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7. 주일설교
내가 약할 때 강하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내가 약할 때 강하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했을 때 인간적으로 보면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벌써 대용사였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와서 40주 40야로 협박 공갈을 할 때는 구척장신의 상대할 자가 없는 장군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육신의 눈으로 골리앗을 바라보면 모든 사람이 기절초풍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울왕도 이스라엘 군인들도 골리앗만 나오면 숨을 곳부터 먼저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도저히 골리앗 때문에 대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10대 소년 다윗이 전쟁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 원조물자 들고서 왔다가 보고 분노했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저 할례받지 않은 하나님 없는 이방 장군 골리앗 앞에 이렇게 벌벌 떨 수가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을 계산해 넣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나온 사울왕부터 이스라엘 군인들까지 하나님 없는 인간으로써 골리앗을 대하니까 도저히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10대 소년인 다윗은 자기 생애 속에 하나님을 계산해 넣었습니다. 자기는 어리고 힘이 없고 무능했지만 그 전쟁터에도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계산해 넣었습니다. 그래서 자원해서 말하기를 내가 가서 싸우겠습니다. 사울왕이 어림도 없는 소리하지 마라. 저는 어릴 때부터 장군이요 너는 10대 소년으로서 상대가 안된다. 아예 못나간다. 다윗이 말하기를 왜 못나갑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과 언약맺은 백성인데 무엇 때문에 골리앗을 두려워합니까? 내가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기 투구를 쓰고 사울이 다윗에게 자기 투구를 씌워주고 자기 전투복을 입혀 주었으나 몸에 맞지 않습니다. 투구를 쓰니까 눈까지 다 내려와 버리고 옷을 입으니까 군복이 질질 끌립니다. 다 벗어버리고서 내가 내 목자의 도구를 가지고 그냥 나가 싸우겠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가서 골리앗을 대항해서 말하는 그 말을 보십시오.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의 이름으로 나가노라. 무엇이 다릅니까? 골리앗은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 나오나 다윗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갑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눈에 안보였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과 어떻게 같이 나갑니까? 거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울이나 이스라엘 군인들은 하나님 백성이었으면서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의 삶속에 동반자로 의지하고 나가서 골리앗을 때려 눕혀 이겼던 것입니다. 다윗은 어차피 자기는 어린 소년이요 연약한 사람으로 자기 힘으로는 골리앗과 대항해서 싸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야훼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믿고 믿음으로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일상생활 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고통, 괴로움, 낭패와 실망 우리 힘으로 아예 감당하지 못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예 노력해봤자 사람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됩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 하셨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는데 여러분 잘나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여러분을 사랑해서 여러분을 구속하셨고 여러분을 지명해서 불러서 너는 내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요 훌륭한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도 아니요 자격이 있어 그런것도 아닌 것입니다. 왜 주님 날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묻지마라. 무조건하고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왜 여러분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자녀들을 여러분이 잉태하고 나았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물이 좋다고 사랑하고 인물이 나쁘다고 사랑 안하고 정상아로 태어났으니까 사랑하고 불구로 태어났으니까 안 사랑한다. 그런 것 없습니다. 무조건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낳은 이상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작곡가를 대라 하면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를 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의 음악은 장미꽃같이 아름답다고 칭송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쓰라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형의 손에서 자랐는데, 형은 생활이 너무 어려워 동생을 미워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결혼하여 일곱 남매를 낳았는데, 하루는 외국의 연주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자기가 없는 동안에 이미 장례식을 치루었습니다. 그는 재혼해서 다시 자녀를 두었지만 그 중, 절반은 죽고 남은 자녀 중에는 정신박약아도 있었습니다. 노년에 이르러 그는 시력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뇌출혈로 반신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정 형편이 최악인 상태에서 둘째 아내마저 또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되는 고난 가운데 인생을 깊이 알게 되었고, 자신이 겪은 아픔과 고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음악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고난을 당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던 그는 작곡을 하면 언제나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라는 말을 적었습니다. 오르간 연주곡에는 “예수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라는 말을 꼭 적었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서 모든 사람의 아픔을 위로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여 오늘날 “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과 육신의 어려움으로 고난을 당할 때, 바로 우리의 그런 약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한 예수님의 팔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D.L.무디 목사님이 자기 딸을 데리고 스케이트장에 갔는데 아버지가 큰 손을 붙잡고서 딸하고 스케이트를 같이 타니까 딸이 아버지의 손을 탁 떨쳐 버리면서 나도 탈 수 있는데 왜 아버지가 나를 잡고 야단이야? 아버지 저리가! 그리고 혼자 타다가 콰당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고 울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봐라, 너는 아직 스케이트에 능하지 못하니까 넘어지지 않느냐. 아버지가 잡아주면 괜찮다. 큰 손으로 넙죽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한번 넘어져서 아파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께 매달리니까 가다가 넘어지면 달랑 달리고 넘어지면 달랑 달리고 괜찮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고통을 당해봐야 예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만사형통이고 오케이면 자기를 의지하고 주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예수 믿고 나오는 사람 중에 대다수가 자기 개인의 사연이 있습니다. 고난의 사연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시련이 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반드시 우리의 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본론>
1. 바울의 환경적 고난
바울선생은 그가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환경에서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교회를 박해하다가 다멕섹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심하여 복음증거자가 된 바울은 얼마나 환경적으로 고통을 많이 당했던지 그가 고백하기를 빌립보서 3장 5절로 8절에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는 유대인으로써 자랑할만하게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환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인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보혈로 씻음받고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예수님을 의지한다고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 바울선생이 하는 말이 내가 약한 그 때에 나는 강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므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빈그릇이 되어야 무엇을 채울 수가 있는 것처럼 약한 것을 알고 고백해야 주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강하다. 나는 힘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주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주님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빈틈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할 때 강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예수님께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자기를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에 대해서 변호하지 않았고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별도리없이 군인들에게 잡혀서 빌라도의 뜰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달렸을 때 예수님 의지한 것은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내 영혼을 주께 맡기옵니다. 하나님께 맡기니까 하나님이 죽은 예수를 3일만에 살려 주셔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약하니까 하나님이 강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싸웠으면 하나님이 들어올 틈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연약이 반드시 여러분에게 손해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 내가 태산같은 힘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님을 안 찾지요. 태산같은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환경에서 많은 고난을 겪어서 그가 고집이 깨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사도 중에 사도가 되고 이 성경을 기록한 위대한 저자들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7절에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와~ 예수를 그렇게 잘 믿는 바울선생이 왜 그런 고난을 겪었느냐. 그렇다면 우리같이 별볼일없는 사람은 고난을 당해도 꼼짝하지 못하지 않겠느냐.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 고난당해도 꼼짝 못할 것을 알고 여러분에게는 그런 고난을 안주십니다.

2. 바울의 육신적 고난
바울이 왜 그런 고난당하느냐. 지도자이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낮이 있는 줄 알게 되고 추워야 더운 것을 고맙게 여기는 것처럼 바울선생이 그 많은 고난을 통해서 고난에서 건지시는 예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를 위하여 항상 죽음에 넘기우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는 역사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내가 죽어봐야 나를 부활하신 예수님을 깨달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바울선생은 수없이 얻어맞아도 견뎌내고 파선을 당해도 건짐을 당하고 돌에 맞아죽었다고 쓰레기더미에 갖다 내버렸는데도 다시 살아나 일어나고 그래서 예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간증을 할 수 있었어요. 나는 이런 체험을 했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요. 이론적인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저는 간증할 것이 많아요. 왜냐하면 너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목회를 시작했고 폐병으로 죽다가 살았고 시련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간증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간증을 하면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요. 왜냐하면 와~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정말 체험했구나. 참~ 간증이 효과가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어느 큰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제가 폐병으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가 주님을 만나고 폐병에서 고침받아 오늘날까지 건강하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그날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았어요. 조용기가 낫는 것 보니 우리가 안 나을 턱이 있냐. 조용기를 고치는 하나님 오늘 우리도 고친다. 그런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많이 나았는데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 사무실에 와서 차 한잔 마시고 오려고 사무실에 가니까 목사님이 들어오더니만 내 앞에 무릎을 탁 꿇어요. 그래서 왜 무릎을 꿇었느냐니까 안수를 좀 해주십시오. 아니 내가 왜 안수를 해요? 목사님, 목사님은 그런 간증을 할 수가 있는데 나는 우리 아버님이 부자로 살아서 호사스럽게 공부하고 외국 유학까지 갔다와서 고생을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병들어 본적도 없고 또 병들면 의사들이 고쳐주었고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몰라요. 나는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신학만 알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내 설교에 내가 생각하기에도 은혜가 안돼요. 나도 간증을 좀 하자니까 목사님이 안수해도 나도 중병에 걸리기는 하되 안 죽을 중병만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죽으면 효과가 없으니까. 중병에 걸리기는 하되 하나님이 고치는 체험을 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해 주십시오 하니까 그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장난같은 소리하지 마라고 하니까 아닙니다. 장난 아닙니다. 나는 비장한 결심을 했습니다. 나도 무슨 고통을 당해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이렇게 평안하고는 내가 믿음의 역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수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하나님, 중병에 들되 안죽게 해달라고...
바울이 환경적인 고난을 당한 것은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먼저 체험을 해야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고난을 당해서 체험해서 여러분께 가르치는 것이요 우리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주님이 주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 다른 사람들은 믿음을 얻어서 고난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환경에서 고난만 당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고난도 깊이 당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엄청나게 받았어요. 그가 셋째 하늘로 올라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가 간증하기를 내가 몸으로 올라갔는지 몸에서 빠져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나 뚜렷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갔으니 이대로 올라갔는지 몸에서 빠져나왔는지 내가 알 수 없으나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말로다 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바울만큼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고 진리에 대한 이해를 뚜렷이 한 사람이 역사상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가 내가 라고 교만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왜 너희들 잔소리 하느냐. 나만큼 경험해봤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교만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어서 몸이 몹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바울이 아무리 기도해도 병이 안 낫는데 우리가 낫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그만한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탄을 보내어서 고통을 당하게 했는데 여러분 그런 계시를 받았습니까?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와서 내 설교듣고 있지. 그런 계시 받았으면 여러분 돌아다니면서 간증하고 있지 여기와서 설교듣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하고는 해당이 안되는 것이지만 바울선생은 계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고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이 병고쳐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No 하셨습니다. 네가 약해야 내가 네게 머물러 있으며 내게 의지하므로 강해진다. 여러분도 이 레마를 받기 전에는 병낫기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너는 안 낫는 것이 좋다. 안 나아야 겸손해진다. 그렇게 말씀을 들었으면 그 이상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 이후에 다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선생에게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몸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할려고 주님이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었으며 그는 그의 생활에 능욕당하고 궁핍당하고 박해와 곤고를 당하는 것을 기뻐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몸에 임하게 하려 함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우리 한국에 이상근 박사님은 우리 한국 역사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성경 해석자인 것입니다. 성경 주석에 일가견을 가진 어른이십니다. 이상근 목사님은 목회자로서, 신학자로서 한국 교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 분입니다. 특별히 그는 성서 주석으로 이름을 남기셨는데, 그가 성경 연구에 몰두하게 된 것은 16살 때 발에 병이 난 것 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발에 원인 모를 병이 생겨, 그의 어머니가 40일 작정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병은 더 짙어만 가고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학교를 갈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성경을 읽고 외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병을 낫게 하려고 한방약을 붙였는데, 이것이 역효과가 나서 완전히 병이 덧나서 다리를 못쓰게 된 것입니다. 몇 년을 걷지 못하고 집에만 있게 되면서 그는 성경을 달달 외우다시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고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는 60년 동안 발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은퇴하면서 외과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보니 발 뒤꿈치에서 1.5센티미터짜리 철사가 나왔습니다. 어린 아이 때 밭으로 맨발벗고 뛰어 놀다가 모르는 사이에 철사가 발에 박혀 들어갔습니다. 이게 원인이 되어서 60년 동안 절름발이가 되었어요. 어렸을 때 맨발로 다니다가 철사에 찔린 것이 발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평생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는 수술을 받은 후에 철사를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철사가 나의 가시가 되어 60년 동안 나를 찔렀지만, 그로 인하여 나를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것을 알고 성서학자가 되게 했으니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그가 안찔렸으면 한국에 이름난 성서학자가 안되었을 것인데 찔린 덕분에 집에 들어앉아서 성경만 공부해서 훗날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경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육체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지금 그 가시로 인해 우리는 아프고 짜증나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나중에는 가시가 오히려 고마운 존재가 될 때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3. 고난의 이유
우리는 고난이 다가오는 이유를 바울선생의 체험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교만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원수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교만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사탄의 꾀를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인간타락의 근본적인 죄는 탐욕과 교만인 것입니다. 교만하면 인간은 버림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교만하여 자기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저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허락해서 지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했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의 사자 곧, 육체의 가시가 생기면 혹시 내가 교만하지 않았는가 교만죄를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약해지면 자기의 연약을 확인한 후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다빈치는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최후의 만찬인데 예수님이 중간에 앉고 양쪽에 6명, 6명의 제자들이 앉아서 최후의 만찬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그 그림입니다. 그가 그 그림을 처음 그렸을 때는 줄로 그어버렸습니다. 처음에 굉장히 아름답게 그림을 그렸는데 그어버렸는데 전문가들과 친구를 불러놓고 자기 그림을 품평하게 했는데 다 와서 아름다운 그림이다. 너무나 좋은 그림이다. 예수님이 손에 들고 있는 은잔이 어떻게 그렇게 빛나고 아름다우냐. 섬세하고 아름답기 말로 다 할 수 없다. 오는 사람마다 예수님 손에 든 은잔을 칭찬했는데 그 말을 듣자 레오나르도다빈치는 얼굴이 샛노랗게 되어서 그림을 쫙쫙 그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왜 그어버렸느냐. 예수님이 중심에 보여야지 은잔이 보이면 어떻게 하느냐. 은잔을 보라고 내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니 내가 그림 잘못 그렸다. 그래서 처음 그림은 줄로 그어버리고 그 다음 은잔을 눈에 안보이도록 못나게 그린 것은 예수님 얼굴이 드러나야 된다. 오늘날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할 때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칭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칭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용하는 주인이고 나는 도구에 불구한데 도구가 자랑을 하고 도구가 자기의 약한 것을 모르고 어깨에 힘주고 으스대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멀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칭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 23절로 24절에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야훼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섬기고 자랑하는 그 자랑이 있어야지 자기 자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알면 자기 자랑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레마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은 약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왜 약한지 이유를 알고 기도를 그쳐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응답 안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간절히 구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응답을 하시는데 분명한 레마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왜 병을 고쳐주지 않는지 대답을 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고통을 상쇄할 만한 족한 은혜를 주었다. 병을 견뎌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었으니까 은혜를 가지겠느냐 치료를 받겠느냐. 바울이 말할 필요없이 주님 차라리 아프더라도 은혜를 갖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약해야 은혜가 온전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처럼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조건하고 약해진 것을 좋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처럼 하나님의 레마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했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했고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는 것은 비워야 채우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이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심한 시련을 당한 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죽도록 의지하라. 내 힘을 다하여 주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해서 안됐습니다만 저는 한 평생을 약골이었습니다. 한평생을 늘 어지럽고 심장이 뛰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 수없이 기도를 했습니다.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도 설교하다가 쓰러져서 들것에 들려서 병원에 간적이 있고 작년에도 자동차 안에서 기절해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강단을 아파서 못선 적이 없고 해외선교에 나갈 때 몸이 아파서 선교를 못한 적은 없습니다. 왜냐, 그럴수록 하나님께 더 의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요. 하나님께 죽도록 매달리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식들은 부모 슬하를 쉽게 떠나지만 몸이 약하고 병든 불구의 자식들은 아버지, 어머니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떠나면 못사니까. 그러니까 어디가도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혹시 벌리고 갈까 두려워하고 곁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이먹은 영감들이 집에서 부인을 의지한다는 글을 내가 읽어보았는데 부인들 71%가 남편이 너무 오래살까 싶어서 걱정이라고.. 옛날에는 남편들이 50세를 넘어서 60세면 거의다 죽어줬는데 지금은 90세까지 100세 시대가 되어서 70세에서 90세까지 사니까 한 20여년 동안 부인 곁에 있어요. 출근 안하고 집에서 있으니 삼시세때 밥지어줘야 되고 또 심심하다니까 놀아줘야 되고 돌보아줘야 되고 가장 힘든 것은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가방들고 나가면 옷입고 따라 나선다는 것입니다. 갈데 가 없으니까 따라 나선다 말입니다. 이것 너무 귀찮다고... 오늘날 그러므로 남편들 여러분 스스로 독립해서 못살만 하거든 빨리 죽어줘야 돼요. 왜, 자기가 약하니까 자꾸 매달리거든요. 젊을 때부터 부인에게 잘 해놓으면 나이 늙으면 부인이 불쌍히 여겨서 늙어서 돌봐줄 것인데 젊을 때 큰소리하고 어떤 사람은 주먹질도 하고 그리고 나서 늙어서 따라다니면 좋아할 턱이 있나요? 오늘 내말 듣고 지금부터 정신차리고 마누라에게 잘 하십시오. 점수를 따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약해야 매달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약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주의 종들치고 여러분 남모르는 연약함을 안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다 약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말 안하지요. 그러나 자기는 그 때문에 주님께 죽도록 의지하지요.
세계적인 유명한 복음 전도자인 빌리 그레함 목사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강하게 보이잖아요. 평생을 파킨슨 병으로 고생했었습니다. 파킨슨으로 굉장히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고 요사이는 휠체어에 앉아서 스스로 걷지 못하지만 평생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왜냐, 약할 때 강한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인간인지라 평안하면 잘 먹고 잘 입고 편히 쉬기를 원하고 오래 잠자고 있기를 원하지 기도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잠 안자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도움을 간구하게 되고 그러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다른 사람보다 넘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선생은 고난을 오히려 기뻐한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빌립보서 4장 4절로 7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고통스럽고 괴롭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다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약하면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지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바울선생이 말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로 10절에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 위해서 무엇을 이루었다면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비워야 되고 약한 그릇이 되어야 은혜로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한 사람은 보고 야~ 저사람 위대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만큼 받아서 하나님 은혜가 그 기적을 행하신 것인데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을 겪었으며 빈 그릇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쉽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고통을 당해서 빈 그릇이 되어야 역사하는 은혜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고난은 괴로워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해주는 것입니다. 고난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로 13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오면 다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슬픔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요. 그래도 슬픔을 극복하고 고난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와요. 그도 극복하고 병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와요. 그것을 극복하고 배고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 와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광야만 지났으면 다 굶어죽었어요. 광야를 안 지날 수 없지만 광야를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와서 시원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배가 고플 때 만나가 하늘에서 임해서 그를 극복하게 해주셨으며 영양실조가 될 때는 메추라기가 와서 먹고 단백질을 구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와서 도와준 것입니다. 자기들 힘으로 농사지어서 해결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광야가 안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광야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광야는 여러분을 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으로 광야를 지나고 시험과 환난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을 찾으면 은혜가 와서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가 가난을 이기게 해주시고 은혜가 분노를 삭이게 해주시고 은혜가 병을 이기게 해주시고 은혜가 시련을 극복하게 해주시고 은혜가 만사형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곤고나 적진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냐 죽음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는 안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도 이기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기느냐. 하나님을 찾으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와서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지극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9절의 말씀 보세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렇게 끈끈한 사랑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으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이 은혜를 주셔서 은혜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가 물을 통할 때 주님이 같이 계시고 강을 건널 때 물에 침몰되지 않게 하시고 불을 지날 때 타지 않게 하시고 불꽃이 여러분을 소멸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소유를 삼아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골다 메이어 총리를 여러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1967년 이스라엘 총리로서 연립 내각을 이끌어 이스라엘을 부강케 하는 여자 총리입니다. 메이어 총리 인물이 잘났나요? 못났나요? 세계에서 가장 못난 여자중에 한 사람중에 한 사람이 이 골다 메이어 총리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정말 얼굴이 너무 못생긴 것을 부끄러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고 뭘했느냐 하니까 혼자 피해서 처녀시절에 할 일 없어서 열심히 공부만 했다는 것입니다. 많이 공부를 하고 많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된 것은 자기가 잘났으면 시집가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인데 못났기 때문에 그랬으니 지나고 보니 감사하다. “저는 제 얼굴이 못 생긴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나 못났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기도했고,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나의 이러한 연약함은 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나라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약점과 실망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후에 12년 동안 사람들 모르게 백혈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 더욱 기도하며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육신의 약함은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머물게 하여, 약한 그 때 강하고 은혜가 넘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못났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못난 것을 극복할 만큼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잘났다고 자랑하면 그만큼 은혜가 마이너스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예수를 믿으면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못났으면 주님께서 못난 것을 극복하게 하시고 약하면 약한 것을 강함으로 극복하게 하시고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지혜를 주셔서 기적을 행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못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잘살게 만들어 주시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일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사람을 채용할 때 남다른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빨리 출세한 사람이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채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쉽게 출세한 사람은 독선적이 되기 쉬우며,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존 코터 교수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말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임원 승진 후보자를 선발할 때, ‘큰 실패와 실수를 한 사람은 좋지 않다’고 평가했는데 오늘날은 ‘실패해보지 않은 것이 걱정이다’라고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실패가 오히려 큰 깨우침을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실패와 시련, 고난은 바람과 같아서 배를 전복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배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시는 이와 같아서 가시로 인해 통증을 느끼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잠든 영혼이 눈을 뜨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이 가르쳐주는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바람이 심히 불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지만 바람 따라 더 빨리 달려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완전히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하나님께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받아 큰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우리가 세상에 고난당한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존슨 대통령 말이 옳습니다. 너무 젊어서 성공한 사람 쓰면 큰 낭패가 납니다. 좀 실패도 많이 하고 설움도 많이 겪고 고통 많이 당한 사람을 고용하면 조심하고 남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너무 빨리 출세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경험을 쌓고 출세하는 것을 우리가 좋은 것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수록 육의 장막을 약화시키고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해져야 하나님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화시켜야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입혀지는 것입니다. 깊은 은혜의 삶에는 많은 고난이 함께 따릅니다. 그러나 그 때 고난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품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로 우리는 고난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