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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1. 성찬주일설교 고난을 온전케 하는 부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12~20)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고난을 온전케 하는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잉태하여 10개월 고생하다가 아기를 낳고 보니 아기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어린 아기를 잉태해서 10개월 동안 어린 아기를 안고 다니는 그 어머니의 고생은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처절했지만 부활하지 못했으면 예수님의 고난은 죽고 그냥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활은 고난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며 승리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데에 두 가지 장애가 있어 마음에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부정하려고 아무리 연구를 해도 연구를 하면 할수록 예수님이 부활한 것이 더 뚜렷하게 되고 사도 바울 선생이 회개한 것을 부인하려고 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부인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도 바울이 회개했다는 사실이 더 뚜렷하게 증명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기 위해 연구를 했지만,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램지(A.M.Ramsay) 교수는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의 복음은 결론이 없는 복음일 뿐 아니라 전혀 복음이 될 수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은 함께 부활의 능력으로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영원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저주받은 인간의 삶을 사신 주님은 십자가 대속으로 철저히 죽으심을 맛보셨지만, 부활하심으로 인류 대속을 완성하시고 승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으로 오신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예수님은 근원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속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의 탈을 쓰고 이 세상에 오셔서 저주받은 인간의 삶을 함께 사셨습니다. 33년 동안 예수님은 특권을 갖고 살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의 몸 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아기,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쳤고 범사에 인간과 같이 기거할 피곤, 수면, 사랑, 긍휼, 슬픔, 시험,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었지만 의인으로써 완전한 사람이지만 사람으로서 당하는 고통을 다 겪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로 18절에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는 것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다 겪고 살아왔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사정을 아는 것은 젊은 시절을 지났기 때문에 그렇고 장년의 사정을 아는 것은 장년의 세월을 지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내가 당하는 고통을 안 당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철저히 맛보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죽었고 극악의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로 24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죄를 주님은 대신 짊어지고 나무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대속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그냥 무덤에 들어가서 사라졌으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청산하지 못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죄 때문에 죽었으면 죄를 다 갚았으면 살아나야 죄를 갚았다는 증거가 되는데 예수님이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죄가 다 청산되고 불의가 청산되고 질병이 청산되고 저주가 청산되고 죽음이 청산되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 때문에 죽으셨기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바로 오늘 여러분에게 여러분 예수 안에서 죄사함을 받았고 거룩함을 얻었고 치료받았고 축복 받았고 영생복락을 얻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6절로 20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주님께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제 모든 믿는 자에게 증명이 된 것입니다. 너희도 살아난다. 너희 위해서 내가 죽었고 너희 위해서 부활했으므로 이제 내 안에서 너희들은 다 살아난다는 보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국민일보에 연재되어 있는 “겨자씨”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어 보았었습니다. 한 마을에 꽃을 파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외롭게 혼자 삽니다. 자식도 없이 살며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파헤쳐 고난의 흔적이 뚜렷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고 친절하고 즐거워하며 삽니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늘 즐거워합니까? 고통이 없습니까?” 그러니까 “나도 사람인데 왜 고통이 없어요? 신랑도 없고 자식도 없고 혼자 사는 내가 왜 고통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늘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내게 고통이 다가오면 예수님도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니 나는 사흘만 참자. 고통을 사흘만 참자.” 그래서 하루 참고 이틀 참고 사흘만 참으면 반드시 고통은 지나가고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할머니는 “나는 항상 사흘만 참고 기쁨이 올 것을 기대하고 사흘 만에 기쁨이 오므로 즐거워하고 산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참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 고통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부활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죽음으로 여러분의 사망을 철폐하시고 살아남으로 여러분의 부활의 생명의 근원이 되셨으므로 참고 견디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속에 부활하여 일어나시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의지할 때 꿈과 소망을 안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우리들이 체험하는 사망의 골짜기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망의 골짜기를 안 통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다 사망의 골짜기를 통해요. 죄의 절망, 허무의 절망, 죽음과 무의 절망, 고독의 절망, 질병의 절망, 가난과 낭패의 절망, 모두다 절망이 없는 사람 한 사람도 없고 자기 힘으로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절망을 이기고 일어난 부활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 절망에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빛을 비춰서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내 동굴에 주님이 들어와야 터널로 변화시켜 주는 것처럼 내 소망이 예수님께로부터 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면 절망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두움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어도 빛 되신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우리의 마음속에 빛이 가득해지고 절망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둠이 적으면 빛도 적고 어두움이 짙으면 빛도 더 강한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이 적으면 그리스도의 도움도 적고 고통이 크면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도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대 인간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 우리를 내버려 놓지 않고 주님은 절대 희망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우리가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은 주님이 나타날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있어야 생명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적고 큰 죽음의 고통이 다가오는 것은 그릇이 준비되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은 그릇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드러나기 때문에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드러나기 때문에 폭풍이 있는 곳에 고요함이 드러나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의 생활 속에 크고 적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그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생명을 담아 놓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릇이 적으면 생명의 생수도 적고 그릇이 크면 생수도 많이 담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사망이 여러분과 나에게 훼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10절에 보면 함께 읽어 보십시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 정도로 고통이 다가오는 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하나님이 그렇게 섭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이 고통을 당해 봐야 건지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련을 당해 봐야 시험에서 건지는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병들어봐야 치료하는 하나님을 알 수가 있고 사업에 낭패와 실망 당해봐야 사업에서 축복과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둠 후에 빛이 오고 바람 분 후에 조용하고 추운 후에 따뜻함이 오는 것과 같이 반드시 환난과 고난과 시험이 여러분을 헤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면 예수님은 그 부활하신 능력으로 승리로써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용서가 되시고 거룩함이 되시고 치료가 되시고 축복이 되시고 영생복락이 되시는 부활하신 승리자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철저히 죽었으나 또한 철저히 부활하시므로 우리의 생활 속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절대절망에 절대희망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생명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체험해야 돼요. 용서받은 체험을 해야 예수 믿고 용서 받는다고 말을 할 수 있으며 성령 받은 체험을 해야 성령 받으라고 말할 수 있으며 병 낫는 체험을 해야 병든 자에게 예수 믿고 고침 받는다고 말할 수 있으며 축복을 받는 체험을 해야 가난하고 헐벗고 창피한 사람에게 주님이 축복해 주신다고 증거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살아있는 생명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의 절대희망을 우리가 증거하기 위해서 사망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주님이 허락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2절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예수의 죽음과 같이 우리가 죽음을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함이라.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의 부활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실 수 있지 살아있는 나사로 보고 나사로야 나오라 그럴 필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죽음의 체험을 할 때 주님이 와서 살아나라! 부활하라! 건강하라! 축복받으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분과 나를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위해서 죽음에 넘겨지면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 오늘 오실 때 마음에 염려, 근심, 고난, 절망을 가지고 온 사람 많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여러분 마음에 희망이 되도록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몸이 아파서 오신 것은 치료를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슬픔을 가져온 것은 기쁨의 예수님이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어두움이 우리에게 실패가 되고 절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두움 가운데 빛이 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절대희망이 우리의 사망을 철폐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생활을 알아야 될 것은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함께 죽었으니 예수 부활은 바로 내 부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죽음이 다가오면 반드시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5절로 8절에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그리스도가 우리 허물을 짊어지고 함께 죽어서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함께 부활해서 주님은 이미 우리를 일으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법적으로 보면 여러분,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예수 안에서 보좌에 이미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장막은 무너지면 직행으로 천당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이 은혜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은 것은 여러분이 선한 일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고 잘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고 난 다음에 착하고 선하게 되는 것이지 착하고 선하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못난 그대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선물로 받았습니다. 행위로 받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선물로 받았으니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제 구원받은 사람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목욕을 깨끗이 했기 때문에 더 깨끗하게 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요. 빨래한 좋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더러워지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게 된 여러분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올바르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생명의 꿈과 희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의 부활을 내 부활로 받아들이므로 생명의 꿈과 희망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옛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 내가 죄의 포로가 된 것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불의의 포로가 된 것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병의 노예가 된 것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저주의 노예가 된 것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사망과 음부의 포로 된 것도 지나가 버렸습니다. 새것이 되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새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사진을 찍으십시오. 옛사람은 아닙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시므로 예수님처럼 이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복구했었습니다. 영적인 존재로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었지만 여러분 영적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여러분은 육신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의 몸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더러운 것으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차고 영광스러운 미래가 창창하게 예비되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복구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능을 다시 복구시켜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여태까지 다스림을 받고 살았습니다. 죄의 다스림을 받고 환경의 다스림을 받고 고통의 다스림을 받고 좌절과 낙망의 실패의 다스림을 받고 항상 우리말은 나는 못 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여러분과 내가 다스리는 자로 지위가 복구된 것입니다. 다스림을 받는 우리 생활은 해방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어 이제 다스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죄악을 다스리고 세속을 다스리고 병을 다스리고 마귀를 다스리고 저주를 다스리고 죽음을 다스리고 절망을 다스립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는 물러가라! 떠나가라! 내가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뒤로 물러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원수가 다가오면 피하지 마십시오. 원수를 향해서 등을 돌리지 마십시오. 정면으로 대결해서 싸우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마귀를 물리치십시오.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우울증을 가져오는 마귀를 물리치십시오. 육체의 병을 대결하십시오. 생활의 저주를 물리치십시오. 우리는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복지를 주시고 난 다음 싸워서 점령하라고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점령한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혈로 값 주고 산 영적인 천국은 여러분이 이제는 믿음으로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도 점령하고 평안도 점령하고 물질적인 삶도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싸워야 돼요. 싸워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반드시 승리는 우리의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다스리는 삶을 살게 되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외롭고 고독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1절로 22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이제 아버지가 하나님이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 구주가 되시고 성령이 우리 보혜사가 되셔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가 같이 지내게 된 것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같이 못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예수님의 품에 안기고 성령님을 품에 모시고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사랑받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해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할 때 행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구주라 부르고 성령님을 감사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면 함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5절로 7절에 여러분께서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이제 여러분 모두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냥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번 말하십시다. 아빠 아버지. 지금도 우리가 장성했기 때문에 우리 친아버지 보고서 아빠 아버지라고 말 못하잖아요. 쑥스럽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어린 아기같이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올 때 어른처럼 점잖고 장엄하게 오기를 원치 않습니다. 손 벌리고 아빠 아버지 아빠~ 아빠 나 도와줘. 아빠 나 고쳐줘~ 아빠 나 이 문제 해결해줘~ 이렇게 하나님은 다정하고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등하게 사랑의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 품에 안겨서 대등하게 교제하게 되고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육신의 장막집인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장차는 아버지 집에 가서 삽니다. 아버지와 따로 살지 않습니다. 아버지 집에 가서 살아요. 우리 아버지가 돌보는 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매일같이 대화하고 찬송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 아버지 집에 예수님 계신 곳에 여러분도 같이 있는 것입니다. 천사도 같이 있지 못하는 자리에 여러분 우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벌써 우리는 영적으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으며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우리가 모시고 있으며 성령이 우리 속에 와 계셔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드리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사는데 육신의 장막집 벗어버리고 천사에 받들려서 우리 아버지 집에 들어갔을 때는 기가 막힌 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고 이 세상에서 꿈꾸지 못하는 영광스러운 삶이 우리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 땅에도 즐겁고 장차 더 즐거워지고 이 땅에도 소망차고 장차 더 소망 찬 것은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철저히 대신 죽어주시고 철저히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에게 고난이 좀 다가온다고 낙심하지 말 것은 고난은 예수님의 생명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거물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만 살 것이 아니라 이웃에 전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전도하려면 전도가 안 되잖아요. 옛날 이야기처럼 별들이 해를 보고 우리는 밤에 반짝반짝 빛난다. 해가 밤이 뭐냐? 캄캄한데 우리가 반짝반짝 빛난다고 하니까 캄캄한 데가 어디 있느냐? 따라 오너라. 우리가 보여 주마. 별들을 따라서 캄캄한데 가니까 가는 곳마다 밝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해가 거짓말하지 마라. 캄캄한 데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별들이 아 이상하다? 당신이 없을 때는 캄캄한데 당신만 오면 밝아져서 캄캄함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생명만 있기 때문에 생명을 전도할 수가 없습니다. 캄캄한 데가 있어야 예수님이 밝은 빛이 비취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끔 병드는 것은 예수님이 치료를 증거하기 위해서 병드는 것입니다. 가끔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은 기도응답에서 기적을 체험하므로 증거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같이 동참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을 담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신앙정도를 봐서 주님에게 큰 아들 노릇, 큰 자식 노릇하겠다고 생각하면 다른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여러분 그릇을 준비하는데 그릇이 바로 사망의 그릇인 것입니다. 생명을 담아놓기 위해서는 사망이 있어야 생명이 증거되거든요. 그러므로 마음에 사망의 고통, 육신의 사망의 고통, 생활의 사망의 고통이 다가올 때 여러분은 하하하하 주님이 생명의 생명수를 담아서 증거하기 위해서 오시는구나. 그렇게 알고 감사해야 될 것인 것입니다. 고난이 지나가고 나면은 그것이 얼마나 큰 증거가 되고 믿음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고난이 그 당시에는 괴로우나 그것을 통과하고 난 뒤에는 그 고난이 갖다 준 깨달음과 변화에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이 아니었더라면 타락한 인간 교만과 탐욕과 욕심과 세속의 삶에서 놓여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을 때는 좋아서 좋고 좋지 않은 것은 좋게 될 것이니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좋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은 주님이 좋게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그릇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그릇으로 삼아서 좋지 않은 것을 체험하므로 말미암아 좋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사람들에게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체험한 것을 강하고 담대하게 증거 할 수 있지 체험 못한 것을 강하고 담대하게 증거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그릇을 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낙심할까 싶어서 그릇을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고 사용할 만한 사람을 선택해서 고난의 그릇을 준비해서 축복의 생수를 부어 담아서 사람들에게 대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우리가 사망을 체험하면 생명을 그만큼 체험해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달해 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으면 좋아서 좋고 안 좋으면 좋게 될 것이니 좋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으면 은총을 받았으니 좋고 시련이 다가오면 은총이 다가올 것을 기대하면서 좋고 예수 믿는 생활은 다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고 나쁜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되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죽음의 고난이 부활을 가져온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없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짊어지고 죽었기 때문에 부활했고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죽음이 다가오면 곧장 예수님 통해서 부활이 다가오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전달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임하여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취하고 넘치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뭇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이시여, 우리에게 고난이 파상처럼 다가와도 고난을 평정케 하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곧 다가옴을 감사합니다. 어두움이 오면 빛이 오고 바람 부는 날에 조용함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처럼 죽음이 있는 곳에는 부활의 생명이 반드시 다가오는 것을 알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날 위해서 죽었고 날 위해서 부활했기 때문에 예수 안에 어떤 죽음이 다가와도 부활이 와서 우리를 승리하게 만들어 주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넘어뜨릴 사망의 세력은 없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항상 예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사망의 그릇을 가지고 온 사람들마다 생명의 부활로 풍성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마음에 생명을, 육체의 생명을, 생활에 생명을 풍성하게 채워주셔서 많이 보고 감탄을 하고 많이 내게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