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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8. 주일설교 삼중축복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삼중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경험하는 고난과 예수님 안에서 주신 생명의 언약을 알면 담대한 믿음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는 것을 알고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와 계신 줄 알면 우리는 마음에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대 인간관에 영향을 끼친 세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다윈의 진화론적 인간관계입니다. 다윈은 인간이란 고등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아메바에서 진화한 존재라고 그렇게 말하는 인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심리학의 프로이드인데 인간관은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하며,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성적인 충동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성적충동에 의해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산업 무엇이든지 하는 존재다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막스는 유물론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혼이 없으며, 삶은 경제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알고 그 정체성을 믿는 그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내가 하나님을 알아야 내가 누군지 알지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시편 8편 5절로 6절에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우리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정신이 아찔합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었다는 것입니다.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하나님이 지은 만물을 사람 발 아래 두시고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는 대리권 행사를 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져서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행자임을 명확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항을 확실히 알아야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 앞에 내가 누군가를 알아야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이겨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레드우드라고 높이가 100미터로 높고 천년을 사는 나무가 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폭풍우가 불어오고 비바람이 치면 뿌리가 뽑히고 부러지고 그런데 레드우드는 그 장장한 세월 동안에 모든 비바람을 다 이기고 수많은 지진을 견뎌내고 천년을 삽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어떻게 이 나무가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찾아보기 위해서 뿌리를 캐보니까 그 뿌리가 땅 밑으로 깊이 깊이 깊이 들어갔는데 나중에 땅 밑에 어디까지 갔느냐면 큰 바위를 찾아가서 뿌리가 바위를 안고 있어요. 바위를 탁 안고 있습니다. 위에서 아무리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바위를 안고 있으니까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풍파가 없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다 풍파가 불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것은 우리 가슴속에 반석을 끌어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진흙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 많습니다. 진흙은 바람이 불면 형편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지위, 명예, 권세, 돈, 세상의 영화는 다 진흙입니다. 만세반석되시는 예수님이 마음속에 와서 계시면 성경에 뭐라고 말합니까?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심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 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왜, 반석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반석은 무너질 법이 없습니다. 이 반석은 풍랑을 이기는 반석이요, 폭우를 가리우는 반석이요, 마른 땅에 냇물같은 반석이요, 곤비한 땅에 그늘을 주는 반석,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반석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우리가 자세히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 첫째,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최고의 걸작품인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같지 않습니다. 동물에서 진화되어 나와서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 나왔다고 하는 그런 진화론자와 같이 우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분명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가 알려면 형상과 모양인 여러분 자신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처럼 만들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걸작품입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에라 까짓것 될대로 되라. 살든지 죽든지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자기를 비하해서 말하거나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을뿐 아니라 땅위에 있는 것을 다스리는 대행자인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우리 사람이 만물을 다스렸어요. 지금 타락한 이 시점에도 우리가 지구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있지 않습니까?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두가지 사항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여러분과 나는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운명과 환경에 지배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운명과 환경을 정복하고 다스려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근본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은 왜 이모양입니까?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도전하는 범죄와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형벌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난 다음에 동산 모든 실과는 다 먹어라. 에덴의 낙원이 너희 집이다. 지구상에 너보다 위대한 존재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그것 왜 그렇습니까? 선악이라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주권행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주권행사는 하나님만 하신다. 너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믿고 순종하고 따라야 된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부부간에 서로 한마음 한뜻으로 살지만은 종국적에 가서는 누가 결정하든 결정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데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강남으로 이사를 가서 사는 것이 좋다고 남편은 생각하는데 부인이 강북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으로 가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좋다 나쁘다가 갈라졌습니다. 남편은 강남으로 가는 것이 좋고 강북에 있는 것이 나쁘다. 아내는 강북에 있는 것이 좋고 강남으로 가는 것이 나쁘다. 선택의 주권이 남편과 아내가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나중에 화해가 안되고 타협이 안되면 갈라서는 것입니다. 주권행사란 두사람이 똑같이 행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북한과 남한이 갈라져 있는데 북한의 정권과 남한의 정권이 다릅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북한과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갈라져 있지요. 대결하지요. 한번 싸웠죠. 하나님께서 사람을 너무나 위대하게 지으셨고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권을 주신 이상은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권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선악과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와서 꾄 것입니다. 하와에게 이 선악과를 먹으면 너도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해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된다. 하나님과 어깨를 겨누고 살 수 있다. 그래서 하와가 그 선악과를 보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럽기도 한지라 손을 내밀어서 따먹었습니다. 자기도 먹고 남편에게도 줘서 먹고 둘이가 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했습니다. 먹지말라고 한 것 먹었으니까. 하지말라는 짓 했으니까 하나님과 대항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들이 받은 형벌이 무엇입니까? 영혼이 죽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영혼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겠다. 그렇게 아름답던 에덴동산을 중심으로 한 우리 지구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황폐해지고 이것을 개간해 먹고 살게 되어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흙으로 돌아가면 곱게 돌아가는 것입니까? 몸이 흙으로 돌아가자니까 온갖 병이 다 들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하고 결국 몸이 무너지고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죄악, 정죄에 짓눌리고 인간 삶에 허무와 무의미에 짓밟히고 죽음과 무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살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참 절망적인 선언 아닌 것입니까?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해서 영혼도 죽고 범사에 저주를 받고 흙으로 돌아가 사라지게 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이 마귀가 하는 일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 그 도적이 누구냐? 마귀가 우주의 도적인 것입니다. 마귀는 왜 마귀냐. 마귀는 원래 루시퍼라고 천사장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 받은 아름다운 천사장이었는데 자기의 아름다움에 도취해서 하나님과 동등되려고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고 하나님께 도전하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하나님과 똑같이 하늘보좌를 깔고 하나님과 똑같이 통치권을 행사하겠다고 해서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인 것입니다. 하늘천사 3분의 1를 데리고 쫓겨난 것이 오늘날 사탄이요 마귀인 것입니다. 2. 마귀가 하는 일 그런데 그 마귀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직접 대항해서 훼방은 못합니다. 하나님과 마귀가 어떻게 도전을 합니까? 하나님은 창조주고 마귀는 피조물인데... 그러니까 하나님께 제일 가슴 아픈 것은 하나님과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가슴에 고통을 줄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 어찌하든지 고통을 주기 위해서 마귀는 간접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욥기에서 보면 그 마귀가 어떻게 인간 속에 행동하는 가를 표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범사를 도적질하는 마귀인데 욥기 1장 6절로 11절에 보면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야훼 앞에 섰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인 것입니다.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야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야훼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하나님은 순식간에 온 세상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시에 와 있지만 마귀는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마귀는 하나님과 똑같지 않습니다.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한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야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야훼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보십시오. 하나님을 격동해서 욥이 의미없이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기 때문에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 보호와 축복을 거둬버리면 하나님을 대항하여 반드시 욕한다. 그 축복을 한번 거두어 보시라고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성경 욥기는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욥의 이야기인데 연결된 것입니다. 욥은 고난과 시련을 받아서 고통을 당할 때도 마귀가 원하는 대로 굴복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어떠한 고난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모범적인 성도인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은 사실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며 배신하게 만들기 위하여 다섯 번 큰 시험을 했습니다. 첫째는, 하루아침에 수많은 양떼와 말과 짐승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웃나라 도적들이 침범해 들어와서 종들을 죽이고 짐승들을 다 빼앗았습니다. 순식간에 재산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 둘째는, 그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런 열 자녀가 마침 집에서 함께 잔치를 베푸는데 바람이 불어와서 집을 때려 치매 집이 무너졌습니다. 전부 다 깔려서 죽었어요. 순식간에 자식 10명이 다 죽었습니다. 셋째는, 욥을 쳐서 온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어요. 몸에 전부다 진이 나는 종기가 생겨서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어요. 옷을 벗고 잿더미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넷째, 그 꼬락서니를 본 욥의 아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재산 다 잃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식 다 죽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온 몸에 병들어서 기왓장으로 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욕하지 아니하고 감사합니다. 그 아내가 가만 보니까 이 사람 종교적으로 미쳤다. 미쳐. 정신빠진 사람 아닌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어라 죽어! 능히 그렇게 할만합니다. 욥의 처를 약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이 살다가 이렇게 비참한 일을 당했는데 계속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통 중에도 감사합니다 하니까 정신이 해까닥할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다섯째로는, 가장 절친한 세 친구가 위로하러 와서 위로는 커녕 욥에게 비평하고 평론했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의 위로가 굉장히 힘이 되는데 위로 대신에 평론을 하고 잘못을 지적하려고 애를 써서 욥이 굉장히 곤혹스럽고 괴로웠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어찌하든지 마귀는 욥으로 하여금 굴복하고 하나님 욕을 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기를 원했으나 욥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욥에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 찾아와 사고와 재난, 질병과 사업 실패 등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게 만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미 타락해서 죄의 노예가 되고 허물의 노예가 되고 질병의 노예가 되고 저주와 가난과 고통의 노예가 되고 죽음과 멸망의 노예가 되는데 마귀는 이 타락한 열매를 가지고서 증폭시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절대 마귀는 여러분에게 좋은 일 안합니다. 나쁜 마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동기에서라도 여러분을 나쁘게 하지 않습니다. 좋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유해서 말씀하기를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주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이해할 때 좋은 하나님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시편 23편 마지막에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히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평생에 나에게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이다. 좋은 하나님, 자비로운 하나님. 나쁜 하나님이 아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떠한 역경에도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께서 시편 23편에 다윗에게 계시해 주었거니와 이사야 41장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같이 있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굳세게 만들어 주겠다 참으로 내가 너를 붙들어 주겠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가 항상 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가지고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셋째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마지막 아담으로 다음은 다시 아담이 없습니다. 마지막 아담. 왜 아담이라 하느냐. 인간의 조상이기 때문에 첫 아담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왔으니 마지막 아담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람이 대속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지은 죄를 사람이 대속해야지 하나님이 대신 대속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사망의 빚을 짊어질 것을 이사야 53장은 예수님 탄생 7백년전에 이렇게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그에게 담당시켰다. 김진태씨의 간증을 제가 전번 주일 설교때 한것처럼 아버지를 죽인 사형수인데 사형받기 며칠전에 밤에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그가 사형을 받으러 형틀이 있는 곳에 끌려 나갔는데 그곳에 줄이 달려있고 옥살이가 덜렁덜렁 한데 그곳에 자기가 목을 넣어 잡아 당기면 그로써 목이 졸려서 죽는데 자기를 밀어내고 다른 사람이 목을 탁 대니까 줄이 하늘로 끌려 올려가니까 목이 달려서 막 침을 흘리고 눈이 물이 척척 떨어지면서 발버둥을 치고 죽어 가는데 그 등 뒤에 보니까 김진태라고 써놓았어요. 자기는 분명히 아닌데... 얼굴을 보니까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이 자기 위해서 옥살이 목에 감겨서 하늘로 끌려 올라가 죽는 것을 보고 꿈에서 깨어나서 사흘 동안 그는 감옥에서 울고 또 울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고 몸부림치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변화 받아 새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부터 10년 동안에 그는 6백 명의 죄수들을 예수께로 인도했습니다. 지금은 감형을 받아서 종신 징역 형도를 받고 있지만 이와 같이 자기가 죽을 옥살이를 예수님이 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죽을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가서 목을 매었다는 것입니다. 환상적인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상적인 이야기도 아닌 것입니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나를 구출하기 위해서 우리 형벌을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깊이 생각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구원과 성령충만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지 않고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 생각하기를 나 같은 죄인을 주님께서 살펴 주실까요? 나같이 허물 많은 사람을 누가 살펴 주겠습니까? 주님께서 어떻게 나를 찾아오시겠습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가 있느니라. 건강한 사람이 무슨 의사가 소용 있습니까? 여기 참석한 성도 중에 의사 선생님 미안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의사 선생님이 필요 없어요. 그러나 병든 자에게는 의사선생님이 있어야 돼요. 절실히 필요해요.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다. 잘 가는 사람, 계명을 잘 지키고 깨끗한 사람 내가 뭐하려고 부르러왔냐.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러 왔기 때문에 주님은 죄인 있는 자리에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깡패 소굴에 들어가요. 마약소굴에 들어가요. 창녀촌에 들어가세요. 왜, 주님이 어떻게 그런데 가느냐. 그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죄인 있는 곳에 주님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이 효과가 있고 추움이 있는 곳에 더위가 효과가 있고 배고픈 자에게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죄인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휴 나는 죄가 많기 때문에 주님이 나 같은 사람 돌보지 않을 것이다. 죄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죄 없으면 찾아올 필요 없어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이랬던 여러분 영혼을 주님께서 와서 찾아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 자리에 앉은 것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와서 여러분의 죄를 대신 끌어안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엄청난 사랑인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냥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상속자가 되게 하셨다. 주님께서 주시는 상속자가 되어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그냥 내버려 놓은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면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서 천국을 보고 알게 하고 깨닫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성령을 받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범사에 저주에서 해방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해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가지고 온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저주, 저주 때문에 하는 일이 다 안되거든요. 집안도 잘되지 않고 어지러운 것은 저주가 따라온 것이고 사업도 그렇고 생활도 그렇고 이 저주를 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부자 중에 부자지요. 그런데 그것 다 벗어버리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얻어 잡수시고 노천에서 주무시고 산에서 밤을 새시고 왜 그랬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하기를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이 나 때문에 가난을 자원하셨다. 그 결과는 나를 부요케 하려 하심이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철저히 저주를 청산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저주는 효과가 없어요. 여러분이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짐승을 기르면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예수님 안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이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저주와 상관이 없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청산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다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질병을 대속하시고 건강과 장수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했는데 흙으로 돌아갈 때 병들어서 몸부림치고 고통하고 죽는 것을 주님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장수하므로 만족케 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여러분 자신을 볼 때 이제는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행태로써 우리를 고통을 가하여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치료를 받고 건강하여 평안하게 살다가 기쁘게 주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장수해야 돼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장수해야 돼요. 원치 않는데 오래 살라는 말은 안합니다. 50만 살고 싶으면 50만 사세요. 70 살고 싶으면 70 살고 나는 90까지 살께. 기왕 그럴 바에야 내 설교 듣는 여러분 나와 함께 90까지 사십시다. 내가 장수하므로 저로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에 내 원한은 나에게 도달하기 전에 병들어 죽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병이 오면 대적해야 돼요. 도적이 오면 쫓아내야지요.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원수 질병은 내 몸을 떠날지어다. 나는 너를 극복한다. 나는 너를 물리친다. 물러가라! 물리쳐야지요. 4. 우리가 해야 할 일 넷째로,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정초에 해야 될 일은 진리를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진리가 뭡니까?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놓아 주시고 질병에서 대속해 주셨다. 우리는 삼중축복을 받은 사람, 전인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요. 이것이 우리의 반석입니다. 이 반석에 우리가 뿌리를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끌어안아야 돼요.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는 이 진리를 끌어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끌어안아야 돼요. 힘차게 끌어안아야 돼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말아야 돼요. 이 진리는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진리에 믿음을 두어야 돼요. 알아야 돼요. 모르면 안돼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다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여 넘어지고 타락하는 이유는 가슴속에 반석을 끌어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폭풍우가 불면 부러지고 뿌리가 뽑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확 껴안고 있어야 돼요.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것이 예수님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꿈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내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믿음을 가지고 끌어안아야 돼요. 절대로 놓치면 안돼요. 제가 오늘 이 설교하는 것은 정초에 1년을 살 동안에 다가올 어떠한 풍랑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끌어안고 있으면 승리한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진리를 확실히 알고 참된 자기 모습을 거울 보듯 상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모습은 초라하고 형편없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며 내 환경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써 이 땅에 사는 것입니다. 나를 비하하지 마십시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는데 여러분이 뭘 바라느냐.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그 모습을 여러분도 바라고 그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전인구원을 확실히 믿고서 침노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타협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학자들이 우리가 신앙을 물질위주로 한다고 자꾸 공격을 하는데 물질이 우리의 신앙중심이 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서 우리가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져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지 내 뿌리가 뽑혀서 흔들흔들 하는데 누구를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까? 영혼이 잘되야 남 잘되기 위해서 기도해 줄 수도 있고 범사가 잘돼야 가지고 있는 것 나눌 수 있고 내가 건강해야 하나님 사업도 활달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고 우리 신앙은 말씀에 뿌리를 둬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2)고 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이 믿음을 가지고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나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원하셨으니 그대로 해주시옵소서.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찢고 피흘려서 죄를 사하시고 몸 찢고 피 흘려서 저주를 사하시고 몸찢고 피흘려서 질병을 도말하셨으니 주님이시여 주의 피흘린 대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믿습니다. 그렇게 힘차게 믿음으로 붙잡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입술로써 부인하면 안됩니다. 입으로써 늘 긍정적인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입술로써 이 말씀을 단순한 말씀을 고백하십시오. <결론> 저는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내 자신을 꿈꾸어 보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내 자신을 거울을 들여다보면 조용기 너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신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이를 위해서 고난 당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다. 말로써 묶어야 돼요. 그러면 하늘에서 묶여요. 말로써 풀어 버리면 하늘에서도 풀려요. 여러분의 입술의 고백이나 말을 통해서 여러분의 환경과 운명을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 입술의 고백으로 여러분의 천지를 지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의 말씀이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 말씀으로 되었고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보이는 이 강대상 있지 않습니까? 강대상은 플라스틱유리로 되어있는데 자기 스스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 아닙니다. 이 원료는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있으라고 했으니 있은 것입니다. 그것을 이렇게 형태를 사람들이 만든 것이지 있는 그것이 저절로 물질로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이 교회 건물 있지 않습니까? 건물이 우리 한 8천명이나 만명 들어가는 건물되자고 모여서 뚝딱거려서 된 것 아닙니다. 이 건물 뒤에는 설계하는 사람이 눈에 안보이는 건물을 보이듯이 종이에 설계를 해놓고 그 설계를 따라서 지은 것이 눈에 보이는 건물이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그 자체는 보이는 그 자체로써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배후에 하나님 말씀이 있어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천지를 지으실 뿐 아니라 천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 것이요, 건강도 다스리는 것이요, 생명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에 그대로 두면 역사하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입술에서 나오셔서 누구를 통해서 일하느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내버려 놓으면 공중에 떠다니면서 일할 것이라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여러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안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안보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말씀이 들어와서 여러분을 통해서 이 말씀이 밖으로 나가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무엇으로 이루어졌습니까? 마음 본적 있어요? 한번 마음 한번 내어 보여 주십시오. 네 마음 볼 수 없고 내 마음 나도 몰라. 마음을 보여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음을 무엇으로 보느냐. 생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어떠하면 마음이 그러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이 꿈꾸는 것이 뭔지를 보면은 바라는 그것을 통해서 아~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구나. 그 다음 믿는 것을 보아서 여러분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는지 그것을 보면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재판관이 좌경화된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은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거든요.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가 믿는 바를 글로 올렸으니까. 그것을 읽으면 그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바를 보면 뭘 믿는가를 보면 마음이 어떤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무슨 마음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거짓말하는 사람 있지만... 거짓말을 하면 우리가 저 사람 거짓말쟁이구나. 참말하는 것 같으면 저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구나. 말을 통해서 그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꿈꾸느냐. 무엇을 믿느냐. 무엇을 말하는가를 통해서 내가 누군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생각에다 담아 놓고 말씀을 통하여 꿈을 꾸고 말씀을 통해서 믿고 말씀을 통해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말을 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는 이 전인구원을 1년 내내 마음속에 꽉 잡고 가기 위해서 이것은 눈에 안보이지만 여러분 마음속에 간직하기 위해서 여러분 생각에 이 말씀을 꽉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까? 하나님 말씀을 성경에 그대로 두어서는 아무 역사가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생각이 채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나 깨나 여러분 생각 속에 나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사람이다. 그 다음 여러분 바라는 것이 뭡니까? 1년 내내 바라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꿈인데 못되기를 바랍니까? 병들기를 바랍니까? 망하기를 바랍니까? 아니지요?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지요. 범사에 잘되기를 바라지요. 강건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여러분 바라는 것을 늘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직 눈에 안보이는 것을 상상할 때가 늘 있습니다. 늘 일어날 것을 상상하지요. 눈 감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잠자리에 들어가서 잠이 안올 때 하나님의 축복된 말씀을 상상하면 잠 잘와요. 그러므로 내가 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 내 모습을 상상합니다. 상상 속에 꿈속에 이 말씀을 채워 놓아라. 그 다음에는 믿음 속에 이것을 채워 놓아라.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말씀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했으니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지 뿌리 없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믿느냐.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말라. 뭘 잊지말랍니까?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내 마음의 소원을 만족케 하사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해주시는 이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믿을 이유가 있어요. 엉터리를 믿는 것 아닙니다. 거짓말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참말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신지라 식언하지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으십니다. 그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남녀 노유 빈부 귀천할 것 없이 이 말씀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말씀을 내 입술에 채워 놓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경기가 나쁘고 경제가 어렵고 구라파 경제가 흔들리고 우리나라의 경제가 흔들린다 해도 나는 그것은 모르겠다. 나는 말씀을 안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말씀을 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이 운행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조적 능력을 나는 알 수 있다. 그 능력을 나는 말한다. 그 능력이 뭐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했으므로 나는 영혼이 잘된다. 잔소리 말아라. 범사에 잘된다 나는. 장사가 안되도 나는 잘된다. 사업이 안된다고 해도 나는 사업이 잘된다. 나는 잘될 것을 확실히 믿는다. 나는 건강하다. 야 건강하기는 뭐가 건강해. 소화도 안되고 요새 껄껄 하는데... 잔소리 말아라. 그것은 내 실상이 아니다. 내 실상은 건강이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튼튼하다. 마귀가 와서 너 암 걸린다. 암 걸린다. 너나 걸려라. 나는 안걸린다. 나는 걸려도 낫고 나아도 낫는다. 왜냐하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했다. 나는 전인구원을 가지고 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전인구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레드우드처럼 반석을 끌어안은 뿌리처럼 여러분 마음에 탁 끌어안으십시오. 이것만이 안 움직입니다. 다른 것은 다 움직여요.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있다가 없어지고 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환경을 따라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안 변하는 것이 말씀은 안 변화됩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끌어안으라고요. 그리고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믿고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라구요. 그냥 아멘만 하지말고 꼭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 여러분 승리합니다.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나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남처럼 그렇게 신령하지도 못하고 죄가 많고 내가 봐도 나쁜 놈인데 하나님이 날 돌보아주시겠느냐. 나쁜 놈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죄가 많기 때문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못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와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해석을 잘못했습니다. 나는 거룩해야 하나님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다. 나는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경상도 말로 파이다. 파이. 나는 안된다. 그래서 자기를 비하해 버리고 낙심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마귀의 짓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잘되면 오냐, 너 잘되니 참 고맙다. 안 되는 동생들 내가 찾아가야 되겠다. 하나님은 많은 자식을 거느린 부모와 같아서 잘되는 자식 찾아가지 않고 못되는 자식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비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일단 하나님이 부르셨으면 원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셔서 여러분을 구원받게 하셨지 쓸데없는 여러분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구원했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물을 지날 때 내가 같이 하며 강을 건너갈 때 강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하게 하며 불을 지날 때 타지 못하게 하고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게 할 것이라. 보십시오. 여러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뭐 세상에 사업하다가 사망합니까? 죄도 사망이요, 불의도 사망이요, 추악도 사망이요, 흑암도 사망이요, 아편쟁이도 사망이요, 술주정뱅이도 사망이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 때 주님이 아~ 나쁜 놈 저 놈은 내가 버려야겠다고 했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 때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지나는 사람 찾아와서 십자가의 지팡이와 멍에를 가지고서 끝까지 따라 붙이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주님께서 아이고 나는 모르겠다고서 떠나가시나요? 원수가 와서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덤벼들 때 원수의 목전에서 원수가 보는 앞에서 진수성찬 차리는 것입니다. 풍로 갖다 놓고 냄비 갖다 놓고 맛있는 음식 차려서 먹어라. 힘을 얻어라. 원수하고 한 펀치 먹여라! 먹어! 잘해! 먹어! 그래서 성령 기름 부어 주셔서 힘을 얻어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여러분과 나의 생활 속에 밀착해서 같이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동떨어진 성자들만 모인 곳에 오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죄의 소굴에 와서 의의 처소로 만들어 버리시고 절망의 소굴에 오셔서 희망이 꽉 들어찬 처소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죽음 있는 곳에 오셔서 생명의 동산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름다운 하나님 저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 허물이 있고 죄악이 있는 곳에 주님 와 계신 것입니다. 저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답답하고 고통스럽고 징계를 당할 때 주님 같이 계시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 주님께서는 병든 자에게 와서 채찍에 맞은 공로로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새날을 맞이해서 마음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고 흐트러져 있으면 마귀가 욥을 시험하듯이 여러분 끝까지 시험하는 것인데 복잡하게 하지 말고 안 보이는 말씀이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나타나기 위해서 생각과 꿈과 믿음 고백을 말씀으로 채워 놓으면 여러분은 이 1년을 평화롭고 승리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욥을 시험하여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던 마귀는 오늘날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피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내버려 놓으면 안 물러가요. 마귀를 이기기 위하여 마음이 정리, 정돈되고 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무장되어야 돼요. 무엇으로, 따라 말씀하세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마음을 정리정돈하자. 그리고 새해를 살면 여러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하나님 말씀은 다양한 축복이 있지만 다 여러분 한꺼번에 정리정돈 할 수는 없고 기본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문제는 살아가면서 플러스 알파로 점점 나아지게 만들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