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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6. 성찬․어린이주일설교 신앙생활과 신앙인격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 25~32) <서론> 저는 “신앙생활과 신앙인격”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부흥집회에 한 흑인이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은 것을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 자기의 죄의 굴레와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주셨다고 기쁘게 간증을 했습니다. 간증이 끝나자 사회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님이 받은 구원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는데 구원받기 위해서 형제님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는 즉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제가 한 일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을 잊었습니다. 저는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다니는 일만 했습니다. 제 마음속에 욕심껏 시키는 대로 죄를 지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도망다니는 것을 끝까지 따라오셔서 결국 저를 쓰러뜨리시고 기적같이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2천년전의 역사적 인물로만 전하고 기적은 없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음 뿐만 아니라 응당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기형적인 복음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이 흑인이 간증한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은 주님을 피해서 도망치는 일, 주님을 거역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생활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붙잡아서 우리를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회개시키고 예수를 믿도록 도와주셔서 순수히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것하고 신앙적인 인격의 성장하고는 대단히 틀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난 다음 자라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고 난 다음 자라지 않는 것처럼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자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못해요. 태어나는 것은 부모님의 은혜로 태어나는 것이지만 태어나고 난 다음 먹고, 운동하고, 자라는 것은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노력없이 먹고 마시고 자랄 수가 없습니다. 구원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한일 없이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자라는 것은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는 성장하지 못합니다. 자식이 자라지 못하면 부모의 마음에 큰 부담과 걱정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자라지 못하면 하나님이 굉장히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자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로 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주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난 다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서 변화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모두다 예수님을 닮은 자녀들만 모인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그 목표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도록 자라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사람 인(人)자 하나를 붙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고 나오면 그 몸에 음식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몸에 향수를 뿌리면 향수를 반드시 냄새 맡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과 같이 있기 때문에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 냄새가 나야 돼요. 예수 향기가 나야 돼요. 예수를 믿으면서 전혀 예수 향기가 나지 않고 예수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홍재 교수가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설문을 통해 인격과 설교, 상담, 가정, 외모, 경륜 등의 6개의 자질 가운데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겠냐고 물었습니다. 어떠한 것이 목사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자질이냐. 그 결과 인격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혔고, 그 다음이 설교, 상담, 경륜 등의 순서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인들이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좋은 인품을 기대합니다. 목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좋고 풍성한 인품을 가지고 대해주는 것을 성도들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보았을 때 한눈에 알아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 언어, 심사, 행동이 다르다. 그에게 예수 향기가 난다. 그렇게 인정할 수 있어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과 행실이 예수님을 닮을 때 비로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본론> 1. 말씀으로 변화 첫째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디서 닮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열 두 제자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듣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묵상하므로 마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며 마음이 새롭게 창조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면 말씀은 살아서 속에 들어가서 운동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별도리 없이 마음속에 변화가 다가오고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떡을 먹고 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먹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입으로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길이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할 뿐 아니라 말씀을 외우는 것이 굉장히 좋습니다. 앉으나 서나 시간만 있으면 말씀을 외워서 말씀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여러분에게 말씀해 드렸거니와 시편 23편을 주야로 외웁니다. 그것이 나의 양식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말씀을 여러분 매일 앉아도 외우고 서도 외우십시오. 그러면 말씀이 속에 들어가서 큰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만 외워도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정신적인 억압에서 자유를 얻고 마음과 육신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용기와 힘을 얻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에 내가 말씀을 마음에 외우고 입으로 시인하면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말씀은 죽은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보통 말씀과 다른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에 반드시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97절로 99절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명철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늘 읖조리면 지혜롭게 되고 명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을 입으로 시인하게 만들면 어린 아이들이 성경을 통해서 굉장히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역사를 통해서 위대한 대통령, 위대한 지도자들은 모두다 성경을 의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리고 돌보신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경은 여러분에게 놀라운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총명이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의 법을 사랑하고 하루 종일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는 것이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프린스톤신학교의 성서 신학자인 오토 파이퍼 교수가 강의를 하다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람이 누구입니까?” 학생들이 다 “예, 마틴 루터입니다.” “아닙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깜짝 놀랬습니다. 이 선생님이 이단이 되었나 보다. 역사를 거꾸로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말하기를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마틴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읽다가 말씀에 감동이 되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루터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폭발을 일으켜서 변화를 받아 그는 도저히 이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은 진리의 생명력이 마틴 루터를 사로잡아 마침내 종교개혁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적인 양식이 될뿐만 아니라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 마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어 새롭게 창조되며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고 묵상하면 변화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변화를 받지 아니하면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형식과 의식을 따라 살면은 자라지 않습니다. 마음이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으로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승리에서 승리로 자라고 믿음에서 믿음으로 용기에서 용기로 성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가 자라는 방향을 인도하고 변화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로 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데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말씀이 들어와서 온전하게 만들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선한 일을 행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때 말씀이 들어와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힘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하면 몸에 근력이 생겨나서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우리는 체력에 운동을 해서 연단을 해서 몸에 저항력을 길러야 되는 것처럼 말씀이 들어오면 몸에 신앙의 근력이 생겨서 힘이 생기고 저항력이 생겨서 능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세상 씨앗은 썩어 땅에 심으면 썩어지지만 말씀은 마음속에 들어와서 항상 살아있고 하나님께 능력을 주는 말씀으로써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2. 분명한 결심과 목표 둘째로, 인격적인 신앙인이 되겠다는 결심과 목표가 뚜렷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나는 그냥 예수만 믿고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살아갈 뿐 아니라 변화되어야 되겠다. 나는 신앙적으로 인격을 얻어야 되겠다. 우리가 태어날 때는 품성을 그대로 태어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 느린 사람, 또 마음이 좁은 사람, 넓은 사람, 태어날 때부터 그런 품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만 신앙의 인격이 자라고 그리스도를 닮아 변화받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인격을 얻게 되는 것은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는 가만있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 받은 품성은 부모로부터 유전을 받아 태어나지만 신앙적인 인격 캐릭터는 노력하고 애써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고 난 이후에 인격적 성장에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세속적인 신앙에 처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한 주인을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세상으로 꽉들어차 있다가 세상을 쫓아내고 새로운 주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모셔들인 것입니다.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으므로 주인을 섬기고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주인 앞에 우리는 엎드려서 신발을 벗어 놓고 종으로써의 헌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주인을 한쪽 구석에 모셔 놓고 여전히 세상이 꽉 들어차 있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고 세상의 쾌락에 젖어서 산다면 이러한 사람은 형식적인 신앙을 얻었지 성장하지 못한 무심한 사람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4절로 5절에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믿을 수가 없어요. 서로 배신하고 조급하고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고 경건의 모양은 교회와서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고 밖으로 볼 때는 참 예수 잘 믿는 것같이 보이나 그러나 실제 생활은 그와 정반대의 생활을 하는 이러한 위선자에게서 돌아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5절로 28절에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큰 경고를 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 그릇은 겉만 깨끗하지 속은 더러운 것으로 꽉 들어차 있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무덤을 아름답게 회칠을 해놓아서 야~ 그 무덤 참 곱다. 아름답다. 파헤쳐 보면 뼈가 남아있고 썩은 살점이 있고 냄새가 나고 더러운 것이 가득한 것입니다. 신앙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훌륭하게 보여도 속은 썩어 빠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옛날에 바리새교인과 사두개교인의 생활이었는데 우리도 그와 같이 외식하는 신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성장을 뚜렷히 원하지 않고 평범한 신앙생활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으면 나는 성장해야 되겠다. 인격자가 되어야 되겠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야 되겠다. 그렇게 마음에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갑니다. 아무리 세월을 잡아 놓으려고 해도 잡아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세월이 흘러가지만 딱 죽고 난 다음에는 영원으로 들어갑니다. 영원한 세상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변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란 그대로 들어가서 그대로 영원히 남습니다.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지옥에 남아있지 다시 변화되어서 천당으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천당에 올라갈 때 중학생 정도로 인격이 성장해서 들어가면 영원히 중학생 정도로 사는 것입니다. 천당에 올라갈 때 대학원 졸업생 정도로 인격이 자라서 들어가면 영원히 대학원생 정도의 인격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그릇이 적으면 은혜와 축복도 적고 그릇이 크면 큰 축복을 받는데 천국에 들어가서도 똑같이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자란 분량대로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적게 자란 자는 적게 크게 자란 자는 크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어찌하든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충만히 성장시켜서 예수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이구 나는 턱걸이해서 천당만 올라가면 되겠다. 뭐 그러면 할 수 없지요. 턱걸이로 올라가면 늘 하늘에 올라가서도 턱걸이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광으로 충만해서 올라가면 영원히 영광스러운 신앙생활 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로 10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여러분은 빛입니다. 옛날에는 마귀에 속한 어둠이더니 이제는 빛입니다. 한번 따라 하세요. 나는 예수님 안에서 어둠이 지나가고 빛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므로 빛의 열매가 맺어지는데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마음이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진실해지는 것은 빛이면 그 열매로써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땅만 보면서 살 수도 있고 위를 보고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땅만 보고 사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육신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아 소돔 고모라에 사는 사람들처럼 땅만 보고 살다가 나중에 멸망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늘 위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아침에 자고 깨어나도 기도하고 찬송하며 위를 쳐다보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도 위를 쳐다보고 예배에 만나도 위를 쳐다보고 늘 하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기 때문에 늘 예수님 계신 곳을 바라보고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쫓아 예수님 제자가 되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면은 우리는 로마서 12장 2절처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세상에 살면은 하나님이 이 정도면 되었다. 선하신 뜻도 있고 하나님이 좀 더 잘해라. 기뻐하시는 뜻도 있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만 행하지 말고 좀 더 나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고 기뻐하는 뜻보다 더 나은 온전한 뜻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저 이 정도 믿었으면 되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런 정도에 머무는데 그러지 말고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온전하다고 인정하는 그런 신앙생활로 전진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하기는 쉬워도 생활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상충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하나님 원하는 것을 따라가야 될 것인 것입니다. 주일날 내가 꼭 교회 나가야 되겠는데 친구들이 동창들이 모여서 그날 운동하러 나가자고 합니다. 친구들이 야~ 하루쯤 교회 안나가도 된다. 우리와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운동 한번 하자. 내가 하고 싶은 데 거기 따라가면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고 거기 안따라가자면 친구들을 내가 무시하는 것이고 굉장한 갈등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냥 갈 수 없으니까 기도 좀 하고 자기 혼자 주님 바쁘니까 주님 좀 들으십시오. 성경 읽고 기도하고 오늘은 이것만 만족해 주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용서하고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돼요. 자기를 못박고 이 세상을 부인하고 그리고 주님을 따라가면 한번이면 섭섭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것은 내가 섭섭한 일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섭섭하더라도 나를 부인해야 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온당한 일이지만 노력을 해야 되고 투쟁을 해야 됩니다. 쉽지는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면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40대 부부를 대상으로 부부의 신앙생활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문항 중에 “남편이나 아내의 신앙에 대한 평가”를 하라고 했는데 152명이 대답을 했는데 그 가운데 배우자의 신앙이 ‘성숙한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152명 중에 4명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4명이었습니다. ‘부족하면서도 노력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거의 대부분으로 124명이나 되었습니다. 부부가 서로 볼 때 형식적인 신앙을 하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 124명입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형식적으로 하거나, 자기 뜻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인격적 성장에는 무관심합니다. 내가 뭐 인격적으로 자라겠느냐. 예수 믿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무관심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인격적인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따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목표를 정하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주님 따라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되기 때문에 희생이 따라오고 고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자라는데 고통이 안 따라 올 수가 없어요. 자라면 신발도 커지므로 적은 신발은 벗어 놓아야 되고 옷도 커지므로 적은 옷은 벗어 놓고 큰 옷으로 갈아입어야 되고 자랄 때는 변화가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려면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잘믿으려면 힘들어요. 신앙적인 인격을 가지려면 힘들어요. 성 내고 싶을 때 성 못내지요. 한 대 쥐어박고 싶어도 못하는 것도 답답한 일이지요.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니까 술병을 보고도 옛날에는 저것 맛이 괜찮았는데... 마셔볼까? 안마셔볼까? 고통스럽지요. 가고 싶은데 못가니까 괴롭지요. 그러나 십자가를 걸머져야 되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참아야 자라는 것입니다. 그럼 내가 참을 수가 없는데요. 난 내 힘으로 도저히 안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돕는 자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과 똑같으나 다른 분을 말하는데 보혜사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신 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계셔 지금 이 자리에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보혜사는 나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같이 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항상 같이 계세요. 하나님 말씀이 그렇게 우리에게 보증을 하셨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계신 그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옛사람은 죽고 우리 속사람이 살아나서 영이 살아났지 않습니까? 그러면 살아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몸속에 와서 거하시면 성령이 우리 영혼만 와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죽을 육체도 치료하여 도와주신다. 나는 그런 것을 종종 체험합니다. 몸이 굉장히 피곤하고 지치고 오늘은 강단에 서서 설교할 수 없겠다고 생각할 때도 아~ 성령이 계시지 않느냐. 성령이 죽을 몸도 살리신다고 했는데 내 몸이 죽을 것 같으나 성령이 다시 살리는 힘을 주실 것이니 성령을 믿고 나가자. 그래서 담대하게 나가서 설교를 시작하면 제일 처음에는 흔들흔들하고 넘어질 것 같으나 점점 강해져서 나중에는 성령의 힘이 몸을 나중에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두번 체험했으면 모르겠거니와 늘 체험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세상 뜨신 하용조 목사님이 저보고 조목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주일에 이 신장투석을 3번이나 하고 매일같이 죽음 직전에 서 있습니다. 나의 삶이란 죽음과의 몸부림입니다. 그래도 내가 항상 설교하러 서기만 하면 새사람이 되고 설교 끝마칠 때까지 기운이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체험을 하는데 조목사는 그런 체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해서 나도 같습니다. 나도 동창생이니까 그것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령이 도와주시는 한도 내에서는 우리가 어떠한 연약도 이길 수 있다고 내가 보증을 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성령께서는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도우심 그리고 그 다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되는데 보통 때 자기가 잘 나갈 때는 주면 잊어버립니다. 제자들이 여러분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갈 때 좋았습니다. 푸른 하늘, 조용한 물결, 순풍이 다가오니 기분이 좋고해서 예수님 필요 없었어요. 예수님을 혼자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대화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배 한머리에 손베개를 하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갑자기 불고, 파도가 치고, 물이 넘쳐서 배에 물이 스며들어오고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니까 그때 고통 속에 누구를 생각했느냐. 이제는 세상 즐거움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기를 고통에서 건져줄 예수님 이 필요했습니다. 자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사오니 우리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주님께서 일어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 즉시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은 것은 우리가 좋을 때는 우리 믿음이 세상에 있지요.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주님을 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들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예수님을 찾지 않는데 사망한 음침한 골짜기를 찾으면 주님이 같이 계시니까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있어야 살아날 것이니까. 물에 빠진 사람은 무엇이라도 잡지요? 지푸라기라도 잡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고난당할 때 예수님을 찾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여, 내가 주님을 구하니 나를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맹세도 많이 합니다. 살려만 주면 이제 주일 열심히 지키겠습니다. 십일조 꼭 내겠습니다. 전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변화 받겠습니다. 나중에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수두룩히 하지요. 그러나 고통을 당해야 자기 연약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연약할 때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점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강해서 주님께 의지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뿌리치면 주님이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제가 늘 D.L.무디 목사님과 그 딸의 이야기를 하는데 D.L.무디 목사님이 그 딸을 데리고 얼음판을 지나갈 때 그 딸이 아버지 손 놔. 내 손 잡지마. 나도 걸어갈 수 있어. 아버지가 위험한데 위험한데... 잡지마! 잡지마! 그러다가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쾅 찧었습니다. 그러자 우니까 아버지가 손을 탁 잡았습니다. 가다가 미끄러지면 아버지 손에 달랑 달리고 달랑 달립니다. 그가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었기 때문에 아버지 손을 잡는 것입니다. 안그러면 아버지 손을 잡지 않아요. 여러분도 엉덩방아를 찧어야 예수님의 손을 잡습니다. 고통스러워야 예수님의 손을 잡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으면 예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와서 여러분을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팡이는 예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이 체험되게 만들어 주시고 막대기는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체험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격이 변화돼요. 한대 얻어맞고 고통을 당하고 나면 아이구 옛날에 잘못해서 고통당했으니 그런 것 안당해야 되겠다. 그래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고통 당한 만큼 변화되는 것입니다. 고통 당하지 않고 변화된 사람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아무런 고통없이 편안하고 안락한 중에서 예수 믿는 사람 몇사람 있습니까? 여러분 누구든지 손가락 밑에 바늘이 들어가도 가시가 들어가도 아팠으니까 예수 믿고 나왔지. 모든 것이 편하고 좋았으면 안 믿을 사람 많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를 믿고 변화시키는 대는 고통이 필요한데 하나님이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고통 밖에 못받을 것 같으면 초등학교 정도밖에 안주시는 것입니다. 중등만 하면 중등, 고등학교 정도되면 고등 고통, 대학이면 대학같은 고통, 고통을 당할수록 많이 깨어지고 그릇이 커지고 인격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당치 못할 것은 안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10절에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할 때 주님이 강하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나를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하다는 것은 내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지날 때 약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보십시오.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가 약해서 흔들릴 때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를 통해서 대신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방언기도요. 방언기도는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못하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우리를 성령의 기도까지도 도와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자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와서 계시므로 성령과 인격적인 교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주님께서는 떠나가실 때 우리에게 주님과 똑같은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겠다고 했는데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으로써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인격자이기 때문에 교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할 때 결혼식만 하면 부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죠. 그러나 그 다음부터 대화가 있어야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같이 살면서 좋은 일과 슬픈 일을 같이 나누고 이야기 하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생활을 하나로 살아가는 대화가 있어야 부부가 되지 그냥 결혼했다고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여러분 관심을 기울여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와 대화를 하려면 관심을 기울여야 돼요. 그냥 직장에 와서 웃통 벗어 놓고 밥줘! 밥 먹고 난 다음 자자!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밥줘! 아침만 먹고 그냥 간다! 하면 가고... 그렇게 하면 그 부부가 올바른 가정생활이 될 것이냐. 안되는 것입니다. 부인도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고 아침밥만 먹으면 빨리빨리 청소해 놓고 난 다음에 자기 친구들과 놀러 가고 모임에 가고 혹은 직장에 나가버리고 늦게 들어와서 저녁에 남편은 밖에서 먹고 오시오. 나는 오늘 바뻐서 못들어옵니다. 그와 같이 하면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깨어집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깨지는 이유는 대화가 없습니다. 남편도 아내를 모르고 아내도 남편을 모르고 좋은 일도 나누지 못하고 슬픈 일도 함께 짊어지지 못합니다. 대화가 안되니까. 그저 동거인으로 있다가 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만날 때도 별볼일 없이 만났겠지만 헤어질 때도 슬픔도 없이 헤어지는 것입니다. 동거인이었다가 바이바이하면 그것뿐인 것입니다. 오늘날 성령을 그와 같이 모시고 있으면 안됩니다. 예수 믿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냥 계시는가보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신 것을 관심을 기울이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감사하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을 도와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원하고 힘을 주시기를 원하고 기름부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면 성령께서 외롭게 혼자서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혼자서 대화가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기를 원하시지만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속에 계시므로 우리가 대화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받고 방언 받았으니 그로써 다 되었습니다. 그것 아닙니다. 제가 50년 목회 동안에 세계 다니면서 가장 깨우치기를 원하시는 것은 성령님이 살아계신 인격자이므로 인격자로 대우하라. 내가 여러분 집에 왔는데 환영도 하지 아니하고 있을 곳으로 안내도 안해주고 그냥 팽개쳐 버리면 당신 집에서 나가지 집에 있겠는가. 푸대접하는데 왜 있겠는가. 성령이 모든 사람 속에 슬퍼하는 것은 푸대접을 한다. 인정도 아니하고 환영도 하지 아니하고 모셔들이지 아니하면 어떻게 역사하느냐. 오늘 저는 여러분 앞에 섰지만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저희 속에 충만합니다. 제 입술을 잡고 있는 것을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 저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강단에 올라오기 전에 성령님 함께 갑시다.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 나는 성령께 의지합니다. 함께 나가십시다. 디어 홀리 스피릿! 렛츠 고, 렛츠 고 투게더!(Dear Holy Spirit! Let''s go, let''s go together!) 함께 갑시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함께 갑시다. 시장도 함께 가고 학교도 함께 가고 사업도 함께 하고 염려도 함께 하고 성령님 함께 도와주시옵소서. 기도도 혼자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성령님 기도하오니 기름부어 주셔서 성령님이 기도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생활에 성령님은 돕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아니하면 여러분 손해입니다. 성령님은 아무것도 안하기 위해서 와 있지 않습니다. 돕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도우시면 몸이 찌릿찌릿 하든지 몸이 흔들리든지 떨리든지 해야지요. 대개 주님이 몸을 떨리게 한다든지 찌릿찌릿하게 하는 사람은 아주 신앙이 어린 사람이 그렇게 하지 성장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무 소리도 없고 느낌도 없고 아무 일도 안한 것 같지만 성령님은 여러분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듯 모르는 듯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공기가 있지 않습니까? 공기가 꼭 바람이 되어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기가 있는 것 느끼지 않아도 항상 공기가 있기 때문에 숨쉬고 살지 않습니까? 폭풍우가 되어서 불어오고 나무가 뽑히고 집이 날라가고 그렇게 해야 바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특수한 때고 조용하고 소리도 없이 느끼지 못해도 공기가 있어서 숨쉬고 사는 것처럼 성령님은 지금 여러분과 잠잠히 계신 것입니다. 고요하게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도움을 청하십시오. 도와주십니다. 안 믿는 사람은 성령이 안계시지만 여러분은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초인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다른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도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가운데 있을지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와 같이 있고 사랑이 같이 있어도 이는 성령의 교통을 통해서 너희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교통하면 예수님의 은혜를 퍼부어 주시고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체험하게 해주시는 것인데 성령이 교통 안하면 예수님의 은혜도 사랑도 체험하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성령과의 교통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감정도 달라지고 소원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7절로 10절에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곧 옛사람 어떤 사람이냐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이렇게 옛사람을 벗어버리는데 내 힘으로 못벗고 성령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옷도 자기 마음대로 벗었다가 입었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돕는 자가 필요해요. 옛날에 윤치영씨가 나이 많으시면서 골프장에 운동하러 나와서 혼자서 운동을 하는데 제가 친해서 저하고 늘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한국에 저명한 지도자 아닙니까? 그가 하는 말이 조목사, 내가 고백을 하는데 마누라 있을 때는 필요한줄 몰랐는데 없고 나니까 너무나 너무나 필요해. 뭐가 필요하냐고 하니까 나 혼자 양말을 신을 수가 없어. 마누라 있을 때는 낑낑 거리면서도 양말을 신겨주고 옷도 벗겨 주고 옷도 입혀 주고 그렇게 해주었는데 마누라 없으니까 당장 양말을 나 혼자 신으려고 하니까 양말을 신기가 얼마나 힘이 들고 옷벗기도 힘이 들어서 겨우겨우 옷을 벗고 옷을 입는다네. 그러니 마누라 있을 때 중요한 것 알아라. 죽고 나면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성령도 우리에게 옛사람을 벗었는데 여러분 힘으로 못 벗어요. 여러분 힘으로 분한데 삭힐 수가 없고 성이 나는데 잠재울 수 없고 악의와 비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이 나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는데 성령이 도와주시라고 부탁하면 성령이 와서 벗겨 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분함도 가라앉혀 주시고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입술의 부끄러운 말도 제하여 주시고 거짓말도 제하여 주시고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감정과 소원과 생활이 달라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안되니까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4. 세상 언어와 천국 언어 마지막으로 우리의 세상의 언어와 천국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어는 마음의 표현의 도구인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고 했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말합니다. 말로써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 언어는 세속의 길, 천국 언어는 천국문화의 가슴을 안고 있는 것을 밖으로 내는 것입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4)고 말한 것입니다. 말과 성품은 동반자인 것입니다. 말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렇게 합니다. 말이 흉악한 말을 하고 악한 말을 하고 상처입힌 말을 하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속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말이 고운 말, 아름다운 말, 사랑의 말, 깨끗한 말, 신령한 말을 하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자기 친구도 환경도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고 말한 것입니다. 말은 여러분, 자기를 변화시키고 이웃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로 32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가 말을 통해서 이렇게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악한 말을 하고 남을 모욕하는 말을 하면은 그 마음도 그렇게 변화되고 이웃 사람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모든 악의와 함께 비방하는 말과 악독과 분냄과 떠는 것을 버리고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말을 하면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것을 받아서 여러분도 그렇게 변화시키고 이웃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말이 여러분 인격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좋다고 말하면 나도 좋아지고 이웃도 좋아집니다. 내가 나쁘다고 말하면 나도 나빠지고 이웃도 나빠지는 것입니다. 내가 못살겠다 하면 나도 못살고 이웃도 못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밉다고 하면 나도 미워지고 이웃도 미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약하다고 말하면 나도 약해지고 이웃도 약해지는 것입니다. 말은 나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말은 여러분 우리 인생에 굉장한 변화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말은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거꾸로,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 우리 뇌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 최근 연구를 통해서 증명되었습니다. 성경이 그럴 뿐만 아니라 오늘 심리학자들이 뇌를 연구해서 우리말이 참말인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미국 심리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감사의 과학적 변화를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면 뇌의 왼쪽에 있는 부분이 활성화되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재설정(reset)’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에몬스 박사는 12세에서 80세까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은 감사 일기를 매일 또는 매주 적도록 했고, 다른 사람은 그냥 아무 것이나 적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 후에 조사를 해보니까 감사 일기를 쓴 사람 중 4분의 3은 행복해지고 수면이나 일, 운동 등에 더 좋은 성과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면 그만한 변화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말과 성품은 동반자입니다. 우리말이 어떠한 가에 따라 그러한 사람이 됩니다. 평소에 고운 말, 아름다운 말, 사랑의 말, 깨끗한 말, 감사의 말 등을 하면 얼굴도 달라지고 표정도 달라지고 환경도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제가 왜 말을 이렇게 빨리 하느냐면 시간이 없어요. 마음이 급하니까 말이 빨라지고 말이 빨라지니까 마음이 더 급해지네요. 말은 우리 인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결론> 신앙생활의 결과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결국에 천당 가려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 동안에 주님 축복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지만 이것 영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의 생일이 끝나고 천국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를 본받는 인격자가 되면 그 인격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는 오직 이 땅에 살아 있을 동안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금세와 내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면 변화받고 인격으로 자라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은총을 받을 뿐 아니라 변화를 받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예수를 닮는 인격자가 되기를 목표로 하고 노력하기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지만 구원은 값없이 받으나 인격적인 변화는 노력하므로 받는 것입니다. 노력은 우리가 힘쓰고 애써야 되고 우리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하나님 말씀이 우리를 도와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성령을 의지하고 노력하고 애쓰므로 인격적인 변화를 받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는 삶을 살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