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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15. 주일설교 죽을 각오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8~18) <서론> “죽을 각오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이게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하나님 말씀 제목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내 목숨을 다 해서 주의 말씀을 의지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을까 겁이 나서 믿음 반 불신앙 반, 어정쩡한 신앙을 가지면 나도 죽고 하나님 말씀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나님이 안도와 주시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으로 전적으로 맡기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러면 다 잃어버려요, 하나님께서는 돌보지 않습니다. 일사각오하고 내어맡기면 하나님이 맡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이 뭐냐, 살면 살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단호한 결심입니다. 하나님께 내어 맡겼다가 안되면 내가 죽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내가 살 것이다. 분명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단호한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담대한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살아야지. 바둥치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다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 각오를 하고 의지하면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파도가 잠잠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그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1.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 첫째로, 바벨론왕 느부갓네살 때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다가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 중에서 유대인의 엘리트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아주 신앙좋고 영리하고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벨론에 미리 간 다니엘은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이방 왕에게도 존경을 받아 국무총리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이 다니엘의 천거를 받아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도의 각각 지사가 된 것입니다. 높은 지위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아니하고 믿지 아니한 왕이었습니다. 고래로 정치적인 힘을 얻은 이방 왕들은 꼭 우상숭배를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뭘 그럴까? 여러분 우리가 자랄 때 동방요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본 천왕을 신으로 삼고 온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일본 신을 향해서 매일 절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학교에 가면 아침 조회 때 모이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일본 동경을 향해서 차렷 경례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니까 정말 일본 임금이 신인 줄 알았습니다. 와~ 신이 있구나.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게딱지도 아니에요. 여러분 일본천왕이 그 핏줄을 따져보면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입니다. 한국 피를 가지고 있어요. 신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일본이 동북아를 손아귀에 넣자 왕을 신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 일이 늘 있습니다. 북한도 김일성이 지금 태양이 되어 있습니다. 김정일이는 달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우상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제일 먼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철저히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로써 다른 신을 둘 수도 없고 우상에 절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데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평원에 금신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서 그 앞에서 낙성식을 하는데 그가 온갖 악기를 다 동원해서 연주를 할 때 모든 사람들이 그 신상 앞에 꿇어 엎드려 절을 하라고 했습니다. 절 안할 사람이 있어요? 왜냐하면 절을 안하면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하니까 목숨이 달렸으니까 절 안할 수가 있습니까? 내가 며칠 전에 탈북한 어느 자매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시치미를 딱 떼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텔레비를 보니까 이북 사람들 김정일이 죽고 난 다음에 그렇게 울고 김정일이 장례식 날 시체가 지나가는데 뛰고 구르고 뒹굴면서 우는 것 보니까 정말 사랑하는갑다고...” 그러니까 “목사님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그것 지어내서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어내서 어떻게 온 국민이 다 우느냐? 우리는 북한에 있을 때 전부 감시받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이 초상하는데 나가는 사람도 서로 다 감시하고 있어요. 안 우는 것 감시를 한 것을 보고를 하면 상을 얻는다구요. 배급표를 타든지 특별히 상을 받는데 배고픈 사람이 옆에 안 울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안 울었다가는 박살이 납니다. 그러니 김정일이 보라고 우는 것이 아니라 옆에 사람 보라고 우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참 비극을 느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게 약해요. 울지 않으면 보고를 받아 박해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니까 에라 좀 울어서 박해를 피하자는 인간적인 본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바벨론도 한가지입니다. 두라평원에 금신상을 세우고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엎드려서 엉덩이를 전부 하늘로 꽂꽂이 들고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런데 오직 세 사람만 우뚝 서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꼭 북한에 보고하는 식으로 옆의 사람들이 왕에게 뛰어가서 보고를 합니다. “왕이여, 왕이 택해서 바벨론도의 지사로 세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유대인들은 모든 사람이 다 절할 때 왕의 신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진노해서 “그놈들 끌어 오너라.” 그래서 왕에게 끌어왔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정말로 네가 나의 신에게 절하지 아니했느냐.” 그들 대답이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진실성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절 안했습니다.” “왜 안했느냐?” “틀림없이 우리 양심에 절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가 없고 우상에 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안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네가 정말 절 안하면 풀무불을 일곱배나 더 뜨겁게 해서 던져 넣을 터이니 어느 놈도 살아나올 놈이 없을 것이다. 너희가 바싹타고 죽을 것이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오니 네가 모든 악기를 연주할 때 절하면 좋거니와 절 안하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 그러니까 세 청년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일사각오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때 축복만 받을 뿐 아니라 필요하면 죽기라도 각오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기로 각오하면 두렵지가 않아요. 살려고 하니까 발버둥 거리고 옆 사람 쳐다보고 하지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뭘 옆 사람 쳐다보고 발버둥 치겠습니까? 그는 담대하게 “왕이여, 왕이 우리를 그 불구덩이에 던져 넣으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요. 만일 안 건져 주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겠나이다.” 이게 신앙의 결단인 것입니다. 건져 줄 줄 알면은 어떤 시련이라도 참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지요. 그러나 만일 안 건져주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이 우리의 퀘스천입니다. 우리도 늘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단호하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만일 응답 안해주면 어떻게 할꼬? 주일날 아주 중요한 사업적인 일이 있는데 성경에는 성일을 거룩히 지키라 해서 교회 나가야 되는데 교회 나갔다가 만일 하나님이 축복을 안해주어서 내 사업이 손해오고 망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아휴 하나님이 한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오늘 못나가겠습니다. 이게 공포심인 것입니다. 십일조 드려라. 만일 십일조 드렸다가 하나님이 안 도와 주시면 우리 가정의 생활이 곤고하게 될 것이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니까 십일조를 못드려도 적당히 얼마 드리겠으니까 하나님 눈 감아 주십시오. 자꾸 타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면 못할 것 없어요. 한번 죽나 두 번 죽나. 한번 죽지. 그런 각오로 뛰어들면 뭘 불안하고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속에 주저하는 것은 만일 하나님이 안해주시면 어떻게 할 것이냐. 마귀가 늘 와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들어 주신다. 너만 손해본다. 너 절단난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단호한 믿음으로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단호함을 보십시오. 왕 앞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얼굴 색깔도 변하지 않습니다. 왜, 죽기로 각오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평안하지요. 신앙은 각오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단 각오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어 맡겨 버리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맡기지 아니하면 마음이 늘 불안하지요. 그러니 왕이 진노해서 벌벌 떨고 가장 용감한 특전사 용사들을 불러가지고서 “이 놈들을 묶어라!” 그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었습니다. “풀무불을 칠배나 뜨겁게 하라.” 엄청나게 뜨겁게 해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데 모든 사람이 둘러 서서 보고 있는데 “던져 넣어라.” 얼마나 왕의 명령이 무서웠던지 그들 던져 넣겠다고 근처에 간 군인들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런 지경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담담하게 묶여서 불속에 던져졌는데 바싹 탈줄 알았는데 왕이 보니까 묶어 놓은 밧줄만 타버리고 전혀 타지 않고 세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네 사람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말입니다. 왕이 눈을 닦고 보아도 닦고 보아도 네 사람인데 그 네 번째 사람은 얼굴이 찬란하게 빛나고 영광스럽기 그지없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과연 맞았어요. 구약시대지만 하나님의 사자라고 구약시대에 말하면 거의다 예수님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건지러 불속에 뛰어든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뭐라고 한 것입니까? 불을 지날 때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셨는데 하나님이 못할 것 뭐가 있겠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리라고 했으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말 틀림없습니다. 목숨을 내어 놓은 믿음이니까 그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 의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놀래가지고서 그 불구덩이를 향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여 일어나오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나왔는데 왕이 내려와서 옷을 만져 보고 냄새를 맡아 보고 머리카락을 만져보고 하니까 불탄 자국도 없고 불이 스쳐간 흔적도 없습니다. 왕이 거기에서 놀래서 깨어졌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오늘날 이 천하에서 자기를 믿고 목숨을 내어 던진 사람을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한 신은 없었다. 이제 내가 명령을 내리노니 내 나라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에게 반역되는 말을 하거나 만용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은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만들어라!” 왕이 변화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더 높여서 지도자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살기로 작정했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 “왕이여 살려 주시옵소서. 간절히 빌고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했으면 사람 더러워지고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고 왕의 명령에 따라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불에 타 죽었을지로 모릅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 절대 충성, 절대 헌신을 하니까 자기들만 구출 받을 뿐 아니라 그 이방왕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사망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는 말이 있는 것과 같이 여러분이 죽을 각오하고 주님을 믿으면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고 이것이 큰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법학자이며 철학자인 힐티는 현대인이 고난을 무서워하는 원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대인의 고난 공포증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당연한 결과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은 자연히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면 세상의 무엇이든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만히 행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신학자 뱅겔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어거스틴도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리하면 사람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독일의 초대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리고 그 밖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권력과 위협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 편에 서 있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우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무서워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나의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런 보증을 해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배하고 섬기고 그에게 전폭적으로 내어 맡기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우리가 못이길 리가 있겠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냐 죽음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타협함이 없이 죽을 각오를 하면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2. 다니엘의 신앙 둘째로 메데와 바사왕 다리오 때 총리 대신으로 있었던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다니엘을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작정을 했습니다. 그것을 알자 밑에 있는 경쟁자들이 다니엘을 참소하고 고소한다 말입니다. 사람은 남이 잘되면 밤잠을 못자고 배가 아프지 않습니까? 어찌하든지 다니엘을 참소하고 고소하려고 왕에게 작전계획을 세워서 아뢰었습니다. “왕이여, 왕이 이 나라에서 최고가 아닙니까? 왕이 높임을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독재자는 자기 칭송하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왕이 씽긋이 웃으면서 “그렇지!” “그러니까 왕을 더 높이고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지금부터 선포를 하십시오. 30일 이내에 왕 이외에 다른 어떠한 이름이나 어떠한 신에게 예배하든지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 포고를 내리십시오.” 왕이 “그래 좋다. 그렇게 하라!” 그러니 당장 포고문을 만들어 가지고서 “왕이 포고하노니 오늘 이날부터 시작해서 30일 동안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굴에 던져 넣을 것이다. 왕에게만 절하라. 왕에게만 기도하라.” 그리고 난 다음 왕의 이름을 적고 인장을 찍어서 온 전국에 선포했습니다. 다니엘이 같은 왕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다 알고 그 포고를 알고도 다니엘은 집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동편 창문을 열어 놓고 하늘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감사하고 기도를 드렸었습니다. 반드시 참소를 당하여 사자굴에 뛰어 들어갈 것을 알고서 그렇게 한 것이지 모르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일사각오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데 우상에 절대 절하지 않는다. 죽으면 죽는다. 일사각오를 하고 그는 분명히 그 포고령이 나간 것을 알고도 매일같이 동편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나님 성전이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을 참소하려던 사람들이 얼씨구나 좋다고 그 사실을 왕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요사이 같으면 비디오로 찍어 가지고서 왕에게 보고했을 것인데 그는 비디오가 없어도 엄청나게 그들이 떼를 지어가서 왕에게 참소하니까 왕이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느꼈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그가 왕궁에 들어와서 총리 대신이 되고 난 다음에 나라가 평안하고 왕이 걱정이 없어요. 하도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그런데 자기 올무에 자기가 걸렸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다니엘이 유대인인줄 짐작 못하고 포고령을 하고 나니까 바로 다니엘 잡으려고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한 말을 거역할 수 없지 않습니까? “다니엘을 잡아 오너라.” 잡혀 왔지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 다니엘을 묶어서 사자굴 속에 던져 넣어라.” 사자굴 속에 사자를 굶겨 놓았으니까 먹이가 내려오는데 사자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니엘을 던져 놓고 굴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니 왕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아니하고 음식을 끊고 가무를 못부르게 하고 고통을 했습니다. 밤새도록 다니엘이 살아나기를 그는 마음속으로 소원하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사자굴 앞에 가서 울음 섞인 소리로 “다니엘아 다니엘아~ 네가 평소에 그렇게 섬기고 존경하던 하나님이 너를 건지셨더냐?” 다른 사람들은 전부 속으로 웃었습니다. “왕이 미쳤다. 미쳤어. 환장을 했지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 굶은 사자가 다니엘을 내버려둘 턱이 있느냐. 뼈까지 다 으스러지게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귀신인지 사람의 소리인지 사자굴에서 소리가 났어요.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서 나를 지켜주므로 사자의 입에서 나를 건지셨나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죽으면 살고 살면 죽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헌신한 그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왕이 당장 사자굴 안에 있는 다니엘을 끌어내라고 해서 끌어냈습니다. 보니 사자가 와서 핥은 자리도 없어요. 왕이 왕을 참소하던 신하들을 가족과 함께 묶어서 사자굴에 던져 넣으니까 미쳐 사자굴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자가 뒤돌아 서서 받아가지고서 뼈까지 으스러 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자들이 실수를 해서 다니엘을 안먹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와서 사자의 입을 막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역치 아니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으면 좋겠는데 그것을 믿기가 힘이 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헌신적인 기도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주시는데 E. M. 바운즈는「기도의 불병거」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기도에 게으른 사람은 믿음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결국 기도도 잃어버린다.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이 퇴보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그분의 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선포 이후에도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과 같이 해서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지켜주신 것입니다. 3. 우리의 신앙 결단 셋째로,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손에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따로 계시고 우리 따로 있고 재미 없습니다. 일단 하나님을 믿었으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값주고 샀는데 반쯤만 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샀고 과거를 다 청산하고 미래의 영원한 삶을 열어 놓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자기 생명을 통째로 바쳐서 우리를 값주고 사셨으므로 우리도 주님께 통째로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이 사용하는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셨을 때 모세야 네가 선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말한 것 우리가 귀기울여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신발이란 무엇이냐. 행위의 주권을 말합니다. 좋으냐 나쁘냐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그것을 결정하는 내 주권을 하나님께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완전히 맡겨라. 주님이 너를 위해서 좋고 나쁜 것을 결정하고 행위를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너 인생의 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과 주권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된다. 네 주권을 벗으라. 모세가 신발을 벗어 던지자 하나님은 지금부터 내가 너를 인도할테니 따르라. 하나님 지팡이를 받아 가지고서 이스라엘 삼백만을 구출해낸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여리고 평지에 섰을 때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서 여호수아 앞에 섰을 때 여호수아가 그 앞에 나가니까 제일 먼저 말한 것은 네가 선 땅은 거룩하니 신발 벗으라. 신발 신고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너 주권 행사를 할 사람이 네 주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해봤자 하나님 무슨 말하면 하나님 내 마음에 안맞습니다 하고 네가 부인하면 소용이 없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나님께 간구하려면 신발을 벗으라.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엿새 동안에 여섯바퀴 돌고 일곱째날에 고함을 치면 무너질 것이라는 작전 계획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려면 우리의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을 벗어야 돼요. 나쁘냐, 좋으냐, 옳으냐, 그르냐. 내게 속한 이것을 하나님께 내어 맡겨서 하나님이 결정하는 데로 따라가겠다고 결심해야 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시편 37편 5절로 6절에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내가 이것 할까요? 저것 할까요?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라. 왜, 길을 가다가 죽으면 좋습니다. 살아도 좋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맡겨라. 맡긴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만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맡겨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우리가 이루는 것 아닙니다. 그가 이루시고 그 다음 하나님이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해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맡기고 의지한 사람을 위해서 주님이 일해 주시지 그렇지 않은데 일해 주시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늘 내 마음속에 기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기도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면 나는 언제나 부두를 생각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자랐기 때문에 늘 부둣가에서 가서 배가 들어오고 나가고 배에 짐을 싣고 떠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둣가에 앉은 나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배가 부둣가에 대서 “용기야~” “예.” “네 마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배에 다 실어라.” 그러면 기도로 싣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전부 부두에 대 놓은 하나님의 배에다 싣고 난 다음에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끝났습니다.” “용기야 떠난다~” 부웅~ 그러면 떠나는 배를 봅니다. 이제 떠났으니까 별도리 없어요. 물위에 걸어가서 짐을 도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떠나는 것 보는 것입니다. 한번 맡겼으면 후회해도 도리가 없어요. 맡기면 맡기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 성도들이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 참 좋은데 일주일 금식하고 모든 것 아뢰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돌아올 때가 문제입니다. 도로 다 주워 담고 오는 것입니다. 주님 다음에 와서 내놓을 테니까 도로 주십시오. 도로 다 주워 담고 갈 때 무거운 짐 짊어지고 가고 올 때도 또 무거운 짐 지고 엉엉 울면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왜 응답 안하십니까?” 하나님 “안 맡겨 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 맡겨라!” “잠시 동안 맡겼지 않습니까?” “잠시동안 맡기지 말고 영구히 맡겨야 된다.” 네 짐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고 하는 것이니 맡기라는 것처럼 여러분 주님께 맡겨서 다시 가져오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도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기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기도는 잘 하는데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일어날 때 도로 짐을 짊어지고 나오는 그것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기도 잘해요. 금식도 진실히하고 철야도 진실히해요. 그러면 짐을 짊어지고 나오는지 안지고 나오는지 어떻게 압니까? 쉽게 알지요. 짐을 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무겁지요? 짐을 벗어 버리면 어떻습니까? 가볍지요. 여러분 하나님께 나갈 때 마음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마음이 짓누르고 무겁지요? 그러나 일어설 때 마음이 평안하고 허허허허 이것 내가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 것 보니까 실성한 사람이 아닌가? 그럴 정도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가볍습니다. 맡겼어요. 맡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들어갈 때도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도 마음이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면 안 맡겼습니다. 못 맡겼습니다. 그렇게 차이가 있어요. 기도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 맡겼느냐 안맡겼느냐가 문제고 하나님이 맡았느냐 안 맡았느냐는 마음의 평화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맡긴 것이고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며 안 맡긴 것입니다. 우리가 신발을 벗어 하나님 앞에 내어 던지고 우리의 삶의 행사를 하나님께 내어 놓으면 하나님께서 대신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순종과 믿음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동산의 기도도 그것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는 것이 쉽습니까? 온 인류의 죄악을 다 짊어지고 처참하고 가혹하고 몰인정하게 십자가에 매달려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버림당하면 좋습니다만 하나님께부터 버림당합니다. 하나님이 죄인과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예수님이 외친 것을 보십시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도 괴로운데 하나님 아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으니 그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지요. 그것을 미리 내다보는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이마에서는 흐르는 땀이 피가 되었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잔을 옮기지 않고는 인류 구원이 안되면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하나님께 내어 맡긴 이상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묶는 자에게 순순히 손을 내주고 때리는 자에게 등을 내밀어 주고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이 박혀서 여섯시간 동안 몸이 찢고 피를 흘리면서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와 같은 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기도의 모범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되는데요. 유대인들이 바사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때에 왕이 왕비를 간택할 때 유대인 여자인 에스더가 유대인이라는 정체를 감추고 왕비를 신청해서 왕비가 되었어요. 대제국의 왕비가 되었으니 그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자리인 것입니까? 그 임금이 아내를 얻을 때 간택을 했으니 에스더가 보통 미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요사이 예수 믿는 딸들 쉽게 이름을 에스더라고 붙이는데 알고나 붙여야 돼요. 옛날 에스더의 인물이 좀 근사하게 되어야 에스더라는 이름이 가치가 있지 안그러면 가치가 없어요. 그런데 에스더의 삼촌이 모르드개였습니다. 그는 임금 왕궁의 문지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르드개가 하만 총리가 왕궁에 왔다가 갔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엎드려 절하는데 안하거든. 왜냐하면 유대인이니까.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사람을 우상삼아 절 안하니까 이 하만이 속이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이놈 두고보자! 이놈 유태인 놈 죽여야겠다. 그래서 하루는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 전부를 다 잡아서 죽여야 되겠다. 그래서 왕에게 허락을 받고 유대인 전부를 다 죽이게 한 날짜를 정해서 선포를 하고 모르드개를 죽일 나무를 자기 정원에 세웠습니다. 유대인 전체가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삼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왕비가 되었지만 이제는 숨길 수가 없다. 다른 사람 다 죽는데 너라고 안 죽을 턱이 있느냐. 네가 숨겼지만 유대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죽어야 된다. 왕에게 가서 호소하라. 우리 민족을 위해서 호소하라. 그런데 그 당시에는 임금님이 부르지 않는데 왕비라도 나가면 죽임을 당합니다. 왕이 불러야 나갑니다. 왕이 저녁 침소에 들것인데.. 여러분, 왕이 마누라가 한둘이 있어야 침소에 들지요. 수십명, 수백명이 있으니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는 죽을 때까지 기다려서 안 돌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찾아가야 돼요. 그래서 에스더가 삼촌에게 말했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고 들어가면 내가 죽임을 당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네가 안죽을 줄 아느냐? 유대인들이 다 죽으면 너도 죽는다. 유대인은 결단코 하만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어 있는데 네가 들어가서 호소하지 아니하면 우리 민족이 다 죽을 것이다. 결단을 내려라. 그때에 바로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전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6) 보십시오. 왕에게 나갈 때 에스더가 애교를 가득히 채우고 나가야 될 것 아닙니까? 죽을 것으로 생각하고 살라고 발버둥을 치면서 마음이 창백하게 되어서 벌벌 떨면서 나가면 왕이 이 얼굴이 뭐 이런게 있노? 화장도 안먹고 이제는 볼일 다 봤구나.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니까 겁날게 없어요. 마음이 평안했어요. 짐을 다 맡겨 버렸습니다.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죽으면 죽으리다. 살기 아니면 죽기니까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나가니 마음이 편안하니까 얼굴에 빛도 나고 만연에 희색을 가지고 아주 느글느글하게 왕에게 가서 왕의 다리를 끌어안고 발에 입 맞추고 왕이여, 괜찮습니까? 왜 이렇게 왔어? 너무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왕이 보고 싶어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밥도 맛이 없습니다. 한번만 보면은 한이 없어서 내가 나왔습니다. 왕이 자기 좋다고 하는데 미워할 왕이 어디 있어요?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그래 뭘 해줄꼬? 네가 나를 좋아하니 나도 너 좋다. 나라의 반이라도 원하면 주겠다. 그때 에스더가 우리 민족을 나에게 돌려주소서. 네 민족이 뭐냐? 왕이여 내가 사실은 유대민족입니다. 그것을 감추고 왕비가 되었습니다만 하만이 우리 민족을 다 죽이려고 하니 나만 죽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을 다 죽이려고 하니 이 위기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왕이여 보좌에서 벌벌벌 떨면서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이 죽는 것이야 내가 뭐 상관할 것 없지만 너를 죽이다니? 너는 내 사람인데 내 허락도 없이 어느 놈이 감히 너에게 손을 대느냐? 그래서 일이 거꾸러 되어가지고서 모르드개를 죽이려던 하만이 도로 그 창대에 자기와 가족들이 매달리고 유대인들이 구출을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왕에게 나가서 호소할 때 살기로 작정하고 벌벌 떨고 눈물을 흘리고 애교 한푼도 없이 나갔었으면 자기도 죽고 유대인도 다 죽었을텐데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를 하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기쁨으로 왕에게 나가서 유대민족을 구원한 그 기사를 읽어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갈 때도 그와 같은 각오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하십시오. 죽으면 죽으리다. 그러면 하나님이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5절에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면 잃지만 잃어버린 사람은 구원받는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을 믿을 때 단호하게 믿으면 구원을 받지만 신앙을 엉터리로 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살려고 할 때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나 죽을 각오를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19절로 21절에 바울은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 선생이 그렇게 매를 많이 맞고 여행에 위협을 많이 당하고 나중에 로마에 사형선고를 받고 끌려 갈 때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 것은 살면은 전도요 죽으면 천당이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그리스도가 영광받기를 원한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으면 유익이다. 이렇게 마음에 단호한 각오를 했으니까 바울선생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설득할 수도 없고 협박할 수도 없고 손댈 수도 없어서 바울선생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바울의 목을 베니까 목이 세 번 통통 뛰었는데 뛰는 곳마다 샘물이 팍팍 솟아 올랐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으면 죽으리다는 마음에 각오를 하면 강하고 담대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말씀만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담대한 믿음, 내 목숨을 아끼지 않는 믿음이 담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려고 하고 믿음을 편법으로 사용하면 두려워하지요. 여호수아 1장 7절로 8절에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강하고 담대해서 하나님 말씀을 시행하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형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새해에 분명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뒤돌아보지 않는 믿음과 헌신과 절대의지하는 믿음으로 자신을 던져 버리면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자꾸 오른편도 바라보고 왼편도 바라보고 뒤도 돌아보고 이래하면 내게 이익이 있을까, 저래하면 내게 이익이 있을까 그렇게 타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불안과 공포가 끝나지 않습니다. 한번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했으면 고개를 돌리지 말아요. 목표를 바라보고 마음에 꿈을 갖고 믿음과 헌신으로 단호하게 나가면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시겠거니와 안 건져주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면 말할 수 없이 감사하겠거니와 응답 안 해주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 그와 같은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받아주시지 않으시면 죽어도 좋다는 마음의 자세,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꼭 살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 가만히 있어도 죽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니 죽고 난 다음에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자꾸만 살려고만 하면은 마음에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아예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 뜻대로 서서 죽으면 영광스럽다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를 하면 마음에 평안이 오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를 가지고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