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7. 주일설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는 목숨을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장 24~34)

할렐루야~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평안합니다. 나는 건강합니다. 나는 축복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오늘 교회 잘 오셨습니다.”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조건으로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삶의 앞뒤를 바꿔 놓으면 뒤죽박죽이 되어서 혼돈과 무질서로 고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 임금이 신하를 불러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러서 저기 밑 빠진 독에 채우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우물물을 길어서 밑 빠진 독에 어떻게 채웁니까? 밑 빠진 독에 물이 다 새나가 버립니다. 그런데 이 신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물물을 길러서 밑빠진 독에 갖다 붓는데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웃었습니다. 저 바보같은 녀석봐라. 밑빠진 독에 우물물을 퍼서 아무리 부은들 채울수 있느냐. 그러나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나의 상사는 임금님이다. 임금님은 내 위에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써 그분이 명령하신 것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든 그르다고 생각하든 순종하는 내 첫째 의무다. 밤낮으로 우물물을 길러 내니까 바닥이 났습니다. 바닥에 큰 금덩어리가 있어요. 그래서 금덩이를 건져서 임금님에게 가져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니 임금님 우물물을 길러서 밑빠진 독을 채우지 못한 죄가 너무 많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우물물이 바닥이 났는데 큰 금덩이가 있어서 임금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임금님이 허허허~ 너털 웃음을 웃으면서 바로 자네가 내게 순종하면 내가 자네에게 주려고 이 금덩어리를 우물 바닥에 숨겨 놓은 것이다. 이것은 네 것이다. 나를 순종한 그 대가로 이 금덩어리를 가져가라! 그래서 일약에 큰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할 것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했으니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일을 먼저 구하면 그 다음일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놀라운 축복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조건이 없습니다. 기분이 좋으니까 순종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순종 안하겠다. 쉬우니까 순종하고 어려우니까 순종 안하겠다. 사람들이 다 박수치니까 순종하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니까 안하겠다. 그런 조건이 붙으면 그것은 안됩니다. 하나님께 절대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선후를 분별 못한 아담
우리 조상 아담은 선후를 분별하지 못한 지혜롭지 못한 조상이었습니다.
선악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다 나쁘다 결정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하면 좋고 하나님이 나쁘다면 나쁜 것입니다. 선악은 절대주권자인 하나님이 결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기를 모든 실과는 따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선악을 아는 과실을 따먹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우주에 주권자는 한분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거기에 다른 주권자 있을 수 없습니다. 루시퍼라는 천사장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다가 쫓겨나서 사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든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9절에 보면 “야훼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에 저항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되려는 교만이 타락과 부패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뱀의 형상으로 하와에게 왔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다. 동등되려고 한다. 여자가 열매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매 아담도 먹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8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그 나라와 그 의를 짓밟고 아내의 말을 먼저 들은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영혼이 죽고 에덴에서 쫓겨 났습니다. 짧은 인생의 삶을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까운 혈육이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제켜 놓고 혈육을 두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공경한 예수님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 아들로 사람의 육신을 쓰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30세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충만하고 40주 40야 금식하시고 광야에서 주리실 때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자랑을 통해서 유혹했습니다. 하나님 보다 자기 육신의 정욕을 앞세우고 인간 자랑인 안목의 정욕을 앞세우고 이 세상 권력의 자랑인 이생의 자랑을 앞세우도록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이 40주 40야를 금식하셨으니 보통 배가 고프지 않지요. 나흘만 안먹어도 굉장히 배고픈데 40주 40야를 금식하셨으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왔어요. 배가 한참 고픈데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들이거든 이 돌을 변하여 떡으로 만들어 먹어라. 예수님 배고픈데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가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꾀었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고 해서 잡수셨으면 괜찮은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열두바구니 남기도 했지 않습니까? 못할 것 없어요. 그것은 하나님 성령이 지시한 것이지만 요번은 사탄이 와서 꾀었다 말입니다. 사탄이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하나님이고 뭐고 다 재켜 놓고 배부터 불리고 난 다음에 그 다음 하나님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인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 밥 먹는게 무슨 나쁩니까? 그러나 배가 고프니까 먹는 것도 먼저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 하나님 명령을 들으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재켜 놓고 너희 배고픔을 먼저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아담과 하와 같으면 얼씨구나 따라서 했을 것인데 예수님은 거부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 4:3~4)
떡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먼저 앞세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높은 뾰충탑에 예수님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뾰충탑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성전입니다. 모든 사람이 와서 예배보러 왔다갔다 하는 이 성전의 뾰충탑에 예수님을 세워 놓고 네가 유명하게 되려고 세상에 왔지 않느냐. 유명하게 되는 가장 좋은 길은 이 성전 뾰충탑에서 뛰어 내려서 발에 돌이 부딪히지 않고 천사들이 발을 받들어 날씬하게 일어서면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고 너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고 유명해지지 않겠느냐? 그러니 그렇게 하라. 예수님이 그것 못할 것 아닙니다. 그런 기적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예수님은 파도가 있는 바다 물위로 걸으셨습니다. 뾰충탑에서 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물위로 걸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마귀가 꾀서 하면 그것이 절단강산이 나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하는 것은 좋은데 그 나라와 그 의를 제켜 놓고 내 유명하게 되기 위해서 하면은 안목의 정욕이 되는 것입니다. 정욕이 문제지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마 4:5~7)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으면 하는데 하나님을 시험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지 않고 내가 인간의 탐욕을 따라서 해도 하나님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유명하게 되기 위해서 십자가를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십자가만 걸머진다면 나는 죽고 주님의 영광만 나타내시옵소서 하면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이 자기가 유명해져서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천당까지 가는 사람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사람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되었는데 그보다 더 높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걸머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뾰충탑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발을 받들어 주어서 유명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단호히 거부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다. 나는 주님 뜻대로 살지 주님께서 원치 않는데 그런 일 안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마귀가 예수님을 천하만국에 다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세계 영광을 다 주겠다. 임금 자리도 원하면 주고 수상 자리도 주고 재벌자리도 주고 다 주겠다. 내게 엎드려 절하라.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그렇게 합니다. 사람들마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으려고 눈에 혈안을 켜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 마귀가 나와서 그냥 절만 하면 주겠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유혹을 당할만하지 않습니까? 권력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 지도자들이 국민들을 얼마나 속이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까? 지금 여러분 우리가 눈 앞에서 보는 이집트부터의 혁명 그 다음에는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 축출하는 데모... 그 가운데 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국민을 죽이고 총을 난사하고 대포를 쏘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는 그냥 절만 하면 마귀가 모든 권력을 다 주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 절하고 그만 섬겨라. 세상의 탐욕에 절하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가 다른 것이 바로 이점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탐욕과 교만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에 절을 하고 안목의 정욕에 절을 하고 이 세상의 자랑에 절을 하고 따라갔는데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 없이 하나님 뜻이 아닌 것을 인간의 욕심 때문에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인 것입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8~10)
그러니까 마귀가 예수님과 대화가 안돼요. 서로 베짱이 맞아야 이야기가 되는데 아무리 예수님께 이야기해도 말이 맞지 않아요. 마귀는 자꾸 너희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먼저 구하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겠다고 하니 서로 상충되므로 마귀는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인류를 위해서 죽으실 때 주님 기도를 보면 참 처절한 기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7절로 42절인데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모든 인류를 위해서 주님은 대신 죄를 짊어지고 더러움을 짊어지고 병을 짊어지고 저주와 가난을 걸머지고 죽음과 멸망을 걸머지고 죽음의 자리에 올라간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죽는 것은 어찌할 도리없지만 짓지 않은 죄를 전부 책임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기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로마시대 명설교가였던 크리소스톰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체포되어 황제 앞에 서게 되었는데, 로마 황제가 그를 위협하면서 “네가 만약 예수를 계속 믿고 전도하면 너를 먼 나라로 추방해 버리겠다.” 그러자 크리소스톰은 “황제께서 나를 먼 나라로 추방하실지라도 하나님은 늘 내 속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결코 버림받지 않고 외롭지 않습니다. 어디가도 혼자가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여러분 어디에 가도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 계시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결코 핍박을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않습니다. 안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황제가 화가 나서“좋다! 그러면 너의 재산을 내가 몰수하겠다.” 크리소스톰은 허허허 웃으면서 “나의 모든 재산을 이미 천국에 예금해 놓았기 때문에 이 땅에는 없습니다. 이 땅에는 빈손 들었으니 내 재산 아무리 빼앗으려고 해도 없는 재산 어떻게 빼앗습니까? 다 하늘나라에 있는데...” 그러니까 황제가 말하기를 “이 자식 죽여 버리겠다.” “나 죽이겠다구요? 늦었습니다. 40년 전에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황제가 나를 죽이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나의 생명을 거두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나를 죽여도 좋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것은 그림자 인생이고 진짜 인생은 벌써 40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 황제가 “그러면 너를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그냥 내버려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할 수 없이 로마성 밖으로 크리소스톰을 쫓아낸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 미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다 속해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살면 모든 것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디에 살까. 실제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도 없는 하나님 같으면 하나님이 아니지요. 하늘을 쳐다 보십시오. 저 수없이 많은 별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별들을 다 만드시고 다 보시고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생명은 저 별들보다 귀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별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갖고 있지 않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별들보다 귀합니다.

3. 무신론자와 인본주의자의 악행
오늘날 역사를 통해서 보면 무신론자와 인본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많은 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제국주의와 공산주의가 바로 인간이 발명한 하나님에 대한 적대적인 세력인 것입니다. 성경은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0편 4절에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야훼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인본주의자는 마귀처럼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 혹은 그 이상으로 행동합니다. 대다수 오늘날 교육받았다 하는 사람은 인본주의자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이나 나나 다를게 뭐냐. 하나님과 자기를 동등시 합니다.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그 교만은 반드시 파멸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9절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야훼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이 신국이요, 신의 백성이라는 사상 아래 일본이 종주국이 되고 다른 나라를 속국으로 통치하겠다는 교만의 산물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세계를 통치하려고 한 일본이 얼마나 흉악한 역사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쟁, 사상자, 무고한 민간인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을 지경입니다. 그 일례로 중국 난징 대학살을 들 수 있습니다. 1937년 12월부터 2개월 동안 일본군은 중국 난징 점령을 전후해서 중국인 포로와 일반 시민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학살, 강간, 약탈, 무차별 사격, 매장, 휘발유를 뿌린 채 불태워 죽이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희생된 사람이 비전투원이 1만 2천 명, 패잔병이 2만 명, 포로가 3만 명, 난징 근교에 피난 가 있던 시민이 5만 7천 명 등 모두 11만 9천 명으로, 실제로는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본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또 어떻습니까?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끌려와서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된 여자들입니다. 조선인 출신, 대만, 중국, 필리핀 등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와 심지어 유럽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많은 여성들이 끌려가서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 숫자는 8만에서 약20만 명 가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여러분 보시다시피 일본 제국주의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흉악한 악을 행하는 개인과 나라는 반드시 망합니다.
공산주의는 어떻습니까? 후버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인 로버트 콘퀘스트(Robert Conquest) 박사는 「엄청난 폭력(The Great Terror)」이라는 그의 책에서 “1956년 2월 전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의 폭로에 따르면, 1936년에서 1938년 사이에 10월 혁명 이전에 공산당에 입당한 사람의 90%, 그 후에 입당한 사람의 50%, 군 장성급의 60%를 처형했다.”고 합니다. 소련 공산주의자들은 공산화 과정에서 2,700만 명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였고 무고한 시민 4,000만에서 4,500만 명을 죽여서 모두 7,000만 명 이상을 공산주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죽인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 없는 ‘잉여 인간’으로 취급하고 모두 다 죽였습니다. 레닌은 공산화 과정에서 “말로 해서 안 되면 폭력을 쓰라!”고 말했습니다. 스탈린은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까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지만,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통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통계숫자에 나오는 그 사람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이렇게 비극적인 사상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개인이나 국가, 예수를 인정은 하나 주로써 받아들이지 않고 그리스도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은 참 무서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4. 올바른 삶
우리가 이 세상에 살려면 올바른 삶을 살아야 되는데 올바른 삶이 무엇이냐. 나를 지으시고 나를 부르신 이를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그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이 내가 지었고 내가 만들었다. 여러분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 안에서 새것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을 부르셔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하신 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여러분 올바른 삶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역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유럽의 파업문제와 빈곤문제를 연구한 리알 파커슨 교수는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면서 의미 있는 분석 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불과 100여 년 전만해도 유럽이 미국보다 월등하게 잘 살았습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과학 모든 면에서 유럽이 미국을 앞섰습니다. 그런데 유럽이 하나님을 멀리하고부터 유럽은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룩한 미국은 점차 부강한 나라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증거로 파커슨 교수는 유럽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의 국민들 중 한 달에 한 번 정도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10%도 안 되는데, 미국은 82%가 한 달에 한 번씩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10%밖에 교회 안 나가요. 지금 유럽이 예수 믿는 대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옛날에 예수 믿었지 지금은 타락한 대륙인 것입니다. 한 달에 한번 교회 나가는 사람 수가 10%도 안되니까 형편 없지요. 우리 한국보다 훨씬 못합니다. 이제 앞으로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주님이 기다리신다면 100년만 지나면 우리 한국이 유럽보다 훨씬 선진국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짓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가 헛되고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이 같이 해야 돼요.
시편 73편 23절에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매사에 형통하기 위해서는 항상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되고 복있는 사람이 되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최성찬 씨의 간증을 들어 보면 굉장히 유명합니다. 최성찬 씨는 작년에 23세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인턴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이미 확정된 미국 외교관의 과정을 하나씩 밟아가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그와 함께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보스턴대학교 2학년 때 미국 정부의 외교관 선발과정인 ‘특별 프로그램 펠로십’ 장학금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미국 전체 대학생 8백만 명 중에 32명에게만 주는 장학금인데 그 중에 한국인으로써 최성찬 씨가 장학금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대학교 재학 중에 4학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았는데, 5개 종류의 장학금을 받은 것을 모두 돈으로 환산하면 40만 달러, 약 4억 5천만 원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공부만 하는 ‘공부 벌레’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펜싱 대표 선수로 일했고, 트럼펫과 기타도 연주하고, 노래와 댄스 실력도 프로급이고 고등학교 때에는 잡지 모델로 활약도 했습니다. 그는 그의 공부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방향이 되어 주셨습니다. 뭘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자는 것이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돈 많이 벌고 좋은 직업을 갖는 게 방향이 되고 맙니다.” 올바른 말 아닙니까? 그 살아가는데 방향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방향이다. 그냥 유명해지고 돈 잘 벌고 세상적으로 잘 사는 것이 방향이 되면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누나도 보스턴대학교에서, 그리고 여동생도 하버드대학교에서 4년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제들의 배경에는 그의 어머니의 자녀교육 비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올바르게 자녀를 기른 것입니다. 황경애 씨의 간증에 <엄마, 울지마>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그 자기 자녀교육법을 기록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저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기도하자’, ‘예배 드리자’라는 말을 더 자주했다는 것입니다. 두세 살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애들을 데리고 기도하자! 예배드리자! 그러니까 애들 마음에 콱 박혔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기도하고 예배드려야 된다. 그 후에 공부하자. 무슨 인간적으로 노력하라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말이지 그것이 중심이 된 말은 아니었습니다. 자녀의 성공 척도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자녀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는 자기의 책임이다. 인생 성공 척도는 우리가 무엇을 향하는가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느냐. 내가 향해서 가는 그곳에 나중에 내가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믿음대로 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자원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마음에 가득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꿈꾸고 믿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나가면 생활의 분위기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분위기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분위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분위기가 못살고 안되고 퇴폐하고 파멸되는 그런 나쁜 분위기가 되면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생활과 사업과 모든 일에 성공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되는데 그것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이 축복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3절로 18절 참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야훼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그 때에 야훼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야훼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야훼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야훼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결국 우리의 삶은 분별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리 뭉실이 아니고 그냥 막 혼탁해 섞여 있는 것이 아니고 분별이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개인과 백성,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개인과 백성이 분별이 된다. 분별해 볼 수가 있다. 다 한곳에 살지만 똑같이 살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특별한 백성으로 삼아 축복해 주셔서 사람들이 분별해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놓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로 33절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하늘에서 놀고 있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일하고 계십니다.

<결론>
우리에게 하늘나라는 예수님을 섬기는 삶이 바로 하늘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사랑을 좇아 사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희망을 두며 예수님을 가슴 저리게 사랑하고 우리의 삶 속에 그 무엇도 예수님보다 앞세우는 일을 하지 않고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필요와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그 의 예수님의 의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의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6월 6.25사변 직후 미국 로터리 클럽 회원들이 나병 환자 수용소를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미국에서 파견 나온 간호사 선교사 한 사람이 나병 환자의 고름을 짜주고 상처를 성심껏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업가가 그 장면을 찍으며 말했습니다. “야~ 백만불짜리 사진이다. 누가 내게 백만불을 준다고 해도 나는 이 문둥이의 고름이 철철 흐르는 고름을 짜고 붕대를 감아주고 나는 그것 못하겠다.” 그러면서 간호사 선교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 문둥병 환자의 이 더러운 상처를 씻어주고 치료해 줍니까? 나는 백만불을 준다해도 못하겠습니다.” 간호사는 “나도 못해요.” “당신 지금 하고 있잖아요.”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주일날 교회 예수님 만나러 가고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사업을 위해서 십일조 드리고 헌금 내고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하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이 하늘 나라를 구하고 하늘 일을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 간호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섬김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나를 지으시고 나를 부르신 이를 우리가 섬기고 따라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