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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3. 주일설교 쓰레기통과 보배함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후 4:1~12) <서론> “쓰레기통과 보배함”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람은 원래 스스로 살도록 지음을 받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아담과 하와를 성전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그릇 속에 쓰레기로 채워놓거나 보배로 채워놓거나 무엇이든지 채워 놓아야 합니다.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 놓을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시고 쓰레기로 꽉 들어찼습니다. 마귀와 세속으로 인간 속에 꽉 들어찬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마귀의 거처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으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 것입니까? 어떠한 것이 인간을 쓰레기통으로 만듭니까? <본론> 1. 쓰레기통 인간 세상 문화와 풍속을 따르는 악한 쓰레기통이 되는 이유는 이 세상은 다 마귀에게 속하고 온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역하여 탐욕과 욕심과 오만과 교만 속에 꽉 들어차 있는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2절로 3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오늘날 사람들 속에 들어와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거라사인의 케이스를 보면은 한사람 속에 마귀를 쫓아내니까 약 2천마리의 돼지떼 속에 들어가서 2천마리가 다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죽어버리고 만것입니다. 한사람 속에 들어있는 마귀의 수가 돼지 2천마리 속에 들어갈만한 수가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마지막 남긴 유언이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항상 귀신을 쫓아냅니다. 귀신을 쫓아내기 전에는 어떤 때는 마음이 굉장히 무겁고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왜 내 마음이 무겁고 괴로울까? 왜 몸이 이유없이 고통스러울까? 아~ 마귀가 또 억압을 하는구나. 마귀가 오면은 훼방을 하든지 억압을 하든지 마음을 짓눌러 우울하게 만들든지 인생에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그 자리에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귀신아 나가라! 나가라! 하면 한번만에 안 떠나갑니다. 제일 처음에는 이 놈들이 모른체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없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래도 몸이 마음에 억압이 떠나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쫓아내면 나중에 마귀가 떠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놈 떠나고 두놈 떠나고 세놈 떠나고 억압한 마귀가 떠나가면 떠나갈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나중에 다 떠나면 다 떠난 것을 확실히 압니다. 마음이 상쾌해지고 아주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의 억압도 사라지고 마음의 우울함도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도 사라지고 건강을 회복해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고 아침에 깨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제일 먼저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가 내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라. 오늘 우리 교회가 그것을 등한이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그것을 등한이 하고 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억압을 당하고 우울하고 슬프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안들어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마귀가 와서 훼방을 하고 누르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은 아예 마귀가 점령하고 있으니까 더 이상 누를 필요도 없고 훼방할 필요없습니다. 안믿는 사람이니까 완전히 점령했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근처에 못오니까 기회를 타서 언제나 와서 억압을 하고 점령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항상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여러분은 쫓아낼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쓰레기통 인생이 되어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환경 스페셜”이란 것을 보고서 정말 놀랬습니다. 거기에 보니까 우리나라 해안가에 쓰레기더미들이 밀려 쌓여있는데 그 쓰레기들이 얼마나 먼 곳에서부터 왔는지 아랍 글씨가 써진 봉투, 중국말이 적혀있는 쓰레기,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쓰레기들이 한국해안에 밀려와 있어요. 우리나라의 쓰레기도 일본이나 태평양 너머로 가고 있고, 일본 쓰레기는 남태평양 섬들에 쌓여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지난 여름, 일본의 쓰나미 이후 바닷물이 빠져나간 일본 국토는 온갖 쓰레기통으로 쌓였습니다. 우리나라도 태풍이 한차례 몰아치고 난 이후, 강이나 바닷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쓰레기더미인 것입니다. 평소에는 푸르고 아름답고 흠과 점이 없어 보이는 바닷물이 일단 나가고 나면 그 밑에 있는 쓰레기통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밑바닥에는 엄청난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아~ 우리 마음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마음이 겉으로는 말갛고 온전하고 깨끗한 것 같은데 마음의 밑바닥 속에는 온갖 세속과 더러운 것이 쌓여있는 것입니다. 세상 문화와 풍속을 따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채워진 쓰레기통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죄악과 부패로 채워진 쓰레기통이 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십계명을 비춰보면 알수 있어요. 그냥 안보이는 것도 확대경을 대고 보면 보이는 것처럼 십계명을 우리 마음속에 비춰보면 우리 마음속에 어떤 쓰레기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성전에서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를 끌고온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예수님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으니 성경에는 돌로 쳐 죽이라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자꾸 물을 때 예수님께서 엎드려서 글을 적었습니다. 뭘 적었느냐.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쓰레기가 들어날 수 있도록 십계명을 적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 어깨로 예수님 손가락이 적어가는 십계명을 내려다보고 몸서리를 쳤는데 주님께서 얼굴을 드시고 한사람 한사람 보시고 너희 가운데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쳐라. 그말 한마디가 그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을 통해서 그들 죄가 다 드러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모두다 돌멩이를 내버려 놓고 한사람 두사람 피해버리고 말았는데 십계명에 보면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계명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를 우리 마음속에 비춰보면 쓰레기가 마음의 바다에 깔려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고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인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확대경인 십계명을 마음속에 비춰보면 죄악과 부패로 채워진 쓰레기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탐욕으로 채워진 욕심의 쓰레기가 마음속에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편 10편 3절에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야훼를 배반하여 멸시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가장 우리를 넘어뜨리게 하는 것은 마음에 욕심과 탐심과 교만과 오만의 쓰레기인 것입니다. 교만과 오만이 들어오면 다른 사람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만 인정받고 자기말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만나면 부딪힙니다. 마음에 욕심과 탐심이 있으면 자기의 분수 이상의 것을 쥐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하고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교만과 오만의 쓰레기통을 청소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시편 10편 4절에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야훼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한가 안한가 보려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안기울이는가 그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 자기가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다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해버리면 무엇이라고 말해도 그 사람 교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충고를 들어서 자기를 비춰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가 마음에 괴롭더라도 그것을 듣고 비춰보고 회개하고 깨달으면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과 오만의 쓰레기통을 제켜야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속에는 쓰나미가 밀려와서 쓰레기를 남겨놓고 간 것처럼 세상의 시험과 환난이 지나고 난 다음에 수없이 많은 쓰레기를 우리 가슴속에 파묻어 놓고 가는 것입니다. 이 쓰레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 썩은 냄새가 나고 불안과 공포, 좌절과 절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이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쓰레기를 잔뜩 담아 있으면 결코 평안과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그 마음이 보배함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보배함이 된 인간 쓰레기가 치워지고 보배로 가득찬 보배함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러느냐. 예수님의 구원으로 채워 놓으면 마음이 보배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로 17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니고데모가 예수께 나올 때 예수님이 니고데모 보시고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하니까 니고데모가 깜짝 놀랬습니다. 평생을 율법을 공부한 니고데모가 내가 나이가 이렇게 많고 머리가 백발이 된 사람이 거듭나자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됩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네게 거듭나야 되겠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가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나와서 지나갈 동안 생활이 어려우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노하셔서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물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나와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뱀이 물러가게 해달라고 할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불뱀을 놋으로 만들어가지고서 장대 높이 달라. 쳐다보는 사람마다 고침을 받으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뱀의 독이 올라서 퉁퉁 부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장대에 높이 단 구리뱀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즉시로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비유해서 인자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들려야 하겠다. 세상 뱀의 독에 물려서 죽어가는 사람이 나를 쳐다만 보면 고침을 받게 하겠다. 구원을 받게 하겠다. 오늘날 우리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용서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온 것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세상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2천년 전에 사랑했으니까 우리가 하나님 사랑할 여가가 없을 때 하나님이 벌써 우리 사랑하신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 빈손들고 나가도 기쁘게 받아주신 것입니다. 언제나 저는 예수님의 좌편강도, 우편강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이다 흉악한 강도 아닙니까? 살인죄에 방화죄를 지은 흉악한 강도로써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데 그 중에 한 강도는 예수님을 무시하고 비난했으나 다른 강도는 예수님 주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그 자리에 주님 대답하셨습니다. 오늘날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때 우리가 그 상황을 보면 이 강도는 회개할 시간도 없었고 교회갈 시간도 없었고 세례받을 시간도 없었고 도무지 신앙생활을 할 시간이 없는데 오직 신앙고백만 했습니다. 주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주님께서 그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고백할 때 받아들여서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면서 같이 못박힌 예수를 바라보자마자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만 하면은 구원의 손길이 임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니까 이제 자기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쓰레기통을 소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통회하고 자복하는 것입니다. 구원도 받기 전에 회개하고 통회하려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회개하고 통회하냐고 반항하고 달라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으로 채워 놓으면 여러분 우리 속에 보배가 채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속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보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로움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모든 우리의 허물이 사해지고 성령충만 거룩함이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의 더러운 것은 떠나가고 치료받고 건강의 보배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십자가 저주를 통해서 우리의 저주를 제하여 주시므로 저주받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가난하고 못사는 것은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보배가 쌓여지는 것입니다. 죄값은 사망으로 죽어서 멸망할 썩어진 것이 사라지고 부활, 영생, 천국의 보배가 쌓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 속에 상상을 초월한 보배가 쌓여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희망과 꿈이 가득하게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여러분과 나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제일 무서운 것이 희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마귀가 사람에게 오는 것은 무엇을 도둑질 하느냐. 먼저 희망을 도적질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빼앗으면 절망이 들어오게 되면 죽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어떠한 어두운 밤도 밝은 빛으로 찾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희망을 가진 사람은 마음 속에 내일에 대한 꿈이 생기는 것입니다. 꿈이 생긴 사람은 신념이 생깁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담대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산다. 승리한다. 복받는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희망의 보배로써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희망이 생기면 십자가를 통하여 의로운 보배, 거룩함의 보배, 치료의 보배, 축복의 보배, 영생복락의 보배가 가득히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보배로써 마음을 채워 놓아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보배가 있는 사람은 그 다음에는 믿음과 순종으로 채워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살아계신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예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신학을 공부하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놓쳐 버리고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고 종교를 공부하다가 현재 살아있는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식을 너무 추구하다가 살아있는 예수님을 잃어버릴 때가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아니시오 이스라엘 땅에 계신 예수님이 아니시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지금 대한민국 여의도순복음교회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지금 내 속에 와 계십니다. 현재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므로 동일한 역사를 여러분에게 지금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 주시고 지금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시고 눈이 어두운 자에게 다시 보게 해서 하늘나라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지금 마귀에게 억압된 자를 놓여 자유롭게 해주시고 지금 은혜의 복음을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예수를 만나는 것이 여러분 인생에 가장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쓰레기더미에서 건져 나와서 보배창고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쓰레기가 예수로 말미암아 다 청산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배로운 축복이 가득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으로 그리스도를 모셔들이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성경공부하므로 말씀의 보배가 마음 속에 가득가득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오면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나느냐. 말씀 속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곧 말씀이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 이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으므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가 용서하는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서 만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성령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를 병고쳐주는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를 환난과 시험에서 건져주는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를 영생복락 천국을 주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만나는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만나면 담대하게 선언할 수가 있어요.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나니 저는 나를 새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새사냥꾼의 올무에서 건지시는데 우리가 어릴 때는 사람들이 좀처럼 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절대로 먹을 수 있는 처지가 못됩니다. 뭘 먹느냐. 겨울에 새를 잡아 먹습니다. 새를 어떻게 잡느냐 하면 지게 위에 사리로 만든 바지게라고 해서 물건 담기 위해서 이렇게 만든 그릇이 있습니다. 그것을 세워 놓고 그 밑에다 이런 지푸라기를 잔뜩 갖다놓고 낱알을 갖다 놓고 거기에 나무로 이렇게 씌워서 바쳐놓고 돌멩이를 그 위에 잔뜩 얹어놓고 새끼를 쭉 당겨서 방안에 딱 앉아가지고서 창문으로 딱 보고 있으면 새들이 많이 날라와서 그 속에서 막 짹짹 거리고 파헤치고 뭘 먹을 때 탁 잡아당깁니다. 그러면 바쁜 놈은 날라가지만 둔한 놈은 다 그 바재기 밑에 눌리면 뛰어가서 그 위에서 막 밟습니다. 그때 보면은 눈알도 튀어나오고 날개도 찢기고 다리도 부러지고 그러면 그것을 뜯어가지고서 씻어가지고서 소금을 쳐서 불에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다구요. 요사이 어떤 불고기보다도 맛이 있습니다. 이 새사냥꾼의 올무인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그렇게 잡아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되 새사냥꾼의 올무에 우리를 꾀들어가지고서 탁 잡아당겨서 치워서 죽이려고 하는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사냥꾼의 올무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극한 염병, 급한 염병 걸리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견딜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약속을 입으로 시인하면 그 약속 속에 하나님이 나타나 계셔서 그 말씀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여러분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내가 어려울 때마다 외우는 것이 참 좋고 찬송이 왜 좋느냐. 아무리 말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도 찬송할 때는 소리를 내서 부르지 않습니까? 찬송가의 말씀은 다 성경에 뿌리를 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많이 부르면 굉장히 은혜가 되고 찬송이 흑암의 세력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능력을 나타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채워지면 우리가 보배함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음 속에 자연적으로 희망찬 꿈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생각이 있어요. 우리에게 재앙을 주는 생각이 아니라 평안을 줄 생각이요. 장차 희망을 줄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까?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소망이 넘친다. 희망이 넘친다. 그러면 희망이 넘치면 사람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일에 대한 꿈이 가득차지는 것입니다. 꿈이 가득차지면 믿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하는 신념이 생겨나고 신념이 생겨나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지고 즐거움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이러한 삶을 가득히 채운 보배함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3. 변화를 체험한다는 것 우리가 이와 같이 보배함이 되어서 변화를 체험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 쓰레기통을 치우고 보배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제일 먼저 해야될 것은 쓰레기통을 청소해야 되는 것인데 온갖 냄새와 바퀴벌레, 쥐, 병균이 득실거리는 원인이 쓰레기에 있는 것입니다. 왜 마귀가 자꾸 내게 와서 시험합니까? 왜 귀신들이 달라듭니까? 간단한 것입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쓰레기가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욕심과 탐심과 원한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분노 같은 것이 있으니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처소가 있구나 하고 이 쓰레기를 좋아하는 귀신들이 들어와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쓰레기통을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6절로 7절에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 우리 희생제물이 되어 청산해 주었으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악의 쓰레기, 모든 더러운 쓰레기를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로 청소해야 되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비우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것입니다. 작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으므로 우리 언제나 하나님 앞에 나와서 쓰레기통을 정결하게 하면 하나님을 모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냄새가 꽉 나는 쓰레기를 가지고서 주님 오시옵소서. 주님 오시옵소서 하면 주님께서 문밖에 서서 냄새가 나서 못 들어가겠다. 쓰레기부터 치워라. 아이 먼저 들어오십시오 그냥... 아니야 쓰레기부터 치울때까지 내가 기다리마. 그러므로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모실 때 반드시 회개를 하는데 언제 죄가 있을 때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집안 청소하지 않습니까? 온 집안에 쓰레기가 차질 때까지 기다립니까? 아니지요. 아침마다 집안 청소하는데 그와 같이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마음에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 회개하고 정결케 하고 주님을 모시는 것이 좋습니다. 세계적인 문호인 톨스토이는 그리스 정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청년 시절에 세계적인 추세였던 합리주의와 인본주의에 물들어서 불신자로 자라났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그는 자신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서 사람을 많이 죽이고 도박, 간통, 폭행, 살인자로 자신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자기가 미워졌습니다. 나중에는 절망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결국 나는 죄의 포로가 되었다. 나는 흉악한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가운데 빠져서 허덕여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배우고 믿었던 지식과 과학에서 결코 만족한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을 알아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 안에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 그가 말하기를 인간은 하나님 없이 못산다. 하나님이 계셔야 살 수 있다. 톨스토이는 잃어버린 자기를 찾고 난 다음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인 「부활」이라는 소설을 적었습니다. 사람이 그 안에 쓰레기로 가득 차 있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로 새 사람이 되어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으로 채워 놓은 보배함이 되어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은 다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서 깨어지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 보배함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아주 농꾼이었습니다. 교육도 받지 못하고 순 농꾼으로 살았습니다. 목장으로 살았는데 주님이 하루 나타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기 전에 떠나라고 했습니다. 네가 오래 살아온 죄악의 땅, 거소에서 너희 부모,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너가 살고 있는 세상 문화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시할 땅은 십자가 밑입니다. 십자가 밑으로 나오라. 세상에서 떠나서 십자가 밑으로 나오라. 그러면 네가 복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 밑에 나와서 내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여러분이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순종하여 장래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갔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여 믿음으로 십자가 밑에 나가면 변화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40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80에 불붙는 가시넝쿨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 하나님께 모세에게 과거를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과거에 살아온 모든 족적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신발을 벗고 하나님께 항복하고 나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는 거기에서 신발을 벗고 하나님 품에 안긴 것입니다. 야곱을 얍복강의 체험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가 얍복강에서 형이 400인의 군대를 거느리고 죽이려고 오니까 아들과 딸들과 처자들 다 먼저 강건너 보내고 자기는 강건너에 앉아가지고서 처자가 형에게 맞아 죽으면 도망치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있는데 의리가 없는 남자였었습니다. 처자를 먼저 보내고 자기는 살아 도망치겠다고 강에 있는데 건너가면서 아버지 같이 갑시다. 왜 아버지 거기 있느냐? 너희들 먼저가라. 먼저가라. 아버지는 여기 볼일 있다. 볼일은 무슨 볼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너도 건너가라! 너도 건너가라 그러니까 안갈랍니다. 그래서 천사하고 밤새도록 씨름을 하는데 아무래도 고집을 부리고 나는 안갑니다 하니까 천사가 나중에 환도뼈를 치니까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일어나보니까 절룩거리니까 이제는 안건너가도 별 효과가 없겠다 말입니다. 형이 오니까 달아나려고 해도 다리가 절룩발이까 못달아나니까 그때야 날 축복 안해주면 난 당신 안놓겠다 하니까 너 이름은 야곱이지? 사기꾼이지? 예! 이제 이름을 이스라엘 하나님의 복받은 사람으로 바꿔라.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꿔서 절뚝절뚝 하면서 강을 건너오니까 그의 처자들이 아니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 왜이리 절름발이가 되었습니까?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처자들 앞에서 절뚝거리면서 나가니까 형이 단칼에 목을 베려고 뛰어와서 보니까 절뚝발이 뭐 칼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셔서 회개하는 마음을 줘서 두 사람이 끌어안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화를 시키기 위해서 절뚝발이를 만들고 이름을 바꿔 주신 것입니다. 변화 받아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요셉은 17살에 집에서 형들에게 버림을 받아 떠나서 13년 동안 고통을 통하여 자기를 버리고 난 다음에 30살이 되어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와 지식이 너무 많으므로 육신의 가시를 주어서 몸이 아팠습니다. 고쳐달라고 아무리해도 하나님 고쳐주지 아니하면서 네가 약할 때 내가 강하다. 네가 약해야 하나님께 의지하고 변화받는 삶을 살므로 내가 너를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오히려 자기가 육신의 가시가 있고 약해지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부활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2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 죽은 것을 내 죽음으로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상상하고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시인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장사지내고 부활한 것을 인정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여러분 몸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그릇이 되면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성령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혼자 살지 않습니다. 보배함이 되면 성령께서 그 보배함 속에 같이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요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돕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성령이 알았어요. 내가 도와줄게. 성령은 여러분의 기도가 예수 이름으로 드려지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받아서 전달하는데 기도를 잘못하면 마귀가 여러분 기도를 전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말을 하면 마귀가 집행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말을 하면은 성령이 이루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모신 것이 보배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예수 십자가 축복을 생각하고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꿈꾸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십시오. 저는 매일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외웁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양같이 그릇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를 외우고 그 다음에는 눈을 감고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죽음 내 죽음.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죽었다. 그 다음 예수 부활은 내 부활.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치료받고 건강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영생복락을 얻은 나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내게 이루어주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 혼자 내가 늘 중얼거립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나는 성령께서 같이 계신다. 나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나는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나는 부활 영생 천국을 가지고 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함을 입었다. 입술로 늘 시인합니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지 나는 보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보배가 바로 십자가 밑에서 얻은 보배인 것입니다. 눈에 안보여도 이 보배가 내 마음 속에 서서 이를 내가 알고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보배가 현실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 보배가 다 있는 것입니다. <결론> 세상 사람 보기에는 저 질그릇 같은 인간이라고 하지만 보배가 여러분 속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보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고 아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고 승리자가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쓰레기통을 다 청산하고 보배함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보배가 되고 성령이 같이 계시고 이 보배를 여러분 깨닫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현실적으로 눈 앞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보배를 가진 여러분은 어느 곳에 갖다 놓아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광야에 가면 광야에 축복받은 처소가 되고 들에 가면 들이 복된 곳이 되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된 곳이 되는 것은 여러분 속에 있는 보배가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보배로운 사람이다. 보배가 내 속에 가득하다. 할렐루야! 다같이 고개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를 보배함으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 속에 보배가 가득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더구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보배를 얻었음을 생각할 때 무슨 말로 다 감사드릴지 이루 형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주님께서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고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므로 이 보배를 우리 땅에서 다 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