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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20. 주일설교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장 1~10) 할렐루야~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로 지진이 하루에 네 번네지 다섯 번씩 파도처럼 다가오는데 마음에 좀 불안하더라구요. 예수님이 계시지 아니하시면 나도 다른 사람처럼 일본을 빠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가니까 모두 다 도망치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굉장히 마음에 상처를 입고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물질을 잃어버린 사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거니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지치고 피곤하고 고통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나라에 있는 크리스챤으로서 뜨겁게 사랑을 베풀고 기도를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을 대표해서 며칠 동안 일본에 있으면서 그들을 위로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실은 제가 월요일 날 갔기 때문에 수요일 날 돌아오려고 했는데 일본 사람들이 붙잡고 못 가게 하지 않습니까? 가지 말라고... 앞을 막아서 할 수 없이 목요일 날 하루 더 잡히고 금요일 날도 못 가려고 하는 것을 기어코 뿌리치고 왔습니다. 그만큼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은 외롭고 고독합니다. 그들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주의 종이니 제가 있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주 안에서 행복합니다. 평안합니다. 건강합니다. 축복받았습니다. 좋은 일이 생겨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오늘 교회 잘 오셨습니다.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지난겨울은 대단히 추웠습니다. 그 때문에 이제 다가오는 봄과 여름이 퍽 따뜻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평온함을 감사하려면 폭풍우를 당해봐야 알아요. 제가 이번에 일본 동경에서 지진을 당하고 보니까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별로 그것을 느끼지 않았는데... 밤에 평안하게 잘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10시쯤 된 밤중에 갑자기 몸이 막 이렇게 흔들리는데 천정이 달그닥 달그닥 하는 소리가 나고 야~ 큰 폭풍우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잠을 자려고 하니 얼마나 편안한지 몰라요. 그러므로 폭풍우를 당해봐야 평온함을 알고 감사하게 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항상 대낮만 있으면 빛의 고마움과 귀중함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을 지나게 되면 빛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존 크리소스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환난이 없으면 평안함도 없고 겨울이 없으면 여름도 없다.” 맞습니다. 어두움이 있어야 빛의 찬란함을 알듯이 고난을 통하여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늘 평안만 하면은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신앙을 잠재울줄 아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고통스러울수록 신앙은 더 불같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현재 북한은 교회를 박해하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정치범으로 몰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의 복음의 놀라운 역사를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증명되듯이 박해 속에서 복음의 위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려고 첫째로, 왜 우리에게 고난을 하나님은 허락 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크게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둠이 있어야 빛이 증명 되는 것과 같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는데 병들어봐야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고 의학과 의술이 얼마나 귀중한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생명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죽인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서 건져주는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용서받는 은혜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 없는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용서하는 의로운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이기 때문에 주여 용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죄많은 곳에 은혜가 많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더럽고 불의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은혜를 감사하게 되고 병들었기 때문에 안수 받고 병나았다고 할렐루야 하고 야단하는 것은 병들었기 때문에 치료의 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저주 속에 배고프고 헐벗고 굶주리는데 주님의 복을 받아 잘살게 되면은 주님의 축복의 은혜를 알게 되고 나중에 우리가 죽어봐야 천당이 얼마나 좋은 것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안 죽어 보고는 천당이 얼마나 좋은 모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천당이 얼마나 좋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은혜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체험하기 위하여 예수 죽인 것들을 몸에 짊어져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고린도후서 4장 11절에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예수님 도와주기 위해서 우리가 죽음에 넘겨진다고 성경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야 예수님의 도우시는 능력을 나타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증거 하려면 내가 체험한 것이 있어야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 체험도 못했으면 주님이 살아계신 것을 증거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여러 가지 고통과 괴로움을 통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체험했으면 담대하게 주님이 살아계셔서 나를 병에서 고쳤습니다. 우울증에서 치료했습니다. 절망에서 소망을 주었습니다. 가난과 헐벗음에서 축복을 주셨습니다. 증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인 앞에 죽음의 시련을 겪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믿는 우리가 사망을 당하여 그것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극복함으로 그 영광스런 생명의 증거가 주위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망이 다가와도 예수님만 계시면 끄덕 없다. 담대하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일본에 가서도 늘 말한 것은 재앙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온다. 지진이란 것이 꼭 일본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도 올 수 있고 미국에도 올 수 있고 구라파에도 올 수 있다. 문제는 재앙이 아니라 재앙을 극복해 주시는 예수님을 모셨느냐 안 모셨느냐 그것이 문제다. 예수님 없이 재앙을 당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지만 예수님이 계시면 재앙을 당할 때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능력으로 재앙을 잠잠케 해주신다.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갈 때 예수님을 모시고 가기 때문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잠에서 깨워 일으키니 풍랑을 잠잠케 하셨다. 예수님 없었으면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인데 예수님이 계시니까 풍랑을 잠잠케 해주신다. 우리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풍랑이 안다가온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죽음의 풍랑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풍랑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 풍랑을 잠잠케 하는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느냐 안계시느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이요 생명의 능력으로 와 계시면 주님께 부탁하고 부르짖으면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예수님 얼마나 허약했습니까? 무능력하게 보였지만 주님이 그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의 약한 것을 다 대신해서 갚으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할 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 그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무능력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무능력한 대속주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권능의 주님이 이 자리에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할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알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옛사람이 죽고 예수님과 더불어 능력으로 부활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알든지 모르든지 여러분 속에 계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입니다. 죽은 예수님 아닌 것입니다. 사망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로 5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리스도가 부활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는 사망을 이겼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으니까 우리도 이미 사망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보존하게 하려고 둘째로,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부르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말을 잘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 방언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통역할 수 있는 은사도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특별히 하나님의 사역을 맡길 때는 하나님이 은사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은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난 다음에 기도를 안하면 잃어버려요. 그런데 보통 편안하고 좋은 일만 생기면 문제가 기도를 안하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오면서 돌아보면 내가 평안하고 좋을 때는 별로 기도 안했어요. 솔직한 말로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서대문 여의도로 나와서 목회할 때는 하루에 평균 5시간 기도했습니다. 5시간이라면 긴 시간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5시간 기도해도 만족하지 못해요. 고난이 하도 많기 때문에 그를 이기기 위해서... 그러나 요사이는 평안하니까 하루에 1시간도 기도하기가 힘들어요. 하나님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셔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도한다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입장이 곤란합니까? 고난을 주면은 기도는 하겠지만 고통스러워 괴로워하고 편안을 주면 좋아 보이는데 또 기도를 안하고...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특별한 은혜와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12장 1절로 7절에 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여기에 사도바울 선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은사를 받을 때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가 몸 안에서 올라갔는지 몸에서 빠져나가서 영혼이 올라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층천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에 올라갔어요. 올라가서 도저히 사람으로써 말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도바울 선생에게는 그런 체험을 하게 하시고 우리에게는 그런 체험을 안주시느냐. 사도바울 선생은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소아시아에 가서 남보다 많이 매를 맞고 감옥에도 수없이 들어가고 배도 굶고 고통도 당하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체험한 체험이 강력하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에 올라간 체험을 했으니까 언제 죽어도 나는 천당 간다. 그러므로 죽는 것 겁나지 않는다. 그는 용기와 담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선생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그런 체험을 주신 것입니다.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큰 일을 맡기면 큰 체험을 주셔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도 예수님을 저의 생애 속에 생시처럼 본적이 꼭 한번 있습니다. 그것은 폐병 걸려서 제가 죽어갈 때 주님께 살려달라고 기도를 하니까 내 등 뒤에서 누가 용기야 그렇게 부르셨어요. 그래서 아버님이 나를 부르시는줄 알고 예~ 하고 돌아보니까 어떤 흰옷 입은 분이 서 있는데 수염이 듬성듬성 나셔서 나를 보고 싱긋 웃으시면서 손을 내밀면서 너 안 죽는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이 그렇게 한줄 알고 나 안죽는 줄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까 나를 봐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너는 온 천하 만국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안죽는다. 그 체험한 것이 내 일생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그 때 예수님이 안죽는다고 그러셨는데 안 죽는다. 고통이 다가오고 괴로움이 다가와도 나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국에 복음을 증거해야 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안 죽는다. 그런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 체험이 나로 하여금 용감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셔서 아프리카에 중동에 남미에 구라파에 기후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른 곳에 가서 감기가 들리기도 하고 몸에 몸살이 오기도 하고 고통이 다가와서 괴로울 때도 그때 본 환상이 마음에 용기와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번 그리스도를 체험하면 그 체험과 동등하게 사명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이란 이러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면 자랑을 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어요. 자기가 되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사자를 하나님이 보내셔서 바울 선생을 굉장히 괴롭혔습니다. 바울이 이 고통 속에서 고쳐 달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 기도했는데 주님이 말씀하기를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네가 약할 때 네가 강해진다. 내가 고통을 당하고 약할 때 주님께 매달리고 기도를 하니까 주님이 더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쳐서 약하게 하므로 우리의 교만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통이 오면 기도하게 되어요. 지금 일본 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많이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이 기도를 많이 합니다. 고통스러우니까 기도 안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 달라고 구하지 않습니까? 배가 부른 사람이 밥 달라고 간구하지 않잖아요. 고난당한 사람은 고난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에게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이 기도하라는 지시인 것입니다. 기도하라! 기도를 해서 그 기도의 결과로 더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고 더 신앙이 자라게 하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데 기도 안하면 그런 것을 줄 수가 없으시니까 하나님이 기도하기 위해서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염려 많이 하잖아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할까? 어디가서 살까? 염려 많이 하는데 하나님 편에서는 말씀하기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내가 있지 아니하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나에게 기도와 간구로 감사하므로 아뢰라. 기도하면 응답받는다. 기도하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은 더 강하게 말씀 하십니다. 자녀가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부모를 봤느냐? 그런 부모 없지요? 아무리 못된 부모라도 자녀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고 생선 달라는데 굼실굼실하는 뱀을 내어줄 그런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정상적인 부모는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구해야 되겠는데 안 구하니까 하나님이 구하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것입니다. 시련과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은 구하라고 하나님이 찌르는 것입니다. 구하면 한 단계 또 높은 단계로 축복을 받아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이 큰 시련을 겪지만 일본 국민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주님께 구하면 일본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난은 반드시 환난과 동등 곧 그 이상의 축복을 동반하는 것이 환난의 속성입니다. 환난이 와서 더 나빠지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면 환난과 동등 곧 그 이상의 축복을 반드시 가져오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환난은 그 환난과 동등 이상의 축복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나죽으나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로마서 14장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의 것이고 죽어도 주의 것이다. 그러니 주님이 살았을 때만 우리를 돌봐 주시고 죽게 되면 안돌봐 주시는 그런 주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사나죽으나 같이 계셔서 돌봐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10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러므로 여러분 약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약할 그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 준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강하다고 자랑하면 내가 내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자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할 때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닉 부이치치라고 하는 분 아시죠? 작년에 우리 교회 금요철야 때 와서 간증한 호주 청년인데, 저도 청년 때문에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기 보세요. 팔도 없고 다리도 없습니다. 그는 1982년 호주의 브리스번에서 목회자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낳고 보니 팔다리가 없어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수많은 절망과 낙심과 좌절과 우울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하고 우울에 빠졌다는 것은 이 닉 부이치치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팔다리가 없이 세상에 살려니까 얼마나 사람들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고 구경거리가 되지 않습니까? 그는 자라면서 수많은 절망과 낙심과 좌절과 우울을 경험했습니다. 자살의 유혹도 수차례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님 안에서 장애를 딛고 일어나 19세부터 시작해서 스물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 세계 각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존재의 목적을 찾았습니다. 당신이 불 속에 던져지는 고통 중에 있다 하여도 그에 따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팔도 다리도 없는 저를 그의 손과 발로 사용하신다면, 주님은 원하는 마음이 있는 그 누구도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말 귀를 기울여 단단히 들으십시오. 목적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필요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가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부이치치가 하는 말은 나같이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인생도 하나님이 목적이 있어서 태어나게 하셨다. 그러니 팔다리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은 말할 필요없이 하나님 앞에 찾으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적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버림받은 인생은 없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작년에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강연을 했는데, 환자 중에 사고로 다리와 골반에 장애를 입고 크게 낙심한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큰일을 해내려고 사고를 당한 거야. 그걸 믿고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형처럼 포기하지 마라. 더 큰 시키려고 네가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더 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다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쓸모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찾지 아니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닉 부이치치가 만든 비영리재단인 “사지 없는 삶”(Life Without Limbs)라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런 성경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서 29장 11절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결과에는 하나님이 평안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평안하고 희망차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종국적인 목적인 것입니다. 현재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현재 내게 큰 불행과 재앙같이 보여도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은 그것을 변화시켜서 결국에는 평안과 희망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믿는 우리가 환난을 당하여 그것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극복함으로써 그 영광스런 생명의 증거가 주위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더 큰 은혜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입니다. 2011년 2월 25일 순복음가족신문에 실린 양천대교구 김영수 집사님의 간증을 여러분 한번 들어 보십시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술과 담배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고, 아침이면 밥보다 술을 먼저 찾았습니다. 이렇게 술과 담배에 찌들다 보니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점점 불러져왔습니다. 그 부인이 자꾸 병원을 가보라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간경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의사가 그 부인을 불러서 당신 남편은 오래 살아야 여섯 달밖에 못산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부인은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이기 때문에 구역장에게 부탁해서 온 구역원들이 아침, 저녁으로 그 남편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남편은 술을 안마셔도 복수가 차고 손발이 부어올랐고 정신을 잃어 쓰러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며 고통과 절망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남편이 성도들이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마음 속에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밖에 없다.’ 깨달음이 왔습니다. 사람이 깨닫는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아무리 환경에서 권면을 해도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교회 가겠다고 말하고 주일예배에 참석했는데 예배를 드리면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제멋대로 살았는지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일예배 때 제가 신유시간에 간경화 원수 마귀는 물러가라! 이렇게 기도하더랍니다. 그 다음에는 오늘 간경화증에 걸린 사람이 나았다. 그래서 그 부인과 함께 아멘! 하고 받아 들였습니다. 그때부터 기적같이 배에 물이 빠지고 좋아지더니 이제 깨끗이 나아버렸어요. 그날부터 기적같이 좋아져서 지금은 건강해져서 우리 남선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6개월도 못산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 분은 질병이 불행이 아니라 그 질병에 걸렸기 때문에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이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이 복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재앙이나 환난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재앙이나 환난을 잠잠케 해줄 예수님이 계시느냐 안계시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물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물질적인 문제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 우리에게 들어오시면 영구히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가 고난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극복하면 그 영광스러운 생명의 증거가 주위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 침례교 목사였던 로버트 로우리 목사님은 남북전쟁이 터지자 전사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러 주기 위하여 일선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시체더미 속에 아직 죽지 않고 살아서 신음하는 군인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로우리 목사님은 장례식보다 일단 죽어가는 사람부터 살려야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부상자들을 구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힘들게 했든지 그도 그만 기진맥진해서 시체더미 속에 쓰러져 같이 신음하고 거의 죽게 된 것입니다. 일어날 기력도 잃어버리고 정신까지 희미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로우리 목사야, 내가 살아있다. 나는 어두움을 이기고 살아났다. 지금 내가 부활의 능력으로 네 속에 살아있다. 너는 죽지 않는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렇다. 주님이 살아계시고, 살아계신 주님이 내 속에 부활의 능력으로 함께 있으니 나는 죽지 않는다.” 이렇게 외치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 의지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 그가 지은 찬송이 바로 160장입니다. ♬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 어둠을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신 것입니다. 죽은 예수 아닙니다. 살아계신 부활의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살아있는 예수님을 찾고 만나고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믿고 환영하고 의지하면 예수님은 여러분 속에서 죄를 멸하고 사탄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고 저주를 멸하고 사망을 멸하고 생명과 영광으로 채워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죽이고 도적질하는 것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2천 년 전 갈보리 산 십자가 위해서 몸찢고 피흘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연약을 담당하시고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님은 살아서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여러분 믿는 우리가 고난을 겪는 것은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을 체험해서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3. 진리 속에 자라게 하려고 셋째로, 우리에게 연약이 다가오는 것은 진리 속에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제일 처음 불광동에서 삼박자 구원이라고 했는데 제가 삼박자 구원을 그렇게 외치고 부르짖는 것은 너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기 때문에 그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오랫동안 기록되어 있는 요한삼서 2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읽어도 그것을 중심으로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조용기 너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말을 그렇게 집요하게 설교하느냐. 내가 팔자 고약하기 때문에 내가 살기 위해서 그 진리를 붙잡지 아니할 수 없었고 나같이 어려움 당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속에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연약함이 그리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삼중축복 아닙니까?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 다음에 깨달은 것이 오중복음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몸찢고 피흘린 열매를 이 땅에서 누려야 되겠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로 초대교회에 있었고 초대교회가 지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기적은 끝났다. 하나님은 이 세상 인간 역사속에 들어와서 일하지 아니한다. 지나간 일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배울 따름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6.25사변 난 이후 우리 한국 실정에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필요했지 훗날 천당에 올라가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필요하다. 지금 용서받아야 되겠다. 지금 성령 받아야 되겠다. 지금 병 나아야 되겠고 지금 축복 받아야 되겠고 지금 생명을 얻어야 되겠다. 지금의 하나님 역사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중복음을 제가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죄를 용서하고 의를 주는 하나님, 거룩하게 하고 성령 충만 주시는 하나님, 병고치고 건강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시는 하나님, 부활 영생 천국을 주시는 하나님, 오중복음을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여러 가지 고난과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그 고난과 괴로움이 우리에게 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고난과 괴로움이 우리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4차원의 영성이 뭐냐. 무엇 때문에 4차원의 영성이냐.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계시지만 눈에 안보입니다. 형이상학적으로 눈에 안보입니다. 그러니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니 하나님이 들어주시는지 안 들어 주시는지 알 수도 없고 내가 하나님 품에 안기고 싶어도 안기는 방법을 모르겠고 하나님이 내 속에 모셔 들이려고 해도 어떻게 모셔 드릴지 몰라서 당황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떻게 하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듯이 마음에 모셔드리고 내 품에 안길까? 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기도할 동안에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가 있다. 꿈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가 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가 있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 품에 안기고 하나님을 내 속에 모실 수가 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고 하나님과 함께 역사를 이룰 수가 있다. 그것을 하나님이 보여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도하게 되고 우리 성도들은 이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내 속에 들어와 역사하는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말씀을 생각할 때 생각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내가 성령을 통해서 기도하며 꿈을 꿀 때 꿈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고 내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을 때 믿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고 내가 입술로 고백할 때 말씀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다. 그러니 나의 생애 속에 말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믿음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꿈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생각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시니 그를 잘 다스리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역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 삶의 필요에 의해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선교사 한 분이 아프리카에 선교를 가서 원주민들과 함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원주민이 큰 돌을 선교사의 가슴에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큰 돌을 머리에 이거나 가슴에 안고 같이 강을 건너는데 선교사는 이 사람들이 왜 나에게 무거운 돌을 가슴에 안겨주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시키는대로 따라가니까 강 중간에 가니까 물살이 굉장히 세서 돌을 안 안으면 그대로 떠나가 버려요. 돌을 안고 있으니까 물살이 센데도 건너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는 것은 그 짐을 짊어져야 그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에 짐을 걸머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이 있으니까 기도하잖아요.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잖아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이기고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깨어 영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인 것입니다. <결론>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에 보면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 세상에 시련과 환난과 고통이 다가와서 우리 겉사람은 낡아져도 그를 통해서 반대급부로 속사람은 믿음, 소망, 사랑에 큰 은혜를 받아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시련과 고난당하면 우리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더 큰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인데 이 사랑도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