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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5. 성찬주일설교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진 삶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7~9) <서론>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진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상하지의 유일한 보배인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은 보배는 없습니다. 우리는 죄가 많고 허물투성이요 털면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이 없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질그릇입니다. 번질번질하고 멋있는 질그릇이 아니라 아주 못생긴 언제나 부서질 수밖에 없는 그런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그런 질그릇 안에 이 보배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런 질그릇 같은 우리 인생에 모시고 있으므로 우리가 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보배가 귀하고 아름다움으로 주님께서 그 보배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시고 건져 주시고 높여 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사랑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귀하게 보호를 받는 것은 우리 그 곁에 있는 그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보배가 우리 속에 감추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다 첫째로,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고 말했었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싸는데 이 질그릇이 바싹 깨어질 것 같은데 안 깨어지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 병과 저주, 낭패와 실망, 죽음 등의 원수의 공격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딪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보혈 앞에 이 모든 세력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온갖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안 당한 고난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짊어지셨고 변고를 당하셨고 저주의 가시 채에 찔리시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몸에 겪으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다 극복하셨습니다. 이겨냈어요. 졌으면 안 되는데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내셨습니다. 그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부딪혀서 그리스도를 넘어뜨릴 힘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죽음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 배후에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53장 5절에 예언되어 있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은 우리 허물도 담당했고 죄악도 걸머졌고 우리를 위해서 평화를 갖다 주기 위해서 징계를 당했고 채찍에 산산조각이 나도록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짊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원수들이 우리를 공격해 와도 우리가 원수를 보지 말고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의지하면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너무나 원수를 바라보는데 익숙해졌습니다. 죄를 바라보고 허물을 바라보고 연약을 바라보고 마귀의 공격을 바라보고 낭패와 실망을 바라보고 헐벗음과 굶주림을 바라보고 부정적인 세력을 바라보고 떨고 두려워하고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능력 많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지 부정적인 세력을 바라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정적인 세력과 견주면 우리는 집니다. 실험의 대상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면 어떤 원수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싸우지 않는 곳이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인생 싸움에 들어와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오늘의 너희 사명은 무엇이냐. 투쟁이다. 내일의 너희 사명은 무엇이냐. 투쟁이다. 영원의 너희 사명은 무엇이냐. 죽음이라고 빅토르 위고는 말했었습니다. 사람이란 싸우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자기를 바라보면 언제나 산산조각이 나고 피투성이가 나지만 싸움에 이미 이겨 버리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긴 분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그분을 의지하면 우리는 백전백승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힘이 없으므로 우리를 의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항상 엎드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미하며 하나님 뒤를 따라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로 20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이제 예수님께 있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같이 계시다고 하셨으니 예수님을 가진 우리는 보배를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 낙심하고 뒤로 물러갈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신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이제는 이긴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마음에서 추방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해방된 후 홍해에 왔을 때 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진격해 왔습니다. 홍해를 바라보아도 절망이요, 진격해 오는 애굽 군대를 바라봐도 절망인 것입니다. 그 샌드위치 속에서 누구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부르셨으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나왔기 때문에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우리는 오히려 발버둥을 치면 하나님께 훼방이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관망할 따름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싸우셨고 그 싸우신 능력으로 우리를 건져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라고 오늘날도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자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나왔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4세기에 많은 사람이 세상의 유혹을 피해 광야나 깊은 산, 사막에 들어가서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정욕을 극복하기 위하여 금식하고 고행을 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철야 기도하며 육체노동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성자로 불리는 아셉시마스는 무거운 사슬을 몸에 매고 걸어 다닐 수 없자 무릎으로 기어 다녔습니다. 사막의 등불로 불리는 마카리우스는 6개월 동안 벌거벗은 채 늪에 들어가서 모기에게 몸이 물어뜯겨 몸이 걸레같이 되었습니다. 마론이라는 수도자는 11년 동안 나무통 속에서 끼니만 때우며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동굴이나 무덤 속에 살았습니다. 과거에, 많은 사람이 이러한 고행을 통해 자신의 죄를 사하고 육체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철저히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이 직접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난을 당해서 우리를 해방시킨 것입니다.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할 정도인 것이므로 마귀의 우리를 묶는 힘이 얼마나 철저하다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나를 해방시켜 주셨으므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해방되어서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시는 것이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해서 구원을 받고 은혜를 입고 축복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낭패와 실망 등, 원수의 공격이 인간의 노력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보혈 앞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수를 보며 두려워하거나 싸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찬미하고 감사하며 예수님을 인정하고 보혈을 찬미하고 보혈의 도움을 구하면 능력이 나타나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고 고난이 다가올 때 고난을 예수님과 대결시켜야지 여러분이 대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 세상에 태풍과 같은 죄악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도 폭우와 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른 땅이 도저히 목이 말라 걸어갈 수 없는 광야를 지나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이는 우리 위해서 미리 이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 예수 밖에는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이 질그릇 속에 기쁘게 들어와서 계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잘난 사람, 훌륭한 사람, 귀한 사람이라도 질그릇에 불과한 것이요, 공격을 당하면 바싹 깨어집니다. 모든 사람은 죄의 공격을 당하고 불의의 공격을 당하고 허무와 무의미의 공격을 당하고 질병에 공격을 당하고 저주에 공격을 당하고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은 질그릇이기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보배인 예수님을 의지하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는 싸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원수들이 우리를 우겨 싸서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해도 안 무너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내 속에 보배가 있습니다. 항상 그 보배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는다 둘째로,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 답답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죄책의 절망, 삶의 허무의 절망, 죽음의 공포와 절망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답답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를 낙심케 하는 많은 어려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편 40편 12절에 보면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내일 일을 네가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처럼 내일에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다가올지 알 수가 없는 답답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동안에라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은 우리가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과 낭패와 소망을 복으로 바꾸는 기적적인 보배가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이 시원하게 변화될 수 있는 길은 보배로운 예수님께 의지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기적을 그 속에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리 답답한 일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딪히면 답답한 일이 시원하고 좋은 일로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로 6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얼마나 답답한 일이 많이 다가오는 것입니까? 그래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은 아무리 답답한 일이 다가와도 여러분 속에 감추인 기적의 보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배인 예수님께 이 답답한 일을 내어 맡기십시오.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셔서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이 기회가 되어서 성공으로 일어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엘라 골짜기의 다윗과 골리앗과의 대결을 보십시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삼상 17:32) 도저히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조그마한 질그릇이고 골리앗은 큰 질그릇입니다. 질그릇끼리 부딪혀도 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만 보지 속을 안 봅니다. 그런데 골리앗 속에는 보배가 없어요. 그는 이방인이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원수들인 것입니다. 그 속에는 보배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어린 소년이었으나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여 보배가 그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 보배가 질그릇이 큰 골리앗을 대항하여 나갈 때 자기는 보배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얼마나 담대했는지 보십시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 담대하게 말한 것은 자기 속에 보배가 있어서 부딪히면 아무리 덩어리가 커도 진흙은 진흙이니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배가 있으면 여러분께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담대하게 선언을 하십시오. 나는 이긴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강하다. 나는 복을 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계신다.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 긍정적으로 대항을 하십시오. 보배를 여러분이 대변해서 말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들어가면 보배가 효과가 없어요. 보배는 여러분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속에 보배가 들어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보배가 역사하지 못해요. 그러므로 원수를 만나면 입을 열어서 보배가 빛을 발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병이든 사람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았다고 자꾸 입으로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치료의 보배의 역사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고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 나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나는 복의 근원이 되었다고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평안이 없는 사람은 나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하다. 평안이 내 속에 있다. 약한 사람은 나는 강하다. 나는 굳세다. 담대하다.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보배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귀는 환경에서 나타나지요. 모든 어려운 고난은 바깥에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움츠려 들어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의 보배는 속에 감추어 있지만 우리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승리를 가져오는 것이지 가만히 있으면 안돼요. 그러므로 다윗같이 초립동이 큰 대장군 골리앗을 향해서 나갈 때 아무 말도 안하고 입술 꼭 다물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나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 만군의 야훼의 이름으로 나온다. 얼마나 담대한 말인 것입니까? 오늘날 하나님이 너를 내 손에 붙이리니 내가 너의 목을 베어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다. 가슴이 서늘한 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 보배가 그 입술을 통해서 나와서 질그릇을 무너뜨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입술을 다문 보배를 감추어 놓은 사람들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2002년에 천국으로 가신 대천덕 신부님은 토레이 목사님의 손자로 우리에겐 강원도 정선에 있는 “예수원”사역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었던 경험으로, 이후 40년 동안 열등의식을 갖고 살아 왔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할머니하고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학교 갈 때 시골 애들만 신는 긴 양말을 만들어 주셨고 신발을 지어 주셨는데 굽이 큰 여자신발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여자 신발을 신고 긴 양말을 신고 학교가니까 애들이 전부 손가락질하면서 촌놈이라고 했는데 그 때 마음속에 열등의식이 들어왔어요. 그때 열등의식이 들어온 토레이 목사님은 평생에 열등의식이 있어 사람 앞에 기가 죽어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못들은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도저히 이 열등의식 속에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이 열등의식 속에 짓눌린 것은 마귀가 나를 짓눌러서 그런 것인데 내가 여기 해방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예수 이름으로 대적을 해야지 네가 입술 딱 다물고 있으니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나지 못하지 않느냐. 대결하라. 그래서 그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열등의식은 물러갈지어다. 열등의식은 나를 떠나라. 굽이 높은 신을 신은 열등의식은 떠나가라! 이 긴 양말을 신은 열등의식은 떠나가라! 그러자 열등의식이 떠나가고 그 때부터 해방과 자유를 얻어 평안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읽어 보았었습니다. 여러분 토리 신부같이 훌륭한 신앙인도 열등의식에 잡히면 꼼짝을 못했습니다.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속으로 늘 갖고 있을 때는 치유를 받지 못했으나 보혈로 사탄을 대결해서 입술로 말할 때 속에 있는 보배의 능력이 나타나서 해방시켜 준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에 절망과 허무, 죄와 죽음의 공포 등으로 낙심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절망과 낭패를 소망과 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게 말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을 안 하면 안돼요. 여러분이 꿈꾸고 믿는 바를 입으로 말해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는다 셋째로,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들고 불행을 가져오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협박하고 공갈해서 겁을 집어 먹고 움츠려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허물이 많고 공격을 당할 때라도 속에 보배가 있는 것을 모르고 흐지부지해지므로 늘 패배하는 것인데 우리가 보배가 있는 것을 알면 절대로 보배를 담아 놓은 질그릇을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다이아몬드를 여러분 속에 담고 있는데 그 그릇을 바깥에 내놓으면 사람들이 발로 차고 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자마자 끌어안고 가지요. 여러분은 보배인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보배가 있으므로 절대로 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안 버리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뭣도 모르고 버릴는지 몰라도 아버지가 안 버리고 성령이 안 버리고 천사들이 안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허물이 많고 공격을 당할지라도 속에 보배가 있는 이상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으므로 세상에서도 버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버려야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지 하나님이 버리지 않는데 세상이 어떻게 버립니까? 저가 나를 사랑한 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건지는데 누가 막겠습니까?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이 높이는데 누가 낮출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보배가 있으면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건지고 하나님이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로 5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보배가 되어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내가 주님을 의지하면 어떠한 사망의 골짜기에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망의 골짜기를 이미 2천 년 전에 지나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골짜기는 예수님 발밑에서 전부 평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십자가의 지팡이와 막대기인데 십자가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사망의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어 버리고 모두 다 그를 통하는 사람마다 주님을 의지하면 승리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보지 말고 어둡고 캄캄한 인생길을 걸어가더라도 보배인 예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박해 받을 것을 말씀했어요. 요한복음 15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도 박해했는데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 믿는다고 박해 안할 턱이 있습니까? 그러나 사람이 박해한다고 우리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면 버림을 당하지 사람들이 우리를 버린다고 우리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버려도 하나님이 우리를 품어 주시면 우리는 까딱없고 더 전진하고 발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박해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불쌍히 여기사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보배가 있는 곳에는 아버지도 성령도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9절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보통 말이 아니지요. 우리를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을 수가 없는데 끊을 수가 없는 예수님이 우리의 보배가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어떤 역경을 당해도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승리를 생각하고 영광을 생각하고 축복을 생각하고 승리를 말하고 영광을 말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거꾸러뜨림이란 삶이 황폐하게 됨을 말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파멸을 시킬지라도 우리는 파멸을 안 당하고 안 망하는 것은 보배는 원수가 못 건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겉을 아무리 파멸을 시키려고 달라 들어도 보배가 있기 때문에 환경은 파멸을 시켜 놓아도 보배가 나타나므로 보배가 환경을 새롭게 건설해 놓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로 24절에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으나 그리고 무덤에 파묻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무덤에서 일으켜 세워서 승리자로 만드신 것은 그가 사망에 묶여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꾸러뜨림을 당했으나 거꾸러뜨림에서 일어나서 황무지를 장미꽃이 피는 세계로 만들어 주시는 능력으로 여러분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보배이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원수의 최악의 파멸을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무슨 일을 당해도 끝장이 좋습니다. 끝에는 부활합니다. 보배는 부활하는 보배가 우리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참으면 끝에 부활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보배를 의지하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참으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0~22) 여러분 어떠한 일이 다가와도 끝에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이 죽어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임연심 선교사가 30년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다가 이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세상을 떠난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최후의 승리를 획득하게 된 것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배가 속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배 때문에 최후의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승리를 이미 가지고 있어요. 부활이요, 생명을 가지고 있어요. 사망아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외칠 수가 있는 것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있으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반드시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승리는 주어진 것입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은 항상 부활의 생명을 가지시고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100번 넘어져도 101번 일어나는 우리들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망이 우리에게 와도 항상 생명이 붙어 있고 우리가 사망으로 넘겨짐을 당하는 것도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생명에게 잡힌 것이 여러분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 생명에 잡혀있는 사람이다. 내 속에 있는 보배는 생명의 원천이 되신다. 그러므로 내 속에 보배가 있으므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결국에 안 싸여지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항상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생명 내 생명이 되어서 우리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다고 입술로 늘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 보배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이 보배가 밖으로 힘을 나타내는 것은 여러분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 보배가 있는 것을 아무리 알고 꿈꾸고 믿어도 입술을 딱 닫아 놓으면 보배가 밖으로 안 나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 때 나는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욱여 쌓여지지 않는다.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이 나를 둘러싸도 나는 넉넉히 이긴다. 입술로 고백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나는 답답한 일을 당해도 주님이 답답한 일을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므로 반드시 승리하고 나온다. 축복받는다. 입술로 고백하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핍박을 받아서 외로울 때도 주님께서 같이 계시므로 외롭지 않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나는 버림을 받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이 외롭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다. 입술로 고백하면 그것이 그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안 망한다. 사업이 망하고 가정이 망하고 생활이 망하는 것 같지만 나는 안 망한다. 그러면 그 말이 나가서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주신 큰 무기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 바 되었느니라. 죽는 사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다고 말했으므로 말로써 묶고 푸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나라 열쇠를 여러분 입술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오늘 이 시간부터 사용해서 보배와 질그릇이 능력을 나타내도록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보배와 질그릇이 내 속에 있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 보배는 영혼이 잘되게 하는 보배요, 범사가 잘되게 하는 보배요, 강건케 하는 보배인 것입니다. 용서, 의, 거룩함과 성령충만, 치료와 건강,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 영생복락을 가져오는 보배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 보배를 말하십시오. 고백하십시오. 입술로 주장하십시오. 이기고 승리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보배로 인하여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이 보배를 우리 속에 감추어 주셨는데 우리가 이것을 입으로 시인해서 나타내어 마귀를 이기고 환경을 정복하고 승리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