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8. 주일설교

예수님, 나의 목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3)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 나의 목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양은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다른 동물과 달라서 방어 무기인 날카로운 뿔도 없고 발톱도 없습니다. 그리고 공격무기도 없습니다. 목자가 항상 곁에 있어서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지고 지켜줘야지 안 지켜주면 언제나 사자나 곰의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양은 시력이 대단히 근시여서 10m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목자가 반드시 인도해줘야지 안 그러면 언덕에 떨어지든지 벼랑에 떨어지고 뒹굴고 다치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가 반드시 양은 지키시고 이끌어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에 비유되고 예수님이 목자로 비유되는데 우리가 예수님 따라서 살기 위해서는 항상 예수님을 절대 믿고 순종해야 되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스스로 보호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이 너무나 사납고 무섭기 때문에 세상과 같이 싸울 수 없습니다. 또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살고 있을 따름입니다. 내일 일을 잘 아는 예수님께 우리 일생을 맡기고 또한 우리를 지켜주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안전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렸잖아요. 양들을 사랑하는 것은 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찢어주시고 피를 흘려 주시기까지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모셨으면 우리 마음속에 항상 외워야 될 것은 내게 부족함이 없이 해주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외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족한 대로 내버려 놓지 않기 때문에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있게 해주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생각이 긍정적이 되어야 되고 꿈이 긍정적이 되어야 되고 믿음이 있어야 되고 입술로 긍정적으로 고백해야 되기 때문에 없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시기 때문에 선한 목자가 있으므로 없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충분히 있는 것을 공급해 주는 꿈을 꾸고 믿고 입술로 나는 가지고 있다. 축복 받았다. 나는 모든 것이 풍족하다. 부족함이 없다고 긍정적으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목자 되신 예수님이 그런 양들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하든지 태어날 때부터 없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없습니다. 힘도 없다. 능력도 없다. 건강도 없다. 청춘도 없다. 돈도 없다. 집도 없다. 남편도 없다. 아내도 없다. 자식도 없다. 전부 없는 것만 바라보고 없는 것을 생각하고 없는 것을 꿈꾸고 없는 것을 믿고 없는 것을 입으로 말하고 사는데 그러면 언제나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우리 목자가 있기 때문에 있다고 늘 생각하고 목자가 계시기 때문에 있는 것을 꿈꾸고 목자가 있기 때문에 있게 만들어 줄 줄 믿고 목자가 계시기 때문에 나는 모든 부족함이 없게 된다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러한 사람에게 목자는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부족함을 가지고 사는 것은 참 괴롭습니다. 그러나 목자인 예수님이 계시면 부족함이 없도록 주님이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푸른 풀밭에 누이심
그는 우리의 풀밭은 십자가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풀은 풀밭에 누이신다고 말했는데 우리 풀밭이 어디 있느냐고 찾을 필요 없는 것은 십자가 밑이 우리 풀밭인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푸른 풀밭을 만들어 놓았는데 무슨 풀밭이냐.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용서와 의의 풀밭을 만들어 놓아서 십자가 밑에서 용서를 먹고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풀밭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되고 성령충만하게 된 은혜를 먹을 수가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풀밭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고 형통의 풀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치료와 건강의 풀밭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고 우리는 치료를 받고 건강을 얻어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부활 영생 천국의 풀밭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밑에서 주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부활하고 영생천국을 얻는 약속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느 곳에 가든지 세상 사람이 모르는 푸른 풀밭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알 수가 없어요. 십자가도 모르고 예수도 모르기 때문에 어디에 무슨 풀밭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항상 주님께서 예비한 풀밭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받고 의롭게 된 풀밭이 있어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풀밭이 있어요.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풀밭이 있어요. 치료받고 건강을 얻는 풀밭이 있어요. 부활 영생 천국의 풀밭이 있어요. 그것을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우리는 항상 바라보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풀밭이 있다고 주장하고 기도로써 구하면 그대로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풀밭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이 풀밭에 우리를 누이시는 것입니다. 그냥 풀밭에서 네 마음대로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하면 누이신다는 것은 만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양들이 여러분 풀밭에 누울 때는 짐승의 공격이 없을 때 눕게 되고 충분히 먹었을 때 눕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풀밭에 눕게 하실 때는 모든 짐을 맡아 주겠다고 할 때 풀밭에 우리가 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있는데 어디 누워서 빈둥빈둥 놀 수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다 맡아 주실 때 우리는 풀밭에 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께 항상 무거운 짐을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농구 시합을 할 때 농구선구들이 볼을 끊임없이 던지지 않습니까? 볼이 오면 또 받아서 케이지를 향해서 던지고 던지는 것처럼 여러분 예수님 앞에 무거운 짐을 자꾸 던지십시오. 오면 또 던져 놓고 또 오면 던져 놓고 그래서 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맡기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편안하게 쉬도록 눕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은혜의 손길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11절에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은혜의 손길로 돌보아 주시고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예수 믿는 생활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려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제일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생활을 하고 나니까 나만 괴로울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도움이 필요한데 도울 수가 없어요. 그런데 성경에는 너희가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족함이 없게 축복을 해주시므로 우리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올바르게 먹으면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살펴보시고 우리를 통해서 축복을 준비하고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목자를 알아야 우리 마음속에 평화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뿌리가 없으면 흔들리고 언제 넘어질지 모르잖습니까? 우리는 뿌리가 있어야 되는데 세상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서 늘 흔들리지만 우리는 뿌리가 있기 때문에 뿌리에 의지해서 믿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토비 도슨이라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에서 동메달을 딴 한국계 미국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981년 2살 때 부산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미아가 되어 울고 다니는 것을 미국 콜로라도에 있는 스키 강사 부부가 입양을 해서 거기에서 자라났습니다. 한국계 미국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스키를 열심히 연습해 가지고서 올림픽에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는 마음이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뿌리를 알 수 없습니다. 양부모는 좋지만 자기 친부모가 누군지 모르니까 늘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2007년, 그는 한국에 와서 매스컴의 도움을 받아 오랫동안 못 봤던 아버지를 26년만 만났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평생에 그렇게 마음에 흡족하고 만족하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버린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키우지도 못했는데 아버지를 만나자 그렇게 마음이 흡족하고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뿌리를 찾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간 존재의 뿌리인 아버지를 찾은 것입니다.
초대 교부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당신 품에 안기기까지 내 영혼은 언제나 불안에 떠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뿌리가 없으면 불안해요. 공포가 늘 마음에 있어요. 그러나 뿌리가 있으면 내가 뛰어가서 의지할 수가 있어요. 여러분의 뿌리는 하나님 아버지인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 야훼가 여러분 뿌리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뿌리에게로 뛰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붙잡고 있으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자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은혜의 손길로 돌보아 주시고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마음속에 부족함이 없다는 그러한 인식을 가지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삽니다. 그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날 때도 나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다가 점심때도, 저녁때도 나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산다고 그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야 되고 그리고 마음속에 항상 꿈꾸고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꿈꾸어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어야 돼요.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믿어야 돼요. 그리고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함이 없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의로움에 부족함이 없다. 거룩함에 부족함이 없다. 건강에 부족함이 없다. 축복에 부족함이 없다. 천국에 부족함이 없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것을 다 채워 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 밑에 목장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와서 누워서 안심하고 주님의 은혜의 손길을 붙잡고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은 대로 살면 정말로 너무나 귀하고 놀라운 삶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같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2.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심
그 다음에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나가면 말씀의 생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도 생명수 아닙니까? 십자가 밑에 하나님 성령이 내려오시는데 요한복음 7장 37절로 39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 오시면 마음속에 생수가 또 넘쳐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여러분, 목마르다는 것은 참 고통스럽습니다. 저녁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마음에 버림받은 심령, 마음의 고독,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공포가 마음을 휘돌아 갈 때 마음 깊이 의지할 곳 없는 슬픔이 강물처럼 흐를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하느냐. 자기 마음으로 자기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외롭고 너무나 캄캄하고 그러므로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 주님께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여,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성령으로 위로해 주시옵소서. 부르짖을 때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말씀으로 위로해 주셔서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고 평안이 생기고 감사가 생겨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체험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죽을 것 같은 마음이 새로워지고 살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어디냐. 행복이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고 감사가 있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그 행복은 주의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들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면 실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나가서 짐을 풀어 놓고 내가 죄를 회개하고 내 마음속에 행복을 허락해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소망과 감사를 부어 주시면 앉아 있으면서 마음이 달라지고 일어나서 춤을 추고 싶은 생각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입니다. 은혜의 강물이 우리 마음속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수가 성 우물가의 여자 보십시오. 그는 남편을 5명이나 가졌다가 6번째 남편하고 살 때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니까 아침에 물 길러 오지 않고 대낮에 길러 왔습니다. 사람 없을 때.. 그때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이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하고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주님께서 물 좀 달라고 하니까 어떻게 당신이 유대인으로써 사마리아 여자 나 같은 사람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이 이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인생의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진 여자로서 남편을 5명이나 갈아재끼고 6번째 살 정도 같으면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말하기를 네 남편 데리고 오너라 하니까 남편이 없습니다. 네 말 맞았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다 차버리고 여섯 번째는 남편 아닌 오다가다 만난 남자 데리고 있다. 그래가지고서 네 마음속에 외로움과 고독함과 슬픔과 좌절과 절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는 생수를 마시면 남편 다섯을 갈아치우지 않아도 마음에 만족이 온다.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드러내시고 그 여자에게 생수를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당장 달라졌어요. 물동이를 두고서 너무 좋아서 사마리아 시내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피하던 사람들에게 와보라.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내가 남편 5명이나 갈아재낀 것도 다 알고 계시더라. 나는 축복을 받았다. 그래가지고서 사마리아에 모든 사람들이 그 여자를 따라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마리아에 더 있어달라고 간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수를 주시면 만족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수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저는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해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 회의가 들어올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 믿는 목사이면서 어떤 때는 혼자 앉아 있는데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짓누르고 슬픔이 꽉 들어차고 다 버림받은 고독한 인생을 혼자 사는구나. 살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 언제나 십자가 밑에 나가서 예수님 바라보고 내 마음속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 내 마음이 외롭고 고독합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이 슬픔과 이 고독과 이 외로움과 이 좌절감을 주님이 채워주시고 주님이 돌보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면 희한하게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희한하게 마음이 싹 달라지고... 안정이 되고 사는 즐거움이 마음속에 회복되는 것입니다. 목사인 나도 그런데 일반 평신도인 여러분이 그런 것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저주받은 세상이요,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라. 반드시 그런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계시므로 예수님을 잊지 말고 예수님께 찾아가면 예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는 언제나 쉴만한 물가로 가서 물을 마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면서 좌절하고 낙심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이 언제나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심
셋째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살려내는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하고 낙심된 영혼을 다시 살려 일으키는 것입니다. 낙심되고 좌절된 사람이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난 다음에 생수를 받아 일어날 때가 많지 않습니까?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103편 1절로 5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독수리는 한 70년 삽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40년이 되면 환갑이 와요. 독수리는 환갑이 오면 환갑 때 산위에 가서 바위에 앉아서 부리로 바위를 쳐서 부리를 뽑아 버립니다. 그리고 바위에서 발톱을 때려가지고서 발톱이 다 빠져 버립니다. 그리고 뒹굴어가지고서 날개가 다 빠집니다. 알몸이 되어서 태양을 바라보고 먹지도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둥이가 새로 나와요. 발톱이 새로 나와요. 털이 새로 나와요. 청춘이 새로워져서 그 다음에는 힘차게 하늘을 향해서 날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은 30년을 독수리가 새롭게 되어 사는 것처럼 여러분 독수리가 새로워지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앙망하고 기다리면 그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사이는 70년 평균 살고 80년, 90년, 100살까지도 산다고 하는데 살아도 기진맥진해서 살면 안되잖아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같이 살기 위해서는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을 앙망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독수리가 태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둥이가 새로 생겨나고 발톱이 생겨나고 털이 새로 생겨나는 것처럼 여러분에게 새로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생겨나며 용기와 힘과 사랑과 행복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수리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면 요한삼서 1장 2절처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범사에 잘되는 것이 일어나고 강건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1절에 있는 말씀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훼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을 앙망하고 예배드리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은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사야 32장 1절로 2절에 있는 말씀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하나님을 앙망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해주시는데 예수님께서는 광풍을 피하는 곳이다.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광풍이 불어옵니까? 예수님 안에서 광풍을 피해서 마음에 평안을 얻게 되고 폭우를 가리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주님 가리워 주셔서 우리가 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만들어 주시며 마른 땅에 냇물 같아서 마른 땅에 냇물이 없으면 모든 생물이 다 죽는데 마른 땅의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바위와 같다. 쉴 곳이 없는 곳에 뜨거운 곳에 바위 그늘에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것, 마른 땅에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아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면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겠다고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성경을 통해서 알고 알고서 이를 기도하면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슬하에서 내 영혼이 새로워져서 하늘로 날아올라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위해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의라는 것은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게 만들어 주는 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혈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의의 선물을 주셔서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의 선물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로 10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우리들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직접 의롭게 만들어 주시고 의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갈 동안에 죄를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역사해 주셔서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를 멀리할 수 있는 용기와 힘도 주시고 죄와 끈도 끊을 수 있는 힘도 에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안됩니다. 목자가 우리를 도와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예수가 없으면 이 세상에 아무리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나 영화나 돈이 있어도 외롭습니다. 가장 큰 이 세상의 고통 중의 하나가 외로움입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외롭고 권세 있는 자는 권세 있는 자대로 외롭고 사람들은 다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정죄할지라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거듭거듭 용서하시고 제2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를 늘 푸른 초장에 눕게 하셔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아예 주님께 한번 의지해 보십시오. 죽을까 싶어 오지를 못하는데 죽으면 죽겠다고 하고 맡겨버리면 주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께 맡겼다가 안 돌봐주면 나만 손해보지 않느냐 그렇게 하는데 아예 손해 볼 요량하고 맡기십시오. 아예 죽을 요량하고 맡기십시오. 옛날에 내가 어릴 때 우리가 아버지가 마루 끝에 서있는 나를 보고 용기야 뛰어라! 뛰어라! 내가 안아주마.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안 안아주면 나는 떨어져서 박살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못해요 그러니까 아버지를 안 믿느냐?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는 것 알지? 그러므로 뛰어라. 그래서 내가 우리 아버지 보고 아버지 나 뛴다! 하나, 둘, 하나, 둘 아 못 뛰어! 내가 안아줄테니까 뛰어라! 하나, 둘, 하나, 둘 아이구 나는 겁이 나서 못해. 아버지가 나중에 화를 내십니다. 내가 너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느냐? 뛰어라! 그래서 나중에는 눈 딱 감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각오를 하고 뛰니까 아버지가 덥썩 받아주시더라구요. 한번 받아주니까 그 다음에는 아버지만 있으면 아버지 나 뛴다~ 뛴다! 아버지가 뛰어와서 안아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믿느냐. 죽기 아니면 살기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하나님 믿는다고 불꽃 가운데 던져 넣겠다 했는데 나중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불꽃 가운데서 건져내 주실 것이요. 안 건져 내주더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겠다. 믿음을 믿을 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십일조 드리고 교회 성수주일하고 그 다음에는 주님께 내어 맡기게 되기를 내 삶을 다 내어 맡기고 주님께서 푸른 초장으로 이끌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행복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독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정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은 여러분을 이해, 동정, 사랑할 수 없지만은 주님은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걸머지실 때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처지를 다 아시고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도움을 베풀지 않고 구해야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지 아니하면 안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구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주님이 목자되신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목자가 여러분을 이끌어 가는 것을 꿈꾸고 믿고 입술로 시인을 해서 시편 23편을 늘 외우십시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시편 23편을 외우는 것입니다.
저가 나의 목자가 되어서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내 마음속에 위로를 받고 나를 의롭게 소생시켜 주셔서 전인구원을 주시고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는 이 주님이 계시므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빽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 때도 훌륭한 빽이 있으면 여러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자식들도 부모가 있을 때 마음이 든든하고 좋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이 세상 사회에서도 연줄이 있어 사람들은 대학교나 고향이나 씨족사회 줄을 잡으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에게 제일 좋은 줄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신 사랑하는 주님이시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아들로써 우리를 동생들로 만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로 삼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시고 여러분과 나를 예수님의 동생으로 다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똑같이 구원을 받고 예수님과 같이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살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귀한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여러분께서 예수 그리스도 목자와 함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의 목자가 되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와 계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시며 우리가 믿음으로 주를 따를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아 주심을 감사합니다. 푸른 초장에 누이시는 주님, 우리 모두다 이끌어 푸른 초장에 누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옵시고 쉴만한 물가에 나가서 마음에 안식과 휴식과 행복을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힘으로 의롭게 살 수 없사오니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을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같이 사랑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 모든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