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6. 주일설교

섬기는 삶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15)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섬기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고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기는 것은 통상적인 것이요 우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인이 종을 섬기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좀 이상스럽게 생각이 되지 않습니까? 주인이 종을 섬기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라.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실천하여 보여주셨습니다.

<본론>
1. 섬기는 삶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
섬기는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보면 요한복음 13장 1절로 5절에“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주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시간이 점점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큰 페스티벌이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하다가 해당되어 나온 그날을 기념해서 유월절을 지내는데 유월절 지날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섬기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거의 통상적으로 섬기는 것을 주님께서 거역하시고 주님이 특별히 섬기는 새로운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이 바로 주인이 종을 섬기고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이 데리고 있는 동안 가르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발은 삶의 행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먼지 일어나는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발이 더럽습니다. 당장 밖에 나가면 먼지투성이입니다. 진흙탕을 샌들을 신고 나가니 발이 먼지투성이가 되고 냄새가 나고 더럽습니다. 이것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사람치고 발이 더럽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인데 상징적인 것입니다. 발은 행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가 더럽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사는 사람 중에 행위가 깨끗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합니다. 그러므로 발을 씻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죄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씻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했고 이사야 59장 12절에“이는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언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니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이 세상 사는 사람치고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인간의 행위가 더러운 먼지와 티끌을 발로 더럽히는 것과 같아서 주님이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인간 행위의 죄악을 씻어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인간의 두 종류의 죄를 씻으신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제물이 두 가지가 있는데 속죄 제물이라는 것이 있고 속건 제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속죄 제물은 무엇이냐면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속죄 제물인 것입니다. 속건 제물은 무슨 제물이냐면 여러분과 내가 허물 짓는 것 욕하고 싸우고 도둑질하고 폭행하고 방탕한 행위의 죄를 씻는 것이 속건 제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 제물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얻는 것이고 속건 제물은 거룩함을 얻어서 하나님의 앞에서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로 14절에 보면“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또는 한 제사를 드리고 영원히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구약시대는 매일 같이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제사장이 매일같이 성전에서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렸는데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단 한 번에 영원히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창조적으로 연결하는 것으로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 육신을 쓰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그 보혈로 과거의 죄, 미래의 죄, 합쳐서 영원히 우리의 죄를 청산한 제물이 되고 말았으므로 한번 예수님 제물 드렸으니 더 이상 제물 드릴 것이 없습니다. 한번으로 완성되고 오직 믿기만 하면 그 예수님의 보혈이 여러분 영원히 씻어버린 것입니다. 한두 번 씻는 것이 아닙니다. 요사이 그런 것을 발견하면 굉장히 돈벌거에요. 매일같이 목욕탕에 들어가서 세수할 필요 없이 한번만 하면 영원히 깨끗할 것이다. 아무리 먼지가 와도 붙지 못하고 떠나가 버리고 깨끗해져 버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가능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속죄 제물, 속건 제물을 늘 드리고 하나님께 나가는 일이 없습니다. 영원히 예수님이 깨끗케 해주신 것입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의 성소가 둘러 갈라졌었어요.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는데 성소에서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릴 때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번 피를 가지고 들어가고 못 들어갑니다. 그곳에 두꺼운 천이 드리워 있어서 지성소는 못 들어갑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년마다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했는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이루었다 하고 숨을 거두실 때 손을 안대었는데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쫙 찢어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돼버렸습니다. 예수님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면 하나님 앞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지금 하나님 앞에 와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막힌 담이 없어졌어요. 헐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이 위대한 것은 예수님이 영원한 제물이 되어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우리의 허물을 영원히 청산해 버려서 영원히 의롭고 영원히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히 의롭게 되고 영원히 거룩하게 되었다. 이것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선물로 받고 그 다음에는 진짜로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의 발을 씻길 때 차별 없이 씻겨주신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 열두 명 중에 착한 제자도 있어요. 그러나 베드로같이 변화무쌍한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큰 소리하고 예수님을 시인했다가 빌라도의 뜰에서 예수님이 시험당할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나는 그 사람을 절대 몰라요. 나와는 상관없어요. 그렇게 변화무쌍한 제자도 있는가하면 예수님이 먹이고 가르치고 사랑하고 돌보아준 가룟 유다 같은 제자는 예수님을 종의 돈을 받고 팔아먹은 사람이고 도마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부활했다 해도 나는 안 믿는다. 그의 손에 손가락 넣어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봐야 믿겠다고 불신앙한 제자도 있고 희한한 제자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다 알고 계세요. 그런데 좋은 제자만 발을 씻겨준 것이 아니라 착한 제자, 좋은 제자, 의심하는 제자, 배반하는 제자, 팔아먹는 제자까지 다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3절로 45절에“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섬기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죄인을 찾아가서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병든 자를 찾아가서 고쳐 주시고 배고픈 자를 먹여 주시고 외롭고 슬픈 자에게 위로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가는 곳마다 인류의 고통을 주님께서 대신 짊어지고 건져주고 소망을 주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인 것입니다. 그분이 피조물인 인간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 제물이 되어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러한 모범을 따라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고 의인이 죄인을 섬기고 먼저 믿은 자가 나중 온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섬기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인 것입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운 사람 섬길 수가 없어요.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나 너희들은 차별두지 말고 섬기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2절로 15절에“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사랑하는 사람의 발 씻겨 주라고 하면 그것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얼마든지 씻겨줄 수 있지요. 그러나 미운 놈 발 씻겨 주는 것 발이 냄새나고 구린내 나는 미운 놈의 발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씻어서 타올을 닦아준다는 것은 참 힘듭니다. 그것은 좀처럼 하기 힘들어요. 제가 하루 저녁에 기도했습니다. 주님, 좋은 사람도 있고 미운 사람도 있는데 좋은 사람의 발은 얼마든지 씻겨 주겠는데 미운 놈이 와서 발 씻겨 달라고 하면 내가 못할 것 같습니다. 물론 못하지. 그럼 안 해도 괜찮지요? 천만에. 어떻게 합니까? 나를 품에 품으면 할 수가 있다. 나를 품에 품으면 할 수 있지만 나를 떠나서는 못한다. 내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까지도 발을 씻겼는데 나를 마음속에 모셔드리고 의지하면 너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 다음부터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뿐 아니라 섬기는 모범으로 마음에 모시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생각하니까 남을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이 되더라구요. 미운 사람들도 예수님 섬긴다고 생각하니까 괜찮더라구요. 미운 사람이 안보이고 예수님이 보이더라구요. 내가 섬기는 이 사람이 미운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다. 예수님 섬기는 것같이 섬기니까 섬길 수가 있잖아요. 서로 사랑하고 주님께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발에 침을 뱉지 말고 씻어주라. 이웃의 발에 미운 사람은 아이 더러워 퉤 아이 보기 싫다. 그러지 말고 미울수록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발을 씻어주라. 여러분, 부부간에 서로 싸우는 사람 많잖아요. 어떤 신앙상담 온 50대 자매님이 남편을 좀 착하게 사랑해주라고 하니까 목사님, 모르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은 목사 생활했기 때문에 주여, 주여 하고 서로 사랑했겠지만 안 믿는 사람들, 우리 세상 사람들은 50이 넘어서 서로 다정하게 사랑하는 부부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세요. 나만 나쁜 것 아닙니다. 그래서 자매님, 남편을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미울 때도 많지요. 돈도 안 벌어오고 큰소리만 하고 자꾸 봉사만 하라고 하니까 밉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른 것은 남편을 남편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하기 위해서 품에 안고 있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 품에 안겨서 예수님을 섬기려고 하고 보니 남편을 그냥 따라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다 예수님께 의지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용서도 할 수 없고 봉사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섬기지 않고는 예수님 의지하지 않고는 내 희생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나 앉으나 먹으나 마시나 다 예수님께 의지해서 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가 있지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먼저 나를 섬겨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보통 섬기는 것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죽어서 여러분을 섬겨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나를 섬겨주신 예수님을 우리가 섬긴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섬기는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고 원수를 섬기니까 안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은 그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섬기듯이 이웃을 섬기고 원수를 섬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못하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계시지요?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서 저주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절로 7절에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사람이 되셔서 오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섬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윌리암 부스의 구세군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 세계 도처의 남녀들이 구세군에 입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윌리암 부스는 구세군을 창설하신 영국 사람인 것입니다. 온 세계가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영국으로 모여 왔습니다. 한때 주교가 되려고 꿈꾸던 사무엘 브렝글이라는 미국의 훌륭한 목사님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부스 사령관은 그의 입대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구세군에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깨에 힘을 주고 나는 미국에서 그래도 종교적으로 아주 훌륭하고 존경받는 사람인데 구세군에 들어왔으니 나에게도 높은 계급을 주고 높은 자리를 주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세군 윌리암 부스 대장이 브렝글을 불러가지고서 “당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지도자로서 군림해왔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당신은 우리 구세군에 맞지 않는데 내가 시키는 일을 하면 구세군 사관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뭡니까? 당신 처음 할 일이 뭐냐면 우리 구세군 사병들 구두를 닦는 일을 하십시오. 내가 구두를 닦아요? 내가 미국에서는 존경받는 목회자인데 여기 평신도 사관들의 흙 묻은 구두를 닦으란 말입니까? 구두를 닦을 수 있을 때 당신은 구세군 사관이 될 수 있고 구두를 닦지 못하면 구세군 사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자 그는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기껏 군화나 닦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 꿈을 쫓아왔단 말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고민을 하고 기도를 하니까 환상 중에 그 거칠고 무식하고 냄새가 나고 구린내가 나는 제자들의 발을 환상 가운데 봤어요. 잠시 후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꿇어앉더니만 그 냄새나는 발을 가슴에 안고 물로써 씻어서 닦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부스 대장이 자기에게 왜 사관들의 구두를 닦게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잠시 내가 환상 가운데 보니까 그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닦더군요. 그렇다면 저도 이 구두를 못 닦을 리가 있겠습니까? 구두를 닦겠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에 의지하니까 구두를 닦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브렝글은 기꺼이 사랑으로 동료들의 더러운 군화를 닦았습니다. 그때마다 청지기의 사명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구세군 최초의 미국인 사령관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은 높으신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씻겨주신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발을 한번 내려다보세요. 예수님이 여러분 발을 씻어 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발이 아닌 영적인 발은 더 더럽지 않습니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썩은 발인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씻어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이 씻어준 발을 가지고 교회 와서 앉아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얼마나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인 <레 미제라블>을 보고 굉장히 제가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주인공인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잡혀서 죄에 죄를 보태고 탈옥을 하다가 잡혀서 무려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가 만기 출소하여 사회에 나왔으나 모두 전과자라고 외면해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었습니다. 하루는 너무나 배고 고파서 교회 목사님의 집에 찾아갔는데 신부가 그를 청해다가 은그릇과 은숫가락을 가지고서 맛있는 음식을 담아서 대접을 해주고 그날 목사님 집에서 주무시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밤에 일어나서 은그릇을 훔쳐 가지고서 은대접을 훔쳐 가지고서 자기 마대기에 넣어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잡혔어요. 잡혀서 확증하기 위해서 목사님 집에 끌려왔는데 목사님이 반가워하면서 아니, 내가 우리 집에 와서 당신 저녁 먹고 난 다음에 가서 팔아서 돈에 쓰라고 촛대도 은그릇도 다 주었는데 그것을 왜 그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왔느냐고... 경찰관보고 이것 내가 준것이라고... 이 사람이 너무 순진해서 그 말을 못해서 그런가보다고... 경찰관이 그래요? 그러면 그런말을 하지 왜 안했느냐고.. . 그래서 감옥에 안 들어가고 놓여남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감동을 느꼈던지 자기가 훔쳐간 은그릇과 은촛대를 내게 선물로 줬다고 변명을 해서 안 잡혀가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 되어 변화 받아 열심히 일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조그마한 도시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파헤쳐서 멸망시키려는 형사가 있었습니다. 그 형사가 그 시까지 따라와서 끊임없이 그의 뒤를 파헤치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불란서혁명이 일어나서 군중들이 정부를 점령하게 되었을 때 이 형사는 독재자의 앞잡이라고 잡혀서 총살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장발장이 나가서 막았습니다. 이 사람 총살하지 말라고... 장발장은 군중들의 지지를 받는 시장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안 죽이고 놓아 주었습니다. 그 형사가 장발장에게 와서 나는 당신을 잡으려고 한 평생을 따라다니면서 당신의 죄과를 들췄는데 어째 당신은 나를 이렇게 놓아줍니까 하니까 장발장이 하는 말이 땅보다 바다는 넓지 않습니까? 땅보다 하늘은 더 넓어요. 그러나 그보다 더 넓은 것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그 소설을 읽고 상당히 마음에 감동을 느낀 것은 사제의 용서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시장까지 하게 한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그 용서의 마음이 그 마음속에 역사해서 자기를 죽이려는 형사를 총살현장에 가서 건져내어서 용서하고 살아날수록 만들어준 그러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용서의 마음은 여러분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의롭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청산할 수 없어요. 용서해 주는 것 이것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내가 용서받기는 좋아도 용서해주라면 좀처럼 용서해주지 못합니다. 복수는 복수로써 끝나지만 용서는 남을 살리고 나를 살리는 구체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내가 칼을 쓰면 다른 사람도 내게 칼을 씁니다. 내 칼에 피를 묻히면 다른 사람도 나에게 칼을 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복수와 저주를 중지시키는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용서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끌어안지 않고는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쓴물이 달아지는 것처럼 원한의 쓴물이 십자가를 통해서 달아지는 것입니다. 용서한다고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사람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 아닙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원한이 있고 슬픔이 있고 미움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직 다른 것은 십자가를 가슴에 끌어안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니까 용서 안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빚을 졌는데 다른 사람에게 빚을 요구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그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죄와 허물을 사함 받은 우리는 나를 미워하고 죽이려 하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는 관대한 마음을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나의 힘과 능으로는 할 수 없으나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의지하면 능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용서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가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섬겨 주십시오. 아내를 용서해 주십시오. 부모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웃을 용서해 주십시오. 십자가를 바라보고 용서하는 그 마음이 주는 그 마음이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넓고 가장 넓은 것이 용서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팔을 끌어내서 용서해주고 안아주는 것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우리라도 아버지께로 나오면 아버지가 뛰어나오셔서 우리를 얼싸안고 성경에 보면 탕자가 돌아올 때 제일 좋은 옷을 갖다가 입혀라. 신발을 신겨라. 가락지를 끼워라. 송아지를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죽었다가 살았으며 잃었다가 얻었다고 좋아한 것입니다. 용서입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습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봐주시옵소서. 그때 아버지가 그 냄새나는 아들의 목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환영을 하고 제일 좋은 옷 갖다 입혀라. 신발을 신겨라. 아들 된 모습으로 가락지를 끼워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용서입니다. 그런데 형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집을 안 떠나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던 형은 동생이 돌아왔다는 말 듣고서 밭에서 일하다가 나 집에 안 들어간다. 저 아버지의 재산을 기생들과 다 탕진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이제 먹도 못하고 살지 못하는 놈을 아버지가 받아줘? 저런 놈하고 나는 같이 안 산다. 나는 오늘 집에 안 들어간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나와서 얘, 너는 오랫동안 나와 같이 있었으므로 이 집이 너의 것이고 이 재산이 다 너의 것이 아니냐. 동생은 잃었다가 얻었으며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내가 저렇게 사랑하고 환영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같이 들어오너라. 안 들어가요. 못 들어가요.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천당도 안 들어갑니다. 천당에 아버지가 천당에 들어오너라. 너 들어오너라 해도 율법주의자들은 나는 의롭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았는데 왜 죄인들을 천당에 데리고 옵니까? 죄인들 있는데 나 안 들어갑니다. 죄인은 오히려 용서받아 천당에 들어가는데 의인들은 천당에 안 들어온다고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적인 심판을 하는 것은 참 비참한 것입니다. 남도 천당에 못 들어가게 하고 자기도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과거를 다 청산해 버리는 것입니다. 새출발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안돼지요. 십자가를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하는 마음을 갖자. 그러면 나도 편하고 이웃도 편하고 가정도 사회도 편해지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섬기면 얼마나 좋습니까?

2. 예수님을 섬기는 마리아의 모습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2장 1절로 3절에“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이 살리셨지 않습니까? 그 감격한 마음이 뿌리가 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특히 예수님을 경배하고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에 못박혀 일주일전에 그들 집에 와서 대접을 받는데 마르다는 열심히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나드 한 근의 옥합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옥합은 돌로써 만든 옥합인데 단단하고 거기에 나드 기름을 넣어서 밀랍으로 때웠기 때문에 그릇을 깨뜨려야 향유가 부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나라에서는 그것이 결혼할 때 지참물입니다. 시집 갈때 얼마나 나드 기름을 많이 가져왔냐에 따라서 시집에서 평가를 해주는 것인데 여기 시집 갈때 가져가려고 나드 기름을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기름을 모았습니다. 삼백데나리온이 얼마냐면 그 당시 노동자들이 일하는데 일 데나리온 받았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1년 내내 일해서 받은 돈을 가지고서 산 것이 바로 나드 기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에 심취해서 감격해서 듣고 눈물을 흘리고 뛰어나가더니만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드 기름 받은 옥합을 가지고 나왔는데 탁 문지방에 때리니까 바싹 깨지니까 기름이 확 흐르는 것 예수님 머리에다가 바르고 예수님 발에다 붓고 그리고도 모자라서 타올로 닦고 발을 닦은 것이 아니라 자기 머리채를 가지고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러니 나드 기름 향기가 온 집에 가득할 뿐 아니라 머리가 삼발이 되어가지고서 기름이 얼굴에 줄줄 흐르면서 삼발된 머리를 보고 예수님이 말씀 전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을 때 사람들이 다 돌았구나 완전히 돌았구나. 보통 돈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굉장히 노했습니다. 그는 비난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절로 8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유대 나라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에다가 향유를 붙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일주일 후에 죽을 테니까 나의 시체에 미리 향유를 부은 것으로 그 여자를 괴롭히지 말라. 내가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이 증거되리라. 제가 한 번 더 설교 할 시간이 있으면 하겠는데 예수님께서 이 마리아가 해 준 이 행동에 얼마나 마음에 위로를 받았던지 그 위로 때문에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란 위로가 필요해요.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저도 아주 낙심되고 어려울 때 성도들이 제게 편지 보내주고 전화해주고 격려해 줄 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가슴에 상처가 나아요. 우리는 서로 위로해 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던 것은 이 마리아의 옥합을 깨뜨려서 기름을 머리에 발에 붓고 머리채로써 그를 닦아준 그 섬기는 마음이 위로가 되어서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었습니다. 어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느냐. 여기 주님이 말했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나의 죽는 날을 위해서 미리 예비해 주었다고 그는 말했었습니다. 그러면 죽는 날은 뭡니까? 십자가에서 죽은 것 아닙니까? 모두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못 박으소서. 외치고 그 제자들이 다 도망을 치고 베드로는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이 살벌한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 위로가 되고 살아갈 용기와 힘, 십자가를 걸머질 힘이 생긴 것은 마리아의 생각인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예수님을 육적으로 사랑했다고 했는데 육적으로 사랑했으면 나쁠 것 뭐가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그가 예수님의 아들로써 사랑하다가 예수님은 남자고 마리아는 여자인데 육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지요.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지요. 어떻게 사랑했든지 예수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어서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준 것입니다. 섬길 때 이렇게 멋있게 섬기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주님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마리아가 한 일이 기념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그 아들 외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꼭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굉장히 향기로운 제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마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것처럼 마음의 옥합을 깨뜨려야 돼요. 내 마음에 귀한 것을 가지고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내가 좋은 것은 다 감춰 놓고 버릴 것 가지고 섬기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 가지고 섬겨야지요. 가룟 유다가 욕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한 것은 잘했다고 말했습니다. 낭비다. 이런 낭비가 어디 있느냐. 삼백 데나리온 가지고 가난한 사람 도와줄 것인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내게 잘 해 주었다. 낭비가 두 가지 낭비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몹쓸 낭비가 있고 거룩한 낭비가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하는 낭비는 낭비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써도 좋습니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쓴 낭비는 낭비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교회를 짓기 위해서 재산 다 드렸는데 낭비냐. 낭비 아닙니다. 내 청춘을 다 바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보냈는데 낭비냐. 그것 왜 청춘을 낭비하느냐. 그것 낭비 아닙니다. 거룩한 섬김인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갖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이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오늘날에도 가득해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도 그 향유 냄새가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었는데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거룩한 낭비는 영원히 칭찬 받을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막 14:6~9)
예수님께서 얼마나 감동을 느꼈는지 그 마리아의 거룩한 낭비라고 하는 헌신에 큰 힘을 얻어서 우리의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위로입니다. 위로를 받으면 힘이 생겨요. 우리 가만 보면 남여선교회 회원 여러분이 열심히 봉사합니다. 새벽에 제가 아침 5시에 나오면 그때부터 벌써 길거리에 서서 안내를 하고 있어요. 이 추운데 돈을 받습니까? 선물을 받습니까? 그냥 열심히 주님을 사랑해서 섬깁니다. 이러한 분들에게 여러분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압니까? 아이구 고맙습니다. 이렇게 추운데 돌봐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짠해져요. 내가 더 섬겨야 되겠다.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고... 제가 이번에 인도에 가서 무더운데 복음을 증거하니까 그 인도 사람들이 날 찾아와서 우리 인도를 잊지 않고 찾아와서 복음을 증거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말하는데 마음이 뜨거워지는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내가 젊음이 더 있으면 더 인도를 위해서 섬겨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로의 힘입니다. 부인보고서 남편이 여보, 집에서 얼마나 수고를 하오. 내가 호강 못시켜줘서 죄송하기 짝이 없는데 지금이라도 벌면 호강시켜 줄게. 더 못벌것 알지만... 그래도 말이라도 그 말이 얼마나 찡합니까? 위로가 되고 섬기겠다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한가지에요. 생존경쟁에 어렵고 가족들을 돌봐야 되겠다고 애를 쓰고 힘을 쓰는데 자꾸 다른 사람 비교해서 내 친구의 남편은 이렇게 잘 버는데 당신은 뭐냐. 이 졸자 같은 당신에게 시집와 가지고서 신세 망쳤다. 그렇게 말하면 집을 나가고 싶고 자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때문에 고생을 하고 애쓰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됐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저 위로의 말이나 해드리지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뭘 그래. 괜찮아. 다들 하는 고생인데 뭘 나라고 그렇게 하나 그러면서도 야~ 마누라 하나 잘 뒀다. 정말 고맙다. 마음에 용기와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위로, 이것 잊지 마십시오. 적은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뭐 내가 말 한마디 하는 것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에 효과가 큰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예수님조차 위로 받았는데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예수님, 창조주 그가 마리아의 헌신적인 섬김에 위로를 받아서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위로가 얼마나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배워야 할 일
우리들이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할 일은 나의 삶의 죄와 허물을 피로 씻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더러운 발을 씻긴 것은 바로 내 인생을 씻겨준 상징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7절로 9절에“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2)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리 섬겨 주었다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섬겨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차별하지 말고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대한 것은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먼저 섬겨 주었으니 나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고 그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나가면 여러분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쁜 사람도 있으니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도 있으니 감사합니다. 칭찬해 주니 감사합니다. 욕을 얻어먹으니 감사합니다. 감사를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마음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발란스를 잡아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27절로 32절에 보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참 힘들지 않습니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 힘으로는 안돼요. 절대로 여러분 힘으로 원수를 사랑하느냐.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느냐. 선대하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사람 콱 죽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같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끌어안아야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라의 쓴물이 어떻게 달아졌습니까? 나뭇가지를 꺾어 던져서 물이 달아진 것입니다. 우리 가슴에 십자가를 끌어안아야 우리 미워하는 마음이 달아지고 불쌍한 마음이 생겨나고 위로할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가 그 마음이 생겨날 때 항상 보태야 할 것은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 환경이 굉장히 어려울 때 마음이 바로 안 잡힐 때 뭐가 마음을 바로 잡는지 압니까? 그저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마음에 분노가 쳐올라오고 기도가 안 나올때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가 여러분 우리 인간에게 혁명을 가져오는 능력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예수 십자가를 끌어안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의 삶을 여러분 속에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일반 사람하고 특별히 수양과 도덕으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전심을 다하여서 십자가를 안고 섬기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서 우리도 이웃을 섬기는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우리를 항상 씻어 주십니다. 회개로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주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고 발을 씻어주십시오. 아낌없이 주님께 내어놓고 헌신하면 그 향기가 천국에 사무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삶을 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이웃이 기뻐하고 화목하게 되는데 그 섬기는 삶을 어떻게 사느냐. 십자가를 끌어안지 않고는 섬기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섬기는 삶을 안 살면 어떻습니까? 예수를 안 믿는 사람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다른 것은 섬기는 삶을 살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섬기는 삶을 삽니까? 십자가를 끌어안고 나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면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내 속에 들어와서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당장 여러분 집에 돌아가면서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남편 바라보고 아내 바라보고 자식 바라보고 부모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십시오. 이상한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생각, 사랑하는 생각, 도와줄 생각, 칭찬할 생각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 삶에 가장 위대한 삶이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언제나 원망스럽고 부족한 점이 늘 눈에 보이지만 섬기는 삶을 살면 만족합니다. 내가 주를 섬기면 하나님이 나를 더욱 섬겨 주시기 때문에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요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목숨을 버린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와 계시니 안 믿는 사람들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