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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7. 성찬주일설교 마귀와의 싸움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17~20)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귀와의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비장한 마음의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각오와 결심을 하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귀하고 싸워서 우리가 지면 마귀에게 훼방 당하고 압박을 당하고 마귀가 우리를 침울하게 만들고 점령해서 악마화시키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를 이기게 되면 우리는 해방과 자유를 누리고 진실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고 성령충만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마귀와 싸워야 되고 아담과 하와 이후로 우리는 마귀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총으로 마귀를 이기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본론> 1. 구약 시대에서 배울 사건들 우리가 구약시대에서 배울 사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모습이 오늘 선민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 속에 들어가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 우리 선민에 비교하면 가나안 땅에 이방인들은 마귀로 비유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서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은 엄청나게 강한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성을 돌고 진에 들어와서 쉬고 이레째는 여섯 바퀴를 돌고 일곱 바퀴를 돌고 난 다음에 큰 소리로 외치면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칠일째는 일곱바퀴 돌고 고함을 쳐라. 여리고성을 도는 것은 그들에게 굉장히 큰 시련입니다. 왜냐하면 철벽성이 돌면서 보면 볼수록 무너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리고성을 돌 때 여리고성이 무너진다는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을 해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이 무너진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있는지 강하고 담대하게 입으로 시인하는지 이런 것을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기 6장 14절로 16절에 보면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야훼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그 백성들이 외칠 때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아주 견고해서 섣불리 공격해 도저히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은 지형적으로 가파른 바위산 위에 지어 놓아서 기어 올라가지도 못해요. 성벽은 이중벽으로 아주 견고했습니다. 외벽 두께가 1.8미터이고 내벽 두께가 무려 4~5미터나 되었고, 성벽 높이도 9미터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이 성은 난공불락의 금성철벽이었습니다. 더욱 이스라엘 백성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으로 여리고의 국민들은 합쳐서 단단히 방어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믿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무장으로써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엿새 동안 돌고 이레째는 일곱바퀴 돌고 고함을 치면 무너진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그 말을 들을 때 웃기는 소리 아닌 것입니까? 눈에 보이는 철벽성이 어떻게 여섯 바퀴, 여섯째 돌고 칠일에 일곱 바퀴 돌고 고함치면 무너진다. 그것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수 있으면 오늘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믿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느냐 안 믿느냐를 시험해 보고 하나님이 기적을 주시는 것인데 과연 믿으면 순종할 것이고 믿지 아니하면 순종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면 승리를 외칠 수가 있고 어떠한 대적도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선민이지만 여리고성 안에 있는 기생 라합의 신앙을 보면 놀랍습니다. 조그마한 주막집을 하면서 기생 노릇 하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여자가 있었는데 여호수아가 스파이를 여리고성에 보냈을 때 스파이가 그 여관에 들어가서 그 기생하고 타협을 했습니다. 그 기생은 “너희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고 못할 것이 없는데 너희 하나님이 이 성을 내어 주었다고 하니 이 성은 무너지고 아주 백성들은 다 도륙을 당할 것인데 너희가 이 성을 점령할 때 나와 우리 아버지 집에 식구들을 살려다오. 그러면 내가 고발 안하겠다.” 그래서 이스라엘 스파이들이 그 집에 숨었을 때 여리고 정부가 경찰관을 보내어서 잡으러 왔을 때 숨겨 주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 기생이 너희가 쳐들어 올 때 우리 아비집을 살려 달라고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이 성을 돌아서 이 성이 무너질 때까지 한 사람도 집밖에서 나가면 우리는 책임없다. 집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안 죽을 것이다.” 그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생은 모르겠지만 그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들을 다 집으로 불러 모아놓고 여관 철폐하고 엿새 동안을 그들을 묵게 하는데 그들이 보니까 너주레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 한 바퀴 성을 돌고 가서 쉬고 이틀 째 와서 또 한 바퀴 돌고 쉬고 사흘 째 와서 또 한 바퀴 돌고 쉬고 하는데 저래가지고 성이 무너질 턱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아니야. 네가 기생 노릇하더니 정신이 돌았구나. 저런 사람들이 와서 어떻게 이 성을 무너뜨린다 말이냐. 집에 소여물도 줘야 되고 말의 먹이도 줘야 되고 집안일도 돌봐야 되는데 너 때문에 잡혀 있을 수가 없다. 나 가겠다.” 오빠로부터 시작해서 언니, 아버지, 어머니 집에 밖에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 앞에서 팔을 벌리고 막고 있는 자가 기생 라합입니다. “못갑니다. 나가면 죽습니다. 반드시 성은 무너집니다. 그러니까 못나갑니다.” “얼마동안 있어야 되느냐.” “칠일 동안 있어야 됩니다. 못나갑니다.” 엿새째 되어도 성이 금이 하나 안나거든요. “너 미쳤다. 이제 우리는 나가겠다.” “못 나갑니다.” 그 믿음의 시련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기생 라합은 비록 기생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철저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동생들을 결사적으로 막아서 칠일에 성이 무너질 때 한 사람도 안 죽고 살려 놓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기생 라합의 믿음이 더 위대하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2장 18절로 20절에 보면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기생 라합과 그 믿음이 인내를 통해서 그 식구들을 다 살린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수 6:25)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전쟁에 나갈 때 마음에 시험을 당한 것입니다. 성경에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 자기 마음을 제어하지 않는 자는 성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뒤로 물러가지 않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일단 믿었고 믿었으면 실천해야지 중간에 가서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의 역사는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여리고성 군사들과 기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여리고 군사들이 고함을 치고 너희들이 우리 성을 못 무너뜨린다. 오는 놈마다 다 죽이겠다고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 말도 말 못하게 하고 성만 빙글빙글 돌게 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시험에 안 들턱이 있습니까? 마음에 시험이 들어 과연 이 성이 무너지겠는가.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겠는가. 염려와 근심이 마음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단호하게 의지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6일 동안 아무런 환경적인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하는 자들의 반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이들을 이끌고 나간 여호수아의 결단도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마지막에 성은 까딱도 없는데 성이 무너졌다고 외쳐라.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외치라고 말할 때 바보같지 않습니까?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어떻게 외칩니까? 그러나 성은 무너졌다. 우리는 이겼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성이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리려고 하면 문제가 없지요. 지진이 일어나서 땅을 흔들어 버리면 무너지고 말 것인 것입니다. 여호수아기 6장 20절에 보면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졌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마귀와 싸움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 돌기와 같은 것입니다. 마귀는 제일 처음에는 움쩍도 안하는 것입니다. 버티고 서서 딱 노려보고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말씀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매일 저녁에 안 잊어버리는 날은 반드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에게 훼방하는 원수 귀신은 물러가라고 하는데 어떤 때는 귀신이 자기의 모습을 나타날 때가 있어요. 제가 이 말은 잘못 오해될까 싶어서 말은 안하지만 오늘은 담대하게 말합니다. 며칠 전에는 내가 귀신을 쫓아내니까 귀신이 내 앞에 딱 버티고 서잖아요. 그래서 귀신아 나가라 그러니까 암말도 안하고 딱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나가라! 꼼짝도 안합니다. 그때 제가 여리고성이 기억이 났습니다. 엿새 동안 돌고 이레째는 일곱바퀴 돌고 고함을 쳐라! 인내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꿈쩍도 안하고 두려워 안하는 것 같지만 시험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너희 원수 귀신아 너는 거짓의 애비니 물러가라! 성경에 저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 했으니 말씀에 입각해서 명하는 것이니 물러가라! 물러가라! 계속해서 투쟁을 하니까 마귀가 너 아무리 외쳐도 안 나간다. 나는 두렵지 않다. 너가 나는 두렵지 않지만 내 속에 계신 예수님은 네가 두려울 것이다. 나는 예수님 이름을 의지하고 명하니 물러가라! 순식간에 종이가 찢어지듯이 팍 찢어지더니만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지고 마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하고 싸울 때 여리고성 돌기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돌았다고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하셨으니 쫓겨나갈 때까지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에 여러분께서 쫓아낼 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므로 큰 승리를 얻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다니엘의 기도 우리는 또다시 마귀하고 싸울 때는 다니엘의 21일 기도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사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 중에 지도자인 다니엘이 훗날에 자기 나라가 어떻게 될지 알기 위해서 21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21일 동안 기도를 하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응답이 없으니까 아주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런데 21일째 되는 날에 천사가 와서 그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네가 기도하는 첫날에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보내 주셨으나 내가 응답을 갖고 내려오는데 공중에 권세 잡은 바사왕의 마귀들과 21일 동안 대치해 있어서 그것을 뚫고 내려올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이미 허락해 주셨는데 내가 그 적군들을 뚫고 내려올 수 없을 때 군장 미가엘이 내려와서 나를 도와주매 내가 적군을 뚫고 내려와서 너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한 열흘 기도하고 낙심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더라면 응답을 못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다니엘서 10장 10절로 12절에 보면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공중에 권세 잡은 자하고 21일간 대치해 있다고 그가 말한 것은 다니엘서 10장 13절로 14절에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여 당장 응답이 안온다고 낙심하면 안될 것은 하나님이 당장 응답하셔도 마귀는 결사적으로 여러분 기도가 응답 안 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서 응답하고 천사가 응답을 갖다 준다 하더라도 마귀가 중간에서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막을 때 우리가 낙심해서 뒤로 도망쳐 버리면 마귀는 기어코 천사의 응답을 못 내려오게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더 응원군을 보내서 기도가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소원과 목표를 두고 기도하다가 응답이 속히 안 오면 반드시 낙심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낙심시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요? 저는 50여 년 동안 목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분들과 신앙 상담을 했는데, 그들이 고민을 내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주일 성수를 꼭하고 십일조도 반드시 바치는데 왜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는 질문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저는 몇 년째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은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는 병 낫기 위해 기도했는데 병이 낫지 않으니, 제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대부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하려고 노력하고 기도하지만, 응답이 되지 않아 낙심을 하고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E. M. 바운즈는「기도의 능력」이라는 책에서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귀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마귀는 기도가 빠진 성경 공부, 기도가 없는 봉사, 기도가 없는 종교는 겁내지 않습니다. 마귀는 오직 우리가 기도할 때 두려워합니다.” 기도 없이 아무리 성경공부해도 마귀는 싱글벙글 웃습니다. 너 한방이면 무너진다. 기도 없는 봉사, 아무 효과 없다. 기도 없는 전도, 아무 효과 없다. 그러나 기도하면 마귀는 벌벌 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마귀는 제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을 하셨지만, 마귀의 훼방으로 응답을 받기까지 오래 지연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끝까지 기도하여 응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견뎌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견뎠습니다. 요셉은 13년을 견뎠습니다. 여러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끝까지 참고 견디면 나중에 응답이 오면 잘했다고 우리가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래 견디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너무 우리는 조급한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이가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가 알려 주리라고 했는데 이 성경에 예레미야서 33장 3절인데 예레미야가 너무 성질이 급해서 응답을 안 해준다고 자기 수단과 방법으로 발버둥을 치니까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 감옥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자꾸 뛰어다니면서 훼방되니까... 그래서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하나님이 이제 내게 부르짖기만 하라. 일은 내가 할테니까. 너는 부르짖으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원망하거나 낙심하거나 탄식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부르짖으면 일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항상 말하거니와 여러분, 계산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계산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기도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지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게 없는 것을 믿으라고 하니까 어렵지만 그러나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인 마귀는 이미 실제로 권한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다 이루어서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마귀는 우리를 잡을 고리가 없습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와 후손을 잡은 것은 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예수님이 갚아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마귀가 우리를 잡고 있을 조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어버려 승리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법적으로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된 사람인 것입니다. 마귀에게 더 이상 묶여서 끌려다닐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3. 마귀가 쫓겨남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재물이 되시므로 타락의 빚을 다 청산해서 마귀의 무장을 해제시켜 버린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3절로 15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라는 것은 마귀의 통치와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 버리고 십자가로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여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우리는 이미 예수님 안에서 이 뜻을 잘 깨달아 알면 믿음으로 말씀에 서서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해야 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알아야 우리가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고는 곧장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영혼의 구원과 육신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나 복음이 증거하면 예수 믿고 구원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이 나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정상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두명을 보내어서 주님이 만족하지 않으니까 70인을 택해서 두 사람, 두 사람 보내면서 너희는 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라 해서 칠십인이 가서 많은 귀신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신바람이 나서 돌아와서 주님, 주님 이름으로 귀신도 우리에게 순종하더이다 하니까 주님이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와 같이 떨어진 것을 내가 보았다.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므로 귀신이 여러분을 훼방을 하거든 여러분께서 너는 나를 결단코 해하지 못한다. 나는 너를 이길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말하십시오. 오늘날 우울증은 거의 100% 귀신의 억압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울증이 걸린 사람은 나는 못한다. 못산다. 안 된다. 참 좌절과 절망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진리를 알아야 돼요. 주님께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십자가에서 밝히 벗어버려 우리를 해방시키고 마귀를 무력화 했으므로 우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셨습니다. 능력은 마귀가 가지고 있지만 권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는 능력이 있지만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권세를 가진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은 아무런 무기가 없지만 말 한마디로 원수 귀신을 쫓아내고 발길로 차고 짓밟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라고 성경에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귀신에게 놓여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풀러신학교의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 박사가 쓴「제 3의 바람」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스터 섬랄 목사님이 필리핀 선교사로 갔는데 저하고도 굉장히 좋은 친구입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교회를 세워서 예수를 전도하는데 필리핀은 카톨릭 국가라 굉장히 전도가 힘듭니다. 5년 동안 전도해서 5명을 구원시켰습니다. 그러니 낙심되고 좌절되고 절망이 되어서 그만 목회를 그만 둘까 생각이 들었는데 하루는 신문을 보니까 필리핀 감옥에 여자 귀신들린 자가 왔는데 어찌나 흉악하고 목걸이에 저주가 붙어서 간수들이 그 몸만 대면은 그대로 쓰러져요. 그래서 여자가 저주하면 간수가 쓰러지고 죽기도 하고 하니까 아무도 이 여자 근처에 가려고 하지 않아요. 신문에 대서특필이 나고 라디오 텔레비에 선전이 되어서 온 필리핀 국민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스터 섬랄이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가서 이 귀신하고 싸워야 되겠다. 그가 감옥에 가서 내가 이 귀신을 쫓아내겠다고 하니까 당신 잘못 건드렸다가는 죽어서 나간다고.. 나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귀신을 이길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서 그 귀신들린 여자를 만나니까 눈에 불을 켜고 욕을 하고 달라들기에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중지하라! 나는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님이 내 속에 계신다. 나는 내 이름으로 너를 대적하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니 물러가라! 나오라! 그러니까 안 나가겠다. 나오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와야 된다. 너는 내 손에 죽겠느냐? 나는 죽지 않는다. 너 예수 이름으로 내가 너를 잡을 것이다. 한참 싸웠습니다. 마귀는 이 사람이 진짜 알고 달라 들었는지 모르고 달라 들었는지 시험해보는 것입니다. 레스터 섬랄 목사님은 진리를 압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귀를 이겼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진리에 서서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게 대하니까 나중에 거품을 물고 뒤에 쓰러져서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귀신이 고함치고 나왔습니다. 귀신이 나오고 난 다음 이 여자가 아주 온순한 크리스챤이 되고 착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소문이 전국 필리핀 신문에 나오고 라디오, 텔레비에 선전이 되니까 선교사님의 마닐라 교회에 찾아온 교인수가 15만명이 찾아왔어요. 귀신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했으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귀신을 대적하는 이 목사님 사역으로 15만명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큰 교회를 설립하고 오늘날도 큰 교회 목사로서 목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결국 우리 진리를 알면 우리 일해주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온 세계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할 때 제3세계에 가면 사람들이 10만명은 보통이고 50만명, 100만명, 200만명씩 모인 이유가 병자 위한 기도를 하고 귀신을 쫓아냈기 때문에 그런데요. 제3세계는 귀신이 많습니다. 점쟁이도 많고 무당도 많은데 이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집회에 참석했다가 귀신이 쫓겨나가면 구원받아서 새사람이 되면 간증을 하는데 크게 간증을 하면 신문이 떠들고 라디오와 텔레비에서 그것을 보여주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때는 하나님 자꾸 귀신들린 사람 좀 보내 주십시오. 이것이 집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제3세계는 병자위한 기도하므로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진리를 알면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는 자지요? 그러면 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기 바랍니다. 믿음은 실천을 하면 그대로 주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마귀와의 싸움은 믿음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 안 믿지요. 마귀도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지요. 그러나 믿는 자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을 베풀 줄 믿는 것입니다. 4. 믿음의 싸움 오늘날 이 세상 만물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하고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실제 이루어진 모습이 믿음이요 보지 못하는 것이 증거입니다. 아직 안 나타났으나 믿음이 있으면 이미 나타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믿으면 이 믿음이 실상이요 증거가 되므로 그대로 반드시 승리하고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믿음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나 본질이 바로 믿음이요 증거가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본질인 믿음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보이는 것은 너 절대로 이 병에서 안 낫는다. 너 이 귀신에게 해방되지 못한다. 너 이 문제가 해결 안된다.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협박과 공갈을 하기 때문에 두려워 떨게 되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원래 안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 말씀이 만물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 보이는 말씀을 믿으면 믿음은 안보이지만 믿은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안보이지만 엄청난 힘이 있는 것입니다. 병든 자가 믿으면 병에서 나음을 입고 귀신들린 자가 믿으면 귀신이 쫓겨나가고 우울한 자가 예수를 믿으면 믿음대로 우울병이 낫고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안 보이는 믿음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안 보이는 믿음을 생산하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기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나가면 그 믿음이 안 보이는 것이 보이는 것을 만드는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긍정적으로 나가면 생각한 대로 되고 말씀을 가지고 꿈을 꾸면 꿈꾼 대로 되고 말씀을 가지고 믿으면 믿은 대로 되고 말씀을 믿고 시인하면 시인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써 우리는 싸움에 이기는 것인데 믿음이란 무엇을 시험해 보느냐. 인내가 있느냐 없느냐를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하는데 시험이 다가오고 시간이 걸리면 진짜 믿음이 아닌 사람은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시간이 지나고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도 낙심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시험은 인내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눈에 보아서 믿는 사람은 능력이 없습니다. 안 보이는데 믿으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왜, 안 보이는데 믿으면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는 믿음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로 12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그런데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인내인 것입니다. 인내를 못하면 안돼요. 기도하고 난 다음 즉시 눈에 안 보인다고 낙심하면 패배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죄를 이깁니다. 불의를 이깁니다. 병을 이깁니다. 믿음이 있으면 모든 저주를 이깁니다. 죽음도 이깁니다. 사탄은 물론 이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 이기는 것이 안 보이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안보이는 믿음은 인내로써 증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믿음 보여다오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믿기 때문에 내가 인내하지 않습니까?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인내하지 않습니까? 인내가 내 증거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옳도다. 네 말이 맞다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내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믿음은 인내가 증명한다. 그러면 한번 믿었으면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한번 믿었으면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내어 맡겨 버리고 주님이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하고 내어 맡기는 믿음 그것이지. 반쯤은 내가 쥐고 있고 반쯤은 하나님 책임져 주십시오. 좋을 때는 내가 맡겨 놓았다가 어려우면 내가 도로 빼앗아오고 그렇게 하면 믿음이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맡겨보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마귀를 이기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믿음의 싸움은 인내에 있습니다. 싸움이 오래가고 소망이 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이제 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적진이 무너질 순간인 것입니다. 아이구 이제는 더 못 참겠다. 이제는 못 견디겠다. 이제는 포기해야 되겠다. 그때가 바로 이길 때인 것입니다. 그때가 성이 무너질 때고 그때가 병이 떠나갈 때고 그때가 문제가 해결될 때고 그때가 하나님 기적이 나타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험 당할쯤에 이제 못 견디겠다고 할 때 그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견디고 인내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오늘날도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마귀는 와서 우리를 훼방하고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우울증에 걸리게 하고 우리를 악마화하여 낙심하고 탄식하게 만드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와 싸우는 싸움은 바로 믿음이요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하고 믿으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을 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해서 마귀에서 해방되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몸을 찢어 주시고 피를 흘려주시므로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희생되었다는 증거를 보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를 통하여 마귀의 모든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어버려 승리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묶어 놓을 수 있는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마귀는 이미 패배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찬을 떼는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받아서 기쁘고 즐겁게 사용하여 마귀를 이기고 성령 충만하여 승리적인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