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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4. 성찬주일설교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사는 것인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1~6) <서론>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옳게 사는 것인가를 한번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생이란 도도히 흘러가는 강과도 같습니다. 혹은 흉흉하게 혹은 잠잠하게 흘러가는 강물 속에 우리는 던져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디서 흘러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태어나자마자 살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발버둥을 치다가 어느덧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던져진 인생과 같이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이 혼돈 속에서 잘 살 수 있고 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은 성경을 찾아가는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안내를 해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안내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로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삶을 잘 살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 박사가 95세 이상 된 사람 50명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거기에 대답은 첫째 대답이 “날마다 반성을 하며 살겠습니다.” 그동안 무심코 흘린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를 새삼 깨닫고, 다시 태어난다면 매일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은 내일을 계획하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은 거짓말을 했지요. 내가 보기에도... 사람들이 반성한다고 하면서 반성을 안하더라구요. 내가 목회하면서 보니까. 아주 병이 들어 죽어가는데 제가 머리맡에 예배 인도하러 가면 굉장히 반성을 하더라구요. 다시는 술 안먹고, 담배는 다시 입에 대지도 아니하고, 일찍이 집에 들어오고, 열심히 주일 교회 나오고... 병이 낫고 난 다음에는 완전히 뒤로 돌아가! 그렇게 왜 거짓말을 하냐고 하니까 한꺼번에 끊을 수가 있나요? 천천히 친구들도 천천히 끊어야 되고 담배도 천천히 술도 천천히 끊어야지요. 한꺼번에 끊으면 병된 답니다. 사람들은 반성은 쉽게 하지만 지키는 것은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95세 이상된 사람들에게 물어본 질문은 그러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제 다시 산다면 용기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동안 눈앞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불의와 타협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외면하고 산 날들이 인생의 막바지에 와서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성이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한다는 그것이지 다시 살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같이 이름이 용기로 붙어있는 사람도 답답할 때는 하나님 용기있고 담대하게 행하겠습니다 하고 난 다음에 딱 시험이 다가오면 아이구 나는 힘이 없어요. 용기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셋째, “죽은 후에도 무언가 남는 삶을 살겠습니다” 소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데 95세된 사람이 다시 산다면 이름을 한번 남겨보고 가겠다는데 글쎄요. 다 이름을 남길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남기고 살 수 있으면 좋지요. 그러나 이름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다가 가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꿈을 꾸며 달려왔지만, 그것은 모두 물거품처럼 없어지고 마는 허망한 것들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꿈꾸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도도히 흘러가는 강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수(流水)와 같은 시간 앞에서, 한번 밖에 못사는 삶을 잘 살고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찾아가야지 마음을 되짚어 새로운 각오를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해도 실천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가 마음속에 간직하면 왜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장난이 아닙니다. 말씀이 들어와서 천지를 진동하는 역사를 우리 속에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 첫째로, 우리가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진화에 의해서 아메바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 이런 헛된 소리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을 성경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로 27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는 “야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을 때는 죽지 않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과 친히 교제하고 육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가 들어와서 영적으로도 하나님과 분리가 되고 영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육체는 말할 수 없이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고 사망의 종이 되었지 타락하기 전에는 죽도록 만들어 놓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를 잘 알면은 자존심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이고 사람이 자존심을 가지게 되면 언어, 심사, 행동이 존귀롭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은 자존심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나는 아메바에서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벌레가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내가 비인간적으로 행하는 것도 벌레니까 벌레가 벌레같이 살지 뭐 사람같이 살겠나. 이렇게 되면 고약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언제나 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존귀하게 여겼냐면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시편 8편 6절에 보면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여러분 우리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주의 손으로 만든 것을 다스리는 대리권행사를 주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것이요, 땅은 인생에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늘나라 전체는 다스리는지 몰라도 땅의 모든 것은 사람이 다스리도록 권한을 주시고 사람의 발아래 두셨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피지배 종족이 아니라 지배하는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우리 사람을 하나님이 지으셔서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우리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런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엄청나게 좋아하시고 그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주님이 내가 짓고 내가 만들었으니 내게 오게 하라.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기쁨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찬송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우연히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목적이 있어 지으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 그러므로 우리가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는 마음에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좇아 악한 꾀를 따라 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악한 꾀에 사로잡히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라는 것은 하나님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에 하나님과 싸움을 붙인 것입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되어서 하나님이 좋다고 할 때 너는 안좋다고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이 안좋다고 하는 것 네가 좋다고 말할 수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주권행사를 하라고 마귀가 그 꾐을 주어서 그 꾀임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선악과를 따먹은 악한 꾀를 저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우리 일생을 다 내어 맡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써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편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는데 악인이 꾀는 바로 내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섬기며 살지 않고 내 중심으로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바로 악한 마귀가 하는 삶이고 악한 마귀의 꾀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작정을 하고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악한 꾀를 쫓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상고하고 성령의 인도에 의해서 행해야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자기 주권을 따라 사는 악한 꾀를 따르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충족시키려는 탐욕과 욕심도 따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는 타락한 재미를 가지고서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해서 타락시켜려고 한 것입니다. 처음 아담이 자기 꾀에 넘어갔으니까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도 마귀의 꾀에 넘어갈 줄 알았습니다. 40주 40야 금식하고 배가 고프지 않습니까? 주린 예수께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들이면 증명하라.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정해 주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그러므로 먼저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 보라. 육신의 정욕을 하나님께 앞세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떡으로는 육신이 살고 영혼은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살지 떡을 먹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 마귀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또한 높은 건물 위에 데리고 가서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그러면 천사를 보내어서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받들어 주겠다고 하셨으니 그대로 하겠다. 그것은 뭐냐. 네 명예를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 지위나 명예를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잖아요. 예수님은 단호하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거기에 빠져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높은 산위에 데려가서 보였습니다. 온 세계 영광과 권세를 다 보여 주고서 내게 절하면 이것을 네게 준다. 옛날에 내게 넘겨준 것인데 내가 줄 수 있다. 이것은 전부 아담에게 준 것인데 아담이 다 넘겨 주었거든. 그러므로 내게 절하는 사람에게 넘겨준다. 예수님 단호하게 내 주 하나님께만 절하고 그를 섬겨라. 단호하게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아담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꾄 마귀가 마지막 아담도 그렇게 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 십자가도 기쁘게 걸머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이와같은 꾀에 빠지지 말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삶을 살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굉장히 괴로운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첩경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저버리면 가시밭 엉겅퀴가 난 곳에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로 3절에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은 형통하기 위해서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이 형통하고 가정이 형통하고 사업이 형통하고 나라와 국가가 잘살고 형통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도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평탄하게 살고 형통하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괴롭히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보증을 받는 것입니다. 형통하고 평탄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보증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이란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4계명이 있고 인간과 인간관계에 6계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 네 하나님 야훼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이 4계명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율법인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계명은 6계명인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우리가 지키려고 작정하면 쉽게 지킬 수 있는 계명인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라고 우리가 거역하지 말고 일반적인 세계에서 이 법을 그대로 지키면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법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로 31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런 십계명이 있지만 그것을 통틀어서 합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나머지 6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 2계명이 모든 십계명을 대표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으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장수하고 복을 받으며 크게 번성한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육체의 건강을 축복으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이 하나도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 병을 지키는 치료하는 야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영적으로 올바르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길인데 영적으로 올바르게 서면 육신의 병도 다 고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2011년 우리나라 인구주택총조사에서 100세 이상 고령자를 조사했는데, 조사 결과 100세 이상 고령자는 1천 836명으로, 이 가운데 종교를 가진 사람이 67.7%였으며, 기독교가 41%, 불교 24.8%, 기타 1.9%로 조사되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은 “하나님의 법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나라는 모두 복을 받아 큰 나라가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역사학자로 역사를 쭉 살펴 보니까 하나님을 믿고 법을 순종하고 사는 나라가 대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미국, 호주 등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들어온 후, 교회가 부흥하면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우리 한국경제가 이처럼 빨리 성장한 것은 교회가 100년 이내에 천만명의 성도로 성장하는 빠른 성장을 했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2천만 성도가 되면은 우리 한국의 경제도 지금의 배가 될 것으로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영국의 설교가 존 번연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자는 가정이 화평하고 사업이 더욱 번성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더 큰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만과 오만, 욕심과 탐심을 언제나 마음속에 체크하고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야훼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고 잠언서 8장 13절에 말씀했고 시편 1편 4절로 6절에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교만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처럼 똑같이 되겠다. 교만인 것입니다. 불신한 자, 무신론자들은 교만한 자들인 것입니다. 교만과 오만이 틈타지 못하게 해야 되고 내 처지에 뛰어 넘는 욕심과 탐심을 가지는 것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 분수에 맞도록 살고 내 수입 있는데로 살지 수입은 없는데 카드를 막 긁어 제켜놓고 난 다음에 나중에 빚 감당하지 못해서 파산하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수입에 알맞도록 사는 그러한 정도의 삶을 살아야지 탐욕과 욕심을 따라서 내 정도 이상으로 소비를 하고 살면은 안되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욕심을 버릴 때 인생은 더 큰 결실을 맺게 됩니다. 록펠러는 좋은 예입니다. 어릴 때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참 가난하게 자랐는데 록펠러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욕심과 탐욕이 생겨서 석유 재벌이 되면서 경쟁자들을 낱낱이 파산시키고 그 사업체를 인수했었습니다. 그래서 독점 사업으로써 석유왕은 되었지만 사람들이 극히 미워했습니다. 심지어 루즈벨트 대통령조차도 “록펠러가 아무리 선행을 해도, 그가 부를 쌓기 위해 저지른 악행을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55세에 뜻하지 않게 불치병이 걸려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1년 밖에 못산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들어가다가 병원 앞에 이런 간판이 써붙여 있는데 보니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많다” 그 액자를 보고 자기 비서보고 좀 중지하라고... 가만히 쳐다보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쭉 흘렸습니다. 마침 그때 어떤 여자 한 사람이 울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딸이 죽어가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입원을 시키지 못해서 안타까워서 동동 발을 구르며 울고 있어서 자기 비서보고 말하기를 가서 병원비를 다 지불해줘라. 비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한 일을 본적이 없습니다. 다 지불해주고 내 말은 하지 말라. 그리고 록펠러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겸비하게 낮아지고 모든 욕심과 탐심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유수한 교회인 리버사이드교회를 비롯해서 4천 92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대학 등 12개의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대학 및 연구소를 지어서 사회에 기증했습니다. 55세에 죽는다는 사람이 98살까지 살다가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고 축복을 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우리는 항상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셔서 은총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성령과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했습니다. 내 마음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으면 그 자리에 성령이 운행하십니다. 교회가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으면 성령이 운행하십니다. 나라가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으면 성령이 운행하십니다. 성령은 창조하는 영이기 때문에 다 깨어지고 박살이 난 곳에 계시지 잘 정리정돈 된 곳에 안오십니다. 왜, 그곳은 창조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나같은 사람 찾아 오겠느냐. 내가 못났기 때문에 성령이 찾아오지 잘났으면 찾아올 필요없어요. 못났기 때문에 잘나게 만들려고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어떻게 돌보시냐.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죄가 없는데 왜 와요? 죄인을 구원하려면 죄있는데 와야지요. 그러므로 교회 하나님이 계신 것은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장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교회는 의인 클럽이 아니라 죄인 클럽입니다. 교회 들어온 사람은 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은 사람이 들어온 죄인 클럽이고 세상 사람들은 죄인은 죄인인데 자기가 죄인이라고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세상 사람인 것입니다. 큰 죄인은 교회 들어오지 않고 중간쯤, 적은 죄인들은 교회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큰 죄인은 왜 안오느냐. 자기는 죄 안지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안옵니다. 그러나 중간쯤 지은 사람은 양심이 가책이 되고 괴로우니까 나는 이뢰봐도 안지은 것 같아도 속으로 좀 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인을 위한 모임 장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휴 우리 교회는 죄인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 안계신다. 아니요. 죄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의인들만 모인 곳입니다. 하나님 안계십니다. 의인은 하나님이 필요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 땅에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새로운 창조를 가지기 위해서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우리에게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죄인이 되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안되잖아요. 천기가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성령이 운행하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새로운 천지가 이루어진 것처럼 여러분 속에 성령과 말씀이 오셔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고 새가정이 되고 새사회가 되고 새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와 계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리두지 않고 너희에게 오리라 내가 아버지께서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네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다른 보혜사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거하시고 여러분 속에 와서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강단에서 주의 종이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면 말씀을 여러분 잘 받아들이면 속에 있는 성령이 운행하여 주셔서 여러분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새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교회 출석하라는 것입니다. 교회 예배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 성령이 운행하신 곳에 와 있으면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개인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고 사업이 변화되고 국가가 변화되고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끊임없이 변화를 받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죄인으로 남아있으면 큰일나지요.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되고 또 변화됩니다. 오늘도 여러분 예배를 드리고 이 자리에 왔으므로 성령이 지금 운행하고 계시고 저의 설교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통해서 나타나므로 마음에 부딪혀서 여러분에게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으신 것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여러분 하나님 성령이 운행하시고 말씀을 받아서 믿으면 여러분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 환경은 내가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것처럼 여러분의 천지는 여러분이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지은 것처럼 여러분의 세계는 성령이 여러분 속에 와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세계를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짓고 악이 있는 곳에 선을 짓고 병이 있는 곳에 치료를 짓고 가난이 있는 곳에 부요를 짓고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짓고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만드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권세를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지요. 성령은 이미 계신데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말하면 기적이 일어날테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해서 여러분 마음에 깨달아야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여러분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과 같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요? 그리고 난 다음에 그 생각을 기초로 해서 분명한 변화시킬 꿈의 소원의 목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여러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인격적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도덕적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가정이 화목되기를 원하십니까? 병이 낫기를 원하십니까? 사업이 잘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결혼하기를 원하십니까? 목표를 분명히 정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으로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희망찬 목표를 분명히 정하십시오. 꿈은 바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목표를 정했으면 그 목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목표를 정했으니 이루어 주시옵소서. 기도하면서 믿고 믿고 난 다음에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나가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나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다. 목표가 이루어졌다. 건강하게 되었다. 나의 사업은 잘된다. 가정은 화목하게 된다. 마음에 평안이 오고 의로움이 다가온다. 입으로 긍정적으로 시인하고 나가면 다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말씀으로 변화받고 난 다음에 변화된 마음을 가지고서 희망찬 꿈을 반드시 바라봐야 되고 목표를 바라보고 기도하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능력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입의 선언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성령께서 일하셔서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생각하며. 아닙니다. 말하며 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분명한 목표있는 꿈을 가지고 믿고 말하면 이루어진다. 건강을 원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음을 얻었으므로 예수님의 생각은 여러분 건강에 있으니까 그 건강한 생각이 이루어지는 꿈을 가지십시오.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직장에 나가고 가정 일을 열심히 하는 건강한 내 모습을 꿈으로 그려보고 그 다음 하나님 나는 저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런 사람이고 내 마음의 소원도 저런 사람이니 저런 사람이 되도록 해주시옵소서. 기도하고 주여 믿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습니다. 그렇게 하고 기도하고 일어나서는 하나님 이루어주셨다. 나는 건강하다. 튼튼하다. 씩씩하다. 약하지 않다. 나는 누워있지 않는다. 나는 튼튼한 사람이 되었다. 시인하고 이것을 반복하면 여러분이 다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의 말씀을 잡아서 운행하기 시작하고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성령은 반드시 여러분의 말을 받아서 일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무리 계셔도 여러분이 잠잠하면 성령도 잠잠합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말씀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그를 통해서 분명한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 고백을 받아서 성령이 역사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이 여러분 위해서 역사하도록 끊임없이 여러분께서 입으로 시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져라. 말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하나님 성령이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천국 열쇠가 뭡니까?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바로 그것이 천국 열쇠인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천국 열쇠인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으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 것입니다. 잘 못매서 부정적으로 매면 이것은 하늘에서 부정적으로 내버려 두기 때문에 파괴되어 버린다. 긍정적으로 매면 긍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항상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을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묶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다. 하늘에서 행복이 묶여지는 것입니다. 나는 기쁘고 즐겁다. 기쁨과 즐거움이 묶여집니다. 모든 일이 평안하고 건강하다. 평안하고 건강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다. 그대로 하늘에 묶여지면 여러분 걸어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그 축복을 앞서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되어서 이끌어 내가는 것입니다. 입술의 말과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몸이 너무 빼빼하거든 나는 건강하다. 건강하다. 건강하다. 건강하다고 말하세요.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뚱뚱하거든 거울을 바라보고 나는 빼빼하다. 나는 날씬하다. S라인이다. 그렇게 말하세요.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말의 힘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고 성경에 말했는데 읽고도 우리는 시인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런가보다 그렇게 생각하지요. 혀를 잘못 놀리면 재앙이 다가오고 혀를 잘 놀리면 축복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혀가 하나님이 주신 열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생존의 의미와 가치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2장 16절로 19절에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렇게 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가 어리석은 이유는 네가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부자만 되기를 원했지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둘째는, 내세를 몰랐습니다. 이 현세에 잘 먹고 잘 입자고 한 것입니다. 셋째는, 영혼을 위한 대비가 없었습니다. 그저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려고만 했지 교회 나가자는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넷째는, 이웃이 없었습니다.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하나인데 자신만 알아서 자기만 먹고 잘살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로 21절에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사는 근본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아서 만유를 다스리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다스리고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효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종이 되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사랑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고 지배하며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살고 천국도 올라가고 하늘나라에 영원히 생명을 얻는 우리가 되어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부자가 되어서 빌딩을 몇 개씩 짓고 주식을 한없이 사들이고 해도 오늘 저녁 내 목숨하나 죽으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많이 벌어서 많이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많이 벌어서 교회도 많이 짓고 병원도 많이 세우고 장학금도 많이 내고 불쌍한 사람하고 많이 나누어 먹고 그리고 난 다음 하늘나라에 또 올라가서 하나님께 칭찬받고 상급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해서 올바른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살지 말고 흐르는 냇물에 던져 놓은 나무토막 같이 떠내려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군지를 올바르게 알고 자존심을 가지고 올바른 자화상을 가지고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가 주님 나라에 가게 도와주시옵기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따르는 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