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17. 주일설교

영원과 시간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눅 9:28~36)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영원과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히 천지가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 삼차원의 세계가 천지인 것입니다. 즉 우리가 말하는 시간은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은 영원하심으로 시간에 소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시간과 공간과 물질로 제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 이것이 우리의 현실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간을 짓자 시간은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간은 줄기차게 흐르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이 호수이면 시간은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물과 같습니다. 강물은 자꾸 흐르잖아요. 그러나 호수에 들어간 이상은 물은 조용하게 가라앉아 잠잠하게 있는 것입니다. 영원에 들어가면 시간이 흐르지도 아니하고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시간 속에 살 때는 끊임없이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 후 이 우주의 시간은 마귀가 점령하고 있어서 마귀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부패되고 부정과 흑암이 꽉 들어찬 시간 속에 있습니다. 과거에도 마귀로 말미암아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시간이고 지금도 마귀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장차도 그렇게 할 것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 삶의 시간은 마귀의 수단이 되고 방법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가 지배하는 이 시간이 언제 끝나느냐. 이 세상 시간이 흐르는 것을 끝내고 나면은 마귀의 세계는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있을 동안에 세월 안에 살고 세월을 통해서 우리는 변화가 되고 변화 받고 변화되는 현실 환경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일단 이 땅의 변화된 세계 속에서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 이 세상 시간이 끝나면 영원으로 들어갑니다. 영원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변화가 없습니다. 흐름도 없습니다. 구원받은 그대로 천국에서 영원히 삽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이 땅에서 구원 못 받았으니 다시는 저 세상에 가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저 세상에 가면은 시간도 변화도 없습니다. 시간과 변화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우리가 체험하는 것이지 이 세상을 떠나서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현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현세가 지나고 내세로 들어가면 영원한 세계가 전개되면서 시간도 변화도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제2의 기회가 없습니다. 오직 영원히 영원히 형벌 받을 따름인 것입니다.

<본론>
1.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시고 변화산상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그들 앞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었습니다. 그 당시에 모세는 세상을 뜬지 2천 년 가까운 전의 사람이고 엘리야는 천 년 가까이 전의 사람인데 분명히 모세는 2천 년 전에 죽었고 오늘날로 계산하면 4천 년 전이지요. 엘리야는 3천 년 전에 구름 타고 올라갔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시간을 초월해서 공간을 초월해서 그들에게 나타났는데 여전히 모세요, 여전히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였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보여준 것은 일단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어린 아이로 태어나고 젊음이 있고 장년이 있고 노년이 있고 죽지만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존재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 옛날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니 영원을 입은 모세, 영원을 입은 엘리야가 예수님께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놀랬습니다. 주님 이곳이 참 좋습니다. 여기는 보니까 죽는 것도 없고 늙는 것도 없고 변화도 없고 영원한 모세요, 영원한 엘리야요, 영원한 예수님이요, 영원한 우리들이 되어 있으니까 여기서 초막을 짓고 여기서 함께 삽시다. 그때 구름이 내려와서 그들을 덮었고 하나님 음성이 들려오기를 너희는 내 사랑하는 아들 예수의 말을 들어라. 그리고 난 다음 구름이 벗어지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우리 산 아래로 내려가자. 왜, 산 아래는 시간이 흐릅니다. 과거가 현재, 미래가 흐르고 젊음이 늙어지고 늙음이 죽음을 가져오게 되고 병든 자가 생기고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싸움이 있고 저주가 있고 절망이 있는 변화무쌍하고 흑암의 세력이 꽉 들어차고 파괴와 고통이 있는 세계로 주님께서 내려가자! 그것은 상징적인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영원에 그냥 계셨으면 좋았을 것인데 왜 산 아래 이 흑암의 세상에 내려왔느냐. 이 시간의 변화무쌍한 고통의 괴로움 속에 사는 사람들을 건져주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기 때문에 주님은 사람들과 같이 살기 위해서 내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 아래로 내려오자 귀신 들린 사람이 있고 병든 자가 있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예수님은 돌보아 주시고 그들의 짐을 짊어지시고 그들과 함께 삶을 이끌어 나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이가 예수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과 같지 않아요.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산 위에서 보았지 않습니까? 모세도 엘리야도 영원의 세계 속에서는 죽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으로 빛을 발하고 나타나시자 2천 년 전에 세상을 뜬 모세도 여전히 젊은 모세로 천 년 전에 떠난 엘리야도 젊은 엘리야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 여기에는 영원한 세상이구나. 그 영원의 세상을 가진 예수님께서 육신을 쓰고 시간 속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들어와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시간 속에서 고통하는 우리의 짐을 짊어지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시간 안에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 어릴 때가 있고 젊을 때가 있고 중년이 있고 노년기가 있고 죽습니다. 시간 안에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태어나서 성장하여 죽는 과정의 시간 안에 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현실의 우리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 육체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생활도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난 세계는 마귀가 죄로 인하여 사망의 세력으로 지배하는 세계요,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인간은 이 암울한 시간이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도 마귀의 지배하에서 고통당했는가 하면 장년이 되어도 마귀의 세력하에 있고 늙어도 마귀의 세력하에 있다가 세상을 뜨는 비극 속에 우리는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 위에 ‘삶’이라는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쏜살같이 달리는 시간의 강물 위에서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지납니다.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과거를 돌이킬 수 없고, 현재를 붙잡아 놓을 수 없으며 미래를 비껴서 나갈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하여 야고보서 4장 14절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인생의 슬픈 현상을 베드로는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결국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이며, 죽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한 부자가 저명한 학자를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의 묘비에 새겨 넣을 좋은 문장을 하나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학자는 그에게 어떻게 살아왔는지 과거를 설명해 달라고 하니까 그 부자가 입에 침을 튀기면서 그가 살아온 자랑스러운 과거를 설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을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학자가 다 듣고 난 후에 아~ 과연 당신 많은 일을 이루었군요. 그러나 무덤 묘비에 쓸 문장은 내가 생각해 보니까 세 구절밖에 없습니다. 나는 태어났다. 나는 살았다. 나는 죽었다. 그 중간에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도 다 바람같이 사라져 버리고 없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해도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서 태어나 살면서 고난을 겪고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그래서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융은 우리 시대에 가장 심한 노이로제는 허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태어났다 자랐다 죽었다 밖에 없는 허무한 인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장하여 죽는 시간 안에 살며 변화를 체험하지만, 누구나 죽음이라는 시간의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시간 안에 있는 인간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습니다. 죄악의 고통, 허물의 고통, 질병에 잡혀서 고통당하고 가난과 저주와 절망의 고통,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간 안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시간적인 존재로서 사람이 되어 오신 이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예수님께서 육신을 쓰고 온 이유는 여러분과 나를 시간 안에서 고통당하는 여러분과 나를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올 필요가 없는 분인데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때문에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 어떻게 사랑했느냐.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그 아들 예수님이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기까지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여러분과 나를 예수님께로 끌어가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끌려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잘났기 때문에 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훌륭하기 때문에 와 계신 것도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롭고 거룩하기 때문에 와 계신 것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나는 너보다 낫다고 자랑하지만 하나님 볼 때는 별로 자랑할만한 비교될 처지도 못됩니다. 사람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으며 못났으면 얼마나 못났습니까?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왜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느냐.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이 사랑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 누구세요? 나는 사랑이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합니까? 사랑은 사랑받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고 찾아오시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주님은 어찌 할 수없이 여러분과 나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과연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당에 왔는데 하나님이 계실까? 하나님이 날 돌봐 주실까? 그것은 마귀가 갖다 주는 의심인 것입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이 예수님은 여기에 와 계십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이 여러분의 호소를 들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어찌할 도리 없이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므로 정말로 너무나 억울할 정도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강제적으로 거머쥘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 안에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시간적 존재로서 사람이 되어 오신 이유가 바로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인 것입니다.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인데 변화무쌍한 육신이 되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린 아이로 태어나서 청장년으로 자라나시고 시간 안에서 아담이 저지른 죄악을 인간을 대신하여 청산하시고 영생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데 인간으로 오셔서 예수님은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셨고 피곤해 하시고 주무셨으며 민망히 여기시고 근심하며 노하시고 인간적인 희로애락, 감정과 눈물과 땀을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한없는 고통을 당하셨고 우리가 당하는 여러 시험들을 겪으셨으며 죽음까지도 당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여러분과 나를 건지시기 위해서 대신 책임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대속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의 대속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돼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은 여러분과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과 똑같이 오셨으나 오직 죄가 없으신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죄인이 죄인의 죄를 짊어질 수 없지요. 인간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오셨으나 죄가 없으신 것입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질 수 있어요. 내가 빚이 없어야 빚 있는 사람의 빚을 대신 감당할 수 있지 나도 빚쟁이면 이웃의 빚을 어떻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까? 타락한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처럼 사셨으나 죄는 예수님께 전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잉태되시고 죄 없이 태어나시고 죄 없이 33년을 사신 분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와 똑같이 이 세상에 슬픔, 고난, 괴로움을 겪고 살았지만 우리는 죄를 다 지었는데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고 죄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3장 5절에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인간의 죄와 허물, 병과 저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청산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내가 다 이루었다는 것은 여러분과 나의 죄를 다 청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모든 불의를 청산하고 우리의 질병의 고통을 청산하고 우리의 저주와 가난과 슬픔을 청산하고 우리의 죽음과 절망을 청산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너희들이 이룬 것이 아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가면 주님이 여러분과 나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다 청산해서 주님 앞에 우리를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이니까 우리 인간과 같이 오셔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마귀의 세력을 다 옷 벗겨 버리고 폐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십자가에서 폐하여 버리고 마귀는 십자가에서 모든 무장이 해제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를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신으로 생활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무장은 예수로 말미암아 해제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할 때 마귀의 무장은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우리가 이 사실을 알면은 마귀에게 저항해서 우리 해방과 자유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죄의 힘에서 해방되고 이 세상의 불의의 세력에서 해방되고 병의 힘에서 해방되고 저주에서 놓여남 받고 죽음과 절망에서 놓여남을 받을 수 있는 자유가 여러분에게 주어지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자유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인으로서 생각하고 자유인으로서 꿈꾸고 자유인으로서 믿고 자유인으로서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젠 더 이상 죄와 허물, 병과 저주, 죽음을 걸머지고 고난당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1858년 독일에서 유학하던 영국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영국에서 목사님으로 있는 주의 사업하는 주의 종의 딸이었지만 이름뿐인 기독교 신자였었습니다. 독일로 유학을 와서 마음대로 살고 주님께 나오지도 않고 멀리멀리 떠나 있었는데 하루는 친구의 초청을 받아 친구의 별장에 갔는데 굉장히 큰 별장에 복도를 지나가는데 거기에 그림이 한 폭 걸려 있어요. 그 그림을 보니까 유명한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으로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채찍에 맞고 모욕과 침뱉음을 당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을 보니까 그 밑에 글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너를 위해 이렇게 고난을 받았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느냐?” 그만 이 글자를 보는 순간에 성령께서 그 마음속에 화살처럼 임하여서 거꾸러졌습니다. 통곡을 하고 울고 또 울고 울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그림에서 받았던 감동과 회개를, 그리고 앞으로 헌신하고 살 결심을 한편의 찬송시로 적었는데 그 찬송가가 바로 311장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다같이 이 소녀와 함께 찬송가 311장을 한번 불러 보십시다.

1.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2.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 찢고 피를 흘리시고 난 다음에 변화 많은 이 세상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세상으로 들어가고 만 것입니다. 이제 영원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고 변화되지 않는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이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았지요. 어린 아기로 태어나서 젊은 시절을 지나고 장년기에 이르러서 하나님 사업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이제 영원한 세상으로 들어간 이상은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계신 것입니다. 처음 오실 때는 벌거숭이 아기로 오셔서 아무 공로도 없고 메달도 없었습니다. 그냥 벌거숭이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제물이 되고 난 다음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올라갈 때는 많은 메달이 거기에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용서를 허락하시고 의롭게 해주신 메달이 달려있고 허물을 사하신 메달, 병을 고치신 메달, 저주를 청산하신 메달, 부활 영생의 메달을 가슴에 다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벌거벗고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용서와 의를 주시는 공로를 가지고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주시는 공로를 가지고서 부활하셨고 우리를 치료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부활하셨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는 은총을 가지고 부활하셨고 영생복락을 주는 능력을 가지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제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아, 예수님 2천 년 전에는 그렇게 기적을 역사했지만 오늘날은 예수님이 그렇게 역사하지 아니한다. 세월이 지나갔다. 과거에는 그렇게 했지만 현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미래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라파 교회가 잠들고 죽어버린 것은 어제의 예수만 있지 오늘의 예수는 없습니다. 어제의 예수 이야기만 듣고 오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온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실 때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영원한 예수님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살 동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지 죽고 난 다음에 저 세상은 영원한 세상인데 저 세상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실 때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동일하게 죄를 용서하시고 동일하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동일하게 우리에게 병을 고쳐 주시고 동일하게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동일하게 영생천국을 주시는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메달은 하나인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예수님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메달을 달고 오시는 것입니다.

3. 올바른 이해
예수님이 이루신 열매는 이제 예수님과 영원히 같이 있고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옛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용서를 같이 가지고 부활하셨으며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부활 하셨으며 치료를 가지고 부활하셨으며 축복을 가지고 부활하셨으며 천국 영생 복락을 가지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발가벗고 이 세상에 응아하고 울고 태어난 빈 손든 예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위대한 구원자요, 위대한 성령충만한 자요, 위대한 치료자요, 위대한 축복자요, 위대한 영생복락을 주는 하나님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볼 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영원한 예수님으로서 이와 같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지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주는 변함없는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모셔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는 이제 부활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과거의 부활이요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예수님이기 때문에 영원히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셔 들이면 오중복음, 삼중축복은 예수님과 함께 들어오고 예수님과 분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외친 것은 아담이 망쳐 놓은 시간과 공간, 물질의 세계를 주님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책임지고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이 세상은 옛날 아담이 만들어 놓은 세상과는 다릅니다. 옛날 아담은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날뛰었는데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다 철폐하시고 무장 해제시켜 버리시고 주님은 죄를 청산하시고 불의를 청산하시고 병을 청산하시고 저주를 청산하시고 죽음을 청산하시고 부활이요 생명으로 여러분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오늘날 예수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다가온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의 이미지가 새로워진 것입니다. 새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새로워진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예수님 안에서 시대가 새로워졌는데 이 예수님이 오늘날 교회 와 계시고 우리나라에 와 계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나타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 속에는 성령께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교인들이 모인 곳에는 성령께서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운행하는 곳에는 새로운 창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된 소식, 즐거운 소식이 증거되고 성령이 운행되는 곳에는 포로된 자는 자유를 얻게 되고 성령이 운행하는 곳에는 영적 영안이 열리게 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눌린 자가 해방과 자유를 얻고 치료받게 되고 성령이 운행하는 곳에는 자유가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항상 기적이 따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하시고 영원하신 주님께서 영원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요한일서 3장 8절에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제 여러분 생애 속에 있는 마귀를 멸해버린 것입니다. 다시는 마귀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마귀에게 억압당하지 마십시오. 협박 공갈을 당하지 마십시오. 마귀는 여러분 주위에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것입니다. 훼방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억압하여서 정신적으로 억압을 당하여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점령해서 우울하게 만들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여러분을 마귀화 만들어서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당연히 쫓아내고 멸해 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시간 속에 있지 않습니다. 영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과거 2천 년 전에 예수님 시간 속에 계시던 예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시간 속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난 다음 영원한 주님으로 환원하셨기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변화 없는 영원한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죄와 마귀의 권세를 영원히 멸하시고 이제 영원한 구주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 우리 함께 읽어 보십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제 우리는 누굽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가는 변화 받는 사람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우리도 변화무쌍한 세상에 삽니다. 태어나서 청년, 장년, 노년이 되어서 사라지는 운명을 가진 장막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속에 누가 계십니까? 어제의 예수님이 계십니까? 장차 오실 예수님이 계십니까?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 속에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어제 옛날 역사적인 예수님이 아니요 장차 미래에 바라고 목을 빼고 기다릴 예수님이 아니시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이제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빼앗고 손에 영원한 생명을 지닌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 변화 받은 무상한 인생 시간 속에 사는 우리에게 영원히 들어와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시간적인 존재는 인간으로서 태어났기 때문에 시간적인 존재이지만 예수님 영원하신 예수님이 들어오셨기 때문에 또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생각 속에 영원을 생각하고 영원히 꿈을 꾸고 영원을 믿고 영원을 입으로 말할 때 여러분 영원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우리는 외로운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혼자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영원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시간 속에 있으면서 항상 영원에 점령되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이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성령의 역사가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치료가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축복이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눈에 안 보이는 영원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참 희한한 존재요, 비상한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옛날 사람이 아니고 영원을 품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으로 이 세상의 죄의 노예가 되고 허물의 노예가 되고 병들고 고통당하고 마귀의 종이 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벌벌 떠는 그런 사람은 시간 속에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시간 속에 사는 사람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난 다음에 마귀가 이 시간을 점령하여 저주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이 오셔서 시간 속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십자가에서 다 청산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주님이 되어서 우리 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 속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그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영원히 용서가 있고 영원히 의로움이 있고 영원히 거룩함이 있고 영원히 치료가 있습니다. 병들면 겉사람은 병이 들어도 언제나 이렇게 말하십시오. 영원한 치료가 내 속에 있다. 예수님은 나의 영원한 치료가 되신다. 그러므로 나는 치료를 가지고 이긴다. 영원한 축복자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저주가 있고 환경이 고달프고 금전적인 어려움이 다가오고 사업적인 어려움이 다가올지라도 여러분은 항상 나는 영원한 축복을 가지고 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영원한 축복이 있으니 영원한 축복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희안한 능력이 여러분을 점령해서 영원한 축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이 다가와도 겁나지 않습니다. 이미 영생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영원한 예수님을 믿고 천당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안개와 구름이 덮고 있는 것입니다. 안개와 구름이 덮고 있으면 그 밑의 동리에는 언제나 비가 있고 물이 출렁거리고 가뭄이 없습니다. 곡식이 잘됩니다. 구름과 안개가 덮어 있어야 그 밑에 물이 흐르고 곡식이 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에는 눈에 안보이지만 영원이 덮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영원한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영원한 영광이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들어가도 영원이 있고 나와도 영원이 있고 일어서도 앉아도 영원이 있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용서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거룩한 성령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건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축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는 물러갔습니다. 영원히 축복 받았습니다. 영원한 축복의 예수가 여러분을 점령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영원히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타난 모세,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의 모세가 예수님께 나타날 때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엘리야도 공중에 올라갔지만 그대로 변함없이 나타난 것은 영원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영원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하기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요. 그들은 하나님 앞에 그대로 살아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영원한 하나님을 모셨기 때문에 여러분 이제는 산 위에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산 밑에 내려가서 병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과 고통에 휘몰아치지 않습니다. 산 위에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같이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이제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영원한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세요. 여러분은 일시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일시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영원한 존재이다. 그러니 여러분 영원한 여러분을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몰라도 여러분은 영원한 존재요, 영원한 축복의 근원인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그분이 여러분 속에 생명의 근원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러면 너희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영원한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목마름을 채워주시고 생수의 강이 되어 주시고 축복과 건강의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시고 쓴물을 달게 하는 영원한 은총이 되어 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원한 예수님과 늘 대화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영원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영원히 변치 않는 생명을 가지고 있고 영원히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과 함께 살므로 여러분은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보통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조용기 목사는 육신으로는 75살 먹은 노인이지만 영적으로는 영원한 예수님과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인간일 뿐 아니라 영원하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을 이미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 변하지 않는 세계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절대 안 변하는 것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안 변하는 것은 영원한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온갖 세상 힘이 들어와서 넘어뜨리고 짓밟고 죽이려고 해도 영원한 예수님이 이미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들어와 있으므로 죽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사 함께 하나님 보좌에 앉아있는 것이므로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나님의 특이한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새 것이 된 것입니다. 영원을 모신 여러분 자신이 되었으므로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을 생각하고 깨달으라고요. 생각이 달라져야 된다구요. 그리고 이것을 꿈꾸십시오. 항상 여러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셀프 이미지는 어떻습니까? 자화상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그리스도가 영원히 여러분 속에 계신 영원화된 여러분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어요. 하나님은 거짓이 없기 때문에 맡기고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말해요. 이제 영원을 가진 사람처럼 말해야 돼요.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 나는 성령을 모신 거룩한 사람이다. 나는 마귀와 병을 이긴 사람이다. 나는 저주와 가난을 이긴 사람이다. 나는 천국 영생을 얻은 사람이다. 영원을 가진 사람처럼 말해요. 여러분은 영원과 일치가 되어 있으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이 볼 때는 제가 육신으로 살지만 저 생각하는 것이나 꿈꾸는 것이나 믿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영원한 예수님과 같이 말하고 있다. 희한하게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이 나타난다. 왜냐, 우리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무쌍한 시간 속에 살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니 여러분의 가슴 속에 계신 예수님을 놓치지 말고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 변화무쌍한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으나 우리 속에 변화를 이기고 현실세계의 모든 슬픔과 저주를 이기고 부활하신 영원히 계신 예수님, 이미 예수님 용서의 예수님,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예수님, 우리 치료의 예수님, 우리 축복의 예수님, 우리에게 영생부활의 예수님, 영원한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영원을 품은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속이 텅 빈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을 품고 영원처럼 생각하고 영원처럼 꿈꾸고 영원처럼 믿고 영원처럼 말하며 살아가는 영원의 사람들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 믿음 속에 굳세게 서서 영광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