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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3. 주일설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0~13) <서론>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 아들로서 그 아내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꿈틀거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아니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큰 자가 적은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아직 무슨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의 인감됨을 미리 보시고 그렇게 예언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느냐. 벌써 멀리 바라보시는 주님께서 그들의 미래를 꿰뚫어 보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에서와 야곱의 다른 가치관 첫째로, 에서와 야곱의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축복을 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그 후손들은 장자의 혈통이 굉장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장자가 되면 상속의 반은 차지했는데 저는 왜 그랬는지 장자로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차지했어요. 요사이는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장자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는 참으로 놀라운 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 에서가 먼저 태어나고 야곱이 뒤에 태어났는데 장자가 되었으므로 그가 놀라운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전통과 하나님이 세운 약속을 별로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이 중요했고 장차 받을 꿈을 무시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현재 잘 먹고 잘 입고 잘 마시면 되었지 장차 복을 받아서 왕성하게 될 것 생각할 것 무엇이냐.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에서는 뛰어난 날쌘 사냥꾼이었으며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근시안적으로 현 세상의 소유물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아브라함 이래 이어온 언약 가문의 순수한 혈통과 야훼 신앙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므로 말미암아 부모님의 마음에 걱정을 끼치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영어를 배운 사람은 영어에서 「에서 신드롬」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것입니다. 에서가 사냥을 하고 오는데 배가 많이 고팠어요.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 슬하에서 어머니 부엌에서 일하는데 늘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에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와서 “야, 그 팥죽 좀 줘.” 그러니 야곱은 늘 장자가 못된 것이 한이 서려 있었습니다. “형,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면 팥죽 한 그릇 주마.” 참 너무나 야속한 말이지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하는 말이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까짓것 명분 가지고 뭐하느냐. “옛다. 장자 명분 너에게 주었다. 맹세한다. 팥죽 한 그릇 줘.” 팥죽 한 그릇 받아먹고 장자의 명분을 팔아 먹어버렸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그는 장자의 명분을 늘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에 장자에게 특별히 축복할 때도 에서가 축복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에서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사냥하러 나간 틈에 야곱이 들어가서 장자의 명분의 축복을 다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꿈」과 「희망」을 팔아먹은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무시하는 근시안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증세를 「에서 신드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꿈과 비전을 포기한 인생은 황무지와 같습니다. 지금 현실에만 악착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저버린 사람은 황무지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찬란한 꿈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우리의 꿈은 무엇이냐. 바로 갈보리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네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 전토 친척 아비집인 세상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지시한 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갈보리 십자가 밑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꿈을 얻으면 그 꿈이 현재는 내가 외롭고 괴롭지만 장차 위대한 축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죄에 대한 용서도 거룩함도 치료도 아브라함의 축복도 영생복락도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밑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듣고 꿈꾸고 믿고 나가면 그 은총을 받게 되고 그 은총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축복을 받고 번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꿈이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항상 앉으나 서나 예수님 안에서 내가 새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부푼 꿈을 갖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인지 모르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눈앞에 좋은 일이 없을지라도 무엇이 잘되겠지. 좋은 일이 생기겠지. 그러한 마음의 감정을 늘 선한 편으로 품고 있는 사람은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늘 뭘 좋은 일이 생기겠노. 내 팔자에 좋은 일이 생길 일이 있겠느냐. 늘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겠지. 그런 마음을 먹고 있으면 그 마음에 있는 대로 나쁜 일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중히 여기고 장자가 되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렇기 때문에 형에게 팥죽 한 그릇이라도 팔아서 강제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아주 야박한 일을 했지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마지막 상속의 축복도 자기가 형에게 갈 것을 자기가 빼앗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꿈이 없으면 축복도 잃어버린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늘 마음속에 안 보이는 꿈을 품고 있지 아니하면 장차 이루어질 것이 없어요.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마음속에 있는 것이 장차 내 운명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은 과거에 내 마음에 있던 것이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이 내 주위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까? 어떠한 꿈을 품고 있습니까? 어떠한 것을 믿고 있습니까? 어떠한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합쳐서 여러분 내일 여러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내일이 우연히 사주팔자로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내 마음에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로써 준비한 사람을 통해서 내일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우연히 사주팔자를 통해서 내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야곱은 치밀하게 장자의 명분을 얻을 계획을 세우고 꿈을 꾸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장자의 명분을 얻고 이스라엘의 축복받은 혈통을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을 삶의 근원으로 사는 신본주의였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축복을 받아야 이 세상에서 잘 살게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뭘 하나님 축복 안 받아도 내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고 내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만히 삶을 돌아보면 우리의 일어서고 앉는 곳에 무엇인지 모르게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하나님이 축복을 내려 주시면 하는 일마다 평탄하게 잘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일하려고 하다가 일이 자꾸 꼬여 들어가고 안 되면 나중에 고통스럽고 출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면 머리가 되고 꼬리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게 되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여 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어떻게 하든지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면 좋은 영향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같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사람이 같이 있으면 해가 생기는 것과 같이 마귀가 같이 있으면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항상 그러므로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며 좋은 일이 생겨날 것을 꿈꾸십시오. 좋은 일이 생겨날 것을 생각하십시오. 좋은 일이 생겨날 것을 마음속으로 느끼십시오. 그리고 감동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감사하면 하나님께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감사를 특별히 더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가만히 돌이켜 보니까 너무나 감사에 인색했습니다. 감사할 일도 별로 감사하지 아니하고 당연지사로 생각하고 지나온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사이는 더 많이 회개하고 감사하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으니까 형이 동생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가 알고 야곱을 친정집으로 빼돌렸었습니다. “야, 너 친정집에 가 있어라. 형의 분노가 끝나면 내가 너를 부를 테니까 그때는 내게로 오라.” 야곱은 엄마의 사랑을 받았었습니다. 왜냐하면 부엌에서 어머니 하는 일을 늘 도와주는 자상스러운 아들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야곱을 사랑하고 아버지는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해서 사냥한 고기를 아버지께 대접하므로 아버지가 에서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자기 오라버니에게 야곱을 부탁했는데 야곱이 하란으로 가다가 밤에 해가 지니까 들판에서 돌로 베개하고 잠을 자는데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13절로 16절에 “또 본즉 야훼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야훼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야훼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이 세워 놓은 제도를 놀랍게 여겨서 사랑하고 신본주의로 섰기 때문에 꿈에 나타나서 야곱에게 격려해 주었던 것입니다. 말라기 1장 2절로 3절에 보면 “야훼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야훼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6절로 17절에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 세상에 팥죽 한 그릇을 가지고서 그 귀하고 귀한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다는 것은 망령된 일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주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요 하나님을 전혀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세상의 순간적인 이득을 위해서 저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행동을 잘못 저지른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 스스로를 생각하고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죄를 쫓지 않는다. 악인의 꾀라는 것은 인본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생각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고 하나님 선택하는 대로 살지 않고 자기 선택한대로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은 악한 자의 꾀인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뜻을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에서는 악인의 꾀를 쫓아서 인본주의로 자기 생각으로 살고 야곱은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산 것입니다. 신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육신적인 신자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받들어서 복을 받으려고 결정한 것이 바로 야곱의 신앙태도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처음부터 신령한 사람은 되지 못하였으나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서 변화되기를 바래야 되는 것입니다. 믿었으나 자기 힘으로 살려는 것이 바로 야곱인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달라서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하나님 축복을 받아 살려고 작정을 하고 하나님을 믿었으나 그러나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인간적으로 믿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 아버지여 형에게 준 장자의 명분을 내게 주시옵소서 하면 좋겠는데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을 꾀해 가지고서 장자의 명분을 도적질하는 그런 일을 하고 형이 사냥하러 갈 동안에 형에게 주는 축복을 자기가 받기 위해서 아버지 이삭이 눈이 어두우니 형의 옷을 입고 형 대신에 양털을 온 몸에 발라서 형이 털이 부슬부슬 하니까 양털을 몸에 발라가지고서 꾀를 내어서 아버지께 가니까 아버지가 옷을 냄새 맡아 보고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냄새는 형 에서의 냄새구나. 어디 손 한번 내봐라.” 손을 만지더니 “이상하다. 목소리는 야곱인데 털이 부들부들 난 것을 보니까 이것은 천상 에서구나.” 그래서 장자에게 줄 축복을 다 아버지가 주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는 못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으려고 애를 쓰는 그러한 신앙은 아직 자라지 못한 육신에 속한 신앙인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거든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잘 섬겨야 잘 산다는 것을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을 하나님이 이쁘게 보신 것입니다. 변화는 나중에 가져올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2. 믿었으나 자기 힘으로 살려는 야곱 그러나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둔다고 야곱은 자기가 꾀를 내어서 형의 축복을 받고 외아저씨 집에 도망을 갔는데 외아저시 집에 가니까 외아저씨가 두 딸을 키웠는데 레아와 라헬 두 여형제가 있는데 레아는 언니고 시력이 나빠서 먼데를 잘 못 보았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동생인데 굉장히 이쁘고 복스러워요. 야곱이 외사촌 누이동생을 사랑해 가지고서 외삼촌에게 가서 “외삼촌, 라헬을 나에게 주면 내가 7년 동안 공짜로 일을 해드리겠습니다.” 왜 삼촌의 생각에 이게 왠 떡이냐. 일손 모자랐는데 이런 장정이 와서 7년 동안 일을 해주겠다니 “오냐. 네가 라헬을 7년 후에 너에게 줄테니까 7년 동안 일을 해라.”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성경에 보니까 7년이 하루 같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7년을 하루같이 지내서 결혼할 날짜가 오니까 “삼촌, 7년이 되었으니까 라헬을 나에게 주십시오. 라헬의 방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그래. 들어가거라. 좋다. 날이 어둡거든 들어가라.” 그때는 전등불도 없고 호롱불도 없으니까 캄캄한 밤에 들어가서 밤을 새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었습니다. 화닥딱 놀라서 문을 박차고 나와서 “외삼촌, 사람을 속여도 유분수가 있지. 7년 동안 부려먹고 난 다음에 나를 속여서 라헬을 준다고 했는데 라헬을 안주고 왜 레아를 주었습니까?” “이곳의 습관은 언니를 먼저 시집보내는 것이지 동생을 먼저 보내는 것이 아니므로 또 7년 동안 일해라. 그러면 라헬도 너에게 줄 테니까.” 팔자에 없는 장가를 두 번 가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라헬을 위해서 또 7년을 일해서 14년 동안 일을 했었습니다. 자기가 형을 속이니까 또 다른데 가서 삼촌에게 속임을 받지 않습니까?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자기만 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꾀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 두 아내를 거느리고 또 두 아내가 거느리고 온 여종을 아내로 또 맞이해서 야곱은 무려 아내가 네 사람이나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열 두 자식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니 6년 동안 뼈빠지게 일을 해도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어요. 자식들에게 먹여 주고 입혀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서 나중에 고향산천에 돌아가야 되겠는데 빈손 들고 돌아가겠다 말입니다. 그래서 외삼촌에게 가서 외삼촌에게 꾀를 내어서 또 상담을 했습니다. “외삼촌, 나에게 임금을 10번이라도 갈아 제켰는데 그러지 말고 나하고 임금협상을 해서 임금을 정해주면 내가 외삼촌 위해서 더 일해 드릴테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하니까 외삼촌이 야곱이 일을 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재산이 늘었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하자. 어떻게 할까?” “내가 양무리를 치는데 얼룩덜룩이는 다 제켜 버리고 순수한 색깔만 치되 순수한 색깔을 가진 양무리나 짐승떼가 얼룩덜룩이 새끼를 낳으면 그것을 나의 월급으로 쳐 주십시오.” 야곱은 옛날에 고향에 있을 때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아브라함에게 늘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 이삭을 낳을 때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보고 별들을 가슴에 품고 믿음이 그 별들대로 아들을 낳았다. 바라봄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니 영원하리라 했으니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을 어릴 때 늘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기 위해서 외삼촌에게 또 꾀를 부렸었습니다. “외삼촌, 이제 달리 내 월급을 정할 것이 아니라 내 시키는 대로 얼룩덜룩이는 다 제켜 버리고 순수한 색깔의 짐승떼만 내가 칠테니까 얼룩덜룩이를 낳으면 내 월급으로 쳐 주십시오.” 외삼촌이 생각하니까 얼룩덜룩이가 아닌 순수한 색깔이 얼룩덜룩이 새끼를 많이 낳을 턱이 없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조카야, 너 참 머리 좋다. 네 뜻대로 하겠다. 얼룩덜룩이 낳는 것 다 네가 가져라.” 그래서 얼룩덜룩이를 전부 사흘길로 옮겨 버렸었습니다. 그래서 순수한 색깔만 야곱이 치게 했는데 야곱이 그 양무리와 짐승떼를 가지고 좋아해서 외삼촌이 떠나고 난 다음 산위에 올라가서 단풍나무, 신풍나무, 버드나무를 베어 와서 얼룩덜룩, 얼룩덜룩 껍질을 벗겨서 병풍을 만들어서 물 구유 앞에 세워 놓고 짐승떼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실 때 그 얼룩덜룩이를 보게 하고 자기는 팔장끼고 눈을 감고 새끼 가지면 다 얼룩덜룩이다. 새끼 가지면 다 얼룩덜룩이다. 얼룩덜룩이를 가진다고 생각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그려보고 주여 믿습니다. 입술로 늘 말했습니다. 얼룩덜룩이를 낳는다. 얼룩덜룩이를 낳는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보면 새끼를 낳으면 얼룩덜룩, 새끼를 낳으면 얼룩덜룩이에요. 바라봄의 법칙은 오늘날도 유효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데 바라봄으로 마음속에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여러분의 생활 속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속에 축복받고 성공하고 승리하고 건강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을 바라보면 그것이 여러분 생애 속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마음이 늘 낙심하고 탄식하고 안되고 실패하고 패배한 것을 바라보면 그것이 또 여러분 생애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잘 되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축복받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건강한 것을 바라보십시오. 좋은 것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마음속에 가슴 쩌릿하게 느끼면서 사십시오. 바라보고 느끼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많이 기도하면서도 왜 아무 결과가 나타나지 않느냐. 탄식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축복해 주기고 결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게 하시고 야곱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얼룩덜룩이 짐승떼를 얼마나 낳았던지 나중에 한 떼, 두 떼, 세 떼, 바다의 모래 같은 짐승의 수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외삼촌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아이구 내 팔자야 이것 웬일이냐.”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나중에 야곱은 자기 얼룩덜룩이 새끼를 다 거두어가지고서 형 에서에게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거기에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큰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형 에서와 야곱의 만남 형이 마음에 아주 분도 막심해서 동생이 들어오면 가만 안 있고 죽여 버리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형과 생사의 만남을 겪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짐승을 거느리고 자식 데리고서 형 있는 데로 오면서 사람을 미리 보내어서 동생이 20년 동안 외삼촌 댁에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니 형이 나를 받아 주십시오 하니까 형이 당장에 눈을 치켜 뜨드니만 자기가 사병으로 기른 4백명의 군사를 동원시켜서 말을 타고 동생에게로 마중을 나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령이 뛰어와서 “큰일났습니다. 형이 4백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오니까 이제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야곱이 속이 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여태까지 살았지만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처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다 얍복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얍복 강을 건너지 않고 이쪽 편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 쪼그리고 앉아 있느냐. 자식들을 다 처자를 얍복 강 나루터를 건너서 먼저 지나가게 하고 강을 건너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자기는 쪼그리고 있다가 형이 정말 죽일 각오를 하고 있으면 처자들을 칼로써 쳐 죽이면 달아나겠다는 것입니다. 처자는 또 장가 들면 얻을 수 있으니까. 내가 살아야지. 그게 야곱의 꾀인 것입니다. 그가 여태까지 하나님을 믿어도 이용은 했지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이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 나타낸 것입니다. 죽으면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자기만 살고 처자들은 형의 칼날 앞에 내놓는 것이 어떤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애들이 “아빠, 아빠는 왜 같이 강을 건너서 안가?” 그러니까 “나는 여기 할 일이 많다. 너희들 먼저 건너가라” 할 일은 무슨 할 일 도망갈 할 일만 있지. 그래 밤이 왔는데 처자들은 야곱을 떠나서 먼저 강 건너가서 천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딱 쪼그리고 앉아서 형이 와서 어떻게 하는가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 아 갑자기 키가 큼직한 장정이 한사람 나타나더니 야곱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너무나 놀래서 그 사람하고 씨름이 붙었는데 밤새도록 씨름을 하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말하냐면 야곱보고 “너 건너가라. 쳐자와 같이 조인을 하라. 살면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라.” “천만의 말씀, 내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 명분을 빼앗은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으냐. 자식들은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 아내가 죽으면 또 장자 들면 되지 않느냐. 내가 살아야지 나는 못 건너간다.” “무슨 놈의 신랑과 아버지가 이 모양이냐. 건너가라! 건너가라!” “못 간다.” “건너가라!” “못 간다.” 밤새도록 씨름을 했어요. 얼마나 고집이 센지 밤새도록 뒹굴어도 항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이 되어서 해가 뜨려고 하니까 이 사람이 “내가 떠나야 되겠다. 이제 나를 놓아라. 씨름 그만하자.”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 야곱이 보니까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천사거든요. “나를 축복해 주면 내가 놓아 주겠고 안 그러면 내가 붙잡고 안 놔 주겠다.” 가만보니까 축복 안 해주고는 밤새도록 잡혔는데 낮에도 또 잡히겠다 말입니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입니다.” 야곱이라는 말은 속임꾼이라는 것, 사기꾼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입니다.”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사람이라고 해라.” 지금까지 씨름한 것이 누구와 씨름을 했느냐면 이 세상에 육신으로 태어나기 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자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씨름해서 지면 이기고 이기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복해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항복하면 진 것 같지만 항복하는 사람이 이긴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축복해 주셨기 때문에 네가 여태까지 나를 잡고서 씨름을 해서 안 지겠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그의 주의 사자가 손을 들어서 환도뼈를 쳐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우지끈하고 환도뼈가 무너지니까 그가 쓰러졌어요. 그 다음 일어나보니까 후닥딱 자빠지고 일어나니까 후닥딱 자빠집니다. 이제 도망을 쳤다 말입니다 가만히 보니까. 다리가 튼튼해야 도망을 치겠는데 이제 환도뼈가 부러졌으니 형이 자기 죽이려고 하는데 도망칠 수가 없으니까 천사를 붙잡고서 안 놓는 것입니다. 이제 다리뼈도 부러지고 절름발이가 되었으니까 당신 축복 안 해주면 절대 당신 놓지 않겠다. 환도뼈가 어그러지고 난 다음에 그는 야곱, 사기꾼이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이스라엘로 변화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하나님과 씨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환도뼈가 어그러지게 해서 우리의 고집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져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깨어지지 않고 믿는 것은 하나님을 늘 이용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깨어져서 환도뼈가 어그러지고 절름발이가 되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면 진실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는 그런 마음의 변화가 다가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 속에 크고 적은 경험 속에 환도뼈가 어그러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크게 사용할 사람은 환도뼈를 크게 어그러지게 만들고 적게 사용할 사람은 적게 어그러지게 만들지만 무엇이든지 여러분 여러분의 의지를 꺾어놓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져야 돼요. 꺾어져야 돼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고집대로 살겠다고 선악과를 따먹고 반역한 반역의 성격을 자녀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환도뼈가 어그러지면 자기가 깨어지면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를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이는 야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지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있어야 될 줄 아시느니라.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의식주 문제의 일도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져서 해 주신다. 사업도 하나님이 책임진다.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이 돌보시는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그냥은 안 맡겨져요. 내가 살아서 발딱발딱 뛰는데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안 맡겨져요. 환도뼈가 어그러져야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크게 의지하게 하려면 크게 환도뼈가 어그러지고 적게 의지하려면 적게 환도뼈가 어그러져서 맡기면 맡기는 것만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안 맡기면 책임 안 져요. 여러분이 하겠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밀쳐내고 하나님이 스스로 일 책임 안 져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맡기고 두 손 들고 엎드리면 하나님께서 너 내 뒤에 있으라 내가 대신 일해주마.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밭갈이 할 때 언제나 어미소 밑에 멍에 밑에 새끼소를 같이 넣어서 밭갈이를 하는 것입니다. 멍에는 어미 소 밑에 걸렸기 때문에 어미소 밑에 멍에 밑에 들어가면 어미소가 끌기 때문에 그냥 따라 다니면 되는 것입니다. 밭은 어미소가 갈아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밭갈이도 예수님이 문제의 짐을 목에 걸러지고 대신 끌어주는 것은 예수님께 맡겨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멍에를 걸머지고 일을 하겠다고 하면 주님이 멍에를 지지 않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나의 삶의 멍에를 주님께 내어 맡기고 주님 멍에 밑에 들어가서 같이 걸어가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짐을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혼자 살지 않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을 때도 주님과 함께 살고 나쁠 때도 주님께 함께 살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주님이 와서 사망의 골짜기를 생명의 골짜기로 만들어 주시고 원수가 와서 우리를 넘어뜨리면 주님께서 함께 계셔서 밥상을 차려 주시고 주님은 여러분과 항상 이 땅에서도 같이 살다가 천국까지 함께 올라가고 천국에 들어가서는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게 변하지 않게 여러분과 함께 역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형이 4백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에서가 동생을 죽이려고 오는데 마음에 분이 꽉 들어차서 단 칼에 동생의 목을 치려고 했는데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져서 절름발이가 되어서 이제는 이름도 이스라엘로 바꾸고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난 다음에 형의 군대를 향해서 걸어오는 것입니다. 형이 군대를 거느리고 말을 타고 오는데 야곱은 일전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절뚝 형을 보고 이렇게 걸어옵니다. 형이 저놈을 단칼을 죽이려고 했는데 칼을 뺄 필요도 없어요. 보니까 절뚝 절뚝하고 이제는 자기가 제일 앞에 서가지고서 나가면서 절뚝 그럴 때마다 하나님 의지합니다. 하나님 의지합니다. 나는 하나님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눈에 안보이지만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걸어갔었습니다. 에서의 눈에 보기는 동생 야곱이 절름발이가 되어서 걸어오는데 실제는 예수님께서 야곱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형이 가까이 와서 보니까 기가 막힙니다. “이놈아, 형을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아버지에게 장자의 축복을 다 받고 도망을 친 놈이 이 시기에 찾아온다는 것이 고작 절름발이가 되어서 돌아오느냐.” 미운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수 된 마음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마음에 불쌍한 생각이 생겨서 그냥 말에서 내려서 가지고서 저벅저벅 걸어와서 “야 이놈아, 형을 속이고 난 다음 떠나가서 20년 동안 뭘 했기에 절름발이가 되어서 왔느냐.” 그냥 동생의 목을 얼싸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이 동생도 울고 눈물로써 하나가 되어서 화해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깨어져야 기적이 일어나요. 야곱이 형이 변화되기를 기다렸다면 형은 변화 안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변화되니까 형이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가정에 문제가 있지요. 남편하고 아내하고 문제가 있어 남편은 아내가 변화되면 내가 변화 되겠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변화되면 아내가 변화 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탄식을 하는데 아내가 변화가 되어서 좀 싹싹하게 굴어 보십시오. 성령께서 아내를 통해서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부모가 변화되면 자식도 변화되고 내가 변화되면 이웃이 변화되고 민족이 변화되면 다른 나라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변화는 내가 스스로 먼저 받아야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변화되면 내가 따라서 변화되겠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먼저 여러분이 변화되어서 원수를 위해서 축복하고 기도하고 사랑하면 원수가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상대가 변화되어요.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상대가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죄인들 앞에 나섰습니다. 죄인들아, 너희 변화되면 내가 구원해 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우리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매달리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쳐다보고 변화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목숨을 바치고 나를 용납하는 저분을 어떻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변화되어서 세상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중심의 삶에서 깨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자기중심이 깨어지고 절름발이가 되어서 하나님께 의지하니까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절름발이가 되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긴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26절로 28절에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깨어져서 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긴 자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씨름해서 지면 하나님은 우리 환경에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고 원수도 회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9절로 12절에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변화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도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8절로 10절에 보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결론> 사기꾼인 야곱이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까? 야곱은 엎치락뒤치락 했지만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초기의 삶은 육신적 신자여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육신의 욕망에 끌려 다니는 신앙인과 같았습니다만 얍복 나루터에서 환도뼈가 어그러지는 체험을 하고 난 이후에는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는 싫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속사람을 하나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푸어 주시는 것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해지고 속사람은 강성해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여러분은 더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은 겉사람이 깨어지고 속사람이 살아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속사람을 의지하고 신령한 사람이 되어 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는 이스라엘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중심으로 서야 바로 살 수 있게 되고 하나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야곱이 하나님의 권위를 존경하고 신본주의로 살고 꿈을 꾸고 살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인품을 보시고 그를 사랑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야곱이 육신이 깨어지는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육신을 의지하지 않고 꾀를 의지하지 않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따라 가므로 하나님이 같이 해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도 인간의 꾀를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버리고 온전히 깨어져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손을 잡고 행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