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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1. 주일설교 어찌하여 이런 고통이 다가옵니까?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어찌하여 이런 고통이 다가옵니까?” 이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고난에 고난이 겹쳐올 때 그 큰 재난 중에서 우리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이런 고통이 내게 다가옵니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왜 고난에 고난이 다가옵니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어느 자매님이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어린 아기를 얻었습니다. 부부가 너무나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는데 얼마있지 않다가 순식간에 이 아기가 병들어서 그만 천국으로 가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너무나 큰 슬픔 중에서 산부인과의 도움을 얻어서 재차 임신을 했기 때문에 부부가 크게 위로를 받았는데 산부인과에 가서 엑스레이 검사를 해보니까 임신한 어린아이가 불구자에요. 그래서 너무나 절망에 절망에 처해서 저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부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첫 아기를 하나님이 데려가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으로 어린 아기를 다시 임신했는데 불구자가 되어서 자라나게 되었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무슨 일로 이렇습니까? 대답을 좀 해 주십시오.” 그 편지를 받고 저도 망연자실했습니다. 대답할 것이 없어요. 내 마음이 이 편지를 받고 난 다음에 망연자실 했을 때 그들 당사자들의 마음의 슬픔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포도주와 감람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주와 감람유를 어떻게 만드는지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포도주는 먼저 포도를 따서 큰 다랑이에 담아서 발로 밟습니다. 발로 짓밟으면 포도알이 터져서 포도즙이 나와요. 그것을 잘 간직하면 발효해서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즐겨먹고 마시는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또 감람유는 감람나무에 가서 장대로써 감람나무 열매를 쳐서 떨어뜨려서 그를 주워가지고서 맷돌에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구통에 넣고 찧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름이 나오지요. 향기로운 기름이 나오니까 그 기름을 음식 만드는데 조리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향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몸에 바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감람유나 포도주는 모두다 자기를 깨뜨려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도 포도주나 감람유와 같이 향기롭고 즙이 있는 기름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밟고, 터뜨려야 됩니다. 평안하고 안락한 상태 속에서는 포도주와 감람유 같은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향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짓밟히고 깨어지고 터지는 삶의 체험은 우리에게 큰 고통을 주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 속에 변화를 가져오고 인격적인 향기를 나타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저 평탄한 삶을 살 때는 거기에 안주하여 자기를 되돌아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통회하고 자복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마음에 고통스럽고 괴롭게 되면은 왜 이런 일이 내게 다가옵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자기를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원튼 원치 않튼 회개하고 자복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깨어지므로 말미암아 자연적으로 향기로운 신앙의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은 종국적으로 봐서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하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욥의 고난과 욥의 반응 첫째로, 우리가 성경 가운데 하나님이 참 훌륭한 사람이 엄청난 고난을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기를 우스땅의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고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와서 욥을 참소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앞에 은총을 얻은 것은 하나님이 너무나 축복을 해주시고 그를 보호해 주어서 우리가 헤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고난 다가오면 욥도 똑같은 사람인데 하나님을 저주하고 욕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디 시험해 보자고... 마귀가 내려가서 욥을 쳤는데 욥은 하루아침에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욥기 1장 13절로 22절에 보면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를 잃었습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 욥이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서 그는 화닥딱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양이 풀을 먹고 종들이 지키고 있는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가지고서 순식간에 다 태워버리고 자기만 살았으니 보고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혀 있는데 “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이제는 대꾸할 힘도 없었습니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대성통곡을 하면서 당신네 자녀들이 형의 집에서 다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데 바람이 불어서 폭풍우가 불어서 집을 치매 집이 무너져서 바싹 내려 앉아서 다 죽었습니다. 나만 홀로 피했기에 보고하러 왔습니다. 그러니 욥이 당한 환난과 고통이라는 것은 일순간에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하나님 내가 모태에서 빈손들고 발가벗고 나왔으니 또 발가벗고 돌아가는 것도 마땅한 일입니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가지고 간 이도 하나님이시니 범사에 하나님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욥이 극한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원망하지를 않았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에요. 나 같으면 원망했을텐데... 욥은 원망을 안했습니다. 그는 주신 이도 야훼시요 거두신 이도 야훼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마귀가 욥의 이 일을 보고서 너무 놀랬습니다. 당연히 재산을 다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욕하고 물러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감사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보고 마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마귀는 고난당하면 하나님을 반드시 원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있는 것을 빼앗고 고난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또 하나님 앞에 섰기에 하나님이 너의 종 욥을 보았지? 네가 참소해서 이유없이 모든 재산 다 빼앗고 자식들 다 데리고 갔지만 원망하지 않지 않느냐. 그러니까 마귀가 하나님, 아직 남아 있어요. 몸이 건강할 때는 재산 다 잃고 자식을 잃어버려도 원망하지 않지만 몸을 쳐서 병들게 해보십시오. 자기 몸이 아프면 원망 안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목숨은 손대지 말라. 몸을 쳐보라. 허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와서 욥을 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헌데가 나게 했는데 요사이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동양성 문둥병이라고 합니다. 온 몸이 헌데가 나서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잿더미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아주 비참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합니다. 오직 그 아내만 위로할 수 있는데 마귀가 그 아내에게 들어가서 아내가 와서 욥을 보고 아예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갈고 덤벼듭니다. 설상가상입니다. 다 잃어버리고 혼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아내가 와서 너무나 화를 내고 그냥 죽으라고 하니까 보통 사람 말이 아니지요. 마귀가 들어와서 그 아내를 그렇게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욥기 2장 9절로 10절에 보면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 쯤 되었으니 아내도 보따리 싸고 나갈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욥이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오늘날같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복도 주고 화도 하나님을 주셨다고 해야 하는데 사실은 욥이 시험을 당한 것이지 하나님이 일부러 화를 준 것은 아닙니다. 마귀가 화를 주는데 하나님이 허락했을 따름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욥의 친구들이 왔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는 세 절친한 친구가 위로하러 왔다가 욥의 상황을 보고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위로를 해주지 않고 욥에게 온갖 참소를 했습니다. 네가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에 이런 환난을 당했지 잘못없이 환난 당할 수 있느냐. 그러므로 회개하라! 있는 죄 없는 죄를 다 들춰내고 욥을 벗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고통과 괴로운데 친구들이 와서 위로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들이 큰 고통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당할 때 친구들이 와서 주는 한마디 위로의 말이 굉장히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 환난 당할 때 친구들이 와서 위로해 주는 것보다는 비난할 때가 많습니다. 욥은 그 비난을 받고 그는 탄식을 했습니다. 욥기 3장 26절에 보면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내 무서워하던 것이 내게 오고 내 두려워하는 것이 내 몸이 미쳤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욥은 보통 성자가 아니에요. 그 친구들을 욕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복주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라고 한 그 말씀 그대로 친구를 욕하지 아니하고 저주하지 아니하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욥기 42장 10절로 17절에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야훼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야훼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시험 당할 것 다 당했지요?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식들 다 죽고 온 몸 병들고 사랑하는 아내가 배반하고 떠나고 친구들조차 와서 자기에게 와서 욕하는데 욥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친구들조차도 욕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친구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축복 받으라고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감동 안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욥의 모든 고통을 순식간에 다 옮겨 주신 것입니다.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야훼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그리고 난 다음 “야훼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배나 받은 것입니다.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렇게 욕을 하고 나간 마누라도 들어와서 자식은 잘 낳았어요.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성경에 이렇게 아리따웠다고 찬탄을 하는 것을 보면 굉장한 미녀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그 환난과 고난 이후에 140년을 살았으니까 대단히 오래산 사람입니다. 아들 딸 4대를 보았고 욥이 늙어서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고 했습니다. 욥은 엄청난 고통을 당했지만 욥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을 우리가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처럼 그렇게 거룩한 사람도 성자도 훌륭한 사람도 아니지만 그러나 시험을 당할 때 욥의 모범을 쫓아서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고난 가운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첫째,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했습니다. 좌우간 자기는 지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고난당하니까 고난당할 때는 회개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너희 죄 고난 당하는 이가 있느냐. 회개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께 엎드려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펴보면 회개 안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때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주 앞에 엎드려서 회개하면 모두 다 회개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욥은 회개를 했습니다. 욥기 42장 6절에서 욥은“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순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어려움 가운데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도 가져가실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얻을지어다. 내가 빈손들고 왔다가 빈손들고 가는 것 마땅하지 않느냐. 단순하게 생각했지 복잡하게 이론적으로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2장 3절에 “야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전한 믿음, 단순한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셋째로, 욥은 끝까지 인내를 했습니다. 중간에 낙심해서 인생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인내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넷째,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재산 다 잃어버리고 온 전신에 종기가 나서 잿더미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아내가 저주하고 떠났으며 친구들이 와서 다 비난하고 공격했으며 어느 곳에 돌이켜 의지할 곳이 없는 그 처지에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원망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욥에게 정말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욥기 1장 22절에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욥과 같이 회개하고 순전한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정금보다 귀한 믿음을 가지며 하나님께 더 큰 은혜와 복을 받는 위대한 승리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것입니다. 2. 약하기 때문에 둘째로, 우리가 왜 고난에 고난을 당하느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인간이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서 복을 주신 것은 우리가 잘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못났기 때문에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강하기 때문에 택한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택한 것입니다. 의인이기 때문에 택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중국 내지 선교의 문을 연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비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친구가 그를 한껏 칭찬했습니다. “자네 참 훌륭하다. 어떻게 해서 이처럼 중국의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와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며 가르쳐 훌륭한 성도들을 만들었는가?”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뒤져서 가장 무능력하고 약한 사람을 찾았다. 그 약한 사람을 찾아내고 보니 그 약한 사람이 나였다. 하나님은 가장 약한 사람인 나를 가장 어려운 중국 내지로 보내어 많은 은혜를 주셔서 이렇게 큰 성공적인 일을 이루게 하셨다.”고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약하다고 낙심하지 말 것은 약할 때 강할 수가 있습니다. 그릇이 비어야 채울 수가 있는 것처럼 약할 때 하나님의 강한 힘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자기 스스로가 무능력하고 연약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을 이루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똑똑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무능을 깨닫게 하시려고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약하고 무능한 사람은 주님께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일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강해지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올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꺾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약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강하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김장환 목사님의 부인인 트루디 스티븐스 여사는 꽃 피게 하십시오 라는 책을 지었는데 지난 55년 동안 한국인으로 살며 하나님을 섬기던 이야기를 「심겨진 그곳에 꽃 피게 하십시오」라는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책에 보면, 트루디 사모가 2006년 미국 고향에 갔을 때 다발성 골수종 암 3기가 발견 되었습니다. 의사로부터 3기암이라고 들었을 때 “어? 암이라고 말하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치료하는 과정에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수술후에 척추 일부를 잘라냈기 때문에, 퇴원 후에는 완전히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발도 못 움직이는데 걸음마부터 한발자국 두발자국 그는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평소 아무렇지 않게 했던 행동들을 처음부터 다시 알게 해 주시고, 새 마음을 주셔 자기를 낮춰주신다고 감사했습니다. 평소에 걸음 걸을 때 다 걸으니까 나도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척추가 부상을 입고 걸음을 못 걷다가 한발자국 두발자국 걷게 하니까 너무나 감사하고 걸을 때마다 하나님 걷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발을 띄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평소에 잘 걸을 때 감사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그런 큰 감사와 변화를 자기에게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얼마 후, 몸이 회복되어 산책을 하는데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오더랍니다. “만약 네게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나와 이렇게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느냐. 네가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적은 일에도 내게 감사하고 나와 대화할 수 있게 되었지 않느냐. 이런 작은 일에도 감사할 마음이 들었느냐. 네가 지금보다 온유해질 수 있었겠느냐. 네가 아파할 때 나 역시 십자가를 지며 걸었고, 네가 고통 속에서 울 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성령이 그렇게 말해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고 그 책에 기록했습니다. 고난은 우리와 주님을 더욱 가깝게 해 주어 주님의 사랑 안에 더 큰 은혜와 행복을 얻게 한다고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고난 받을 때 비로소 우리의 건강할 때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달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걸어다니는 것을 보통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뭐 다 일어나 걸어다니는데... 걸어다니는 것이 뭘 감사하느냐? 그러나 못 걸어다니다가 다기 걷게 되면 한발자국 한발자국 걷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 셋째로, 왜 고난 당하는지 우리가 그 조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고난당하게 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몇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그 교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무조건적이냐 조건적이냐를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 조건부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 건강하게 되면 믿겠습니다. 돈을 주면 믿겠습니다. 하나님 행복해지면 믿겠습니다. 조건부로 믿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사랑,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조건을 달지 않았습니다. 조건을 다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 원하지 않는데 조건 안 달았어요. 그가 100세에 난 아들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귀여운 아들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와서 잡아서 각을 떠서 장작불에 태워 내게 재물로 드려라.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그가 조건을 세웠습니까? 하나님 줘놓고 왜 빼앗아 갑니까? 하나님이 100세에 준 아들을 이렇게 죽이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말한마디 안했습니다. 아내하고 의논도 안했습니다. 그 아들을 데리고 사흘길을 걸어가서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장작불을 펼쳐놓고 그를 묶어서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내게 내오는 것을 보니 정말 네가 나를 사랑한 줄 내가 알았다. 이제 정말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실 때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다스릴 때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조건부로 사랑하느냐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험 안하는 것 같지만 고난을 통해서 시험을 해보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험에 낙제하면 또다시 합격할 때까지 시험을 계속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무조건 적이냐 조건적이냐를 시험하기 위해서 고난이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은 우리 개인 고집의 신발을 벗기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룻기에 보면 소유권을 포기할 때 신발을 벗어 던집니다. 내가 당신에게 내 모든 소유를 다 전달합니다 할 때 내 신발을 벗어 던지면 소유권 포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말했고 여호수아에게도 신발을 벗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올 때 여러분 인생의 소유권을 벗어서 던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 개인이 이것하겠다 저것하겠다는 선택의 자유권도 다 하나님께 던져버리고 완전히 종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주인은 신을 신어도 종은 신발을 벗고 다닌 것입니다. 종은 주인 시키는 데로 하는 것이 종 아닙니까? 절대복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룻기에 보면은 이방의 여인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한 말을 보면 그 충성심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가져야 돼요.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야훼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 1:16~17) 이방인 며느리 룻이 유대인 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고백이 이 성경에 잘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이렇게 믿어야 돼요. 하나님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하나님 계신 곳에 나도 있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에 나도 일하고 하나님이 죽으라는 곳에 나도 죽겠습니다. 이런 충성심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축복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강인한 믿음을 얻기 위한 훈련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해야 고난을 당해야 믿음의 근육이 생기는 것입니다. 의사들이 제가 병원에 가서 보면 나보고 근육 운동을 자꾸 하라고 합니다. 나이 늙으면 근육에 힘이 없어지면 저항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아령도 들고 역기도 들고 근육운동을 하라고 합니다. 그 근육운동을 하면 몸에 힘이 붙어요. 제가 이번에 필리핀에서 선교사하고 악수를 하니까 선교사가 아~ 아이 목사님 팔씨름해도 나를 이기겠네요. 왜 그러냐니까 왠 손아귀에 힘이 그렇게 많습니까? 근육운동을 하니까 손아귀에도 힘이 생겨요. 그와 같이 여러분의 신앙의 근육에 힘이 있어야 마귀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신앙에 힘을 얻기 위해서는 시련을 겪고 고난을 통해야 신앙의 근육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9절로 10절에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고 굳건하게 만들고 강하게 만들고 터를 견고하게 만드는 신앙의 근육이 생기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교만을 버리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습니까? 내가 강하면 내 강함을 의지하지만 약할 때는 매달리지 않습니까? 자식들도 강한 자식들은 부모에게 매달리지 않지만 사지가 말짱하지 못하고 고난 중에 있는 자식은 부모에게 매달립니다. 부모에게 매달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가 약할 때 주님께 기도하고 매달리지 내가 강하면 주님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10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선생은 자기 생활 속에 약한 것들을 능욕을 당하고 궁핍하고 핍박을 당하고 곤고를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그 가운데 자기가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 날 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고 하나님 옷자락을 붙잡고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약한 것이 오히려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게 만들어 주시니 감사하다고.. 주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약할 그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게 되고 약할 때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큰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요사이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지금 93살이 되었는데 파킨슨병을 오랫동안 앓아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그의 고백이 나는 강한 줄 알았는데 그가 한평생 약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부흥회를 하면서 수만 수십만 군중을 모시고 말씀을 전할 때 쓰러지지 않으려고 무수히 애를 쓰고 약해서 과연 내가 이 부흥회를 얼마나 오래 계속할 수 있을까? 의심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주님께서 그를 붙들어 주었는데 그의 가족 중에 70을 산 사람이 없는데 자기 혼자만 93살을 살고 있다고... 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이 붙들어 주어서 강하게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 사업을 하게 했다는 그 고백을 읽고 제가 마음의 위를 퍽 많이 얻었습니다. 여러분, 약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약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게 만들어 주시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고 핍박을 당해도 버림받지 않게 해주시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죽음을 당할 때 생명의 역사로써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고통당하는 것은 불순종의 죄에 대해서 징계할 때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할 때 회개시키려고 채찍을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로 11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후에 거룩하고 의롭고 평강한 사람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징계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학교에 학생들 채찍질하지 못하게 하므로 교사들이 학생 가르치기가 그렇게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올 때 이만한 몽둥이 하나 들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몽둥이만 봐도 벌벌 떨리거든. 잘못하면 벌을 서게 되고 엉덩이에 몽둥이로 얻어맞고 해서 정신을 바짝 차렸는데 요사이는 그런 징계를 못하게 하고 오히려 학생이 선생을 때려가지고서 선생이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이런 현상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되면은 교육이 안돼지요. 잘못하면 채찍도 맞아야 되고 꾸중도 들어야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훗날 돌아보면 자기를 때려주고 욕해주던 선생님이 가장 자기를 사랑한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대개 고난을 당할 때 엎친데 덮치고 설상가상이 되고 천지가 아득할 때가 많습니다. 이유를 물론하고 고난당할 때 왜 고난당하는지 그 내용을 스스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오직 주님은 가장 선하신 하나님으로 결과가 반드시 선하게 될 것을 믿고 참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이를 깨물고 주먹을 잔뜩 쥐고 참고 결과에 가서 좋게 될 것을 감사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며 참고 회개하고 헌신하고 기다리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면 여러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서 가장 빨리 해방될 수 있는 것은 고난 중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하고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게 될 때 고난은 물러가고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 하나님이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생자를 누가 징계합니까? 친자식은 징계하지 않을 부모가 없잖아요. 하나님이 여러분 친자식이기 때문에 징계하므로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 안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했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러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이사야서 43장에 보면 너가 물을 지날 때 내가 같이하고 강을 건널 때 강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하게 하고 불을 통할 때 불이 너를 태우지 못하게 하고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게 하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고난당할 때 왜 고난당하는지 질문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이유가 없는데 왜 고난을 당하나 탄식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이 계셔서 우리를 더 나은 내일을 허락하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줄 알고 있으므로 아버지여 우리가 원망과 탄식하지 말고 욥 같이 감사하고 찬미하며 인내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