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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 성찬주일설교 왜 예수님은 나의 보배인가?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1~3)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왜 예수님은 나의 보배인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삶의 빛이 되시고 마귀와 사망에서 구원이 되시며 생명의 활기와 능력이 되십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님과 비교할 보배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학문이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내 삶에 현재 빛이요 현재 나에게 구원이 되고 생명의 힘이 되신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밥을 이천년 전에 만든 밥이다. 천 년 전에 만든 밥이다. 따지지 않습니다. 현재 배고프니까 먹고 현재 내가 힘을 얻는 것처럼 예수님은 이천년 전의 분이시다. 팔레스타인에 태어나셨다. 그런 것 우리는 묻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나에게 빛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이 예수님을 만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 것입니다. 성화 중에 홀멘 헌트(W. Holman Hunt)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을 여러분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등을 드시고 굳게 닫힌 문밖에 서 있는 그림인데 그 문은 주위에 보니까 가시넝쿨이 많이 있어서 오래된 문인데 문고리가 밖에는 없고 안에 있어요. 그래서 밖에서 두드려야 안에서 열어줘야 열리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이 그림을 그리라고 하실 때 이 홀멘 헌트씨는 자기는 그릴 자격이 없다고 말할 때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림을 그리라. 그림으로 죄의 가시넝쿨에 우겨 싸여서 꽁꽁 닫아놓은 마음의 문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상징하는 이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죄지은 인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고리가 안에 있어요. 예수님이 아무리 구원하려고 해도 우리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구원할 수가 없어요. 세상에 가시넝쿨 속에 오래 엉켜서 살면서 녹이 슬고 굳어질 데로 굳어진 그 문에 고리가 안에 있고 밖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하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지금도 그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노크소리를 듣고 마음 문을 열면 그리스도가 들어와서 우리 마음에 빛이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생명의 능력이 되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은 나의 빛 첫째로,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면 마음에 밝은 빛이 비췹니다. 어둡고 캄캄한 밤에 빛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우리 옛날에 시골에서 자랄 때는 이웃 마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조그마한 등경을 들고서 걸어가면 그 뒤를 바싹 붙어 따라가야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도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빛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오늘날 인생을 살면서 빛이 없이 인생을 살게 되면은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의 구렁텅이 속에 수없이 빠지고 뒹굴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말했는데 야훼는 죄의 어두움이 사라져 버리고 의의 광명이 비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죄가 운데 빠진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죄에서 허덕이고 방황하며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의 빛인 예수님이 마음속에 비춰서 죄의 어두움을 밝히 보여주시면 우리가 회개할 수 있고 주님을 찾아 나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내가 얼마나 옷이 더러운지 안보이잖아요. 내가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는지 눈에 안보이잖아요. 그러나 빛이 비취게 되면은 내가 얼마나 발이 더럽고 옷이 더럽고 추하고 씻어야 되겠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야 죄의 어두움이 우리 눈에 나타나서 예수 보혈로 씻고 의롭게 깨끗하게 될 수 있는 의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5절로 7절에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 빛 가운데 있듯이 우리도 빛 가운데 있으면 우리는 어두움을 씻어낼 수 있는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게 되고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밤이 대낮고 같이 밝습니다. 가로등이 켜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에서부터 이 가로등이 처음 출발했는데 벤자민 프랭클린이 국민들에게 가로등을 설치하자고 하니까 전부 반대했습니다.‘등이란 집 안에서 켜면 되지 어째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느냐’ 협조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러면 우리 대문밖에 우리 대문밖에 등을 좀 달아보자.’ 그것도 반대해서 극소수의 사람이 문밖에 등을 달고 다른 사람들은 등은 안 달았는데 등을 달고 난 다음 보니까 사람들이 밤에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횟수도 적어지고 밤길에 방황하는 사람도 적어지고 도적도 많아지지 않고 질서도 생기고 하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야~ 가로등을 켜는 것이 참 좋다.’ 의견일치가 되어서 나중에는 온 길거리에 가로등을 밝히 켜니까 그때로부터 온 시내가 밝고 맑고 환해져 밤을 대낮고 같이 밝혀서 사람들이 강도의 위험, 길을 잃어버리는 위험, 사고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게 되었다는 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 비춰줍니다. 진리의 밝은 빛은 절대 가려지지 않고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두움의 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빛으로 밝히 비춰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슴속에 들어오면 어두운 것이 밝히 드러나고 빛이 무엇인가 보여주기 때문에 어찌할 수없이 어두움을 떠나서 빛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시므로 우리는 주님을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빛으로써 허무와 무의미의 암울한 삶속에서 가치와 즐거움을 환하게 비취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허무하고 무의미합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살고 노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때는 빈손 들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면 사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의미가 있느냐. 허무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을 받아서 하늘에 올라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무의미하고 짓밟힌 진흙과 같은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요 영생천국을 얻어서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앎으로 삶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절로 4절과 9절에“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바로 이 빛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빛으로써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허무와 무의미의 길에서 가치와 생명을 보여주는 빛으로써 오신 것입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주의 앞에는 즐거움이 빛이 비취고 그의 우편에는 즐거움이 기쁨이 넘쳐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쁨의 빛인 것입니다. 슬픔의 어두움이 아닌 것입니다. 기쁨의 빛인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이 계신 곳에는 그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우편에는 즐거움이 넘치는 하늘의 영광의 빛이 비췩데 되는 것입니다. 허무와 무의미의 암울한 삶에 가치가 환하게 비취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작가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 카우퍼는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서 그 이후로 우울증에 걸려서 33살에는 정신병이 도져가지고서 정신병원에 18개월 동안 요양을 받았습니다. 아무리해도 정신병이 낫지 않아요. 그런데 하루는 로마서 3장 25절의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성경을 읽었는데 성경이 태양과 같이 마음속에 떠오르면서 마음을 밝혀 주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마음에 큰 확신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의의 태양이 내게 비추었고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기쁨과 감격에 겨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사랑과 경외감에 잠겨 하나님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날로 그는 새 사람으로 거듭났고 정신병에서 완전히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자살을 수없이 시도하고 인생의 삶에 허무와 무의미에 방황하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태양이 그 마음속에 떠올라서 그때로부터 구원받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잃어버리면 우울하고 좌절과 절망을 갖게 되는데 마귀는 우울하과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들지만 예수님은 오시면 우리 마음속에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빛이 비취면 죽음의 절망의 어둠이 사라지고 천국의 소망과 기쁨의 빛이 비치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2절에“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예수님이 오심을 예언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77절로 79절에“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예수님을 믿으면 여러분 해가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밤이 지나가고 해가 떠오른다. 해가 떠오르면 모든 생명이 살아서 활기차게 일하지 않습니까? 우리 생기가 돋아오르고 우리 발이 밝은 빛을 향해서 곧게 걸어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의 방황을 그치고 길과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길이요, 내가 바로 진리요, 내가 바로 생명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우리가 길을 찾아서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가 들어오면 예수가 살아갈 길이요, 예수님이 참 진리요,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 12:35~36)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이니 이제는 죽었다 부활하셔서 영원한 빛으로 우리 속에 성령으로 와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습니다. 이 빛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감사하고 찬미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방황을 그치고 이제는 바른 길을 따라 살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전에는 조용기도 어두움이고 여러분도 어두움이고 여러분이 다 깜깜한 밤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죽고 난 다음 어디로 가는지 아무 대답도 못하는 어두움에 처한 어두움 그 자체였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이제는 어두움이 아니라 예수님이 들어오자 빛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일어서나 앉으나 빛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빛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로써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을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나의 구원 그리고 성경에는 둘째, 나의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빛일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를 건져주는 자가 있으면 두려워 할자가 없습니다. 저는 나이를 먹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지만 먹은 것이 사실인 것을 내가 어찌할 수가 없어요. 10시간 비행기를 타고서 시차가 있어서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교역자 수양회에 나가니까 목사들만 2만명이 모였어요. 목사들 2만명이 모였는데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마침 그 이튿날 우리 당회장 이영훈 목사님이 와서 교역자 수양회를 맡아 주어서 내가 살았지 안 그랬으면 아주 주저앉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낮에 2만명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고 난 다음에 인도 점심을 먹는데 인도 카레가 입에 모래 같아서 먹기가 어찌 힘든데 KAL에서 고추장 담은 조그마한 통을 주었기 때문에 그 고추장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비벼서 겨우 먹고 저녁에 나가니까 50만명이 온 주위에 콩나물시루같이 모였는데 숨 쉴 겨를도 없어요. 그때 제가 옛날 같으면 끄떡없는데 어질어질하고 심장도 뛰고 또 얼마나 더운지 땀이 폭포수 같이 쏟아지고 야 이것 해나가겠느냐. 그럴 때 이 성경이 늘 기억이 났습니다. 야훼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주님이 나의 구원으로써 나를 붙잡아 주시니 예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그래서 나가서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하니까 내가 한국에 있는지 인도에 있는지 그것도 다 잊어버리고 말씀에 사로잡혀 구원의 주를 증거하고 나도 구원받고 자기들도 구원받고 구원의 은총 속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은 얼마나큰지 그 구원의 생명수는 얼마든지 와서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12장 2절로 3절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우리가 힘이 없고 능이 없을 때 주님은 나의 힘이시고 주님은 나의 노래시고 주님은 나의 구원이시고 구원의 우물물에서 물을 길러먹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고 믿음을 실천하면은 생명수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구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가난의 어두움이 복의 빛으로 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러 오셨기 때문에 가난에 밝은 빛이 비취는 것입니다. 사실은 여러분은 인도는 아직까지도 굉장히 가난해요. 그냥 맨땅위에 앉아있는데 옷도 남루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많아요. 저 사람들에게 뭘 줄 수 있습니까? 쌀이라도 갖다 주고 옷이라고 갖다주면 좋겠는데 한두 사람이어야지 쌀을 갖다 주고 옷을 갖다 주지요. 구제, 구제 그것도 한 백명 이백명 말이지 10만명, 20만명 어떻게 구제를 다 합니까?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합니까? 다같은 인생으로 태어나서 저렇게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그들이 먹고도 남게 할 내가 있는데 나의 구원을 전파하라. 예수님이 오병이어로써 5천명을 먹고 열 두 바구니 남긴 것처럼 주님은 숫자에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는 가난을 물리치는 밝은 축복의 빛이 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담대하게 그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지만 예수를 믿으면 예수는 여러분에게 축복이 되고 저주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니까 믿어보라고... 우리도 옛날에 가난했으나 믿어보니까 예수님이 축복의 근원이 되시더라. 그러므로 반드시 예수 믿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이니 믿어보라. 이것이 우리의 복이다. 쌀은 먹으면 없어져 버리고 옷은 입으면 떨어져 버리지만 예수님을 우리속에 모시면 영원한 축복의 근원이 된다고 외친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주님은 부의 근원은 하나님인데 헐벗고 굶주리고 벌거벗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는 우리의 가난을 대신 짊어지고 청산하고 하나님의 부요를 부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가난한 군중이 많이 와도 예수님이 대답이 되신 것은 당신의 모든 저주와 가난은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은 당신에게 부귀와 영화를 주셨다. 그 예수님의 축복이 비와같이 쏟아진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당신은 축복받은 것을 상상하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라. 더 이상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아라. 예수 때문에 부자다. 예수 때문에 잘산다. 예수 때문에 넉넉하다. 예수 때문에 넉넉하며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라. 얼마나 좋은 기쁜 소식이고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얼굴이 환히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포로된 심신과 생활에 자유의 빛이 비추고 구원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은 다 병이 많이 들어요. 모두다 병자에요. 병자위해 기도할 테니까 아픈 사람 일어나라고 하니까 다 일어나고 앉아있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 가난하면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영양실조도 걸리고 환경도 나쁘니까 병들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셔서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병을 벗어버리라고 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치료의 은총을 받아들이라고 외치고 또 믿으면 치료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말했었으며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시켜 주고 불의에서 해방시켜 주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우울, 슬픔에서 해방시켜 주고 우리에게 의와 평강, 희락,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자유케 하는 능력은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서 신령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진리는 말씀에 있는 것인데 사람들은 말씀을 보아도 모르잖아요. 까만 것은 글이고 흰 것은 종이라고 안보이니까. 그러나 그 속에 성경 속에 뭘 봐야 되느냐. 십자가를 봐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중심적인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대속했다는 그것이 중심의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허물에서 씻음을 받고 성령 받으며 치료받고 저주에서 해방되며 부활, 영생, 천국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성경의 중심 진리요 십자가의 중심 진리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은 여러분 전인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와 어떻게 관계되는 것입니까? 내 생각을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고 내 마음속에 희망찬 꿈을 품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입술로 변화된 말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시인하면 십자가의 은혜가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걸려있는 화환이 아니라 내 목에 걸려있는 화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있는 진리의 도리를 마음속에 깨달아 알고 그렇게 된 내 모습을 반드시 그려보고 꿈을 꾸고 그것이 일어날 것을 믿고 나는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았다. 십자가를 통해서 허물을 용서받았다. 나는 십자가를 통하여 병에서 고침 받았다. 나는 저주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부활, 영생, 천국을 얻었다고 입술로 시인하면 네 시인한대로 될지어다. 네 말한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려서 십자가를 통해서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저가 인도의 청중들에게 늘 한말입니다. 옛날에 여러분이 살아온 인도에서 살아온 이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스럽고 병들고 괴로운 옛날은 지나가 버렸다 이제. 오늘 저녁으로부터 지나갔다. 보라. 예수 안에서 새사람 되었다. 의로운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복 받은 사람이 되고 천국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된 것 마음에 꿈꾸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라.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라. 그냥 집에 돌아가지 말고 걷는 발걸음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나는 용서받은 사람이 돌아간다. 나는 거룩한 사람이 집에 돌아간다. 나는 건강한 사람이 돌아간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 돌아간다. 천국 백성이 돌아간다. 그렇게 하라.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 그렇게 가르켜주는 것이 눈이 어두운 자에게 밝은 빛을 비춰주는 것입니다. 영적 눈먼 자에게 신령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드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Pillip Yancey) 목사님의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하나님』이란 책에 보면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스페인 선원들이 남미로 돈을 벌로가다가 배가 난파되어 가지고서 갈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바다위에 둥둥 떠있으니까 물이 다 떨어졌어요. 바닷물을 마시면 목에 소금기가 걸려서 고통하고 죽는다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물을 안마시려고 몸부림을 치고 괴로워하는데 점점 배는 떠돌아서 아마존 강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아마존 강은 너무 크기 때문에 바다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닷물이 아니고 맹물인데 선원은 맹물이 바닷물인줄 알고 떠서 말라서 죽어가는데 한 사람이 너무 목이 말라서 에라 바닷물이라도 실컷 먹고 죽어야 되겠다고 물에 풍덩 들어가서 마셔보니 바닷물이 아니고 맹물입니다. 자기도 살고 배에 탄 사람들에게도 맹물이니 마시라고 해서 다 물을 마셔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세상의 물을 마시면 다 목말라지고 기쁨이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갈고 여섯째 남편을 데리고 살아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목말라서 죽어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의 강물에 풍덩 빠지면 모든 갈급한 것이 모두다 없어지고 생명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구원의 강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수는 먹어봐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마음속에 모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받아들여서 여러분의 갈급한 마음이 다 채워지고 쓴 마음이 달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쓴 바닷물 같은 우리 마음이 어떻게 변화됩니까?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쓴물이 달아지고 짠물이 맹물이 되고 저주가 축복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는것입니다. 십자가가 위대한 것은 변화시키는 기적이 따라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교나 철학이나 학문이 아니라 여러분과 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내 힘으로 안되는 것이 내가 변화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께 나가면 마귀에게 눌린 자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습니다. 병은 99%가 마귀가 눌러서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마귀가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저, 절망으로 억압을 하고 몸을 짓눌러서 몸에 양분이 공급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겨울에 돌에 눌려 있는 풀이 노랗게 떠있는데 돌을 옮겨 놓으면 봄 바람에 봄비를 맞아서 새파랗게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마귀가 눌러서 노랗게 떠서 죽어가는 생명이라도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건강을 회복하게 만들어 주면 새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권세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하늘나라 백성으로써 하늘나라 시민으로써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권세있기 말을 하십시오. 마귀를 보고 사정하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경찰관이 여러분 강도를 보고서 강도여~ 손 내미세요~ 나에게 수갑 채우게 해주세요~ 그렇게 하면 강도가 잡힙니까? 권세있게 손 내밀어! 수갑을 철컥 채우고 따라와! 권세 있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신과 마귀는 여러분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온 것이니 여러분이 그것을 발견하면 권세 있게 명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밟아 눌러 능력있게 여러분께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마음을 누르는 마귀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떠나가라! 병은 고침을 받으라! 몸은 자유를 얻으라! 저주는 물러가라! 권세있게 여러분이 말할 때 그 말에 하나님의 능력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굳건하게 서서 종의 멍에가 다가오면 권세있게 명령해서 물리쳐 털어버려야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삶에 구원이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의 대속을 지불하셨으므로 예수님을 선물로 받아들여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지 행위로써 우리가 값주고 산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 원을 얻는 은혜의 선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여러분은 모두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서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 선물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그냥 받았어요. 공짜로 받았습니다. 받았으면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주어진 선물 박스를 열어봐야지요. 무엇이 있습니까? 용서와 의의가 들어 있습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이 들어있습니다. 치료와 건강의 선물이 들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형통의 복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부활, 영생, 천국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선물통을 열어 보니까 영혼도 잘되고 범사도 잘되고 강건한 선물이 들어있어서 이 선물을 껴안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선물을 보고 난 다음에 나는 패배자가 아니구나 가난한 자가 아니구나. 버림받은 자가 아니구나. 나는 주 안에서 부자가 되었구나. 생각이 달라져야 되고 새사람이 된 꿈을 꾸고 믿고 입술로 시인을 하면 그 선물이 다 여러분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서 치장으로 목에 십자가를 걸고다녔지 십자가가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려야 돼요. 그것이 사차원의 영성을통해서 누리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꿈을 꾸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입술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시인하면 그것이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내 소유물이 되고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서 당장 하나님의 선물이 없어도 살것같지만 여러분 인도에 가보면 당장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요. 많은 군중들이 모였는데 당장 먹을 것도 없고 맨발로 있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차비도 없고 기가 막힙니다. 당장 그들은 지금 예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먹을 것을 줄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만나가 내려와야 돼요. 지금 기적이 일어나야 돼요. 예수 믿는 것이 종교가 아니가 데코레이션이 아닙니다. 현재 내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철학이요, 학문이지 복된 소식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말은 바로 이 자리에 지금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믿고 의지하십시오. 지금 그를 끌어안으십시오. 지금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께서 일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내 생명의 능력 그리고 셋째로, 예수님의 우리 삶의 생명의 능력이 되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힘이 없을 때 힘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로 3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예수님이 얼마나 큰 생명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에 악인이 내 살을 먹으러 왔다가 도망을 치고 전쟁이 일어나도 마음에 두렵지 않고 태연하다. 우리의 삶을 파괴하려는 세력에서 주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능력이 되어서 지켜 주신다. 목자가 양을 지킬 때 지팡이로 지도하고 인도하고 막대기로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파괴하려는 세력에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셔서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로 2절에 우리 한번 또다시 읽어 보십시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보십시오. 예수 안에 있으면 만사형통이요, 만사 오케이요, 만사 평안이 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건지시고 그 안에서 피할 수 있는 바위가 되시고 방패가 되시고 구원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니 이런 좋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이 되신다는 것을 여러분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은 광풍이 다가오지 않습니까? 시험과 환난의 광풍이 다가올 때 빨리 뛰어가서 예수님이 날개 밑에 피하면 주님이 우리를 피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이 보배를 우리가 질그릇에 가졌으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예수 죽은 십자가를 몸에 끌어안고 있으면 예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천당 내 천당이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폭우를 가리는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비를 맞지 않습니다.저주의 폭우, 환난의 폭우가 다가올 때 피할 곳은 예수님 밖에 없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온 세상을 심판의 폭우가 부어도 예수님 안에서 피난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마른땅에 냇물 같아서 생명수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자는 다 내게 와서 마셔라. 너희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른 땅에 샘물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살아나듯이 예수님은 생수의 강이 되어서 우리 마음속에 모든 하나님의 영광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내가 생명수를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곤비한 땅에 큰 바위그늘이 되어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나무가 없고 풀이 없는 사막을 지나가는데 그늘 질곳은 큰 바위 밑에 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도 우리의 큰 바위가 되어서 그곳에 피하면 쉼을 얻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 완전히 백골이 되어서 있는데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하기를 이 뼈들이 살겠느냐. 나는 모릅니다. 생기에게 명하여 이 뼈속에 들어가게 하라. 생기야 뼈속에 들어가라! 즉시로 혈관이 생겨나고 살이 붙고 뼈들이 여기저기 모이더니만 큰 군대가 되어서 일어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이 우리에게 놀라운 생기를 주어서 소망을 갖고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놀라운 구세주 예수님은 참 능력의 주신 것입니다. 우리 그 찬송 다같이불러 보십시다.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길로 덮으시네 ♬ 저도 노래 꽤 잘하지요? <결론> 예수님을 모시면 한없는 보배를 이 천한 질그릇에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우리가 아무리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며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나갈 길을 열어 주시고 핍박을 당해도 버리지 아니하시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보배가 되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 다 날 버려도 예수님은 날 버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 것 다 잃어버려도 예수님만 끌어안고 있으면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 구원도 있고 그곳에 성령도 있고 그곳에 건강도 있고 그곳에 축복도 있고 그곳에 천당도 있고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문제의 해결이 되시는 것이요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이요 최고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내 생각이 긍정적으로 달라져야 되고 예수 안에서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나의 꿈을 마음에 항상 그리고 품고 있어야 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 먹이고 열두바구니 남기는 그런 기적을 주님께서 행하시므로 기적을 믿어야 되고 입술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은혜를 입고 있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나는 기쁘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행복하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대로 될지어다. 내 꿈꾼대로 될지어다.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내 입술로 고백한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글자로 적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인도의 힌두교나 이슬람교나 여러 가지 종교의 신자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오는 이유는 자기들은 종교를 가졌으나 생명이 없습니다. 종교는 가졌으나 그곳에 생명이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 안에 오니까 그들은 앉아서 눈 앞에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암이 떠나고 절망에 처한자가 소망을 얻고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마시고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것을 보고 하루저녁에 수만명씩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겠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물로 취급하고 종교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 시간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생각에서 일어납니다. 꿈 꾼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로써 고백한대로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령 받았습니다. 건강합니다. 치료받았습니다. 응답받았습니다. 성공을 얻었습니다. 평안하고 기쁩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네 말한대로 될지어다. <기도> 우리 고개숙여 기도하고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이 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나의 빛이시니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시고 나의 구원이시니 사망에 처하지 않게 하시옵시고 생명의 능력이시니 이 세상에 패배자가 되지 않고 승리자가 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 빛되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다 밝혀 주시옵시고 오늘 구원이신 예수님 모든 사람을 구원받게 해주시옵시고 생명을 체험하게 해주시옵시고 생명의 능력이시니 마음에 생명강이 넘쳐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