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2. 7. 29. 주일설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서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은 바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은 이 세상살이에 시달리고 세상의 폭풍우에 동요되고 지진에 흔들리는 그러한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형편에 좌우되지 아니할 수 없고 세상 바람을 안 맞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길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그것으로써 마음이 안정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다스려져야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사용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그래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를 봐도 자기가 하는 일에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 세상적으로 말하면 미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일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일에 도취되어서 기뻐하는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최고경영자들이 원하는 직원들은, 어떤 직원을 원하느냐. 자기 맡은 부서에서 자기 맡은 일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직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침에 일찍 오고 낮에 성실히 일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고 가는 사람을 좋은 직원으로 생각했는데 요사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일을 맡은 그 부서에서 자기 일에 심취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정말 훌륭한 직원으로써 그러한 사람을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자기 일에 관심이 있고 기뻐하기 때문에 일에 성과도 생겨나고 좋은 아이디어도 떠올라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우울하게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미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감사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마음이 행복하고 기뻐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셔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한두 번 기뻐하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한두 번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표정은 기쁨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얼굴을 길쭉하게 하고 늘 우울하게 있으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실제 생활에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부어주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유쾌해서 기뻐하고 즐겁게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보기를 원하시고 이렇게 살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본론> 1. 항상 기뻐하라 첫째로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데 왜 그러느냐. 성경말씀 시편 16편 11절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오른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 앞에 나가려고 하면은 기쁨을 가지고 나가야지 슬픔과 원망과 미움을 가지고 나가면 하늘나라의 분위기를 망쳐 놓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이 바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도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있습니다. 기쁨은 마음의 풍랑을 다스려 긍정적이게 하고 꿈과 마음이 활성화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1절로 4절에 보면 “온 땅이여 야훼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야훼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찬송하면 하나님이 귀를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 제사를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쁘면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는 것입니까? 사람의 말이 사람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마음에 안 기쁘더라도 자꾸 기쁘다고 하면 마음이 기뻐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쁜데도 불구하고 입술로 나는 안 기쁘다. 슬프다고 말하면 기쁨이 싹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우리는 입술로 슬프다 고통스럽다 염려스럽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고 말을 하는 것이 내 삶을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유도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으로 기쁘다고 거듭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말해 보십시다. 나는 기쁘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억지로 웃어야 되는 것입니다. 웃음이 좋을 때만 웃지 말고 억지로 웃으면 그 웃음이 정말 기쁨으로 이끌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을 모시고 살아왔고 신앙상담을 했는데 특별히 잘 웃는 사람이 있어요. 웃어도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아주 깔깔대고 명랑하게 웃는 사람이 있는데 한평생에 제가 늘 부러운 것은 그 사람의 웃음소리가 부럽습니다. 하하하하... 그런데 조금도 우숩지 않은 일을 가지고 그렇게 웃는다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명랑하게 만드는 좋은 인격을 가진 것입니다. 그 웃음소리에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통곡하고 슬프고 우는 사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가까이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는데 이게 하나님이 계시는 환경이요 분위기인 것입니다. 기쁨은 마음을 다스려서 마음이 긍정적이 되게 하고 꿈과 환상이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기도할 때 성령이 꿈을 갖다 주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풍랑은 가라앉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쁨과 즐거움 속에 주님이 임재하기 때문에 풍랑이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이 다가왔는데 슬퍼할 것이냐 기뻐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기쁨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환난이 다가와서 큰 고난이 다가왔는데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지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미쳤나? 환난이 다가와서 어려움이 다가왔는데 싱글싱글 웃고 다니니까 저 실성한 사람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데 하나님은 올바른 사람으로 봐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즐거워하는 사람 속에 인내를 가져오게 되고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더 큰 소망을 이루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을 당할 때 울고 탄식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냥 조금 기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100%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험은 세월이 지나고 나면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환난과 시험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소망과 축복을 가져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소망이 그냥 오지 않습니다. 소망의 전초로써 슬픔과 고통이 먼저 다가오는 것입니다. 소망 전에 즐거움 대신에 고통이 다가와서 문을 두드릴 때 그것을 원망하고 불평하면 소망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얼마 안 있으면 그 환경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기뻐하느냐. 기뻐하는 것이 삶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지치고 피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힘이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서 8장 10절에 “야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힘이 없어 심신이 다 가라앉을 때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하면 힘이 도로 생겨나고 용기가 생겨나는 것을 우리가 종종 느낍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기쁨이 얼마나 좋습니까? 시편 97편 11절로 12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의인이여 너희는 야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나는 의인이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값없이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의로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은 입술로 하나님 계시기 때문에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아버지 기뻐요. 하하하... 그렇게 하면은 하나님이 정말 즐거워하고 우리의 제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있을 때 웃으면 미쳤다고 할지 몰라도 혼자서는 웃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세수하고 난 다음 거울 쳐다보고 종종 웃습니다. 아이구 많이 늙었네. 하하하... 그러면 늙은 것이 젊음으로 변하는 기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쁜 것은 입으로 표현해야 되고 웃음으로 표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이 웃는 것은 여러분 생활에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필하고 난 다음에 집에 돌아가서 시간만 나면은 웃으십시오. 왜 자꾸 웃냐고 하면은 조목사가 웃으라고 해서 웃는다고 하십시오. 변명은 될 수 있으니까요. 웃는 것은 자기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안 하면 안 되지요. 웃음이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는 첩경이 되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길이 되는 것이니 웃어야 되고 웃음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갖다주고 우리에게 건강을 갖다 주니 웃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웃음이 비타민 먹는 것보다도 웃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내게도 좋고 이웃에게도 좋은 것이 웃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이 웃기를 원하시느냐 하면 하박국 3장 17절로 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기에 보십시오. 전혀 환경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환경이 못 됩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포도나무에도 열매가 없습니다. 감람나무에도 소출이 없습니다.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고 완전히 파멸입니다. 그곳에 앉아서 보통 사람은 탄식하고 울고 원통하게 여기고 가슴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믿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것을 능가해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한 것처럼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산에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태산 같은 염려, 근심, 불안, 초조가 엄습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구원이 어디서 올꼬. 나의 구원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 태산을 보고 두려워하고 탄식하지 말고 태산과 함께 언제나 오는 야훼 하나님을 향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렇게 큽니다. 여기는 못함이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라고 했었으니 하나님이 기쁨과 즐거움을 얼마나 중요히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없다고 하고 다니면 있는 것도 다 날라가 버려요. 그런데 없는 가운데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그 감사와 기쁨을 통해서 없는 것을 다 메꾸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리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메꿔 주시지요. 있으면 감사하고 없을 때는 감사하고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면은 언제 있음을 얻을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찬양을 드리는 것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을 여러분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이 여러분 보고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번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다.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여러분을 보시고 하나님이 좋다~ 정말 좋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위해서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사랑 안 하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을 지어 놓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바 아버지라고 찬미하고 기뻐하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기뻐가지고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깡충깡충 뛰시는 것입니다. 아~ 왔냐? 와~ 기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오면은 그냥 왔냐? 요새 어떻게 지내냐.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고 아이구 왔냐~ 너 요사이 잘 지내냐? 아이구 참 좋구나~ 건강해라~ 잘돼라~ 축복 받으라~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기쁘고 즐거워하는지를 알게 되면 여러분 하나님께 나오면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별로 여러분을 환영도 아니하고 여러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도 아니하면 하나님 앞에 나가기를 거리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꺼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된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입니다. 타락해서 하나님을 무시해 버리고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마귀를 따라 악한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가운데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나오니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서 여러분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잠잠히 사랑하고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모셨는데 우리가 왜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좋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하는 것을 어떻게 응답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령이 와서 역사하는 열매는 기쁨인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 가운데 기쁨의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마음에 기쁨을 가져와 주어서 자기도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하는 열매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곳에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기쁨이 오고 또 기쁨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오면 절대로 기쁨 안 줍니다. 마귀는 결코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빛의 비유로써 여러분 마음을 밝고 맑고 환하고 소망차고 희망이 있게 하고 기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앞에 기쁨을 가지면 더 마음이 행복해질 것인데 화를 내고 싸우고 난 다음 집에 와서 밥그릇 내놓고 막 배가 부르도록 먹고서 배가 이만큼 나오고 얼굴이 이렇게 되고 뭐가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오셔서 마음에 평강과 희락이 있고 의로움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좋지만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이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성령의 기쁨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고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고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서 하나님께서 기쁨을 안주면 교회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교회에 오면 처음에 무엇인지 몰라도 마음이 들뜨고 기뻐지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라. 또 다시 내가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했는데 교회 와서 예배드리면 항상 기쁨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이시니까. 여러분 교회 와서 기쁨을 공급받지 못하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가지고 나간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마귀의 역사를 이기지 못하고 눌려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교회는 기쁨의 처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22절로 24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가실 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놓지 않고 아버지께 구해서 성령을 주시는데 성령이 오시면 너희 마음이 기뻐지고 너희 마음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항구적인 기쁨을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겠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셔서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보십시오. 예수님이 안 계시고 성령이 오신 목적은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쁨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은 공기와 같아서 혼자 독점 하지 못합니다. 모두다 우리가 성령을 모시고 있습니다. 오늘 숨을 한번 크게 쉬어 보십시다. 옆의 분이 숨을 다 쉬어서 쉴 것이 없지요? 그렇지 않잖아요. 다 숨을 쉬어도 공기가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성령을 독점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그 마음속에 와 계신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자가 없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를 주라고 말하는 이유는 성령이 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라고 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성령이 와 계세요. 성령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기쁨을 주시고 항구적으로 기쁨을 주시는 것을 빼앗을 자가 없고 성령의 기쁨 가운데서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실 것이요, 그 다음에 기쁨이 또 충만해 질 것이라. 하나님은 기쁨을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원하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신앙은 기쁨의 신앙이요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인 것입니다. 웃음은 약도 되고 빛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는 사람은 마음이 밝고 맑고 환하고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기쁨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편이요 하나님과 교통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으로 기쁘다. 나는 기쁘다. 그렇게 말하고 억지로라도 소리 내어 웃으시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그 결과로 한번 크게 웃으십시다. 하하하하하하하..... 할렐루야~ 하나님 한번 쳐다보세요. 하나님도 웃으시네요. 기쁨은 이렇게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둘째로, 우리에게 대한 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꾸 말하기가 곤란하면 끊임없이 흥얼거리면서 찬송을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냥 기도해도 좋고 찬양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도 좋은데 그냥 기도가 힘들면 늘 찬양을 하고 다니면 좋습니다. 금세 우리 성가대들이 노래한 것처럼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흥얼거리면서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그게 기도인 것입니다. 곡조 있는 기도를 드리면 항상 기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데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멀어져요.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대화를 하게 돼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서로 앉아서 대화를 많이 하면 친밀해지지만 일이 바뻐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으면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쉬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고 즐겁게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로 47절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에 시간만 있으면 기도하기를 힘쓰고 두세 사람이 모이면 기도하고 찬양하고 함께 먹고 마시고 힘을 합쳐서 전도하고 해서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요사이 어떻게 된 일인지 큰 교회는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은 그런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이다. 적은 교회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했으니 적은 교회도 주님이 계시고 큰 교회도 주님이 계시는데 그러나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성도를 모아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찬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기뻐하시기 때문에 적은 교회라고 무시하지 말고 큰 교회라고 욕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큰 교회는 흩어 버려야 한다고 공격을 하는데 큰 교회가 있어서 오늘날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선교사도 보내고 많은 원조도 하고 많은 하나님의 사업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서로서로 돕지 서로 손가락질 하고 시기하고 질투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하므로 기도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6장 9절로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우리 모든 기도에 하나님 제일 먼저 섬기고 모시고 기도해야 되기 때문에 이 주기도문은 굉장히 중요한 기도문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어찌하든지 나를 통해서 거룩하게 되고 영광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는 온전히 이루어지는데 땅에는 사탄이 와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행악하게 만들고 죄를 지게 만들고 오만하게 만들고 탐욕과 욕심의 노예가 되게 만들고 있으니까 이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가 간청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를 원하고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찬양을 하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은 십자가 걸머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님도 사람의 형상을 매고 오셨는데 그 억세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어떻게 걸머지겠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인데요.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 주님이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았으면 여러분과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수가 없어요. 다 지옥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 한 분이 희생하심으로 수많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 뜻이 네가 죽는 것이다. 그렇게 알려 주시므로 예수님은 두말하지 않고 십자가를 걸머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조차도 자기 원하는 것이 있었으나 자기 소원을 제켜 놓고 아버지의 원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기도에 모범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우리의 소원이 있지만 우리의 소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내가 원하는 것도 아버지가 여유 있으면 도와주시기 바랄 뿐이지 우리는 무엇이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는 것을 우리 기도에 항상 제일 먼저 앞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아버지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는 상달되고 그 기도를 통해서 아버지가 이루어 주시는 것이니 아버지의 뜻을 먼저 추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이용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아버지를 이용해서 내 탐욕을 채우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인 것이요 탐욕과 욕심인 것입니다. 교만은 자기 분수를 뛰어넘어 자기를 높이는 것이 교만이고 탐욕은 자기의 분수를 뛰어넘어 욕심을 내는 것이 탐욕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찬양하고 섬겨야 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이루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여 아버지의 뜻이 나의 인생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세상에 출세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이 방면에서 출세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집에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이 집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면 이 사업에 복을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먼저 받들고서 하면 아버지가 같이 하시므로 일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짓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고생의 떡을 먹음이 헛되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욕심으로 하는 것은 잘 되는 것 같으나 바벨탑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같이 하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인생 중심으로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인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자기 힘으로 올라가는 같이 자랑하다가 나중에 보면 터가 없기 때문에 허물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보면 성령은 오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성령이여 우리 마음을 인도하사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하게 해주시옵소서. 간구하면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일으켜서 아버지의 뜻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경구절을 일일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성령께 간절히 간구하면 성령이 마음속의 소원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소원을 통해서 아버지 뜻을 알게 되고 우리가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또 어떤 때는 성령이 방언으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기도를 모르는데 아~ 탄식이 나오면서 통곡이 나오면서 성령이 우리 입술을 통해서 기도하는데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알아듣고 나중 결과에 응답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첫째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하면 둘째는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지도자가 올바르게 지도를 해야 나라가 평안하고 생활이 편안해지고 우리가 고요하고 단정하게 잘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50년이 넘도록 목회하면서 오늘날 하나님 말씀을 성도들에게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이 저를 위해서 엄청나게 기도를 해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의 기도를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특별한 진리의 말씀을 계시해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때는 내가 잘한 것 아무것도 없는데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깨달아질 때 교인들이 기도해서 성도의 기도가 하늘의 열쇠를 열어서 나에게 좋은 음식 대접하라고 예비시켜 주시는 것을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아니하면 좋은 말씀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1년 내내 똑같은 강단에 서서 똑같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는데 어떻게 좋은 말씀만 잘 선택해서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인간의 지혜와 총명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기도해 주면 돼요. 하나님이 그때 그때마다 하늘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고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웃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 참 좋습니다. 품앗이 기도인데 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 주면 그 이웃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일 마지막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늘나라 위해서 먼저 기도하고 지도자들 위해서 먼저 기도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마지막에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인데 자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여러 가지 길이 있어요. 묵상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고 소곤소곤 기도하는 것이 있고 대성통곡을 하며 기도하는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묵상기도도 좋고 속삭이는 기도도 좋고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젊었을 때는 큰 소리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통곡을 하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원이 떠나가라고 기도를 해서 목이 항상 컬컬하고 그랬는데 그 다음 세월이 흘러갈수록 큰소리 기도하지 않고 소곤소곤 기도하기 시작하더니 요사이는 묵상기도가 굉장히 좋습니다. 앉아 있으면서 눈뜨고 가만히 내 혼자 속으로 기도가 깊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곁에 와서 무슨 말을 해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도 안보입니다. 속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그런 시간도 참 좋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것은 묵상기도와 속삭이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문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 못 듣도록 닫아놓고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만 대화가 되는 기도 이것이 묵상 기도요 혹은 속삭이는 기도입니다. 온 천지가 다 알도록 고함을 치고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상태에 따라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여러분이 기도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좋습니다. 기도는 실제적은 힘인 것입니다. 형식적인 종교 행위가 아니고 기도하면 대가로 하나님의 반응이 반드시 대가오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에는 모압, 암몬, 마온의 연합 군대가 유다를 치러 왔을 때 유다의 모든 백성이 합심으로 기도하여 적군을 물리친 기록이 나와 있고 역대하 20장 13절에는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야훼 앞에 서서 기도하고 그 기도의 덕분으로 하나님이 서서 모압, 압몬, 마온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워서 멸망 받게 만든 것입니다. 역대하 32장에는 히스기야 왕이 병들고 외적이 쳐들어와서 나라가 백척간두에 있을 때 왕과 이사야 선지자가 함께 기도해서 적을 물리치고 바로 히스기야는 몸의 병이 나은 것입니다. 에스더 4장에 이스라엘이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에스더가 유다 민족과 함께 합심으로 기도해서 그 전멸할 상태에서 구출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120명 성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는 은총을 얻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함으로 지진이 일어나고 쇠고리가 다 풀리고 자유를 얻은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천지창조”를 작곡한 하이든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작곡하다가 지치거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샘솟는 영감과 열정을 주셔서 작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조지 뮬러는 고아의 아버지로서 5만 번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기도응답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보고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안될 것은 안 된다고 응답해 주시고 되는 것은 된다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보여 주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셋째로,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할 것이 없는데 왜 감사하라고 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받은 복을 헤아려 보면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제가 불광동에서 배운 기도가 있습니다. 새벽기도마다 가마니 깔고 천막 밑에서 예배드리는데 장로님 한분이 와서 시내까지 나가려니까 거리가 머니까 우리 천막교회 와서 기도를 하는데 제일 오래 기도를 하거든요. 꿇어 앉아서 기도를 열심히 하고 그래서 내가 기도를 좀 배워야 되겠다고 싶어서 곁에 가서 싹 귀를 기울이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기도를 하는가 보니까 단순한 기도를 해요.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걸 한 시간도 넘고 두 시간도 넘게 엎드려 기도하는데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 아이구 놀래라. 무슨 기도를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라고 합니까? 그저 그저 감사할 것밖에 더 있어요? 나는 피난 와서 그 험한 길을 내려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폭격 맞아 죽었는데 나는 내 가족과 함께 살아왔고 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린 피난살이에서 고통당하는데 나는 그래도 남대문 시장에 장사터가 있어서 장사해 먹고 살고 또 나는 다른 사람이 낙심하고 원망하고 탄식할 때 예수 믿어 마음이 즐겁고 소망차고 돌아보니 기쁜 것 밖에 없는데 감사할 것 밖에 없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기쁨이지 뭐 다른 할 말이 있습니까? 그러더니 또 꿇어 안더니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때는 우습게 생각했는데 지금 제가 그 장로님의 기도 모범이 굉장히 도움이 돼요. 저도 별 다른 할 말이 없으면 앉으면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므로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받은 복을 헤아려 보고 받은 환경을 보고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가 있으니 감사하고 바람이 있으니 감사하고 꽃이 피니 감사하고 물이 있으니 감사하고 환경이 있으니 감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감사한 것을 찾아서 기도하면 감사할 것이 더 생기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감사할 것조차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더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죄를 사하시고 허물을 용서하시고 성령주시고 병 고쳐 주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천국 영생복락 주신 것을 아무리 천만번 감사해도 다 감사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복을 헤아려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보이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가 감사해야 될 것은 환난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편 121편 1절로 2절의 말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우리가 보는 방향을 항상 올바르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태산을 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염려와 근심, 걱정, 실패와 고통과 괴로움의 태산을 바라보고 통곡을 하고 나는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태산과 같이 누가 있느냐.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서 같이 계신 것입니다. 야훼를 봐야 돼요. 빌립과 안드레가 똑같은 광야에 나가고 똑같은 군중들이 굶주려 있었으나 예수님이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할 때 빌립은 광야만 바라보고 군중만 바라보고 떡 살 곳이 없는 것을 바라보고 없는 것을 바라보고 주님께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제자인 안드레는 군중만 바라보고 떡은 살 곳이 없는 것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저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가지고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안 보았지만 안드레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광야에 삽니다. 크고 적은 광야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광야 가운데 광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야훼가 계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같이 있겠다는 주님이 계신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골짜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 있는 곳에 주님이 같이 계신 것입니다. 내가 환난 날에 저와 같이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어두운 곳에 주님이 환난 날에 주님이 외로울 때 주님이 함께 계시므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을 발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광야만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면 기적을 기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로 5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아무리 내 환경이 어둡고 캄캄함에도 이미 예수님이 우리 앞에 지나간 곳입니다. 예수님이 사망의 골짜기도 이미 생명으로 바꿔 놓았고 허물도 거룩함으로 바꿔 놓았고 병도 채찍에 맞음으로 치료로 바꾸어 놓았고 저주도 십자가에서 청산하므로 아브라함의 복으로 바꿔 놓았고 죽음도 주님께서 부활하시므로 영생으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어떠한 사망이 다가와도 그 앞길을 주님께서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주님이 같이 계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망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넉넉히 이깁니다. 그러므로 이긴다고 생각하고 늘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언제나 이길 수 있는 삶을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과 꿈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희망이요 꿈이 아닙니까? 십자가 희망과 꿈이니 희망과 꿈을 바라보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더 희망과 꿈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조차 빼앗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면 더 감사할 수 있도록 주시고 있는 것을 보고 불평하면 있는 것조차 빼앗아 버리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로 17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여기에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끊임없이 감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양념입니다. 무슨 음식을 해도 간장을 치고 소금을 쳐야 맛있는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감사를 섞어야만 우리 생활에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항상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정신치료 전문가인 뇔르 넬슨과 지니 르메어 칼라바는 감사할 때 우리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영향을 3년간 연구하여「감사의 힘」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이들은 연구를 통해 감사를 느낄 때와 분노할 때 뇌로 들어가는 혈액의 양과 심장 파동 그리고 뇌파의 차이를 측정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감사를 하면은 뇌로 들어가는 혈액이 많이 되고 심장 파동과 뇌파는 일정하여 안정되고 분노할 때는 뇌로 들어가는 혈액은 아주 미미하고, 심장의 파동과 뇌파가 불규칙하게 뛴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우리 몸과 마음은 더욱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활기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몸이 건강해져요. 우리가 분노하면 몸이 약해지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바넷 깁슨(Barnett Gipson) 박사는 그가 쓴「행복한 하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감사가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감사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과 감사는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해지고 행복하면 감사해지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우리는 감사를 통해 부자가 된다” 감사하면 하나님이 더 주시기 때문에 더 부자 될 수밖에 없지요. 신학자인 존 헨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자 해독제이며 방부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각 분야의 많은 사람이 감사가 우리 몸과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세 가지를 주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면 우리 생활에 큰 복을 받고 금세 안심, 내세 복락을 얻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늘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드리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잠시동안 고개숙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기뻐할 수 있는 마음, 평안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일상적인 생활에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마음을 다스려서 이 험난한 세계를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마음은 기뻐하고 기도드리고 감사함으로 잘 안정시키고 다스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므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