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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8. 추수감사주일설교 십자가의 도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1~3)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십자가의 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지난날을 생각하면 후회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생각하기 조차도 싫은 과거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감추인 부끄러운 일들과 상처 입은 기억들, 탄식스런 일들, 한 서린, 원통한 일 등등 이러한 일들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어느 집에 가도 쓰레기를 치우는 곳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 쓰레기가 우리 과거에 널려있는 것이 많습니다. 현재면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현재의 삶은 좋습니까? 힘들고 뜻대로 안되고 사기 당하고 슬픈 일, 분통이 터지는 일, 혼돈하고 공허하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망의 어둔 골짜기 원수와의 다툼, 억울한 누명, 기쁨보다 더 많은 슬픔, 허망한 마음, 불안 공포, 좌절, 가시밭길 등 부정적인 상황이 넘쳐납니다. 말하라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현재 살아가는 가시밭길인 것입니다. 미래는 그러면 좋은가요? 미래는 온통 불확실성으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평안과 확신보다 불안과 공포가 진치고 있고 또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 미래는 이와 같이 불확실성이 진치고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어떻게 지나야 상처입지 않고 지날 수가 있겠습니까? <본론> 1. 과거와 나와 십자가 첫째로, 과거를 내가 평안히 청산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과거는 정말로 우리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죄와 허물이 진치고 있습니다. 누가 이것을 없애 주나요? 사람들에게 자기의 삶을 털어 놓으면 이야기 거리로 만듭니다.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우리의 과거를 깨끗이 씻어줄 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허물로 죽은 나를 끌어안고 나 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때문에 모든 죄와 허물 억울한 누명을 대신 짊어지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값없이 받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값없이 받지만 예수님은 형언할 수 없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여러분과 나를 사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4절로 25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여러분과 나의 죄 때문에 수고로워하고 우리 죄악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도말해 주시고 죄를 말갛게 씻어주신 주님께서는 오늘날도 여러분과 나를 긍휼히 보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므로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과거에 죄, 허물 그대로 살았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멸망이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은 번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즉 희망인 것입니다. 세상 즉 절망인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가면 끝장이 언제나 좋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면 끝장이 좋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로 17절에 니고데모가 예수께 밤중에 찾아와서 하늘에서 오신 선생이 틀림없으니 선생이 아니면 이런 기적을 행할 수가 없다고 말할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이 목전에서 우리 심판하시는 것 아닙니다. 우리 허물을 지적하고 과거를 들추어내고 발가벗기고 할퀴고 짓밟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예수님은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의 허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책임지시고 우리는 덮어주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자기 의로운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멸망을 우리 대신 주님께서 청산하신 것입니다. 과거를 청산해 주신 십자가를 우리는 늘 마음속에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허물로 죽은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 하늘에 앉혀 주신 것입니다. 과거를 청산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끌어안고 천당 갈 때 이미 데리고 보좌에 함께 앉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와서 앉아 계시지만 영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예수님 안에서 천국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영적으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에 앉아 있다. 그러니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까?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6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여기 보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혔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여러분은 하나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서 우리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이 여러분 보실 때 예수님 안에 있는 여러분을 보시지 혼자 있는 여러분 보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의로운 분이므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통해서 여러분을 보고 의롭다고 말한 것입니다. 완전히 거룩한 예수님 안에 있는 여러분은 거룩하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완전히 죄악을 이긴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계시므로 여러분은 죄악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취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청산해 주신 십자가 있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는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밝히는 그리고 새롭게 해주신 빛과 구원의 생명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마음속에 꼭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더러운 죄와 허물을 주님께서는 모두 다 자기가 인수인계해서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속에 들어와서 살펴보아도 허물과 죄를 숨겨놓을 구석이 없습니다. 어떤 집에도 쓰레기 치우는 곳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인생의 쓰레기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향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충만할 따름인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로 3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왜냐, 하나님과 나와 막힌 담이 없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으면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왜, 하나님이 내 편에 서있지 않으시니 내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나를 새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는데 하나님과 나와 소원한 관계에 있으면 도저히 원수가 오면 원수를 대적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십자가가 하나님과 나의 사이를 화목케 하고 소원한 길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여러분은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십자가가 나의 방패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나의 과거를 다 청산해 버리기 때문에 주님은 과거를 들추지 않습니다. 너 옛날에 뭐 했느냐? 그렇게 묻지 않습니다. 주님은 옛날을 묻지 않습니다. 옛날을 캐묻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오직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서 여러분을 보시는 것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야훼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고 말씀하셨으니 심지어 부모가 버려도 야훼는 우리를 안 버린다는 것입니다. 19세기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스 1세는 군인의 옷을 입고 군대 시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루 저녁에 군인들이 캠프를 치고 잠을 자는데 평 군인의 옷을 입고 황제가 이 천막 저 천막을 돌아보는데 한 천막에 불이 켜 있거든요. 그래서 싹 천막 사이를 보니까 병사 한 사람이 책상에 엎드려서 잠이 들었는데 옆에 권총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막사가 누구 막사인지 보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장교의 아들이 있는 막사인데 그 아들은 군대 경리를 맡아보는 돈 책임자인 것입니다. 이가 도박에 손을 대어서 공금을 많이 소모를 하고 난 다음 돈을 갚을 도리가 없으니까 자살하려고 유서를 써놓고 그 다음에는 권총을 가지고서 자살을 하려고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마침 임금님이 그 옆을 지나가다가 그 천막에 들어와서 그 글을 읽었습니다. 자기가 도박을 해서 공금을 많이 유용했기 때문에 돈을 갚을 도리가 없어 죽음의 길밖에 없겠다고 그래서 황제가 잉크에 펜을 찍어가지고서 니콜라스 1세 황제가 다 갚았다. 그리고 나가 버렸습니다. 이 녀석이 아침에 깨어보니까 모르는 사이에 황제가 지나갔는데 황제 친필로 그가 빚진 장부의 모든 끝에 니콜라스 1세가 다 갚았다고 하니 호박이 넝쿨째 떨어진 것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기쁨과 즐거움과 자유함이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내가 기억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여러분과 내가 죄짐을 짊어지고 슬퍼하고 고달파 할 때 주님께서 내가 다 갚았다고 보혈로써 사인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되고 무거운 죄 짐을 다 벗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그 많은 빚을 예수님이 갚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것입니까? 우리가 진 죄의 빚은 인간의 힘으로는 갚을 수가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어야 갚는데 죽어서 갚으면 다 지옥 떨어지고 무슨 소용 있습니까? 죽어서 살아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었을 때는 사흘 동안 음부에 내려가 있다가 사흘만에 다 청산하고 주님께서 털털 털고 부활해 일어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 오셔서 여러분 귀에 대고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갚았다.” 예수님 때문에 과거가 청산된 것입니다. 죄인에서 용서받은 의인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마음에 십자가를 품고 십자가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2. 현재와 나와 십자가 둘째로, 현재와 나와 십자가의 관계를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현재는 온통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나의 가슴, 가정, 사회, 국가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없는 사람이 없지요.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나만 그런 줄 알지만 다른 사람도 다 한가지입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다 한가지지요. 어느 가정도 완전히 에덴동산 같은 가정은 없습니다. 비틀거리면서 참고 사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사회도 온전한 사회가 없고 국가도 온전한 평화로운 국가가 없습니다. 악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의 수렁이 넘쳐나고 부정부패, 탐욕, 거짓, 미움, 분노, 원한, 병, 가난, 실망, 죄책, 허무, 고통... 이 난무하는 부정적인 세력을 어떻게 청산해야 될까요? 우리 힘으로 우리는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어있는 우리 가슴속에 어떻게 해야 기쁘고 즐겁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 사회에 어둡고 캄캄한 것을 어떻게 밝힐 수가 있는 것입니까? 누가 이를 청소해 줄 수 있습니까? 여러분, 여행을 하게 되면 아침에 호텔방을 나갈 때 얼마간 돈을 놓고 갑니다. 왜냐하면 호텔 청소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방청소를 하는데 굉장히 청소하는 일이 많습니다. 침대 새로 갈아놓고 화장실 청소하고 방 안을 청소하고 하는 일이 무겁습니다. 그런데 얼마의 팁이라도 놓고 가면 굉장히 청소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누가 청소해 주시는 것입니까? 현재 이 마음에 이렇게 답답하고 캄캄하고 절망적인 인생을 청소해 줄 자가 누구인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우리를 청소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청소기인 것입니다. 청소기로써 우리의 삶을 깨끗이 현재 삶을 청소해 주는 것입니다. 미운 놈을 가슴에 품고 살면 원한으로 내 마음이 병들지요. 불안과 초조를 가슴속에 안고 있으면 마음이 억압을 느껴서 죄가 살아나지요. 생활의 저주와 고난을 품고 있으면 절망하지요. 이런 것을 누가 청소합니까? 이 쓴물을 누가 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까? 우리의 가슴속에 쓴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이 쓴물을 누가 달게 해주시는 것입니까? 십자가가 그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끌어안고 매달려 보십시오. 희한하게 평화를 주고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고 치료를 주고 쓴물을 달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깨끗이 청소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마치 큰 지우개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글을 잘못 적어서 아주 종이가 망쳐지면 싹싹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새 삶을 출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로 9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하나님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사랑한다는 증거를 확실히 했다. 입술로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그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만 가지고 사랑하라고 하면 쉽지요. 줄 세워 놓고 난 다음 사랑합니다. 오케이다. 사랑합니다. 오케이. 그러나 사랑은 증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사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셔서 오늘 주일 교회에 예배드리러 나오신 것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 즉 저가 나를 건지리라고 성경에 말했는데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증거가 주일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일날 놀러가지 왜 교회 와서 앉아 있습니까? 교회 와서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것은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 사랑합니다. 증거를 내 놓아라.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했으니 나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 했으니 나는 우상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했으니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부르지 않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는데 나는 주일에 교회가서 거룩하게 주일을 지킵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 관계의 4법인데 이 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만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요. 증거를 내놓으니까 오냐,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그러면 그 대가로 내가 너를 건져주겠다. 기도할 때 담대하게 건져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만 덮을 뿐 아니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역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허물을 씻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십자가로 청소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우리가 마음에 담대함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현재 허물과 죄를 다 청산할 뿐 아니라 거룩과 성령을 충만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은 아담과 하와가 죄지어서 원죄를 우리에게 전달해 준 죄지만 허물과 더러움은 우리가 잘못해서 지은 자범죄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범죄가 없는 사람 없잖아요. 자범죄도 주님께서 보혈로 다 씻어 주시고 그 대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고 성령을 채워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지 어떻게 아느냐. 여러분, 성령이 오신 증거는 예수를 주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이 와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를 주라고 말하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게 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충만하면 충만한 증거로써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방언은 충만한 것이고 성령이 임하여 오신 것은 예수를 그 입술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와서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빛이 생기고 궁창이 생겨나고 만물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께 임하신 것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임하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성령이 와 있으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못 보는 자에게 보게 해주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 성령이 와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신학적인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서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성령이 임하여서 오늘날 여러분과 나의 생애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인정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성령이 와서 계세요. 방언하는 사람 한번 손들어 봐 주십시오. 와~ 할렐루야~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령이 여러분의 운명을 바꿔 놓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무질서에서 질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난에서 부요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십시오. 성령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역사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로 14절에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주님의 보혈로 거룩하게 되고 온전하게 되었으므로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더러운 그릇에 임하지 않습니다. 깨끗한 그릇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보혈로 우리가 깨끗함을 입었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여러분을 더 씻어 주시고 거룩하게 해주시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나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속에 성령이 와 계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고 성령께 의지하면 성령이 여러분의 삶속에 거룩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여러분과 나는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생활로 치료함을 받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초는 치료에 있습니다. 치료가 없는 천국은 천국이 아닙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고 주님이 곧장 행하신 것은 치료하는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일 기초되는 복음의 역사는 치료에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치료받습니다. 마음이 치료받습니다. 육체가 치료받습니다. 가정이 치료받습니다. 생활이 치료받습니다. 천국의 기초는 치료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치료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그것은 회개하라. 치료가 가까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다 치료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이 임하여 있으므로 천국의 기초가 치료에 있으므로 치료가 마땅히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믿고 맡기면 성령이 역사해서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는데 주님께서 이미 치료의 대가를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천국은 축복에서 축복을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현재 저주를 받아서 저주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온 전신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괴로움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저주에서 누가 해방시켜 주나요? 십자가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애씀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여러분과 나의 저주를 짊어지고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 함이라(갈 3:13~14) 했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이지만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 자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다 받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저주를 다 짊어졌어요. 그러므로 이제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오는데 새해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고 하지만 이유가 있어야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끌어안기 때문에 십자가가 나의 모든 저주를 청산해버리고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기 때문에 새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 보혈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복잡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괜히 자꾸 복잡하게 만드는데 우리는 단순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위해서 구원을 해 주신 이 복음이 전체 복음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죽음을 청산하고 십자가에서 부활하시므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아버지는 한 사람도 멸망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아들을 보고 영생을 얻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들 없이 영생이 있나요? 예수님 안에서 사망과 음부가 철폐 되었지 예수님 밖에서는 사망과 음부가 지금도 횡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예수님만이 현재 나의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어떠한 고통과 고민 속에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그 고통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캄캄한 밤에 전등불을 켜면 환해서 다 보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슴도 답답하고 캄캄하고 내 앞길도 캄캄하고 어둡습니다. 그때 예수님께 나와서 내 인생을 맡기고 기도하면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등불과 같습니다. 환한 빛이 비취어서 어둠이 사라지고 갈 길이 환히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우리에게 빛이 되고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우리의 영적인 떡이고 생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오면 영적으로 배고프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목마르지 않습니다. 애굽의 일개연대가 사막을 지나가다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막에는 신기루가 있어요. 광선이 굴절해서 물이 아닌데 사막이 물처럼 보입니다. 큰 호수에 물이 철렁철렁하는 것을 보고 일개 연대가 그 물가로 뛰어가는데 안내자가 이것 신기루니 안된다고... 물이 없다고 잘못 본 것이라고... 그런데 병사들이 이 사람을 죽여 버렸습니다. 전부 그 신기루에 가서 물을 마셨습니다. 얼마 후에 일개연대가 사라졌기 때문에 찾아서 나가보니까 다 죽었습니다. 목에 모래가 가득가득 합니다. 신기루가 물같이 보였기 때문에 물인 줄 알고 모래를 막 마셨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래가 목에 꽉 들어차 죽고 만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양식과 물은 모두다 신기루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이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이 빛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신기루에 취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서 살면 그것은 전부다 모래를 먹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그 안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참된 양식은 예수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생명수는 예수님이 참된 생명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만난 여자가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우고 여섯 번째 남편을 데리고 살다가 마음에 목마르고 삶의 목적과 방향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 그는 순식간에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줄 알자 자기 배고픔을 만족하고 목마름이 만족되어 그는 전도자가 되어서 시내로 들어가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신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셔 보십시오. 마음에 밥 먹듯이 마음에 받아들여 보십시오. 예수님을 마셔 보십시오. 마음에 물마시듯이 마셔 보십시오.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학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이론이 아닙니다. 형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여러분과 내가 참으로 속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현실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것입니다. 많은 종교가 이상적인 세계를 말하고 현실은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기독교도 많은 목사들이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상적인 말만 합니다. 왜 구라파 교회가 텅텅 빕니까? 신학을 말하고 철학을 말하고 문학을 말하고 형식과 의식을 주장하고 현재 예수는 없습니다. 2천년 전의 예수, 팔레스타인에는 예수는 있어도 현재 예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예수님은 지금 살아있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걸머지고 지금 몸찢고 피흘려서 우리를 구속하는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 선생은 언제나 현실적인 생활에서 우리의 운명을 해결하는 예수님을 증거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로 18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왜 교회에 왔습니까? 하나님을 예비하고 찬미하는 것은 첫째 목적이요, 그 다음 두 번째 목적은 문제가 해결받기 위해서 온 것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한번 쳐다 보십시오. 십자가는 2천 년 전의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여러분 앞에 있는 지금 현재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현재 내 죄가 거기에서 청산되었습니다. 내 허물이 씻김을 받았습니다. 현재 거기에서 나의 치료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현재 안 되는 일이 저주에서 해방되고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현재 지금 천국과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현재 이 자리에서 나에게 구원을 주고 생명을 주는 역사를 십자가가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다른 것 많이 알아봤자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못박힌 그 진리는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의 영원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끌어안으십시오. 십자가를 쳐다보십시오. 그리고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 되십시오. 십자가를 끌어안고 그 안에서 희망을 가지십시오. 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안 믿어져도 믿는다고 말하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았다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이 와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나는 공짜로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것이 십자가의 은혜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했는가를 알고 그 대가를 내가 받아야 되겠다고 결심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공짜가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고, 독생자 예수님은 생명을 바쳐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죄를 갚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값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로 지금 오늘 이 시간에 죄가 사함받고 허물이 사해지고 지금 병고침 받고 귀신에서 해방되고 지금 저주에서 해방되고 지금 영생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지 아니하면 교회는 공동묘지와 같은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현재 문제입니다. 현재 내가 배고프고 현재 춥고 현재 고통스럽고 현재 괴롭고 현재 염려와 근심에 짓눌리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되지 2천 년 전에 해결해 준 이야기만 하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하고 상관없는 복음은 상광이 없습니다. 나와 상관이 있는 복음이 필요한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진리를 깨달으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해방과 자유를 얻고 이 교회에서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으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서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3. 미래와 나와 십자가 셋째로, 미래와 나와 십자가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는 반드시 다가온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미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미래 죽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평안히 있지만 우리의 시계는 착착착착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갈지 모릅니다. 나는 여러분보다 나이가 많지만 나보다 많은 어른도 여기 몇사람 보이기는 보이지요. 우리가 늦게 간다고 보증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나보다 여러분 일찍 갈 사람도 많이 있어요. 안 갈려고 하거든 목표를 예수님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100살을 살겠다고 결정하고 그것을 주장을 하십시오. 내가 장수하므로 저로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셨으니 장수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목표를 정하고 꿈을 꾸고 믿음으로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께서 구한 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미래에 우리가 죽음을 가지고서 불안하고 공포에 떨기 때문에 사망과 음부를 철폐한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죽어도 부활의 날에 살아 일어날 것이요, 살아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겁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로 58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아무리 죽음이 다가와도 우리는 죽음을 이미 건너서 천국의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망에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무장해제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우리를 잡고 있는 밧줄인 죄와 허물을 청산해 버렸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묶을 수 없어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귀가 그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를 묶어서 끌고 다녔는데 그 죄가 청산되어 버렸습니다. 밧줄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우리를 묶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죄와 허물을 조건잡고서 우리를 다스렸는데 죄와 허물이 청산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를 더 잡고 흔들 권리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마귀의 권력을 해산시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경은 골로새서 2장 13절로 15절에 그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율법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다는 것입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율법도 못박아 버리고 철폐시켜 버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철폐해 버리고 무장해제해 버리고 이제 마귀는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꼼짝도 못하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협박, 공갈로 들어오는 깡패 집단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여러분은 이미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서 보혈의 능력으로 율법에서 해방되고 마귀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은 것을 알게 되면 다시는 죄의 멍에를 메지 말고 마귀의 협박에 넘어가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물리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십자가는 우리에게 큰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천국 문을 열고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도록 화목의 재단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틀렸다가 화목하는 것 참 힘듭니다. 화목을 하려면 과거를 먼저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를 말하지 말아야 돼요. 서로 친했다고 하면서 자꾸 과거를 들추어 말하면 안 친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평안하려면 아내가 남편을 자꾸 과거를 캐서 협박하지 말아야 돼요. 대개 남편들이 집에 안 들어가려고 하는 것은 아내에게 잡혀서 협박 들을까 싶어가지고서 겁이 나서 그런데 협박하지 마십시오. 기왕 데리고 살 바에는 어떻게 잘 어루만져서 살게 해야지. 협박을 해서 원수가 되면 무슨 좋은 점이 있습니까? 또 남편들은 아내 허물을 자꾸 들추지 마십시오. 허물은 이미 결혼하기 전에 허물을 보고서 있느냐 없느냐 알아야지 결혼했는데 허물 봐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허물 있으면 있는 대로 그대로 못 본 체 하고 사랑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20년, 30년 살면서 젊은 청춘남녀가 결혼할 때처럼 뜨거운 정렬로 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주님 의지하고 주님 사랑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래서 집에 와서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귀도 좀 막고 못 본 체 하고 못 들은 체 하고 바보같이 되어서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바로 십자가가 그것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의 죄를 묻지 않고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만나도 하나님이 너 과거에 도둑질했지? 너 과거에 방탕했지? 술 취했지? 도박했지? 안 물어요. 그것 물으면 하나님 앞에 못서요. 과거는 묻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다 청산해 버렸으니 오늘 현재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말하지 과거에 우리 산 것을 들춰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서로 과거를 묻지 마십시오. 과거는 과거 지나가 버리고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청산해 버렸는데 왜 청산해 버린 것을 자꾸 들춰냅니까? 현재로부터 십자가를 의지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도와주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화목케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도 화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들을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화목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안고 나오면 다 청산해 버리고 우리를 끌어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가 뛰어 나와서 끌어안는 것처럼 우리를 끌어안아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로 18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는 갈라진 사람을 하나가 되게 뭉쳐주는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북한과 우리가 통일되는 것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도역할을 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하고 화목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과거를 꺼내서 6.25사변 네가 먼저 일으켰지? 네가 먼저 일으켰지? 자꾸 그것 따지면 결국에는 화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과거의 우리의 슬펐던 것은 다 용서하고 청산해 버리고 과거를 말하지 않고 현재를 서로 의논하면서 살아가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로 20절에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나님의 성소에는 휘장이 있어요. 휘장 저 안에는 지성소라. 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씩 피를 가지고 들어가고 그 이외에는 못 들어갑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거기에 장막이 쳐 있습니다. 두꺼운 장막이 쳐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네가 다 이루었다 할 때 성소의 휘장이 쫙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고 안이 확 들렸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이제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주님 예수님 십자가 의지해서 내가 나왔습니다 하면 두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영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자가 없습니다. 공짜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가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한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 집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 거처를 예비하러 예수님이 올라가셔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있을 영원한 집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집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고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믿음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것이니 최고의 것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 아버지가 뭐라고 했습니까?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가락지를 끼워라. 신발을 신겨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뼈다귀만 남은 송아지를 잡으라. 그렇게 말 안했었습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으라. 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제일 좋은 집에 제일 아름다운 곳에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희망을 마음속에 크게 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만이 나의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나의 과거를 청산해 주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십자가 보혈을 끌어안으면 다 청산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현재를 담대히 긍정적으로 살게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현재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십자가를 통하여 성령이 오셔서 현재를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고 건강하게 살고 축복받아 살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가 아무리 불확실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고 미래가 불확실해도 구원과 생명은 보증된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보증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망과 음부를 십자가로 청산하시고 부활과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로 다할 수 없이 크나큰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될 것은 주님이 추수하는 밭이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 영혼을 심어서 천국 백성으로 추수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십자가 없이는 하늘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안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 여러분 가슴 가운데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서 말씀하시고 여러분 속에 꿈을 주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을 부어 주시고 여러분에게 창조적인 선언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닌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이외에 더 위대한 진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생각하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안에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찬양하며 주님과 더불어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과거가 청산되고 현재 우리 삶이 보장되고 미래가 튼튼하게 희망과 꿈을 갖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십자가 같은 플러스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신기루인 세상을 따라 살다가 세상에 취해서 죽고 맙니다. 우리는 참 생명의 떡 예수님, 참 생명수 예수님을 먹고 마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됨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현재 고난 중에 쓴물을 달게 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안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게 도와주시옵시고 이 자리에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입을 넓게 열고 채워 주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추수감사절에 온 여러분들 주님께서 놀라운 하늘나라 열매로 추수하셨사오니 저들에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넘치게 채워 주시고 축복으로 넘치게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