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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26. 주일설교 예수님의 오심과 사명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6~21)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오늘 행복합니다. 평안합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만족합니다. 오늘 아침에 이렇게 믿음의 선언 하셨죠?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학자인 에모드 마사로라는 분은 물컵 가지고서 한 물컵은 칭찬하고 한 물컵은 욕을 해주었는데 칭찬한 물컵의 물은 아주 아름다운 육각형을 이루고 욕을 하는 물은 썩어버렸더라고... 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러분 건강도 자꾸 칭찬해주면 건강해지고 욕을 해주면 썩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래요. 칭찬해주면 더 활발해지고 건강해지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욕을 하면은 병들고 뒤로 물러가고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항상 아침에 나는 행복하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기쁘고 즐겁다. 나는 충만하다. 복 받았다. 선언을 하고 하루를 출발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론> 오늘 저는 “예수님의 오심과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 파키스탄에서 한 젊은 크리스천 여인이 이슬람교를 믿는 동리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하도 이슬람 믿는 사람이 기를 쓰고 마호메트를 믿으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니 마호메트가 우리 위해서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셨다. 마호메트는 뭘 해주었냐?” 그러니까 당장 관에 그것을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 믿는 여성은 정부에 잡혀서 재판을 받았는데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아니 마호메트가 뭘 해주었느냐 그 말 한마디 했다고 사형선고를 했는데 이슬람교라는 것은 얕잡아 봐서는 큰일납니다. 우리나라에 이슬람교가 들어오면 이슬람교는 정부 이외에 또 하나의 정부가 되는 것입니다. 국제인권위원회에서 수없이 호소를 하고 문제를 야기해서 결국 크리스챤인은 사형을 당하지 않았으나 장기간 복역을 하고 나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날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늘 하는 식으로 서니까 거기에 있는 회당장이 성경을 예수님께 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어디를 펼쳤느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눈 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이렇게 기록한데를 펼쳤습니다. 그것을 보면 예수님이 상당히 열심히 성경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제자들 데리고 돌아다니시니까 성경은 안보는 것 같은데 주님이 구약성경을 상당히 열심히 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 하시느냐. 쉽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고 하셨으므로 일을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다니요.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실 때 가난하게 짓지 않았었습니다. 아담이 있는 에덴은 낙원이었습니다. 낙원이라는 것은 지옥이 아닙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처소를 낙원이라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낙원에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해서 범죄하므로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는 따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기를 하나님이 선악을 판단하는 것처럼 될것이라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고 에덴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반드시 죽는다. 그럼 마귀는 꼭 하지말라는 것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와에게 와서 아니야~ 안죽어. 안죽어. 절대 안죽어. 너 먹으면 눈이 밝아서 하나님이 좋다 나쁘다를 판별하는 것처럼 너도 좋다 나쁘다를 판별해서 하나님과 같이 동등하게 되므로 그것을 싫어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못먹게 한다. 한번 봐~ 얼마나 멋있느냐? 하와가 보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기 한지라 따먹고 기왕 먹은 바에는 자기 혼자 먹어 쫓겨나갈 이유가 어디 있느냐. 남편도 데리고 나가야지. 그래서 이 아담에게 주니까 이 바보같은 아담이 받아서 먹었어요. 둘이가 공모를 해서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에 둘이가 다 똑같이 저주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죄는 저주입니다. 그 저주가 땅에 임하여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냈습니다. 가난이 거기에서부터 온 것이에요. 제일 처음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에덴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과 육이 다 죽음의 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여기 보십시오. 사람이 저주 받으니까 사람이 사는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 오면은 그 땅도 복을 받습니다. 요사이도 한가지에요. 복이나 저주는 사람따라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집에 사람이 들어오는데 복받은 사람이 들어오면 그분이 들어오자마자 복덩어리가 굴러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주받은 사람이 들어오면 온집안 만사가 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저주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욕심은 잉태하면 죄를 낫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사람이면 사람으로 살지 사람이 왜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까? 욕심이 잉태하면 욕심을 따라 죄를 짓게 되고 죄가 자라면 사망이 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욕심만 잉태하지 않았으면 마귀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인데 욕심이 잉태하니까 하나님 말씀보다도 마귀의 말을 듣고 죄를 짓고 죄를 계속 짓다가 보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고 자기들만 버림받았으면 모르겠는데 자손 대대로 고통을 받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보다도 우리가 더 고통을 많이 당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면 격세유전이라고 해서 아버지 어머니 때보다도 손주 때에 머리가 더 좋은 자식들이 태어나기도 하고 병이 더 심한 병이 유전적인 병을 가지고 태어난 자식이 있기도 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때는 그때야 에덴 낙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아도 혹심하게 안 받았는데 세월이 흘러가서 오늘날 수천년 지나니까 얼마나 저주 받았는지 말도 못해. 그런데 우리가 이만큼 살아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 살아 있느냐.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가지고 온 저주를 당신이 청산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부요하신 분입니까? 아닙니까? 알기는 아십니까? 하나님이에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굉장히 부요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 다 털어버리고 가난한 목수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그의 삶의 희생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의 모든 가난과 저주를 청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모든 아담과 하와가 가져온 저주를 청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더 이상 가난은 없습니다.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은 가난도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10절도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10절은 엄청난 축복을 약속해 놓은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까 이제 저주가 사라지고 가시와 엉겅퀴가 사라졌으므로 심는 대로 거둘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심어봤자 가시넝쿨에 휩싸여 가지고서 다 녹아버리고 말아요. 저주가 따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된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저주를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한 뜻은 모든 일에 항상 어제나 오늘만 말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하나님 뜻이에요. 여러분 거지로 사는 것 하나님 뜻 아닙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이 무릎을 치시고 오냐, 내 아들 내 딸, 참 잘한다. 칭찬하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언제나 풍성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고린도후서 8장 9절,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10절 이 두 성경구절은 적어서 반드시 벽에다 붙여 놓으십시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도 엄청난 약속입니다. 가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엄청납니다. 아예 이 약속을 다 깨달으면 부자가 안될 도리가 없어요. 저는 일찌감치 약속을 깨달았습니다. 50년 전에 깨달았어요.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이런 축복의 말씀은 보배 덩어리입니다. 금덩어리입니다. 다이아몬드입니다. 이 말씀을 성경에서 팠으면 이걸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포켓트에 넣고 다니면서 이로 말미암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주신 이 보배로운 약속의 말씀은 여러분이 꼭 마음에 간직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합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마음에 간직한 그 말씀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왔다고 하셨는데 가난한 자에게 오늘날 복된 소식이 전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말구요. 복된 소식 말입니다. 제가 한참 목회할 때 어느 소녀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초등학교 다니는... 이 소녀의 가정은 어머니가 홀로 남매를 키웠는데 병든 몸에도 어린 남매를 위해 공사장에서 험한 노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이제 공사장도 못나가게 되므로 밥먹기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다니는 오빠는 물론 학교를 못가게 되고 초등학교 다니는 자기는 집안 시중하기 위해서 학교 못가게 되고 그래서 사랑하는 조용기 목사님 가난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정은 파멸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 초등학교 어린이 생각에도 목사님이 우리를 살리려고 하면 살것이고 목사님이 내버려 놓으면 우리는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편지를 보고 올바르게 봤다. 왜냐하면 목사 아니고 이런 것에 관심을 누가 가지겠나. 그리고 그 편지에 목사님, 우리를 버리지 말고 살려 주십시오. 제발 우리 어머니, 우리 오빠, 저를 좀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곧장 어머니하고 오빠하고 같이 내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내 사무실에 찾아왔어요. 찾아와서 내가 그 오빠에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의 등록금을 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생활비도 제가 넉넉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다음에 삶에 용기와 힘을 주었습니다. 내 전공이 희망목회 아닙니까? 희망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내 눈에 환해요. 그 초등학교 소녀의 얼굴이 태양같이 빛나는 것... 어린 아이가 얼굴이 캄캄하게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왔다가 제가 처리해 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얼굴이 태양같이 빛난다. 세상에 서로 도와주고 살아야 돼요.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서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저는 거기에서 이 가난한 애들이 초등학교에 지금 다녀봤자 무엇이 있겠느냐. 기술을 배워야 되지 않겠느냐 싶어서 근로자 선교 복지타운 현재 엘림복지타운 내의 엘림직업전문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 애들 들어가서 공부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한달에 10만 원 이하의 저임금의 불행한 환경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청소년들을 기술을 가르쳐서 기술자가 되도록 도와주려고 노력을 했고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인생의 꿈을 심어주고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가난은 고통이지 미덕이 아닙니다. 잘 살면서 이웃을 도와줘야지 가난한 사람이 되면 내 일가친척에게도 부담이 됩니다. 형님, 아우, 삼촌 일가친척도 부담이 되어서 다 기피 인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제일 첫째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나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기름을 부으셨다. 주님은 가난을 철폐하기 위해서 그것이 영적인 가난이라고 어디에 기록해 놓았습니까? 그냥 가난이지... 인간은 영, 혼, 육이 다 가난할 수 있으니까.. 영만 가난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선포하신 것이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이로서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려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당신이 가난하므로 말미암아 그 대가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어야 된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지금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보좌 우편에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대가를 우리가 찾아야지요. 가난하게 있으면서 사랑하신 예수님~ 그러면 주님이 내 대가를 찾아라! 내가 너를 위해서 가난하게 된 대가를 찾아 나에게 내놓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문제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가난하게 되어야 된다. 예수 믿으면 못살아야 된다고 잠재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때문에 예수 믿어 주님 은총으로 잘 살아야 된다고 복음을 전하는 저에게 굉장한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50년을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고 참된 경건이란 가난한 것이 아니라 과부와 고아를 그 환난에서 도와주는 것이 참된 경건이다. 저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실천하고 살아왔습니다.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예수님의 사명이라고 말했냐면 포로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무슨 포로입니까? 죄의 포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지어서 포로된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될 때에 죄인으로 잉태 되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죄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속에 60억 인구가 다 죄인으로 잉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의 포로가 되고 죄의 삯은 사망으로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되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 죄, 나의 죄, 여러분의 사망, 나의 사망을 끌어 안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당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벌거벗고 공개적으로 처형당하므로 주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청산해서 예수를 통해서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긴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을 얻고 사망에서 해방을 얻고 죄와 사망을 손에 쥐고 있는 마귀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고 사망에서 자유를 얻고 마귀에서 자유를 얻고 해방된 우리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일정 36년의 압박에서 해방된 것처럼 공산주의의 침략에서 해방된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심적으로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가 우리의 위치를 알았으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우리를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으로 포로로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단호하게 마귀를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과 자유를 마음 속에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요며칠 동안 저는 아주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알았습니다. 아.. 마귀가 나에게 고통을 갖다 주려고 하는구나. 제가 그대로 알고 나 아프다. 드러누워서 약보따리나 옆에 갖다 놓고 앓았으면 오늘 여기 못나왔어요. 제가 계속해서 대결을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 나는 죄에서 해방얻고 나는 사망에서 해방얻고 마귀에서 자유를 얻었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수백번 말하는 것입니다. 물러가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물러가라! 그래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이 저를 시험하시냐 하면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조용기처럼 그렇게 고통을 당하거든 조용기가 싸운 것처럼 너도 싸워보라! 싸우라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대적 안하면 안피하지요. 대적하면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는 여러분의 어깨 위에 있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있든지 둘 중의 한 곳에 있어야 된다.” 여러분의 죄가 여러분 어깨에 걸머지고 있던지 예수님의 어깨위에 걸머지우든지 두곳 중에 한곳에 있어야지 공중에 떠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어깨 위에 맡기면 여러분은 용서와 의를 얻고 천당가는 사람이고 여러분이 걸머지고 있으면 그 죄 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지옥 갈 것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리셨으므로 예수님께 맡기면 다 맡겨지는 것입니다. 안 맡기면 안 맡겨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마귀의 올무와 죄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셋째로,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기 위해서 왔다. 옛날에는 다 봤어요. 영안이 열려가지고서 하나님도 보고 천국도 보고 영적 세계를 다 보았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영이 죽으므로 눈이 어두워지고 영적 눈이 까마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영이 죽은 인간은 영의 눈이 어두워져서 물질밖에 안보이는 유물론자가 되고 하나님이 안보이니까 인본주의자가 되어서 인간 중심으로 서게 되고 천국과 지옥을 모르는 쾌락주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시편 53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중생하여 영안이 열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물은 회개를 말하고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받아들이므로 영혼이 살아나면 영안이 열리게 되고 하늘나라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말씀같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늘나라의 영적인 세계는 우리가 물질적으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아는 거에요. 그냥 영적 세계에 거듭나게 되면 내가 거듭났다. 하나님이 와 계시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곁에 와 있다. 그렇게 내가 영적으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늘 말합니다. 조목사 방언하느냐? 나 방언한다. 방언 그것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 왜 하느냐? 방언을 많이 하고 나면은 나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보이고 영적인 귀로 하나님 음성이 들리고 영적인 감각으로 하나님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방언을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방언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때는 방언 안해요. 언제 하느냐. 아주 귀할 때.. 제가 집회 초청을 받아 갔는데 굉장히 중요한 곳에 가서 설교를 해야 된다. 상당히 방언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왜, 내 몸에 하나님이 철철 넘쳐 흐르도록... 거기 있는 사람들이 보면 아휴 조목사 온 전신에 하나님이 철철 흐린다 말이에요.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니까. 그러므로 제가 해외에 나가서 수만명, 수십만명에게 설교할 때는 방언을 1시간 내지 두 시간 방언하고 나가면 굉장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느끼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게 설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리고 영의 입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로 7절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된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하나님 아들의 영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와 여러분이 친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하고 방언기도를 하고 이런 것을 통해서 아버지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방언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을 굉장히 큰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성령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시면 크나 큰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한 죄수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걸쳐서 40년간이나 교도소 생활을 했습니다. 40년을 교도소에 생활하면서 워낙 성격이 포악한데다가 말썽을 일으켜서 간수들의 채찍에 수없이 얻어 맞고 독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강한 훈련과 교육도 받았지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변화 안돼요. 그래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면 또 죄 짓고 또 들어오고 또 죄 짖고 또 들어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이제는 출소를 했는데 갈데 올데가 없으니까 기독교 계통에서 하는 그러한 수용소에 잠시 하룻밤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면서 복음 전도를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에게 복음 전도를 듣고 기나미나 하면서 꿇어앉아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은 즉시로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40년 동안 그렇게 모진 매를 맞고 핍박을 받아도 눈물 한방울 않흘리던 그가 눈물을 펑펑 흘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안이 열리게 되고 하늘나라가 있구나. 하나님이 계시구나. 영혼이 있구나. 천당과 지옥이 있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완전히 180도로 변화되어서 그때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18년 동안 그는 교회에서 열심히 그 교회를 섬겼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이 변화될 수 있느냐? “저는 4백 번의 가죽채찍과 40년의 교도소 생활을 해도 변화되지 않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자 불과 1분 만에 새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1분 만에... 그 성령이 지금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진실하고도 성실하게 믿음으로 구하면 성령이 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중생하면 즉시 새 사람이 되고 눈이 밝아 변화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눌린 자에게 자유를 넷째로,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눌린 자를 자유케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눌린다. 누른다. 사람은요 누르면 밑에 깔려서 짓밟히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누르면 병이 됩니다. 심령을 누르면 마음에 병이 들고 육신을 억압하면 병이 드는데 그 누른다는 말을 고급적으로 말하면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스트레스 걸렸다는 것도 우리 한국 말로 말하면 눌림을 당했다. 가위 눌렸다. 마귀는 여러분과 저게 다가와서 제일 처음에는 여러분과 나에게 따라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따라다니다가 안쫓아내면 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붙어 다니다가 안 쫓아내면 그 다음에는 올라탑니다. 그 다음에는 올라타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억압합니다. 자유를 빼앗는다구요. 그리고 마귀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마귀가 있느냐구요? 도둑질하는 마귀, 거짓말하는 마귀, 음란한 마귀, 방탕한 마귀, 미워하는 마귀, 오해하는 마귀, 부정적인 것은 99.9%가 다 마귀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 긍정적이고 좋은 것은 100%가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하나도 없이 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선하게 변하게 될 수도 있고 마귀를 내버려두면 마귀는 여러분을 따라다니면서 여러분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켜서 여러분 인격을 빼앗고 마귀처럼 만들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눌려 심신이 병들면 마음에 미움, 분노, 시기, 질투, 불의, 추악, 불안, 우울, 절망 이러한 심적인 병이 짓눌러요. 이것 쫓아내야 돼요. 여러분, 여러분 가만히 있는데 마음 속에 끝없이 미움이 생기고 분노가 생기고 시기, 질투, 불의, 추악, 불안, 우울, 절망이 생기면 그것 내버려 놓으면 안돼요.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내 마음에서 떠나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대결하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저가 너를 피하리라. 반드시 피합니다. 내버려 놓으면 안돼요.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의 병도 종국적으로 보면 마귀가 눌러서 병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로 5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40에 하나 감한 39차례의 채찍을 맞아서 등이 갈기갈기 찍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찰, 두찰, 세찰, 네찰.. 채찍을 때릴 때마다 이것은 우리의 병을 대신 짊어진 것으로 선언했습니다. 암이다. 관절염이다. 폐병이다. 위장병이다. 심장병이다. 예수님 채찍 맞을 때 다 청산된 거에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여러분은 나음을 입은 거에요. 왜 나은 사람들이 병이 들어 있습니까? 왜 예수님이 채찍 맞은 것을 무효로 돌립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흘린 피를 무효로 돌리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나는 않나아도 괜찮다. 않나아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무효로 돌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잠재적으로 이미 나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았어요. 따라 말씀하세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병하고 상관없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다. 할렐루야~ 베드로가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라. 여러분 지금 다 몸이 아픈 사람 마귀에게 눌려 있어요. 마귀에 눌려가지고서 지금 몸도 못쓰고 다리도 절룩거리고 간을 누르면 간이 나빠질 것 아닙니까? 폐를 누르면 폐가 나빠지고 심장을 누르면 심장이 나빠지고... 장을 누르면 장이 나빠지고... 그러므로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신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주셨으므로 여러분께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제게 와서 늘 하는 말이 무엇이냐면 목사님,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있어가지고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큰소리를 하고 하는데 나는 사탄 앞에 서면은 겁부터 먼저 납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가 그래서 그런 사람보고 뭘 말하느냐면 할아버지가 25,26살 먹은 한참 가는 손주를 보고 요강 좀 씻어 오너라. 젊은 사람이 다 늙은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데 그말 순종합니까? 안합니까? 순종하겠지요. 순종 안하면 바보 아니냐 말이야. 힘도 없는 할아버지의 말을 왜 순종하느냐. 그래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않지. 왜냐, 할아버지는 권위를 가지고 있지. 그 손주는 힘을 가지고 있지. 할아버지는 힘은 없어도 권세, 권위는 가지고 있다. 성경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눅 10:19) 원수의 모든 능력은 두나미스입니다. 다이나마이트. 원수는 다이나마이트 같은 힘을 가지지요. 마귀는... 대단해요. 그러나 그 원수의 모든 다이나마이트들을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것은 권세입니다. 익수시아입니다. 모든 원수의 다이나마이트를 제거할 수 있는 익수시아를 내가 네게 주었으니... 그러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은 권세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해병대의 병사들이 얼마나 힘이 셉니까? 대단하지요. 그러나 국방부장관이 말하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옵니다. 국방부장관은 주먹은 없어도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허리가 고부라지면 고부라질수록 권세가 더 있어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능력이 커도 별볼일 없어요. 권세가 얼마나 강한지 압니까? 권세 있는 사람이 사용하는 믿음은 겨자씨 만한 것이 태산을 바다로 던진다고 했습니다. 그런 권세가 대단한 것입니다. 그 권세를 저도 가지고 있고 여러분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