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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8. 주일설교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야훼, 그의 이름을 야훼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1~3) <서론> 오늘 저는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 제 십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대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쳐 들어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쌌습니다. 그 때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기 조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를 것을 두려워해서 왕과 국민들에게 회개하라고 동분서주하며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참소해서 그 어려운 위기에 감옥에 갇혀 버렸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없이 조국을 위해서 너무 걱정하고 인간적으로 일을 이루어보려고 애를 쓰므로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를 감옥에 갇히게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계획과 자기 목적을 위해서 너무 열심을 다하다 보니까 기도할 시간도 안 갖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시간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해 놓고 인본주의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말씀을 하기 위해서 그를 시위대 뜰 감옥에 갇히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감옥에서 깨어지고 기도하게 하여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일이 우리 뜻대로 우리의 정한 때에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불평하고 우왕좌왕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어져야 되는데 깨어져서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하루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뜨기 직전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실패의 홍수를 만나거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때 우리는 종종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하게 몸부림칩니다. 어떤 자매님 한 분이 제게 인터넷 편지를 보냈는데 목사님 설교를 듣고 용기를 많이 내었으나 하나님이 빨리 응답해주지 않으므로 이제는 예수님이 밉다고... 그러므로 예수님께 기도도 하기 싫다고... 그렇게 저에게 편지를 했어요. 그래서 답장을 제가 쓰기를 죄는 당신이 지어놓고 왜 원망은 예수님께 하느냐.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죄 없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고통을 당했으니 주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지 원망하면 안된다고... 통곡을 하고 싶거든 십자가 밑에서 통곡하듯이 사람들 앞에서 통곡하지 말라고 제가 그런 편지를 내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어 맡기지 못하고 초조하고 발버둥치다가 일이 안되면 원망은 다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하지만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절박한 순간에 아주 온 천지가 캄캄해서 이제는 빠져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막다른 길에 주님의 기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신반의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처해 올데 갈데가 없을 때는 진짜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께 의지하면 주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1절에 “야훼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을 때”, 그는 아직도 여전히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이제 곧 성이 함락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숭배에 열심을 내었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과 그 모든 군대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조만간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될 상황에 처해서 예레미야는 절망했습니다. 민족의 멸망을 눈앞에 보고 답답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이제는 좌절하고 포기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영적으로 가장 어두웠던 그 시간에,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마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날의 태양 빛이 떠오르듯이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계획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실 것이고 희망차게 소망을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셔서 예레미야에게 위로를 주셨습니다. 너는 못해도 나는 한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다시 돌아오게 하고 망했을지라도 다시 재기하게 만들어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내게 맡기라고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주권 우리가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서 배워야 될 것은 첫째로,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의 주인이 하나님께 있어요.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내 일이니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손님으로 초청 받아와서 도와주기를 원하시는 것인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실 때 첫날에 아담과 하와를 지었지요?(아니요) 첫날에 아담과 하와를 지어서 야 너 할 일이 태산같이 많다. 내 힘으로는 힘이 모자르니까 너희들이 날 도와야 되겠다. 그랬다면 하나님과 공동작업을 했기 때문에 공동주권 행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오직 혼자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제칠일에 아담과 하와가 주님께 나와서 주님, 오늘 우리가 태어난 생일인데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까? 오늘은 이 사람아 안식일이다. 내가 일을 다 마쳐 놓았다. 너희 인생은 안식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마쳐 놓은 일을 누리면서 시작하는 것이지 쉬면서 인생을 살도록 지어 놓았지 일하라고 지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이는 야훼인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 하는 것도 주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잡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하나님은 주권을 돌려받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자체가 주권을 공동으로 소유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다 나쁘다 결정권은 하나님만 가지기를 원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좋다면 아담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쁘다면 나쁜 것 맞습니다. 그렇게 믿고 순종하기를 원했지 하나님이 좋다고 그러는데 안 좋아요. 하나님이 나쁘다고 하는데 좋아요. 주권을 동등하게 가지고 하나님과 경쟁하기를 원치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꾐을 받아 하나님과 동등되기를 원하셔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주권을 나누기를 원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주에는 주권자는 한분밖에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주인이요, 주권자인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지 하나님과 공동으로 이 세상 운영하기 위해서 지음받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는 조건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주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순종과 믿음만 가지고 있지 자기 주권을 주장하는 것을 포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으로 일을 해보겠습니다. 안되면 하나님께 부탁을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맡겨 놓으십시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하나님께 내어 맡겨 버려야 해요. 하나님께 내어 맡겼다가 안되면 어떻게 하노? 안되면 망하더라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맡겨놓고 죽는 것이 내가 차지해서 사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는 죽더라도 하나님은 부활시켜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세를 부르실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이 모세의 주권을 포기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행위의 자주권을 포기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지냈습니다. 나이 80이 되어 양떼를 거느리고 산비탈을 지나가는데 가시넝쿨에 불이 확 붙었습니다. 사막에는 해가 비치기 때문에 종종 가시넝쿨에 불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시넝쿨에 불이 붙었는데 사라지지 않습니다. 타지 않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가보니까 하나님이 그 가시넝쿨 가운데서 나타난 것입니다. 왜 구태여 나무에도 좋은 나무 많은데 가시넝쿨에 나타났느냐. 그것은 의미가 많아요. 모세가 자기 인생이 가시넝쿨같이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시넝쿨에 하나님이 불꽃같이 나타난 것은 내가 버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너희 속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해 주기 위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야~ 모세야~ 부르기에 저가 여기에 있나이다. 너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 발의 신발을 벗으라. 너가 선 곳은 거룩하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므로 하나님 앞에 너의 주권을 벗으라. 신발을 벗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신발을 벗어서 하나님 앞에 내 놓았습니다. 내 주권을 포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택해서 너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보내겠습니다. 하나님 나 같은 인생이 무엇을 합니까? 나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 주권을 하나님께 양도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책임져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그 백성을 인도해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시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양도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가 양보했으나 하나님은 내가 책임지마. 니가 내 앞에서 신발을 내어 맡긴 이상 내 주권을 내게 맡긴 이상 내가 책임지마. 내가 너를 붙들어서 사용하마.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신을 벗어 던지는 것은 내 권리를 양도한다는 것입니다. 내 권리를 당신께 다 맡깁니다. 모세가 자기의 선악의 권리를 양도하고 인생의 사는 권리를 주님께 양도한 이상은 하나님이 인수인계해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실 때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네 신발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네 삶의 주권을 내게 내어 맡겨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네 짐을 내게 맡겨라. 너의 삶을 내게 맡겨라. 그러면 내가 책임져 주마. 그런데 좀처럼 맡기지 않습니다. 쉽게 기도원에 들어가서 주여, 내 일생을 주께 맡깁니다. 고함을 쳐놓고 난 다음 나올 때는 다음에 또 올테니 주십시오. 다음에 또 맡기겠습니다. 다 주어서 오기 때문에 그게 문제입니다. 완전히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혹시 책임 안 져주시면 어떻게 할 것이냐. 망해요. 망해도 걱정할 것 없는 것은 하나님은 망한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주권이 있기 때문에 일으켜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특출합니다. 너 독자 외아들을 모리아산에 재물로 드리라고 말할 때 그 아들을 데리고 가서 장작위에 얹고 각을 떠서 하나님께 재물로 드리려고 달라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였느냐. 죽여 놓아도 도로 살려 놓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시므로 죽여 놓아도 살릴 것을 믿고서 그 아들을 재물로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 만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자기 일생을 내어 맡긴 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책임지고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하고 번창케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여리고 평지에 왔었을 때도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 그 앞에 와서 칼을 빼 들었습니다. 당신은 누구편입니까? 적군편입니까? 우리 편입니까? 아니야. 나는 누구 편들러 온 것은 아니다. 하나님 군대 장관으로 네게 왔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신발을 벗으라. 네가 있는 곳은 하나님 주권이 있는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 네 주권을 내게 넘겨라. 여호수아가 당장 신발을 벗어서 내 던졌습니다. 오늘부터 이스라엘 군대를 인도하는 것은 내가 한다. 내가 여리고성을 여섯 바퀴 돌고 일곱 바퀴째 돌 때는 무너지게 하겠다. 하나님의 주권행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자기 힘으로 여리고를 점령하려면 희생이 많았겠지만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어 내 던지므로 주권을 인수인계 받아서 책임지고 이스라엘을 여리고성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함락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주권을 양도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직물 공장의 공장장이 여직원들을 불러 모아 놓고 훈시를 했습니다. “직물의 기계가 돌아갈 때 실밥이 엉키거든 즉시 내게 보고하라. 네가 그것 고치려고 하지 말고 너희 기술로는 못 고치니까 내게 보고하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한 여직공이 야간일을 하다가 깜박 졸았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까 실밥이 여기저기 엉켜서 엉망진창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종을 하고서 보고를 해야 될 것인데 자기 힘으로 실타래를 바로잡겠다고 이 실을 뜯어내고 저 실을 뜯어내고 한참 만에 실이 태산같이 쌓였었습니다. 기계 몇 대가 엉켜서 안 돌아갑니다. 그때야 겁이 나서 공장장에게 연락했습니다. “공장장님 빨리 와주십시오. 실이 엉켰습니다.” 공장장이 와 보니 기가 막힙니다. 실을 뜯어내가지고 태산같이 쌓아놓고 공장 기계는 안 돌아가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러니 공장장이 화를 내었습니다. “실이 엉키면 내게 먼저 보고하라고 했는데 뭘 했느냐?”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실을 풀어 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만 이렇게 되었는데 왜 그렇게 화를 냅니까?” “네가 화를 내어서 회사에 손해를 이만큼 끼쳐서 그렇지 않느냐. 내가 보고하라면 보고해야지 너희 힘으로는 못한다고 했지 않느냐.” 공장장이 정신을 차리고 “다음에 실이 엉키거든 당장 내게 보고하라.” 그리고 공장장이 손을 대니까 몇군데 손을 대니까 실이 엉킨 것이 다 풀리고 기계가 확확 잘 돌아갑니다. 공장장은 기술자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실타래가 이리저리 휘감기고, 우리 인생의 길이 막막하게 될 때에 우리는 공장장 되시는 예수님을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실타래를 풀겠다고 발버둥을 치다가는 더 얽혀지고 더 망가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실타래같이 엉켜지고 사업이 실타래같이 엉켜지고 인간관계가 엉망진창이 될 때 내가 풀어보려고 애를 쓰면 점점 더 엉켜지고 점점 더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공장장 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겠다고 하셨으므로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와서 그 실타래를 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권을 주님께 내어 맡길 것은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일의 주인은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의 일은 주님의 것이다. 내 자신도 주님의 것이다. 내 자신도 주님의 것이고 내가 맡은 일도 다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다가 안 되면 주님을 곧장 불러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때와 방법 둘째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때를 거스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때를 따라 아름답게 모든 것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릅니다. 전도서 3장 1절로 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모든 일에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때를 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잠잘 때가 있으면 깨어서 일할 때가 있고 통곡할 때가 있으면 웃을 때도 있고 때를 잘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를 어떻게 분별합니까? 성령께 부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하신 때를 따라 지혜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간절히 알기를 소원하고 바라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를 앞서서 나가면 큰 실패를 하고 때를 늦게 따라가도 큰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를 알아서 그 때에 우리가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을 믿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방법으로 계획을 세워서 일을 했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나아만 장군이란 아람왕의 군대 장관으로 큰 용사였으나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여종을 잡아서 하녀로 삼았는데 그 여종이 우리나라의 엘리사 선지자 앞에 있으면 문둥병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허락을 받고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문둥병을 고쳐 달라고 하니 이스라엘 왕이 놀래서 옷을 찢고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니” 위세당당하게 엘리사의 집에 갔습니다. 대문에서 여봐라~ 게 누구 있느냐? 자기 생각하기에는 엘리사의 종이 나와서 거처를 정중히 엘리사의 응접실로 인도하고 엘리사가 응접실에 온 손님에게 기름을 머리에 붓고 어~ 하고 손을 떨면서 안수를 하고 그렇게 해서 고쳐줄 줄로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적어도 아람군대의 군대장관인데 장관대접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종이 나와서 하는 말이 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래요. 그리고 돌아섰습니다. 이런 모욕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평민도 아닌 군대장관이 왔는데 집에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말을 할 것이지. 문밖에 세워놓고 박대를 하다니... 요단강에서 물로 목욕을 하라고? 우리나라에 아바나 강이나 바나바 강이 얼마나 좋은데 물로써 목욕해서 나을 바에게 우리나라에서 낫지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느냐. 고약한 놈, 두고 보자! 그리고서 돌아섰습니다. 분노를 표시하면서 돌아가려고 하니까 군인들이 따라오면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왜 노를 내십니까? 이것보다 더 험한 일을,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해도 할 것 아니겠습니까? 병 낫는다고 하는데 못할 것 뭐 있습니까? 화를 푸시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세요. 참모가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쁜 참모가 들어오면 속닥속닥 하면서 이런 나쁜 놈들, 고향으로 돌아가서 군대를 동원해서 쳐들어옵시다. 그렇게 말하면 나라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명령을 내렸었을 때 그 종들이 같이 듣고 좋은 참모 노릇을 했습니다. 아버지여, 이렇게 왜 화를 냅니까? 낫는데 필요해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라고 하는데 그것 못할 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물이 구정물이라도, 맑은 물에서 안 나을 것이라면 구정물에라도 목욕해야 할 것 아닙니까? 갑시다. 그러니까 그 종들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물에 들어갔습니다. 한번 퐁당하고 들어가서 올라오니까 군인들이 한번, 두 번 퐁당하니 두 번, 세 번 퐁당하니 세 번, 아무리 봐도 그대로 문둥병이 있어요. 나아지는 않고 물에 빠진 쥐새끼처럼 쪼르륵 구정물을 흘리면서 다섯 번, 여섯 번,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그 다음 일곱 번하고 일어나니까 싹~ 나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일하기를 원하지만 우리 계획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기 때문에 끝까지 우리는 믿고 순종해야지 낙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어 살이 회복된 그는 너무나 기뻐서 새사람이 되어서 많은 보상품을 엘리사에게 드리려고 했으나 엘리사가 거부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종 게하시가 뒤를 따라가면서 그 보상품이 탐이 나서 자기가 우리 주인이 보상품을 받아 오라고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받았다가 나중에 도로 그 문둥병이 그 종에게 옮겨와서 문둥병 환자가 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그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알아야만 할 일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하시매 성령께서 말씀대로 창조를 이루신 것이 오늘날도 그와 같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로 13절에 보면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것이지 재앙을 주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미래 희망을 주기를 원하는 것이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부르짖을 통해서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지만 우리에 관한 우리가 기도하는 한 그때부터 섭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권리를 하나님께 양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갈 때 선입견을 가지고 나가면 안됩니다. 하나님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역사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실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 것이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으로 무조건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주권을 내어 맡긴 이상 좋다고 하면 우리가 좋다고 하고 따라가야 하고 나쁘다고 하면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되고 선악을 판단하는 권한을 하나님께 넘겼으니 우리가 간섭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11절에 보면 “야훼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야훼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야훼께 맡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권을 양도받은 이상은 우리의 일을 다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쉬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식하기 위해서 만들었지 일하기 위해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늘 기억하실 것은 천지 지은 첫날에 우리를 짓지 아니하시고 마지막 날에 지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은 하나님의 쉬는 날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휴식 속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이 다 지어 놓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태어났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만들라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 다 누리라고 지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스스로 운전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운전하고 옆자리에 앉아서 인생을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운전대를 내게 맡겨라. 그리고 간섭하지 말라. 좌로 가든지 우로 가든지 네가 좌우 그런 소리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믿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야훼께 맡기십시다.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행사를 야훼께 다 맡기십시다. 염려를 다 주께 맡겨 그가 우리를 돌보시게 기회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은혜 받은 것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나를 영화롭게 한다고 한 것처럼 무엇을 해주었는데 감사하다는 말 안하면 속으로 다음에 다시 해주는가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고맙다고 하면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또 해줘야지. 고맙단 말이 큰 향기가 되어서 인생을 영화롭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요. 기분이 좋아요. 그러므로 그것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미하는 것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뭐 하나님 우리에게 꼭 감사받아야 하느냐. 하나님 감사받으므로 하나님께 다른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향기로움을 맡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감사를 통해서 향기로움을 맡고 기뻐지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좋은 기분에 더 좋아지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구원하고 감사하고는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구원의 성벽에 들어가는 문이 감사인 것입니다. 감사를 하면 하나님이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다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 바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아침에 세수하고 난 다음에 빗질하다가 머리털 빠지면 여러분도 헤아릴 수 없는데 하나님은 두 개 빠졌다. 세 개 빠졌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장난으로 그런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로 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명령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그 의는 예수가 그 의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아버지를 섬기면 하나님이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명령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왜 내게 맡겨놓고 난 다음 왜 염려 하느냐. 그것은 나에 대한 불신앙 아니냐. 맡겨 놓았으면 안심하라. 예수 안 믿는 이방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주권을 자기가 빼앗아서 자기가 맘대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간섭 안하시지만 예수 믿는 너희는 내게 다 맡겨 놓은 것이므로 내가 맡아서 책임져 줄 터니이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귓등으로 듣지 말고 철저히 생활 속에 시행해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와서 이런 질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 맡겨 놓았더니 원수를 왜 안 갚아 줍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원수 안 갚아주면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방법은 하나님이 아시는 것이고 원수 갚는 방법까지 당신이 생각한대로 해달라고 하면 안됩니다. 맡겨버리십시오. 성경에는 시편 23편에 하나님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며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겠다고 하셔서 원수가 오면 내가 본 방법으로 원수를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복이 임하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원수 갚는 방법입니다. 원수는 당신이 망하기를 원하나 원수가 오면 원수가 오는 대로 당신에게 진수성찬 차려 주시고 성령으로 기름을 발라서 일이 다 형통하여 만사가 잘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두 가지 방법인데 하나는 원수를 치는 방법이 있고 하나는 원수를 그 앞에서 더 잘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원수 앞에서 여러분 더 잘되게 해주시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인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잘되니까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말라. 이렇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경제불황이 다가오니까 이런 경제불황에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 하나님께 맡겼으니 기도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지금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사를 그에게 맡길 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미 급하면 안돼요. 의학박사가 하는 강연을 들어보니까 성급하면 빨리 죽는데요. 짐승들을 보면 사자나 그렇잖으면 늑대나 빨리 뛰어서 엔돌핀 소모를 많이하고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하는 동물들은 다 빨리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사는 것은 자라. 그 다음 오스트리아의 코알라. 나무에 올라가는데 이렇게 올라갑니다. 의사선생님이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아주 성격이 급해서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모든 일에 간섭을 다 하고 발버둥치기 때문에 이를 살리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보내서 코알라 농장에 입원을 시켰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코알라 한발자국 뛰고 한시간이나 걸려서 두발자국 뛰고.. 그래서 코알라를 보고 자기도 따라서 그러다가 마음에 평안을 얻고 암을 정복하고 나와서 왔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 앞서 뛰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보다 빨리 경주하면 하나님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천히 일하시나 만유를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다렸으면 기다려야 돼요. 한달도, 두달도, 일년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아들 달라고 기도하고 응답받고도 85세 10년을 기다려도 아들을 못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100살까지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니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계시고 반드시 상을 주실 터이니까 마음에 인내력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반드시 계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리미야애가 3장 24절로 26절에 “내 심령에 이르기를 야훼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야훼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야훼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야훼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야훼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야훼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를 낙심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놀라운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교회를 지을 때 한번은 교회는 빚더미에 올라앉고 공사는 중간에 하다가 그쳤고 쇠빔은 녹물이 나서 뚝뚝 떨어지고 얼마 안 있으면 도로 다 허물어 내려야 한다고 하고 막다른 골목에 처했습니다. 너무나 답답해서 밤새도록 울면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기도를 제가 하고 잠을 잤는데 기도를 할 때 제가 하나님, 사면초가입니다. 진퇴유곡입니다. 속수무책입니다. 갈 길이 없습니다. 주여 나는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도와주소서. 정말로 동서남북을 바라봐도 갈 데가 없습니다. 피할 곳이 없어요. 그래서 울고 기도하다가 고꾸라져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문이 철컥 닫혀서 고장이 나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고 못합니다. 하나님이여, 교회도 못 짓고 절단인데 엘리베이터까지 고장이 나서 이제는 가도 오도 못하니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이 엘리베이터 안에 탁 나타나요. 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너는 다른데 보고서 부르짖지 말고 나를 통해서 가라. 그래서 꿈에 엘리베이터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안고 나가니까 문이 탁 열리면서 밖으로 나왔어요. 그래서 꿈에서 깨어서 아~ 예수님이 책임져 주겠다는 것이구나. 그래서 염려를 주께 맡기고 주님께 책임져 달라고 한 결과에 이 교회가 지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해도 예수님을 붙잡으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망할 때라도 예수님을 통하면 흥할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50년 목회를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체험한 것인데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이 낙심시키고 실패시킨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보잘 것 없는 일이지만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1946년 테레사 수녀(Mother Teresa)는 기자회견을 통해 인도 켈커타에 큰 고아원을 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들이 돈이 굉장히 많은가봐요? 어떻게 그런 큰 고아원을 세웁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돈 3실링, 우리 돈으로 말하면 3백원을 내놓고 이것이 내가 가진 돈 전부라고 하니까 기자들이 앙천대소를 하고 웃었습니다. 농담하는 줄 알고.. 그런데 농담이 아닙니다. 그것밖에 없는데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면 주께 맡기면 어떤 기적도 행한다는 것을 테레사 수녀는 알았기 때문에 3실링으로 예수님께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이를 통해서 수많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고아원을 짓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결과에 3실링으로 사랑의 선교회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놀라운 결과를 얻고 전세계 호응을 받아서 그 3실링을 가지고서 130여국에 600여 곳의 고아원을 세웠던 것입니다. 돈 3백원 정도를 가지고서 600개의 고아원을 세워서 130개 국가에서 고아들을 돌볼 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왜 제가 이 말을 하느냐하면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이는 예수님이요,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입니다.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는 주의 말씀은 오늘날도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간절한 기도가 늦게 응답해 기다리기가 힘들어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묘하신 지혜로서 이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고 기다리십시다. 오늘도 부르짖고 내일도 부르짖고 오늘도 맡기고 내일도 맡기고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신발을 벗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권을 벗어서 주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이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습니다. 주님께서 맡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살겠다고 막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치고 주님께 원망하고 탄식하면 주님께서 너 끝까지 발버둥을 쳐라 네가 기진맥진할 때까지 기다리마. 예레미야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주님께 맡겼으면 주님께서 능력으로 왕과 백성들을 회개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실 것인데 예레미야가 애국적인 심정으로 너무 마음이 괴롭기 때문에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인간적인 힘에 의지해서 발버둥치고 몸부림치고 애를 쓰기 때문에 주님께서 답답하셨습니다. 네가 너무 네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들어갈 곳이 없다. 어디 감옥에 들어가라. 하나님이 섭리하사 시위대 뜰 감옥에 들어가서 옴짝달싹을 못하게 했습니다. 할 일이 없이 감옥에 있으니까 비로소 깨어지고 회개하고 부르짖고 주님께 내어 맡기고 주님께서 그때야 예레미야에게 말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것은 야훼시다.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분도 야훼시다. 네가 아니라 야훼가 한다. 네가 할 일은 뭐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 크고 비밀한 일은 내가 하는 것이니까 내가 너에게 보여 주겠다. 우리 일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치면 주님께서 들어와서 일할 데가 없습니다. 밀쳐서 설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회개하고 잠잠히 주님께 부르짖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여, 책임져 주시옵소서. 주님께 맡기고 주를 앙망하면 주님께서 그래, 일은 내가 한다. 네 일은 내가 지어서 성취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뭐할까요?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한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성령이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으니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우리가 주님께 기다리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노동을 시키려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노동은 주님이 하시고 여러분에게는 안식을 주시려고 지으신 것입니다. 마음도 평안하고 삶도 평안하고 안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을 맡기십시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밭을 갈 때는 어미소 밑에 새끼소를 같이 넣어서 밭을 갑니다. 그래서 이랴~ 하면은 어미소가 멍에를 매고서 어미소가 힘줄을 내면서 땀을 흘리면서 끌고 가면은 새끼소는 옆에서 그냥 따라갑니다. 새끼소는 오해를 합니다. 엄마가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느냐. 하나도 무겁지 않은데 나는 가벼운데.. 왜 엄마가 애를 쓰느냐. 멍에가 엄마 목에 걸려있고 새끼는 그 안에 달려있습니다.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멍에는 가볍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엄마 멍에 밑에 있기 때문에 짐은 엄마가 질머지고 새끼는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너희 보았지? 밭가는 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에 매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 속에 들어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을 가볍다. 주님은 십자가의 멍에를 걸머지고 여러분 십자가 밑에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짐을 십자가에 다 맡기라. 짐은 내가 걸머지고 너는 그냥 따라만 오면 된다. 쉬고 즐기면서 따라오라. 행복하면서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주님께 감사와 찬양하기를 원하시고 이 사랑과 행복을 만인과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때 우리의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 뜻대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의 때가 있고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방법이 있사오니 우리로 하여금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맡길 수 있는 깨어진 마음과 믿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