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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8. 주일설교 우주에서 제일 귀한 것이 사랑이라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할렐루야~ 오늘 성가만 들어도 더 이상 설교 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한번 신앙고백을 하십시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평안합니다. 건강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우주에서 제일 귀한 것이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항상 영원히 또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귀, 영화, 공명, 명예, 지위 등입니까? 이런 것들은 지상에서 사라져버릴 것들입니다.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아무리 지위, 명예, 부귀, 영화, 공명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것은 풀과 같고 꽃과 같이 베어지고 시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지상과 천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도 제일 빛나고 귀한 것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사랑이 그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믿지 사랑하지 아니하면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소망도 사랑이 있을 때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지 사랑이 없는 곳에 내일에 대한 즐거운 소망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물난리가 났을 때, 한 크리스천 교수가 잠을 자다가 집안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놀라서 깨었습니다. 급히 가족들과 밖으로 피했는데,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옷가지나 귀중품을 다 버려두고 빈 손 들고 집에서 뛰어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온 교수가 허탈한 마음으로 집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랍니다.“아, 죽음도 이렇게 맞겠구나.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순식간에 잃고 빈 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서겠구나.” 그는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같은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맞아요. 부귀, 영화, 공명, 명예, 지위 같은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들인 것입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사랑은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이 사랑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없이 베푸는 마음과 행위인 사랑만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제일 빛나고 귀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사랑인 것입니다. 나는 이런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아들이 병이 나서 괴로워하다가 병낫기 위해서 우리 교회에 부인하고 출석했는데 일가친척들이 모두다 다른 종교를 믿는데 굉장히 반발하고 화를 냈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님이 팔순이 다 되었는데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사주를 해서 아들이 교회 못나가게 하라고 하니까 어머니가 뜨거운 다른 종교 신앙을 가진 어머니였는데 우리 아들이 교회 나가서 건강하게 된다면 내가 무슨 종교를 못 믿겠느냐. 당장 옛날 종교를 버리고 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가서 아들 병낫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아들 병이 깨끗이 나았어요. 어머니 사랑 때문에 전도도 필요없이 아들 낫는다고 하니까 만사를 제켜 놓고 자기 신념을 바꾸었다. 사랑이 그 일을 한 것인 것입니다. 한없이 베푸는 마음과 행위인 사랑만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제일 빛나고 귀한 것입니다. <본론> 1. 삶의 진정한 목적은 사랑 첫째로,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진정한 목적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도, 종교의식도 학문도 아닌 사랑이신 것입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인 것 같으면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은 사랑에 있지 않습니까? 요한일서 4장 7절로 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다 사랑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일을 하고 나면 마음에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기쁨이 올라옵니다. 왜 그럴까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인생경영」이란 책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나 사랑의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하고 나면은 하나님의 기쁨이 마음 속에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율법도 아닙니다. 종교도 의식도 학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면 마음이 충만하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삶의 진정한 목적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죽는 사람이 야~ 내 졸업장 가지고 오너라. 상장 가져 오너라. 다이아반지 어디 있느냐? 은행통장 좀 보자. 증권 갖고 오너라. 더 보고 싶다. 숨 넘어가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직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죽는 사람이 찾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 밖에 찾지 않습니다. 죽는 사람이 사랑하는 부모, 형제, 처자를 찾지 그 이외에 다른 것을 찾지 않잖아요. 영원히 남는 것은 업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얼마나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했는가. 그것 하나님이 묻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 그것을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예언도 방언도 지식도 다 이 땅에서 폐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빙점」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일본의 미우라 아야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일생을 바친 다음에 남는 것은 평생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악착스레 모은 돈이나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죽고 난 다음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숨은 적선, 사랑으로 하는 진실한 충고, 따뜻한 격려의 말 같은 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도 오래오래 남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도의 유명한 캘커타의 한 힌두 사원은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이 마지막 은총을 갈구하며 찾아오는 사원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원 근처에서 한 위로자를 발견합니다. 그는 주름진 얼굴에 허리가 굽은 작은 여인으로 죽어가는 이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며, 평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분명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을 겁니다.” 그녀는 버림 받은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의 상처를 씻겨주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며 죽음을 준비하도록 극진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한 그녀는 87세에 지병인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사랑은 세계 24개국에 무려 5천 6백 4개의 자선센터를 통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누구겠습니까? 여러분 잘 아는 테레사 수녀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7절로 18절에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은 사랑이며,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적인 실천이 따릅니다. 사랑을 하는데 희생이 안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 아들을 바치려고 하니 그 어마어마한 희생을 감내하고 아들을 바치러 모리아산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갈 것은 사랑한 것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가져갈 것도 어떠한 업적도 아닌 사랑인 것입니다. 2. 사랑이 증명되고 나타나는 길 둘째로, 사랑이 증명되고 나타난 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랑을 했다. 그 사랑하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사랑은 관심과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시간을 내느냐. 그것이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 시간과 관심을 쏟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할 때 시간을 보내고 관심을 쏟지 싫어하는 일에 시간과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시간과 관심의 정도에 따라서 사랑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9장 18절에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고 한 것입니다. 7년이 어딥니까?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7년. 7년을 하루같이 여겼다.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의 중노동을 삼촌 위해서 해도 괴롭다고 생각 안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8장 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사랑은 이와 같이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그 아버지가 다윗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죽이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아버지의 라이벌인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했던 것입니다. 다윗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간만 있으면 다윗과 대화를 하고 다윗을 위로하고 격려한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 세상 인간 상호관계인 것입니다. 십계명은 상호관계의 계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계명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4계명이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6계명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관계 4계명은“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네 하나님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3~8) 이 4가지가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계명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지키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 어렵지 사랑하면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조금도 힘이 들지 않습니다. 나머지 6계명은 인간 상호관계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야훼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출 20:12~17) 이것이 인간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이 십계명을 여러분 사람들은 괴롭게 생각하는데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광야에서 십계명을 받았는데 모세가 이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면 젖과 꿀이 가나안 땅으로 그들이 무사히 들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십계명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조금도 어렵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을 안내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렵다고 생각하면 마귀가 자꾸 어렵게 만드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4계명, 인간과의 관계 6계명인데 그 전체가 뭐냐.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4계명을 지키고, 사람을 사랑하면 이웃에게 고통을 안가져 올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계명의 완성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40절에“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계명만 지키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내 이웃을 사랑하라. 미워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하지 말라. 온갖 것 다 있지만 이웃을 사랑하면 그렇게 안합니다. 사랑하면 율법을 자연적으로 지키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랑은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주라. 그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안주는 것은 사랑을 안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이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사랑이 자연적으로 그렇게 발로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난 사이에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친구 간에 같이 살면서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알아볼려면 얼마나 나에게 간절히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는가 그것을 살펴보면 아는 것입니다. 내것 다 챙기고 간청을 하면 못이겨서 조금 도와주는 것 그리고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어려움에 있으면 그것을 찾아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를 자원했기 때문에 그 속에 우리가 사랑을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얼마나 강하냐. 죽음처럼 강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가 8장 6절로 7절에“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야훼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서 8장 6절로 7절에 하나님이 정의한 사랑은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증거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님을 주셨고 아들 예수님은 그 목숨을 내어 놓고 우리를 사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우편에도 강도 한사람 좌편에도 강도 한 사람이 못 박혔는데 그 중 강도 한사람은 예수님보고 당신이 하나님 아들이라고 말하고 주라고 말하지 않소? 당신이 평소에 많은 기사와 이적도 베풀고 죽은 자도 살렸는데 당신과 우리가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소서. 내려오게 하시오. 그래도 예수님이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못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안내려온 것입니다. 왜냐,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도 무덤에 돌무덤 열어놓고 나사로야 나와라 해서 살리는 그 주님이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그 형태에서 열두영 되는 그 천사를 불러서 못내려올 리가 절대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못내려왔느냐 하는데 못내려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안내려온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청산해야 되니까. 우리가 빚을 졌으면 누가 와서 청산해도 청산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청산해주든 형제가 청산해주든 이웃이 청산해주든 내 빚을 청산해야 빚을 면하는 것처럼 인류의 죄가는 누가 갚아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갚으면 아무도 갚을 자격이 없습니다. 다 죄인인데 자기도 빚진 자가 누구의 빚을 져주는 것입니까?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왔거늘 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우리의 불의, 추악, 저주, 절망, 죽음을 하나님은 예수님 보고 너가 짊어져라. 예수님이 그 짐을 짊어지고 난 다음에 십자가에 올라가서 너무 고통스러울 때 뭐라고 외쳤습니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완전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 받았습니다. 그 죄악을 보고 하나님이 머리를 돌이켰습니다. 그런 고통 중에서도 탄식을 했었어도 주님은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소서. 그말 안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면서도 십자가에서 날 내려오게 하소서 그 말 안했습니다.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고통당했기 때문에 오늘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은 헛소리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여러분, 여러분 8달 동안 뱃속에 데리고 있다가 배아파서 나은 자식 쉽게 버릴 수 있습니까? 못 버리지요? 그 고통 속에서 자식을 낳아서 길렀으니 거기에 사랑이 없을 수가 없잖아요. 예수님이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구원한 것 간단하게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를 흘려 6시간 동안 매달렸습니다. 땀방울을 핏방울을 다 쏟고 나중에 내가 다 이루었다. 다 청산했다. 죄도 불의도 추악도 저주도 절망도 죽음도 다 청산했다. 그리고 난 다음 주님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십자가에서 서거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고 말했는데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죽음처럼 강한 것입니다. 유덕종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폐결핵과 위암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 “인생은 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생각을 마음 속에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한때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과 함께 하는 일생을 살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1992년, 그는 서른 셋의 나이로 의사로서 앞날이 창창할 때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KOICA)의 정부 파견 의사로 아프리카 우간다에 들어가서 16년 간 정부파견의사의 임무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우간다에 머물며 대학에서 의학을 강의하고 진료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우간다 외곽에 병원을 세우기 위하여 동분서주했습니다. 우간다는 인구의 60%가 의사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을 만큼 의료시설이 열악합니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입원했다가 굶어죽어 나가는 경우가 더 많아서 병원이 아니라 난민촌 같았습니다. 그 역시 에이즈와 폐결핵의 위협에서 죽음의 고비를 여러번 넘겼습니다. 20년 간 아프리카에서 의료 활동을 하였을 때, 한 기자가 그에게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사는 동기들과 비교해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동산도 없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다가 아닙니다. 내 눈길에 와 닿는 아프리카의 하늘은 아름답고 힘과 용기를 줍니다. 이곳에서 받은 사랑이 더 많기에 나는 사랑 때문에 집을 가진 사람보다도 부동산을 가진 사람보다도 세상에 명예와 지위를 가진 사람보다도 행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시작과 끝을 알며 삶의 진정한 목적이 사랑이라는 것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사는 의미를 발견하려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다 사랑하는 사람 누가 못 사랑해요? 사랑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사람을 사랑해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야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부귀와 영화도 사랑없는 것은 쓰레기인 것입니다. 3. 왜 사랑이 제일이며 영원한가? 셋째로, 왜 사랑이 제일이고 영원한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이 없는 종교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어떠한 화려한 종교, 장엄한 종교, 거룩한 종교를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할 때 무엇으로 평가합니까? 네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 대통령을 했느냐? 장관을 했느냐? 세계적인 교회를 세워서 목사가 되었느냐. 그런 것 묻지 않습니다. 더구나 더 은행에 예금이 얼마냐, 세상에서 네 취미가 무엇이냐. 이런 것 안 묻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11절에“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내가 한 일과 수고한 모든 노력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네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나님께 얼마나 시간을 내며 관심을 가졌느냐가 바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먼저 하나님께 관심을 두라.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아 주신다. 우리는 제일처럼 어린 아이 신앙일 때는 내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 내게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이냐. 자기 이익을 따져서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은 철없는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신앙이 자라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자라면 부모님들을 기쁘게 하려고 부모님의 뜻을 이루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하나님을 먼저 찾으면 그 다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그 행함이 뭐냐. 어떻게 사랑을 했느냐가 주님이 묻는 질문인 것입니다. 사랑이란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는“어디서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 품 안에 깃들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 내가 방언을 말하니까 하나님이 나와 계신다. 내가 예언을 하니까 하나님이 내게 계신다. 내가 성경을 몇 번 읽었으니까 하나님이 내게 계신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고 하나님이 진실로 나와 같이 계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갖고 내가 그 사랑을 베풀 때 그 사랑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이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기독교 영성을 위해 라브리 운동을 했던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사랑이란“그리스도 제자의 뱃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뱃지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교회의 뱃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자가 된 뱃지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면 저 사람 하나님의 제자다. 사랑 안하면 가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친구에게 이런 글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태어났을까? 사랑으로부터 태어났다. 우리는 왜 멸망할까? 사랑이 없기 때문에 멸망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극복할 수 있을까? 사랑으로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도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사랑으로 사랑을 찾을 수 있다. 우리를 항상 연결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그와 같이 말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자로 삼은 사랑의 실천자였습니다. 여수순천반란사건 때 학교에 공산당 학생들이 손양원 목사님 목사님의 아들이라고 잡아가지고서 죽였습니다. 나중에 치안이 평정되어서 그를 죽인 친구 두사람을 잡았는데 처형하려고 할 때 손양원 목사님이 내 아들로 삼겠다고 그 사람을 받아내어서 아들로 길렀습니다. 여러분 속에서 우러난 사랑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억지로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한 것입니다. 손목사님도 저와 같은 사람 아닙니까? 자기 자식을 죽인 그 사람을 자기 아들로 받아들일때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은 사랑해야 사랑이 또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 안하면 사랑이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미엔 신부는 나병에 걸린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도 스스로 나병 환자로 만들어 주소서. 내가 나병환자가 되지 아니하면 참 나병환자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저들이 한 형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병환자로 만들어 달라고 해서 자기가 나병환자가 되어서 나병환자촌에 들어가서 나병환자를 돌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랑에서 비롯되고 그 사랑을 얼마나 실천했느냐에 따라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에서 제일 귀한 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4. 사랑의 특징 넷째로, 사랑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 우리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저는 옛날에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을 안 읽으려고 했습니다. 겁이 났어요. 내가 이것 보니까 도저히 못하겠어. 천사가 아닌 다음에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예수님의 사랑을 내 마음속에 깊이 깨닫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음바 되니까 자연적으로 이것이 나타나더라구요.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고 여러분이 상상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우리 성도집에 심방가니까 자녀들 방에 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을 크게 써서 붙여 놓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아니 집사님, 왜 저것을 붙여 놓았습니까? 하니까 목사님이 늘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라고 했잖아요. 애들이 시킨다고 합니까? 저것 자꾸 바라보면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목사님 말씀하기를 꿈이 우리를 붙잡지 우리가 꿈을 붙잡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것을 바라보고 자기도 그렇게 될까 꿈을 꾸고 있으면 그대로 될줄 믿습니다. 나는 그 집사님의 말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아~ 안되는 것은 써놓고 바라봐야 되겠구나. 내내 내가 가르치니는 것 내가 도로 배움을 받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여러분 이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을 크게 적어서 한번 써 붙여 놓으십시오. 그리고 매일같이 한번씩 읽어 보십시오. 자연적으로 여러분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드려 우리를 사랑하셨음으로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믿을 수 있고 믿기 때문에 소망이 생깁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지 우리 행위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분을 우리가 어떻게 믿어요?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두손 들고 나가고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 넘어져도 490번 회개하고 나올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여러분을 끝없이 사랑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로 젤 수 없어요. 측량할 수 없어요.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어요. 그 사랑의 물에 뛰어 들어가서 여러분 사랑물 속에 헤엄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바다 속에 뛰어 들어가서 사랑의 바다 속에서 헤엄친다. 그 물 속에 내가 들어가고 물을 마셔서 물이 내 속에 들어오고 사랑이 충만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앉아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어떻게 평가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르셨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자리에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가 십자가이며 십자가 사랑만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우리와 이웃의 관계를 미움과 원한에서 용서와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음 속에 미움을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한을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움을 가지고 있으면 내 마음이 완전히 미움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원한을 풀어놓지 아니하면 원한이 내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미움과 원한을 회개하고 자복하고 치료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움과 원한은 정죄할 것이 아니라 치료 받아야 돼요. 하나님 내 마음을 치료해 주십시오. 미움을 사랑으로 원한을 용서와 사랑으로 치료받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육신의 병을 고치듯이 마음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사랑이 충만할 때 자기도 행복하고 믿음이 강해지고 희망차게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 시작할까요? 여러분 집에서 시작하십시오. 바로 오늘부터 남편 여러분, 아내를 안좋아해도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말씀 하시니까 뒷책임은 하나님이 질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 점점 더 사랑을 하게 돼요. 아내 여러분, 남편이 미꽝스러워도 사랑한다고 말을 하세요. 한번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말하면 그 사랑한다는 말이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자식들보고 자꾸 꾸짖지 말고 사랑한다고 격려해주고 안아 주십시오. 그 말이 자식들의 가슴 속에 깊이 남고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을 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라. 이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어떻게 오른편 뺨을 치는데 손바닥 아프지요? 속이 상하거든 하나 더 치십시오. 왼뺨 때리듯. 오리를 가자 하는데 아이구 오리만 가면 심심할테니까 내가 더 가 드리지요.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도 가지십시오. 벗어 주고...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요 하나님을 닮아서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종교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율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성공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공하고 난 다음에 이혼하고 물고 찢고 싸우고 피투성이가 되면 그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사랑이 있으면 조그마한 집도 조그마한 돈도 조그마한 명예도 지위도 축복이 되고 영광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마음 속에 사랑이 우러나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사랑하면 말을 들어줘야지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지요. 하나님이 최후로 남긴 말씀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억지로라도 사랑하면서 살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사랑하지 아니하면 독백입니다. 아무리 헌신해도 사랑하지 아니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