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5. 주일설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영적 전쟁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4~6)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영적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이 있는 곳에 죄가 있고 죄가 있는 곳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파헤쳐 있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사망의 골짜기인 세상에 태어났고 그 골짜기를 통하며 고생하다가 궁극적인 사망의 골짜기인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는“안락은 하늘에 있고 우리가 사는 이 지상에는 오직 불안과 고뇌와 탄식이 있을 따름이라”고 말했었습니다. 미국의 사상가요 문학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요한 절망 속에서 인생을 살아간다.” 영국의 성직자인 토마스 풀러도 “사람은 비명과 함께 울면서 태어나고 고통과 함께 살다 결국에는 절망하여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땅에서 영적 죽음과 환경적인 저주와 육체의 죽음이라는 3대 재앙을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골짜기에서 고생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께 절대 믿음, 절대 순종으로 의롭게 사시고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시고 사망과 마귀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구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희망의 근원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다윗이 노래한 시편 23편 중에 왜 내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가를 우리는 알아보아야 될 것입니다.

<본론>
1.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해를 당하지 않는 길
이 세상에 허다하게 좋은 일도 있는데 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야 되는가.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고 교만을 깨뜨리려는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오만하고 교만하고 탐욕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이후로 이 세상이 사망의 골짜기가 된 것은 사망의 골짜기가 다가와야 사람은 깨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쓸모가 없고 사람에게도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망의 골짜기를 통해야 깨어지는 것은 우리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만사가 형통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교회 갈 것을 생각 안 합니다. 성경은 아예 들춰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본주의적으로 살고 세상 쾌락을 쫓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통만 하면 그 사람은 부자와 같이 일락을 즐기다가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당할 때 사람들은 깨어지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자기의 허약과 무능력을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신앙으로 들어오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은 우리에게 지나고 보면 굉장한 축복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고통당하지 아니하면 안 깨어집니다. 딱딱한 돌을 정으로 치는 것은 돌을 깨어지게 하기 위해서 치는 것인데 주먹으로 정을 쓰지 않고 바위를 쳐서 깨뜨릴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은 수없이 많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도 안 깨어지다가 나중에 한 번에 박살이 나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로 7절에“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서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적하면 우리에게 고통이 안 다가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깨어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고 오히려 복을 허락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사망을 이긴 분은 예수님밖에 없으므로 예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을 이긴 사람은 역사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 누가 부활했습니까? 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무덤의 문을 박차고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 예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으면 찾을 수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와 항상 같이 있겠다고 말씀 하셔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공기와 같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이 자리도 같이 계시지요.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찾지 아니하면 절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곁에 계셔도 우리가 찾지 않고 무관심하게 내버려 놓으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를 지나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어 배가 파선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제자들이 살펴보니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어디에 계신가 보니 배 한 구석에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들이 가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죽게 된 우리를 돌보시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깨어나지 않고 그대로 주무시는 것입니다. 깨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 이 자리에 계시면 어떤 사람은 깨어 일어난 예수님과 같이 앉아 계시고 어떠한 사람은 쿨쿨 주무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깨어 일어나야 바람과 파도도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람과 파도만 보고 원망하지 말고 그를 잠잠케 하는 예수님을 깨워야 되겠는데 어떻게 깨웁니까? 회개하고 자복하고 주님께 부르짖으며 철야기도, 금식기도, 혹은 기도원 기도, 새벽기도, 집중적인 기도를 하면 예수님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간절히 찾아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찾지 않고 예수님은 만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고 만나고 그 다음 믿고 순종하게 하려고 주님께서 고난을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믿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타락했나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했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아니하고 순종도 아니하고 그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최대의 죄악은 불신앙과 불순종인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우리가 신앙이 들어가야 되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 신앙을 가지느냐. 자기가 약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깨어져서 자기 힘과 능력으로는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주님을 믿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때는 자기를 바라보지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어진다는 것은 정말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쉽게 깨어지지만 고집이 센 사람은 여간해서 안 깨어지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통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깨뜨려서 주님을 순종하게 하고 주님을 믿게 만들어 주는 귀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 주님은 반드시 자기를 찾는 자에게 나타나서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순종해야 되기 때문에 믿음과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교만, 자기 오만이 깨어지고 자기를 의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한다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 지팡이, 희망의 풀밭으로 물가로 인도하는 지팡이요 막대기는 사자나 곰이 오면 막아주는 치는 막대기인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십자가가 우리의 막대기가 되시고 지팡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은 희망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때 주님 십자가에 매달려 주시므로 십자가의 나무를 통해서 이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의 쓴물을 달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지팡이는 여러분과 나를 희망으로 이끄는 지팡이인 것입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용서와 의로움을 얻는 희망, 우리가 불의에서 신령하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 희망, 병들어서 죽게 된 우리에게 치료와 건강을 얻을 수 있는 희망, 좌절과 절망과 저주 속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재기할 수 있는 희망, 죽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의 길을 이끄는 것이 주의 지팡이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막대기인 십자가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피난처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고 능력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의 말씀대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기도로 깨워 일으키면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지팡이와 십자가의 막대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가장 위대한 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고 붙들어 주겠다고 했으니 우리가 주님을 찾고 나가는 것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잭 캔트필드가 쓴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는 책에는 친구 사이인 암전문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가 실려 있는 것입니다. 한 의사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난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 자네나 나나 암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으로 같은 스케줄에 따라 처방을 하지 않는가.” “그렇지.” “그런데 왜 나는 내 약을 먹은 사람은 22%밖에 살아나지 못하고 자네가 주는 약을 먹은 사람은 74%나 살아나오니 무슨 비결이 있는가.” 그러자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약만 처방하지 않느냐. 너는 약 만주지 자네는 이 약을 줄 때 환자에게 이 약을 어제와 똑같은 것입니다. 열심히 드세요 라고 말할 꺼야. 그러나 나는 약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 당신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 약은 당신에게 생명을 갖다 줄 것입니다. 낫게 해 줄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십시오. 한 사람의 의사는 그냥 의무적으로 약을 잡수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의 의사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항상 말해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약을 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약을 주고 처방할 때는 10명 중 7명이 죽었는데 희망을 주었을 때 10명 중에 7명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위대한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그대로 받아 들여서 끌어안고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죄에는 용서의 희망을 주고 거룩하지 못한 자에게는 정결하게 되는 희망을 주시고 병든 자에게는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는다고 희망을 주시고 저주받은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의 복을 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죽는 자에게는 오늘날 너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고 약속해 주시는 희망의 주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여러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절망을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부활하시므로 희망의 근원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희망의 근원되신 예수님이 두 손을 활짝 내밀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니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가 너를 붙들어 주겠다고 했으니 이 예수님께 나가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늘 절망에서 왔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교를 믿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의식을 집행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얻으러 왔는데 바로 잘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희망의 근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38편 7절로 8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야훼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야훼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주께서 계시므로 해를 당하지 않고 좋은 결과가 올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내 원수의 분노를 막으시며 오른손으로 구원을 해주시니 얼마나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습니까?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은 인간사회에서 실패한 자, 이기주의자, 정신병자들을 연구한 결과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공통점이 있는지 자세히 가슴에 손을 얹고 들어 보십시오. 그들이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비난하고 비판했습니다. 즉, 말씨가 곱지 않은 사람의 결말은 자신이 말한 대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기주의자, 실패한 자, 정신병자들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이 말이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늘 앉으나 서나 비난하고 남을 비판했습니다. 그런 말을 계속하게 되면 남의 불평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대로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1950년대 미국 위스콘신대학 우수문학 지망생들이 교내에 정기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남자들 정기모임을 만들고 여자들도 정기모임을 가졌는데 남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들이 시나 소설을 적어서 서로 읽어 보고 엄청나게 비평을 했습니다. 막 옷을 벗기고 살을 찢는 비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의 모임은 학생들이 모여서 절대로 부정적인 비판은 하지 말고 잘한 점을 칭찬했습니다. 시도 잘한 점을 칭찬하고 소설도 잘한 점을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졸업하고 난 다음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조사를 해보니까 남자들 중에 문학자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칭찬을 서로 한 여자들은 모두 다 우수한 문학자들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녀들 교육할 때 여러분, 자녀들에게 비평하지 마십시오. 대개 이 세상에 성공하게 된 사람은 부모가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너는 할 수 있다. 잘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 그 이름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흑인인데 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흑인으로써 비평을 많이 하고 인종차별을 하고 괴로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학교 갔다가 울고 오면 언제나 그 아들을 끌어안고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하면 된다. 너는 할 수 있는 소질이 있다. 능력이 있다. 피부색깔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 말을 듣고 칭찬으로 격려를 얻어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서로 붙은 쌍둥이를 분리하는 수술에 성공해서 세계적인 의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애들 칭찬 하십시오. 잘못해도 한 번, 두 번 잘못했다고 해서 애가 버리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칭찬이 그 애를 끌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로 3절을 우리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야훼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물 지날 때 같이 하고 강을 건널 때 물이 침몰하지 못하게 하고 불을 지날 때 타지 못하게 하고 불꽃이 너를 거스르지 못하게 하겠다. 여러분 누구기에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잘났습니까? 그렇지도 못한데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왜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했습니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을 찾아서 구속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는 고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속하셨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이래 뵈도 나를 지명하여 불러주셨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저 같은 사람도 용기야! 내게로 오너라. 불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이나 섬기고 농사나 짓고 짐승이나 치는 무식한 사람이 75세 갈디아우르까지 살았는데 그가 하나님께 어떻게 나왔습니까?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아브라함을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내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이 불러 주셔서 아브라함이 되었지 자기가 아브라함이 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천지를 지은 하나님이 여러분께 관심을 가지고 불러줄 정도니 야~ 대단하시다. 오늘 청와대 대통령이 저녁 같이 먹자고 여러분 부르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넥타이 새로 매고 연지곤지 새로 찍고 옷 새로 입고 아주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이 불러도 영광스러운데 하늘의 대통령, 하늘의 임금,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러분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예수님 보혈로 산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 가운데 지날 때도 같이 있고 홍수가 나지 못하고 하고 불 가운데 지날 때 타지 못하게 불꽃이 거스르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귀하여 여기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국의 목회자이자 설교가로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가 은퇴하기 전에 영국에서 목회할 때, 콜레라가 굉장히 심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때는 콜레라에 대한 아무런 예방약도 없었습니다. 콜레라에 걸리면 죽었습니다. 정부는 겁을 먹고 환자들을 돌보지 않았고,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진해서 콜레라가 있는 템즈 강뚝 근처에 있는 빈민촌에 들어가서 열심히 돌보아주고 기도해 주고 하다가 자기가 콜레라에 걸렸습니다. 열이 나고 설사를 하고 온몸이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두려운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 내가 죽는구나. 여러분, 가장 이 세상에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칼이 죽음, 두려움인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나 우리에게 찾아오면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마귀가 우리에게 와서 제일 먼저 주는 것이 두려움인 것입니다. 두려움을 주어서 두려움에 빠지면 우리는 마귀의 손에 잡혀서 죽습니다. 욥이 고난당하고 난 다음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두려워하던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 무서워하던 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그러므로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 벌써 마귀의 올무에 빠지고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다가오면 두려움을 잠재울 수가 없어요. 두려움을 어떻게 잠재웁니까? 저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 두려움이 마음을 휩쓸면 인간의 힘으로 안 두려워한다. 안 두려워한다. 안 두려워한다. 마음은 두려워한다. 두려워한다. 두려워한다. 이길 수가 없어요. 어떻게 두려움을 이깁니까? 스펄전은 마음에 이제 죽었다고 두려움을 잔뜩 가지고서 교회로 돌아오는데 길거리에 상점에 문 닫아 놓은 문에 종이 쪽지가 하나 팔락 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종이쪽지를 보니까 시편 92편 9절로 10절의 말씀이 적혀 있었어요.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 말씀 주의 종이 늘 읽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그 말을 읽을 때 그 말이 종이 쪽지에서 튀어나와 그 마음을 부여잡고 그 마음에 한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다가온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인데 믿음은 하나님 말씀으로 오는 것입니다. 믿지 않고는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을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두려움이 있을 때 성경을 찾아가야지 다른데 찾아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시편 92편 10절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마음속에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를 나의 피난처로 나의 요새로 의뢰하는 하나님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내게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는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장막에 이르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주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화가 없습니다. 믿습니다.”마음에 평화가 와서 그냥 웃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망아! 너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담대하게 두려움과 콜레라의 사망에 대결했는데 집에 걸어오다가 보니까 구토도 안 나오고 몸이 가볍거든요. 집에 와 보니까 병이 깨끗이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가 환난과 고난당해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 때는 무한정으로 파괴됩니다. 그때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고 마음에 두려움을 재하고 평안을 얻으면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교회에 왜 오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는 동안에 말씀이 여러분 속에 들어가서 모든 불안과 초조와 절망과 두려움을 청산해 주기 때문에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평안을 가지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여러분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2. 영적 전쟁
둘째로, 이 성경말씀에는 영적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이란 내가 야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러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에는 마귀의 억압 속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자체가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 마귀가 꽉 들어차느냐. 마귀에게 우리가 항복하고 마귀의 노예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마귀는 귀신들과 함께 우리 주위에 떠나지 않고 있으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안 있으면 마귀와 같이 있습니다. 마귀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뒤에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괴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늘 말합니다. 왜 하나님이 계시면 마귀를 미리미리 쫓아버리시지 그 마귀를 내버려 놓아서 우리를 시험하게 하느냐고... 그 이유는 이러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여러분 무균실에 그대로 두어서 5살 6살까지 무균실에 두어서 키웠다가 무균실에서 데리고 나오면 하루 만에 병들어 죽습니다. 이 세상에 병균이 얼마나 있는지 병균 없는 세상에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균이 있어도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우리는 병균과 싸워서 이겨서 저항력이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영적으로 보면 저항력 투성이입니다. 마귀가 와서도 마귀를 이겼기 때문에 예수 믿고 교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병균도 극복해야 건강을 가지고 살지 병균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는 것처럼 마귀가 없는 세상에 살 수 없습니다. 마귀를 극복해야지 마귀를 피해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어떻게 하느냐. 마귀를 이길 수 있도록 은혜의 성찬을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 힘을 얻지 않습니까?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없어요. 옛날 어른들이 밥이 보약이라고 늘 말하기에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제가 몸이 허약해지고 난 다음에 보니까 큰 부흥회를 나갈 때 배가 부르도록 밥을 먹지 아니하면 중간에 가서 배가 고파서 허덕허덕하게 돼요. 힘이 없어요. 그래서 비로소 밥이 과연 힘이구나. 보통 때는 밥이 힘 인줄 몰랐는데 집회하러 나가서 보니까 밥을 충분히 먹지 아니하면 중간쯤에 가서 힘이 없어서 입에서 말이 안 나와요. 배가 등허리에 붙어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귀가 오면 마귀를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은혜의 밥상을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가 오면 은혜를 받게 돼요. 마귀가 오면 좋은 일이 생겨서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시험을 당하게 되면 꼭 하나님께서 제게 집회를 주세요. 시험을 당하는데 왜 집회를 주느냐.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큰 집회를 열어서 은혜가 쏟아지도록 만들어 놓아서 은혜의 밥상에 잔뜩 밥을 먹고 힘을 얻게 만들어줘요. 그냥 원수의 공격을 당할 때는 낙심하고 좌절하고 힘이 없어 어깨가 축 늘어졌다가 집회에 나가서 수만, 수십만 사람들이 모이는 가운데 성령의 불이 임하여 은총이 쏟아지면 집회하고 나와서는 어깨에 힘이 딱 주어지고 허리가 딱 바로 서게 되고 고개도 삐딱하지 않고 바로 서게 되고 아주 힘과 용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원수가 오면 밥상 차려 준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없을 때는 진수성찬이 없지만 원수가 오면 밥상이 차려진다. 그리고 밥상만 차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 주셔서 여러분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가정도 돌보고 사업도 하고 생활도 하게 해서 잔이 넘치는 성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은 성령이 오시면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오면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성공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말하기를 고난은 고난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가져온다고 말하는데 고난이 바로 원수가 가져오는 무기인 것인데 원수가 오면 여러분 은혜도 오게 되고 반드시 성령이 와서 여러분에게 성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어떠한 일에도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처했으나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 앞에 속했고 원수 마귀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밥상 차려 주시고 기름 부어 주셔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에 대항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하기 위하여 은혜의 밥상을 차려 주시고 마귀의 공격이 오면 하나님의 은혜도 내리신다는 것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5절을 한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따라 말씀하세요. 좋은 일은 좋아서 좋고 좋지 않은 일은 좋게 만들어 주시니 좋다.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 왜 좋으냐. 성령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한 것을 원수가 공격할 때 성령이 오셔서 눈에 다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도록 이끌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원수가 오면 성령이 오셔서 어떻게 성공할까 길을 보여 주시고 어떻게 이길까 길을 보여 주시고 어떻게 행복할까 길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면 우리 눈에 안 보여요. 하나님이 예비한 이 놀라운 축복이 눈에 안 보이는데 원수가 오면 하나님이 원수 앞에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이 모든 예비한 것을 보여 주시므로 우리에게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가 올 때 통탄하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3. 좋으신 하나님
세 번째로, 다윗은 이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평생토록 우리에게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베풀어 준다고 말했었습니다.
시편 23편 6절에“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선하시다는 것은 좋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좋은 하나님이라는 말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압니까?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정말 마음도 춥고 몸도 춥고 생활도 추웠어요. 천막교회를 치고 가마니를 깔았는데 교인이라고는 5명 있으니 5명이 연보 한 푼도 없습니다. 무슨 내가 돈을 벌어서 줘야 돈을 헌금을 내지 누가 헌금 낼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니 항상 밥상은 비어 있지요. 항상 잠자리는 추워서 벌벌 떨지요. 예배 볼 때는 낙심되지요. 그럴 때 하나님 성령께서 제게 알려주신 진리가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다. 천막에 있어도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고 가마니 위에 예배를 봐도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고 빈 밥상을 만나도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고 어떤 형편에도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다. 좋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하라.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다. 그게 마음에 굉장히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니까 결국은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 결국에는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결과가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좋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결과 우리 한국 보십시오. 60년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나라 중에 세계에서 거꾸로 1등 된 나라가 60년 만에 이렇게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우리 한국이 백만 명도 안 되는 신자가 천만 명이 넘어서 좋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다.
시편 84편 11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야훼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야훼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주시는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나쁜 마귀는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에 욥의 경우를 보면 참 처절하게 마귀가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와서 욥을 참소해서 하루아침에 그 재산을 다 빼앗아가고 그 자식들을 죽이고 마지막 그 아내도 배신하고 나가게 만들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와서 공격하게 만들고 정말 그는 사면초과에 백척간두에 진일보로 처참한 상황 속에 처했었습니다.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욥은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감사하고 나는 죽이더라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정도의 신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와서 욥아, 이래도 네가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겠느냐. 하나님 믿는다는 사람이 재산 다 잃어버리고 자식 죽고 마누라 잃어버리고 친구들은 원수가 되어서 너를 조롱하는데 이래도 하나님 믿느냐. 욥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다. 나를 죽이셔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아멘 소리가 굉장히 작네. 우리도 욥처럼 말해 보십시다.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겠노라. 그게 진짜 신앙이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있을 때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불에 던져 죽이겠다고 왕이 말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이 왕이여, 우상의 왕을 안 섬긴다고 우리를 잡아서 불에 던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이거니와 안 건져 주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겠나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불속에 던지니까 제4번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불 가운데 나타나서 그들을 불꽃을 이기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보좌에서 일어나시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욥은 전에 보다 후에 더 큰 축복을 받아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좋은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이 온 이유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해도 우리는 거기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보기에 좋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난 다음에 여섯째 날 마지막에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보니 심히 좋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빛을 지어놓고 좋으시고 세계를 지어놓고 다 좋으시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이 계시면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면 좋은 일이 안 생겨날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롬 8:28) 좋게 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된다. 나쁜 것은 좋게 될 것이니 좋고 좋은 것은 좋으니까 또 좋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환경과 이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하나님을 닮아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꿈을 꾸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으며 좋은 말을 하자. 왜 좋은 하나님이 계신데 우리가 나쁜 일을 생각하고 나쁜 꿈을 꾸고 나쁜 말을 하고 나쁜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귀와 하나님이 동시에 거할 수 없지 않습니까? 마귀는 나쁜 마귀, 쫓아내고 좋은 하나님을 모셨으니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나 좋다. 우리는 감사하고 찬미하며 좋은 것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꿈꾸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좋은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일인 것입니까? 예수 믿고 좋지 않은 사람 누가 있는 것입니까? 제일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과 내가 예수 믿고 제일 좋은 것이 뭡니까? 천당 가는 것 아닙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 주님 계신 곳에 함께 있으니 하늘나라보다 좋은 데가 어디 있는 것입니까? 그곳에 여러분 우리가 공짜로 가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랑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행위로써 좋은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공짜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니 얼마나 팔자 좋은 것입니까? 좋은 팔자가 늘어진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그러므로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세상 자체가 사망의 골짜기며 영적 전쟁터이지만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라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편을 하루에도 수십 번 암기하십시오.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시편 23편을 암기하며 그를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약속이 그곳에 다 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어느 곳에 가든지 염려가 있고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근심, 불안, 두려움이 항상 있어요. 이것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파도가 늘 치고 바람이 불지요. 이 두려움 가운데 여러분 안심을 하고 평안을 가져오고 믿음을 가져올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가까이 있고 성경이 있으니 이것을 읽고 믿고 받아들이면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생명의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좋은 선물이 말씀이요, 제일 위대한 힘이 말씀이요, 우리 마음을 지켜주는 이도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신앙생활은 축복받고 승리하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목자가 되시고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깨어지고 회개하고 변화 받아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같이 계셔서 주님을 의지하는 우리에게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도록 주님의 지팡이가 희망을 주시고 막대기가 보호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시여! 오늘 이 자리에 온 모든 우리 성도들 주님을 바라보고 공포를 버리고 불안을 털어버리고 믿음과 평안을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