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9. 주일설교

나는 절망할 수 없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2)

<서론>
이 세상 어느곳에 가도 사람들은 고난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모두 다 인생에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어제 대만 대북에서 두 번 집회를 했는데 대만 사람들도 많은 삶의 고통 가운데 방황하고 허덕이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에 안타깝고 괴로웠습니다. 왜 인간은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까? 원래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지었을 때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기 때문에 만유보다 아름답고 평안하고 위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반역한 죄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고 잉태하고 자녀를 생산하고 기르는 고생을 하게 되고 몸은 늙고 병들고 죽게 되고 처참한 흑암이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죄와 죄책과 허물을 아무리 이기려고 해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생각을 할 때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그대로 사람들 수가 작으니까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인도에 가면 발에 먼지와 티끌처럼 차이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가고 싶지 않아요. 복음을 증거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 것도 한 2백명의 경찰 특공대가 옆을 둘러 진 쳐야 되는 것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성자들을 모시고 있던 습관이 있어서 그들에게 손을 얹으면 복이 온다는 그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차에서 내릴 수 없는 것은 모두다 가위나 면도칼이나 이런 것을 가지고 옷자락을 찢어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밀고 당기고 오면서 그냥 찢어 가는데 옷 하나 상한 것 없이 다 찢기고 그 다음 차안에 있으면 차를 얼마나 손으로 두들기든지 차 창이 깨어질 정도인 것입니다. 그것 왜 그러느냐. 그만큼 인생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도움이 없고 불안, 초조, 절망, 좌절, 슬픔, 고통이 있으니 어떻게 하든지 도움을 받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아우성치는 탄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상황 가운데 절망하고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현실의 삶도 너무나 고달프고 모순투성이인데 내가 누구은지 그 상황도 확실히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삽니다. 그런데 우리를 건져주실 구원자가 있겠습니까? 힌두교입니까? 무슬림교입니까? 또 다른 종교인 것입니까? 원래 우리의 조상 아담이 타락해서 우리는 그 타락한 혈통을 따라서 오늘날 이 세상 늪에 빠져 허우덕 거리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류조상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습과 형상을 가져오셨지만 아버지 없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성령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과 같은 DNA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인류 조상인 것입니다. 죄짓지 아니하고 마귀의 지배하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반역하지 아니하는 절대 믿음, 절대 순정하시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써 태어나서 이 땅에 오셔서 옛 조상 아담의 자손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청산하시고 우리는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류로 중생시키는 것이 주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종교를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철학이나 의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새것을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의 기쁜 소식을 주신 것이 크리스마스요, 오늘 이 성경말씀도 놀라운 기쁜 소식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냐. 그가 이 세상에 오시기 6백년전에 그런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 우는 곳, 마른 땅에 냇물 같고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같아 그 아름다운 형용을 들을 때 마음에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광풍을 피하는 곳
이사야 54장 11절로 14절에“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야훼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제자가 될 것이니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주님이 오시면 우리를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고 주님께 피하면 오늘 여기에 말한대로 정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은총이 임하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악의 광풍에서 피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죄악의 광풍이 불어서 휩쓸려 가면 우리는 놓여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찔리고 상한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찔리고 상해서 여러분과 나에게 피할 곳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미가서 7장 18절로 19절에 보면“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말하기를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 하는데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 거울처럼 갖다 놓으면 죄가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세수하고 난 다음에 얼굴을 보면은 얼굴이 밝고 깨끗하지만은 자다가 일어나서 눈꼽이 붙어있고 얼굴이 찌그러지고 손을 못보고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로 거울을 이렇게 들여다보면 다시 보기 싫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거울을 우리가 들여다보면 그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네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하나 온전하게 지킨 것이 없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을 탐하지 말라. 단순한 몇 가지만 우리가 보아도 우리가 잘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악의 광풍이 불어와서 우리를 참소하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도록 요청할 때 우리가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죄는 마귀가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심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이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이 복줄 수 없고 이 사람은 정죄하고 심판해야 된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죄지었기 때문에 죄의 간수는 마귀인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서 우리를 변호해주는 변호사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들이 죄를 지었지만 이 죄 값을 내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몸 찢고 다 청산했으니 내 피가 그 대가다. 그리스도의 피를 내놓으면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악의 광풍이 우리를 휘몰아쳐서 우리에게 심판을 받게 하려고 해도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큰 증거가 되고 예수님은 그 보혈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에게 광풍을 피하는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병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많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주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몸이 흙인데 흙이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병이 들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있지 않습니까? 마음의 고통은 육신의 질병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 사람은 마음이 몸속에 살고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고통이 있으면 그것이 몸에 악영향을 미쳐서 온갖 병이 다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즐겁고 쾌활 하면은 온 몸에 좋은 영향력을 미쳐서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매일매일 마음을 즐겁게 하고 쾌활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감사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제일 먼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를 하십시오. 식사하실 때도 하나님께 고개 숙여 식사기도 하고 하나님 밥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옷 입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어나고 앉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을 찾아서 자꾸 감사하면 감사는 감사를 낳고 감사는 감사를 낳고 그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셔서 더 주시고 더 주시고 또 더 주시는 것입니다. 건강도 감사를 통해서 얻게 되고 축복도 감사를 통해서 얻게 되고 화평도 감사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몹시 고통스럽고 괴롭고 원망스럽고 살기 거북할 때 제일 좋은 해결방법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쓴물이 달아 지듯이 싹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병의 광풍이 다가올 때 예수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진 것을 생각하고 주님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을 짊어지셨으므로 나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고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주님 치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요, 병이라는 것은 죄 값으로 온 것인데 주님께서 2천년전에 다 청산하셨어요. 채찍에 맞음으로 말미암아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때릴 때마다 피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병에서 고침 받았다. 사십에 보통 하나 감한 매를 맞는데 병을 다 분류를 하면은 서른아홉 가지 종류가 있답니다. 예수님이 사십에 하나 감한 서른아홉차례의 매를 맞고 우리 모든 병을 2천년전에 이미 다 청산했어요. 법적으로 다 빚을 다 갚아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병들어 있는 것은 실상 거짓되고 헛된 것에 속아있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아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내가 예수님이 날 위해서 질병을 짊어진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깨달아 알고 마음에 확신이 생기면 건강하게 된 꿈을 꾸게 되고 믿을 수 있게 되고 나는 건강하다. 튼튼하다. 씩씩하다.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질병아 떠나가라고 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신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께서 병을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이것을 알았으면 여러분 오늘 병을 벗어버리십시오. 생각으로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병과 관계없는 건강한 모습이 된 모습을 마음에 꿈꾸고 믿고 그대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병자가 아닙니다. 건강합니다. 튼튼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질병의 광풍이 아무리 불어와도 예수님이 계시면 그 질병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살아갈수록 점점 더 병이 많아지는데 우리는 불안하지 말고 예수님을 꽉 잡고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고 있으면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의 고통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에도 남편과 아내와의 사이에 갈등, 오해, 미움, 원한, 부모와 자식간의 미움과 원한... 정말 이웃과 서로 물고 찢고 갈등이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갈등을 마음의 결심으로 해결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갈보리 십자가를 마음에 끌어안으면 십자가에서 치료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마음에 갈등이 사라지고 평화가 다가오는 것인데요. 그 희안한 능력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마라의 쓴물에 나뭇가지를 꺾어던지니 쓴물이 달아진 것처럼 여러분 마음에 갈등은 예수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달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끌어안고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 내 마음을 치료하여 주시고 마음에 갈등을 잠재워 주십시오. 주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은 원한이 사라지고 미움이 사라지고 염려, 근심, 불안, 초저가 사라지고 마음이 가라앉고 주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에 고통이 다가와서 밤잠을 못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려고해도 잠이 안오고 마음에 갈등이 오고 고통이 오고 슬프고 원통하고 절통할 때가 있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그때 아무리 다른 방법을 해도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아요. 타이레놀을 먹어도 안 가라앉아요. 그래서 내 마음에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 밑에 엎드려서 주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 마음의 고통을 치료해 주시고 가라앉혀 주십시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고통을 주는 사람도 감사합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죽은 놈은 고통도 느끼지 않잖아요. 그러나 살아있으니까 고통도 느끼는 것이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언제 잠을 잤는지 잠을 자버렸어요. 아침에 자고 나면은 마음이 평안하고 깨끗한 것입니다. 마음의 고통과 광풍을 피하는 곳은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잠언 1장 27절에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세상을 이기고 평안을 만들어 놓으셨으니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고통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 교회에 예수님이 와 기다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했으니 빨리 교회와서 주님께 기도하고 고통을 다 토해놓고 찬양하고 감사하면 주님의 치료가 마음속에 임하여서 마음에 평안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시련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삶의 시련, 사업이 안됩니다. 빚더미에 올라 앉았습니다. 집이 경매에 처하게 됩니다. 애들에게 먹을 것을 사줄 돈이 없습니다. 삶의 광풍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살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날 지경인 것입니다. 삶의 시련의 광풍이 다가오면 그 광풍에서 무엇을 마다하겠습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가복음 4장 37절로 39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지나가는데 큰 광풍이 다가왔습니다. 바람이 불어 배가 물에 침몰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광풍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예수님께서 뱃머리에 팔베개를 하고 주무시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일어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 즉시 고요하게 잠잠하게 되었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은 삶의 시련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살지 못할 때 예수님께 내어 던지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맡기지 못하는 불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확실히 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맡겨 버립십시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죽음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그런 고난에 처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것은 광풍에 시달리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광풍에 시달린 사람이 있어야 신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있어야 용서할 수 있고 병이 있어야 치료할 수 있고 배고픈 자가 있어야 먹일 수가 있고 광풍에 시달린 자가 있어야 잠잠하게 해줄수가 있는데 세상은 원래 배고프고 병들고 죄있고 광풍에 시달리는 곳이 있는 곳이므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온 것은 이런 곳에 있는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나를 도와주겠느냐. 그런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그런 것을 도우는 전문가로 와 계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전도하는데 말을 잘못 사용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언잖았습니다만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어요. 뭐냐면 예수님은 하수구를 치는 하수도 공사자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하수구같이 꽉 들어 막히거든 하수구 공사자인 예수님을 청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듣고 전도를 하려면 더 좋은 말을 하지 예수님을 하수구 공사자라고 하다니... 고약하다. 그랬는데 그 말이 제가 몇 십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지금도 내 마음에 떠나지지 않고 있어요. 내 마음이 하수구같이 딱 막히면 하수구 공사자는 예수님이니까 청해야 되겠다. 예수님은 여러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한 두사람이 아니라 다 내게로 오라. 그러므로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은 청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전문가입니다. 반드시 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주님께 구하면 주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큰 광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은 여러분 인생의 크고 적은 광풍을 잠잠케 하고 피하게 하는 피난처가 되는 것이고 주님은 최후의 죽음의 광풍을 피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죽어요. 어떤 사람이 어제 비행기 안에서 저를 보고 이런 말 합디다. 목사님은 지구를 120바퀴나 돌았다고 하는데 비행기를 타면 겁이 안납니까? 어제 눈이 많이 와서 기상이 나빠서 비행기가 굉장히 요동을 하고 꼭 떨어질 것 같이 진동을 하니까 그분이 상당히 겁이 나는가봐요. 자꾸 나만 쳐다보잖아요. 그래서 내 생각으로 조목사가 탔으니까 안떨어 질 것이다.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도 겁이 조금은 났지만 많이 겁은 안났습니다. 왜냐, 죽는 것이 겁이 안나거든요. 옛날에 젊었을 때는 더 오래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겁이 나지만 지금은 언제 죽어도 하나님께 원망할 수 없는 것은 76살까지 살았으니 오래 살았지 않습니까? 그것만해도 감사하기 짝이없는데 죽는다고 해서 원망스러울 것이 없으니까 안 죽으면 좋겠지만 죽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뛰고 굴러도 나는 가만히 앉아서 있으니까 한참 나를 보더니만 나의 옆구리를 탁탁 치더니만 목사님은 겁이 안납니까? 그런데 내가 겁난다고 할 수가 있나요. 겁이 안납니다. 왜 겁이 안납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겁이 납니까? 살면 전도요, 죽으면 천당이고... 우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받아 놓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보좌에 앉아있는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 손 꼭 잡으십시오. 나는 예수님 손 꼭잡고 있으니까. 격려를 해주니까 아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어려울 때 같은 친구가 있어 붙들어 주면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망이 우리에게 항상 다가오는 것이니까 누가 건져주겠습니까?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 이외에는 건져줄 수 없어요. 예수님 이외에는 우리를 건져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4절로 55절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다가오면 사망을 잡아먹는 예수님이 계세요. 예수님이 사망을 잡아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아프리카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굉장히 큰 뱀이 있어요. 아주 토끼라도 삼킬 수 있는 뱀인데 그 뱀을 잡아먹는 몸통이 조그마한 오소리 같은 것이 있어요. 그 뱀에게 달라들어서 그 큰 뱀이 반항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뱀을 잡아먹는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그런데 그 큰 뱀이 오소리만 보면 겁을 내서 절절매요. 사망이 우리보고는 잡아먹으려고 들라들어도 절절 매는 것이 바로 예수님 앞에서 절절매는 것입니다.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세는 마귀에게 있는데 마귀는 예수님이 이미 머리를 깨뜨리고 권세를 해지해 버렸기 때문에 그러므로 사망은 예수님 앞에 꿈쩍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시편 23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주님과 같이 있으면 사망이 오면 예수님이 사망을 삼켜 버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적이 오는 것이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 예수님은 생명의 주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꼭 껴안으면 죽음의 광풍을 피하는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썩을 몸이 주님 오시는 그 날에는 썩지 아니할 몸이 될 것이고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이 될 것이고 이 사망을 주님 삼켜버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와 생명을 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아주 날씬하고 아름다운 심신을 가지고 주님을 맞이할 수가 있게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보살펴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 알고 어떠한 일에도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2. 폭우를 가리는 곳
둘째로, 예수님은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폭우가 하늘에서 쏟아지면 누가 우리를 가려주는 것입니까? 노아 홍수 때 죄를 지은 그때 당시 사람들을 40일 동안 비가 쏟아지니까 지구가 물에 다 덮여서 다 죽고 노아와 그 여덟 식구 밖에 못살았습니다. 그때 노아는 120년이 걸려서 방주를 지었는데 방주에 자기 가족들이 다 들어가서 여덟식구가 살고 짐승들이 쌍쌍이 다 들어가서 후손을 이 지구상에 퍼뜨리게 만든 것입니다. 폭우를 가리우는 곳이 되는 것은 바로 방주인데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방주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슬픔과 환난의 시련의 방주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슬픔과 환난과 시련이 폭우와 같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하늘에 쏟아져요. 하늘이 샛노랗습니다. 어디에 바라볼 때가 없습니다. 그때 누가 우리에게 방주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까? 예수님 안에 뛰어 들어가서 주님 끌어안고 울고 부르짖으면 주님이 피난처가 되고 방주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우리 순복음 신문에 보니까 신장을 신우염에 걸려서 한쪽 신장을 떼내고 다른 신장에 또 암이 걸려서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어서 어디로 갔습니까? 최자실 금식기도원에 가서 사흘 동안 금식기도 하고 난 다음에 병원에 와보니까 암이 온데간데 없어졌다고... 슬픔과 환난과 시련이 폭우와 같이 쏟아질 때는 방주인 예수님께 뛰어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시편 62편 5절로 8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따라 말씀하세요. 주님 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그러므로 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농담이 아닙니다. 주님이 진짜로 여러분에게 이와같이 반석이 되시고 요새가 되어 주시고 구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서 8장 35절 말씀대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예수님과 우리를 끊어놓을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잘나서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랑하고 예수님 우리 사랑하고 틀린 것은 다른 사랑은 여러분 우리가 자격이 있고 인물이 잘났거나 머리가 좋거나 날씬하거나 사람이 좋아서 사랑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 자격을 보지 않고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얼굴 거울에 쳐다보고 단장 할 필요 없습니다. 옷을 깨끗이 입어야 예수님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오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사랑하고 싶어서 못 견디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면 좋아서 손바닥을 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분 죄를 다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렸겠습니까?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나를 엄청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걱정할 것 없어요. 사랑하면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믿을 수 있어요? 못 믿지요. 사랑하면 믿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믿을 수 있습니다.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사랑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믿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죽음의 폭우가 내릴 때도 예수님 속에 있으면 편안하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우리는 이미 생명으로 옮긴 사람인 것입니다.

3. 마른 땅에 냇물
셋째로, 예수님은 마른 땅에 냇물같은 분이다.
마른 땅에 모든 생명이 다 죽고 말라버린 곳에 강물이 흘러 들어가면은 순식간에 모든 것이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 가슴이 마른 땅같이 되고 우리 가정이 마른 땅같이 되고 우리의 생활이 마른땅같이 되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스도를 모셔드리면 생수와 같이 강물같이 흘러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철학적으로 말한 것 아닙니다. 진짜로 목마르거든 예수님께 부르짖어 보십시오.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이니까. 생수가 마음속에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생명수 강가에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마시게 하는 것인데 주님이 하시는 일은 좋은 목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초장은 의식주 생활을 말하는 것이고 물가는 생명수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 목자는 우리 양인 우리와 늘 같이 있어서 하시는 일이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먹을 것 입을 것을 도와주시고 마시고 상쾌하게 행복하게 살도록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해주는 것은 주의 뜻인 것입니다.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그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고 하는 실제 생활에 필요한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먹고 입고 마실 수 있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받아들이면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생수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른 땅의 샘물같은 예수님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으로 마음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속에 희망의 냇물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절로 1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이 세상에 사람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좋은 옷이나 지식이나 이런 것이 생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얼마 안있으면 다 말라 버려요. 헛되고 헛되며 더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여러분에게 생수의 근원이 된 것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여러분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고 좋은 희망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생각해 보면 제가 17살에 예수 믿었는데 그때는 무엇으로 믿었는지 모르겠어요. 유일하게 폐병 나으려고 믿었지 그 외에는 예수가 필요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요사이는 폐병에 걸려서 안나아도 예수님 없으면 못살아요. 예수님이 제일 좋다구요. 예수님이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되시고 답답할 때 뛰어 들어가서 부르짖으면 내 마음에 소망이 되시고 꿈이 되시고 이보다 좋은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시는데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보통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줄 내가 압니다. 그러나 나는 안 미워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날 사랑 왜 남을 미워해야 되겠어요? 인간적으로는 미워해보고 싶은 생각이 나지만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남을 미워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남을 미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무조건하고 사랑해 주시므로 사랑받고 있는 여러분이 된 것을 생각할 때 마음속에 소망이 넘쳐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눈을 밝혀 줘야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랑을 깨닫고 소망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행복과 번영의 시냇물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주님께서 행복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어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킨다. 영혼을 소생시킨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주어서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기쁘고 행복해야지 기쁘고 행복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 인조 꽃하고 실제꽃하고 뭐가 다릅니까? 인조꽃도 실제꽃같이 만들지만 향기가 없어요. 벌, 나비가 날라오지 않습니다. 향기가 없어요. 진짜꽃은 향기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은 아무리 아름다운 꽃같지만은 향기가 없습니다. 향기가 뭡니까? 행복입니다. 행복의 향기가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행복의 향기가 마음속에 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진짜 꽃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모셔드리면 행복의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이 세상에 광야를 지나서 천당 올라 갈 때까지 쓴물을 당하면 십자가를 통해서 마라의 쓴물을 달게 만들 듯이 마음의 물이 달아지게 만들어 주시고 병들면은 주님 고쳐서 건강하게 해주시옵시고 여러분 엘림에 있을 곳을 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엘림은 뭡니까? 엘림에는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오아시스에 장막을 친것처럼 우리의 오아시스는 어디냐. 갈보리 십자가 밑이 우리 오아시스인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여러분이 살곳은 십자가 밑이라는 것을 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몸은 대한민국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십자가 밑에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십자가 밑에 내 짐을 풀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 밑에서는 용서가 있고 평안이 있고 의가 있고 거룩함이 있고 치료가 있고 건강이 있고 축복이 있고 행복이 있고 영생복락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밑에 우리의 엘림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 세상을 떠나서 십자가 밑에 늘 사는 생각을 하고 꿈을 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십자가 밑에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분 속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과 번영의 냇물이 바로 십자가 밑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4.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마지막으로,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같은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저주 받고 메마른 사막의 큰 땅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의 저주를 제어해주는 바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큰 바위그늘이 되어서 저주의 사막바람이 불어와도 끄떡없이 피하고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71편 3절에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 삶의 고통에서 쉼을 주는 바위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는 것은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그 풍파를 면해줄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려가다가 피곤하면 휴게소에 가서 잠시 쉬다가지 않습니까? 인생을 교회 주일날마다 와서 예배 드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휴식을 주시므로 말미암아 마음에 큰 힘과 용기를 가지고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28절로 31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예수님께 나와서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앙망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면은 바로 피곤하고 고달픈 삶의 휴식처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달음박질하고 곤비하고 피곤하더라도 주일날 교회 와서 주님을 예배하고 나면 심신이 새로워지고 행복해지고 기뻐지고 힘이 생기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 수가 없는 우리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날 같으리라. 바로 그분이 여러분의 예수님인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내게로 오라고 청하는 그분인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신 분이 그분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있으면 모든 것 다 가진 것입니다.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림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희망도 있고 꿈도 있습니다. 삶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있습니다. 이 고달픈 삶에 예수님 때문에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게 된 이것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게 될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