙에 성경 찬송가 놓여있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내가 사장님~ 내가 온다고 다 치웠군? 아니요~ 목사님 나 원래 이렇게 살아요. 나는 복잡한 것 싫어해서 이렇게 간단하게 해야 문제가 생기면 거기에 집중할 수 있지 뭐 온갖 잡동사니 다 갖다 놓으면 머리를 집중할 수 없어 가지고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목사님의 책상은 어떻습니까? 나중에 와요 나중에... 내 책상은 온갖 잡동사니가 꽉 들어차 있어요. 그것도 내가 은퇴하기 전에는 안그랬는데... 원로가 되고 난 다음부터 책상도 원로가 되어가지고서... 별로 안치워가지고서 더 복잡하게... 내가 거기와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야~ 이렇게 무엇이든지 생각을 집중할 수 있고 단순하게 하고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꿈을 꿀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면 새로운 인생이 된다. 이런 거지 대장도 새사람이 되는데 우리는 죄와 불결, 질병, 저주, 죽음 등의 쓰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서 우리 마음 속을 들여다 볼 때 깨끗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쓰레기가 없어야 돼요. 죄의 쓰레기도 없고 질병의 쓰레기, 저주의 쓰레기, 좌절과 절망의 쓰레기도 다 주님 앞에 청산해 버리고 속이 깨끗하고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보혈만 놓여 있으면 그리스도가 보혈을 통하여 우리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나는 산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좋다. 굉장한 파워가 나타납니다. 여러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찬지 압니까?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 그것 성경대로입니다. 너 입의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사로잡힌다. 옛날에는 심리학적인 말을 몰라서 중추신경이니 이런 복잡한 말 쓸 줄 몰라서 안썼지만 우리 하는 말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이 여러분의 인생을 사로잡아요. 실패자의 말을 하면 실패자의 말로 사로잡히고 패배자의 말을 하면 패배자의 말로 사로잡히고 성공자의 말을 하면 성공의 삶으로 잡히고 그러므로 내가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못산다. 이런 말은 제발하지 마세요. 그것이 여러분 인생을 잡아서 그리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생각도 행동도 그렇게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은 십자가의 갈보리의 보혈의 능력으로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 나는 거룩하고 성령충만하다. 나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치료받아 건강하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으니 만사형통이다. 하는 것마다 잘된다. 나는 죽어도 겁날 것 없다. 영원무궁, 영생천국을 얻었다. 뭐 다가지고 있는데 뭐... 없는 것을 말하지 말고 있는 것을 말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을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의 마음 속이 정리되고 우리의 집 쓰레기가 안방 건너방에서 정리되기 시작하고 깨끗해지면 질수록 우리 삶에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같이 해주셔서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는 것입니다. 쓰레기통에 썩어져가는 냄새가 가득차 있으면 결코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정죄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회개하면 청산해주고 쓰레기통 소재해 주고 영원히 깨끗해지고 여러분에게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오늘날도 두 손을 활짝 내밀고 계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