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3. 주일설교

설교제목 :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야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야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4~17)

<서론>
오늘 저는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위해서 자기의 군복들과 더불어 왕궁에서 의논을 하고 군대를 보내면 아람의 군대 앞에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와서 진을 치고 지켜서 가는 곳마다 실수를 했습니다. 아람왕이 대노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스파이가 있다. 서로 의논하면 꼭 그것을 이스라엘에 전달해 주는 정보원이 있다. 누군지 그 정보원을 찾아내어라. 그러니까 그 신하가 하는 말이 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있어서 왕이 침소에서 혼자 생각하는 것도 다 알아내어서 이스라엘 왕에게 갖다 일러바칩니다. 그럼 엘리사를 잡아라. 그래 알아보니까 도단성이라는 곳에 엘리사가 밤에 있다는 것을 알고 대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말과 병거와 군대를 파견해서 도단성을 첩첩히 둘러싸서 개미 한 마리 도망치지 못하게 했는데 아침에 엘리사의 종이 잠 잘자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이렇게 온 천지에 아람군대요, 깃발이요, 마병이요, 군병이었습니다. 벌벌 떨면서 들어가서 엘리사 선생님, 우리는 큰일 났습니다. 어찌해야 될까요? 아람군대가 우리가 첩첩히 둘러쌌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가 하는 말이 두려워 말라. 우리와 같이 계신 이가 저들과 같이 있는 이보다 많다. 하나님이여 눈을 떠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그 청년의 눈을 뜨게 하니까 눈을 떠보니 아람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서 내려 보낸 하나님의 불병거와 불말, 천사들의 군대가 진을 치고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가든지 우리를 둘러싸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경쟁자, 훼방하는 자, 원수들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들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세상은 사는 동안에 없어요. 항상 우리는 경쟁자에 둘러싸여 있고 원수에게 둘러싸여 있고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오직 우리는 그들을 극복하고 이기며 살아야지 그렇지 않고 없는 곳에 가서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들을 극복하고 일어나서 살 수가 있겠습니까?

<본론>
1. 환경을 바라보고 절망하지 마라
엘리사의 종처럼 환경을 바라보고 절망하면 우리는 안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천재로 태어나서 세상에서 살다가 죽을 때는 전부 다 둔재로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천재와 같은 존재들인데 세상에 살면서 자꾸 환경만 바라보거든.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할 수 없다. 힘들다. 고통스럽다. 나는 지혜도 없다. 교육도 없다. 없는 것만 바라보고 좌절하고 낙심해서 천재가 전부 둔재가 되어서 전부 세상을 뜬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환경에 우리가 어두운 면을 찾아보려면 어느 곳에나 있어요. 내 그림자 뒤에도 어두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종처럼 적군을 바라보고 엘리사 선생이여 큰일 났습니다. 이제는 죽었습니다. 탄식하지 말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것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두려움은 만병의 근원이요 정신적 감기와 같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두려워하는 것이 굉장히 우리에게는 파괴적인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감기에 걸리면 부정적인 생각, 희망을 잃어버리고 불안, 좌절, 패배적인 말을 하고 감기처럼 기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기가 걸린 사람 기침 안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늘 콜록콜록 기침하지요.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오면 부정적인 감기에 걸려서 정신적인 감기의 결과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좌절,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우리의 심령을 억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부자였지만 마귀의 공격을 받아서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는데 그가 마귀 공격을 받아 자식들 다 죽고 재산 다 잃어버리고 아내는 떠나가고 몸은 병들고 비참하게 되었을 때 외쳐 말하기를 욥기 3장 25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평소에 이런 일이 일어나겠지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 두려움과 무서움이 그와 같은 환경을 끌어당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평소에 나 암에 걸리겠지. 암에 걸리겠지. 그래서 암에 대한 책은 다 읽습니다. 기사가 나오면 다 읽고.. 그런데 그 사람 나중에 보면 암에 걸려 있어요. 왜, 암을 늘 두려워하니까 암이 그 두려워하는 사람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는 못산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패배적인 생각을 가지고 두려워하고 있으면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 마음에 항상 무언지 모르게 잘될 것이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행복하게 될 것이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꽃이 향기를 발하듯이 마음속에 분위기가 늘 조성 되면 그 분위기가 그러한 환경이 다가오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할 때 그 마음속에 향기로운 정신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면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암울하고 분노가 꽉 들어차 있고 저주가 들어차고 부정적인 말, 비평적인 말만 하면 그것은 반드시 패배하고 절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셨을 때 언제나 부탁하는 것은 두려워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두려움이 우리 공적 1호입니다. 두려워 할 이유가 많이 있지요. 그러나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두려워 하면 공적 1호에 걸리는 것입니다.
신명기 31장 6절에 보면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야훼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원수를 보지 말고 같이 있는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실테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예레미야 42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늘 부탁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같이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10장 31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4장 27절에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하나님이 오시면 마음에 평안과 안심을 가지고 오시지만 마귀가 오면 두려움 불안을 먼저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불안하게 하고 두려워하고 부정적인 마음을 주고 난 다음에 거기에 떨어진 사람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어떻게 아느냐. 마음에 평안이 다가오고 두려움이 떠나가면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인 것을 알면 두려움이 마음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고 아무 힘이 없는 사랑은 필요 없지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계신 하나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니까 그 사랑에 의지하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앎으로 마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면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쫓겨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면 두려움이 와서 점령하지요. 이 세상에 사랑이 믿음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내가 믿을 수가 있어요.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가족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 상호간에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친구라도 사랑해주는 친구는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해도 아무 힘이 없으면 믿을 이유가 없지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되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했는데 사랑함과 동시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을만해요. 사랑하지만 능력이 있기 때문에 믿으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잠언서 29장 25절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야훼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두려워하면 좌우간 우리는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디안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기드온이 나팔을 부니까 군인들이 모여왔는데 3만 2천명이 모여왔습니다. 하나님께서 3만 2천명 수가 너무 많다. 이 중에 두려워하는 사람 집으로 다 돌려 보내라. 그래서 기드온이 여러분 가운데 마음에 적군이 두려운 사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까 3만 2천명 중에 2만 2천명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남은 자는 만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자를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내보내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외모로 비교하면 다윗은 골리앗에 비교해서 어린아이였습니다. 아직 20살도 안된 17, 18 정도 밖에 안 되는 초립동이었는데 골리앗은 대장군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엄청난 무장을 했습니다. 놋투구를 쓰고 놋경갑을 하고 창과 칼과 단창을 들고 나왔는데 다윗은 목동의 옷을 입고 물멧돌 가지고 짐승을 치는 지팡이 들고 왔습니다. 상대가 안됩니다. 그런데 사람을 볼 때 고깃덩어리를 보면 안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다윗은 고깃덩어리가 작고 골리앗은 큰 덩치가 큰 고깃덩어리였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속에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었어요.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이 다 벌벌 떨 때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이 큰소리치고 나올 때 다윗이 말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가지고 나아오거니와 나는 너가 무시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전쟁은 야훼의 것이다.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리니 내가 네 목을 베어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주겠다. 다윗은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나폴레옹 힐이라는 유명한 성공학자는 말하기를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정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는 힘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린다 새퍼딘은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라는 책에서 “두려움은 사람을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하고, 늘 경계심을 품게 하고, 불안하게 하며, 자신이 없게 만들고, 매사에 비판적이게 하여 자신을 망치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마치 정신적인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현미경으로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마비시키는 바이러스 같이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새퍼딘은 두려움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것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마음속에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니 다윗은 하나님 플러스 다윗이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손잡고 나가니 골리앗이 아무리 커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의 물멧돌 한방에 넘어진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마음에 두려움이 있거든 하지 마십시오. 사업을 할 때 내가 이 사업을 하면 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어서 계약서을 쓸 때 손이 덜덜덜덜 떨리거든 쫙 찢어 버리십시오. 안됩니다. 물건을 살 때도 여러분 물건을 들고 물건값을 보고 떨리거든 아예 집어넣어 버리십시오. 사지 마십시오. 외로운 곳에 직장을 구해 가는데 버스 정류소에 가 있는데 눈이 아뜩하게 덜덜 떨리거든 안 가는게 좋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가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주님께 내어 맡겨서 주님이 오냐 내가 같이 하마 하시면 마음에 평안이 꽉 들어차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지 않아도 마음이 평안하면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하고 얼마나 해야 응답 받습니까? 하는데 마음에 평안이 꽉 들어차서 내가 다 이루었다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으면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도 마음속에 평안이 없고 늘 불안과 공포가 바람을 일으키면 아직까지 응답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와 같이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우리를 둘러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천 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 주님이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여러분의 가슴속에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 우리를 청산하시고 우리를 새로 거듭나게 하는 역사를 가지고 와 계신 것입니다.

2. 우리와 같이 계신 이를 보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내 마음속에 모셔드리면 내 주위에 용서와 의의 은혜가 둘러 진치고 있고 성결과 성령 충만이 둘러 진치고 치료와 건강이 둘러 진 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이 둘러 진 치고 부활과 영생천국이 둘러 진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웃 사람들이 와서 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 환경이 어려워지니 어떻게 하지요? 큰일 났지요? 아람원수들이 너무 많이 둘러 진 치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요? 그러나 여러분은 가슴을 펴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우리를 둘러친 하나님의 군대가 첩첩히 주위에 둘러싸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용서와 의의 군대가 둘러싸고 있고 거룩함과 성령충만함의 군대가 둘러 진치고 있고 치료와 건강의 군대가 둘러싸고 있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의 군대가 둘러싸고 있고 부활과 영생천국의 군대가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군대가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골리앗을 보고 두려워하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 하신 것을 알면 하나님 은혜가 같이 계시므로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하고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어린아이의 가정교사와 같은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도우미로서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이가 성령이신데 성령은 바람같이 와 계신 것입니다. 바람이 항상 불면 우리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바람이 없는 것 같으나 언제나 호흡을 하고 있는 것처럼 바람이 있는 것처럼 성령이 우리 속에 와서 조용하게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으로 성령이 와 계신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해야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진치고 있으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이 큰 위로와 싸운 무장을 주셨는데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을 끼고 있으면 여러분 무한한 위로를 말씀에서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및 영과 골수와 심령과 골수를 쪼개기 때문에 말씀을 가지고 나가면 환경을 정복할 수가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아무리 쳐들어와도 말씀에 서면 말씀 앞에 원수 마귀가 감당 못합니다. 기록하였으되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하면 마귀는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예수님이 기록하였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기록하였으되 하니까 쫓겨나갔어요.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이 기록했고 변하지 않는 말씀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외우십시오. 말씀을 많이 외워 놓으면 어려울 때 그 말씀을 당장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같이 계시느니라. 내가 마음에 두렵고 떨리면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와 같이 하리라. 겁이 나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을 외우면 마음이 차분하고 가라앉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진정의 역사를 하고 낙심되었을 때 용기를 주고 불안할 때 담대함을 주는 효과를 발생하는 영적인 영양제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내 마음이 답답하고 캄캄할 때 주님 나의 빛이 되시니 나의 구원이 되시니 내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능력이 되시니 내가 용감하게 나갑니다. 말씀을 내가 외우고 말씀을 묵상하면 말씀이 굉장한 생명의 힘이 되어 여러분과 나를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므로 이 말씀을 무장으로 몸에 둘러싸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의 교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나는 혼자서 예수 믿는다. 혼자하면 얼마 있지 않다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면 넘어지나 두 사람이면 견딜 수 있고 삼겹실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같이 있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루어주시겠다. 합치면 힘이 되고 헤어지면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에 교회 와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배가 되어서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기도할 때도 혼자 하는 것보다 교회 와서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좋고 구역에 나가서 지역에 나가서 구역장, 지역장 도움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 굉장한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대교회 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한 것처럼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우리들은 우리의 환경의 어려움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가 우리 눈을 열어 하나님 실상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이여 이 청년의 눈을 열어 보게 해주시옵소서. 청년이 눈이 열리지 않고 아람 군대를 보았을 때는 벌벌 떨었으나 눈을 열어보니까 하나님의 군대들이 불마와 불병거가 둘러쳐진 것을 보고 그 다음 하하하 웃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영혼의 눈을 떠서 실상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청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띄여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띄이지 않을 때는 환경밖에 안보여요. 눈에 보이는 부정적인 환경밖에 안보여요. 그러나 기도할 때 성령이 마음을 뜨겁게 해서 마음의 눈을 열어주면 하나님의 역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큰 기쁨과 평안과 담대함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모든 일을 내가 해야 되고 내가 일을 성취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겁이 나고 힘이 모자라니까 진땀이 나지요. 그러나 눈을 떠서 보면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려고 곁에 와 계십니다.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창세기 때 보십시오. 엿새 동안 하나님이 일하시고 이레째 쉬는 날 우리게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쉬는 날 태어나니까 할 일이 없잖아요. 주님, 내가 무슨 일을 할까요. 쉬는 날이다. 나를 믿고 순종하고 쉬어라.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일을 도우시는 것을 알면 하나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할머님하고 같이 살았기 때문에 김장때 되면 할머님이 김장 담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내가 도와줄게 하면 야야야 귀찮다. 내가 하는데 니가 구경만 해라. 구경만 해. 싫다. 왜요? 니가 하면 내가 하는 것 망쳐 놓는다. 못하게 해요. 하나님도 꼭 한가지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하나님, 일을 도우려고 하면은 야 가만히 있어. 너는 가만히 있어. 일을 행하는 나, 일을 지어 성취하는 이는 나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게 부르짖기만 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겠다. 하나님은 여러분 일하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 허물, 질병, 저주, 절망, 죽음, 마귀를 청산하고 여러분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생명을 주기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오셔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도와주면 좋지 않겠느냐. 도와주면 예수님 일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열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면 기도만 해요. 기도.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받아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이 술술술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간의 힘으로 일을 하려고 하면은 일이 자꾸 꼬이고 일이 안되는데 주님이 역사하시면 모든 꼬인 매듭이 풀리고 술술 해결되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입니다. 고생의 떡을 먹고 수고의 떡을 먹어도 허사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한잠 자고 나니까 일 다 했더라. 인생이란 쉬면서 살게 만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고 죽도록 고생하는 것은 저주 받았을 때 일이고 예수 믿고 난 다음 주님이 저주를 다 제거하셨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면 마음에 휴식을 가지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십시오. 시간만 있으면 자꾸 맡기십시오. 기도는 자꾸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꾸 염려, 근심 되는 것을 자꾸 아뢰고 또 아뢰고 또 맡기고 또 맡기고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나라가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께 벌을 받아 멸망하게 되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건지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왕에게 호소하고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발버둥치고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시위대뜰 감옥에 가두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몸이 열 개 있어도 감당을 못하는데 왜 나를 가둡니까? 너 때문에 내가 할 일을 못하겠다. 일을 행하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감방에 들어앉아서 부르짖으라. 일은 내가 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완성해서 너에게 보여 주겠다. 여러분은 마음속에 있는 염려과 근심과 불안과 초조를 하나님께 아뢰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서 해결하여 여러분에게 평안으로 선물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볼찌어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하니라. 그 날에는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오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늘 여러분 자신을 생각할 때 플러스인생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플러스 나, 하나님 성령이 내 속에 와 계시므로 하나님 성령 플러스 나 우리는 언제나 하늘 숫자로 보면 두 사람이요, 인간 숫자로 보면 한사람으로 둘이 하나고 하나가 둘이 되어 사는 여러분이 되신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눈을 열어 영적 실상을 보라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므로 항상 마음속에 날 위하여 일하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돼요.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쳐다보고 기도하고 아뢰면 주님이 일은 혼자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일은 주님의 것이다. 일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주님 허락 없이 여러분이 자꾸 날뛰면 여러분에게 질병의 감방에 가두든지 낭패의 감방에 가두어 놓아서 간섭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이 간섭하는 것 참 싫어합니다. 주님이 홀로 일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답하거든 주님께 나와서 엎드려서 기도하십시오. 하루 종일 엎드려서 기도하고 또하고 또하고 마음에 평안이 넘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오늘날도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셔서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을 들어 주님이 같이 계신 것을 보고 희망찬 기대와 꿈을 마음속에 가지십시오. 좋은 일이 일어난다. 행복한 일이 일어난다. 결국은 일이 잘된다.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 이러한 기대가 부풀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낙심해서 나는 버림받았어요. 나는 못살아요. 나는 어떻게 하지요. 나는 패배자입니다. 절망입니다.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죽어라 죽어! 너 같은 사람하고 무슨 일을 하겠노. 내가 힘이 없고 무력해도 주님 앞에 나와서 주여, 주님이 계시므로 무엇이든지 좋은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 가운데 계셔서 무엇인지 모르게 아름다운 일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계시므로 나는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좋습니다. 그러한 마음에 향기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 주님이 여러분 속에 와서 일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마음에 희망찬 기대와 꿈과 소원이 있으면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그 꿈과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전능한 능력이 있다고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여러분을 엄청나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고 십자가에 몸찢고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므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잘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가 못되기를 원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자녀들이 왜 잘되기를 원합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왜 잘되기를 원합니까? 우리나라를 여러분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께서 대통령 당선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장로님이 나라를 참 사랑하시는구나 내 마음에 그런 따뜻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랑 안하면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할 리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해야 국민이 잘되고 나라가 번영할테니까요. 사랑하니까 우리가 어찌하든지 도움을 베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능력을 가졌는데 여러분을 위해서 그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구경시키려고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여러분 위해서 전지하십니다. 여러분 위해서 무소부재하십니다. 여러분 위해서 역사해 주고 도와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담대하게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믿는 것이 여러분의 할 일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믿어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마태복음 21장 21절로 22절에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그것을 보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믿는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는다. 율법적으로 내가 무얼 하겠다고 자꾸 방해를 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첫째도 믿고 둘째도 믿고 셋째도 믿고, 믿고 있으면 주님께서 믿음을 통해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기적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잘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왜 안돼요. 태어날 때부터 주님이 믿음을 주어서 태어난 것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 손들어 봐 주십시오. 겁이 나서 손 안 들지요? 믿음 없는 사람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팔, 다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믿음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믿음을 쓰는 사람이 있고 믿음을 안 쓰는 사람 그것은 다릅니다.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쓰는 사람은 믿음이 자라고 기적을 행하고 믿음이 있는 것을 믿지 않고 안 쓰는 사람은 믿음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믿음이 있으므로 오늘부터 믿음을 사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손을 쓰듯이 믿음을 쓰면 돼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항상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네 믿음을 어디에다 두고 왔느냐. 왜 믿음이 작아졌느냐 탄식을 하신 것은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이 그 믿음을 통해서 엄청난 일을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하러 오셨는데 누구를 위해서 일하느냐.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자꾸 간섭하는 사람 위해서 일하시는 것 아닙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는 사람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믿어주는 사람 위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어주면 주님 된장도 담아주고 겨우살이도 다 준비해 주고 겨울이 이미 다 지나갔지만 뭐 없는 것 없이 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왜, 성경에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무엇이든지 했으니까 무엇이든지는 얼마든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말씀이 있고 믿음이 있는 이상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아무리 다가와도 마음에 믿음이 들어오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전직 장관이었던 헨크 프레델링(Henk Vredeling)은 2차 세계대전 때 저항군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스파이였습니다. 그는 위험천만한 작전에 투입되어서 양말 속에 적국인 독일 잠수함 공장의 설계도를 전부 훔쳐서 양말 속에 집어넣고 이제 연합군으로 가서 비행기로 잠수함 폭격하려고 가는데 잡히면 당연히 총살입니다. 그런데 기차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 가다가 기차가 덜컹 서거든요. 보니까 독일 군인들이 수색을 합니다. 기차 저 칸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차 안을 걸어오면서 모든 사람의 몸을 수색하고 가방을 수색하는데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었구나. 독일 군인들이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를 내고 오는 것을 들을 때 이제는 죽었다 죽었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막 온몸이 사지가 벌벌 떨리고 눈알이 캄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편 23편이 기억이 나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 말씀이 기억이 나서 그가 입으로 조용하게 외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몇 분 그러니까 마음이 착 가라앉는게 조용해지거든요. 아주 평안해 지거든요. 독일 군인이 옆에 오니까 고생하십니다. 수고하십니다. 뭘 보시겠어요? 하니까 독일 군인이 보니까 참 사람이 좋거든요. 얼굴이 평안하고 인사까지 하고 싱글싱글 웃으니까 됐어 됐어 앉아 있어~ 지나가 버렸었습니다. 그래서 그 비밀서류를 가지고 가서 연합군에 가져가서 연합군의 비행기가 독일 잠수함 공장을 폭격해서 독일이 큰 전상을 당하고 전쟁에 지기도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마음에 평안을 얻은 것은 성경구절 시편 23편 성경구절 한 구절 때문에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계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 이렇게 힘이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 말씀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창조적인 입술의 선언을 계속하십시오.
여러분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말을 많이 하는 자는 그 말의 열매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말은 내 입에서 나오면 그때부터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나쁜 말은 나쁜 일을 해주고 좋은 말은 좋은 일을 해주고 부지런히 일을 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오자마자 여러분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잠언서 6장 2절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죽고 사는 권세가 입술의 말에 있으니까 말을 열심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꿈을 내게 꾸게 해준 걸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게 범사에 잘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자꾸 말을 해야 이 말이 나가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답답할 때는 그 말 많이 했는데 요사이는 안 답답하니까 말을 안 하니까 하나님께서 답답하셔서 그 말을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 하루에 수십 번이고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게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를 외우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나가서 여러분을 위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그렇지 않습니까?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 도다. 이 말을 자꾸 하니 말이 나가서 이렇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송축하고 말을 자꾸 내보내는 것 그러므로 심부름꾼 사용하듯이 말을 내보내서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가 늘 할 것은 문제를 당했을 때 감사와 찬송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기도가 안 나올 때 자꾸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는게 제일 좋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할 때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제일 좋습니다. 미운 사람 있을 때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미움을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궁전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로 17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여기에 그저 감사하는 자 감사하는 마음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의 말을 하라고 했는데 이 감사가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답답할 때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감사고 마귀가 여러분을 침략해 들어올 때 마귀를 막는 것도 감사고 기도가 안 나올 때 기도가 나오게 하는 것도 감사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도 감사인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감사하면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끼고 하나님이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감사 찬송을 하니까 쇠고랑이 다 열리고 감옥이 진동하고 문이 열리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진동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진동하고 마귀의 진을 진동하여 훼파하고 하나님의 보좌를 진동해서 감화 감동으로 은혜를 베풀게 하고 현실을 진동해서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 예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 나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 듣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무엇을 이유를 들든지 자꾸 감사를 하십시오. 그 감사는 여러분에게 큰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흘러나오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데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우리 환경에 우리를 억압하고 두렵게 만들지만 마음에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 말씀으로 차있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흘러나오니 전쟁에서도 마음에서 이미 결정 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두려움으로 꽉 들어차 있으면 이미 전쟁에 실패했고 마음에 확신이 차 있으면 이미 전쟁에 이긴 것입니다. 꼭 총 쏘고 일선에 나가서 하는 전쟁 말고 말입니다. 생활전선에서 생존경쟁에서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이미 졌고 마음에 확신이 있으면 이미 이긴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갈 때 마음에 믿음이 있을 때는 물 위로 걸어갔으나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움이 들어오자 물에 빠졌습니다. 똑같은 베드로요 똑같은 예수님인데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면 확신과 평안이 있을 때 물위로 걸어갔고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할 때 주님이 눈앞에 계신데도 그 앞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이 세상 끝 날까지 같이 계신 것입니다. 항상 마음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인생의 파도 위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라보고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이것도 못된다. 저것도 못된다. 이것도 없다 저것도 없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이 여러분 곁에 계시면서 물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곁에 모시면서 빌립은 굶주린 사람을 못 먹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개가 두 개로 남자만 5천명, 부녀자 기 만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겼습니다. 똑같은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예수님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본 빌립은 못 먹여도 예수님을 바라본 안드레는 먹였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어떠한 형편에 있습니까? 영혼이 안 됨같이 범사에 안 되고 안 건강합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안 되는 것 바라보면 예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십자가 군대로써 둘러 진 쳐 있는 것입니다. 용서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고 성결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고 치료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고 아브라함의 축복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고 영생복락의 군대가 둘러 진 쳐 있는 것입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소원하고 꿈꾸고 그것을 믿고 군대가 진치고 있다고 입으로 시인하면 여러분 그 군대의 능력을 의지해서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기 전에 이미 이기고 나가고 물에 파도를 걸어서 걸어가서 인생을 환경이 아닌 여러분의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