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3. 주일설교

믿음의 단계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장 16~26)


<서론>
저는 오늘 “믿음의 단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삶의 단계가 있습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장성하고 시들고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영적인 생명임으로 그 삶의 단계가 뚜렷이 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박사는「부활의 주와 함께하라」는 책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체험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로 32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이야기로,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며 대화하면서도 예수님인지 알지 못하고 함께 걸어갔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가까이에서 주막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갑자기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박사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단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첫째, 무지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둘째는 불신앙의 단계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들었으나, 믿지 못하므로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 단계인 것입니다. 셋째는 감동의 단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기쁨과 마음에 감동을 체험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넷째는 만족의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마지막 단계로, 주님 안에서 사명을 깨닫고 체험하여 믿음으로 사는 단계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삶의 단계가 있듯이 우리의 신앙도 영적인 생명이므로 반드시 삶의 단계가 있습니다.

<본론>
1. 선악과를 따먹은 죄인의 삶
첫째로, 믿지 않는 사람은 선악과를 따먹은 그대로의 삶,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삽니다.
하나님을 떠났으니까 자기중심의 삶을 살고 자기중심으로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라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주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경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서 좋다 나쁘다를 결정할 선택의 주권은 하나님밖에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이 좋다는데 나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좋다고 생각합니다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면 하나님과 대결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죽는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샘에서 끊어진 도랑물은 말라버리고 마는 것처럼 생명이 고갈되어 버리고 영적으로 죽고 육체적으로 죽고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는 비극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인본주의, 하나님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유일한 주권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권을 경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우주의 왕이 되시고 주권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마귀가 꾀었습니다.
먹어라. 선악과를 먹어라. 너의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서 하나님과 경쟁하게 되고 하나님과 주권다툼을 하게 되고 하나님처럼 되니 좋지 않으냐. 먹으라. 그 꾀임에 하와가 넘어가고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을 꾀어서 먹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마귀의 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 쫓겨나니까 마귀가 덥썩 붙잡은 것입니다. 마귀는 천사장으로서 하나님가 동등되려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주권다툼을 하다가 미리 쫓겨난 천사장 마귀는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오늘날 하나님을 대항하고 하나님께 거역하는 행동을 온 우주에서 펼치고 있는데 저들이 아담을 공격해서 그들편으로 끌어들이고 만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로 21절과 같이 마귀의 종이 되면 육체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인데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서 마귀의 종이 되면 마귀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서 마귀가 행하는 일을 자기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할 수 없지요. 하나님과 성품이 틀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삶을 살게 되고 그대로 살면 반드시 죽어서 지옥인 음부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7절로 13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다 육체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로 살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대적된 삶을 살고 있고 반드시 죽으면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2. 생명과를 따먹은 구원 받은 삶
둘째로, 예수님을 믿는 삶은 생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동산에 선악을 아는 나무만 있을 뿐 아니라 생명나무의 과일도 있었습니다. 생명나무의 과일은 무엇을 말합니까? 절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주권자로 모시고 믿고 순종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열매가 생명과인데 그 생명과가 무엇을 대표하느냐. 예수님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생명과를 따먹게 되는데 생명과이신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이미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우리가 생명과로 모셔드리기 위해서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용서를 구하지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면 용서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호수가에서 고기를 잡았는데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잡지 못하는데 빈 배에 그물을 싣고 있을 때 예수님이 배를 좀 빌려 달라고 해서 배에 성큼 올라타셨습니다. 배를 강가로 저어서 예수님을 모시고 모든 군중에게 예수님이 말씀을 증거하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 깊은데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했었습니다. 그럴 때 베드로가 변명을 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해가 떴는데 호수 가운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눈을 뜨고 보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물을 던져보니까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그물이 찢어집니다. 기적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자기 죄를 느꼈습니다. 하나님 가까이 가면 우리가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죄책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엎드려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주님을 만나면 제일 먼저 느끼는 충격이 나는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 왜 그러느냐. 여러분, 빛이 비취면 내 때가 얼마나 묻고 얼마나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처럼 예수님은 빛이시라 그리스도를 만나면 내 인생이 얼마나 더럽고 누추하고 부정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가 더러운 줄 모르고 큰소리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베드로처럼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꿇어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바리새교인과 세리가 하나님 성전에 들어갔는데 바리새교인은 큰소리 하면서 주님, 나는 저 세리처럼 도둑질도 안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금식도 하고 예배도 잘 드리는 사람인데 저 세리는 도둑질하고 죄짓고 불의한 사람이라고 큰소리 했는데 이 세리는 그렇게 하나 바리새교인이 그렇게 말할지라도 세리는 가슴을 치고 하나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렇게 했다는 것인데 누가 더 하나님을 알았느냐. 자기를 자랑한 바리새교인이 아니라 자기의 가슴을 치는 세리가 더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죄인인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모르니까 자기는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말하지만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죄인인 것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빛을 비취임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 앞에 죄지은 사람인 것을 깨달아 안 사람은 생명과를 따먹을 수 있는 길을 연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누가복음 18장 13절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삶을 깨닫는 사람은 죄인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인데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내가 좋은 일을 해서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매일같이 죄를 짓는데요. 우리는 거짓말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고 사람을 미워하고 도적질하고 온갖 죄를 다 지었는데 죄 없다는 사람이 없으니 자기 힘으로 정결하고 의롭게 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 없다는 사람은 자기가 죄 없다는 것을 하나 더 보태어서 거짓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죄인이 되었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그러한 깨달음을 가졌을 때 비로소 자기를 도와줄 자가 필요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린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주님과 원수가 되어서 주님이 우리를 보면 심판하려고 하시고 우리는 감히 얼굴을 들 수 없는 처지에 있는데 예수님이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 손을 잡고 사람의 손을 잡고 당신의 가슴에 하나로 합치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화목을 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존재지만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과 화목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이 되고 나니까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이제는 나의 자식들이라고 끌어안고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꿈에 죽어서 천당에 갔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보고 네가 세상에서 의롭게 살았느냐? 살지 못했습니다. 너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느냐?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미워한 적이 있지? 있습니다. 너는 도둑질한 적도 있지?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여기 나왔느냐? 감히 올 수 없는 자리에 왔습니다. 너는 심판을 면할 수 있겠느냐? 면할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누구 한 사람 옆에 와서 딱 서거든요. 빛이 환하게 나며 마음에 화평을 주는 그분이 와서 서서 하나님, 이분은 자기 힘으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것을 면할 수 없었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내 편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천당에 올라왔을 때는 이제 내가 그 편에 설 수밖에 없는데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청산했은즉 내 계좌에 이 사람 죄를 다 청산했으므로 나의 의로움으로 입혀 주시고 이 사람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는 죽을 죄를 지었지만 내 아들 예수가 너를 대신해서 청산했으므로 아들이 청산한 공로로 너를 용서하고 의롭다고 칭하노니 천당에 들어오너라. 그렇게 말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내 한사람, 우리 한사람 한사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 스스로 설 수 있는 자격이 없지만 이 땅에서 예수님 편에 서 있으면 예수님이 천당에서 우리 편에 서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편에 서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가슴을 펴고 당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고 용서와 의를 주시고 내 불의를 짊어지시고 거룩하고 성령충만을 주시고 내 병을 담당하시고 내 저주를 짊어지시고 내 죽음을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당당하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은혜를 주장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은혜라는 것은 여러분, 값없이 돌보아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값없이 우리를 돌보아 주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고 구원은 하나님이 예수 때문에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선물도 대가없이 받는 것이 선물입니다. 이제 추석이 왔다고 여러분 선물을 가져오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선물을 가져올 때마다 제가 돈을 지불한다면 값 주고 산 것이지 선물이 아닙니다. 선물은 공짜로 받고 그저 감사하다고 웃고 악수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감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행위가 거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가 잘해서 의롭게 살아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에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은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전혀 예수님 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의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걱정 없이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십시오.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천국 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값없이 주는 구원을 오늘날 받아서 이미 누리고 있기 때문에 육신으로 이 지상에서 살지만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알아야 될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하는 삶은 선악과를 따먹은 죄인의 삶을 회개하고 생명과 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고 사는 것이 바로 중생인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아담이 지은 죄를 다 회개하고 이제 생명과 되시는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그리스도를 따라 살면 중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아담과 같지 않습니다. 새로운 인류의 조상입니다. 아담은 아버지가 되어서 모든 자손들에게 자기 유전을 전해 주었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에 아버지가 없이 성령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의 타락한 유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저주도 받지 않았고 예수님은 죄가 없으므로 죽지도 아니하고 병들지도 아니하고 영원히 사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셔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새로운 조상이 된 것입니다. 옛 아담의 나의 과거의 사람은 죽고 청산되어 버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은혜를 통해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저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되시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면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말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중생하는 삶은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은 과거의 나는 청산하고 생명과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는 것이고 중생하면 무엇이 다르냐. 세상의 영이 쫓겨나가고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 속에는 세상의 영이 들어와서 마귀가 흑암의 세계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하면 이제 옛사람 청산해 버리고 새사람이 되어서 성령이 와서 우리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들어오면 갈라디아서 5장 22절로 24절처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우리에게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면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와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깨닫고 믿으면 믿은 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몸에 붙어서 정욕을 행하는 것은 거짓인 것입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단호하게 예수 이름으로 대결하고 물리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된 증거로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성령이 여러분을 통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아닙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에 길거리에 들어간 사람 붙잡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 보라고 하십시오. 못하지요. 여러분은 쉽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로 15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3. 십자가 대속의 풍성한 삶
그 다음 중생한 사람은 십자가 대속의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서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지 우리 영혼만 구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옛사람을 청산하고 옛 세계를 청산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세상에 살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십자가를 쳐다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은 여러분을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러분을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멍에를 내가 메지 말아야 됩니다. 거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의 멍에란 무엇인 것입니까? 죄악의 종의 멍에가 오면 단호히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불의의 죄의 멍에가 오면 이것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고 질병의 멍에가 와도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고 저주와 가난의 멍에도 물리치고 사망과 음부의 멍에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주신 것은 용서와 의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죄를 용서하고 의롭다 하는 의복을 입혀 주시고 불결을 없애고 성결과 성령충만한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선물로 주시고 치료와 건강의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치료하시고 건강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병은 2천 년 전에 합법적으로 하나님이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알고 믿고 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예수 이름으로 이것을 알고 너희 병은 물러가라! 떠나가라! 사라져라! 건강할지어다! 튼튼할지어다! 씩씩할지어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저주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저주도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청산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이미 허락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저주 받지 않았습니다.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에 들어가면 복을 받게 되어 있고 사업을 하게 되면 복을 받게 되어있고 들어가도 나와도 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법적으로 주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누리고 안 누리는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릴 수 있으면 믿음으로 주장을 하십시오. 믿고 주장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믿고 주장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바라보고 믿고 주장하면 이루어진다. 먼저 바라보고 알아야 돼요. 십자가를 바라보고 아~ 주님, 십자가에서 나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가셨구나. 몸 찢고 피 흘려서 아담의 저주를 다 청산했구나. 아브라함의 복을 허락했구나 하는 것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믿어야 돼요.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믿고 안 믿은 것은 여러분 자유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어야 돼요. 믿음이 없는 사람 없습니다. 다 믿음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믿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백부장이 자기 종이 중풍으로 누워 있을 때 예수님께 나와서 고쳐 달라고 하니 예수님이 집에 가서 고쳐 주겠다 하니까 올 필요 없습니다. 주님은 말 한마디면 내 환자가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감탄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 안 믿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 백부장도 믿음을 활용할 수 있는데 하물며 예수를 구주로 믿는 여러분이 믿음을 활용 못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있습니다. 없다고 자꾸 생각하는 것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생각인 것입니다. 믿음이 많이 안 있어도 좋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힘이 있느냐. 믿음으로 이 산들에 명하여 바다에 던지라 해도 옮겨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힘이 그만큼 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믿음에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이 잠들고 있어요. 너무나 내 믿음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내가 무슨 믿음이 있느냐. 과소평가해서 믿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믿음을 사용하면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셨으니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믿음을 쓰기 위해서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날 위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은 것 왜 못 믿어요? 날 위하여 죄를 다 청산하고 용서와 의를 주었는데 왜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라고 믿어야지요. 모든 잘못된 행동을 다 청산하고 씻어버리고 성령을 주셨는데 성령을 모셔드리도록 믿어야지요. 병 나은 것을 믿어야지요. 저주에서 해방된 것을 믿어야지요. 천당 간다고 믿어야지요.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바라보고 그리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여러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룬 것을 우리는 바라보고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 마음에 깨닫게 해서 마음이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못산다는 부정적이고 퇴폐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마음의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주셨으니 나는 변화된 사람이다. 용서받은 의인이다. 나는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다. 나는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축복받은 사람이다. 나는 부활, 영생, 천국의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마음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마음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믿은 공로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공로 때문에 달라진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 바라보고 꿈을 가질 수 있지요. 담대하게 새사람이 된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낡은 사람이 아닙니다. 꿈이란 내일을 말하는데 내일은 나는 오늘보다 의롭게 되고 내일은 오늘보다 거룩하게 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건강하게 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살게 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영생충만하게 된다. 내일의 꿈을 가지십시오.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위해서 이 영성을 주신 것입니다. 동물들은 이것이 없어요. 짐승들에게는 사차원의 영성이 없어요. 사람에게는 사차원의 영성이 있는 것입니다. 생각할 수 있고 꿈 꿀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이 사람의 차원을 넘어서 기적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
그 다음에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에 따라서 살아야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어떠한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서 구원을 하셨느냐. 인격적인 변화의 완성을 위해서 구원시켜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똑 닮은 자녀들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많은 자녀를 갖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자녀 욕심이 대단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난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생육하고 번식하여 땅에 충만케 하라. 아~ 자식욕심이 많으시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자녀가 되어서 하늘에 올라와서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로 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여러분들 다~ 하나님이 만세전에 미리 알고 계셨어요. 여러분 어디에서 났고 성이 누구고 어떠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고 미리 아신 자들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 미리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정해 놓은 여러분을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우연히 예수 믿은 것이 아닙니다. 만세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고 아시고 구원받도록 정해 놓으시고 때가 이르매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실까? 나 같은 사람 누가 알까? 천만에요. 하나님은 만세전에 여러분 태어나기 전에 여러분 아시고 여러분을 예정하사 부르신 것입니다. 따라 읽어 주십시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는 것이 우리 부르신 목적인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을 닮게 하기 위해서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예수 보혈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입었는데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천당에 올라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잡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택해 주셨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내 주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자녀로 정해 주셨고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먼저 사랑해 주셨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붙들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여러분을 붙잡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구만리 장천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소외되어 있다고 여러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에 소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해서 구원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필요 없이 우연히 덧붙여서 구원한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기뻐서 발을 동동 구르시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려고 여러분을 지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아들을 주어 핏 값으로 구원할 정도로 값을 주고 구원했으므로 여러분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가 되기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따라서 산다.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가 깨닫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사는 자녀들을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이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산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라. 이 세상에 살면서 나는 의롭게 살고 진리를 따라 살고 거룩하게 살겠다고 마음에 결심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로새서 3장 9절로 10절에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셨는데 믿음으로 옛사람을 벗는다는 것은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여러분을 다시 유혹에서 끌고 가려면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나는 너하고 상관이 없다. 새사람을 나는 입었으니 새사람은 나를 점령할지어다. 생각과 말로써 하는 것이 굉장히 파워가 있습니다. 내가 꿈꾸고 믿고 말하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병 낫는 것만 아니라 도덕적인 생활에도 내가 불의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이면 주님 앞에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십자가의 보혈로 지음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그 다음 그것을 믿고 나는 의롭게 되었다. 나는 거룩하게 되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면 성령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끊임없이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다른 보혜사로서 여러분께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보혜사란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항상 여러분과 같이 계신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항상 같이 계셔서 여러분을 도와주시는 것이 보혜사인 것입니다. 오늘날 보혜사가 여기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내 설교 들을 때 안 졸고 설교를 깨달을 수 있도록 깨우치는 것도 성령이 하시는 일이요, 제가 설교하는 것도 성령이 저를 도와 주셔서 제가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고 말씀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성령이 계셔서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예비한 것을 깨달아 알고 믿고 소유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항상 우리 중생한 사람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은 여러분의 가정교사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 선생이신 것입니다. 성령님을 따라서 가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예비한 것을 다 깨달아서 믿고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기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사랑의 긍정적인 인격이 되도록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랑 안에서 자라자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아주 복잡하게 말했지만 다른 말 할 필요 없이 사랑 안에서 자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오늘날 교회 나온다고 해서 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가 보낸 사람도 많습니다. 마귀가 보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의 형상을 본받고 흉내를 내면서 와 있는데 무엇을 가지고서 분별하느냐.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를 가지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미움이고 하나님은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용서하고 사랑하고 남을 헐뜯지 아니하고 남을 벗기지 아니하고 남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들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사랑의 역사인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예수 믿는 체하면서 남에게 허물을 덮어씌우고 남을 벗기고 할퀴고 못살게 하고 죽이려고 하는 도움을 하면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는 마귀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가 평신도든지 집사든지 장로든지 목사든지 명찰은 상관할 것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흉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에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은 아닙니다. 그는 마귀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아니하면 마귀의 손에 잡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온전한 사랑을 가지게는 자라야 되겠지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동기가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지 미움이 동기가 되어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헐뜯고 허물을 들춰내고 할퀴고 씹고 못살게 만드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은 사람들이 저를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지 세상을 심판하려고 오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셨으면 우리 한사람도 살아남을 사람 없어요.
나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사분오열되고 시끄러운 것을 볼 때 탄식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은 한국교회가 정말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는데 마귀가 한국교회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자기 사자들을 많이 만들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사자들은 활발하게 미움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분열시키고 파멸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늘 조심해서 사랑의 긍정적인 인격이 되어야 예수님을 닮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사랑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에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육체의 장막집을 떠나든지 예수님의 재림에 임하든지 다 천당 가게 만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 썩어질 몸이 썩지 아니할 몸을 얻겠고 이 더러운 몸이 깨끗한 몸으로 얻겠고 추한 몸이 영광스러운 몸을 입어서 주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나라에 갈 때 우리의 형상이 다릅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느냐. 그것에 따라서 자란 그대로 영광으로 변화되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아주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고 올라갈 사람이 있고 어떠한 사람은 적은 면류관을 쓰고 올라갈 사람이 있고 어떠한 사람은 아주 대낮같은 광채를 입고 올라갈 사람도 있고 어떠한 사람은 전등불 같은 광채를 입고 올라간 사람, 그 광채는 다르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에 올라가서 상급대로 영원히 누리고 살 것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로 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종국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셔서 구원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아담의 후예로서 선악과를 따먹고 인본주의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버림받은 사람이었으나 생명과 되시는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서 당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므로 우리가 그를 보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구주인 것을 인정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그 결과로 성령을 받아서 변화 받고 사랑의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고 천당에 올라가는 이것이 신앙의 단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의 단계를 착실히 받아서 사랑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백성들이 되어서 천국에 영광스럽게 올라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삶이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중생하고 성장하여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으로 변화되어 천국으로 가는 단계를 밟아야 될 것입니다.
모두다 죄 있는 것을 회개하고 중생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성장하여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누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으로 변화되어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는 우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보혜사 성령이여 오늘 우리 마음을 감동감화 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