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4. 성찬주일설교

열매 맺는 삶에 이르도록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1~8)

<서론>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열매 맺는 삶에 이르도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가서 베드로의 배를 빌렸습니다. 군중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오기 때문에 군중들에 밀려서 물에 빠질 정도입니다. 베드로가 그물을 싣고 있는 보트에 올라탔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물 안으로 배를 좀 옮기라고 해서 배에 앉아서 군중들에게 말씀을 증거했었습니다. 말씀을 증거하고 난 다음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까지 베드로는 예수님을 신통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뭐 시골에 와서 자기의 종교를 팔려고 하는 사람에 불구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의지해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보통 많이 잡힌 것이 아니라 그물이 찢어집니다. 해가 뜨고 난 다음 갈릴리 호수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은 적이 없어요. 고기가 안 잡힙니다. 그 기적을 보고 아 이 보통분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그래서 베드로 앞에서 하나님의 인재를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느끼고 그 앞에 무릎을 꿇어서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오늘날부터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구원받은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베드로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사람들마다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시몬이라는 말은 갈대인 것입니다. 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진 갈대인 시몬을 베드로는 반석입니다. 예수님이 반석이라고 이름을 바꾸다니 그럴 수가 있느냐. 사람들은 다 의심을 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난 다음에도 이 시몬 베드로는 변화무쌍한 성격을 나타냈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 잡혀서 신문받을 때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한 그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이 쳐다보니까 눈을 마주치자 밖에 나가서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이랬다저랬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사람인데 이러한 베드로가 나중에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고 제자들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신앙 가운데서 변화되고 발전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기쁨의 단계
첫째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면 처음 베드로가 느낀 것처럼 마음에 큰 기쁨을 느끼는 단계가 됩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처음에 안 기쁜 사람 어디 있습니까? 죄에서 자유를 얻은 기쁨이 마음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로 7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죄에서 해방이 되고 자유롭게 되었다는 마음의 즐거움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기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새롭게 되어요.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미운 사람이 용서하고 좋게 보이게 되고 답답하던 일이 주님께 의지하므로 속이 시원하게 되고 희망이 없는 일에 희망이 있게 보여지고 마음에 긍정적인 변화가 다가와서 기뻐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무엇인지 모르게 자기 마음속에 새로움이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되고 기뻐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없던 분이 찾아와서 도움이 되므로 기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구주 예수님이 생겨나고 하나님 아버지가 생겨나고 성령 보혜사가 생겨나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와 교제하게 되니 이것 놀라운 일 아닙니까? 전에는 나 혼자 외롭게 인생을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기뻐지는지 모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1절로 22절에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구원을 받게 하시고 그 다음 구원받은 확증으로 성령을 주어서 인을 쳐 보증하시는 그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될 때 마음에 기뻐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 믿고 난 다음 당분간은 공중에 뜬 것같이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흥얼거리고 찬송도 모르면서 유행가도 찬송가처럼 부르면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 갈등의 단계
그런데 둘째 단계에 들어와서는 갈등의 단계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기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마음속에 갈등이 다가옵니다. 세상 삶을 살다가 그 생활을 떠나 새 생명, 새 생활이 마음에 들어오자 세상적인 삶과 예수 그리스도 대한 신앙이 마음속에 마찰이 되어 갈등이 다가옵니다. 세상과 천국을 겸하여 섬기려는 마음에 갈등이 안 다가올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쉬운 줄 알았는데 믿고 난 다음에 세상을 쫓아내고 천국에만 의지하고 살아야 되겠는데 그렇게 쉽게 마음속에서 쫓겨나가지 않습니다. 옛날 생활의 습관, 옛 친구, 옛 환경 이런 것들이 그대로 마음속에 남아있으면서 그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니까 굉장히 어렵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을 사랑하고 아버지의 사랑이 너희 속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고 내가 세상에 사는데 완전히 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갈등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야, 예수 믿는 것이 좋기만 한줄 알았는데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다. 이제 안 믿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고 이것 어찌하면 좋겠노. 제가 불광동에서 개척할 때 54년 전에 대조동에서 박수미라는 자매님이 천막교회에 나왔습니다. 한 30대 후반 40대 초반쯤 되는 자매님인데 남편은 6·25 사변때 전사하고 아들 하나 데리고서 과부가 되어서 열심히 장사를 하면서 사는데 외롭고 괴롭고 슬픈 일만 있다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새벽기도 나오지요. 철야기도도 나오지요. 예배당에는 예배 볼 때는 꼭 나오지요. 전도도 열심히 하고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고 그렇게 한동안 좋아하더니만 그 다음에 교회를 점점 안 나오기 시작하고 얼굴에 수심이 꽉 들어차 있더니 하루는 나에게 찾아와서 나는 교회를 좀 쉬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늙어 은퇴할 때까지 예수님을 그만 믿으렵니다. 그러나 네가 은퇴할 때는 예수를 도로 믿겠스니깐 나를 이해해 주십시오. 아니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그렇게 좋아하더니 그 좋아하는 기쁨이 어디 갔습니까? 그게 탈이지요. 나는 장사를 해먹고 사는데 전도사님은 모를겁니다. 보퉁 장사를 하고 다니면서 거짓말을 하고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참말을 하고 장사를 해서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 제일 처음에는 예수 믿고 아주 덩실덩실 좋아하고 예수 믿으면서도 좋다고 거짓말도 하고 장사도 하고 얼씨구나 내 세상인줄 알았는데 그 다음에부터 마음에 고통스러운데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전에는 거짓말을 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이제는 거짓말을 하면 마음에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러니 안 믿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이 처지에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가 위선자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당분간 쉬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서 자매님,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 먹여 살려 주십시오. 내가 한 말은 한꺼번에 성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자매님 힘으로 한꺼번에 완전히 하나님께 인정받는 거룩한 사람이 되지는 못합니다. 예수를 믿고 장사를 하면서 교회 나오면서 또 장사를 하면서 물건 팔 때는 거짓말도 하세요. 예? 아니 거짓말 안할 수가 없잖아요. 자매님 힘으로는... 안하려고 회개를 아무리해도 됩디까? 안됩디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 어찌할 도리가 없잖아요. 그러므로 교회도 열심히 나오고 거짓말도 하고 그 다음에 회개도 꼭 하세요. 그러니까 아니, 거짓말하고 와서 회개하면 돼요? 회개를 하세요. 그러면서 거짓말 안하려고 노력은 하세요. 하나님 거짓말 안하고 장사하도록 도와주세요 하고 안할 수 없는 처지에는 거짓말 해야지요. 박수미 자매님만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다 거짓말해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하고 다른 것은 내가 거짓말 한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기 때문에 다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그렇게 해요? 세월이 흘러가면 성령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갈등을 가지고서 장사를 해먹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교회를 안 나오면 안돼요. 꼭 교회 나오십시오. 나오면서 거짓말도 하고 또 회개도 하고 그러면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그러더니 과연 주일날 교회도 꼭 나오고 새벽기도도 나오고 회개를 끊임없이 해요. 오늘도 거짓말했습니다. 하나님 거짓말 좀 안하고 장사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조금씩 조금씩 거짓말 안하게 되어 나중에는 무얼 깨달았느냐 하면 사람의 힘과 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데 주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동네에 소문이 다 났어요. 박수미 자매님은 정직한 장사꾼이다. 저 아주머니에게는 값을 가지고 논쟁할 필요 없다. 정직한 사람이다. 그래서 거짓말 안하고 장사를 잘해 먹을 수 있는 상태까지 도착했습니다. 그때는 또다시 춤을 덩실덩실 추며 성령도 받고 집사도 되고 나중에는 권사도 되고 자식을 잘 키워서 우리교회 기둥이 된 것을 보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제일 처음에는 좋았다가 반드시 갈등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박수미 자매 같은 갈등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 갈등을 갖고서 교회를 안 나오면 안돼요. 계속 교회를 나오십시오. 그러나 꼭 하나 알아야 할 것은 회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와서 회개하면서 주님 다음에는 안하고 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갈등을 회개로써 해소하면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3. 투쟁의 단계
셋째 단계로 점점 회개하고 있으면 투쟁의 단계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겨야 되겠다. 싸워서 내가 정복하고 이기는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투쟁의 단계에 들어오게 되면 굉장한 마음속에 시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가 나의 마음속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게 돼요. 세상을 이기려고 하므로 부딪히는 싸움에서 이기면 좋은데 져요. 마음에 갈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가서 내가 내 힘으로 이기고 내 힘으로 거룩하게 살려고 하다가 보니까 판판히 진다 말입니다. 이게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나의 결심이나 각오로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생활은 내 힘으로 안돼요. 내가 깨어져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께 맡길 때까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투쟁의 단계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투쟁하는 것입니다. 내가 좀 더 훌륭하게 살아보아야 되겠다. 좀 더 거짓말하지 않고 살아야 되겠다. 거룩하게 살아야 되겠다. 사랑하며 살아야 되겠다. 마음에 각오를 하고 투쟁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좋은데 안 되거든요.
골로새서 3장 7절로 10절에 보면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다고 하는데 아무리해도 입었다가 벗었다가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니까 마음에 고통이 다가오고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투쟁을 하다가 어떻게 되느냐.

4. 낙심의 단계
넷째로, 낙심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안됩니다. 역시 나는 자격이 없구나. 내 힘으로는 거짓말 안할 수 없구나. 내 힘으로는 안 미워할 수 없구나. 내 힘으로는 도둑질하지 아니할 수 없구나. 내 힘으로는 세상에 방종하지 않을 수 없구나.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참된 신앙인이 못된다. 그렇게 낙심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 선생도 탄식한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8절로 24절에 보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나는 간절히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데 행하고 보면 정반대로 죄를 짓고 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마음으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주님의 법을 지키고 살고 거룩하고 의롭게 살기를 원하는데 내 몸에 있는 지체 속에 죄의 법이 나를 사사건건이 사로잡아 결국은 나를 패배시키고 나는 죄를 짓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소원하는 것이 꺾이고 꺾이므로 좌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말을 여러분이 했으면 평신도니까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요. 조용기가 했으면 그것 큰일났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도 바울 선생이 그 말을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아무리 속사람으로써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지체 속에 죄의 법이 나를 잡아가 싸워서 백전백패하니 나는 곤고한 사람인데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을 한 것입니다. 인간의 결심의 허약함을 그때야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 내 힘으로 이제는 안 되는구나. 내 힘으로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내 힘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4절로 17절에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속에는 죄가 나를 사로잡아서 항상 나를 죄를 짓게 하니 이제 나의 힘으로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한 시점인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할 때는 계속해서 마음에 갈등이 있고 그 다음 결심을 하고 대적하고 싸우면 백전백패하고 나중에는 절망하는 그런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외지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느낀 것입니다. 그는 신학을 졸업하고 주의 종으로써 선교사가 되어 중국 내지 선교에 나왔는데 어려운 환경 가운데 처해서 그 환경을 극복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거든요. 기도를 하고 싶어도 마음으로는 기도를 하기를 원하는데 육신은 피곤해서 기도를 못하게 되고 전도를 열심히 하고 싶은데 열심히 해도 전도가 안 되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고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데 안 되고 모든 것이 인간의 노력대로 안 되니까 나중에 탄식을 하고 좌절했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하나님이 나를 안 부르시는가보다. 나는 주의 종의 자격이 없는가보다. 나는 못할 곳에 와 있는가보다. 절망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그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애를 쓰지 말라.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패배한 것을 느끼므로 이제 네 자신 못한 것을 깨달았으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버려라. 하나님께서 너를 기도하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전도하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말씀 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지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깨어지면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다.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했는데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서 포도나무 보고 진액을 올려 주세요. 물길을 올려 주세요. 잎사귀 피게 해주세요. 꽃피게 해주세요. 포도 열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지 않지 않느냐. 그냥 꽉 붙어만 있으면 주님이 알아서 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너는 주님께만 의지하고 주님을 늘 사모하고 예배드리고 주님 앞에서 주님 능력으로 주의 권세로 사는 것을 생각하고 믿고 늘 찬미하고 그렇게 시인하고 지내라. 주께서 너를 위해서 밀어 주신다. 주님이 너 대신 너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너 대신 믿게 해주시고 너 대신 일하게 해주신다. 허드슨 테일러는 막바지 골목에 달해서 친구의 편지를 받고 그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그는 완전히 주님께 맡겼습니다. 주님, 나는 이제 못합니다. 나는 이제 내 힘으로 기도도 못하고 전도도 못하고 설교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합니다. 주님께 맡겼으니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알아서 해주십시오. 그러자 의외로 능력이 나타나서 성령께 사로잡혀서 전에 보다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 이제는 더 많이 전도하고 더 많이 말씀을 전하게 되고 나중에 큰 교회를 세우고 중국 선교에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고 성령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그것이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5. 성령께 의지하는 삶
예수 믿는 생활이란 성령께 의지해서 사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를 믿자마자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령이 여러분을 위해서 일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늘 계시는데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성령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일 안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한번 3백명 물 침례를 베풀어야 되었었습니다. 여러분 물침례 베푸는 것이 굉장히 힘듭니다. 뚱뚱한 사람 더구나 물에 한번 집어넣어 놓으면 발버둥치는 것을 끌어 당겨 올리면 전력으로 끌어당기고 하기 때문에 얼마 안하면 힘이 쫙 빠집니다. 그런데 존 허스톤 선교사님이 그때 우리 선교사로써 같이 일했는데 내 옆에 침례복을 입고 서서 언제나 피곤하면 내가 도와줄테니까 내게 맡기라고 그래요. 그런데 내가 속으로 코쟁이가 뭐 침례 베푼다고? 하나님이 축복해 줄 턱이 뭐냐. 이 위대한 조용기가 해야지. 교만했습니다. 그러다가 150명쯤 침례를 베풀고 나니까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는게 눈 앞에 캄캄해지더라구요. 그러니까 허스톤 목사님이 나를 보고 비켜 비켜 내가 해줄게. 그런데 내가 속으로 비키기는 내가 왜 비켜? 위대한 조용기가 해야지. 코쟁이가 해가지고서 침례 베풀어서 은혜 받느냐. 그래서 괜찮다. 내가 다 한다고. 그래서 발버둥을 치면서 3백명을 내 힘으로 침례를 베풀고 난 다음에 엠뷸런스에 실려서 적십자병원에 갔었습니다. 그때 심장병을 얻어가지고서 10년 동안 심장병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내내 허스톤 목사님이 곁에 서서 도와주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자만심을 가지고 나를 의지하다가 내가 박살이 난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보내신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으면 우리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기도도 하고 신앙생활도 하고 거룩하게 살고 의롭게 살고 전도하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와 계시는데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성령께 기대면 성령이 해주실 것인데 성령을 보고 가만 계세요.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전도도 내가 하고 기도도 내가 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도 내가 하고. 내가 내가 내가... 그러다가 갈등이 느껴서 마음에 고통을 느끼고 백전백패하고 나중에는 절단강산이 나서 이제는 예수 못 믿겠다. 나는 자격이 없다. 자기를 비하하게 되고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성령께서 이제 우리를 위해서 예수 믿게 해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신앙은 미라입니다. 죽은 신앙인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가 뼈다귀가 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모셔드린 사람은 마른 뼈다귀와 같은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 불어오니 그들이 살아 일어나서 큰 군대가 된 것처럼 성령이 우리 속에 역사해야 우리가 신앙생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은 없습니다. 성령은 반드시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성령의 인을 쳐 주시고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더욱 성령충만해서 신앙생활 할수록 성령이 신앙을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몸부림을 쳐도 해방이 안 되는데 성령이 오시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해방시키는 자 성령께서 오늘 여러분 속에 함께 계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모셔드리면 아멘 하십시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께서 저를 돕기 위해서 항상 같이 계십니다.
로마서 8장 9절로 11절에 보면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죄악으로 죽은 몸도 살려 내시고 마귀와 죄를 멸하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주시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항상 우리와 같이 돕기 위해서 같이 계신 분을 보혜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령께서 같이 계시므로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의 생명으로 길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했는데 가지가 할 일은 예수님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딱 붙어 있지 가지가 내가 열매를 맺는다. 내가 잎을 피우고 내가 꽃을 피운다. 내가 내가 하면 예수님의 가지에서 꺾여지고 마는 몸체에서 꺾여지고 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겸손하게 예수님께 의지하고만 있으면 예수님이 그 가지를 통해서 꽃 피고 잎 피고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노력함으로 열매 맺지 않습니다. 붙어있음으로, 함께 있음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열매 맺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노력해서 되는 것 아닙니다. 더 많이 내가 기도해야지. 더 많이 전도해야지. 더 많이 헌신해야지. 더 많이 십일조 내야지. 그렇게 노력하면 제일 처음에 작심사흘만에 다 옛날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노력한 대로 되면 좋겠는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마음에 노력하려고 해도 죄의 법에 잡혀서 넘어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붙어 있으면 주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해주시므로 원수 마귀나 육체의 정욕이 우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3절로 8절에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스스로 신앙생활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예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 능력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자기가 자꾸 하겠다고 하니까 그것이 큰 잘못인 것입니다. 예수 없이 아무것도 못해요.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예수님의 능력이 와서 우리를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열매 맺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인데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주님 안에 거하므로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늘 생각하고 내가 그리스도의 나무에 붙어있는 것을 꿈꾸고 믿고 그리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입으로 시인해서 예수님과의 관계가 확실해지면 예수님의 능력이 성령으로 임하여서 성령이 여러분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아니고 인간의 힘으로 된다면 훌륭한 성자들이 많이 생겨나겠지요. 인간의 힘으로 안 됩니다. 이는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처음 예수 믿고 너무나 기쁘다. 즐겁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이상적으로 살 수 없어서 마음에 갈등을 느끼고 그 다음에 용기를 내어서 어찌 내가 한번 싸워보자. 싸워봐서 백전백패해서 이제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나는 포기해야 되겠다. 그때에 여러분이 성령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겪어서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게 되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데 성령이 오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안 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6. 승리의 단계
마지막으로 승리의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이제는 성령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앙생활하게 되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확실히 그때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하여 대속한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지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대신하여 죄를 청산하고 허물을 사하고 병을 짊어지고 저주를 제하고 죽음도 철폐한 것은 하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이므로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내가 죄와 싸우고 허물과 싸우고 병과 싸우고 환경과 싸우고 죽음과 싸워서 열매를 맺으려고 하면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신앙은 믿음으로 선물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다 이루어놓은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확실히 깨닫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천국의 꿈과 희망이 흔들리지 않고 서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천국을 우리에게 확실히 주시므로 나는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흔들리지 않고 마음에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확고하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흔들리지 않고 믿게 되고 신앙고백이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므로 성령 안에서 은혜를 깨닫고 꿈을 확실히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말씀 속에 서서 신앙고백을 하고 살면 위대한 전도자가 되고 지상에 있는 천국의 증거자 대변인이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6절로 28절로 29절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힘을 다하여 수고를 해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수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믿는 생활은 하나님과 내가 일체가 되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를 믿고 중생한 후에 장성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광풍과 폭우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의 단계가 지나면 갈등의 단계가 오고 갈등의 단계가 지나면 투쟁의 단계가 오고 투쟁의 단계가 지나면 낙심의 단계가 오고 낙심을 하고 나면 성령께 의지하게 되고 성령께 의지하게 되면 승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같은 교회 와있지만 온갖 단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떠한 단계에 처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 단계를 지식을 알면 빨리 지날 수도 있고 모르면 온갖 고통을 다 당하고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나중에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여러분은 외롭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여러분을 신앙으로 키우기 위한 어머니와 같은 성령이 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께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배워지지 않아요.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 물에 완전히 의지하라. 의지하라고 해도 물에 밀어 넣으면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이렇게 해서 물에 자꾸 가라앉아요. 나중에 점점 익숙해지면 물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뜨고 있으면 둥둥 떠요. 그래서 신앙생활도 성령과 함께 일하는데 익숙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갈등을 느껴보고 내가 투쟁을 해보고 실패를 해보고 내 힘으로 안 되는구나 하고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성령 기름부음을 체험하고 난 다음에 점점 성령이 오시면 되는구나. 그래서 성령을 친구삼고 부모삼고 하나님 삼고 의지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생활이 발전해 나가서 나중에 하나님의 놀라운 그릇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문에 반드시 교회에 소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와 교제가 있어야 되고 성도 간에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도와줌이 있어야 되고 교회에서 성령과 더불어 봉사해서 여러분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 성령의 사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육신의 사람이 예수를 믿고 큰 기쁨을 느끼나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에 갈등이 있고 세상을 이기겠다고 결심하고 투쟁하나 실패하고 나중에 낙심천만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 의지하지 않고는 신앙생활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승리를 하게 되고 예수님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체험하게 되고 증거하게 되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다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사오니 한 사람도 낙심하거나 뒤로 돌아가는 사람 없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