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1. 주일설교
낙망하고 불안해하지 말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낙망하고 불안해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은 우리 마음이 거하는 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의 주인은 우리 마음인데 이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향을 잃고 허덕이면 도둑놈이 들어옵니다. 마귀는 성경에 도적으로 지명하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둑질이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라고 했는데 주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허덕이면 그 빈틈에 도둑이 들어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흉악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1808년 영국 맨체스터의 한 정신병원에 슬픈 표정을 한 남자가 들어와서 치료를 원했었습니다. “저는 매일 우울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고, 도무지 즐거운 일이란 나의 생애 속에 전혀 없습니다.” 그 의사선생은 그분을 보고 몸이 건강하고 튼튼한 것을 보고 “당신 웃기만 하면 이 병에서 낫겠는데... 이 우울병은 웃음이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신나게 웃고 즐겨 보십시오. 마음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 그리말디 씨가 하는 서커스를 보러 가세요. 그리말디 씨 서커는 안웃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다 배를 안고 웃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만 더 고통스러운 모습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니까 “제가 바로 그 그리발디입니다.” 남은 웃기고 즐겁게 하면서도 자기는 우울증에 빠져서 깊은 고통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수백 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심판했습니다. 450명의 바알선지자들을 즉결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여 하늘에서 3년 6개월 동안 안내리던 비가 내리게 하고 온 이스라엘에 가뭄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종 엘리야도 이세벨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고 광야 길로 도망친 것을 여러분 잘 아시지요. 이세벨이 아침에 내 선지자 450명을 내가 칼로 목을 벤 것처럼 네 목을 베겠다고 하니까 그만 그 말에 혼비백산해서 시내에서 광야로 도망쳐서 광야 로뎀 나무 밑에 드러누워서 “야훼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세상이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에 좌절과 절망과 우울증은 누구에게든지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발디씨에게도 다가올 수 있고 위대한 종 엘리야에게도 다가올 수 있고 여러분에게도 다가올 수 있고 설교하는 이 조용기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누구든지 우리 마음을 잘 간수하지 못하면 이 병에 아무래도 면역되어 있지는 아니한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향을 잃고 방황하면 위대한 선지자도 낙망하고 불안해 합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낙망하고 불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본론>
1. 하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우리 몸에 튼튼히 거하는 주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이 마음에 주인으로 와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 세상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극복할 수 없으니까 이 모든 세상을 극복하고 능히 이기는 하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튼튼히 모시고 있으면 하나님과 더불어 있는 그 마음은 몸을 안전하게 지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속에 우리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서 베푸신 모든 준비를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법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리의 죄, 불의, 추악, 저주, 절망, 죽음을 예수님께 내어 맡겨서 죄없는 예수께서 대신 짊어지고 몸찢고 피흘려 십자가에서 다 청산하게 하시고 법적으로 여러분을 죄에서 자유를 허물에서 해방을 질병에서 고침을 저주에서 축복을 죽음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아버지가 길을 열어 놓으시고 난 다음에 여러분을 부르셔서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그 토대위에 서서 여러분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좌절에서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성령은 운행하고 변화시키는 영으로써 와서 역사하는데 토대가 없는 데는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우리들을 위해서 다 토대를 쌓아 놓고 그 토대에 입각해서 성령을 보내시므로 성령은 운행하셔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성령은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성령은 이 자리에 와서 우리의 생애 속에 창조와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람같이 생수같이 와서 역사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듣고 마음에 받아들여서 토대를 쌓으면 그 말씀을 쫓아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을 의지하면 굉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주님 부르셔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값없이 다 청산하시고 난 다음 성령을 보내서 변화시킨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루 아침 사랑했다가 그 이튿날 떠나가 버리고 우리를 버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끝까지 끝까지 우리를 붙잡고 변화시키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로 8절에 보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8장 31절로 39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대단한 서사시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데 우리가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살고 있고 이 하나님이 우리 속에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우리가 살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로 11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다 옛날에 죄인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 누가 있습니까? 또 오늘날도 완전히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하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죄짓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언제나 계십니다. 죄가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나 계신 것입니다. 내 마음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언제나 그곳에 성령이 운행하시고 주님이 계셔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곳에는 변화시키는 역사인 하나님이 와 계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것은 죄인이 있기 때문에 사랑해서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제게 편지 한통을 내놓던 부형님이 계시는데 그 편지에 보니까 “저는 오랫동안 교회 왔다갔다 하면서 소외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교회는 형식적으로 왔다갔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돌볼 수 없다. 나는 세상을 따라 타락한 사람이고 변화되지 못한 사람이고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이 교회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나 같은 사람 사랑받을 수 없다.” 그러한 내용의 편지를 해왔어요. 그래서 내가 답장을 쓰기를 “당신 잘못 알았다. 의로운 사람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걸머질 필요없지 않느냐. 죄가 없고 불의하고 추악하지 않는 사람 위해서 왜 대신하여 십자가를 걸머질 필요가 있느냐. 빚이 없는데 왜 빚 갚아줄 필요가 있느냐. 부모가 자식을 여러명 거느리고 있으면 그 자식 중에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부자인 자식에게 빚을 갚아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 낭패하고 실망하고 돈 없고 헐벗고 굶주리는 자식에게는 빚을 갚아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오신 것은 의로운 사람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당신같은 죄인을 찾아 왔다. 못된 사람 찾아왔다. 아무리 돌보아도 자꾸 못된 짓하는 당신 때문에 속상하면서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대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가지고서 당신 죄를 청산하고 성령을 가지고 왔으니까 그런 낙심하지 말아라. 바로 당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와 계신다.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조차도 하나님이 당신 때문에 내 입을 통해서 당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 편지가 왔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나는 그런 하나님인줄 몰랐다. 나같이 못난 놈은 하나님이 버린 줄 알았는데 못난 놈을 찾아오신 하나님인줄 몰랐다. 잘난 사람 찾아온 것이 아니라 못난 놈 찾아오는 하나님 너무나 감격하다. 나는 못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못났기 때문에 교회가 필요하고 못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내시니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목사님 편지를 받고 난 다음 내 일생은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 하나님은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고 매일 나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가 음행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도적이나 술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혹여 빼앗는 자가 되어 있으면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잃은 것이 있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잃은 것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잃은 것도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오래 참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올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거룩해지고 보혈로 의로워지고 하나님이 성령을 운행시켜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값은 하나님이 다 청산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청산한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변화가 안돼요. 성령의 역사가 임해야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 애쓰고 노력해도 여러분 힘으로 의로운 사람이 안돼요. 거룩한 사람도 안되고 착한 사람도 안돼요. 성령이 와서 변화시켜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계명을 주시고 하나님 뜻을 밝히 준 것을 알고서 하나님 나는 알고도 행할 수가 없으니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합니다.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하여 나의 속에 운행하셔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러면 변화가 다가오는데 변화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다가오지 않습니다. 꽃이 필 때 하루 아침에 피는 꽃이 없고 열매를 맺는데 하루 아침에 열매맺는 나무가 있습니까? 사람의 눈에 안보이면서도 그러나 계속해서 성장하고 장성하는 것처럼 성령은 눈에 안보이면서 여러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장성하게 만들어서 여러분의 인격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천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천성은 하나님이 성품을 태어날 때부터 각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도 있고 느긋느긋한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을 보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것을 불행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천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성은 여러분 순식간에 새사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만 인격은 성령께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인격은 성령이 여러분 속에 열매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므로 점점 새사람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하면 점점 자라는 것처럼 여러분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그로 말미암아 점점 신앙에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예배와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 하신 일을 하게 될 때 주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은 여러분 자신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은 초보적인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성장하고 장성해서 나중에는 예배와 봉사를 통하여 남을 위해서 수고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기 위해서 오셨지 않습니까? 여러분과 나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와 절망을 청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는데 남을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초보적인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 우리가 건져냄을 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고 허물에서 용서를 받고 병에서 치료받고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얻고 희망을 얻고 죽음에서 생명을 얻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사람이 되었으면 이제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 이웃을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섬기고 사랑하고 봉사하고 나누고 이웃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는 이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로 13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원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말씀에 굳건히 서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굳건히 살기 위해서는 말씀에 굳건히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 눈에 안보이잖아요. 예수님 눈에 안보이고 성령님 눈에 안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이 어디에 계시냐. 말씀과 일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체적 감각과 환경적인 생활에서 시련이 다가와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살에도 시련이 다가오고 세상 생활에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업상 어려움이 다가오고 대인관계 어려움, 가정의 어려움, 부부간의 어려움, 부부 자식간의 어려움 끊임없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허약도 다가오지요. 육신이 병들고 허약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이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난 다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내 평생에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가는 곳마다 가시넝쿨과 엉겅퀴가 나오고 질병과 고통으로 괴로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주를 피할 수도 없고 가난을 피할 수도 없고 질병을 피할 수도 없고 고통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만 이것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극복할 자원이 없습니다만 예수를 아는 사람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빚을 다 청산해 놓았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을 알고 대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굳세게 믿음으로 저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저항할 수 있는 은혜가 어디 있느냐. 말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그냥 데코레이션으로 모아 놓지 말고 교회 올 때 가지고 왔다갔다 하지 말고 여러분 마음속에 간직하고 이 말씀으로 환경을 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운명과 팔자로 받아들이면 안돼요. 말씀을 알고 난 다음 말씀에 어긋난 것은 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오면 말씀으로 서서 죄의 유혹을 대적해야 되고 병이 오면 병을 대적해야 되고 귀신이 오면 귀신을 대적해야 되고 사업상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오면 기도하고 믿음으로 대적해야 되고 죽음의 세력까지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를 피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많이 마음속에 외워 놓는 것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매일같이 잠들기 전에 시편 23편을 외우고 아침에 깨어나면 제일 먼저 시편 23편을 외웁니다. 그 말씀을 외우고 믿으면 성령께서 마음속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벌써 그 말씀 외울 때 나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부족함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에게 넉넉하게 해주신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은 나와 같이 계시므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원수가 오면 원수 앞에 상을 베풀어 주신다. 원수가 오면은 용기와 힘을 얻기 위해서 원수 앞에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기름을 발라서 우리를 높여 주시고 삶의 성공과 축복의 잔이 넘치게 해주신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말씀을 하고 나면은 이 말씀 속에 놀라운 힘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나는 이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다음에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내가 마음이 흔들흔들 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꼬? 하나님이 나에 대한 뜻이 무엇이냐. 성경에 기록되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했으니 나는 반드시 잘될 것을 생각하고 잘될 것을 꿈꾸고 잘될 것을 믿는다. 잘될 것을 강하게 말한다. 희미하게 말하면 안돼요. 강하게 말해야 돼요. 마귀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를 꾈 때 강하게 말했습니다. 하와를 보고 이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니까 하와가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 한다고 하니까 절대 안 죽는다. 마귀가 강하게 말했습니다. 안 죽는다. 네가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 선악을 알기를 하나님처럼 된다. 강하게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우리도 강하게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암기하고 나는 부족함이 없다.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른다. 나는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된다. 혹은 마음에 고통스럽고 육신이 병들었을 때는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막 온 몸이 쑤시고 아플 때도 기록된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 나음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나음 받은 내 모습을 사진처럼 바라보고 믿습니다. 그리고 강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았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려도 나는 나았다. 그러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성경에 말씀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 때 이사야 41장 10절로 11절 이 얼마나 좋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 마음속에 묵상하고 들어오면 용기와 힘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이 온 천지가 다 캄캄하고 외로울 때도 말씀은 광명한 빛과 같이 마음에 들어와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같이 한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된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할 것이다. 참으로 너를 도와준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준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천군만마를 모신 것같이 되지 않습니까? 제가 언제나 좋아해서 하루에도 여러번 외우는 것이 시편 91편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야훼여 주는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이 말씀을 외우고 나면은 마음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또 요사이 치매 걱정하는 사람 많은데 저처럼 말씀을 외우면 치매가 안걸려요. 치매 걸릴 시간이 없어요. 말씀 외우는데 바빠가지고서... 이 말씀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되어서 여러분 마음속에 퍼부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을 외우고 말씀에 서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다는 말씀에 나는 선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신지라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으시로다 어찌 그가 하신 말씀을 이루지 아니하며 어찌 그 말씀을 성취하지 아니하랴.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은혜와 선물이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찾아오시고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여러분 많이 외우고 그 말씀 속에 사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잃은 자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부정적인 사건을 보고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고 낙심하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어두운 환경 가운데서 불안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낙심하지 말 것은, 예수님은 낙심한 자, 잃은 자, 병든 자, 버림 받은 자 이런 사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일을 하러 오신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분 의사가 의술이 좋아도 환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파리만 날리고 있어요. 의술의 실력을 나타내려면 병자가 있어야 실력을 나타내지요. 약사가 아무리 약을 잘만든다해도 환자가 없으면 약을 시험해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구원하는데 전문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의 실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없는 자가 있어야 되고 죽은 자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다 살아있으면 어떻게 누구를 살려요? 성경에 나사로가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나사로 때문에 부활이요 생명인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다니시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웃기는 소리하네. 사람이 무슨 부활이요 생명이요? 아무리 말해봤자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러나 나사로가 죽어주니까 고맙지요. 썩은 냄새가 나니까 예수님이 와서 무덤 돌 옮겨 놓아라. 그 다음 나사로야 나오라! 수의를 입은 채 나오니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증명될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병든 것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치료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가난한 것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가난한 사람을 부요케 하는 하나님이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좋은 것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와서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니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우리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굳건히 서서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확실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확실히 모시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다 떨어져 나가고 든든히 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는 내 마음을 내가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다스리면 안돼요. 여러분도 오늘 제 설교를 듣고 여러분 마음은 여러분이 다스려야 돼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다스립니까?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생각을 다스려야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온갖 마이너스 생각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안돼요.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마이너스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요사이 저보고 와서 마이너스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왜냐하면 우리 한국 희망이 없다. 정치가 요란스럽고 여당, 야당이 서로 대결인데 자기끼리도 갈라져서 물고 찢고 싸우고... 한국에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사업은 잘 안되고 뭐 온갖 불평을 다 말해요. 나는 한참 듣고 있다가 참 좋은 소식이네요.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어야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그런 환경이 다가오니까 하나님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서 새로운 창조를 갖다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이것이 다행이요, 더 기도하고 더 믿음으로 사랑 베풀고 전도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마이너스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플러스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생각 속에서 생명이 나와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생명이 나오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부정적인 생명이 나와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면 그 생명을 마음속에 만들어 내서 그런 운명과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기대를 하지 말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기분 좋다. 오늘 건강할 것이다. 오늘 사람들이 나를 사랑할 것이다.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오늘 일이 잘될 것이다. 오늘 성공할 것이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 그 기대한 대로 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는데 우리가 선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불안과 공포가 마음에 들어오면 불안과 공포를 받아들이면 안돼요. 믿음으로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불안과 공포는 믿음이 없을 때 다가오는 것입니다. 안될 것이라고... 원수가 나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오는데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나와같이 계신 것을 믿기 때문에 이길 수가 있어요.
시편 42편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데 불안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다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데 무엇이 두려워 할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그가 깃으로 나를 덮으시고 날개 아래 나를 지켜 주신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미하면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불안과 공포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무서운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과 공포가 다가오거든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양은 불안과 공포를 제거하는 위대한 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긴 분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는 져요. 우리 힘으로는 못해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겼지 않습니까? 죽음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해도 버림바 되지 않고 거꾸러 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것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다 질그릇이지만 그 속에 보배가 있습니다. 보배가 뭐냐. 예수님이 보배인 것입니다. 보배가 질그릇에 담겨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있으므로 불안과 공포를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강하게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 굉장히 필요합니다. 여러분 입술의 말로 묶이고 사로잡힌 바 되기 때문에 말을 강하게 해야 돼요. 요사이 제가 가만히 보면 부정적인 사람은 강하게 말을 하는데 점잖은 사람은 입을 딱 닫고 있어요. 입을 닫고 있다고 해서 일이 잘되느냐. 안됩니다. 강하게 하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 파괴적인 말을 하는 사람, 강하게 말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강하게 말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그리로 끌려가요. 긍정적인 말을 하는 우리는 우리 편에 서서 강하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의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고 의를 말하고 질서를 말하고 강하게 말을 해야 돼요. 강하게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2장 25절에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선한 말을 강하게 하면 그 말이 여러분의 원수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강하게 말하면 이 말씀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왜 중요하느냐면 말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꿈꾸고 바라보고 그것을 믿고 말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구원받는 사람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날 위해서 죽었다는 것을 다 바라보고 믿어도 구원의 근처에 와서도 실제 구원은 소유하지 못했어요.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나는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면 구원 받았어요. 그러나 마음속으로 예수님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해요.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생각하고 생각이 이루어진 꿈을 꾸고 그것을 강하게 믿고 입술로 시인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내 스스로 늘 말해요. 조용기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바라보라. 기쁜 일이 일어날 것을 바라보라. 성공할 것을 바라보라. 바라보고 난 다음에 믿어라. 누가 뭐라고 말해도 이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어라. 그리고 말해라. 용기야 좋은 일이 일어난다. 용기야 성공한다. 용기야 이번에는 이긴다. 하나님께 감사해라. 바라보고 믿고 말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주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기도하고 난 다음에 꼭 이렇게 하십시오. 먼저 바라볼 때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말씀에 입각해서 바라보고 그 다음 말씀에 의지해서 믿고 말씀에 의지해서 시인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먼저 바라보자. 긍정적인 그림을 그리자. 그리고 믿자.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자. 누구든지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고 이것은 바라보면 아닙니까? 그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믿음 아닙니까? 그리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입술로써 의심하는 말 안하면 그대로 되리라. 우리 주님이 과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정직한 말을 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이신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안 믿으니까 일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얼마나 큰 우리 편에서 볼 때 과장된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과장 아니에요. 누구든지 너나 나나 누구든지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고 그것이 이룰 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홍해수가 갈라질 것을 이스라엘 백성은 안믿었습니다. 바로와 그 군대도 홍해수가 갈라질 것을 안 믿었습니다. 그 창렬한 홍해수가 어떻게 갈라지는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수를 건너서 광야로 인도해 내겠다고 하나님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홍해수를 가르던지 그 위로 걸어가든지 할 수 있다고 모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다 안믿는데 모세는 말씀에 따라서 믿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는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로잡자고 말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 돌아가서 항복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강하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가만히 있어 야훼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라 오늘 너희가 본 저 애굽 군대는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오직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수를 건너갈 것을 바라본 것은 모세요, 그것을 믿은 것은 모세요, 입술로 말한 것은 모세입니다. 그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홍해수가 갈라지고 3백만 이스라엘이 육지같이 건너가고 뒤를 따라오던 애굽군대는 물이 덮여서 다 수장해 버리고 말았잖아요. 우리가 이 세상에 참으로 주님 말씀대로 살면은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교회에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와서 왔다갔다 하고 그래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주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님을 믿는 사람은 나의 의인, 주님의 의인입니다. 눈으로 봄으로 살리라. 귀로 들으므로 살리라. 냄새 맡으므로 살리라. 만지므로 살리라. 이성적으로 생각하므로 살리라 아닌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리라.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상이 이루어져요.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삶이란 우리 인생 앞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도와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기대를 다스려 언제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를 나쁘게도 만들고 좋게도 만드는 것입니다.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고 윈스턴 처칠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쉽게 많이 말하는 호사다마, 좋은 일에 마가 많이 낀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거꾸로 해서 마가 많이 있는 곳에 좋은 일이 있다고 우리가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득실거리는 곳에 누가 찾아오는 것입니까?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전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쫓아내라고 했는데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있는데 마귀가 훼방을 많이 한다고 우리가 말하지만 마귀가 많이 있는 곳에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하여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끼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말씀의 플러스로 채워 다마호사(多魔好事), 마귀가 있고 마가 많은 곳에 언제나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자꾸 생기는 것은 좋은 일어날 징조입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진수성찬을 차려주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진수성찬도 온다. 그러므로 원수가 오면 우리 보통 생각으로는 나쁜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플러스 생각으로 원수가 오면 좋은 일도 생겨온다. 성경에 그렇게 있으니까. 내가 하는 말 같으면 거짓말이 될 수 있지만 성경말씀은 거짓말이 없잖아요. 시편 23편에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나에게 진수성찬 차리시며 기름으로 머리에 발라 잔이 넘치게 한다. 그러므로 원수가 오는 것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려고 원수를 보낸 것입니다.

<결론>
마음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무너지면 인생은 비참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가운데 마음에 중심을 잃고 지금 비틀거리고 무너져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로 내버려두면 큰일납니다. 마음을 붙잡아야 돼요. 그런데 마음을 어떻게 붙잡느냐. 희망의 노래를 불러서 마음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의 대표적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지 않느냐.” 현실을 내가 못 바꾸면 현실을 좋게 보라는 것입니다. 플러스 현실을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낙망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희망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카톨릭 신부로써 설교하는 것을 재밌게 듣는 신부가 계십니다. 차동엽 신부. 우리가 카톨릭하고 신교하고 교파는 다르지만 그분 가르치는 말은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굉장히 긍정적인 설교를 하시는데 차동혁 신부는 “아무거나 붙들고 희망이라고 우겨라” 아무거나 잡고서 이것은 희망이 있다고 우기라는 것입니다. 고집을...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해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놓으면 마음이 난 절망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좋은 일이 일어난다. 잔소리 말아라. 막 우겨대라는 것입니다.
엠마 골드만이 쓴 “희망을 찾아라”는 시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시인데 제가 읽어보니 하도 좋아서 여러분에 읽어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
“희망이 없는가? 소망이 없는가? 꿈이 없는가? 그러면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꼭 만들어야 한다. 너무 절망스러워 도저히 희망과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찾아보고 또 찾아야 한다. 그래도 없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꿈을 못꾸면 죽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죽음은 절망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희망은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희망을 놓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희망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억지를 쓸데 다른데 쓰지 말고 꿈을 희망을 주장하는 마음의 바탕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희망과 소망을 만들어 우리 마음을 붙잡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기도와 말씀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랑과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와 기쁨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